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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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저지대>의 인연이 이어진 책읽기였습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가 상당히 난해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읽는 호흡이 조금 수월하다는 느낌입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는 전작들처럼 차우셰스쿠 정권의 탄압에 시달리는 루마니아의 독일계 소수민족들의 애환을 그려냈습니다. 그 무렵 루마니아 사람들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나치에 부역을 했다는 이유로 독일계 주민들을 곱지 않은 시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인데, 정부에서도 나서나 탄압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작중 화자인 빈디시가 방앗간의 야간경비원에게 이야기하는 대목입니다. “저들은 닭이고, 달걀이고 닥치는 대로 빼앗아가고 있어. 심지어는 아직 다 자라지도 않은 옥수수까지 빼앗아가는 판이야. 언젠가는 자네 집과 마당까지 빼앗아갈걸.(111)”


독재정권의 횡포에 시달리던 독일계 소수민족은 서구세계로 이주를 원했고, 독일 정부도 이주민 한 명당 많게는 팔천 마르크까지 루마니아 정부에 지불하여 이들의 이주를 지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루마니아 정부는 지원금을 받아 챙기고도 여권을 내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는 독일계 소수민족들이 여권을 발급받기 위하여 무슨 짓을 하는지 서술해냈습니다. 작중 화자인 빈디시는 방앗간을 운영하면서 여권발급을 도와준다는 이장에서 밀가루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요구한 밀가루보다 훨씬 많이 날라다 주고 더해서 큰돈까지 건넸지만 여권을 감감 무소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피가공사는 여권을 수월하게 받아냈다고 합니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질척거리니 더 안달이 날 수밖에 없었겠습니다.


그러던 빈디시도 드디어 여권을 손에 넣게 됩니다. 딸 아말리에가 나서서 경찰과 신부에게 몸을 허락하는 대가가 있었습니다. 정부와 연관이 있는 직책을 가진 이들은 모두 주민들을 벗겨먹으려 드는 상황이니 주민들은 하나같이 내일이 없는 삶을 버텨내고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은 이 세상의 거대한 꿩이다라는 루마니아의 속담을 제목으로 가져왔다고 합니다. 이 말은 이야기의 앞부분에서 야간경비원의 목소리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면서 빈디시의 목소리로 두 차례 언급됩니다.


우리나라의 꿩은 날렵하게 잘도 날아갑니다만, 루마니아에서는 날개가 퇴화한 꿩은 적이 나타났을 때 날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쉽게 포식자의 먹이로 전락한다고 인식해왔다고 합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쫓기는 꿩이 낙엽더미에 얼굴만 파묻는다고 해서 눈 가리고 아웅하는 방식으로는 목숨을 부지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이야기의 여기저기에서 옛날 우리네 삶과 많이 닮은 구석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찌는 듯한 8월의 무더위 속에 사람들은 커다란 수박을 두레박에 담아 우물 아래로 내려뜨려 시원하게 만들어 먹었다는 것은 제가 어렸을 적에 여름이면 즐겼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모피가공사가 아들을 만나러 가는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가는데 터널을 여러 개 지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루마니아가 평원인 줄 알았더니 카르파티아 산맥이 나라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어 언덕과 저지대가 번갈아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터널이 많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승객들이 책을 읽는 모양입니다. “끊임없이 낮과 밤이 바뀌더라니까. 배겨내기 힘들더라고. 모두 자리에 앉아서 창밖은 내다보지도 않아. 밝아지면 책을 읽는데, 무릎에서 책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여간 조심하는 게 아니야.(32-33)” 저도 기차나 차를 타고 여행을 할 때는 책을 읽는데 터널에 들어가면 책에서 눈을 떼고 언제쯤 터널이 끝나는지 앞을 바라보곤 합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늙은 올빼미는 마을 사람들의 죽음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고단한 삶을 버텨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허망하게 죽음을 맞곤 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낱낱이 까밝히기가 수월치 않은 이야기인데도 감정을 섞지 않은 담담한 필체로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을 보면서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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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
헤르타 뮐러 지음, 윤시향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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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발칸지역을 여행하면서 23일의 여정으로 루마니아의 몇 곳을 돌아보았습니다. 수도 부쿠레슈티, 드라큐라의 무대가 된 마을 브란, 옛 트란실바니아의 수도였던 시비우, 그리고 작은 비엔나라는 별명이 있는 티미쇼아라 등입니다. 수도 부쿠레슈티에서는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만들어낸 괴물 같은 인민궁전을 보았고,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이 일어난 장소이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도 보았습니다. 챠우세스쿠 독재를 무너뜨리는 움직임이 시작했다는 티미쇼아라에서는 승리광장, 자유광장, 그리고 통일광장 등을 둘러보았습니다.


