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대기>만 읽으면 우리 나라에 나온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들은 거진 다 읽은 셈이다. 근래들어 레이 브래드버리와 마쓰모토 세이초의 작품들과 번갈아 읽으면서, 어쩜 책은 영원불멸한 존재가 아니고 언젠가는 소멸되는, 생물체와 같은 생명체같은 존재이구나 싶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가 탄생, 삶 그리고 죽음의 세가지 단계를 거치는 듯, 책 또한 탄생과 동시에 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살아 남으려고 바둥거리다가 서서히 소멸되는 그런 생명력 말이다.

 

레이 브래드버리나 마쓰모토 세이초의 소설이 수 많은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칭송되어 수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러 나라에 출간되며 영원불멸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읽으면서 그들의 소설이 주제나 소재면에서 번뜩이고 예리한 미래적 아이디어와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대의 뒤틀림은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의 내가 수십년 전의 사실성과 감성을 이해하고 감지할 듯하면서도 선뜻 완전히 받아들이기 힘들다. 현재와 비교하여 시간적 배경적 공간적 차이가 너무 심해 그들의 미래적 아이디어는 좁은 세계관과 상상력의 한계를 보는 듯해, 당대의 시공간을 초월했을 듯한 소설적 상상력이 초라해 보였다.

 

그래도 여전히 그들의 소설은 살아남을 것이다. 고전이라는 이름하에, 하지만 모든 고전이 영원불멸의 삶을 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죽지 않는 삶이 저주인 것처럼 영원불멸의 책 또한 자신의 무한한 생명이 저주라고 느낄 지도 모르겠다. 끊임없이 독자들에 의해 이어져 내려오는 삶이 아닌 평론가들의 입에 의해 살아 남는 책이라면 더더욱 말이다.

 

모든 생명은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비록 세대에 세대를 거쳐 잊혀진다할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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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모토 세이초의 총 판매부수가 1억부라는 알라딘의 광고를 보는 동시에, 우리나라 베스트셀러 작가 공지영씨가 판매부수 천만부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글을 떠올리며, 와우! 1억부라니, 그렇게 잘 팔린다는 공지영씨도 천만부가 아직이라는데, 일억부면 우리 나라 인구 두배잖아~라며 세이초의 소설이 많이 팔리긴 팔리는구나, 라며 감탄했었다.

 

그런데 며칠 전에 이마트에 장보다가 우유가 싸길래 덥석 집어 온 매일 우유의 스티커보면서 책판매 일억부가 정말 많은 것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십년도 안 되는 기간동안, 저 큼직한 우유가 오억개가 팔렸단다. 오억개~ 먹는 것과 책 판매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라고 말할 수 있지만, 책 안 읽고도 살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유 없이도 살 수 있지 않나. 지난 이십년동안 우유보다 책을 많이 산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물론 나는 책을 꼭 읽어야한다는 생각하진 않는다. 까 놓고 말하지만 책 안 읽어도, 기본적인 에티켓만 지키고 살면 세상 살이는 어렵지 않다. 세상을 무식하게 살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어차피 세상의 모든 책을 다 읽을 수 없고 모든 지식을 다 습득할 수는 없다. 오히려 거짓된 프레임과 오류들로 가득 차 있는 것이 책일 수 있다.

 

고전이나 인문학을 많이 읽어야 주장하면서도 과학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어떤 한 분야의 책을 읽고 지식을 습득한다는 것 자체가 지식의 균형을 유지한다고 할 수 없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래나 저래나 지식의 전체가 아니고 부분일 뿐이다. 우리는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가 지식 전체를 얻는 것이라고 거들먹 거리지만, 사실 지식의 일부분만 얻는 것이다. 그것도 지극히 일부분만. 지극히 일부분의 지식의 얻고 살아가는 것이나 아예 없이 살아가는 것과는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만, 또한 그 차이가 얼마나 되겠냔 말이다. 오십보 백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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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복합 세이초 월드
마쓰모토 세이초 지음, 김경남 옮김 / 모비딕 / 2012년 2월
평점 :
품절


딱 99페이지까지 지루해서 몸부림을 쳤는데, 그 이후부터는 사건에 탄력이 붙어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단지 세월의 격차라는 것을 무시 못하겠더라. 사건의 실마리가 나올 때마다 아, 이거 지금이면 CCTV로 다 알아볼 수 있는데, 아! 이거 과학수사대 불러야하는데, 하는 생각이 읽는 내내 들었다. 아마 세이초가 21세기로 와서 요즘 추리소설을 읽는다면, SF소설을 읽은 것으로 착각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선녀와 나무꾼>이 우리나라 민담이 아니고 일본민담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우리나라를 통해 이야기가 전달된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일본에는 <선녀와 나무꾼>의 비극적인 결말의 원전이 있고 후대에 전해지면서 비극적인 결말이 사람들의 입맛에 바뀌어졌다는 것을 보면, <선녀와 나무꾼>은 일본의 민담이였구나 싶다. <선녀와 나무꾼>이 일본 식민지시대의 잔해라는 것. 아니라면, 우리 나라에서는 원전은 어떠한 내용을 담고 있고 후대에 내려오면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가 변형되어, 지방마다 여러 버젼이 있는지 궁금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유교문화에 의해 하위 문화에 대한 기록문화가 약해, 찾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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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차일드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1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13
존 하트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내가 기피하는 미국 소설의 소재중에 하나가 약물중독자가 나오는 것인데, 이 소설이 그렇다. 약물중독자 엄마의 무기력함이 소설 전개상 꼭 필요했을까, 약물중독자라는 캐릭터를 혐오하는 나로서는 납득하기 힘들었다. 아이와 남편의 상실감만으로 충분히 무기력하게 그려질 수도 있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야기의 전개는 잘 짜여졌지만, 마지막 사건이 다 해결되고 주인공이 하나님이 내 기도를 다 들어주셨다,는 말에 완전 홀딱 깼다. 하나님이 다 들어주셨다면, 그렇게 두껍게 책을 쓸 필요가 있을까 ? 모든 것 하나님의 영광으로 돌리기엔 사건이 너무 지저분하고 한 가정에 가혹하다. 

