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몇 살까지 살까? - 1,500명의 인생을 80년간 추적한 사상초유의 수명연구 프로젝트
하워드 S. 프리드먼, 레슬리 R. 마틴 외 지음, 최수진 옮김 / 쌤앤파커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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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수명이 극적으로 늘어나고 있고, 이제 백세까지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특별하지 않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나이가 얼마나 될지에 더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만, “나는 몇 살까지 살까?”는 누구나 가질 법한 궁금증일 것 같습니다. 이런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를 고민한 것은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답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도 쉽지 않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은 놀랍게도 스탠포드대학의 심리학교수 루이스 터먼박사였습니다. 그것도 1921년에 말입니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때 당장 해답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단초를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설명해보면 당시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험모델을 구성하고 장기간 그들의 삶을 추적조사하는 방식을 시작한 것인데, 조사대상으로는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고, 어떤 직업을 가졌고, 얼마나 건강했으며, 결국엔 어떻게 생을 마감했는지 인생 전체(가정환경, 교육수준, 직업, 결혼과 이혼, 인생관, 사회적 관계, 종교생활, 사망한 나이와 원인 등)를 총체적으로 추적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방식의 연구를 전향적 연구라고 하는데, 최종적으로 의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내려면 연구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려면 기획이 완벽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실험대상이 된 어린이들은 1910년 전후에 태어난 소년소녀 1500명이었는데, 총명한 어린이를 선발하여 그들의 인생을 추적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터먼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입니다. 사실 총명한 어린이를 선발했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실험의 중립적이고 일반성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획당시부터 실험대상인 사람이 모두 사망하는 시점까지 조사하기로 되어 있었던 터먼 프로젝트가 지금까지 중단되지 않고 이어온 것은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연구에 투입된 연구비가 중단되지 않고 확보된 것도 대단할 뿐 만 아니라 연구를 기획하고 추진해던 터먼박사가 1956년 사망한 다음에도 중단되지 않고 그녀의 제자들에 의하여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하워드 프리드먼 교수와 레슬리 마틴 교수가 쓴 <나는 몇 살까지 살까?>는 근본적으로 터먼프로젝트를 통하여 얻은 자료를 꼼꼼하게 분석하고 해석하여 나온 결과물입니다. 앞서 언급한 편향성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1500명이라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의 삶을 토대로 얻어낸 결론이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