루마니아를 여행하면서 루마니아 출신 독일 작가 헤르타 뮐러가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 시절의 사회분위기를 소개하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귀국하자마자 찾아 읽은 책이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입니다. 작가는 티미쇼아라에서 남동쪽으로 36떨어진 니츠치도르푸(Nițchidorf)에서 독일계 소수민족인 부모로부터 태어났습니다. 주로 차우셰스쿠 정권 시기의 루마니아 사회주의 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을 썼다고 합니다. 주로 루마니아의 독일 소수민족의 관점에서 이야기되며, 바나트와 트란실바니아의 독일인 현대사를 다루었다고 합니다.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에는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황폐하고 쇠락한 도시의 변두리에 살면서 희망이라고는 한 줌도 없이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사고를 당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야기는 여교사 아디나와 어렸을 적부터 그녀의 절친 클라라를 중심으로 이어집니다.


아디나는 학생을 토마토 수확 작업에 동원하는 것은 미성년자 노동 착취라고 말했다는 혐의로 교장에게 불려가 성추행을 당하고 비밀경찰에게도 요주의 인물로 찍힌다. 비밀경찰은 그녀의 집에 깔린 여우 모피에서 꼬리와 다리를 차례로 잘라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립니다. “그는 재킷 안주머니에서 안전 면도날 하나를 꺼낸다. 그리고 안전 면도날을 싼 포장지를 풀어 무릎 옆에 놓는다. 그는 여우의 오른쪽 뒷발을 자른다. 그는 혀끝으로 검지에 침을 묻혀서 잘린 털을 바닥에서 훔쳐낸다.(199)” 언제라도 그녀의 사생활에 침입할 수 있음을 은밀하면서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지요.


클라라의 애인이 비밀경찰의 간부 파벨이라는 사실을 아디나가 알게 되면서 두 사람은 서먹해진다. 하지만 클라라는 아디나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쪽지에 적어 알려줍니다. “사람들이 체포될 거야 리스트가 있어 넌 숨어야만 해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널 찾지 못할 거야(300)” 차우셰스쿠 정권이 권력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시도로 집단 체포를 계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클라라의 통지를 받은 아디나는 남자친구 파울과 함께 국경마을에 사는 친구 리비우에게로 서둘러 피신했습니다. 하지만 리비우의 집에서 지내는 것도 불안한 나날의 연속입니다. 도나우 강을 건너 다른 나라로 도망을 쳐야 할까 생각하는 사이에 차우셰스쿠가 실각하는 장면을 TV에서 보게 됩니다. 그 장면을 본 리비우는 화면에 입맞춤을 하면서 널 먹어버리겠어라고 말합니다. 파울은 리비우와 함께 화주를 마시면서 금지된 노래를 부릅니다. “깨어나라 루마니아여 네 영원한 잠에서(334)”


<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라는 제목은 희생자와 가해자를 구분할 수 없다라는 뜻을 담은 루마니아의 속담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합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이 붕괴되었더라도 독재자의 추종 세력과 그 체제에 익숙해진 탓에 정치나 사회적 분위기가 근본적으로 변화할 것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암시한다는 것입니다.


등장인물들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다보니 이야기의 중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가늠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작가가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 것은 독재정권의 감시와 통제를 비껴가기 위한 방식일 것으로 추측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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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지대 (리커버 특별판)
헤르타 뮐러 지음, 김인순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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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이미 여우는 사냥꾼이었다>를 읽은 인연으로 읽게 된 책입니다. <저지대>200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계 루마니아 작가 헤르타 뮐러의 등단작품입니다. 등단작품인만큼 작가 자신이 태어나고 어린시절을 보냈던 루마니아의 바나트에서 보고 들었던 것들을 적었습니다. 바나트는 세르비아와 헝가리에 접해 있는 지역입니다만, 과거의 바나트 영역의 4분의 3정도가 루마니아에 속하고 4분의 1정도는 세르비아에 그리고 서쪽 귀퉁이의 일부는 헝가리에 속합니다. 불가리아의 바나트 지역에 있는 티미쇼아라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이기도합니다.


