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윌슨의 <자연주의자>를 읽지 않았더라면 난 몇번을 재생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도킨스를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완전 득템은 커녕 부분이해라는 부스러기라도 얻어 먹을려고 해도 도킨스의 이론은 내 머리속에서 게속 추상화의 형태로 남아 있었고, 덜 떨어진 머리 애써 굴리지 말고 소설이나 읽지, 내 주제에 무슨 자연과학책이냐! 며 나가 떨어지려고 맘 먹었던 순간에 잡은 책이 바로 에드워드 윌슨의 <자연주의자>였다. 이 책이 나를 사로 잡았던 이유는 부모의 불화로 친척집에 얹혀 살았던 어린 윌슨의 고통받은 영혼의 안식처가 자연이었고, 자연은 어린 소년에게 부과되었던 삶의 고통을 기꺼히 아무 소리 없이 포옹했다는 것일것이다. 아, 그가 그린 어린 시절을 감동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그가 자연에서 얻는 호기심과 탐험이 결국 그가 사회생물학이란 분야에서 거두가 되기까지의 성장과 에피소드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심적인 고통이 후에 관찰을 위해 기꺼이 여러 낙후된 섬을 돌고 오지를 갈 수 있었던, 육체적 고통을 상쇄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았을까. 그는 이 자서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고통을 그렇게 술회하지 않는다. 아마 성공한 노년의 여유로움이 유년 시절의 가슴 아픈 고통의 기억을  커버했을 것이다.    

   
 
펄(윌슨의 새엄마)과 나의 아버지는 참을성이 많았지만,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나의 용기를 북돋아준 것은 아니고 나를 집 근처에만 머물도록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는 어떤 경우에도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아름답고 복잡한 신세계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희열감이 부분적이 이유였다........그리고 언젠가 전문적인 야외 생물학자가 될 내 자신을 훈련시킨다는 야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알 수 없는 그 무엇, 내 지신도 이해할지 못하며 말로 표현하면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열망 같은 것이 있었다(p96~96).
 
   

도킨스는 자연탐험을 하지 않은 채 여러 학자들의 논문을 통해 이기적인 유전자 이론을 도출한 반면에, 윌슨은 자연 탐사와 병행해서 이론을 도출시켰다. 예를 들어, 윌슨은 휠도블러와 함께 그 유명한 <개미들>이라는 책을 냈는데,  

   
  나와 휠도블러는 하버드 재임시절 이 교훈을 여러번 따랏다. 우리는 1985년 처음으로 함께 코스타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산 호세에서 열대 기구의 야외시험장이 있는 라 셀바로 차를 몰았다. 열대우림으로 들어서자 나는 행동 여구에 획기적인 흥미거리가 될지도 모를 개미를 발견하고 이를 동정하는데 개미에 대한 내 일반 지식을 총동원하였다. 나는 신속하고도 흥미로운 보상을 안겨줄 대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한 할 후보로 원시형 PRIONPELTA속이 보였는데 이 속은 썩은 나무 토막에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속의 군체는 살아 있는 상태로 연구된 적이 없었다  
   

이러한 기초적인 관찰과 data가 그의 사회생물학의 기본이 되었으며, 후에 그<통섭>을 쓸 수 있었던 토대가 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다 만 놓고 아직 읽지 않고 있는 이 책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사유만 있는 말장난에 가까운 책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든다. 과학 위주의 여러 학문의 통합이라는 비난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철학을 위주로 여러 학문이 통합된다는 것도 우습지 않는가. 

그가 어린시절 어두운 긴 터널을 묵묵히 걷고 난 후에 이룩한 학문인, 사회생물학이기 때문에 더 뜻깊게 다가온다. 그의 경이로운 삶을 읽고 나서, 불끈! 도킨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이유로 도킨스의 이론을 백날 읽어봤자 이해도는 제자리지만 놓지 못하는 것이다. 끝까지 해 볼거다.  

데니스 루헤인은 <살인자의 섬>을 처음 읽었는데, 완전 대 실망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책은 트릭이 지나쳤다. 흔히 사람들은 그걸 놀라운 반전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놀라는 대신에 우스워서 이게 뭐밍! 이랬다. 그리고는 얘, 너랑 나랑은 잘 안 맞는구나, 옛다, 엿이나 먹어라! 내가 너한테 선사할 수 있는 반전은 절대 니 책은 사서 읽지 않으리라, 는 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기분 좋은 트릭이 아니어서 열폭했고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은 절대로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있을 수 있나. <피버피치> 이후 닉혼비 또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거들떠 보지 않는 작가인데 우쪄다가 내가 그의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읽게 되었다. 아니 정말 우연히도 말이다, 아주 우연히 옛날에 지루하게 읽었던 <피버비치>의 기억을 잊고 그의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우와~~ 그게 왠일.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 거라~~ 특히나 그의 음악 듣는 센스가 나의 거의 맞먹어서 그런지 그의 글이 더 잘 먹히는 거라. 여길 읽어도 저길 읽어도 이리 재밌을수가..게다가 그가 올해에 읽은 책중에서 저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를 최고의 작품으로 등급시켜놓지 않았는가. 내가 젤 후졌다고 생각한 작가를.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님 닉혼비가 제정신이 없는거얌. 그래도 한번 밑져볼까. 그가 젤로 좋아한다는 <미스틱 리버> 한번 읽고 정 아니면 팔면 되지 뭐. 그래서 그날 아침에 주문하고 저녁에 받아 읽었다. 아주 기대심과 동시에 미심쩍은 맘으로 그리고 , 

난 데니스 루헤인이 좋아졌다.  그가 그려내는 어둠과 더 짙은 어둠과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슬픈 어둠이 좋아졌다. 삶과 강은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 어린 것들에게 그 날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은 평범했을지도 모른다. 강이 아래에서 위로 흐를 수 없듯이 삶도 과거로 갈 수 없다.  

 

데니스 루헤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좋아한다는, 너무나 미국적인 락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들어봐야한다. 그의 슬픔에 밴 목소리와 현실에 저항하는 부르짖음을. 리버의 가사는 대강 이렇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메리는 임신을 했고 그들은 꽃도 없이, 웃음도 없는 결혼식을 했고 그는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한다. 그 팍팍한 삶을. 그들이 젊은 시절부터 차를 몰아 자주 갔던 그 강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그 강을 보면서 시간을 되돌이고 싶어 했을까. 흐르는 강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희망 없는 삶도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하드하면서 드라이한  <미스틱 리버>를 읽으면서 그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을,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강을 그리고 거스를 수도 없는 짙고 어두운 강을 생각하며 브루스가 부르는 하모니카가 소리가 들렸다. 아주 슬픈 그러면서도 거스르고 싶다는 텅빈 외침과 함께. 

창피한 말이지만 나는 이 소설  사다 놓은지가 한 일년도 넘은 거 같다. 그러다가 저 책의 겉표지를 누가 그렸는지 궁금해 한번 여기저기 서치도 해보았지만 읽을 맘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표지의 그림은 안도 시로시게의 작품임). 아, 전 정말 사극도 싫고 시대물도 싫어요. 그러다가 하권을 선물 받고 읽기 시작. 이것도 또 창피한 이야기지만 시대물에 적응이 쉽지 않아서 상권의 1/3가량 읽을 때만해도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침을 질질 흘리고 자고 있었다. 지루하기 이룰 데 없어 그만 둘까 하다가 리뷰평도 좋고 선물로 받아서 끝까지 읽기로 다시 작정하고 덤볐는데 어느 정도만 통과하면 미미 여사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재밌게 돌아간다. 게다가 이야기의 끝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것도 아주 많이. 콧물이 나올 정도로. 한 소녀의 성장이야기가 이렇게 멋진 이야기로 탄생할 수 있다니, 난 이 작품을 통해 미미가 의도 했건 아니건 간에 권력이 무지하고 힘없는 백성을 종교적으로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른 보여준 작품이었지만, 그보다 세상을 더 따스하고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든 무겁게 해석되든 분명한 것은 세상살이는 그래도 견딜만 하다는 것이다. 미미여사 짱짱! 