이 책에서는 터먼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삶을 인용하면서 장수와 관련된 결정적 요인이 무엇인지 접근하고 있습니다. 연구결과는 놀랍게도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장수와 관련된 말들이 사실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즉 상식과 통념을 산산조각 내는 연구결과인 것입니다. 저자들은 “건강과 장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보편적인 상식과 통념들은, 수많은 편향된 자료들에서 나왔다. 때문에 이 자료들은 편향된 자기보고보다 훨씬 왜곡이 심하다. 특정 기업이나 연구자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편향된 연구 뿐 아니라, 고의가 아닌 왜곡이나 실수가 포함된 자료가 많다.(16쪽)”고 일갈하고 있습니다. 즉 장수와 관련한 과학적 사실을 대할 때, 이면에 무엇이 감춰져 있는지 살펴야 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저자들이 이 연구를 통해서 발견한 사실은 “더 건강한 사람이 더 행복한 경향이 있고, 더 행복한 사람이 더 건강한 경향이 있다.(20쪽)”는 것입니다. 특히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보이는 성격 특성들 가운데 장수와 관련이 있는 것이 있는데, “신중하고 믿음직한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가장 오래 살았다는 것(47쪽)”입니다. 그 이유는 성실한 사람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한 행동을 더 많이 하고, 위험한 활동에는 가급적 관여하지 않으며, 성실한 사람들은 이미 건강상의 이점을 가지고 있고, 마지막으로 성실한 사람들은 더 행복한 결혼생활, 더 좋은 친구관계, 더 건강한 근무환경 등 오래 살 수 있는 인생경로를 스스로 만들어낸다는 것(53-55쪽)입니다. “직장동료와 잘 지내는 사람이 오래 살고, 여성은 지위가 올라갈수록 스트레스 때문에 수명이 단축된다(http://blog.joinsmsn.com/yang412/12332414)는 건강관련 기사가 눈여겨지는 대목입니다. 사실 예전에 같이 일하던 여과장님이 부장으로 승진한 지 얼마되지 않아 지병이 재발하는 바람에 세상을 뜨고 말았던 일이 다시 생각나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놀라운 사실은 ‘항상 웃고, 활기차게 살면 장수한다’는 통념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즉 활달한 성격인 사람은 위험한 취미를 가지는 경향과, 건강문제에 태평한 경향이 있어 꼼꼼하게 건강을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장수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직업, 조기입학, 부모의 이혼과 죽음, 사별 등이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힌 상세한 내용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삶의 양식과 수명과의 관계에 관심이 많으신 분들께 일독을 권합니다. 읽으면서 무릎을 치게 만든 구절은 “남편이 행복해야 집안이 행복하다.(205쪽)”였습니다. 그 이유도 미루어 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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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가 주는 위안
피에르 슐츠 지음, 허봉금 옮김 / 초록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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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학과 심리학을 전문으로 하는 의사 <피에르 슐츠>의 책 <개가 주는 위안>은 ‘반려견과 소통하는 행복심리학’이라는 부제에서 보는 것처럼 개라는 동물에 대한 저자의 각별한 관심과 애정이 엿보이는 책입니다. 그리고 강아지 세 마리가 사이좋게 머리를 맞대고 책상위에서 잠든 모습을 담은 사진으로 표지를 장식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을 읽을 수 있게 합니다. 저자는 글머리에서 이 책을 쓴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개가 얼마나 좋은 동물인지 그저 칭송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연유에서 도시인들이 반려견과 함께 살고 있는지 그 연유를 분석하자는 것이다.(4쪽)”

저자는 개에 관한 다양한 종류의 자료들을 발굴하여 해석하고 있습니다. 개의 계통발생과 유전에 관한 자료, 야생동물인 개를 가축으로 길들이는 과정과 개의 행동에 관한 자료, 등등입니다. 하지만 얼마 전에 읽었던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 http://blog.joinsmsn.com/yang412/12325418>를 인용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바로 저자가 객관적 시각에서 개에 대하여 논의하고 있는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책을 읽어가면서 부디안스키가 자료를 인용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던 개에 대한 편견”이 잘못되었다는 점을 증명하고 있습니다만, 슐츠 역시 다양한 자료를 인용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사람의 시각에서 개라는 동물의 행동양식과 생각까지도 이해하려하는 일반인들의 오류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 첫 번째는 개의 기원에 관한 내용입니다. “인간은 야생동물인 개를 수백년 동안 길들인 결과 가축으로 만든다는 목표를 달성해서 옛날과 같은 모습으로 개와 사람이 협력하게 되었다.(11쪽)”고 하여 인간의 필요성에 의하여 개를 가축화하는데 성공했다는 종래의 주장을 따르고 있습니다. 부디안스키의 설명에 따르면 야생개가 먹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인간주위를 맴돌던 끝에 인간의 삶에 파고들게 되었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저자는 개와 인간이 먼 옛날 공생관계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하지만 공생관계의 기본인 주고-받음이 균형을 이루는 점이 전제가 된다고 함에 있어, 인간사회에 들어와 먹이를 해결한 개가 인간에게 준 것이 무엇이었는지 명확하지 않다. 그렇다면 개가 인간에게 기생하게 된 것이라 볼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보면 개도 사람에게 ‘젖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공생관계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를 내비치고 있습니다. 

“고통받고 있는 주인의 병을 개가 떠맡아서 주인 대신 죽을 수도 있다고들 한다.(55쪽)”고 적었습니다. 이런 주장 역시 철저하게 사람의 시각에서 생각한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집안에 이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위암으로 수술받고 투병중인 매형 집에서 오래 같이 살던 개가 어느 날 죽게 되었습니다. 누이가 오랫동안 아끼던 녀석이라서 몹시 안타까워하면서도 아마 매형의 병을 대신해서 죽었나보다고 위안을 삼는 경우를 보았는데, 매형을 간병하느라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에서 오는 변명일 수도 있겠습니다.  

