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앙님방에서 읽은 음악리뷰, 빌 에반스의 <일요일에는 방가드 빌리지에서>중 Alice in wonderland
두말할 것도 없다. 완벽한 연주다. 재즈 뮤지션 마일즈 데이빗은 1959년 악보없이 멤버들의 즉흥연주만으로 연주한 <Kind of blue>라는 재즈 음반을 내는데, 그 앨범은 마일즈 데이빗 최고 앨범일뿐만 아니라 재즈 역사상 최고의 음반으로 평가받고 있다.
재즈 역사상 최고의 앨범이라고 평가받는 이유는 그 때까지만해도 화성중심이었던 재즈에서 음계를 사용하여 음을 확장한 결정적인 역활을 했다는 것과 연주의 실험적인 즉흥성, 그 말은 무대위에서 즉흥적으로 연주자들의 완벽한 음 플레이가 뒷받침되어 우리가 거부감 없이 들을 수 있은 음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위대한 명반이라고 불리우는 그 앨범에서 빌 에반스의 피아노음은 마일즈 데이빗의 음의 즉흥성이라는 기획과 의도를 정확하게 표현했다.
그 이후 인종적인 문제등 여러 문제가 얽혀 빌 에반스 마일즈 데이빗과 헤어져 베이스트 Scot LaFaro와 드러머 Paul Motian과 트리오을 결성해 1961년 <일요일에는 방가드빌리지>에서라는 실황앨범을 낸다. 이 앨범은 라이브 그대로 녹음되어 있어, 사람들의 수군거림, 찻잔 부딪히는 소리가 은근 음악과 어울려 매력적으로 정겹게 들린다. 더군다나 베이시스트 스컷의 베이스는 단조로운 베이스 음(사실 베이스가 낼 수 있는 음이라는 게 끽해야 둥둥둥 밖에 없지 않는가!)으로 베이스음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한정된 음이외의 플레이를 한다.
많은 재즈뮤지션들이 그렇듯이 빌 에반스도 헤로인과 코카인에서 빠져나오지 못했고 모든 약물중독자들이 그렇듯이 약물중독으로 그는 51세에 생을 마감했다. 평생동안 그는 약물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이런 연주가 나올 수 있다니. 일요일에는 방가드 빌리지에 가 그들의 연주를 듣고 싶을 정도.
1년 365일 오후 시간 대부분은 엄마와 함께 보낸다.
그 말은 엄마에게 특별히 외출할 일이 있는 날이란 나에게 내집에서 오후를 느긋하게 보낼 수 있다는 말. 언젠가 젊은 시절에 누군가로부터 나이들면 시댁뿐만 아니라 친정도 귀찮아진다는 말을 우스개 소리로 들었는데, 요즘 그 말이 우스개로 와 닿지 않는다. 정말, 후유!
딸인 내가 엄마에게 어떤 책임을 지거나 부양할 의무는 없지만, 자.식.으로서 늙어가는 엄마의 모습을 연민의 눈으로 바라보다 보니 어떨 땐 가고 싶지 않아도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친정에 가 한참동안 이 이야기 저 이야기 하면서 엄마의 말벗이 되어 준다. 내가 안 가면 하루종일 심심하게 TV나 보고 집안을 이리저리 서성거리며 입안이 말라버릴 엄마를 생각하면 맘이 편치 않아 붕뜬 오후를 보내더라도 오후엔 언제나 친정살이.
모녀간의 대화란게 그렇게 넓지도 깊지도 않아 TV 드라마 보면서 그 날 인터넷에서 뜬 기사의 이슈(정치이야기는 절대 네버에버 하지 않는다)나 요즘에는 한창 뜨고 있는 드라마속의 이야기정도. 며칠 전에는 친정모가 열을 올리며 시크릿 가든의 현빈의 비싼 추리닝에 대해 이야기하더만.
첨엔 현빈의 추리닝 이야기할 때는 뭔이야긴가 싶었는데 지난 토요일 오후에 엄마랑 둘이 앉아서 현빈의 자체제작 비싼 추리닝이 나온다는 <시크릿 가든>을 보았다. 그 때 난 엄마가 이야기한 추리닝보다는 그가 자신의 방에서 읽고 있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라는 책에 관심이 갔고 그 책보다 더 관심이 갔던 것은 그가 그 책을 읽고 있던 유리방.
그의 방은 한 면은 통유리로 되어 있어(사면이 유리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책 읽은 뒤 편의 벽면은 완전 통유리) 겨울 풍경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는데, 이건 완전히 내가 꿈꾸는, 로망의 방이잖아, 저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사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안에서 밖을 볼 수 있는 곳, 아, 비록 현빈은 촬영이라서 일시적이긴 해도 저런 곳에서 단 몇 시간만이라도 있어서 좋겠다,라는 말만 속으로 되까렸다.
엄마한테 엄마, 나 저런 유리로 된 방에서 살고 싶어,라고 말할까하다가 엄마의 현실적인 성격상 얼어죽는다,라는 말을 들을까봐, 속으로 삼켰다.
사면이 유리로 한두면이 유리든간에 나는 밖을 내다 볼 수 있는 장소를 좋아한다. 아, 물론 그런 집 아니 그런 방에 드는 난방 비용이며 타인의 기웃거림을 방지하기 위해선 정원이 넓어야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돈이 많아야한다는 것도. 그래서 그런 집을 꿈꾸는 것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그저 로망의, 로망으로 남을 수 밖에 없다는 현실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꿈꾸던 로망을 드라마 장면에서 본 기분이란.
그래도 좋았다.
저런 곳이, 나랑 똑같이 생각하는 사람이 만든 집이 있다는 것에 말이다.
그 곳에서 빌 에반스 트리오의 Alice in wonderland를 들을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