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무슨 글을 쓰고 계신가요? 달변의 투르니에씨에게는 긴 질문이 필요 없다. 김선생이 번역중이라는 <짧은 글, 긴침묵>의 속편에 해당되는 산문집<예찬>, 그리고 <흡혈귀의 비상>이라는 제목으로 이미 펴낸 독서록에 이어지는 또 한 권의 독서록, 이렇게 두 권 분량의 원고를 써 놓았지만 아직 출판은 하지 않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엔 무엇보다 흡혈귀 문제에 심취해 있어요. 그 주제를 가지고 한 권의 소설을 써보려고 말입니다. 아주 결정적인 흡혈귀 소설을요. 모리스 라벨이라는 작곡가는 왈츠곡을 작곡했었죠. 그가 원했던 것은 흔히 있는 왈츠곡들 중 한곡이 아니라 왈츠곡 그 자체였어요. 과연 그 곡이 발표된 이후에는 아무도 왈츠를 더 이상 작곡하지 않았죠. 내가 원하는 흡혈귀 소설도 그런 거예요. 부정관사가 아니라 정관사가 붙는 흡혈귀 소설!....(중략).... 그런데 왜 하필이면 <흡혈귀>일까? 나는 그런 주제를 좋아하지도 않으려니와 그것이 딱히 내 정서의 심층을 진동시키지도 않는다 "한국인들도 흡혈귀에 흥미를 많이 가지고 있나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p237). 

꽤 오래 전에 읽은 미셀 투르니에의 산문집인 <짧은 글 긴 침묵>중에서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 대목이다. 정작 미셀 투르니에가 쓴 에세이는 가물가물한데, 김화영 교수가 미셀 투르니에의 집을 찾아가 그와 나눈 대화를 작품 후기처럼 쓴 이 글의 저 대목을 10년 넘게 뚜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나 또한 김화영교수처럼 흡혈귀란 존재가 내 정서에 그렇게 와 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대목을 읽은 순간, 흡혈귀가 그렇게 흥미로울 수 있는 존재였던가? 하는 의문이 들었고, 미셀 투르니에뿐만 아니라 서양 작가들의 흡혈귀에 대한 반응이 좀 별나다고 생각했었다. 쳇, 타인의 피나 빨아먹어야 살 수 있는 영원불멸의 존재라니. 예나 지금이나 흡혈귀 자체가 얼토당토한 유치찬란한, 게다가 성적인 욕망과 뒤얽힌 신화적 존재라는 생각이 고착돼서 나는 좀처럼 서양작가나 영화인처럼 흡혈귀란 주제가 매력적으로 다가갈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는 지금까지 뱀파이어가 나오는 소설을 읽은 기억이 없다. 끽해야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나 캐서린 비글로우 감독의 <니어 닥>같은 영화 몇편 정도. 아, 그리고     

영화<뱀파이어와의 인터뷰>!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흡혈귀라는 주제를 능가하는 쟁쟁한 얼굴마담들이 나왔던 영화라 당시에 안 볼래야 안 볼 수 없었던 영화. 혹 기억하는 분들이 있을런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나귀님이 이 소설에 대한 리뷰를 쓴 적이 있었다. 그 때 그 리뷰에서 이 책을 "드라큘라의 현대적 해석"이라고 생각해 10여년 정도 외면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뱀파이어란 존재가 외면당할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며, 이 작품에서 가장 매혹적이었던 것은 5살짜리 소녀의 몸에 갇힌 팜므 파탈 클라우디라는 불멸의 존재였다고 글을 남긴적이 있었다. 차라리 정신도 몸과 함께 5살 소녀로 남아있다면 좋았을 것을. 영화에서 클라우디는 성적인 욕망을 갈망하는 소녀로 나온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건드리지 못한다. 정신적으로 성숙할지 몰라도 몸은 7살의 몸이었으니깐. 운명의 저주라고 해야하나. 그땐 잘 몰랐는데, 커스틴 던스틴의 요염하면서도 당돌한 눈빛 연기 굉장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갑자기 왜 이렇게 나귀님의 리뷰까지 들먹이느냐하면, 바로 며칠 전에 보고 온 <렛미인>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웃기는 말이지만, 난 이 영화에 대한 스토리를 전혀 몰랐다. 영화를 보러 가는 도중에 지인과 통화하다가 이 영화가, 소년소녀의 사랑이야기라는 것을 그리고 뱀파이어에 대한 영화라는 것을 얻어 들었다. 꽈당! 뱀파이어가 나온다는 말에 도중에 갈까말까 볼까말까로 한참을 고민 좀 했었다. 저 위에 쓴 것처럼 예나 지금이나 나는 흡혈귀란 캐릭터에 대해 그렇게 호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을뿐만 아니라 별로 뭐 흠흠흠.  