“사자나 호랑이를 만나게 되면 내 개는 나를 위하여 한순간도 주저하지 않고 싸우려 달려들 것이다.(56쪽)”라는 콘라도 로렌즈의 말을 인용한 것도 대부분의 실제상황이라면 꼬리를 말고 먼저 달아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는 점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기에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강아지”라는 속담이 내려오는지도 모릅니다.  

개의 지각작용에 관한 글에서도 주인이 집에 도착하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는 이야기(59쪽)에 관해서도 부디안스키는 이미 개의 일반적인 행동양식을 통해서 개가 특별한 지각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증명한 바 있지만, 저자는 이와 관련된 자료는 외면하여 개에게 특별한 대우를 하고 있습니다. 

슐츠는 개의 신분상승이 눈부시다는 점을 당연하다는 듯이 적고 있습니다. “인간은 개나 다른 반려동물에 대해 때로는 괴상스러울 만큼 지나친 행동을 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인간과 가까워져서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리고 있는 여러 종류의 동물 중에서도 개는 특별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139쪽)”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에 불이나면, 나는 아이들보다 먼저 개를 구할 것이다.(183쪽)”는 발언을 한 사람이 있었다면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오랫동안 인간과 생활을 같이해온 개라는 동물이 탐색견, 양치기개, 사냥개, 등과 같이 다양한 목적에 맞도록 품종이 개량되어 인간의 삶에 도움을 주어온 점은 분명 치하를 받을만한 일입니다. 또한 최근들어 그 활동영역을 넓혀 사람의 질병치료에 도움을 주는 치료견 뿐 아니라 외로운 사람 곁을 지키는 반려동물의 차원으로까지 활용되고 있는 점도 인정할 수 있지만, 개와의 눈치싸움에서 밀려 주도권을 넘겨주고 개에 매달려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개는 개일 뿐” 아니겠습니다. 

저자는 반려견의 위로와 치유에 관한 연구를 통해 현대인의 외로움과 인간관계를 재조명해오고 있다고 합니다만, 현대인의 외로움이 어디에서 오는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반려견에서 위로를 찾는다는 발상은 마치 마약을 사용하는 것과 같은 현실 회피적이라는 느낌이 들뿐 아니라 인간관계를 회복시키기보다는 현대인의 고립을 악화시키는 쪽으로 움직이게 하지 않을까 우려되기도 합니다. 

프랑스어 번역서인 탓인지 책읽는 흐름이 조금은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클린턴 대통령의 개인사에 관한 문제로 우리에게 친숙한 르윈스키를 레빈스키로 번역한 것(176쪽)이나 헨리왕 군대에 대한 곳에서 ‘도그(116쪽)’라고 적은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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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자격 - 고씨 부자의 유럽 42일 생존기
고형욱.고창빈 지음 / 사월의책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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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에 관한 이야기를 푸짐하게 담아 재미있게 읽었던 <영화는 끝나도 음악은 남아있다; http://blog.joinsmsn.com/yang412/12255642>의 저자 고형욱님이 중학생 아들과 둘이서 유럽을, 그것도 42일에 걸쳐서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영국까지 5개국을 돌아본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고 해서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남자들은 아들과 같이 목욕탕에 가서 서로 등을 밀어주는 것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다는데, 무려 42일씩이나 같이 먹고 자고 했다는 말이니 일단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로 몇 년 만에 두 아들도 함께 가는 여름휴가를 부산으로 다녀오면서 주변에서 원시인 아니냐는 시선을 받고 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큰 아이와 대학을 졸업할 나이인 둘째까지 “모두 가족여행에 따라갔단 말이지요?”라는 질문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적부터 가족이 모두 움직이는 여행을 자주 떠나곤 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할 때는 일년이면 10일짜리 여행을 두세번 다녀오고 주말이면 2박3일로 살고 있던 미네소타주를 이잡듯 샅샅이 뒤져 구경하곤 했는데, 초등학교 저학년인 큰 아이와 학교에 가기 전인 둘째는 차만 타면 티격태격 싸우곤 했습니다. 오죽하면 인적없는 시골길에 작은 녀석을 내려두고 차를 출발시키는 만행까지 저질렀겠습니까?