 

존 하트의 다른 소설도 다 사건 해결 후 하나님께 그 영광을 돌리는 게 아닌지. 도전해 볼 만한 가치는 있는 작가지만, 결말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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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물리학자 6 - 디랙에서 겔만까지 입자 물리학의 세계 위대한 물리학자 6
윌리엄 크로퍼 지음, 김희봉.곽주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20세기를 정의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없이 대중의 시대였다고 할 것이다  문학, 음악(특히나 락음악이나 댄스뮤직의 탄생) 그리고 미술등. 모든 분야가 대중의, 대중에 의해, 대중을 위해 움직인 세기였다고 말이다. 

 

하지만 여기 20세기에 엄청난 황금기를 맞이했지만, 대중의 관심을 끌지 못했던 분야가 있다. 바로 물리학이다. 큰 틀에서 보면 과학일 수도 있겠다. 아마도 물리학계의 슈퍼스타 아인슈타인을 빼고는 대체적으로 대중은 20세기의 물리학의 흐름이 어떤지, 물리와 공학과의 관계, 물리와 천문학과의 관계등 우리가 실제로 살고 있는 자연의 법칙이 물리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고 물리가 자연의 법칙을 어떻게 방정식화 했는지 알지 못한다.

 

일반 대중이 물리학에서 요구되는 고도의 수리적 능력과  천재적인 발상과 사고능력을 미처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평범한 능력으로는 받아 들이기 쉽지 않는 분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우리 대부분은 깊은 사색과 사고보다 즉흥적인 즐거움에 더 현혹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고.

 

위험한 생각일지 모르겠지만, 전 세계 10% 미만의 사람들만이 끈질기게 세상의 물음에, 호기심을 가지고 우리 지구를 둘러싼 의문에 답을 찾으려고 한다. 지구는 정말 네모가 아니고 둥근지. 왜 밤과 낮이 생기는 것인지. 지구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지, 공룡은 정말 있는 것인지, 나무는 왜 자라는 것인지. 바다는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 지구 밖 우주는 무한한지 아니면 유한한지 같은. 수 많은 의심과 호기심은 수 많은 이론과 실험을 통해 수정을 거치면서 정론이 되곤 한다.

 

20세기 이전의 사람들은 빛이 파장으로 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인슈타인은 여러번의 사고 실험을 거쳐 빛은 파동도 입자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그는 빛의 입자가 에너지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채렸다(그래서 그는 광양자 이론을 내놓게 되었고 그 이후 많은 학자들에 의해 기술적으로 발전되었는데, 그 예가 휴대폰이다).

 

입자가 에너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실로 놀라운 통찰력이었다. 원자에서 시작되어, 원자가 아원자로 쪼갤 수 있고, 에너지가 될 수 있는 입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입자물리학 초기에는 그 입자를 어떻게 다뤄야하는지 잘 몰랐지만, 수 많은 과학자들이 입자의 바다속으로 뛰어 들었고, 현대에 이르러 신의 입자를 찾으려고 많은 과학자들이 노력하고 있다. 아마 입자가 에너지를 가질 수 없다면, 많은 과학자들은 시간과 비용 그리고 노력을 거둬들였을 것이다. 

 

<위대한 물리학자 6>은 입자물리학에 거대한 변혁을 이룬 세명의 과학자를 다루고 있는데, 그들이 바로 폴 디랙, 리처드 파인만, 그리고 머리 겔만이다.

 

이 책은 폴 디랙을 찾아보기 위해 검색했다가(생각보다 폴 디랙에 대한 책은 많지 않았다. 우리 나라에 나온 책 중에서 그를 전체적으로 다룬 책은 아예 없었다), 그나마 여기에 폴 디랙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 나와 있어 읽어보게 되었다. 책은 문고판 형식으로 되어읽기 편하게 되어 있고 세 사람의 인생중에서 주요한 부분만 나와 있지만, 상당히 핵심적인 내용만 수록되어 있어 세 사람의 업적이나 인생을 간략하게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에는 파인만과 겔만의 사이가 약간 삐그덕거리는 정도만 묘사되었지만, 사실 두 사람의 사이는 앙숙이었다고 한다. 서로 못 잡아 먹어서 안달이 날 정도로. 워낙 책이 개략적이어서 세 사람에 대한 업적을 묘사하는 데 있어서 감만 잡았을 뿐, 정확하지는 못하다. 입자 물리학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한 사람들이라면, 불만족 스러울 수도 있겠다.

 

이 세 사람에 의해 발전된 입자 물리학은 현재 우리의 에너지원를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고에너지입자가 어쩜 우리가 만들어 낸 환경오염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그리고 원자력같은 위험한 에너지에서 좀 더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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