여하튼 망설임 끝에 보았다. 그리고 영화 보고 와서, 외톨이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이야기 어쩌구저쩌구하며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극찬했다고 하는 글을 읽었는데, 솔직히 그런 평가는 좀 오버다 싶었다. 내 나이쯤 되면 속물근성이 강해져서 저들의 사랑이 현실적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는데, 내 눈에는 저 소년과 소녀의 사랑이 순수하지도 진실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한마디로 사랑이 밥 먹여주니!  

나는 이엘리에게서 <뱀파이어의 인터뷰>의 5살짜리 팜므 파탈 소녀 클라우디아를 보았고, 이엘리에게 자신의 피 한방물까지 준 호칸에게서 오스칼의 미래를 보았다. 일단 책은 무시하고, 이엘리는 이백년동안 12세 소녀의 몸 속에 갇혀 있고 어쩌면 미래의 수 백년 후에도 12세의 소녀로 남아있을 것이다(그녀가 자신의 삶에 진저리를 치고 죽음을 선택한다면 달라지겠지만). 그녀가 클라우디와 다른 점은 자신의 욕망을 이용한다는 것. 그녀는 자신의 닫혀있는 몸과 삶 속에서 또 다른 동반자를 유혹해 그들이 삶까지 그녀의 테두리 속에 가두어 둔다. 어쩌면 호칸도 오스칼처럼 어린 나이에 그녀를 만나 소년의 풋사랑을 느껴 그녀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다음엔... 죽지 않고 아니 더 이상 늙지 않는 그녀와의 사랑은 너무나 파멸적이다. 소년기의 사랑이 풋풋한 순진한 사랑일 지 모르겠지만 그(호칸 혹은 오스칼 또는 미래의 남자들)는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청년이 되고 이엘리는 여동생으로, 더 나아가 그가 나이가 들어 중년이 되면 그는 소아애자로 그의 욕망을 풀어야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엘리의 유혹의 정체는 무엇인가? 사랑을 가장해 자신의 영원불멸한 삶을 위한 피의 조달자를 만들기 위한 장치가 아니였을까. 순간 뱀파이어의 영원불멸한 삶은 가치가 있는 것일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변함없이 되풀이 되는 시지프스의 신화와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이엘리의 몸이 12살로 멈춤 것처럼 오스칼의 삶은 그녀와 함게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는 삶을 선택하는 그 자리에서 멈추었다. 뱀파이어인 이엘리는 시지프스처럼 닫혀 있는 원의 세계에서만 머물고 생활하고 달릴 것이다. 오로지 그 안에서만. 오스칼, 물론 그는 나이를 먹고 늙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게 주어진 삶은 이엘리처럼 더 이상 열려 있는 공간이 아니고 육체도 정신도 더 이상 자랄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에게 성장은 이엘리와 함께 12살의 시계에서 멈추었다. 성장이란 함께가 아닌 자기 스스로 찾아가는 길이며 성장이란 결국 궁극적으로 개인 스스로 찾아가는 자유로운 길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가 끝나자마자 엔딩 크레딧도 보지 않고 후다닥 나와 버렸다. 소년과 소녀의 행복한 미래가 그려지기 보다 오스칼(아, 왜 그렇게 투명한 느낌이 드는 이쁜 소년이라는 생각이 드는지)의 파멸의 길이 안스러워서 내 피가 다 빠져나갈 것 같았기에. 영화관 문을 나서면서, 절대 책은 읽지 말자,라고 다짐하고 나왔다. 더 이상의 파멸을 끌어안고 싶지 않다. 한 소년의 멈추어버린 삶과파멸의 목격은 이제 영화만으로도 충분했다.

 이 세상엔 영원한 사랑이란 없단다. 얘야.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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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0-02-21 08:53   좋아요 0 | URL
제가 이 영화와 책을 잘 피했구나 싶어요. 슬프고 무섭네요, 이엘리.

기억의집 2010-02-21 12:23   좋아요 0 | URL
진짜 내용 너무 악마적이에요. 게다가 소년애가 얼마나 투명하고 이쁜지.. 그래서 더 맘 아팠던 영화였어요. 그 때 언니랑 통화했을 때가 지하철로 향하던 때였는데, 그냥 발걸음을 돌렸어야했어요^^
 
세상 모든 건축가의 건축 이야기 마음이 쑥쑥 자라는 세상 모든 시리즈 20
꿈비행 지음 / 꿈소담이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요즘은 이런 시리즈가 대세인가 보다. 어떤 한 아이템을 잡고 그 아이템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것 말이다. 우리 어린시절에는 찾아 볼 수 없었던 지식아이템이지 않나 싶다. 서점에 가서 여기저기 둘러보면 다 이런 책들 밖에 없다. 아이들 머리 속에 하나의 지식이라도 더 집어넣을려고 안달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고 풍요로움이 넘쳐 과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나쁜 의미로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책들을 보면서 잘만 활용하면, 여러 종류의 책이 많이 나와 있어 책 선택을 잘 한다면 아이들 공부에 더할 나위 없이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말한 것 뿐이다(좀 톡 쏘는 듯한 말인가!).  