이 책이 그냥 이대로 파묻히기엔 그의 유머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진화이야기가 너무 아깝다. 언젠가 말했듯이 닐 슈빈은 고생물학계의 빌브라이슨이고, 전문분야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머소설 읽은 것마냥 재미난 진화책이다.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며)어찌하여 이런 책이 인기를 못 얻었는 것인지. 좀 더 파워블러거가 이 책을 띄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물에서 육지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는가를, 눈과 귀가 그리고 우리 몸 구석구석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가 화석인 상태로 발견했다는 틱타알릭은 2004년 북극의 앨스미어 섬에서 닐슈빈에 의해 발견되었다. 사실 그때 그 추운 곳에서 생고생을 해가면서 찾은 것이라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리라. 사람은 물고기로부터 진화되었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다리가 있는 물고기 틱타알릭이다,라는 증거를 그는 찾아낸 것이다. 책에도 그가 발견한  틱타알릭의 생생한 화석을 볼 수 있지만 더 생생한 자료를 보고 싶다면,

                 ( 아메리카의 시스터골드헤어라는 노래가 연상되지 않는지요?) 

 7년 동안 눈여겨 읽던 리뷰어중 한 분이 파란여우님인데, 파란여우님이 그 동안 알라딘에 써 온 리뷰들을 모아 책을 낸다고 했다. 오홋, 반가워라~~~ 그라고 그 책이 바로 <깐깐한 독서 본능> 이 책에 대해서라기 보다, 작년에 파란여우님 강연회가 있어 그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던 이야기를 잠깐 쓰고 싶다. 그 때 강연회 후기를 쓸까 하다가 연말에 들뜬 기분하고 애들 방학이 겹쳐 쓰지 못한 글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잠깐만 쓰련다. 그날 강연회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다. 한 40~50분 정도. 근데 날 더 놀라게했던 것은 그 날 모인 분들의 연령 스펙트럼이었다. 20대에서부터 5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고 어느 특정한 성향의, 예를 들어 남자분만 있다거나 여자분만 자리를 차지한다거나 하는 거 없이 남녀불문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다. 실로 그 인기에 놀랬다. 파란여우님이 그 날 2시간의 강연중에서 참으로 인상적인, 그리고 품을 수 있는 강의를 해 주셨는데 그날, 파란여우님이 마지막으로 책을 읽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쟝르를 찾아 읽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날 그 말이 나한테는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사실 그 분이 그 말을 할 때 그분의 진정성을 보았다. 아, 진짜 파란여우님은 책을 많이 읽었구나 그리고 책에 대해 진지한 맘을 가지고 있구나, 그 말이 그렇게 꽂힐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의 실천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 안되겠다. 그냥 정식으로 다른 페이퍼에다 써야겠다)  그녀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의 리뷰를 읽어보시길. 그리고 혹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출판사가 제공하는 강의가 있다면 꼭 참석해보시길, 그 시간이 절대 아까운 시간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여름에 이 그림책을 교보에서 보고 구입해 리뷰 꼭 쓰리라,라고 했던 것이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리뷰는 커녕 페이퍼도..... 워낙 실험적이고 멋진 작품이라 리뷰를 꼭 쓰고 싶어 작은애하고 홈스쿨링까지 해가며 사진도 찍어두었던 작품이었는데, 결국 쓰지 못했다. 보통 우리들은 아이들은 보편적인 감성을 지닌 그림책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만도 않다. 아이들은 비상식적인 뒤틀린, 정상에서 벗어난, 괴기하면서 실험적인 것도 받아들일 줄 안다. 어떤 경우에는 이건 좀 그림책 주제치고는 진지하거나 너무 실험적이다라고 생각된 것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때도 있다. 아주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말이다. 이 그림책이 반가웠던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좀 드문 실험성이 가득찬 작품이었던 것. 심심하던 동물들이 달리는 과정을 이혜리를 검은색으로 거칠고 대담하게 표현했는데, 그 표현력이 거칠었지만 굵직한 검은 선만으로 흥분된 속도감을 그리고 그 흥분되고 스피드한 속도감을 그림책 정중앙에 배치한 것은 멋진 시도였다. 이혜리와 정병규 두 작가의 실험성과 노고에 감탄했으며 비록 이야기가 생생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림책의 실험적인 표현력에 그리고 우리 그림책의 발전가능성을 볼 수 있어서 최고의 그림책이 아니었다 싶다.  

http://blog.aladin.co.kr/760031175/2474283 재작년에 내가 알고 있던 브아걸은 그저 그런 여타의 걸구룹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냥 귀엽고 이쁜 걸들이 귓가에 살랑거리는 음악을 할 줄 아는 정도. 그러다 이번 앨범을 통해 나는 브아걸뿐만 아니라 2NE1의 파워풀한 보컬과 랩에 놀랬다. 어머, 애네들이 내가 알고 있던 걔네들이 아닌가. 얘네들 다 물갈이 했니? ! 

음악에 변화를 주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많은 변화를 겪으며 걸들이 연약한 걸의 이미지에서 좀 더 파워풀한 걸의 이미지로. 발전적인 모습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되바래졌다고 해야하나. 그런 평가는 각자에 맡기고,  웬만한 남자 아이들의 랩을 능가하는 걸들의 힘찬 랩에 한번 몸을 맡겨보길. 아줌마인 나도 힘나더라. 2009년은 걸들이 있어 행복한 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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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09 14:5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살인자들의 섬]이 별로여서 데니스 루헤인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기억의집님과 마찬가지로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보고 보관함에 살짝 넣어두기만 했었어요. 그래도 지르지를 못했었는데, 오, 기억의집님의 이런 페이퍼라니! 저도 이제 데니스 루헤인에게 빠져야 하는 타이밍인걸까요?

[외딴집]은 또 어떻구요! 저도 사극이 싫고 시대물이 싫어서 이 책은 아예 사지도 않고 그래도 너무나 재미있다는 회사동료의 강력추천에 상권만 빌려놓기는 했는데 빌려서 갖고있은지만 1년이에요. 그런데...괜찮단 말입니까! 눈물이 흐른단 말인가요? 아- 전 대체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한단 말입니까!!

기억의집 2010-02-09 15:28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그새 오셨군요.
저도 살인자의 섬,이후 거들떠도 안 봤는데 미스틱 리버는 좋더라구요. 그 책의 분위기가 딱 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 같아요. 전 브루스 좋아하거든요^^ 하핫!

저도 생전 사극, 노우를 외치거든요. 전 선덕영화도 안 보고 추노도 안봐요. 단지 사극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사람이다 보니 제가 좀 그래요. 근데 외딴집 괜찮아요. 너무 괜찮아요. 제가 손수건 빌려드릴테니 얼릉 읽어보시와요^^ 다락방님~~~~

라로 2010-02-09 17:07   좋아요 0 | URL
닉혼비의 [하이 피델리티]도 안좋아하실려나요?????
전 그의 책 중에서 딱 한권을 지금 읽고 있는게 그건데 넘 재밌어요,,,
영화보다 더 재밌어요,,,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저 원래 영화로 만들어진 첵 잘 읽는데,,,

외딴집,,이 괜찮다구요???
에드워드 윌슨~.