열흘여행을 다녀오려면 사전준비를 하는데 한달 정도는 들여야 큰 실수가 없는데, 미리 전체 여행지의 숙소까지 예약하고 다니는 분들과는 달리 제 경우는 코스를 면밀하게 검토하여 짜지만, 숙소는 일정에 따라 현지에서 결정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때로는 자정까지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제 경우는 미국에서는 가본 곳이 꽤 되고 여행의 패턴이 익숙하다싶어 언제라도 출발할 수 있지만 유럽은 헝가리, 핀란드, 독일, 프랑스 그리고 영국까지 네 번 정도 다녀온 것이 전부라서 아직도 두려움 같은 것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학회, 회의 혹은 조사차 방문했기 때문에 개인적인 시간을 별로 낼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유럽을 아들과 단둘이서 42일 동안이나 다녀왔다는 말에 일단은 부럽기도 하고, 까짓거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작가의 전작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야기를 참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부전자전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의 재능을 아들이 물려받는다는 말입니다. 저자의 아드님 역시 글솜씨가 만만치 않다는 것도 확인되었습니다. 책표지를 장식하는 부자의 사진을 보면 붕어빵이 따로 없구나 싶은데 재능도 많이 닮은 것 같습니다.

부자가 같이 한 여행이야기는 모두 60편입니다. 아버지가 42편을 그리고 아들이 18편을 쓰고 있습니다. 아참 중요한 이야기를 빠트렸습니다. 중3에 학교성적은 중간쯤 하는 아들과 말을 섞은 기억이 별로 없다는 아버지로서는 무언가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는 것입니다. 다 자란 아들과 아빠가 아무런 경험도 추억도 공유하지 못한 채 영영 제 갈길로 가버릴 것도 걱정되고 해서 유럽여행을 같이 하기고 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방송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남자의 자격>과 비슷한 컨셉이라고 할까요?

여기서 저도 한마디 해야 하겠습니다. 큰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공부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건성하곤 했는데, 중2 여름방학 때 제가 같이하던 진료동아리의 하계봉사활동에 데리고 가서 하루를 같이 지낸 적이 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먼 훗날 아빠와 함께 봉사활동을 같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던 것이 좋은 효과를 냈던 것 같습니다. 이제 의과대학을 졸업하였지만, 아직은 봉사활동을 같이 갈 형편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그때 약속은 언젠가는 지켜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두 사람의 유럽여행의 주제는 “미술과 음악 그리고 유럽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지켜보기”, 그리고 “방문한 도시의 어느 한 공간과 자주 대면하면서 친해지기”입니다. 보통사람들 같으면 생각해내기 어려운 주제입니다. 제 경우는 제한된 시간에 더 많은 곳을 보아야 할 것 같아 일정을 빠듯하게 잡아 날아다니다 시피한 것하고, 아이들에게 교육과 관련된 곳, 예를 들면 보스톤에서는 하바드대학과 MIT대학을 돌아보고, 로체스터에서는 메이요 클리닉을, 그리고 뉴욕에 가는 길에는 뉴헤븐에 있는 예일대학을 구경하는 식이었습니다. 지금 아이들에게 물어보면 하나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만, 그래도 증명사진으로 남아 있으니 할말은 있는 셈입니다.

하지만 고형욱 작가 역시 “하지만 나는 투우보다는 창빈의 표정에 관심이 더 많다. 창빈이에게는 하나라도 더 보여주고 싶다.(65쪽)”로 속내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아빠의 관심이 같이 하는 시간이 늘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창빈에게 전해져서 처음 방문한 미술관에서 본 거장의 작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던 창빈이 점차 미술품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또렷하게 정리해 말할 수 있게 된 것은 제가 보기에도 장족의 발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술이라는 게 뭔가 달라야 되잖아. 옛날 화가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잖아. 하지만 현대 화가들은 자기 생각을 그린 것 같아.(208쪽)” 이 정도면 전문가 수준의 생각이 아닐까요(저와 비교하면 당연한 일이겠구요).

