풍경이 온다 - 공간 장소 운명애
서영채 지음 / 나무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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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들을 정리해보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습니다. 기억의 저장고 깊숙하게 가라앉아 있는 것들을 끌어내려면 집중을 해야 할 것 같아 선뜻 시작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써내려 갈 것인가도 문제였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정기호 교수님의 <경관기행; https://blog.naver.com/neuro412/221525550038>에서 해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옛 사진에 담긴 시선과 기억’이라는 부제가 달린 이 책은 저자가 옛 앨범 속에서 찾은 사진의 현장을 다시 찾아다닌 여행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제가 살던 곳이 지금은 어떻게 변했을까 궁금해졌습니다. 태어난 곳에서부터 지금 살고 있는 곳까지를 살펴가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일을 했는지 짚어보면 제가 살아온 삶이 정리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서영채 교수님의 <풍경이 온다>는 아마도 비슷한 느낌으로 읽게 된 것 같습니다. ‘공간, 장소, 운명애’라는 주제어들이 어떤 연관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도 궁금했습니다. 적어도 공간과 장소는 연관을 지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생소해 보이는 운명애라는 단어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자는 ‘이 책은 풍경에 관한 책이다’라고 책머리에의 운을 뗍니다. 공간과 장소에서 개념이 확대되는 셈입니다. 제목에 넣지 못한 ‘이 책은 또한 바로크 근대성에 관한 책’이라는 대목에서는 갑자기 무게감이 확 늘어납니다. 나아가 주제어로 삼은 공간의 의미가 ‘역사와 시간을 대체하면서 20세기 후반의 중요한 이론적 화두로 등장한 공간이라는 개념을 뜻한다(5쪽)’라는 설명을 읽으면서 지난한 책읽기가 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습니다.

예감은 늘 틀리지 않습니다. 풍경으로 시작하여 공간과 장소에 대하여 설명한 뒤에 다시 공간과 풍경을 연결한 다음에 운명애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 1장에서는 한 사람이 풍경과 만나는 순간을 묘사합니다. 2장에서는 근대초기 북유럽화가들의 풍경화 속에서 주체와 대상 간의 위계가 뒤바뀌고 있음을 설명합니다. 3장에서는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를 중심으로 바로크 근대에 들어 본격화된 신에 대한 관념을 분석합니다. 4장에서는 근대 자연과학자들이 발견한 우주의 모습을 바탕으로 철학자들이 도출해낸 절대공간의 개념을 다루었습니다. 5장에서는 신비 속에 감추어졌던 신이라는 존재의 정체가 드러나는 과정을 설명합니다. 6장에서는 장소가 지닌 상징성과 그 너머에 숨 쉬고 있는 윤리를 이야기합니다. 7장에서는 다시 풍경으로 돌아오는데, 그 풍경이란, ‘낯설고 특별한 경치’가 아니라 주체에 의해 평소와는 다른 시선으로 포착된 장소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8장에서는 근대인은 운명에 관한 문제를 윤리적 주체의 책임과 연관 짓습니다. 오늘날 운명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속에서 필연으로 받아들여진 우연을 뜻한는 것입니다.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주관성의 힘인데, 시간적으로는 과거, 공간적으로는 장소를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 속에 존재하며, 이것이 방향을 바꿔 미래를 향하게 될 때 운명에 대한 사랑, 곧 운명애가 생겨난다고 이야기의 매듭을 지었습니다.

제가 살아온 장소와 시간들을 되짚어 정리해내고자 하는 것이 곧 저의 운명에 대한 사랑을 완성하게 되는 길이라는 설명이 가능해질 것 같습니다. “운명애란 자기에게 주어져 있(다고 스스로 판단하)는 삶을 다시 한번 자신의 의지로 선택하는 사람의 마음을 뜻한다(378쪽)”라고 저자는 설명합니다. 즉 살아온 날들이 자신의 운명이었다고 한다면 같은 상황에서 같은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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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 - a love letter to my city, my soul, my base
유현준 지음 / 와이즈베리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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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온 날들을 정리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다만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것과 정리하는데 필요한 시간이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은 <경관기행; >을 읽으면서 살던 곳을 되짚어가면서 정리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탓인지 이와 관련된 책들이 눈에 띄게 되는 것 같습니다. 건축을 하시는 유현준님이 쓴 <당신의 별자리는 무엇인가요>도 기본적인 생각이 비슷해보였습니다.