기억의집 2010-02-09 20:00   좋아요 0 | URL
저는 그의 피버피치 읽는거 자체가 고통이었어요. 안 읽으면 되었겠지만, 그 책을 읽던 시기가 명절날이라 읽을 책이라고는 그 책 밖에 없었거든요.
전 운동을 보는 것도 읽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참, 그렇더라구요.
하지만 런던스탈을 재밌게 읽어서 닉의 작품을 기회 닿은대로 읽으려고요.
하이피델리티, 재밌나봐요!
그리고 나비님, 저 있잖아요.....^^

2010-02-09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0-02-09 22:22   좋아요 0 | URL
아. 데니스 루헤인을 대체로 좋아하는데, <살인자들의 섬>도 좋았구요..물론 <미스틱 리버>는 더할 나위 없었다는. 그 분위기 있쟎아요..뭐랄까 어둡기도 하고 회한스럽기도 한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잘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닉 혼비는 많은 분들이 무지하게 칭찬해주셔서 뭘 읽을까 하고 있던 참. <런던스타일 책읽기>부터 읽어봐야겠군요. 미미여사의 <외딴집>은 정말 재밌죠. 그 속에 깃든 따스함이 마음에 포근하게 다가오는. 저랑 비슷하기도 하고 안 비슷하기도 한 님의 독서 취향 포스팅..좋습니다!

기억의집 2010-02-10 11:02   좋아요 0 | URL
비연님, 안녕하세요^^
저도 그 이후로 데니스 루헤인의 책을 사다 읽는데, 제가 처음 느꼈던 그 분위기가 아니더라구요. 전 트릭이 재미난 것은 좋아하는데, 살인자들의 섬의 트릭은 부풀었던 기분이 풍선처럼 뻥 터진 느낌이었어요. 데니스 루헤인의 다른 작품 읽으면서 그가 상당히 것도 짙은 어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쩜 요즘 미드범죄드라마의 원형인가 싶기도 하고.
상당히 괜찮은 작가였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바보처럼.
<외딴집>은 정말 재밌었어요. 저는 나중엔 문장하나하나가 뭉클거리더라구요. 특히나 호의 이름이 바뀌었을 때. 정말 그 장면에서는 콧등이 시큰했는데 나중에 호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끝나잖아요. 그 장면에서는 호의 미래가 보이는 거 같아서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구요. 아, 저 왜 이러죠. 책일 뿐인데...하핫^^
저도 닉혼비 책 좀 찾아 읽어보려구요. 기대가 되면서 의심이 남아 있긴 해요. 전 비연님처럼 축구나 야구 다 별로거든요. 차라리 걸구룹이 더 좋아요. 하핫^^

유부만두 2010-02-10 11:01   좋아요 0 | URL
미미 여사랑 파란 여우 여사 빼곤 다 몰라요.... ㅜ ㅜ

기억의집 2010-02-10 11:12   좋아요 0 | URL
지금 인터넷에 들어오셨군요. 둘째는 어린이집!
진짜 브아걸도?
전 쟤네들 너무 좋던데..
울 엄마가 이번에 뭐라는지 아세요. 연말 시상식에 나이 든 애들 그러니깐 장윤윤정같은, 나오면 재미없는데 걸이나 보이들 나오면 너무 신났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엄마 입에서도.
언니, 설마 브아걸의 캔디맨도 모르는 거 아냐?

akardo 2010-02-11 20:09   좋아요 0 | URL
동영상이 상당히 발랄하고 즐겁습니다.^^틱타알릭 귀여워요......ㅠㅠ <내안의 물고기>책 꼭 봐야겠습니다. 재밌는 진화책이라니 기대가 되는데요?^^
음.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 사놓고 아직 안읽었는데 기억의집님께서 별로셨다니 읽을 의욕이 마구 꺾입니다. 으흐흑......저는 <외딴집>도 사놓고 아직 안읽고 있고 말이죠......에드워드 윌슨은 <통섭>만 읽었는데 <자연주의자>도 함 읽어봐야겠다고 살짝 다짐했습니다. 전 베르나르베르베르의 <개미> 때부터 은근히 개미에 관한 이야길 좋아했는데 에드워드 윌슨이 쓴 개미 관련책도 읽고 싶네요.

기억의집 2010-02-12 08:35   좋아요 0 | URL
아카도님 윌슨의 통섭 읽으신 거 알아요. 리뷰 읽었거든요. 그 때 저는 자연주의자 읽었는데 하고 멘트도 달았는데... ^^
<살인자의 섬> 아주 형편없는 작품은 아니고 전 단지 트릭때문에, 열받은 작품이거든요. 진짜 열 받았어요. 하핫. <외딴집>은 진짜 강추에요. 전 시대물 너무 싫어해서 미미월드2막은 살까말까하는 책들이 많았는데, 그 망설임을 단번에 깨트린 작품이었어요. 울 언니랑 어제 통화하면서 야, 미미 메롱나왔더라, 하길래 요즘 신작도 나왔어라고 알려주었죠!
아카도님 저 아무래도 소설은 조만간 접고 윌슨하고 핑커 한번 읽어볼까봐요. 저도 님처럼 독서계획이라는 것을 세우고 읽어봐야겠어요.^^ 저 그리고 이따 내려가요. 한 2시경쯤. ^^ 설 연휴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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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저의 책읽기 목표는 스티브 핑커입니다. 저의 짦은 생각으론 언어학자 촘스키의 위상을 위협하는 차세대 주자는 스티브 핑커 아닐까 싶어요. 같은 진화 언어학에 발을 담그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언어의 진화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두 사람입니다. 촘스키의 언어학은 스티브 굴드의 단속평형 진화이론이 뒷받쳐 주고 있다고 하네요. 사실 저도 스티브 굴드의 작품은 읽은 것이 없어 그의 이론을 정확하게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뭐라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촘스키와 스티브 핑커 두 사람 모두 언어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다는 데는 동의 합니다. 보편적인 문법 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입이다. 제가 올해 스티브 핑커를 열심히 읽자로 정한 것은 과연 우리가 생태적으로 보편적인 문법 이론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중언어도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스티븐 핑커가 과연 저의 이러한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을런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년초에 시도해 봤는데 아이들하고 같이 있다보니 도저히 그의 이론에 집중할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3월부터 그의 작품을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다 놓은 책이 바로  

사실 이 책을 한 50페이지 정도 읽었어요. 어느 정도는 진화관련 책을 읽어서 그런지 읽히더라구요. 50페이지까지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이해할수 없었다면 아마 10페이지 안팎에서 제자리였을거에요. 그런데 방학이라는 복마술이.....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단 잠시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티브 핑커의 다른 작품도 언어관련하여 찜하거나 구입한 책입니다.  