작가가 그러하듯이 바나트 지역에는 독일계 주민들이 살고 있어 루마니아의 소수민족이 되고 있습니다. 독일계는 1930년 무렵에만 해도 75만명으로 루마니아 전체인구의 4.1%를 차지했으나 2011년에는 불과 36천명으로 0.2%로 격감했습니다. 차우셰스쿠 정권의 독재통치에 루마니아를 등진 것입니다. 특히 제1, 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주도했던 것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저지대>는 모두 19편의 단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단편이라고는 하지만 서로 연관이 되어 있기때문에 하나의 소설이면서도 독립되어 있는 이야기라 해도 좋겠습니다. 저지대란 제목과 관련하여 "(저지대는) 내가 태어난 바나트 마을을 그린 것이다. 그곳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모든 것이 고여 있는 감옥 같은 곳이다."라고 작가는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는 화자인 어린소녀의 아버지 장례식으로 시작합니다. 조문객들은 화자를 향해 욕을 하는 등 적대적이다. 아마도 고인에 대한 적의를 표출하는게 아닌가 싶습니다. 생전에 도살자로 일하다가 전쟁중에는 아마도 독일군으로 참전했던 모양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가족들이 목욕을 하는 모습인데, 우리네와는 다른 특이한 풍경입니다. 제일 먼저 아기를 씻기고,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 순서로 목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어렸을 적에는 아버님이 제일 먼저 그리고 형제들이 순서대로 어머님은 마지막으로 하셨거든요. 발칸지역은 모계사회였던 모양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는 '저지대'라는 제목으로 이 책의 표제작입니다. 무려 118쪽에 이르러 나머지 18편을 합한 부피에 가깝습니다. 내용은 화자의 집에서 부터 마을로 확대됩니다. 화자가 사는 동네는 가구 수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어지간한 시골이었던 모양입니다. 이야기를 읽다보면 마을 풍경이나 사람들 사는 모습이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제가 어렸을 때 살았던 시골 동네와 많이 닮았기 때문일 듯합니다. 다만 우리네 옛 마을을 그 무렵 언젠가부터 역동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는 것이겠지요. 이제는 닮은 모습을 찾아내기가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만....


화자가 부모로부터 거의 폭력이라 할 처벌을 수시로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왜 그런 처벌을 받아야 하는지 설명도 없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 순간이면 이 두 사람이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내가 어째서 이 집에, 이 부엌에 이 사람들과 함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97)”라는 화자의 생각에 공감하게 됩니다.


이야기 말미에 있는 그 당시 5월에는, 의견, 잉게, 불치만씨등 네 편의 이야기는 <저지대>가 루마니아에서 처음 출간될 당시에는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고 삭제되었던 것을 복원해놓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마도 당대의 루마니아 사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인 듯합니다. 마지막 이야기 검은 공원에서 작가는 무기력한 사회 분위기를 이렇게 적었습니다. “네 눈이 공허하다. 네 감정은 공허하고 생기가 없다. 아가씨야. 안됐구나. 정말 안됐어.(235)” 하지만 그렇게나 절망스러운 과거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 작가에게 영예를 가져왔다고 하니 삶을 모를 일입니다. 그저 열심히 사는 것이 최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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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 8 - 위기와 극복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8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199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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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인 이야기8>위기와 극복이 부제로 달려있는 만큼 로마제국이 맞은 위기 상황과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다루고 있습니다. 로마는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가 공화정을 폐지하고 초대 황제로 등극하면서 출범했지만, 사실은 카이사르가 설계하고 토대를 닦아놓았던 것을 아우구스투스가 원로원의 눈치를 보아가면서 시작한 것이고, 티베리우스가 체제를 공고히 해놓았던 것입니다. 그랬던 것을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네로 황제에 이르면서 대중의 혹은 원로원에 영합하느라 나라살림을 거덜 내는 바람에 로마제국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국을 설계했던 카이사르가 공화파의 견제에 걸려 살해된 이후 황제라고 해서 천년만년 자리가 보장된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로마제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그리고 네로 황제는 모두 살해되는 바람에 로마의 세 사람의 통치기간은 32년에 불과했습니다. 누대에 걸쳐 쌓아온 로마의 기틀이 흔들릴 정도는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아니면 하늘이 아직은 로마편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위기 뒤에 기회가 온다는 속설이 있습니다. 로마 역시 악명이 높은 황제로 겪어야 했던 위기의 순간이 지나자 기회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로마인 이야기8>에서는 로마제국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다루었습니다. 서기68년부터 69년에 이르는 갈바황제, 서기69년의 오토황제, 역시 서기69년의 비텔리우스 황제, 서기69년에서 79년까지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서기79년에서 81년까지의 티투스 황제, 서기81년에서 96년까지의 도미티아누스 황제, 그리고 서기96년에서 98년까지의 네르바 황제 등의 로마제국 시절을 다루었습니다.


