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다음 뉴스 흝어보다가 문래동에 사는 김모씨가 무한동력영구기관을 발명했다는 기사가 났는데,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newsview?newsid=20140623105714172  결론적으로 말하면,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으려고 김모씨와 기자가 작당한 사기기사다. 중력을 이용해 에너지를 무한생산한다는데 정확한 이론적 근거도 없고 무엇보다 열역학 제 1법칙에서 어긋난다는 말에 피식,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럴싸하게 속아넘겨 돈만 챙기려는 사기구나 싶었다.

 

현대의 과학기술은 어느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져 얻어진 것이 절대 아니다. 수백년동안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의 물리적 이론과 수학적 증명을 통해 점점 미시적으로 진행되어 얻은 결과물이 현대의 테크놀로지이다. 수백년 전 호기심이 강한 과학자들이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자연현상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고 그 현상에서 왜, 무엇을이란 의문을 가졌고 그 의문의 해답을 이론적으로 정립하고 심지어 이론과 자신의 상상력과 결합해 수학적 증명을 통해 만든 결과물이 오늘날의 테크놀로지인 것이다.

 

저 기사처럼 김모씨가 만든 영구기관이 물리학의 제 1법칙을 깨트렸다고 자신있게 호언장담할 정도면 그 이론적 근거와 수학적 증명이 발명품과 함께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야하는 게 맞다.  중력을 이용했다니... 중력을 이용했다는 것은 우리 지구의 중력장을 이용했다는 말인데, 결국 이 말은 지구란 질량의 핵분열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 영구기관을 발명했다는 말 아닌가. 아닌가. 열역학 제 1 법칙에 위배된다는 말은 걸국 지구 질량이 에너지로 전환되지 않은 채, 다른 방식으로 에너지를 얻었다는 말인가.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궁금하다.

 

열역학 제 1 법칙에서 파생된 가장 위대한 방정식이 바로 아인슈타인의 E =mc ² 이다. 이 말은 모든 질량은 에너지화할 수 있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우리가 읽고 있는 한권의 책의 질량으로 에너지화할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 하나의 원자핵에서 얻을 수 있는 에너지는 너무 작은 양이어서 현실성이 없어 보이지만, 레오 실라르드가 하나의 원자핵이 붕괴되면서 인근의 다른 원자핵을 순차적으로 붕괴시키는 연쇄반응을 이용하면 우라늄같은 물질의 원자핵 하나가 갖고 있는 에너지를 수조배까지 증폭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으므로써, 에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었던 것이다(이 이론적 바탕이 되어 나온 결과물이 비극적이지만 바로 원자폭탄과 원자력발전소....).

 

그런데 김발명가는 열역학법칙과 상관없이 에너지를 중력에서 얻었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럼 인공중력장이라도 만들었다는 말인가. 며칠 전에 테드창의 <이해>란 단편을 읽었는데, 호르몬k를 주입해서 인간 이상의 초월적인 지능을 가진 주인공이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인공 중력장을 만들수 있다고 하더만,  그럼 영구기관과 동시에 인공중력장 또한 발명했다는 말 아닌가 싶다. 인공중력장을 만들었다는 말은  하인리히의 소설 <우주의 개척자>처럼 먼 목성의 위성까진 아니더라도 지구에 가까운 달에 기지를 만들 수 있는 엄청한 발명이다.

 

하지만 세상을 뒤엎을 발명치곤, 그의 발명을 대한 이론과학자들이나 수학자들의 검증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우습다. 심지어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그의 발명이 넌센스가 가깝다는 걸 증명해준다.

 

인공중력장을 발명하지 않는 한, 그는 영구기관을 만들 수 없고, 열역학 제 1 법칙에 기반한 중력을 이용해 영구기관을 만들었다면, 지구의 핵분열을 가져올 재앙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지 않아도 스위스에 설치된 LHC의 활동으로 지구가 블랙홀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도 낳고 있는 마당에, 중력을 이용한 영구기관이라니. 차라리 테슬라처럼 진공에서 에너지를 얻어 영구기관을 만들었다고 속이지.