 

사실 핑커가 촘스키의 책보다는 쉽다고 하더라구요. 전 그 말을 전적으로 수긍할 수 없지만, 핑커같은 경우는 이 모든 책이 다 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휴!!!! 이 사람들은 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아주 재밌고 쉽다고 하는데, 그런 서평을 쓴 사람들이 과연 그의 책을 다 읽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중적인 저술이라고 하지만 진화관련이나 언어학 책을 접하지 않는 비전문가라면 읽기가 쉽지 않아요. 너무 어려워서 내가 왜 이런 도전을 해야 하지?하는 의문이 저절로 생기긴 해요. 그래도 이왕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한번 찾아보자고 생각하며 도전하려고요. 그리고 만약 그의 책을 다 읽었다면 이 책도 도전하고 싶어요. 정말이지 이건 도전이에요. 도전! 

과연 내가 이 책을 올해안에 읽을 수 있을련지..^^ 한번 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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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0-02-11 09:49   좋아요 0 | URL
제가 재작년부터 꾸준히 읽을려 했던 책인데 결국 이번에도 실폐....다른 저자의 책들은 그래도 따라 갈만 한데 핑커의 책은 상당한 분량,단어와 문법,생소한 단어들, 결국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200페이지 읽다가 결국 무릅꿇고 단어와 규칙은 질려서 손대기도 싫고, 언어본능은 작년에 150페이지 읽다가 영단어에질려 실폐 제게는 핑커가 아직 넘지 못한 산입니다. 빈서판은 재미읽게 읽어서 다른책들도 쉽게 접근할줄 알았는데...방법이 없네요....또 몇달은 책꼿이에 고이 모셔놓아야 할것 같네요...

기억의집 2010-02-11 16:05   좋아요 0 | URL
아, 이를 어쩔까요. 저는 그러면 시작부터 무릎을 끓어야하나요. 근데 이런저런 소개글 보면 핑커가 대중을 위해 글을 썼다고 해서...저는 손 쉽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언어본능은 한 50페이지까지 읽었는데 그래도 알아 먹겠더라구요. 그래서 애들 학교가면 한번 도전해보자 했는데..근데 군자란님, 전 저 사람들의 뇌구조를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논리성과 과학까지 끌여들여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잖아요. 사실 철학적인 용어도 없고 애매모호한 용어도 없는데, 이상하게 못 알아듣겠어요. 도대체 저 사람들의 머리는 뭘로 가득한 것일까요. 그게 요즘은 궁금하더라구요. 하핫.

군자란 2010-02-11 17:56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꿈꾸는 기계의 진화를 읽고 있습니다. 작년에 한번 읽고 언제가는 다시 읽어봐야지 했던게 지난 주에 다시 일독을 했는데 도저히 이 책을 놓을수가 없네요....회사에서나 집안에서나 이 책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다시 또 읽기 시작했습니다.....중독수준인것 같습니다.

기억의집 2010-02-12 08:36   좋아요 0 | URL
방금 궁금해서 꿈꾸는 기계의 진화 검색하고 왔는데 가격대가 세긴 세군요.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아무래도 이 책은 다음 기회에 읽고 협력의 진화를 먼저 구입하려고요. 게다가 도킨스가 마구마구 칭찬했다는 유혹에 그만~~
자연과학책이 중독성이 있을 정도면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말인데, 그 정도로 재밌어요?! 다음에 꼭 읽어볼께요. 저한테도 중독성이 생기는지 실험해보겠습니다. 하핫^^
군자란님은 아버님이 작년에 돌아가셔서 이번에는 명절제사 지내야하시겠네요. 혹 안 지내시나요?
여하튼 바쁜 명절일 게 분명하시네요. 설 명절 잘 보내세요.
 

 

 

 

 

 

 

 

작년에 황금가지에서 낸 2권짜리 아서 클라크 단편집은 총 65편이 실려 있다. 하지만 저 위의 원서에 실려있는 클라크의 총단편은 105편. 알라딘의 작품 해설란에는 아서 클라크의 저 단편집의 단편수 104편이라고 소개되어있지만 몇번을 세도 105편. 할 일없이 단편수나 세고 있다고 뭐라 할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편집광적인 면모일 수도 있겠지만(저는 제 자신이 여러모로 꽤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책을 둘러싼 호기심은 도저히 누룰 수가 없어요. 심지어 전 알라딘의 전설적인 리뷰어 N님의 페이퍼와 리뷰 싸그리 몽땅 다 읽고 그 분이 누군지도 알아낼 정도였으니깐요. 아, 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일일히 밥 하면서 식탁에 앉아 다 세워보았다.  하핫,  그러니까 현재 황금가지에서는 먼저 클라크의 단편집 2권를 출간했으며 나머지 41편의 단편은 작년 가을에 나머지 단편들을 뿜빠이해  2권 더 출간한다고 큰소리 치더니만, 아직까진 뻥에 그치고 있다는 이야기.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자만 혹 41편을 한꺼번에 내 1권으로 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니 기다려 봄세. 아직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단편중 하나인 The forgotten enemy 는 예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적이 있어 여기에 올려 본다.
1961년 펭귄사이언스픽션 옴니부스에 처음으로 수록.

밀워드교수는 좁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번만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가슴팍이 파고드는 싸늘한 공기는 여전히 밤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그 요란한 굉음으로 메아리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두꺼운 모피옷으로 어깨를 감싸고 귀를 곤두세웠다. 죽음의 도시 런던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밀워드는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와 코크스 몇 덩어리를 이글거리는 놋쇠화로에 던져 넣고는 제일 가까운 창문으로 갔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창문 아래 보이는 눈 덮인 지붇들은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천둥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북쪽에서 들려왔고, 그가 귀를 곤두세우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그가 일찍이 들어본 자연의 소리와는 달랐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희망을 가졌다. 

사람만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영국의 잉글랜드지방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분진이 온통 하늘을 뒤덮기 전에 과학이 그들에게 주었던 무기들을 이용하여 얼음과 눈을 폭파하여 길을 내며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육지로, 그것도 북쪽에서 온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는 새로이 타오르는 희망의 불길을 꺼버릴 상념들은 애써 떨쳐 버렸다. 

20년전 밀워드는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을 회전기으로 휘저으며 리전트공원에서 힘겹게 날아오른던 마지막 헬리콥터들을 지켜보았었다. 정적이 그의 주위에 내려 덮였을때까지도 밀워드는 사람들이 북방을 영원히 포기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그는 30년을 꼬박 기다렸다. 

그래도 초기에는 라디오를 통해서 이따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남방과의 유일한 접촉수단이었단 라디이가 이제 온대로 바뀐 적도지방을 식민지화하려는 싸움에 관한 뉴스를 들려 주었던 것이었다. 그는 그 속에서 벌어진 전투의 결과는 알 길이 없었다. 라디오가 침묵을 지킨 지도 이미 15년이 되었다.  

밀워드는 꼭 필요한 때에만 대학 건물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탈출하면서 엄청난 물자를 남기고 떠났으므로, 지난 20여년 동안 그는 아무도 없는 이웃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가 모아 두었다. 사실 그의 생활은 여러모로 사치스럽다고 할 만했다. 영문학 교수치고 옥스퍼드 거리의 모피상점에서 가져 온 그런 옷들을 입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밀워드가 배낭을 메고 둔중한 출입문을 열었을 때, 맑은 하늘에서 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한때는 굶주린 개들이 무리지어 이 일대를 설치고 다녔었다. 지난 10년 동안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밖에 나갈 때는 여전히 권총을 지니고 다녔다. 

햇살에서는 열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 즈음 태양계가 통과하고 있던 우주의 분진띠가 햇빛의 밝기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그 힘은 깡그리 거의 빼앗고 말았던 것이다. 이 지구가 온기를 최찾을 수 있을때가 10년 뒤일지 1000년 뒤일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문명은 "여름"이라는 낱말이 아직 실감이 나는 땅을 찾아 남쪽으로 떠났던 것이다.  