서기68년에서 69년 사이에는 네 명이 황제가 등장할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던 것은 앞선 황제들의 낙마를 지켜보면서 나는 저보다는 낫겠다는 욕심을 가진 인물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심지어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하마트면 로마 제국의 마지막 1년이 될 뻔했다.’라고 할 정도로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특히 서기 69년에는 세명의 황제가 재위에 올라 삼황제 시대라고 한답니다.


하지만 이 시기에 갈바 황제가 살해되고, 오토 황제는 자살하고, 비텔리우스 황제도 살해되고, 베스파시아누스와 티투스 황제는 병사, 도미티아누스 황제는 역시 암살당했습니다. 네르바 황제의 경우는 자연사였다고 합니다. 재위 기간이 2년에 불과한 네르바 황제부터 이어지는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안토니누스 피우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등 5명의 황제를 오현제라고 해서 로마제국의 전성기라고 합니다.


이 시기에 로마제국은 황제 위를 둘러싸고 벌어진 라인군단과 도나우 군단이 싸우는 세력 간의 대결, 브리타니아, 갈리아, 게르만, 그리고 유대 등 속주민들의 봉기 등 제국이 혼란 속에 끝없이 빠져들어야 했고, 설상가상으로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폼페이와 헤르클라네움이 매몰되고, 로마에서는 대화재가 일어났고, 심지어는 유피테르 신전이 로마인의 손에 불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시기의 황제들이 제국과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갔던 것은 세상을 큰 틀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부족하였지만 욕심은 끝없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릇이 안 되는데 욕심을 부리다보면 스스로를 망치게 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로마제국 시절의 황제들은 군인출신이 많았습니다. 로마제국에서 군인들의 세력이 강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잡다한 인간 집단을 이끌고 전투를 치러 승리를 올려야 하는 장수들은 대체로 군사적 측면에서의 기량을 물론 정치력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대체로 군단장급은 원로원 출신인 경우도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군의 군단장 출신으로 황제 위에 올랐던 사람들이 몰락하여 제국을 위기로 몰아넣었던 것은 제국의 통치체제가 잘못되었다고 하기보다는 황제의 자질이 문제였다고 하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앞서 말씀드린대로 제국을 통치하려면 개인의 그릇이 그만큼 커야 했던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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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혹
엘리아스 카네티 지음, 이온화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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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초에 불가리아를 여행한 인연으로 읽게 되었습니다. 1905년 지금은 러시아 영토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불가리아였던 루스추크에서 태어난 엘리아스 카네티는 1911년 가족들과 함께 영국으로 이주했다가 이듬해부터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등 여러 나라를 전전하였다고 합니다. 1921년에 이주한 독일에서 김나지움을 다녔는데, 1차 세계대전이후 혼란한 사회와 인플레이션 등으로 빚어진 대규모 소요사태를 체험했다고 합니다. 1924년에는 빈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면서 군중의 사회-심리학적 현상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혹(Die Blendung)>의 초고인 <칸트 불에 타다(Kant fängt Feure)>1931년에 완성했습니다.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되면서 <화형(Auto-da-fé)>, <바벨탑(Tower Babel)> 등의 제목을 붙였습니다. 독일어 제목 <Die Blendung>어둠 속에서 갑자기 밝은 불빛이 비치면 일어나는 순간적인 실명상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빼앗겨 해야 할 것을 잊어버리거나 그렇게 되게 함을 의미하는 우리말 제목 현혹에 해당하는 독일어는 Die Verblendung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말 번역본의 제목을 현혹(眩惑)으로 정한 이유를 1. Die Blendung에 딱 맞는 멋진 우리말 제목을 찾지 못했고, 이 소설의 중심주제가 현혹된 정신’, 그리고 문화, 물질과 권력에 현혹된인간들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Die Blendung’을 영어로는 ‘The blinding’으로 번역되는데 일시적인 실명상태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통상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빛은 간상세포가 인식하여 전기자극으로 전환시켜 뇌에 있는 시신경중추로 전달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둠 속엣 갑자기 밝은 불빛을 보게 되면 간상세포가 만들어내는 전기자극이 갑자기 증폭이 되면서 마비상태에 빠지면서 시각중추로 전달되지 못하는 상태, 즉 실명상태에 빠지게 되는데, 빛이 꺼지고 조금 지나면 회복이 됩니다. 따라서 순간적 실명, 혹은 일시적 실명상태를 의미하는 우리말 가운데 멋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쉬이 이해되지 않는 대목입니다.