 

미치오 가쿠는 자신의 저서 <불가능은 없다>에서 영구기관에 대해 언급했다. 과학의 무한도전에 긍정적인 그조차 영구기관에 대해 회의적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아시작 아이모프의 고전소설 <신들 자신>에 서기 2070에 한 무명의 한 화학자가 우연한 기회에 역사상 최고의 발명품을 개발한다. 소위 전자 펌프라는 불리는 이 장치는 아무런 비용도 들이지 않고 에너지를 무한정 생산할 수 있다. 이로써 그는 인류 문명을 에너지 위기로부처 구원한 역대최고의 과학자로 추대된다. 아시모프는 이를 두고 "전 세계에 최고의 선물을 안겨준 산타클로스나 알라딘의 요술팸프"라 표현했다.그 화학자가 설립한 회사는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기업으로 등극하고, 석유나 가스 , 석탄, 핵원료등 기존의 에너지원을 공급하던 기업들은 모두 파산한다...........모든 사람들이 위대한 성취를 축하하고 있는데, 한 물리학자만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스스로 자문한다. "이 공짜 에너지는 대체 어디서 온 것인가?" 결국 그는 비밀을 알아낸다..

 

에너지 손실없이 영원히 작동하는 영구기관은 유사 이래 모든 발명가와 과학자, 그리고 온갖 사기꾼들의 영원한 성배였다 (p 393~394)

 

 

그러나 이 모든것은 더욱 심오한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애 열역학법칙들은 다른 법칙보다 우선하는가? 이 지룸은 열역학법 제 1 법칙이 발견된 후로 과학자들의 뇌리에 떠나지 않았다.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다면 열역학법칙을 피해 가는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고, 그 여파는 세상을 뒤흔들고 남을 것이다.

 

나는 대학원 학생시절에 에너지 보존 법칙의 근원을 깨닫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물리gkr의 기본 원리중에 뇌더의 정리Noether's theorem라는 것이 있는데, 그 내용인즉 물리계가 어떤 대칭성을 갖고 있으면 거기 해당하는 보존량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었다(이 정리는 1918년에 수학자 에미 뇌더가 증명했다). 우주를 다스리는 법칙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얻어지는 것이 바로 에너지 보존법칙이다(또한 어떤 방향으로 이동해도 물리하의 법칙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운동량보존의법칙이 얻어지며 공간을 회전시켜도 물리법칙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로부터 각 운동량보존법칙이 얻어진다).

 

 이사실을 처음 알았을 때 내가 받았던 충격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 때 문득 내 머릿속에는 수십 억 광년 떨어진 곳에서 날아온 빛의 스펙트럼이 지구에서 발생한 빛의 스펙트럼과 완전히 똑같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태양이나 지구가 존재하지 않던 수십억년 전에 우주의 끝에서 방출된 빛이 오늘 날 지구에 있는 수소, 헬륨, 탄소, 네온등에서 방출되는 빛과 동일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는 것은 그 기나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물리학의 기본법칙이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p408~409)

 

미치오 가쿠의 말에 의하면, 지난 수백년동안 영구기관을 끈질기게 연구한 끝에 열물리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완성할 수 있었고, 영구기관은 절대 실현될 수 없지만, 그 덕에 증기기관의 기본 원리를 터득하고 산업혁명을 거쳐 오늘날의 기계문명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물론 언젠가 열역학 법칙이 깨질 수 있다. 가쿠도 회의적이긴 하지만, 불가능은 없다고 하지 않던가. 하지만 모든 물리학 법칙이 그렇듯,그 단단한 이론을 깨드리려면 이론적 근거와 수학적 증명이 어느 정도 윤곽을 드러내야하며 그 법칙의 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한사람의 돈키호테식 도전이 아닌 많은 이론적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의 협력하에 작업해야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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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네이버나 네이트를 잘하지 않는데, 어쩌다 거기 들어가보면, 우리 나라가 우파 사회라는 사실을 온 몸이 찌릿할 정도로 전율을 느끼며 실감하게 된다. 하긴 뭐 여기 알라디너들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뻔히 보이는데도 귀 닫고 눈 감았는지, 글은 그럴싸하게 쓰면서 박근혜 잘한다는 우파도 있다만,