대학에 들어가 사귄 친구들과 홍도여행을 갔는데, 그 유명한 태풍 빌리를 만나 성당에서 며칠을 갇혀 지낸 적이 있습니다. 4팀이 같이 묶이게 되었는데 다 같이 어울리다 보니 같이 간 팀과 갈등이 생겼던 기억이 있습니다. 아무리 부자지간이라고는 하지만 갈등이 없을 수 없겠죠? 특히 요즘 아이들이 아버지 눈치를 얼마나 보던가요? 출발부터 티격태격, 아버지는 참을 인(忍)을 몇 개씩 써가면 참기도 하고 부딪히기도 하면서 서로를 이해해가는 모습도 보기에 참 정겹고 좋은 것 같습니다. 결국 “나는 유럽에 관광을 하러 온 게 아니다. 아들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 위해 온 것이다. 한 달 넘게 같이 지내면서 서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아들의 얼굴을 본다. 얘한테 이렇게 다양한 표정이 있었구나. 오랫동안 함께 여행을 다니다보니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 외에 아들의 내면을 약간은 더 느끼게 된다. 아들의 표정을 통해 여행의 참맛을 느끼고 있다. 그것은 유럽을 발견하는 것보다도 더 큰 발견이다.”라고 적은 것처럼 고형욱님은 아들과 함께 하는 유럽여행을 통하여 아들과의 거리를 좁히고, 아들의 마음에 무언가를 심어주는데 성공하신 것 같습니다. 여행을 마친 다음 해 고1때 창빈이가 전교2등을 먹은 것은 조그만 부상(副賞)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아! 잊을 뻔 했습니다. 창빈이가 주로 찍었다는 사진은 정말 예술입니다. 사진을 보니 더욱 가보고 싶어지는 유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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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세포 발견에서 재생의학까지 미래과학 로드맵 1
샐리 모건 지음, 최강열 옮김 / 다섯수레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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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한국 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추천한 8월의 청소년 권장도서 가운데 과학부문의 도서인 <줄기세포 발견에서 재생의학까지>를 독서인 파워북로거 활동대상 도서로 골라보았습니다. 편역대표이신 최강열교수님의 서문에, “이 책은 샐리 모건의 원저 <현미경부터 줄기세포 연구까지>를 바탕으로 줄기세포의 발견과 중요성은 물론 줄기세포를 환자들에게 적용하는 재생의학까지 다루면서, 청소년과 비전공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썼다.”라고 적으신 것으로 보아 원저를 축약하여 정리한 것으로 보입니만, 64쪽 밖에 되지 않는 원저의 분량보다 많은 127쪽으로 편집한 것으로 보아 적지 않은 분량의 원고를 추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이 책이 일반인이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서 전문 용어보다는 이해하기 쉬운 말로 풀어 쓰다 보니 혹시 원래의 뜻이 잘 전달되지 못한 점이 있다면 양해해 주기 바란다.”고 우려하신 것처럼 상당한 부분에서 오류 혹은 보완이 필요한 점들이 보여 특히 학생들에게 읽히는데 있어 문제가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들었습니다. 물론 원저의 편성에서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 첫 번째는 원저관련입니다. 첫 번째 장은 ‘현미경의 발견’이라는 제목으로 현미경이 발달되어온 과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세포를 관찰하는 장비로 현미경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인정을 합니다만, 그 대상이 줄기세포라고 한다면 광학현미경에서 투과전자현미경, 주사전자현미경에 이르기까지 다루고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히려 줄기세포를 추출해내는데 필요한 세포배양기술과 배양과정에 있는 줄기세포를 관찰하는데 필요한 저배율의 도립현미경이나 형광현미경의 원리를 설명하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원서에서부터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만 “찻숟가락 하나에 담긴 바닷물 속에 사는 SAR11 박테리아의 크기도 예시하지 않고 10만 마리가 살고 있다.(19쪽)”고 적은 것도 오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림의 예도 있습니다.44쪽의 유사분열을 설명하는그림을 보면 염색체들이 세포의 적도면에 배열되는 장면에서 염색체들이 마치 연결되는 것처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오해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49쪽의 백혈병환자의 치료과정에서도 골수이식을 받는 환자는 전신방사선 조사나 화학요법과 같은 전처치를 받아 혈액암세포를 죽이는 과정을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우리말 번역과 원음을 음차하여 우리말로 적은 용어 등에 일관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로버트 훅이 처음으로 사용한 용어는 “cell"이지 ”세포가 아닙니다. 따라서 “그는 처음으로 ‘cell(세포라고 번역됨)’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15쪽)”으로 소개하는 것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31쪽에 나오는 혈장단백질 피브리노겐은 통상 섬유소원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이는 혈액이 응고되는 현상을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용어입니다. 36쪽의 ‘테라토마’ 역시 기형종으로 옮기는 것이 이해를 쉽게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며, 테라토마는 양성으로부터 악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암세포와 유사한 세포에 의한 것이라는 설명이 적절치 못하다는 생각입니다. 88쪽의 ‘심장마비’라는 일반적인 용어보다는 심장에 혈액을 공급하는 혈관이 막혀서 생기는 심근경색이라는 용어를 쓰는 것이 옳습니다.