이 책은 먼저 희망으로님의 리뷰 읽어보았는데 , 희망으로님의 사진이 작다라는 말에 전적으로 수긍이 간다. 사진이 적게 나와 건물에 대한 정확한 모습을 인터넷을 뒤져 다시 확인해야할 정도로. 하지만, 사진이 작게 나온 거 빼고는 이야기의 짜임새나 정보면에서는 손색이 없다. 인류가 정착지에 정착한 이후의 시각적인 욕망이라고 말하고 싶은, 인류 역사의 유명한 건축물이 한 자리에 모여 있으며 정보의 양도 짦지도 길지도 않다. 아이들이 접수할 만한 길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페르지사의 제국의 페르세폴리스 (갑자기 이 궁전터 보니깐 <페르세폴리스>라는 만화가 연상되었고 그녀가 왜 그런 제목을 붙였는지 알 수 있겠더라는)궁전에서부터  우리의 불국사 건축물 그리고 스페인에 있는 구겐하임 빌바오 미술관까지 설명되어 있는데, 아이들에게 역사가 낳은 불멸의 건축물의 존재를 확인시켜 줄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이 책은 좀 더 깊이 있는 글을 원하는 아이들에게는 입문서 정도의 역활밖에는 하지 못할 것이다. 좀 더 많은 건축물과 건축가들을 원하는 아이들은 아마도 다른 책을 원할지도 모르겠는데,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고대 건물 따라, 중세 건물 따로 그리고 현대 건축물만 따로 보여 줄 수 있는 책이 나왔으면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책 제목만큼 세계의 모든 건축가의 건축이야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아주 대표적인 건축가의 건축물만 보여줘서 대강 목만 축였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  

덤: 갑자기 이 책 읽다가 루이스 칸이 생각나서  



루이스 칸의 솔크 연구소(소아마비 백신을 발명했지만 특허를 거부한 솔크박사의 연구소 건물
) 안도 다다오가 이 사람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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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2010-02-13 16: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출판시장이 커짐에따라 그동안 없었던 틈새시장을 공략하고 있죠. 우리 교육이 왜곡된 면이 있어서 순수창작물보다는 지식책을 찾는 독자들(욕심 많은 엄마)의 요구가 많기 때문인 것 같아요. ㅎㅎ 저희 아이들 아직 이 책 접수 전.

기억의집 2010-02-16 18:40   좋아요 0 | URL
지식책이 많다는 것은 좋은 일에요. 아무래도 모든 현상과 사물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도와줄 수 있으니깐요. 이 책은 좀 더 욕심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2010-02-13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21 12: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2-17 08: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보고 싶은 텔레비전 궁금한 방송국 - 세계의 텔레비전과 생생한 방송 역사 상수리 호기심 도서관 11
소피 바흐만 외 지음, 김미겸 옮김, 토니두란 그림 / 상수리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엄마인 내가 텔레비젼을 잘 안봐서 그런지 우리 애들은 얼마전만 해도 <스타킹>이나 <패밀리가 떳다>같은 예능프로나 드라마의 존재를 잘 몰랐다. 우리 애들이 저런 예능프로가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명절에 할머니와 삼촌들과 함께 예능프로의 재미를 접해본 이후의 일이었다. 그 때 가족들이 거실에 빙 둘러 앉아 예능프로를 보고 즐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TV 프로가 꼭 그렇게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는 아이들에게 예능 프로를 볼 수 있게 해주었다(난 예나 지금이나 예능이든 드라마든 별로, 애들방에 들어가 나 혼자 책 읽는다). 

아이들이 텔레비젼의 프로에 관심을 가지면서, 연예인이나 대중음악에 대한 관심은 물론이거나와 작은 TV에서 어떻게 화면이 나올 수 있는지에 대한 과학적인 관심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대강 내가 알고 있는 얕삭한 과학적 지식을 통해 예능 프로나 드라마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려주었는데 내 짧은 과학적 지식으론 아이들은 이해를 잘 하지 못했다. 그래서 알 게 된 책이 바로 이 <보고 싶은 텔레비젼 궁금한 방송국>인데,  