지붕 위에 눈이 위태롭게 쌓여 있고, 추녀끝에는 칼처럼 끝이 뽀족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집들을 피하면서 밀워드는 북쪽으로 가다가 드디어 자기가 찾고 있던 가게에 당도했다. 산산조각이 난 창문 위의  글씨는 예나 다름없이 선명했다. "젠킨스부자상회, 라디오와 전기제품. 텔레비젼 전문." 

2층의 작은 방은 부서진 지붕 틈으로 눈이 약간 흘러 들어오긴 했지만, 10여년 전 그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올웨이브 라디오가 여전히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고맙게도 전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전지들도 있었다. 사람과 기계들이 돌아오고 있다면, 사람들이 서로간에 혹은 그들의 출발지와 교신하느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며 밀워드는 30년전에는 고함치는 목소리와 급하게 타전되는 모르스 부호로 뒤범벅이 되었던 단파대를 찬찬히 훑어 나갔다. 어떤 소리든 찾아내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조심스럽게 가슴을 품고 있던 그 한가닥 희망이 점차 그의 마음 속에서 스러지기 시작했다. 한 때 떠들썩하게 북적대던 에테르의 바다에도 이 도시와 마차나가지로 정적만이 깃들어 있었다. 

자정이 지나자 건전지의 전력도 동이 나고 말았다. 밀워드는 더 찾아볼 마음이 없었으므로 모피 옷 속에 몸을 웅크리고 어지러운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섰을 때는, 인적 없는 하얀 도로에 열기 없는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자꾸만 덮치는 구출의 환상에 놀라 잠을 설친 탓으로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하얀 지붕 위로 굴러오는 아득한 청둥소리에 갑자기 고요가 깨졌다. 길 양쪽의 건물들에서 작운 눈사태가 일어나 넓은 거리로 눈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 소리는 흔한 폭발음치고는 너무 길게 끌었다.- 그는 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원자폭탄의 폭음 같았다. 원자폭탄이 한꺼번에 100만톤의 눈을 날려 버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희망이 되살아났고, 간밤의 실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순간 멈칫거리다가 그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옆 길에서 나온 거대하고 허연 무엇인가가 그의 시야에 갑자기 들어왔다. 한순간 그의 마음은 눈으로 본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를 덮쳤던 마비가 풀리자 그는 별로 효력이 없을 것 같은 권총을 더듬어 찾았다. 머리를 이리저리 휘접고 뱀처럼 꿈틀거리며 최면에 걸린 듯한 걸음걸이로 눈을 가로질러서 터벅터벅 그에게 다가오는 있는 것은 거대한 북금곰이었다. 

밀워드는 들고 있던 물건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났다. 그는 가장 가까운 건물을 향해 비틀거리며 뛰어갔다. 다행히 지하도 입구가 불과 15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마비된 손가락으로 쇠로 된 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한순간 그는 공포에 질렸다. 그는 가까스로 문을 조금 밀어붙이고, 비좁은 틈으로 겨우 몸을 밀어 넣었다. 

혼비백산한 밀워드 교수는 한 피선처에서 다음 피신처로 옮겨가며 3시간 뒤에야 대학 건물로 돌아왔다. 이 오랜 세월동안 자기 혼자만이 이 도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 주일이 끝날 무렵, 그는 북방의 동물들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아무소리도 내지 않고 쫓아오는 이리떼에 쫓기며 순록 한마리가 남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고, 밤 중에 이따금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물들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무엇인가가 짐승들을 남쪽으로 몰아가고 있었으며, 그 사실이 그를 한층 더 들뜨게 했다. 이 사나운 생존자들이 사람 이외의 다른 무엇을 피해 날아날 리는 만무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기다림의 긴장이 밀워드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그는 모피옷으로 몸을 감싸고 몇 시간이고 멍하니 앉아서 구조대가 다가오는 꿈을 꾸었고, 사람들이 잉글랜드로 돌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원정대가 북아메리카를 떠나 대서양의 얼음판을 건너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항공 정찰 한번 없지 않았는가? 비행기술을 그렇게 빨리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이따금 그는 그 오랜 세월동안 잘 보존해온 서가를 따라 걸으면서 무척 아끼는 책에 대고 소곤소곤 말을 걸기도 했다. 낮이 점차 길어지고 햇빛이 더 밝아지자 그는 때때로 시집 한 권을 뽑아들고 옛날에 좋아하던 시들을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높다란 창문으로 다가가서 이 세상에 걸려 있는 마법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내다보이는 지붕 위에다 대고 목청을 높여 주문 같은 말들을 외쳐대곤 했다. 

잃어버린 여름의 망령들이 돌아와 떠들기라도 하듯이 그 무렵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다.  북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더 가까이 와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수수께끼같은 굉음이 천둥치듯 도시 위로 울려 수 많은 지붕위의 눈을 밀어내리곤 했다. 

밀워드에게는 전보다 더욱 강렬한 희망과 공포가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매일 아침 그는 탑의 제일 높은 창문으로 가서 쌍안경으로 북쪽 지평선을 살폈다. 

그렇게 북쪽을 살피는 일도 그 짧은 여름이 지나가면서 끝이 났다. 밤중에 들리는 우르릉 거리는 소리는 전보다 휠씬 더 가까이에서 들렸지만, 그 소리가 이 도시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위협을 받고 있는 어느 성채의 성벽에 서 있는 감시병이 쳐들어 오는 적군의 창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살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 순간 밀워드는 진실을 알았다.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고, 언덕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예리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깜빡 잊고 있었던 적이 밤 사이에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운을 맞은 언덕의 능선을 따라 반짝이는 그 무서운 빛을 보슨 순간, 밀워드는 마침내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옛 고향 북쪽을 떠나, 먼 옛날 그들이 차지했던 땅으로 의기양양하게 되돌아 오고 있는 그들은 빙하였다. 

1990년 1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아서 클라크의 <The forgotten enemy >를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상하게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가 오버랩. 히로시마 원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니네 일본 샘통이다,라고 생각했지 니네들 그 거 참 안됐다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으며 원폭의 피해로 인해 2차대전의 주역이 너구리 둔갑술처럼 일본이 피해자라는 식으로 말하는 일본 지식인들에 대해 한마디로 밥맛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원폭의 후푹풍이 서구 작가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오히려 서구 작가들이 더 인류에 대해 그리고 미래의 테크놀로지에에 대해 더 회의적이며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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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얄팍한 잔머리로는 일년 6개월이 지나면 좀 더 나은 가격 아니  1000원, 2000원이라도 깍은 가격에 살 줄 알았다. 어차피 사놓고 금방 읽지도 않을 책, 내가 과학소설창작이 당장에 무슨 필요가 있겠나 싶어, 적어도 1년 반만 참으면 싼값에 이 책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 오호~~ 하지만 그건 오만한 나만의 착각. 1년도 안돼 이 책은 여기저기 인터넷도서점에 품절로 뜨고 있고 한달이 넘은 상태에서도 품절은 쭈욱 계속 되고 있다. 불길한 생각이지만 절판쪽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출판사 입장에서 살 사람은 다 샀을 것이라고 생각할테고 남은 몇명의 SF 팬들을 위해 다시 인쇄기를 돌리느니 그냥 절판쪽으로다.... 