 

여하튼  저 포털 기사 댓글중 정부에 비판하는 댓글 올라오면, 득달같이 좌파의 피해의식이라는 둥 좌좀이라는 둥하는 댓글의 답글이 뜨는 거 보면, 그래 그냥 우파사회에서 잘 살아 남는 법이나 터득하자라는 굳은 결심과 함께 우파 사회에서 좌파로 사는 처세술을 열심히 궁리 하게 된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것 중하나가 좌파에 대한 우파에 개념이 잘 못 되었다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대체로 정부를 비판하기만 하면 좌파니 좌좀이니 난리가 나는데, 우파 이 양반들 좌파에 대한 개념을 정말 알고나 좌좀, 좌좀거리는 것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는 말이다.

 

좌파와 우파의 개념의 출발선은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인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쓰게 된 계기가 누구나 다 알다시피 산업혁명 시기때 노동자들의 노동력 착취와 그 노동에 대한 댓가를 노동자들에게 지불하지 않고 얻은 이익의 대부분을 자본가들의 가지고 간, 불균형과 불평등에서 시작되었다는 그 지점에서 출발했다는 건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래서 권력과 자본을 가진 자들의 다른 편에 서서, 너희 있는자들만 가지지 말고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복지를 늘려 가난한 사람들을 다 같이 잘 사는 나라로 만들자라는 것이 좌파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확실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게, 그렇게 왼편에 선 사람들 중 다수가 가진 자와 배운자였다는 것이다. 그러니 좌파의 피해의식란 말은 좀 어폐가 있다. 그들 대부분은 무엇이 옳은 것인지, 국가가, 사회가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알고 자신들이 속해 있는 곳을 마다하고 반대편에 기꺼히 동참하면서 싸워왔기에.

 

소득 불균형의 세계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좌파다라고 해도 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롤모델은 북유럽이고 북유럽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좌파 국가라고 할 수 있겠다. 북유럽 사람들의 삶, 부럽지 않나.

 

롤모델로 삼아 국가 경제가 지향해야하는데, 이상하게 우리 나라에선 월급 백이십, 백오십 받아도 아무런 불만 없이 정부의 정책에 동참하는  노인뿐만 아니라 젊은 우파들이 너무 많다. 정말 많다. 자신들의 삶이 비정규직으로 하루하루 간신히 버티고 월급 백이십 백오십 받아도, 그걸 정부의 정책과 연관짓지 못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좌좀이라고 비하하면서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왜 그들은 노예의식속에서 자신이 처한 부당한 대우가 정치적인 결과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며칠 전에 미국의 오바마는 최저임금을 만원이라는 정부 정책에 싸인을 했다. 수 많은 우파 경제전문가들이 부자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돈이 시장에 많이 풀려 경제가 살아난다는 조언을 듣고 정책을 수십년 고집하다가 포기하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높이는 정책에 싸인을 한 것이다. 좌파 경제전문가들은 말한다. 부자들에게 돈을 움켜쥐고 시장에 돈을 푸는 게 아니고 자신이 벌어들인 돈으로 또 다른 투자처를 찾을 뿐이라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면 그들은 당장 사야할 물품에 소비하느냐 경제가 돌아갈 수 있다고. 적은 임금으로 그들이 소비하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이다. 그래서 미국은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올리는 정책을 받아 들였다.

 

정부를 싸 잡아 비난하는 것을 무조건 좌좀이라고 비아냥 거리는 사람들에게 난, 좌파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좌파란 말의 뿌리는 돈과 관련되어 있다고. 다 같이 잘 살길 바라고 최소 송파동 세모녀같은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사회가 되려면, 소득 불균형을 해소하는 게 급선무인데, 그걸 주장하는 좌파의 입장이 그렇게 비아냥거릴만큼 잘 못 된 것이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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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5-13 11:08   좋아요 0 | URL
아, 고개를 끄덕이며 읽었습니다. 저도 대체 왜 가난한 우리 부모님들이 부자들에게 표를 주는지 모르겠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요. 기억의집의 이 글로 저도 좀 더 명확하게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네요. 잘 읽었습니다, 기억의집님.

