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행복한 왕자님 왕에 갔다가 산을 타면 종아리가 얇아진다는 말(종아리가 이뻐 말라깽이진 한 번 입어보고 시퍼요!)에 솔깃해서오후에 학원 갔다 온 딸을 꼬셔 동네 뒷산을 타고 왔어요. 덤으로 약수터에 들려 약숫물도 떠오고. 딸애와 여기저기 좀 돌아다니고 슈퍼도 들려 반찬 좀 사 가지고 오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택배가 와 있다고 부릅니다. 올거라고는 아침에 주문한 가다라의 돼지 밖에 없어 책 인줄 알았어요. 등에는 무거운 약수물에 한 손에는 반찬봉투를 들었지만, 왠지 책을 받자마자 포장을 뜯어봐야 직정이 풀리는지라. 딸애한테 택배상자 좀 뜯어보라고 주었더니,

지 엄마 성질 닮아 박박 뜯어 본 울 딸, 우와, 책 두껍다! 엄마가 이 책 다 읽을꺼야! 라며 놀라더니. 근데 가다라의...... 뭐야? 라고 물어보는 거에요. 뭐긴 돼지라고 써 있잖아! 하고는 책표지를 흘끔 보는데, 돼의 ㄷ이 뒤집어 있어 아이가 읽지를 못 하더라구요. 돼지의 ㄷ를 왜 뒤집어 놓은 것인지?????? 

 

그래서 울 딸이 집에 오자마자 거울을 가지고 글자를 바로 볼 수 있게 한다고 저러고 있었어요. 어휴, 저거 때문에 지네 오빠랑 서로 하겠다고 해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지요. 저의 집은 진짜 조용한 날이 거의 없다는. 빨랑빨랑 커서 제발 큰 놈이라도 중학생이 되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다 큰 놈이 거울 갖고 지도 해 보겠다고 동생이랑 툭탁툭탁 싸우고 있고. 아주 괴로워 죽겠어요,,,, 흑흑. 

딸애가 저러고 노는 게 재밌어 사진 찍으면서 책의 요모조모 찍어 봤어요. 책 엄청 두껍습니다. 주문할 때 책값이 비싸다고 우라질!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막상 책을 받아보니 이 두께에 17,800원이면 뭐. 출판사에서 나름 책값에 많이 신경을 쓴 거 같더라구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책 두권 부담입니다. 차라리 가격이 좀 쎄더라도 한권이 낫지 분권은 사고 싶은 생각 싸~악 달아나게 하죠. 그래도 북스피어에서 애써서 출간했는데 어떻게 그냥 무시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파값 아껴서 샀어요. 저희 집은 한 한달정도 파 못 사 먹고 있는 거 같아요. 파값이 2500원이라 게 말이 되요, 말이 되냐고요? 차라리 파를 사고 책을 사지 말라고요?! 


놀랍지 않습니까? 책이 지 혼자 설 수 있을 정도의 무게감이라니. 헤비급입니다.  

여하튼 책 잘 만들었고 잘 빠졌습니다. 실물이 휠씬 이쁘고 책값도 착합니다. 이걸 착하다고 해야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출판사마다 종이수급 문제로 골머리라고 하더라구요. 지난 번에 만난 지인도 어린이그림책도 종이 수급 문제 때문에 신간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북스피어도 홈피에도 그런 말이 오가고 있네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이렇게 책을 내 준것만해도 고맙죠. 뭐.  

사실 저는 이 시간에 인터넷 안 하는데, 북스피어 홈피 갔다 그 동안 저 책 나온 노고를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줄줄 나와...(이게 왠 쇼랍니까!) 그렇게 올려봅니다. 애아빠 들어와 밥 달라고 하네요. 밥 차리러 이제 나가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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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0-05-06 11:10   좋아요 0 | URL
리뷰 기다려요^^

기억의집 2010-05-06 19:35   좋아요 0 | URL
넹~~~리뷰, 북스피어를 위해서라도 써야겠지요^^ 잘 써야할텐데..자신 없어요.

꽃핑키 2010-05-14 20:51   좋아요 0 | URL
큭!! ㅋ 거울놀이! ㅋㅋ 하하 ㅋㅋ 너무 귀여워용 *_*
 

"성희롱 피해자가 왜 얼굴 내놓느냐고요?"

[인터뷰] 삼성전기 직원 이은의 씨


고생은 사람을 소모시킬까, 아니면 단련시킬까. 어떤 이들은 너무 쉽게 답을 고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게다. 그러나 따뜻한 아랫목에 뉘었던 몸을 찬 공기 속으로 일으킨 뒤에도 이런 답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진짜 고생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게 현실이다.