한때 SF에 열을 올린 적이 있어 SF소설 나오는 쪽쪽이 사서 읽었는데. 사람 맘이라는 게 어디 언제나 뜨거운 전기장판 같으랴, 책에 있어선 바람난 여편네다 보니 자꾸 다른 쪽으로 한눈 파느냐고 근래엔 SF 쪽으로는 무슨 책이 나왔는지도 잘 모르고 지냈다. 작년에 황금가지에서 출간된 SF 소설들은 틈틈히 봐둔 게 있어 SF 소설들을 사긴 하지만 예전처럼 잘 읽지는 않는다는.   

 

  

  



작년 오멜라스와황금가지에 이어 올해는 북스피어가 야심차게 내 놓고 있는 에소프레스 노벨라 전집 소식에 갑자기 미지근하던 SF 소설에 불이 확 당겨지는게,  

 젤라즈니의 <그림자잭>은 <판타스틱>에 연재된 소설이라 솔직히 사기 아까운 소설. 판타스틱이 제대로 간행되었으면 얼마나 좋겠니. 이번엔 시공사에서 인수해서 2월까진 발행되고 있기는 한데, 제발 플리즈 시공사여~ 판타스틱을 부탁해! 

  

여하튼 끝판을 읽기위해서라도 <그림자잭>을 사긴 사야하지만 일단 중고샵을 기다려보고, <집행인의 귀향>은 어제 가격보고 덥석 물었다. 이제 25,000원이 넘는 <드림마스터>만 사면 되는데.... 여행서를 중고샵에 방출하고 얻은 돈으로 저 책 사련다. 

내가 읽은 젤라즈니는 미래 사회에 대한 어떤 유토피아적인 비젼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언젠가 이네파벨님이 SF 라는 게 결국은 헉슬리의 신세계에서의 다른 버젼이다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나 또한 SF 작가들이 그려내는 미래 세상은 현실과 다른, 좀 더 나은 세상 혹은 진보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는 점에서 헉슬리의 신세계의 확장선상에서 봐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이제 21세기 누군가는 헉슬리의 패러다임위에 계속해서 패러다임을 건설했던 SF가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의 SF소설을 구출해야 할 것이다(이건 토마스의 쿤의 과학 패러다임을 빌려 SF의 소설에 대입한 것임). 

젤라즈니는 여타의 SF 작가들과 달리 가독성이 뛰어나다는 장점이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하인라인만큼의 진보성을 그리고 필립 딕만큼의 SF적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의 이야기는 남성우월주의 정말이지 애교스러운, 혹은 용맹한 마초이즘을 기반으로(하인라인하고 다른 게 바로 이 점이다. 하인라인은 생긴 것은 꼭 마초의 마초처럼 생겼지만 그가 묘사하는 남자주인공들은 상당히 유연하다. 나약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권위적이거나 교조적이 아니다란 말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그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드세다는 느낌을 받는다), 서부시대의 남성적인 마초를 좀 더 용맹스러운 그럼과 동시에 사랑스러운 우주적 마초로 탈바꿈 시켰다. 그러한 요소가 그의 소설을 읽고나서 거부감보다는 빙그레 웃음이 나올 수 있었던 매력 아닐까.

그래서 젤라즈니의 작품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에 반가움이 앞선다. 이번엔 또 어떤 유형의 마초를 만날지. SF 작가들 나름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우주적 인물 유형이 있어 나름 SF는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그게 하인라인처럼 진보성과 관련되어 있다면 선견지명이 있는 것이고. 현재의 인물유형이나 설정을 그대로 우주적으로 탈바꿈 한 것이라면 일반 소설과 다를 바 없는 것이겠지만.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지금은 아쉬운 것이 있다면 SF 소설 한참 탐닉했을 때, 아서 클라크와 아시모프의 작품들를 읽지 않는 것은 후회스럽다. 자연과학책을 읽다보면 많이 인용되는 SF소설가들이 바로 아시모프, 클라크와 더글라스 애덤스인데, 그들의 40,50년전의 SF 작품이 오늘 날에는 거의 예언서와 다름없고 그들은 예지자와 다름 없어 보인다. 아아, 그렇다고 젤라즈니나 하인라인 그리고 르귄에 쏟아부은 시간이 아깝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 작품에 또렷한 주관적이고 독자적인 상상력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어쩌면 그들을 읽었기에 내가 자연과학책으로 서서히 인도해 해주었으니까.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쩜 나는 자연과학책은 평생 읽지 않을 목록이었을지도 모른다. 책을 읽는 어느 지점에서는 SF 소설도 읽어주는 것도 필요한 것이 아닐까. 물론 이 쟝르는 호불호가 분명해서 강제로 읽는다는 것은 불가능 하지만. 

점점 희귀현상을 보이는 쟝르가 SF 소설이다. 더 이상 눈에 띄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SF 작가도 거의 없어, 20세기의 SF 작가들만 미래에 살아남아, 몇 몇의 SF 작가들의 망령이 21세기를 움직이지 않을까 싶다. 

덧: 필립 딕의 소설은 그의 휘향찬란한 아이디어만 아니었다면 좀 실망스럽다. 필립 딕의 재평가는 그의 아이디어를 다시 쓰는 요즘 감독들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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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rdo 2010-02-02 18:28   좋아요 0 | URL
아. <라마>가 가장 눈에 띕니다!! 전 아서 클라크는 <유년기의 끝> 밖에 없어요. 고려원 sf가 나오고 있을 즈음 저는 sf쪽은 신경 안 쓰던 때였으니.......ㅠㅠ 전 아이작 아시모프는 그가 쓴 과학 에세이로 처음 알았죠. 당시 학생이라 뭔가 시험 공부;;에 도움이 될 책을 읽으려고 봤었어요. 그가 소설가란 생각이 없었습니다. 아하핫; <파운데이션> 한창 나올 때 못 모은 게 아쉽습니다. ㅠㅠ 역시 sf는 나오면 무조건 사야된다는 말이 진리인 듯합니다. 마이너 중에 마이너란 느낌이;;어쨌든 <라마> 가지고 계시다니 부럽습니다.
그나저나 시공사는 만화잡지 오후 때 데인 게 있어서 말이죠......sf도 만화 사업처럼 돈 안될 것 같으면 또 접는 거 아닌가 염려됩니다. 잘되면 좋을텐데 말예요. 음. 조만간 유빅도 사려고 생각했었는데 기억의집님은 별로셨다니 주저됩니다.;젤라즈니는 소재 자체는 일정한 편이지만 캐릭터와 감수성이 좋아서 봅니다. 저는 원래 마초 별로 안좋아하는데 젤라즈니의 마초 캐릭터는 좋더군요. ^^마음에 와닿는 문장도 많고요.
그런데 <과학소설 창작백과>는 무사히 구하셨는지요?;오프라인 서점에선 아직 찾으실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sf소설이 예전만큼 인기가 덜한 이유 중 하나가 현실이 상상을 쫓아가는 게 아니라 상상을 넘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은 아니지만 나름 sf인 강경옥의 라비헴폴리스란 만화 읽을 때 그런 걸 느꼈거든요.