기억의집 2014-05-15 10:58   좋아요 0 | URL
저 몰랐다가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일본 50대 이후의 저축율이 5경이래요. 5조도 아니고..일본의 최저 임금이 팔천원에서 만원대인데 돈이 안 도는게 너무 높은 저축율이라 하더군요. 그나마 최저 임금이 경젤 최소한으로 돌아가게 하나봐요. 최저임금은 정말 생각해 볼 만해요. 경영하는 입장에선 당장 불리하지만, 경제가 원활하게 돌아가기 위해선 어느 정도 올리는 게 맞다고 봐요. 정 못하면 비정규직대신 정규직을 많이 뽑던가. 우리 사회는 너무 경영자들의 입장만 반영되는 것 같아요~

마립간 2014-05-13 12:20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의 좌파의 여러가지 정의 중에는 ; '친일 독재 정권에 반대하는 무리', '기득권을 유지하는 체제에 대한 반대하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기억의집 2014-05-15 10:59   좋아요 0 | URL
맞아요. 사실 돈에서 모든 게 비롯되는데.. 우리 나란 우파가 그것만 쏙 빼 먹고 사용하지요~

노이에자이트 2014-05-31 01:42   좋아요 0 | URL
요즘은 북유럽에도 극우세력들이 힘을 얻고 있더군요.외국에서 온 이들에 대한 반감이 높아가는 것은 전세계적 추세 같습니다.노르웨이에서 총기난사 사건으로 청소년들이 몰살당하기 전에 핀란드에서도 비슷한 일이 몇 번 났는데 모두 가해자가 파시즘에 물들었더군요.
 

 

그젠가 그그저껜가 알라딘 들어와 화제의 서재글 흝어보다 미국에서 입만 가지고 다니는 우리 나라 남자에 대한 분노 페이퍼를 읽었는데, 뭐랄까, 난 이분이 세계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분이라 한국 남자들의 비뚤어진 보수성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남녀 평등의 현실을 외국과 비교해서 그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기혼자가 아닌 미혼자이기에 한국 남자의 가사 경험이 한정되어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며칠 전에 우리 나라 근로자들의 50%가 이백만원 이하라는 통계가 기사로 나왔다. 주변을 봐도 소득 이백 이하인 사람들이 많아 어느 정도는 그려려니 했는데, 막상 50%라니 하니 우리 나라 근로현실이 얼마나 열악한가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했다. 내가 이 통계에 빗대어 말하고 싶은 것은 한 사람의 소득이 적다 보니 사실 주변 대부분의 가정이 맞벌이 가정이고, 한국에서 여성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주변 지인들을 봐도 일 끝나면 시장 봐서 애들 먹을 거 사와 옷 대충 갈아입고 밥 하고 반찬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고 일상의 (고된) 풍경이니 말이다.

 

누군 고된 몸을 이끌고 회사 갔다와서 퍼질러 쉬고 싶지 않겠는가.. 그런데 현실은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낮에 살뜰히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지친 몸을 이끌고 저녁밥을 지어야하는 현실을 지켜보는 입방에서 서글프기까지 할 때가 있다. 뭐 다 그렇게 사는 거지 싶다가도.. 나의 언니가, 나의 지인이 그렇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안스러울  정도로 가슴이 막힐 때가 많다. 맞벌이라 남편이 많이 도와준다고 하지만, 사실 두 사람 모두 같이 일 다니고 퇴근해도 남자가 자기 자식 먹일려고 전적으로 가사 노동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니 오롯히 가사 노동은 엄마의 몫이다. 일단 우리 나라에서 가사노동은 여자의 역활이라는 인식이 강하고 그렇게 키워졌다는 데 한 몫을 했겠지만.