비록 옳은 방향이라도, 혹독한 시련이 뻔히 예상되는 길을 권하기 힘든 것은 그래서다. 끝내 목적지에 도착한들, 그 사이에 사람이 다 망가져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다. 갈림길에서 돌아서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붙잡아 세울 수 없었던 것 역시 이런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서성이는 어깨를 잡은 손에 조금은 더 힘을 줄 수 있게 됐다. 긴 시련을 거치고 나서, "옛날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즐겁다"고 말하는 이를 소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못 만났을 좋은 사람들 때문에 이젠 괜찮다"라고 말한다.

바로 삼성전기 직원 이은의 씨다. 이 씨는 2003년 6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서 피해 사실을 알린 결과는, 집단 따돌림과 인사 불이익이었다. 우울증과 실어증을 앓았고, 얼굴에 붕대를 감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화농성 여드름이 생겼다. 심각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그는 갈림길에 섰다. 옆으로 꺾어진 길은 '퇴사'다. 하지만 그는 '직진'을 택했다. 회사와 싸우기로 한 것이다. 그게 옳은 방향이니까. 먼저 찾아간 곳은 국가인권위원회였다. 그리고 언론을 만났다. 이어 삼성전기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직진', 그 결과는 '정면충돌'. 그래서 그는 다쳤을까. 천만에. 먼지를 털고 일어선 그는 환하게 웃고 있다. 그가 이기고, 삼성이 졌다. 그가 전한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확인한 인권위는 회사 측에 성희롱 방지 대책을 권고했다. 삼성전기는 권고를 받아들이는 대신, 인권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인권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 사이 <프레시안>과 <한겨레>에 이 씨의 사연이 소개됐고, 오랫동안 외톨이였던 이 씨의 친구가 되겠다는 이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 15일, 이 씨는 삼성전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비록 1심 판결이고 삼성전기 측의 항소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씨의 피해 사실과 회사 측의 배상 책임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환한 미소가 얼굴 가득 일렁이는 그를 지난 26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프레시안: 15일 재판 결과에 대해 회사 측 반응은 어떤가.

이은의: 친한 동료들에게서 축하 메시지가 왔다. 하지만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이 재판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 회사 경영진의 공식적인 입장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내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후배 사원이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런 내용이다. "대리님, 우리 차장님이 지난번 일로 자꾸 나한테 대리님이랑 엮이지 말래요." 회사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인 셈이다.

나는 내 메일과 휴대전화 통화 내용 역시 회사가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증거가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팩트(사실)'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왜 내 메일과 휴대전화가 감시당한다고 믿게 됐을까. 처음부터 이렇게 믿었던 것은 아닌데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품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게 회사였다.

프레시안: 메일과 휴대전화가 감시당한다는 생각을 품게 된 근거가 궁금하다.

이은의: 요즘 같은 때, 그러니까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가 되면 유독 휴대전화가 이상해진다. 전화 통화나 문자 전송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그리고 메일 내용을 회사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내 불안감이 괜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회사가 보여준 모습을 떠올리면, 나는 회사를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같은 때는 회사 메일을 쓰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다른 것을 들고 다닌다.

"故 박지연 씨, 만나서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프레시안: 성희롱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린 게 2005년이니까, 약 5년 동안 싸움을 벌인 셈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기륭전자와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힘든 시간을 거치면서, 예전에는 관심 갖지 않았던 이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고 했다.

이은의: 내 블로그에는 "1차 레이싱이 얼추 막을 내렸다"라고 적었다. 곧 새로운 막이 열릴 게다. 나는 원래 자신감 넘치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많이 위축돼 있었다. 싸움이 일단락된 지금, 나는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다시 밝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잃어버렸다 되찾은 자신감 외에, 새로 얻은 것도 있다. 소송 때문에 법원을 드나들면서, 법원 문 앞에서 시위를 하던 용산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게 됐다. 나와 떨어진 곳에 있는 분들이지만, 그 분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 것, 함부로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은 내게 소중한 자산이다.

후회스러운 점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故) 박지연 씨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 분이 병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꼭 안아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늦어버렸다. 승소 소식을 박 씨에게 전해줬다면, 조금이나마 힘이 됐을 텐데….