이 책은 텔레비젼이라는 말의 어원과 역사 그리고 방송을 만드는 일, 방송의 역활이나 다양성과 텔레비젼의 미래까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텔레비젼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멀리"를 뜻하고 비젼은 라틴어로 "보다"라는 말을 합성해서 만들어졌으며(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어요. 아이들 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책을 읽은 즐거움은 살면서 몰랐던 그리고 성인책에서는 접할 수 없는 바로 이런 아주 기초적인 지식을 쌓을 수 있어서 좋답니다) 텔레비젼이 발명되기까지 많은 과학자들과 기술자 그리고 발명가들이 공동의 힘을 보태서 정확하게 어떤 과학자나 발명가가 텔레비젼을 만들었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실용적인 텔레비젼을 만든 사람은 영국의 베어드라는 사람이었다. 초기의 텔레비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대중들에게 상품화 되기까지의 과정과 인공위성을 통한 최초의 위성중계까지의 과정이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설명되었다. 게다가 이 책은 특이하게도 프랑스인이 집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텔레비젼의 역사도 포함하고 있다. 작가가 한국 아이들을 겨냥해 낸 책인지 아니면 삼성의 후원으로 책을 낸 것인지 알쏭달쏭하지만 여하튼 우리의 텔레비젼 역사와 곳곳에 우리의 텔레비젼의 현황이 나와있는데 최장수 드라마로 우리의 <전원일기>도 소개 되어있다는. 

아이들에게 TV에대한 짦막한 지식에서부터 역활과 기능까지도 잘 소개되어 있는 책이다. 고학년 아이들이라면 충분히 숙지할 수 있을 만한 책이다. 어른인 나도 텔레비젼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가 재미있었으니깐. 이 책 읽고 나서 갑자기 리처드 파인만의 짦막한 일화가 생각 났다. 난 어린 시절(그러니깐 초등학교 고학년일때도)에 TV를 보면서 TV안에 사람들이 있다고 믿었다. 전파를 통해 수신기로 우리가 수신 영상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닌, 작은 사람들이 그 안에 살고 있어서 뉴스도 보내고 드라마도 하는 줄 알았던 것이다. 그래서 TV의 뒤도 살펴보고 그랬는데,  파인만은 12살 무렵에 동네 망가진 라디오를 다 고쳤다는 일화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12살에 전파의 기능과 라디오 내부에 설치된 기계들의 기능을 알았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난 20살이 넘어 무역 회사에 다니면서 라디오나 텔레비젼에 설치된 PCB판을 처음으로 보았고 PCB 기능을 알았는데 말이다. 아마 지금 라디오나 텔레비젼은 PCB판을 사용하지 않겠지만, 어린 나이에 전자 제품의 내부 기능을 알았는다는 사실은 아이들에게 어린 나이일 수록 기계의 내부기능이 하는 역활 그리고 전자제품이나 기계들이 하는 역활들을 빨리 알아챌 수 있도록 돕는 것도 나쁘지 않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아이들에게 기계적인 호기심은 그 아이가 가질 수 있는 과학적인 재능을 빨리 알아챌 수 있는 기회니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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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으로 2010-02-12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번역서에서는 가끔씩 이런 경우가 있더라구요. 우리나라의 실정을 넣어주는 쎈쓰~~!! 전 울 아들 초등학교때 망가진 라디오 뜯어보라고 주기도 했어요.^^

기억의집 2010-02-16 18:42   좋아요 0 | URL
근데 이 책은 삼성협찬 책인거 같아요. 희망님이 권해주셔서 읽긴 했는데, 저 무슨 삼성홍보책인 줄 알았어요. 하핫, 나중에 삼성만 나오니깐 기분 팍 잡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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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한마디로 자유 그 자체다. 특히나 고전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난 고전을 꼭 읽어야한다는 당위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애 낳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고전에 대한 집착은 버렸다. 수백년전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더 글을 잘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사유의 폭이 더 넓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한 종교 통제와 신분 제도에 옭매인 사람들의 사유가 혁명을 거친 우리 시대 사람들보다 더 깊다고 더 넓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난 고전을 보는 시선이 자유롭다. 고전은 must read 아이템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자유선택 사항이어서 그런지 고전이 누르는 무게는 실로 나에게 그리 크지 않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도 고전을 꼭 읽어햐하는 책이라는 중압감을 가진 책으로 인도하고 싶지 않다. 읽을 수 있으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읽어야 하는 품목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싶다. 하지만 수 많은 책들중에서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하는 터. 쏟아져 나오는 신간에 정신 못 차리는 나지만 그래도 올해 몇 권의 고전은 찜해놓고 있다. 올해 읽을 수 있다면 좋고 아니면 말고.  게다가 요즘 출판사마다 우후죽순으로 고전문학 전집이 나오다 보니 흥미로운 것은 사실. 그 중에서 몇 권은 눈길이 끈다. 지금 구입한 책도 몇 권 있고 그리고 다음에 구입해 읽고 싶은 고전책들.  