세 번째는 개념의 보완이 필요한 부분의 예가 되겠습니다. 12쪽 알츠하이머병의 설명에서도 뇌조직이 기능을 잃어서 생긴다고 하였는데, 알츠하이머병은 신경세포에 비정상 단백질이 축적되어 죽어버리는 병인데 신경세포들이 많이 죽어 뇌기능이 제대로 유지되지 않아야 증상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39쪽의 조직과 장기의 개념을 설명하는 부분인데 우리 몸의 장기는 한 가지 세포로만 구성되어 있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간(肝)이라고 하는 장기는 간세포로 구성이 되지만, 그밖에도 간에 영양을 공급하는 혈관이라는 조직과 간에서 분해되는 물질을 장으로 내보내는 관조직이 있고 이런 기능을 조화롭게 하는 신경조직 등 다양한 기능을 하는 세포들의 조직이 모여 간을 이루게 되는 것인데 너무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50쪽의 골수은행에 대한 설명에서도, 골수이식은 환자와 기증자의 조직형이 맞아야 가능하기 때문에 기증자의 혈액검사를 통하여 조직형검사를 실시하고 그 자료를 축적하여 필요할 때 대조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는 점을 적어야 할 것 같습니다. 53쪽의 탯줄에 대한 설명도 적절하지 않습니다. 탯줄은 관이 아닙니다. 탯줄은 모체와 태아를 연결하는 동맥과 정맥을 담고 있는 구조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57쪽에 나오는 체세포복제과정에서 만들어지는 배아를 수정란이라고 표현한 것이 맞는지 헷갈립니다. 말 그대로 수정란이란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이루어진 상태를 말하는 것이니까요. 85쪽의 그림도 피부를 제거하여 근육이 부착된 상태의 그림에 각종 질병이 발생하는 부위를 기록하고 있어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매끄럽지 못한 문맥도 더러 눈에 띕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은 어떤 것을 크기를 잴 때 밀리미터, 센티미터, 미터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단위는 너무 커서 세포를 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17쪽)”에서 보면, 크기는 상대적일 수 있습니다. 사람의 키를 표현하는 것을 밀리미터 단위로 표현한다면 너무 작은 단위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떤 것을 크기를 잴 때 밀리미터, 센티미터, 미터를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단위는 세포를 제기에는 너무 커서 적합하지 않다.(17쪽)”가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원저자가 배아줄기세포 이용을 옹호하는 입장이라고 하더라도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 그리고 탯줄줄기세포의 이용에 대하여 각각의 문제점들을 중립적으로 전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61쪽에 “성체줄기세포는 배아줄기세포보다 과학자들에게 덜 유용하다.”라고 표현하거나, 65쪽에 성체줄기세포는 사람이 살아오는 동안에 축적된 돌연변이에 의한 유전적 결함위험성이 높다는 주장, 시험관시술에서 사용하고 남은 난자를 배아줄기세포의 연구에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식의 표현도 잘못된 것입니다. 종교계에서 주장하는 윤리적 문제는 배아줄기세포 연구를 위하여 난자를 수집하는 것 뿐 아니라 발생중인 배아로부터 줄기세포를 얻은 다음에 수정란을 폐기하는 과정이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줄기세포치료가 가지고 있는 잠재성을 부각시키기 위하여 현재의 의료수준을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예를 들면, 83쪽 “현대의학이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지만 파킨슨병, 당뇨병처럼 아직도 치료가 불가능한 질병들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줄기세포만이 희망인 것처럼 소개하여 언제 성공할지 모르는 줄기세포치료법만이 최고의 치료가 될 것이고 현재 사용되고 있는 치료법은 마치 가짜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 것은 명백한 잘 못입니다. 당뇨병환자는 초기에 운동과 식이요법으로 조절할 수 있는 단계로부터 먹는 약으로 혈당을 조절하는 단계를 넘어서야 주사제를 사용하게 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데, “당뇨병환자는 날마다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84쪽)”는 저자의 주장은 당뇨병치료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정리를 해보면 저라면 아이들이 줄기세포에 관하여 궁금해 한다고 이 책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문서적을 쉽게 풀어쓰는 일이 참 어렵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지나치게 축약하다보면 꼭 전달해야 하는 메시지가 손상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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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 대하여 - 진화론과 동물 행동학으로 풀어 본 개의 진실 자연과 인간 7
스티븐 부디안스키 지음, 이상원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5년 8월
평점 :
절판


