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이 재출간되었는지 아니면 재고 방출인지 지금 알라딘에서만 팔고 있다. 예스하고 교보에도 가 봤더니 절판으로 뜨고 있으니깐.
뭐 어째든간에 오홋, 이게 왠 떡이냐 싶다. 덩실덩실 춤까지 추고 싶을 정도다.
시공사가 작년인지 재작년엔가도 전설의 SF작품 어슐러 르권의 <어둠의 왼손>을 재출간 해주더니, 이번에는 <유년기의 끝>을. 절판 된지 오래되서 이제 우리나라 출판시장에서 이 책은 못 보겠구나 싶었는데, 오랜 기다림 끝에 손에 넣을 수 있다는 생각에 손이 빨리 움직인다. 재빠른 손돌림으로 장바구니 집어 넣고 주문 버튼 확실하게 누르니 책이 도착할 시간만 기다리면 된다.
왠간해서는 당일배송 신청하지 않는 내가 오늘은 당일배송 신청을 다 하고.

예전에, 지금은 활동하지 않는 나귀님이 절판된 책도 10년만 기다리면 진짜 좋은책은 재출간 된다고 쓴 적이 있었는데, 요 몇 달 사이 그 문구을 완전 실감 중이다.
작년에 가오루 여사의 <마크스의 산, 고려원>이 거의 20년만에 손안의책에서 재출간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그 책은 이미 읽은 터라 가오루의 다른 미스터리, 고다형사 삼부작인 <조시, 석양에 빛나는 감>이나 <레이디 조커>나 출간되었으면 좋겠다,라고 간절히 바랬었는데, <마크스의 산>과 함께 <조시>가 10년 마지막해를 장식하며 20여년 만에 재출간 되었다.
당근 신간에 관심 없었던 나도 부랴부랴 구입해서 읽고 있는 중, 가오루의 미스터리는 본인 자신이 자신의 소설은 미스터리하고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언급했듯이, 트릭이나 반전과 같은 뒤틀림이 없다. 그의 소설은 우직하게 왜 살인자가 살인의 목적에 도달했는가에 대한 탐구 기록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런 탓에 그의 2000년 이후의 소설은 인간 본성에 역점을 두고 소설을 쓰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재밌는 미스터리 소설인 줄 알고 그의 소설들을 골랐다가 낭패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손안의 책 홈피 가면, 편집부 직원 한분이 가오루의 소설이라고 하면 괴로워, 괴로워를 연발했다는 기록도 볼 수 있으니깐 말이다. 과연 이런 묘사가 필요했을까? 구태여 이런 설명이 독자들에게 살인자를 이해하는데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하는 글이 없다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오히려 나는 그런 대목들, 예를 들어 노다 가쓰오의 공장에서 베어링에 대한 기술적인 묘사 부분을 읽었을 때 작가의 쓰잘데 없는 지식 자랑이라기 보다는 그 기술적인 공정을 설명하기 위해 무덤덤하게 애쓰는 작가의 진심이 읽혀졌다. 일본 소설가들에게 볼 수 없는 강한 묘사의 힘이 그의 소설 속에는 강직하게 그리고 옹골스럽게 그려지고 있으며 그러한 강직하면서도 무덤덤함이 그를 하드보일드의 여왕이라고 칭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