이 책의 표지는 정말 셀렌다. 나는 같은 여자로서 이렇게 하이힐의 뒤태가 섹시해 보일지 정말 몰랐다. 며칠을 고민하다 이 책의 겉표지에 유혹에 넘어가 사서 읽고 있는데, 읽는 내내 위안부 생각이 나 불쾌한 작품이었다. 혹 일본인들도 우리 정신대를 이런 식으로 보지 않았을까. 일본 군대는 정신대를 자신들이 욕망을 합법화할 수 있도록, 정당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페이지페이지마다 날 괴롭혔으며, 세계적인 작가라는 요사는 도대체 이러한 구상을, 아이디어를 어떤 식으로 얻은 것일까. 혹시나 일본의 정신대에서..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작품이다. 난 도저히 이 책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거절하겠다. 이제 몇 분 안 남은 99원의 정신대 할머니들이 우리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일본의 사죄다운 사죄를 받지 않은 이상 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없으며 객관성의 결여라고 비난하더라도 난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의 역사편에 서겠다. 

으흑, 이 작품도 뒤태에 반해서..그만.  하얀 레이스 너머 어둠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후, 나 진짜 궁금해. 너무나 너무나 참을 수 없는 매력의 겉표지. 나름 미영문학의 단편집중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은 생각보다 뛰어난 작품들이 실려있다. 처음 디킨스의 신호수를 읽었을 때만해도  겉표지와 달리 생뚱맞은 시대에 뒤떨어진 단편이나 실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요즘 트렌드에서 맞는 감각의 단편들이다. 개인적으로 조셉 콘라드의 찾아 보기 힘든 단편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더 좋았던 작품이었는데, 콘라드의 진보의 전초기지라는 단편이 이문열의 명작산책에 실려 있었지만, 그 땐 별로 사고 싶지 않아 제 아무리 콘래드라도 사지 않고 기다렸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콘라드의 단편을 실어주다니, 개인적으론 두께도 그렇게 두꺼운 편이 아니어서 더 이쁜 막내같은 느낌의 단편집이었다. 게다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재발견.  

 

예전부터 탐내고 있었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의 이 작품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선뜻 다가갈 수 없는 위력의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20대에 열화당 사진문고중 아메리카, 암흑시대라는 사진작품들을 통해  미국의 대공황 사진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워커 에반스와 도로디어 랭의  미국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포착한 사진들의 이미지가 드문드문 기억 속에 박혀 있어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의 절망속까지 내 감정이 이입될까 두려워 읽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쩜 언젠가 내가 미국의 대공황시기의 그 현실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할지도 모르겠다. 아, 또 리처드 기어의 영화 <천국의 나날들>인가도 이러한 주제 비슷하지 않았나.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에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죄책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때. 과연 그러한 죄책감이 사라질 날이 올려나 모르겠지만. 지난 번에 교보 나갔을 때 20% 할인이라고 선심쓰듯이 팝업문구 붙어있더니 오늘 알라딘보니 30%씩이나 하네. 

 

1997년도 판이라니. 난 만약에 이번에 출판사들의 세계문학전집중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오면 구간으로 기다릴 필요도 없이 신간책으로 사련다. 우리 중고등시절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인기 대단했는데...물론 하이틴로맨스 시리즈와 함께. 하핫. 갑작히 옛날 생각나네. 아이들하고 돌려가면서 읽던 하이틴 로맨스소설들.  지금 돌이켜 보건데, 그 때 정말 괜찮은 국어 선생이 한명이라도 있어 진보적인 독서 지도를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을 보는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깊이가 있지 않았을까. 여하튼 갑작스레 요즘 이상하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과연 내가 잘 읽을까만은. 마가렛 미첼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작품이라는 이 작품을 우리는 영화로 더 많이 알고 있지 막상 책으로 읽은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그리고 왜 이영화는 리메이크가 안되지. 비비안 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여배우가 정녕 그렇게 없단 말인가. 흡입력이 대단하다는 이 소설, 제대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이번에 창비에서 나온 세계문학단편집들은 작가들의 배분이 고르다. 이 일본편만해도 생소한 작가가 많다. 시가 나오야나 유리코 그리고 일본에서의 명성은 대단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쭌이찌로오의 단편이 실려있다. 솔직히 오사무 안 실린 게 어디냐 싶다. 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 좋을 줄 모르겠더라, 완전 찌질남. 감성적이고 유유부단한 성격이 작품 속에도 그대로 드러나 독자인 나로 하여금 기겁을 하게 만들었던 작가. 과연 그의 작품이 그렇게 대단하게 취급받을 만한 작품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내가 일본 평론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이 작가야말로 핑크빛평론이 만들어낸 명성 아닌가 싶다.  쭌이찌로오의 단편이 한편 수록되어있어 반갑기 하지만, 야스나리는 세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차라리 쭌이지로오의 단편 세편이 실리고 야스나리는 1편만 실려도 되는 것을. 그래도 다른 출판사에도 찾아 보기 힘든 단편이 실려 있어 나름 괜찮은 일본단편집이다.  