 

우리 나라 남자들이 가사 노동을 거의 하지 않는 이유중 하나가 음식 하나 만들어 먹을려고 해도 손이 많이 가는 번거로움에 있다. 된장찌개 하나 끓여 먹을려고 해도 감자 깍고 썰고 양파 썰고 등등. 주방에 들어와 음식을 만들지 모른다는 것이 가사 노동을 등한시 하는 주요 원인중 하나인데, 그러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마트에서 사는 인스탄트 음식도 거부하지 않고 그냥 사서 같이 먹는다. 게다가 나는 우리 아들(혹은 딸)에게 언제나 음식을 쉽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인스탄트 음식도 해서 직접 먹으라고 한다. 렌지에 이분이면 데워 먹을 수 있는 햇반도 사다 놓고 베이컨이나 소시지을 사다 놓거나 어떨 때 마트에서 파는 즉석에서 소스 뿌려 먹을 수 있는 야채도 사다 놓고 해 먹으라고 한다.

 

지금이야 엄마로서 살림하는 입장이기에, 된장찌개나 순두부찌개같은 음식들은 내가 해서 먹지만, 아이들에게 먹고 싶으면 누군가 해 달라고 하는 게 아니고, 마트에서 파는 된장찌개나 순두부 찌개같은, 인스탄트 음식 사서 먹으라 할 것이다. 이에 대해 인스탄트 음식의 유해성에 말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 나라 음식이 잔손이 많이 가서 남자가 못 해 먹는다면, 동영상의 영국남자처럼 인스탄트 음식이라도 해 먹을 수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 신혼 부부의 불만중 하나가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자기 아들 아침은 꼭 챙겨주라는 부탁 아닌 부탁을 한다는데, 솔직이 이건 아니다.

 

요즘 세상에 맞벌이 하는 부부가 대세고 서로 바쁜 게 대부분인데, 꼭 누구 한쪽이 한쪽을 챙겨줘야 하나?  아침밥 먹고 다니면 좋은 거지만, 요즘 세상 천지에 널린 게 편의점이고 음식점인데, 편의점에서 김밥 한 줄 사 먹을 수 있고 회사 근처 트럭에서 토스트라도 사서 간단하게 떼울 수 있는, 먹거리가 널린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을, 여자만 가사 노동을 전적으로 해야하는 시대는 지났다. 같이 돈 버는 건 좋고, 살림은 여자가 더 많이 해야한다는 전통적인 사고 방식은 지양되어야 한다.이제 좀 전통적이고 관습적인 생활 습관은 시대에 맞춰 변해갈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언제나 하는 말이지만, 우리 나라가 여전히 유교문화권이고 제사 관습이 있다보니, 본인들 제사들 지낼 줄 아들만 위하는 부모들 많은데, 요즘 끽해야 자식 한 둘 낳는 세상이고 딸 하나만으로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 귀하게 자란 딸들이 자기 자식한테 희생하며 살길 바라는 부모 마음은 버려도 된다.

 

다 큰 자식 뭘 해먹던 말던, 본인이 좋아 음식을 정성껏 차리면 더 좋고 아니면 인스탄트 음식이라도 해 먹을 줄 알아야 하는 자식 혹은 아들로 키워야 한다. 아들들. 어디 가서 그게 국내든 해외든 입만 가지고 다니지 말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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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5-13 12:33   좋아요 0 | URL
저는 남자가 돈을 벌고, 여자가 가사를 담당하는 것이 효율적인 분업이라고 생각하지만, 맞벌이라면, 가사는 반반씩 부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 가치관에 맞게 행동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 대원칙에 동의한다면, 그 나머지는 타협의 문제이지요.

저는 중학교 때, (아니면 고등학교 때) 집에 밥이 없어 식사를 못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께서 "집에 쌀이 없냐, 너는 손이 없냐 네가 밥을 해먹으면 될 것 아니냐"라고 말씀하셨고, 바로 밥짓는 법을 익혔죠. 그 당시 5가족 중 제가 가장 늦게 밥짓는 법을 배웠습니다.

L****님께도 말씀드렸지만, 남녀평등에 있어 저는 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인스탄트 음식을 먹을 것인지 말 것인지는 먹는 사람이 결정할 문제이고요.