작가는 이 책에서 그가 좋아하는 121가지의 공간과 장소를 중심으로 도시와 건축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소개하는 내용으로 구성하였습니다. 내용은 크게 ‘나를 만든 공간들’과 ‘보물찾기’로 나누었는데, ‘나를 만든 공간들’에 바로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을 보낸 장소들에 대한 생각을 담았습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만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는데, 시간을 보낸 공간 역시 그 사람들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년시절과 청년시절에 보낸 공간 가운데 의미가 큰 공간을 돌아보고자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아마도 성년이 되어서 만난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만, ‘보물찾기’라는 제목 아래, ‘내겐 너무 특별한 도시의 요소들’, ‘연인을 위한 도시의 시공간’, ‘혼자 있기 좋은 도시의 시공간’, ‘일하는 도시의 시공간’이라는 제목으로 도시 속의 공간들을, 주로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공간입니다만, 소개합니다. 어쩌면 독자들 역시 같은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그런 장소들입니다.

다만 장소라는 개념은 시간이라는 요소가 빠진 3차원적 개념이라는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옛날 집의 마당이나 거실까지도 저자의 관심대상이 되었는데요. 현재의 모습은 당연히 더할 수 없었고, 옛날 추억을 반추하는데 머물고 있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경관기행>에서는 ‘풍경’이라는 개념을 가지고와서 공간에 시간적 요소까지 가미하여 이야기를 전개했던 것 같습니다. 다양한 사진들을 곁들여 설명을 뒷받침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점입니다. ‘나를 만든 공간들’의 경우는 옛날 사진들을 끄집어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물찾기’의 경우는 사진작가의 도움을 받았다고 합니다. 책말미에 덧붙인 편집자의 설명에 따르면 사진작가 양해철님이 이야기 속의 장소를 찾아 찍은 사진을 사용하였다는 것입니다.

만일 제가 이런 글을 쓴다면 물론 직접 찾아가서 풍경은 물론 공간도 확인해보고 느껴볼 생각입니다만, 우선은 네이버나 다음 지도에 첨부되어있는 거리풍경을 인용해볼 생각입니다. 역마살을 타고 난 탓인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숱하게 많은 장소를 옮겨가며 살았기 때문입니다.

저자 역시 살던 동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구글에서 검색을 해보았더니 즐겨가던 가게가 폐업한 것으로 나와 섭섭했다고 합니다. 그 소회를 “내가 즐겨 가던 가게가 사라지는 것은 일종의 수몰지역 난민이 되는 기분이다. 가게가 사라지면 나의 추억과 그 시절 그 시간도 함께 사라지기 때문이다.(101쪽)” 사실 제가 살던 집, 심지어는 동네까지도 재개발이 진행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곳이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 겪었던 일들 가운데 적지 않는 부분은 분명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다행히 사진이라도 남아 있다면 기억을 되살리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산토리니에 가셔서 현대도시가 아름답지 않은 이유를 깨달았다 하셨다는 말씀에는 솔직하게 동의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몇 시간을 들여 배로 왕복하면서 구경한 산토리니섬의 분위기는 왁자지껄한 관광지 분위기 그대로였고, 숨이 멎을 듯했다는 이야기를 하신 분도 있었던 일몰광경도 대단치 않았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날 날씨 때문일 수도 있기는 합니다.

어린 시절을 보낸 공간을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 찾아가보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에 공감합니다. 예닐곱 살을 보냈던 곳에 같이 자란 형제들과 같을 때 각자가 가지고 있던 추억의 결이 다른 것을 듣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계획했던 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가면 된다’는 삶의 경로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 역시 비슷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인 듯합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공감하거나 그렇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 것도 책읽는 즐거움이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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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에서 한국의 미래를 꿈꾸다
홍희정.홍성현 지음 / 이담북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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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의 방향을 보면서, 복지 선진국인 북유럽국가의 실태가 궁금하던 차에 읽게 된 책입니다. 박사과정에서 학교지원으로 스웨덴에서 6개월 생활한 것이 스웨덴과의 인연이 되었던 저자가 스웨덴의 복지체제야말로 우리나라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생각에서 쓴 것이라고 합니다. 저자가 서문에서 적은 것처럼 최근에 북유럽 신드롬이 우리나라를 흔들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북유럽 국가의 사회복지제도는 참고할 것이 많다고 알고는 있습니다.

다른 나라의 제도를 검토할 때 꼭 고려할 점은 겉으로 보이는 것 이외에도 숨어있는 것들을, 특히 문제점이 될 것 같습니다만, 제대로 짚어보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자 역시 본격적인 스웨덴 생활을 시작하고서는 잠시 머물렀던 시절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떤 점을 그랬는지를 한줄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든 저자는 이 책에서 복지 이슈를 중심으로 스웨덴에 대한 다섯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워라벨’로 일 생활 균형, 근로 시간(6시간) 단축 등을 소개하고, 둘째는 ‘나눔’으로 2018년 정부예산안을 통해 살펴본 사회 복지 개혁과 난민 정책 등을 담았으며, 셋째는 ‘근로자의 권리’로 기본 소득, 일자리 정책, 자영업자 지원정책 등을 다루었다고 합니다. 넷째는 ‘개인행복’으로 스웨덴에서의 인격권에 대한 인식을 비롯하여 독거노인, 1인 가구 지원, 커뮤니티 케어를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지속 가능’으로 스웨덴 민간 자원 연계 방안으로 활용되는 세컨핸드숍, 청소년 정신건강, 한파 등 재난에 대응하기 위한 대책, 애완동물을 기르는 반려인의 자격을 다루었습니다.