 

어렸을 적에는 집에서 개를 키웠던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언젠가부터 개는 물론 다른 애완동물을 집에 들이지 않게 된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결혼하서도 애완동물을 집에 들이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아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보니 처가에서도 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을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내는 산책길에 만나는 강아지도 피해가는 상황입니다. 혹여 개줄을 매지 않고 풀어둔 채 산책하시는 분이라도 만나면 불평을 하곤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처벌을 받게 되는 법이 통과되었다는 소문은 들은 것도 같은데 실행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가끔은 개주인이 개한테 끌려 다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상황을 만나기도 합니다만, 그런 경우 속으로 왜 저럴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스티븐 부디안스키의 <개에 대하여>를 읽게 된 것은, 최근에 지인이 개에 대하여 글을 쓰고 있다고 해서 참고할만한 자료가 될까 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입니다.

저자가 독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귀여운 강아지와 함께 찍은 사진을 소개하고 있어 분명 개를 엄청 사랑하는 저자가 개에 관한 사랑스러운 시각에서 글을 썼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만, 목차에서 보는 것처럼 1장_도무시 알 수 없는 동물, 6장_똑똑한 걸까, 멍청한 걸까?, 8장_문제 개, 문제 주인, 9장_ 개는 개일 뿐 이라고 적은 제목처럼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고 있는 개라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수수께끼에 대하여 진화론, 분자생물학, 유전학, 동물 심리학 등 과학적 자료들을 총망라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습니다. 부디안스키의 설명을 듣다보면 우리는 개에 대하여 참 바보였구나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 것입니다.