"'동병상련'은 싫다"…"피해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겠다"

프레시안: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사실이 알려진 뒤, 회사 안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격려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은의: 많은 분들이 격려 말씀을 해주시고, 도와주셨다. 그 가운데는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고, 회사의 비리나 불합리한 결정에 맞서다 불이익을 겪은 분도 있다.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도 곁들이고 싶다. 회사와 싸우는 분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너무 초췌해보여서였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 오히려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는데, 그렇게 어둡고 초라해진다면 슬픈 일 아닌가. 그게 내 미래라면, 내가 계속 싸워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겠나. 또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잘못에 맞서라고 권할 수 있겠나.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동병상련' 때문에 사람을 만나지는 않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잘못에 맞서 싸우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점을 입증하고 싶었다. 피해자가 싸움에 이기고, 결국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 운동하는 분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사'나 '투사'가 되길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한 진보 성향 주간지가 삼성에 노조가 필요하다는 기사에서 내 사진을 실었는데, 불만이 있다. 내가 너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나. 가해자는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웃고 있는데, 피해자가 고개 숙이고 우울해해서야 되겠나. 말도 안 된다. 가해자가 두려워하고, 피해자가 당당해야 한다. 잘못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오히려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말인데, <프레시안>에 실리는 사진은 좀 밝았으면 좋겠다.

"나는 싸웠기 때문에, 안전하다"

프레시안: 어떤 이들은 승소 판결에 대해서도 불안해한다. 상대가 삼성인 탓이다.

이은의: 우리 가족이 그렇다. 어머니는 재판에서 진 삼성이 어떻게든 나를 해코지 하지 않을까하고 불안해한다. 아마 대기업의 음모를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신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싸웠기 때문에, 안전하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싸웠기 때문에 말이다. 회사 측이 나를 부당하게 보복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또 소송을 치러야 한다. 비판적인 언론 보도 역시 나올 게다. 그게 지난 세월을 통해 입증됐다. 그걸 뻔히 아는데 회사가 왜 무리수를 두겠나.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나처럼 싸우라고 권하는 한 이유다. 힘 있는 자들은 잘못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 잘못을 외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함부로 대한다. 이번 일을 겪으며, 이런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프레시안: 삼성 안팎에서 비슷한 피해를 겪은 이들에게 할 말이 많을 듯하다.

이은의: 실제로 그런 분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 그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흔히들 "한국이 그렇지 뭐"라고 냉소한다. 잘못을 지적해 봤자 오히려 손해만 본다는 게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 분들이 있기에 나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분들을 만나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 역시 옛날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경험.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싸움에 이기고 지고를 떠나 이런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물론, 싸움에는 물질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비용이 든다. 그러나 그 비용을 너무 크게 예상할 필요는 없다. 일 년에 1000~2000만 원쯤 정도 각오해야 한다. 적은 비용이 아니지만, 직장인이라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금액도 아니다. 직장인 입장에선 '해고' 역시 두려운 일이지만, 회사 역시 해고가 쉽지는 않다. 특히 소송 상대방이라면 더욱 그렇다.

"'회사에 남아서 권리를 위해 싸운 사례'가 절실하다"

프레시안: 회사의 잘못에 대해 혼자 힘으로 싸워온 셈인데,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이은의: 우선 바로잡고 싶은 게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과 손잡고 걸어온 시간이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있으나마나 한 노조라면, 굳이 있어야하나 싶다.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은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남성 중심적인 노조 문화에선 노조가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들기도 한다.

물론, 노조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예컨대 소송비용 등을 노조가 지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노조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나처럼 싸운 사람이 회사 안에 셋만 있다면, 어지간한 노조보다 훨씬 낫지 않겠는가. 지금도 회사에서 피해를 입은 분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들에게 나는 '1인 노조'다. 내 경험에서 그들이 용기를 얻고, 도움을 구한다. 삼성 계열사마다 '1인 노조'가 있다면, 삼성도 많이 바뀔 게다. '삼성에는 노조가 없으니까'라면서 움츠러드느니, 우선 작은 잘못이라도 싸워서 고치는 게 중요하다. '회사를 떠나지 않고 싸워서, 권리를 실현한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을 둘러싼 해프닝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회사가 이 책에 대해 내부 전산망에서 공식적인 해명을 했다. 김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 담긴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해명에 달린 댓글이 묘했다. 회사 입장을 무조건 지지하던 여느 때와 달리,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나"하는 반응이 제법 있었다. 대략 30퍼센트 정도였다. 특이한 것은, 누군가 한 명이 이런 댓글을 달면 동조하는 댓글이 잇따른다는 점이다. 다들 눈치를 보면서 대신 먼저 나서주는 사람을 기다렸던 게다. 맨 처음 이런 댓글을 단 사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한 사람의 힘이 보잘 것 없는 듯해도, 의외로 큰 변화를 낳을 수 있다.

"삼성, 옛 애인의 찌질한 모습 본 느낌이다"

프레시안: 직급이 계속 대리다. 회사 인사 정책이 답답해 보인다.