기억의집 2014-05-15 10:53   좋아요 0 | URL
다들 맞벌이면 남자도 같이 가사노동 해야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막상 현실은 전혀 아니잖아요. 아무래도 여자들이 가사 노동을 더 많이 해요. 제 주변 엄마들 다들 일 갔다와서 집안일하고 애들 챙겨요. 그런데 대부분의 남자들은 마립간님처럼 그런 건 생각 안 하고 여자들 너희들은 밖에서 육체노동 안 하잖아,,,,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마립간님이 놓친 것 중 하나가 여자들 임금이 그렇게 세지 않아요. 고임금이면 여자가 충분히 가장의 역활을 할 수 있지만 제가 중하층권에 속해서 그런지 제 주변 엄마들이나 지인들 보면 이백 받는 것도 많은 걸요..==;;

남녀 평등에서 여자의 역활만 중요한 게 아니고 남성의 역활 또한 중요해요. 실제 지금 현재의 여성역활도 좌파정권때 위상을 많이 올려준 것이거든요. 여자들이 전문직으로 많이 진출하게 된 것도 그 때부터고.

저의 요지는 인스탄트 음식이라도 해 먹으란 말이예요. 앉아서 누가 해 주길 기다리지 말고요...우리 나란 정말 남자가 떠 받으러지는 사회예요. 저는 여자로서 그걸 얼마나 뼈져리게 느끼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저는 울 아들이 여동생한테 라면 끓이라고 시키면 뭐라해요. 그리고 제 딸한테도 하지 말라하고요. 저의 요지는 직접 알아서 해 먹으라는 게 제 글의 요지였어요^^

마립간 2014-05-15 12:15   좋아요 0 | URL
막상 현실은 아닌 것에 동감하며, 저도 반성하며 노력해 보죠.

대체적인 내용은 이견이 없는 듯하고 해결책의 강조점 차이 정도로 이해하겠습니다. (지적하신 내용은 예전에 가을산님과 나눴던 것들이 포함되어 있네요.) 제 딸은 더 나은 세상에 살기를 기대하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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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조에 대한 헛된 기대를 버리니, 더 이상 티비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세월호 구조 장면보다 학기초 특유의 분주함속에서 섞여 있을 학생들의 웃음소리와 왁자지껄하고 떠들썩함이 사라진,  텅빈 이학년 교실과 복도을 짓누르는 어둠과 침묵의 이미지가 머리 속에 들러붙어 떨어지질 않는다. 

 

다운된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하루종일 몸을 움직여 보지만, 심란한 마음은 정돈되지 않는다. 청소기를 돌리다가도, 뜨거운 가스불위의 후라이팬이 한참을 달궈지며 뜨거운 열기가 느껴져도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고 멍해진다. 제 삼자인 나야 시간이 지나면 극복되지겠지만, 세월호에 관련된 분들의 슬픔과 고통은 이제 시작이다란 생각에 축축 쳐지는 심란한 마음을 끌어오리는데엔 시간이 걸리지 싶다.

 

2. 오늘 아침에 존 폰 노이만을 검색하려  알라딘서재 들어왔다가 <바른 마음>이라는 책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는 일요일 저녁에 딸과 잠깐 대화한 내용이 떠오르며 이 책이 궁금해졌다.

 

그제 저녁에 수백명의 학생이 바다속에 잠겨져 있어 실종처리된 상황에서 우리 딸은 <개그콘서트>를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트리며, 애초에 단원고가 잘못된 것이 아니냐고 안개가 짙게 끼였는데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을 강행했기에 일차적으로 단원고 학생들하고 선생님들이 잘 못한것이라는 볼멘 소리를 하는 바람에 깜짝 놀랬다.

 

수백명 학생의 죽음과 상실에 대한 공감을 못하는 딸에게 놀라, 너 어디서 그런 소리를 들었냐고 화를 누르며 물어보니, 본인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다. 아프리카 티비를 자주 듣는 아이라 혹 거기 비제이가 그런 말을 한 게 아닌가 싶었는데, 아니라고 자신 스스로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13살이면 어느 정도는 공감 능력이 있을 나인데, 내가 자식을 잘 못 키웠나하는 생각이 한순간 들었다. 한편으론 저 나이가 뉴스 정보를 취합할 능력이 안 되고 삶의 경험치가 적어 전적으로 공감할수 있는 나이는 아니라고 속으론 다독여보지만, 예능프로 방영 안 해 준다고 툴툴거리는 딸에게 적잖이 실망한 것 사실이었다.