특히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우리나라가 당면한 것이라서 관심을 두고 읽었습니다. 스웨덴의 경우 일찍이 문제를 예견하고 사회적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노력을 꾸준하게 해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그렇지 못했던 데다가 제도의 효과에 대한 면밀한 분석이나 사회적 합의 없이 중구난방 정책을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자녀 육아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 지나치게 큰 것이 출산을 기피하는 가장 큰 원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사회적 인식을 제고하는데 앞장서야 할 방송 등에서도 혼밥, 혼술 등 말초적인 흥미본위의 방송편성으로 개인주의적인 시각을 키워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들은 결국 노후생활의 안정도 결국은 스스로 해결해야 할 터인데 지금 시점에서는 관심 밖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세 자녀 이상 낳은 부부에게는 그들의 노후를 사회가 책임을 지는 의미에서 일정 연령에 도달하는 경우 기초생활을 할 수 있는 수준의 연금을 제공하는 것도 고려해볼만 하겠습니다. 당연히 자녀 수에 따라서 연금의 규모에 차등을 두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웨덴 복지정책의 특징은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즉 정책이 단기적인 시각에서 졸속 입안되는 것이 아니라 파악된 문제점에 기반하여 대책을 만들고, 그 대책에서 예견되는 문제점까지 충분히 반영하여 보완한 다음에 국민적 합의를 도출한 다음에 시행한다는 점입니다. 이때 합의가 어렵다해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꾸준하게 설득하고 이견을 좁혀가는 과정에서 국민들의 뜻이 크게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인구의 규모라거나 복지정책의 연륜 등 사회적 여건이 우리나라와는 분명 차이가 있다는 점은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는 복지정책을 우리나라에서도 충분히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지사회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책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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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 인문학 수업 : 관계 - 나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심리의 첫걸음 퇴근길 인문학 수업
백상경제연구원 외 지음 / 한빛비즈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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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 조금씩 생기는가 봅니다. 뒤늦게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게 된 저도 나름대로는 인문학 분야의 책을 꽤 읽어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가 있는 책을 읽게 되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해주는 인문학 서적에 관심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퇴근길 인문학수업>이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시즌1을 마무리하고 시즌2를 시작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됩니다. 시즌 1의 경우 ‘바쁜 걸음을 멈추고 나를 둘러싼 세계와 마주하기’라는 부제로 하여 멈춤이라는 주제를 다룬 책을 읽으면서 주제에 쉽게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과는 다른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기’를 부제로 한 전환과 ‘일상의 시간에서 세상 밖으로 나아가기’라는 부제를 단 전진의 경우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시즌의 기획이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한 꼭지의 글을 읽으면서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가는 재미를 느끼다 보면 12주가 금세 지나갈 것 같습니다. 저처럼 책으로 묶어 나왔을 때 한 번에 읽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시즌2의 시작은 ‘나를 바라보고 상대방을 이해하는 심리의 첫걸음’을 부제로 한 관계입니다. 분야는 심리, 경제, 사회, 문화, 신화, 과학, 역사, 문학, 고전 등의 분야에서 열두 분이 강의를 해주셨다는데, 그리고 보니 시즌1에서부터 계속 참여해주시는 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적당한 분량에 쉬운 설명, 그리고 깊이 있는 내용. 그래서 공부를 했다는 느낌이 든다’는 느낌을 적어주신 분의 말씀에 저도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최근에 근무환경이 갑자기 바뀌면서 특히 관계를 재설정해야 하는 위기상황을 맞고 있기 때문인지 노주선박사님의 ‘다름의 심리학’이라는 주제가 특히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나름대로는 열린 가슴으로 일을 해왔다고 생각을 했는데, 변화해가는 환경은 제 생각과는 사뭇 다르게 움직이는 것 같습니다. 다들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제가 오해를 하고 있는 탓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얼마 전에 <취향의 발견; >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은 탓인지 김동훈님의 같은 제목의 강의도 쉽게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전자가 다소 취미에 가까운 내용을 다루었던 것에 비하여 김동훈님은 취향의 의미를 다른 각도에서 접근한 것도 신선했습니다. 마지막 강의에서 취향이란 ‘좋아하는 대상을 감각적으로 분별할 수 있는 것(347쪽)’이라고 정의하고서는 ‘De gustibus non est disputandum’이라는 라틴어 경구를 소개하였는데, ‘취향에는 정답이 없다’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역시 취향은 각자 나름대로의 독특한 바가 있다는 것인데, 그렇기에 취향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 역시 책읽기, 글쓰기 그리고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라서인지 박일호님의 ‘현대인을 위한 여행인문학’이라는 강의도 집중해서 읽게 되었습니다. 여행을 그저 소확행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여행이 가지는 다양한 의미를 축소시키는 것 아닐까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앞서 김동훈님께서 취향에는 정답이 없다고 한 것처럼 여행을 하는 이유에도 정답이 없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통계를 내기 위해서는 굵직굵직하게 나누어 개인들의 이유를 가급적이면 묶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겠지만, 여행하는 이유까지 굳이 그럴 까닭이 없지 않을까요?