이은의: 8년째 대리다. 성희롱 사실을 알린 뒤부터 인사고과는 늘 'C-'였다. 내가 속한 부서(총무보안그룹 사회봉사단)가 큰 성과를 거뒀지만, 변한 건 없다. 진급이 안 돼서 안타깝다기보다, 부당한 조치가 바로잡히지 않는 게 답답하다. 다행히 나와 친한 이들은 다들 무사히 진급 했다. 나와 어울린다는 이유로, 진급에서 불이익을 겪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회사에 대해서는, 이런 느낌이다. 헤어진 애인의 '찌질한' 모습을 본 느낌이랄까. 한때 나는 삼성 직원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동료들과 뜨겁게 우정을 나눴고, 맡은 일에 열정을 쏟았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했던 회사가, 알고보니 이렇게 찌질한 곳이었다니…. 솔직히 참담하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회사가 미안하다고만 했어도, 아마 좀 달랐을 것 같다. 그러나 회사는 거짓말로만 일관했다. 성희롱, 왕따 모두에 대해 딱 잡아떼기만 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나를 비난했다. 내가 진급이나 부서 변경 등을 노리고 성희롱 당했다고 주장했다는 게다.

"'증거 있나' 윽박지르기 전에, 자문하라. '왜 사람들은 삼성을 못 믿을까?'"

이런 비난 앞에서 사실 관계를 놓고 다투다보면, 한없이 비참해졌다. 삼성 경영진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삼성 바깥에서 삼성을 어떻게 보는지 한번 돌아보라고 말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에 대해서도 삼성 경영진은 "사실이 아니다. 증거가 없지 않느냐"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럼 끝난 건가.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삼성이 비리를 부인했고 특검 수사 역시 끝났지만, 사람들은 김용철 변호사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심지어 김 변호사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도 그렇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삼성이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걸핏하면 "증거 있나"라고 따지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왜 삼성을 믿지 않을까'   

8년 동안 아.주.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개인의 취향상, 나는 자신의 감상이 적힌 감정적인 글은 낯뜨거워하는 편이라 읽지도 않고 그런 스타일로 쓰지도 않지만,  

이은의 대리에게 참으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회사를 그만 두지 않고 버텨 준 당신에게 고맙다. 버텨준 8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당신에게 얼마나 지옥보다 더한 외롭고 어두운 시간 시간이었는지, 당신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을 뒤로 응원한다고 해도 상사 눈치를 보며, 다가오는 동료가 없이 언제나 혼자였을 당신. 묵묵히 혼자서 점심을 먹었을 것이고 아무도 회식자리를 불러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쩜 당신의 상사는 당신을 없는 사람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싸우는 동안 당신의 버팀목이 되어 준 부모님께 죄스러웠을 것 같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눈초리 또한 당신을 지치게 했을 것 같다. 무엇을 위해 내가 이렇게 싸워야하는가? 를 수 없이 되내었을 것 같고 지금 그만두면 모든 것이 편해질 수 있다라는 유혹의 마음도 생겼을 것 같다.

이 모든 외로움, 굴욕과 무시을 당하면서도 굳건히 8년을 버텨 준 당신의 자존심이 고맙고,  힘든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걸어 여기까지 온 당신의 용기 있는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다. 

74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할 베리는 수상소감에서 “지금 제가 수상대에 서 있는 이 순간은 모든 흑인 여성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게 주어진 사명은 이전에 흑인 여성이 가지 못했던 길을 더욱 멀리 가는 배우가 되는 것입니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가보지 못한 못한 길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나 혹독한 경험을 치루며서 만들어 낸 저 선구자의 길이 결코 막혀지는 일 없이 당신을 끝까지 응원하고 싶다. 어쩜 저 길은 내 딸이, 우리 모두의 딸들이 걸어갈 수 있는 길 아니겠는가.  

정말 지금까지 버텨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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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5-04 08:46   좋아요 0 | URL
아 아침부터 울컥하네요. 저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도 고통스러웠을까요. 기억의집님이 쓰신것처럼 상사들과 동료들과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저였다면 하루빨리 퇴사했을거에요. 맞서 싸울 자신이 없어서 말이죠.

특히 인상적인건, 삼성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이네요. 눈치 보고 있다가 누군가 한명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고 달면 하나둘씩 나와서 동조를 한다는 부분이요.

그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정작 본인이 누군가가 되기는 겁나는 현실이잖아요.

잘 읽었습니다.