기억의집 2010-02-02 20:52   좋아요 0 | URL
허걱,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라고요. 아카도님, 너무너무 부러워요. 저는 그 책 구할려고 무진 애를 썼는데 헌책가격대가 너무 쎄서 그냥 포기했어요. 원서로 읽어볼까하다가..어느 세월에 그걸 다 읽누~ 싶어 그냥 관두었지요. 라마는 7권이 전권인데.. 아, 진짜 클라크와 아시모프를 SF 알았을때, 지르지 않아서 후회막급이에요. 그때는 파운데이션 품절아니었거든요. 특히나 클라크쪽. 저는 클라크의 단편중 하나를 리더스 다이제스트에서 아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이번에 황금가지에서 나온 단편집이나 사야할까봐요. 클라크나 열심히 읽을걸.
한번 과학소설 창작백과나 찾으로 오프 발로 뛰어볼까요?
저는 젤라즈니와 하인라인을 비슷한 시기에 읽었는데 젤라즈니와 하인라인의 대비되는 외모에 소설 속 캐릭터의 상반된 유형에 재미를 느꼈어요. 전 젤라즈니는 그냥 재미로 손을 들어주고 싶고 하인라인은 진보성에 손을 들어주고 싶어요^^
강경옥씨는 저도 좋아한 만화가였는데 한국소설도 안 읽음과 동시에 만화도 안 읽게 되네요^^ 마지막 문구는 저도 생각해 볼께요^^

필립 딕의 유빅 저 지금 배송중이에요. 아직 안 읽었고 필립 딕의 소설이 사실 막상 읽고나면 아이디어에는 매료되어도 젤라즈니처럼 캐릭터에 맥아리가 없어요. 전체적으로 캐릭터에 뚜렷한, 생생한 생명력이 없다보니 어떨때는 허무하더라구요. 그래도 필립딕은 읽어볼만한 SF작가이긴 해요. 참 그리고 아카도님...

2010-02-02 2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2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kardo 2010-02-03 00:20   좋아요 0 | URL
참. <드림 마스터> 드디어 배송되어왔는데 젤라즈니가 자기 작품에 대해 이야기해서 좋았어요. 젤라즈니는 제가 빠져들 땐 이미 죽은 사람이라서 어떤 책에서도 그의 말을 직접 들을 수 없어 슬펐는데 여기서 글로나마 그의 개인적인 말을 들을 수 있어 기뻤습니다.ㅠㅠ 제가 원래 작가 서문이나 후기를 좀 좋아하거든요. -좋아하는 작가 한정이지만요.- 오래 사셨음 좋았을 텐데 말이죠......

라로 2010-02-02 18:56   좋아요 0 | URL
전 SF쪽은 별 관심이 없는데 이윤 아마도 제게 상상력이 부족해서일거란 생각을 했어요~.
기억의집님은 정말 책 읽으시는 분야가 방대합니다!!!!
뭐든 전문가 수준이시니!!!!
참,,,,저 고백하러 왔어요,,,,참지 못하고 책을 사고야 말았답니다.ㅠㅠ
저 정말 한심해요,,,뭐든 작심3일이니,,,그래도 이번엔 오래 참았는데,,,
교보문고만 안갔어도 잘 참을 수 있었는데,,,ㅠㅠ
아뭏든 새로운 이월부터 다시 새롭게 결심하고 책을 사지 말아야죠,,,
책 사느니 님 말씀처럼 밍크코트를 사든지 집을 사든지 해야지,,,ㅠㅠ

기억의집 2010-02-02 20:49   좋아요 0 | URL
나비님, 저야말로 한정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전 한국문학, 철학, 경제서, 자기계발선 전혀 안 읽어요.
어쩌다가 한번은 읽어도 첨엔 제가 잘못된 독서를 하고 있구나 싶었는데
어차피 한번 살다 죽을 인생
내가 좋아하는 분야의 책만 읽자,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모든 카테고리를 섭렵할 수 없는 노릇인데, 관심도 없는 분야 건드리지도 말자주의에요^^
아까 페이퍼 읽었어요.
하핫, 나비님, 다시 한번 도전해보세요. 이번에도 한달이에요^^

라로 2010-02-04 11:07   좋아요 0 | URL
저도 한국문학 안읽었어요,,,그런데 요즘 생각이 좀 바뀌어 한국문학을 읽으려고 노력한답니다. 하긴 토지도 읽었으니 기특하긴해요,,,ㅎㅎㅎ한글은 한국문학을 읽고 그러자 뭐,,이런 야무진 계획을 세우기니 했으나 실천이,,,쿨럭

2010-02-03 2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05 2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늘 날 거리에서 볼 수 있는 가장 불행한 장면들 중 하나는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온통 아무 모양도 없는 검은 옷으로 감싸고 작은 구멍을 통해 세상을 내다 보는 여성의 모습이다. 부르카는 단지 여성을 억압하고 그들의 자유와 아름다움을 억압하는 도구가 아니다. 남성의 지독한 잔인성과 여성의 비극적인 굴종을 가리키는 것만도 아니다. 나는 그 작은 구멍으로 다른 무엇가의 상징으로 이용하고 싶다(556p).

한때 나는 열렬한 천주교 신자였다. 우리집 가족 그 누구도 신을 믿지 않았지만, 20대 초반,  난 내 발로 성당을 걸어들어가 예비교리를 신청하고 6개월간의 교육을 받은 다음, 아네스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 이후에도 혼.자.서 20분 거리의 성당에 성경책을 들고 예배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생활을 꽤 오랜동안 했었다. 이러한 신앙 생활은부모님의 불화에서 오는 고통을 달래주어야 할 무엇인가가 필요했었고, 신을 믿음으로서 마음의 위로와 경건함을 가져다 주는 것 같았다 . 그래서 애아빠를 만나 결혼을 하면서 애아빠가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물신양면으로 후원을 했으며 애아빠가 세례 받는 날 우리는 성당에서 간략하게 혼인 서약도 했었다.  

하지만 난 나의 아이들한테 유아세례는 받게 하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이 유아세례를 받게 해야한다며 종용했지만, 나는 이상하게 종교의 대물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고 한 엄마한테는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종교인으로서 무책임하다는 말도 들었다. 그 때 그 비난을 받으면서도, 변명은 하지 않았다. 내가 그 때 유아세례를 종용하던 분들께 하고 싶었던 말은, 아이들에게 종교의 자유와 선택을 주고 싶다,라는 말을 하고 싶었지만 후풍폭이 두려워 그 말은 꿀꺽 삼켰다.  

점차 성당에 다니면서 신에 대한 믿음이 강해지기보다 혹 종교도 일종의 이익집단이 아닐까, 라는 종교인으로서 신에 대한 그리고 종교 집단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고, 나의 부모가 나에게 종교의 선택권을 준 것처럼 나의 아이들에게도 그런 권리가 충분히 있다,라는 확신이 믿음보다 더 강하게 일기 시작했다는 것은 어쩜 종교적 회의가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는 것일 수도 있겠다. 

지금은 아무 것도 믿지 않는다. 천국과 지옥은 물론이거니와 윤회도 믿지 않는다. 현재 나의 종교관은 소수의 권력자가 많은 사람들의 통제권을 행사하기 위해 종교를 이용한, 그리하여 통제권을 행사를 더 권고하기 위해 신분제도의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정도로 인식될 뿐이다. 그리고 종교야말로 세계분열의 기여도가 가장 크다는 인식정도.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가장 혐오하는 것중의 하나가 부의 대물림이 아닌 종교의 대물림이다. 그는 종교의 대물림이 아이들에게 종교선택권의 자유를 뺏을 뿐 아니라 테러의 한 가운데 설 수 있는 용맹(?)과 무분별한 희생정신을 주었다고 한탄한다. 그 어떤 대물림보다 종교의 대물림은 가족간의 결속력을 그리고 더 나아가 집단의 결속력을 강화 세속한다. 종교의 대물림은 천년 전, 신의 언어가 현재에도 먹힌는 아주 이상야릇한 장기통제권이라 할 수 있다. 말도 안된다고?  현재의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은 예전과 다르다고. 아니 이슬람 여성의 온 몸을 휘감고 있는 부르카를 보면 나는 수 백년 동안 지속되어 온 종교의 대물림, 편협성,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보수성과 남성 우월주의의 대한 복종과 그녀들의 구속된 삶과 굴욕을 들여다보는 듯하다. 