강의를 해주신 분들 모두 그 분야의 전문가들이시지만 간혹 정의나 개념이 분명치 않은 설명도 없지는 않은 듯합니다. 첫 강에서 사극의 영향 때문인지 무수리라는 표현을 일반화하여 사용한 듯한데, 무수리는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일하던 계집종을 이르던 왕실용어였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일반화하여 사용하는 것은 너무 자기비하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특히 자존감을 이야기할 때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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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다 - 전염병에 의한 동물 살처분 매몰지에 대한 기록
문선희 지음 / 책공장더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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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은 신이 인간에 내린 가장 큰 축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기가 복잡해지면서 내 일이 아닌 것은 그만큼 쉽게 잊히는 것 같습니다. 아니 의도적으로 잊으려 노력하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느 해던가 조류독감, 구제역 등이 돌면서 닭이나 오리, 돼지 등을 대규모로 살처분하는 모습이 방송을 탄 것을 기억합니다. 널찍하게 파놓은 구덩이에 버둥거리는 동물을 쏟아 붓고는 흙을 덮어 생매장하는 모습에서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동물을 살처분해서 묻은 장소가 어디인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뒤로 그 장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잊혀져가는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닌가 봅니다. <묻다>는 2010년 우리나라의 축산농가를 강타한 구제역과 조류독감으로 살처분되었던 동물들이 묻힌 장소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이들 동물전염병을 관리하는데 있어 살처분이 유일한 방법인가를 묻고 있습니다.

작가에 대한 소개가 분명치 않습니다만 사진작가인 듯합니다. 그래서 살처분 동물을 묻은 장소를 곰팡이가 뒤덮고 있거나, 시간이 많이 경과한 곳의 경우 풀이 자라 뒤덮고 있는 사진들을 같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상황은 백 마디의 말보다도 정황을 담은 사진 한 장이 더 많은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책에 실려 있는 살처분된 동물을 묻은 장소를 담은 사진이 충격으로 다가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비가 늘면서 가축사육방식도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식용육의 소요가 늘면서 풀어놓고 키우던 옛날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가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입니다. 특히 단위 면적에 키우는 동물의 개체수를 최대한 늘려 잡는 밀집사육의 경우는 동물의 면역이 떨어지기 때문에 동물전염병에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제역이나 조류독감과 같은 급성 전염병의 경우 확산을 차단하기 위한 표준처리방식을 수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물사육농장의 왕래를 금하고 전염병이 발생한 농장을 중심으로 일정 거리 안에 있는 농장의 동물을 살처분하는 방식입니다.

작가는 이 경우에 처분 대상인 동물을 안락사시킨 후 소각하거나 매몰하라고 법에서 권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박한 상황임을 빌어 생매장하고 있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물전염병을 조기에 차단해야 하는 행정당국의 입장에서는 법이 정한대로 하다가는 전염병이 전국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시간과의 싸움일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합니다. 과연 급성 동물전염병을 조기에 종식시키려면 빠른 시간에 살처분을 해서 건강한 동물들과 차단시켜야 한다면 법을 보완하여 불법을 저지르지 않는 것이 옳을 것 같습니다.

2013년부터 시작한 작가의 살처분 장소의 뒷모습에 대한 추적은 사진전을 통하여 세상에 알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관련 제도를 보완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칫하면 단발성 행사로 끝났을 수도 있는 일을 사명감을 더해져 후속조치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면서 참 장한 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만 동물에 대한 안쓰러운 생각으로 감상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인 아닌지 하는 점입니다. 매몰장소에 출사를 다녀오는 날이면 동물들이 차를 따라오지 않나 후사경을 들여다보거나, 동물의 그림자가 밤새도록 창문 밖을 서성이는 느낌이 들었다고 적은 것을 보면 작가에게도 정신적으로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었난 싶습니다. 급성동물전염병의 관리가 과연 단순하게 인간들의 경제적 요구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인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겠고, 또한 전염병의 확산을 차단하기 위하여 살처분 이외의 방법이 과학적 근거가 있는 것인가 등도 면밀하게 검토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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