2010-05-04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젊은 시절부터 몸에 밴 키취성향이 강해서인지 클래식을 듣기는 해도  팝음악만큼 강렬하지 않다. 그래서 운동을 하거나 밖에 외출할 때도 고상하고 점잖은 클래식대신 팝음악을 즐겨 듣는데, 요즘 내 MP3의 전곡을 다 차지한 아티스트가 레이디 가가다. 이 얼마나 놀라운 발전인가.  작년만해도 가가 하는 짓이 하도 미친년 같아서 상대도 하지 않았는데..음마!. 2월에 신곡 Bad romance을 듣고 나서 그녀의 모든 것에 반해 버렸다. 그녀의 Bad romance와 telephon뮤비, 곡마다 목소리가 다른 그녀의 노래, 허튼 짓, 행위 예술, 패션, 요상한  짓거리, 이 모든것을 쇼나 퍼포먼스로 이해하고 있다는. 이 앨범은 벅스에서 전곡을 다 다운받아 들어봤는데,  즐겨 듣는 음악으로는

Bad Romance,  

Telephone Featuring 비욘세  

Just Dance Featuring Colby O'Donis  

Paparazzi 

Poker Face 

Eh, Eh (Nothing Else I Can Say)
  

특히 Eh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무척이나  흥겨운 대박곡. 가가의 특징은 곡마다 목소리가 틀려 금방 질리지 않는다. 작곡도 잘해, 가창력 뛰어나, 퍼포먼스 뛰어나, 사람들에게 웃음줘.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가수이다. 요즘은 이뻐 보이기까정. 개인적으로 난 천명의 성경공부하는 착한 여학생보다 한명의 가가가 세상을 변화 시킨다고 생각한다.  이제 다음 세대 아이들은 가가가 만들어 내는 세계에 열광하고 환호할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가가교 하나 만들까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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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0-05-02 12:54   좋아요 0 | URL
ㅎㅎ 가가는 천부적 종합 예술가 인것 같아요. 당분간 팝시장은 가가의 세상!

기억의집 2010-05-03 10:02   좋아요 0 | URL
스컷님, 주말 잘 보냈어요? 어젠 날씨가 그렇게 좋더니 오늘은 다시 도루묵이네요. 날씨, 화창하기를 바랬는데, 날씨가 좋으면 어디 좀 나가 돌아다닐려고 했는데, 덕분에 짱 집에 박혀있게 됐네요.
가가, 아마 팝시장뿐만 아니라 전세계가수들이 그녀를 모방할 거 같아요^^
 

기디언 : 최초로 기록된 전쟁은 BC 2700년이었네. 아마도 그 전에 있었겠지. 하지만 그 땐 아직 표기법이 발명되지 않았네(You know, the first reported war was....BC2700 Probably earlier wars,  but.....Writing hadn't been invented yet) 

하치: 거의 5000년 동안 서로를 죽인 거였군요(Almost 5000years of killing each other) 

기디언 : 인류가 지금까지 잘해온 일 한가지지(One thing human beings have been consistently good at).    미드<크리미널 마인드> 중에서 

이제 캐서린 비글로우를 언급할 때마다 최초의 아카데미 여성감독이라는 수식어 딱지가 붙을 게 틀림없다. 그리고 여자가 아카데미 감독상을 첫 수상했다는 기록은 캐여제의 단순한 개인의 기록이 아닌 영화사의 미래에 큰 변혁을 예고한 것이나 다름 없다. 게다가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를 제치고 감독상과 작품상까지 거머쥐었으니, 그는 아마도 몇 년동안 헐리우드 자본의 비열한 틈바구니 속에서 자기가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맘껏 제작할 수 있는 자유쯤은 누릴 수 있을 것이다.   

2010년 아카데미가 선정한 최고의 작품인 허트 로커는 여성감독이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그 어떤 전쟁 영화보다도 잘 만들어졌다는 리뷰어들의 평에 동의한다. 오히려 그는 웬만한 남성감독들보다 더 남성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서 그런지 그의 블루스틸이나 웨잇 오브 워터를 제외한 그의 작품이력을 볼 때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을 만한 스케일의 선 굵은 연출이었다. 아마 그의 이러한 작품 경향은 남성감독들과 겨루고 싶어했던 오기와 배포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뭐 어째든 허트 로커는 캐여제가 아니었다면, 다른 여성감독아니 웬만한 남성 감독도 집적될 만한 영화는 아니었다는 점에서 캐여제의 놀라운 연출 솜씨에 의의를 달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고 아쉬웠던 것은 그와 각본가인 마크 볼의 전쟁을 보는 시각이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미국과 이라크 전쟁을 다룬 아니 좀 더 한 폭발물 제거반의 팀장 한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 이 영화에 제 3세계의 시선은 유효한 것인지, 아니면 가당찮은 것인지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보았다.  