그 외에 더 읽을려고 구입한 고전들. 

 

 

 

 

근데 그거 아세요? 문동세계전집이 의외로 쉬크해 보이지만 읽을 때 무지 불편하다는 사실, 겉표지가 옷으로 비유하자면 시스루 같아요. 흐느적 흐느적, 결국에는 표지 휙 떼서 읽게 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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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11 09:27   좋아요 0 | URL
네 알아요, 기억의집님.
회사동료가 문동세계전집 안나카레니나 읽고 있는데 표지가 정말 너무 흐물거려서 오래 두고 못읽을것 같더라구요. 자꾸 벗겨진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 보기에는 말씀하신것 처럼 쉬크해 보이지만 정말 불편하더라구요. 흐느적 흐느적. 그래도 저는 저 위에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사려고 찜해두고 있어요.

창비세계문학선은 표지가 아주 단단하죠. 게다가 하드커버인데도 쫙쫙 잘 펴져요. 아주 잘 만든것 같아요. 저는 지금 창비세계문학선 일본편 읽고 있어요. 일본 다음에는 폴란드를 읽을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저는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저 역시 그 작가를 좋아하진 않아요. 저는 작가뿐만 아니라 소설속의 주인공도 너무 우유부단하거나 감상적이면 싫더라구요. 예를 들면 로미오요. 로미오는 뭔가 뭔가...사람이 너무 유약하다고 해야하나.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어요. 셰익스피어는 좋은데 말입니다.

기억의집 2010-02-11 15: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그렇죠! 정말 흐느적흐느적 껍데기 맞죠! 더 세심하게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같은데 말이죠. 문동에서 나온 세계문집은 휴먼스테인만 사고 민음사나 창비 사려고요. 같은 가격이면 표지가 좀 더 단단한 게 읽을 만 한 거 같아요. 전 창비에서는 <가든파티> 읽었는데 정말 튼튼한 며느리 같았어요. 여기저기 읽다가 쳐 박아 두어도 멀쩡했다는 사실, 하핫.

저의 언니는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진다는 말이 많이 하는데, 저도 은근 반 동감해요. 꼭 누구나 세진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긍정적인 말로 하자면 자기주관이 확고해지는 거 같아요. 저도 나이 들수록 자기주관이 확고해진다는. 로미오, 걔가 아직 어려서 그럴거에요^^ 하핫!

akardo 2010-02-11 20:42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전후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의 본질을 알려면 전전에 쓴 그의 작품을 읽어봐야 한다더군요. 특히 이차대전 당시 상당히 전쟁을 바라고 옹호하는 소설을 쓴 전적도 있으니......
그나저나 저 판탈레온 어쩌구는 특별봉사대란 말부터가 상당히 기분이 이상야리꾸리했는데 역시나 내용도 별로 기분이 안 좋네요. 흠. 원래 여러 작가들 단편 합쳐놓은 책은 잘 안 읽는데-한 작가 작품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집을 좋아해서요.- 창비 세계문집을 좋게 보셨다니 관심이 생깁니다.

기억의집 2010-02-12 08:46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가 전쟁을 바라는 소설을 썼군요. 햐아~~ 그 작품 궁금하네요. 오사무 작품은 다시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 작품만은 읽어보고 싶어요.
판탈레온은 제목처럼 야하거나 이러지는 않아요. 영화는 어떨까, 한번 보고 싶더라구요. 헤르메스님 리뷰 읽어보니깐 영화도 나왔더라구요. 전 이 작품은 여자와 남자의 시선이 극렬하게 갈리는 작품일 거 같아요. 특히나 군대의 명령체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요사가 어떤 의미로 봉사대를 구체화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일 거 같아요. 근데 저는 아무래도 여자의 입장으로 읽게 되요. 여기 보면 몇 시간동안 몇명의 남자를 상대해야한다는 그런 글이 나오는데, 여명의 눈동자 생각나고 여명의 눈동자 다시 재조명을 받아야할 거 같아요.
글구 창비 세계문학 단편집 괜찮아요. 저 가든파티 너무 좋았어요. 사실 저는 고전을 읽어,라고 하지 않거든요.우리 애들한테도...(하핫, 그런데 전 우리애들한테 기본적으로 책 읽어,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읽던말던 신경 안 쓰는 무식한 엄마에요^^) 여러 나라의 낯선 작가들의 단편집을 읽을 수 있어서 괜찮은 거 같아요. ^^
 