<현혹>의 주요 등장인물은 자칭 현존하는 가장 유명한중국학 학자 페터 킨, 그리고 그의 가정부로 들어왔다가 두 번째 부인이 된 테레제, 그리고 킨이 집에서 쫓겨난 뒤에 만나게 되는  ‘체스의 천재라고 부르는 포주인 꼽추 피셜레 등입니다. 킨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변하는 상황에 따라 1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 2머리가 없는 세계그리고 3머릿속에 있는 세계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1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에서는 25천권에 달하는 책을 소장한 집에서 연구에 몰두하고 지내던 페터 킨의 집에 새로 들어온 가정부 테레제가 8년에 걸쳐 책들을 소중하게 관리하는 모습을 본 페터 킨이 그녀와 결혼하게 됩니다. 하지만 테레제는 결혼과 함께 180도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데, 가정부일 때 하던 일보다 안주인으로서의 권리 챙기기에 열중할 뿐 아니라 침대를 사러갔을 때 만난 직원과 일탈을 보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킨이 유산도 없는 상태라는 것을 알고는 집에서 내쫓기까지 합니다. 그런가하면 킨은 위험한 테레제를 집에 가두었다고 생각합니다. 옮긴이는 이러한 테레제의 행태가 물질에 현혹된 인간의 전형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니까 세계가 들어있지 않은 머리라는 작은 제목은 세상물정을 모르고 사는 페터 킨의 정신세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2머리가 없는 세계에서는 집에서 쫓겨난 페터 킨이 지금까지는 피상적으로 접촉해오던 외부세계와 직접 만나게 됩니다. 2부에서는 외부세계에서 자유를 즐기던 킨이 이상적인 하늘이라는 카레어서 자칭 체스의 천재라고 하는 포주 피셜레를 만납니다. 2부는 킨과 피셜레가 함께 움직이면서 겪는 일들을 적고 있는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속임수를 쓰고 폭력까지 난무하는 세계입니다. 그러니까 머리, 즉 이성이 없는 세계인 셈입니다. 여기에서 킨은 테레제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테레제는 킨이 자신의 돈을 훔쳐갔다고 경찰에 신고를 했기 때문에 이를 자백하라는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킨은 자신이 테레제를 죽인 살인범이라고 자백합니다.


3머릿속에 있는 세계에서는 피셜레로부터 전보를 받은 킨의 동생 게오르크가 형을 구하기 위하여 독일로 옵니다. 테레제가 죽었다고 생각하는 형의 잘못된 생각을 되돌리고, 경비원과 테레제를 내쫓고 형을 집으로 돌아오도록 조치하고 파리로 돌아갑니다. 하지만 킨은 극도의 불안 속에서 자신의 도서관에 불을 질러 책들과 함께 불에 타 죽고 맙니다. 그러니까 머릿속에 있는 세계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이 옳다고 믿는 세계를 이르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현상을 군중적 현상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작가가 추구하던 군중의 심리연구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데 등장인물들이 보이는 행태는 굳이 군중심리에 의한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읽어내기가 아주 어려웠던 것은 죽었던 등장인물이 다시 나타나는 등 서로 다른 시점이 뒤엉키는데다가 등장인물이 생각하는 바를 마치 현실에서 일어난 것처럼 적고 있는 까닭이라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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