 미국이 왜 이라크를 침공했는지, 이라크인들이 왜 미군을 죽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사제폭발물을 설치하는지에 대한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영화는 잔가지는 모두 쳐 내고 몸통만 보여준다. 그게 그의 연출력의 큰 장점이지만, 난 그에게 묻고 싶다. 과연 전쟁이 중독이 될 수 있는 것인지. 폭발물 제거반EOD의 팀장인 제임스(제레미 레너)가 중독된 것이 전쟁인지 아니면 폭발물의 선을 끊는 순간 생사의 기로에서 자신의 생존을 확인했을 때 솟구치는 희열(아드레날린)에 중독된 것인지를.    

전쟁의 명분이 무엇이든지 간에 수 천년 동안 인간은 전쟁을 해왔고 하고 있으며 할 것이다. 최초의 전쟁이 무슨 전쟁인지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과거의 영토확장이나 종교 전쟁은 의외로 수 십만명의 사망자를 남기지 않고 지금처럼 기술의 발달로 인한 폭격의 전쟁은 아니었을 것이며, 아.마.도 작은 전쟁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유럽의 세계 1차 대전이후, 전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로마의 휴일의 각본가인 달톤 트럼보는 그의 37년작  Johnny got his gun이란 작품에서 1차 세계대전은 여름축제처럼 시작되었다,라고 서문에 썼다. 그 축제가 수 많은 사람들의 손과 발이 잘리고 수 십만명의 생명을 앗아간 후에야 전쟁의 잠혹함을, 심각성을 알았다. 전쟁이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이 목검을 들고 상대방을 가짜로 찌르는 영토확장 놀이가 아니라는 것을.   

1차 세계대전 이후, 2차 세계대전발발 기간 동안 기술의 발달은 악을 익명화했다고 다이슨은 말한다. 폭격, 비행기를 타고 떨어뜨리는 폭탄은 수 많은 비무장한 일반인들을 죽였다. 집에서 뜨개질을 하는 사람, 책을 읽고 있는 사람, 쇼윈도우를 보던 사람, 아이와 함께 길을 걷던 사람, 동생과 장난치던 아이등등 자신이 지금 무슨 일을 당하는지 모른 체 비무장한 일반인들은 비오 듯 쏟아지는 폭탄에 맞아 순신간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그들을 죽인 조종사는 기술이 가져다 준 대량 살상 무기가  정확히 누구을 살해했는지도 모르는 체, 그 어떤 죄책감 없이 폭격했고 다시 부대로 돌아왔다. 그들에게 선택의 권한이란 있을 수 없으니깐.

아니 죄책감이라는 없다,는 말은 내가 문장을 위해 지어낸 말이다. 우리가 영화에서 본 이미지들, 폭격을 하고 돌아와 영웅 대접 받는 환한 미소로 답하는 남자주인공들의 이미지에서 빌려온 것일 뿐이다. 참전 용사들은 영화와 달리, 현실에서 커다란 고통을 받고 있었을 것이다.저 달톤 트럼프의 소설 속 등장인물인 조는 끝없이 울리는 전화벨 소리게 괴로워한다. 전쟁이 한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트라우마라는 이름하에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20세기 후반, 사회에 적응할 수 없는 베트남에서 돌아온  참전 용사들의 트라우마는 전쟁의 속성을 다시 들여다 볼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그리고 수천년의 역사 기록에서 찾아 볼 수 없었던, 아마 지구 역사상 권력자에 대항하여 처음으로 격렬한 반전운동이 시작되었다. 지구 곳곳에서. 민주주의 였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하지 말라. 권력자의 레일로 쭉 뻗었던 역사는 삐끗하게 나아가고 있었다.

수 천년동안 전쟁을 일으키고 수 많은 죄없는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와중에도 전쟁이 한 개인에게 큰 정신적 상처를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반 세기도 되지 않는다. 처음 세계대전이나 베트남 전쟁의 참정용사의 트라우마를 적나라게 드러난, 그 동안 쉬쉬하면 숨겨 온 전쟁의 트라우마를 까 발리기 시작하며 사람들의 획기적인 의식의 전환을 가져다 준 것은 영화였다. 지옥의 묵시록,디어헌터, 플래툰야곱의 사다리등    