프랑스에서 이번에 논란이 되고 있는 부르카 착용 금지 조치에 대해 나는 환영한다. 단지 페미니스트의 시각이 아닌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 말이다. 혹자는 그러한 조치가 문화적 상대주의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비난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편협한 종교적 강제성에 대해서는 왜 의문을 제기 하지 않는가. 왜 그녀들은 뜨거운 사막에서나 유용할 옷차림을 다른 나라에서도 고집하는가. 왜 그녀는 다른 여자들이 맘껏 누리는 청바지와 짦은 치마를 입을 수 없는가. 왜 그녀들은 작은 구멍으로 두 눈만을 내 놓은 채 세상을 바라보아야 하는가. 왜 그녀는 평생을 굴욕적이고 복종적인 삶을 살아야만 하는가. 왜 우리는 문화적 상대주의란 포괄적인 의미만을 내세운 체 종교적 통제하에 있는 그녀들의 자유에 침묵하는가? 그녀들이 그렇게 살아야할 이유는 없다. 이슬람을 믿지 않았다면. 

우리들의 자유는 투쟁의 결과물이다. 우리가 지금 자유를 누리고 살고 있는 것이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지 않으며 지난 20세기 우리가 자유를 얻기 위하여 투쟁은 인류의 커다란 진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들은 종교의 강제성에 맞서 투쟁할 수 조차 없다. 남자 어른이 없이는 외출도 자유롭지 못하다. 심지어 강간을 당했다는 이유로 가족들에게 명예살인을 당해야하며 9살,10살의 여자아이가 돈 많은 남자들에게 팔려 시집을 가 애를 낳다 죽어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수 백년동안 남성하에 살아야한다는 종교적 세뇌는 그녀들이 자유를 얻기 위한 투쟁도 무기력화한다.  이게 바로 종교의 악질적인 속성이다.

난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아이들 그림책을 보다가 우연히 내가 즐겨 입는 바지를 코코 샤넬이 만들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전에만 해도 바지를 누가 만들었는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그녀가 치마를 벗어던질 수 있는 자유를 주었고,  바지를 입는다라는 착복의 자유는 여자들에게 인식의 전환과 지평을 넓혀나간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깟, 바지 하나가 뭘 여성의 삶을 변화시켰겠냐고 말하겠지만, 그깟 바지 하나로 여자는 그 이전 시대보다 활동의 영역은 넓어졌고 더 많은 자유를 얻었으며 남자를 상대로 자신의 권리를 찾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부르카 착용금지가  이슬람 여성들에게 자유를 가져다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문화적 상대주의를 부르짖으며 그녀들이 부여 받을 수 있는 자유를 원천봉쇄할 필요성은 못 느낀다. 온 몸을 휘감은 부르카를 찢어버리고 청바지와 짦은 치마 그리고 섹시한 나시티를 입을 수 있는 자유와 더불어 자유 의지를 줘라. 21세기에는 남성을 위한, 남성의, 남성에 의한 억압된 자유가 아닌 그녀들만이 지금까지 종교적 억압에 의해 누릴 수 없었던, 풍요로운 자유 말이다.  

덧: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중의 인용구는 부르카를 비판하는 글이 아니다. 그는 마지막 문장에서 말한 것처럼  부르카를 비유해 좀 더 넓은 과학적인 진보에 대해, 한계가 없을 수 있는 과학에 대해 이야기했다. 도킨스가 부르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아니다를 빼고 이다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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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2010-01-29 21:56   좋아요 0 | URL
어떤 종교든 강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의 집에서도 애들에게 약간의 강요가 있었지만(남편때문에) 전 아이들에게 종교의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보거든요. 결국은 제 의견이 반영되어 영세만 받고나면 이후 종교에 대해서는 마음대로 하기로 했는데, 모르죠 정말 그때가 되면.
제가 요즘 믿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잖아요. 아직 확 와 닿지도 않고 끌리는게 없지만 열심히 다니다보면 그네들이 말하는 영적인 체험 같은 것을 하게 될 수 있을까...하는 의심적인 마음이 더 많지만요, 이번주엔 매일 아침 성당에 가서 미사드리고 왔잖아요. 지난 토욜엔 첫고백이란 걸 떨리는 마음으로 하고 왔구요.

기억의집 2010-02-01 09:42   좋아요 0 | URL
종교란 자기정화 같아요.
전 종교를 이제 여러 면에서 볼 수 있을 거 같아요.
맹목적인 믿음이 아니라..^^

군자란 2010-02-01 09:51   좋아요 0 | URL
종교는 자기정화란 말에 나도 모르게 맞다는 생각이 듭니다. 종교는 계속된 자기 자신과의 대화인것은 맞는데, 거기서 벗어나 종교가 할수 없는 역할까지 간섭하기 시작하면 문제가 복잡해지지요. 그 경계를 아는 것이 지혜인것 같은데...

기억의집 2010-02-01 10:00   좋아요 0 | URL
전 사실 도킨스의 책을 읽고 저의 종교성을 버렸지만
종교란 것이 단순한 것이 아니더라구요
생각보다 종교의 역활이
나약한 인간들을 통제하는 역활을 해 왔다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은 왜 그럴까?하는 의문이 자꾸 들어요^^

akardo 2010-02-01 17:36   좋아요 0 | URL
문화적 상대주의라는 말이 가끔 보면 자기들 일에 간섭하지 말란 식, 특히 예전 한국형 민주주의 어쩌구 하면서 독재를 미화했던 것처럼 악용되는 일이 많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포스트모더니즘을 중심으로 문화적 상대주의 떠들었을 때 좀 떨떠름했달까요. 도킨스는 정말 근대의 수호자란 생각이 들어요.

기억의집 2010-02-02 10:08   좋아요 0 | URL
아카도님, 저는 상대주의란 것이 타인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혹은 어떤 정치적 집단은 이것을 악용하기도 하네요. 전 이슬람 여인들이 이 부르카를 다 찬성하지 않을 거 같아요. 생각해보니 만화 페르세폴리스1권에서 베일이라는 주제로 부르카에 대해 시작하잖아요. 부르카란 1980년 이란혁명이 가져온 것이었네요.혁명이 이렇게 교조적이고 보수화로 역행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정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그래서 페르세폴리스가 떠올랐어요^^

akardo 2010-02-02 18:51   좋아요 0 | URL
일반적인 혁명의 정반대편에 `반(anti)`혁명도 있죠. 전에 읽었던 팩스턴의 <파시즘> 한국어판에서 부제목으로 파시즘을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이라 했으니 혁명도 각각의 성격 나름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억의집 2010-02-02 20:55   좋아요 0 | URL
아카도님의 리뷰 읽었던 거 같아요. 파시즘에 대한 책리뷰 올리셨지요?!
혁명이란 의미가 상당히 넓네요. 전 그럼 지금까지 혁명이란 좀 더 진보적인 것으로 알고 있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