 

그래서 예은아, 너가 잘 못 생각한 것이라고, 우리 인생에는 살아가면서 무수히 많은 선택앞에 놓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는데, 우연찮게 선택이 잘못했을 때, 그 것을 선택한 당사자들만을 비난할 수는 없는 거라고, 예를 들어 세월호를 타기로 선택해서 사고를 당하더라도 선장과 승무원의 신속한 구조 요청과 승객을 먼저 구할려고 했어야했고, 해경이나 해군은 빠른 시간에 와서 어떠한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승객을 구조했어야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배의 점검이나 안전장비나 구조장비를 철저히 점검하고 구비했더라면, 한번의 선택을 잘 못 했더라도 그 후 최선을 다 했더라면 최소한의 인명 피해만 났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더니, 어느 정도 수긍하는 눈치긴 하지만 당장의 순간을 모면하려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타인의 슬픔과 아픔에 대해 공감하지 못하는 딸아이에게 나는 어떤 식으로 말해줘야 할까. 가만히 지켜봐야 할까? 아니면 슬픔에의 강요를 해야 하나? 저 책의 목록을 잠깐 들여다보니, 아이들도 마땅히 지켜야할 것들을 알고 있다라는 챕터가 나온다. 아이들은 선천적으로 슬픔에 대한 공감하는 방법을 알고 있을까? 아니면 후천적으로 어른의 흉내를 내는 것인가? 직접적인 당사자가 아닌 어린 제 삼자의 입장이기에,  슬픔의 공감보단 일상의 재미와 반복적인 일상의 되풀이에 익숙해진 결과일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론 아이에게 실망스럽기도 하고 한편으론 천천히 지켜보잔 생각이 든다. 아직 모를 나이니깐....

 

2. 한때 국민사위라는 함익병의 월간 조선의 인터뷰때문에 난리가 난 적이 있었는데, 그 때 그 기사 읽으면서 댓글중에 이런 베스트 댓글이 있었다. 공부는 잘했을지모르지만 전형적인 사유부재의 결과물이라고. 처음엔 그 댓글 읽고 공감이 되었는데, 한참 후에 곱씹으니, 사유와 바른 마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유는 사유일뿐 그 사람의 도덕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말이다.

 

예를 들어, 나치에 동조한 독일 과학자들이나 철학자들의 사유는 우리 일반인들의 사고나 사유와는 차원이 다르다. 과학자들이라해서 실험실에 쳐 박혀 실험만 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자들은 그 어떤 철학자들보다 더 많은 사유를 필요로 한다. 상당히 고차원의 추상적인 사고와 일반적인 상식이나 개념을 뛰어넘는 논리성과의 결합을 요하는 작업을 한 사람들이기에, 일반인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갖고 사유를 한 사람들이치고는 나치를 동조했다는 것이 수치스러울 정도이니 말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그렇고 과학분야에서 대표적인, 양자역학분야에서 불확정성의 원리를 확립한 하이젠베르그가 그렇다. 심지어 2차세계대전기간 독일의 대다수의 지식인들(철학자, 소설가나 과학자들 대부분)이 나치에 동조해서 자신과 함께 일하는 유대인 과학자들을 고발하고 감시한 것을 보면 사유부재가 문제가 아니고 편협이나 옳고 그름의 판단을 정하는 바른 마음이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긴 뭐 우리나라도 일제식민지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지식인들이 친일파였는가 말이다.

 

그러고보면 지식인들의 고상한 척, 있는 척하는 하는 사유는 옳고 그름을 구분 못하는 사유일 뿐이지, 多사유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척도가 될 수 없음은 확실하다. 그러므로 함익병의 왕정정치 옹호나 여자 비하는 사유부재라기 보다는 사회를, 사물을, 상황을, 사건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자신의 이기적인 탐욕이 바른 마음보다 우선시하고 그렇게 교육받은 탓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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