이라크에 참전중인 군인들의 전쟁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를 잘 표현해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재밌는 놀이(이 영화를 보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거에요)를 하듯 군대로 복귀한 마지막 장면에서의 제임스의 미소는 몇 십년도 안되는, 베트남 전쟁에서 시발점이 된 모든 반전운동의 노력을 무력화했다. 전쟁은 중독이 될 수 없다. 그건 한 개인의 파멸이 아닌 다수의 익명의 사람들까지 파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잘 만든 영화이다, 라는 말에는 고개를 끄덕여도,  이 영화에 기꺼히 한표를 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카메론의 아바타에게 한표를 던지겠다. 두 영화 다 전형적인 헐리웃 스토리이긴 하지만 그리고 여전히 제국주의 시각은 남아있지만, 어둠의 속을 도려낸 것은 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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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0-05-03 11:32   좋아요 0 | URL
음 역시 비글로 전쟁이 뭔지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토요일에 아이언맨 2를 보다가 미국..이라는 나라 세계를 구하는 메시아로 착각하고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헐리우드 영화 제작자들의 일종의 그런 신념으로 뭉쳐진 종교집단 같다는 생각이... 슈퍼맨,아마겟돈을 보면 미국...못하는거 없이 만능 로봇 태권브이 에요. 투자자들은 일본 자금을 가져다 쓰고...

기억의집 2010-05-03 13:49   좋아요 0 | URL
영화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독립영화이긴 하지만 진짜 잘 만들어졌고 흠 잡을데 없어요. 스컷님, 이 영화 한번 꼭 보세요. 여자가 만들었다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남성적이에요. 근데 저는 저 위에서도 말했지만, 전쟁이라는 주제를 말할 때 제3세계인 나의 시선을 들이밀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봤아요. 싸움은 미국과 이라크니깐요. 사실 저는 중립의 시선을 두고 보기보다는 좀 더 피해국의 입장에서 봤는데.... 비글로와 각본가인 마크 볼의 전쟁은 무엇을 말하는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차라리 카메론의 아바타 주인공은 그들 부족에 편입이라도 되죠. 자신의 세계를 버리고 그 쪽 세계에 동화되는 것이잖아요. 전 카메론의 영화가 비록 오락영화이긴 하지만 진보적인 세계관을 열어 놓는다고 생각해요.
 

 

한 때 캐서린 비글로우의 작품이라면 다 찾아보던 시절이 있었다. 내가 처음 본 그녀의 작품은 Near Dark, 우리 나라 비디오로는 죽음의 키스라는 제목으로 출시된 뱀파이어 이야기인데, 작품은 기억나지 않지만  작품이 전체적으로 푸른 색조를 띤 영화였다. 그 후 블루 스틸도 그렇고 대체로 캐서린 비글로우하면 b급 영화 같은 느낌의 배경이 푸르스름한 색조였다는 인상이 남는다. 90년대만 해도 그의 활동은 활발해서 헐리우드에서 몇 안되는 굵은 선의 여성감독이었지만, 2천년대로 들어오면서 그의 활약은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 하긴 이천년대로 들어서면서 블록버스트 위주의 흥행 영화에만 중점을 둬서 그런지 캐서린 비글로우같은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았으리라. 그런 면에서 볼 때 비디오가게가 전성기를 누렸던 나의 20대는 얼마나 호강이었단 말인가. 미국의 b급 영화까지 비디오로 나왔던 시절이니 말이다.

그런 그가 이번에 허트 로커라는 영화를 가지고 나왔다. 이따 오후나 낼 오전에 가서 볼 예정인데, 이 영화에서 그가 바라보는 전쟁은 어떤 시각일까 궁금하다. 제임스 카메론과 같은 정복의 평화인지 아니면 좀 더 고뇌에 찬 전쟁인지를 말이다.  

이 영화 포스터 보면서 저 위에 영문으로 쓰여져 있는 A near perfect movie는 필경 그녀의 작품 Near dark를 염두해두고 쓴 문구일 것이다. 가만 보면 영어가 어려운 것은 영어의 한 단어, 한 문장에도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녀의 필모그라피를 모른다면 저 문장은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문구. 저걸 위트 섞인 카피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젠체한다고 해야할지. 참으로 난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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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4-27 13:18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영화 엄청 보고 싶어요! 지난주에 뭐 볼까 두개를 놓고 고민하다가 결국 [데저트 플라워]를 봤는데, 그 영화도 참 좋았어요. 이 영화 본 친구가 참 괜찮았다고 하던데, 기억의집님의 감상이 궁금해져요. 보시고 오면 감상 써주세요.

그나저나 언급하신 Near Dark 좀 검색해봐야 겠어요. 뱀파이어 영화라는데, 저는 왜 모르는건지. 죽음의 키스라..