2009년 12월 11일, 언제나 나의 구세주인 데이트친구 희망으로님을 꼬셔서 <깐깐한 독서본능>의 파란여우님의 강연회에 갔다왔다. 토요일 오후 5시, 아이들은 애아빠한테 부탁하고 간식은 물론 저녁셋팅까지 끝마치고 아주 가뿐한 맘과 발걸음으로 신촌으로 고고~ 신촌도 많이 변했더라. 애 키우냐고 어딜 싸돌아 다니지 못했더니만 신촌, 정말 오랜만에 와 봐도 청춘의 향연이 물씬 풍기는 장소더라는. 일찍 도착해서 커피 마시면서 희망으로님하고 사는 이야기 좀 나누다가 시간 돼서 강연장소로 향했다. 가면서 혹시 강연회에 많지 않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도 내심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파란여우님의 강연회 전에  최재천교수님이 주관하는 다윈강연회를 다녀온적이 있었는데, 에구에구 나 포험 딱 14명밖에 없었다. 어찌나 내가 더 미안하던지. 강의 내용은 좋았지만 저녁밥을 지어야하는 나는 5시무렵에 일어나야 했는데 발걸음이 정말 안 떨어지더라. 나마저 가면 10명안팎. 강연 끝마무리도 중요하지만 새끼들 밥이 더 중요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했던, 쓰디쓴 기억과 경험이 되살아나 주말에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게다가 날씨가 추워지던 때라 다윈 강연회처럼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했던 걱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기우. 강연회 장소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와 앉아 있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곳에 모였던 사람들의 화려한 스펙트럼이었다. 남녀 구분은 물론 연령대도 어림잡아 20~50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강연회를 그렇게 찾아 다니지 못했고 게다가 낮강연회만 신청해서 내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파란 여우님의 이번 강연회는 내가 경험했던 그 전 강연회장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 전 강연회들같은 경우 젊은 처자들이 주를 이루었지 나이 드신 분들이 아예 없었다. 그런데 파란여우님 강연회는 젊은 처자들도 많았지만 한켠에는 나 같은 중년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 날 그 장소에서 파란여우님의 인기를 한눈에 실감했다. 

알라딘 파워블러거의 인기 실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아마 기존의 문단 작가도 이 정도의 연령대의 사람들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여하튼 강연회 시간이 다가오고 파란여우님이 들어오셨다. 작지만 다부진 눈빛의 아우라(찌찌찍~~)를 가진 파란여우님,  

강연회는 두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이 날 강연회에 대한 이야기는 파란여우님도 페이퍼로 올리셨다. 그게 그러니깐  여기 ------> http://blog.aladin.co.kr/bluefox/3271653 눌러 읽으면 대강 그 날 파란여우님께서 독자들하고 나눈 이야기가 나온다. 이 페이퍼에서는 주로 활자테스트와 현장체험이 독서의 진정한 길이라고 쓰셨지만, 이 날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가슴에 품었던 주제는, 파란여우님께서 들여주던 독서 프로젝트의 마지막 주제  나만의 쟝르를 찾고 개척하라,라는 말이었다. 파란여우님은 많은 쟝르의 책을 읽었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쟝르로 귀착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전, 그래서 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난 그녀의 마지막 주제가 내 귀에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실제 그 강의를 들으면서 그 분이 문학을 대하는 진정성, 그리고 독서에 대한 회의와 갈구를 동시에 느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방점을 찾아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방점은 나에게도 무척이나 유용한 것이었는데,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왜 읽어야하는지 그리고 책이 주는 유용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갈구하였던 사람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용돌이는 단순히 책을 좋아한다는, 일차원적인 읽기의 즐거움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기는 소용돌이었다. 실제 나는 많은 책을 읽었지만, 내가 어떤 쟝르에 끌리는지 그리고 그 분야에 내 독서인생을 걸아야하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깐 이말은 내가 현재 자연과학책에 끌려 그 관련 책들을 읽고 있지만, 내가 내 독서인생을 이 분야에 걸어야할 마땅한 근거와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파란여우님의 마지막 주제야말로 내 독서 인생에서 결국에는 책에서 즐거움만이 아닌 뭔가를 얻어내고 추려내고 자르고 덧붙이고 해야만 하는 작업이구나. 쟝르를 찾는다는 것은 내가 나의 독서 인생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어쩜 나의 회의론을 끝낼 수 있는 방점이구나 싶었던 것이다. 정말 많은 책을 접하고 읽은 경험자의 우러나온 말이 아닐 수 없었다(파란여우님, 전 아마 평생 님의 이 말을 가지고 살 지도 몰라요!)

그 날 두시간의 성실하고  빈틈없는 강의는 만족스러웠다(이건 빈말이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강의 들었던 소위 명문대인 서강대 땡땡땡 철학과 교수와 연세대 문학평론가인 땡땡땡 교수의 형편없고 수준 낮은 정말 개뼈다귀 수준의 강의에 비하면 준비많이 해 오신 파란여우님의 강의 명문대 교수 수준 이상이셨어요^^). 나의 독서 위치를 360도 회전해서 바라볼수 있게 하였고 나의 독서 인생을 재정립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강의였다.  