우리가 잘 못 알고 있는 첫 번째, “개는 인간의 필요에 의하여 야생 늑대를 훈련시켜 가축화한 것이다.”라는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개를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야생 늑대가 필요에 의하여 인간주변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사이에 인간들의 삶에 스며든 것이라는 것을 자료를 통하여 증명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폭풍우나 화재와 같은 위기 상황에서 주인을 구하는 개에 대한 감동실화도 전해지고 있지만, “늘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는 개들은 아주 충성스러운 동물이다”라는 명제 역시 잘못된 인식이라는 것입니다. 개가 주인을 지키는 것은 개의 입장에서는 극히 일상적인 일에 불과한 것일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본능에서 나온 행동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이가 개에 물려 크게 다치거나 심지어는 죽었다는 기사를 보기도 합니다. 어렸을 적에 심부름을 시키면 모두 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친척집이 있었습니다. (꼭 하루 예외는 세배를 가는 설날은 예외입니다. 세뱃돈을 푸짐하게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그 집을 지키는 사냥개가 엄청나게 사나워서 문앞에 서기만 하면 벌써 난리법석을 치기 때문입니다. 미국에서는 매년 500만명이 개에 물리는 사고를 당하는데 100만명 정도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할 정도 심각한 상처를 입을 뿐 아니라 10명 정도는 현장에서 사망한다고 하니 개라는 동물에 대하여 경각심을 가져야 할 이유가 분명하다고 보겠습니다.

사람들은 애완견이 덜 공격적일 것이라고 믿는다고 하는데, 오히려 떠돌이개가 사람을 더 무서워한다는 것입니다. 가구를 못쓰게 만드는 일부터 손님은 물론 주인까지 공격하는 개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것은 개라는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성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했습니다만 개는 스스로 선택하여 인간의 영역으로 침입한 종입니다. 그 이유는 야생에서 먹이를 얻는 것보다 인간에 기대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는 점을 일찍 깨달은 영악한 동물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집에서 개를 키울 때 일입니다. 어머니께서는 개가 아프면 개밥에 고깃국물이라도 얹어주시곤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버릇을 잘 못 들이면 귀찮다는 말씀을 하셨던 것으로 보아서, 특히 강아지 때 이런 경우가 생기면 아픈 것이 나아도 개가 밥을 먹지 않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개가 꾀병을 앓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읽고 놀랐습니다. 주인의 관심을 끌어보려는 욕구가 강한 개일수록 그렇다고 하는데요. 꾀병의 정도는 토할 듯이 꺽꺽거리거나, 다리를 절룩이기, 마비된 듯이 꼼짝 않고 누워있기 뿐이 아니라 심지어는 근육경련 콧물까지 흘린다니 학교가기 싫어서 꾀병핑계를 대는 아이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연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개가 이런 증상을 보이면 개주인은 어쩔 줄 모르고 개에 끌려 다니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개들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주인을 마음대로 가지고 노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 외출하는 척하고 나와서 개를 혼자 있게 하면 아픈 척하던 개가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나 돌아다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름 사례를 어떻게 이해하시겠습니까? “자녀가 없는 젊은 부부가 18개월 된 수컷 아이리시 세터를 키우고 있었다. 개는 걸핏하면 으르렁거리며 남편을 위협했고, 몇 차례 물어뜩기까지 했다. 특히 아내와 함께 방안에 있을 때 남편이 들어오는 상황이 벌어지면 개는 반드시 화를 냈다.(11쪽)” 왜 이럴까요 개는 아내가 자신의 것이라는 소유의식을 강하게 표현한 것으로 해석해도 될까요?

개에 관하여 “어떤 개는 마치 자기가 사람인 듯 착각하는 것 같다”는 농담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오로지 인간하고만 어울리며 성장한 개는 인간을 개와 똑같은 존재로 보게 되기도 한다. 심지어 인간과 교미를 시도하는 난처한 상황도 벌어진다. 다리 위에 올라타 성기를 비벼 대는 것이다.(217쪽)”는 구절을 읽고 그런 경험이 기억나기도 합니다. 심지어는 어떤 개는 주인가족들을 상대로 위계질서를 세우려 드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치매환자를 치료하는 방법 가운데 동물요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환자들이 훈련된 동물과 같이 생활함으로써 증상을 개선시켜 삶의 질을 높일 뿐 아니라 환자의 안전을 지킬 수 있는 효과를 볼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애완동물로서 개는 이 책의 결론부분의 제목처럼 “개는 개일 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옳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즉 사람을 사람을 배신하지만 개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족보다도 더 귀한 존재로 대하는 분들은 개라는 동물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읽어보실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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