기억의집 2010-04-27 17:58   좋아요 0 | URL
데저트 플라워도 실화라 흥미가 당겨요. 블라인드 사이드처럼 재밌겠죠!
오늘 나가서 보려고 했는데 비바람이 너무 세서 바꺝 구경 엄두도 못 내고 있어요. 울 아들은 학원 가기 싫다고 징징대면서 갔는데...^^

니어 다크, 정말 유명한 영화였어요. 비글로우 영화가 감상적이진 않아서 어떨지. 선이 굵다고 해야하나, 지금 유행하는 이클립스나 왜 지난 번에 언급했던 뱀파이어 소설 있잖아요, 그런 감성하고는 좀 다르더라구요. 저 영화 나중 장면에 푸르른 배경화면이 나오는데 묵직한 슬픔이 배어나와요. 가슴 아펐던 기억이...^^

워너군 2010-04-27 14:03   좋아요 0 | URL
거의 걸작입니다(웃음). 원래부터 캐서린 여제님의 팬이었지만, 이 영화는 유달리 뭔가 일이 터질 듯한 긴장감이 팽팽해요. 연출은 건조하고, 딱히 신기한 카메라워크도 없이 뚝심있게 잘 밀고 나갑니다.

내용으로 보자면 근래 나온 전쟁/반전영화 중에서 가장 정치적 밸런스가 잘 맞는 영화가 아닐까 해요. 문제는 정치적 포지션이 아니라 전쟁에 휘말린 인간들의 인생이다, 랄까요. 왠지 냉소적인 듯 보이지만 슬프죠.. 적어도 이 영화는 그래요.

사운드가 꽤 중요해요. 디테일한 소리들이 영화를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어서요. 극장에서 보기로 하신 건 좋은 선택이신듯.

근데 제 옆에 앉은 여-여 커플은 이거뭐 전쟁영화가 이따구로 총질도 없고 액션도 없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나가더군요 ㅎ

제게는, '내 올해의 영화' 에 벌써 강력한 후보입니다. ㅎㅎ

기억의집 2010-04-27 18:04   좋아요 0 | URL
아, 워너군님 안녕하세요^^
맞아요. 정확한 표현이신 거 같아요.
건조한 표현, 캐여제 영화가 바로 그런 면이 여타의 다른 감독들과 다른 표현방법이었어요. 블루 스틸도 그렇고 폭풍속으로도 여성감독같은 느낌보다는
굵직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님 표현이 참 멋지네요. 연출은 건조하고 딱히 신기한 카메라 워크도 없이~~ 하는 대목이요,
이 대목 때문이라고 영화 낼은 꼭 보러 가야겠어요^^

루체오페르 2010-04-27 17:42   좋아요 0 | URL
올해 아카데미의 위너~ 볼만했습니다.^^

기억의집 2010-04-27 18:05   좋아요 0 | URL
보셨어요?
전 오늘 가려다가 낼 아침에 조조로 가서 보려고요.
벌써부터 기대되요.
아바타를 제친 영화라서 더 그렇구요. 카메론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싶네요^^

scott 2010-04-28 09:48   좋아요 0 | URL
카메론이 표정관리 하는냐고 무척 신경 썼데요. 상을 받는 의미가 대단히 커서 (투자자들의 베팅) 무척! 반드시 ! 받고 싶어다네요. 나탈리 포드만이 나온 '브라더스'보다 훨~ 재밌고 전쟁 영화 답다고 하더군요. 음 그럼 저도 이번 주말에^^

기억의집 2010-04-28 14:35   좋아요 0 | URL
스컷님, 이 영화 아침에 조조로 보고 왔어요. 저한테 공짜표가 있어서(지난 번에 카드하나 만들었더니 언제든지 볼 수 있는 공짜표 주더라구요^^) 보고 왔지요. 이런 영화를 여자가 만들었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아요. 상당히 카메라워크가 거칠고 다큐멘타리 보는 느낌이었어요. 마지막에 그가 끝내 자신의 죽음을 내 놓아야 살 수 없는 대목에서 씁쓸했어요. 갑자기 이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전쟁은 어쩜 제3세계의 시선은 필요치 않는 것일지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scott 2010-04-28 21:08   좋아요 0 | URL
전쟁영화는 보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요.자꾸 떠올라서...다큐멘타리 같이 화면이 거칠었다면 느낌이 생생할것 같아요.

기억의집 2010-04-29 16:02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저는 전쟁영화 안 보는데 이 영화는 캐서린 비글로우가 감독했다고 해서 보고 왔어요. 이 영화 완전 심리전이었어요. 영화 끝날 때까지도 긴장의 끈을 절대로 놓을 수가 없더라구요. 영화는 진짜 재미를 보장할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