끝나고 나오면서 파란여우님 아는 척 할까하다가 말았다. 강의실내에 친분이 있는 분이 계신 거 같아 다가가기가 뭐했고 희망으로님도 계셔서 희망님과 함께 건물을 나와 송년회겸 유부녀들의 오랜만의 주말 자유를 만끽하며 술 한잔 했다. 다 저물어가는 해에 마시는 술 한잔, 어찌나 달고 쭈우~~쭉 잘 넘어가던지. 9년을 시원하게 바이바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토요일 주말 저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덧: 그 날 저녁셋팅까지 다 하고 나와 홀가분하게 희망님하고 술한잔 마시고 나도 11경에 집에 들어갈거야 했더니 8시 30분경 집에서 애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압력밥솥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니 밥 차려 달라고. 아 ! 진짜. 무시하고 버틸려다가 애들 생각에 지하철에 올라탔다. 으씨, 정말 생태찌게 셋팅도 다 놓고 왔더니만. 10시경에 집에 도착해 애들 밥 차려 주고 바가지 좀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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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0-02-10 11:00   좋아요 0 | URL
나만의 장르를 갖는다.....전 그게 소설과 역사인것 같은데요, 아직은 허전해요. 왜 읽는지, 읽고 나면 아직도 허한 기분이 들어요.

기억의집 2010-02-10 11:3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허한 기분이었는데 제가 자연과학쪽으로 턴했잖아요.
근데 뭐랄까, 제가 그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에 파란여우님 강의 들으면서 되든 안되든 내 인생의 독서 쟝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동안 안개에 갇혀 있었는데 강의 들으면서 쏴악 걷쳤지요.
만두님은 김연수 작품이 있잖아요^^

라로 2010-02-10 11:08   좋아요 0 | URL
흐흐흑 저도 저 강연회 가려고 몇번이나 신청을 했다 지웠다 했던지,,,,,ㅠㅠ
저는 저 만의 장르를 찾으려면 더 많은 독서를 해야 할듯,,,아직 햇병아리라,,,;;;;
그나저나 아니 기억의집님,,,생태찌게 셋팅을 했어도 밥못한다고 전화하심 자장면이나 피자라도 시켜 먹으리고 하시지!!!ㅎㅎㅎㅎ

기억의집 2010-02-10 11:39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전 혹 나비님이 오실까 찾았는데..안 오셨더라구요^^
저도 아직 햇병아리에요^^ 언제쯤 전문가 소리 들을 수 있을려나 싶어요.

그게요..나비님,저의 집 양반은 피자나 짜장면 김밥이 안 통해요. 온리 한식.특히나 저녁은 밥하고 찌개를 먹어야, 밥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어찌보면 무지 편하고(된장찌개만 해도 맛있게 먹거든요) 어찌보면 융통성은 개 갖다 주었나 보더라구요. 심지어 제가 심하게 체해서 드러누웠는데도 밥 달라고 하더라니깐요. 참..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희망으로 2010-02-10 22:36   좋아요 0 | URL
강연을 하셨던 파란여우님도 듣는 이들도 모두 진지했던 시간이 기억나네요. 한참 지났어도 이렇게 글을 올린 기억의집님, 짝짝짝 박수!!^^ 전 그날 두레박질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비해 반도 못 읽고 있으니 참.../서재의 달인 엠블럼이 떡 하니 보이네요. 축하합니다.

기억의집 2010-02-11 15:59   좋아요 0 | URL
희망님, 딸 그 책 좋아하던가요. 전화 해야지 하면서 요즘 뭐가 그리 바쁜지. 지금도 아들 데리고 깁스 풀고 왔어요. 아, 정말 짜증나요. 내 진짜 아들놈 때문에. 이동네엔 왜 이렇게 정형외과도 없어요. 보통 기다리고 처치하고 뭐 하다보면 1시간 30분이에요. 오늘도 왕 짜증나서... 아침에 애들이 학교 갔다 일찍 들이닥쳐 밥 해주고 청소 후딱 해놓고 미리 가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그래도 사람이 많아 좀 전에 왔어요. 깁스 풀었는데도 아파다고 징징대서 더 열받고 있어요. 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네도 갔다와야하는데... 오늘은 안 갈까봐요. 저녁밥이나 해야지.// 근데 제가 왜 서재의 달인인지 모르겠어요, 사실 제 서재에는 사람도 별로 안 찾아 오거든요. 요즘엔 좀 오긴 해도. //그 날 다시 한번 미안해요. 그건 그렇고 3월까지 어떻게 견뎌야할지 모르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