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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Running Man (Mass Market Paperback)
King, Stephen / Signet / 1999년 8월
14,380원 → 11,790원(18%할인) / 마일리지 59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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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으로 영어공부를 좀 하기로 했다. 한 육개월 걸릴 것 각오하고. HOOT도 육개월 걸렸는데 이것 아마 더 걸리지 않을까 싶은. 스티븐 킹의 바크만 시절의 작품 경향을 최근작으로 빗대서 말하라고 한다면 Under the dome이 아닐까. 바크만 시절은 이상하게 닫힌(전체주의) 세계에 대한 저항이 주류를 이룬다.
평행우주- 우리가 알고 싶은 우주에 대한 모든 것
미치오 가쿠 지음, 박병철 옮김 / 김영사 / 2006년 3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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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과학 저술가 셋을 들라하면 서슴없이 데이빗 보더니스, 사이먼 싱 그리고 미치오 카쿠라 말하겠다.
말하는 검
미야베 미유키 지음, 최고은 옮김 / 북스피어 / 2011년 12월
11,000원 → 9,900원(10%할인) / 마일리지 5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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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레에 실망해서 이 책도 실망하면 어쩌누? 싶었는데 싶었는데 술술 잘 읽힌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
존 스타인벡 지음, 안정효 옮김 / 김영사 / 2011년 11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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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벡을 좋아하는 작가라고 생각하진 않았는데 가만 보면 번역되어 나온 작품들 거진 다 가지고 있고 은근 슬쩍 다 읽은 작가라는 생각이 오늘 아침 청소하는데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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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12-29 1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랫만입니다.
올핸 몇번 만나지도 못하고 한해가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내년엔 좀 자주 뵙게되길 바라며,
한해 마무리 잘 하시구요,
희망찬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

기억의집 2011-12-29 09:05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감사해요.
그러게요. 좀 자주자주 뵈야하는데 게으르다 보니..
날씨가 추워요. 보일러를 틀어도 따스해지지가 않네요.
이런 날 감기 조심하시고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많은
행운이 있으시길.

다락방 2011-12-28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기억의집님.
저 페이퍼에 댓글 달고 싶었는데 댓글이 막혀있더라구요. [로 앤 오더] 안본지가 너무 오래되어 보고싶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었었어요. ㅜㅜ

그런데요 기억의집님. 원서를 읽으실때요 사전으로 단어 찾아가면서 읽으시는건가요? 아니면 모르는 단어는 패쓰하고 읽으시는 거에요?

기억의집 2011-12-29 09:08   좋아요 0 | URL
저도 요즘은 미드 보는 수가 차츰 줄어들어요. 예전같지 않더라고요. 참 그리고 로앤오더 올리비아하고 엘리엇 그만 두었어요. 이번 시즌부터. 안 보게 되더라구요. 예전엔 엘리엇 싫어했는데요.

상황에 따라 달라요. 글 읽은 짠밥이 있어서 대강 앞뒤 문장 보고 이해가 되요. 근데 안 되는 때가 있더라구요. 그러면 할 수 없이 찾아요. 요즘은 영어단어 찾기 참 편해서...전 종이사전 싫어하거든요. 스맛폰이나 아이패드 나와서 편하더라구요.


 

올해 유난히 소설이 안 읽혀 왠만한 집에 있는 소설들은 다 정리했다. 알라딘 헌책방에 팔 건 팔고 버릴 건 다 버렸다. 첨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이 나이에도 명품백보다 책을 더 좋은 사람이라 책을 내가 사는 동안 끝까지 고수한다는 방침이었는데, 어느 날 먼지만 쌓여 있는 책들을 보니, 우리집 책들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존재란 무릇 이곳 저곳 이사람 저사람한테 읽혀야하는 도리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내린 결론이 다시는 책을 모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작정했다.

 

그래도 예외는 있는 법, 스티븐 킹하고 미야베 미유키 소설만은 버리기 아까워 책장칸까지 마련해서  안방책장에 고히 모셔두었다. 그냥 그 두 작가는 놔두고 싶었다. 필력의 좋고 나쁨을 떠나서. 

 

두 양반 모두 작품이 질적 편차가 심해서 다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지만, 워낙 다작의 작가이고 몇 십년을 꾸준히 작품을 써 오는 사람들이기에 그 두사람에게는 존경심 비스무리한 감정이 생긴 것도 사실이고 무엇보다도,

 

내 인생에 한두 작가의 작품 성향정도는 빠삭할 정도는 아니지만 나름이 나 자신이 분석할 수 있는 그런 그런 작가들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 않는가하는, 욕심이 좀 남아있었다.  

 

 

뭐, 여하튼 요즘은 왠간해서는 소설은 사들이지 않는데, 킹옹과 미미여사의 신간이 나오면 즉시 구매하는 습관은 버려지지 않는다. 언제나 나는 그들의 신간에 레이저 빔.

 

미미여사의 저 작품은 나온지 몇 달 되었는데, 나오자 마자 사서 읽었다. 물론 요즘 나온 <고구레사진관>도.

R.P.G.는 <크로스 파이어>에 나왔던 치카코가 나온다길래 그녀의 활약을 기대하면서 읽었는데, 솔직히 활약 제로였다. 페이지수로도 몇 페이지 나오지 않았고. 2000년대 초반에 나온 작품의 한계, 그러니깐 여형사의 능력을 그 시대에 딱 맞게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치카코가 처한 남성위주의 경찰 관료주의 모습 그대로 드러냈고 그 한계 속에서 여형사는 옴짝달짝 못하는 모습, 여전하다. 좀 더 치카코의 캐릭터를 강하게 밀어부쳤으면 좋았을 것을. 어차피 작가의 상상력인데 좀 더 멋지고 그럴싸한 미래의 모습쯤으로 그려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든 작품이었다.

 

물론 지금도 여형사의 존재는 현실적으로 그렇게 크게 변하지 않았으리라, 짐작된다. 경찰이나 형사하면 우락부락한 남성이미지를 떠 올리지 강인해보이는 여성을 연상되지 않기 때문이다. 허나,현실세계가 그렇다고 쳐도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의 여형사의 이미지는 20세기 초반에 비해 많이 발전(?) 되었다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2000년대 들어서 여형사가 중심이 되어 드라마(콜드케이스나 로앤오더 시리즈)가 나오고, 특히나 이번 13시즌을 끝으로 로앤오더를 끝내는 올리비아(애칭 리브)의 지난 10년간 드라마에서의 여형사로서의 활약은 대단했다고 말하고 싶다.

 

로앤오더 SUV 12시즌까지 다 본 나로서는 시즌 초반 남성 위주의 강력계 형사의 홍일점으로서 앨리엇을 따라 사건을 쫒아다니며 끌려다녔던 시절부터 (물론 두 사람이 주인공이므로 아주 없는 것은 아니지만) 리브가 독립적으로 사건을 쫒으며 강인해지는 변천사를 목격할 수 있는데, 그러니깐 리브가 강인해지고 독립적으로 변하기까지의 시간의 흐름은 사회가 그것을 요구하고 허용된 시스템으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할 수 도 있겠다. 리브가 강인해 져가는 모습의 캐릭터를 잡은 방송작가들에게 경의를.

 

미야베 미유키는 50대의 치카코에게 미래의 여형사의 비젼보다 푸근한 아줌마 형사 이미지를 선사했다는 것은 그녀의 폭 좁은 여성관일까. R.P.G은 무대 연극처럼 한정된 장소에서 일어난다. 바로 취조실. 20세기 초반의 아줌마 형사 치카코가 그 취조실안에서 하는 일은 거의 없다. 사건 해결의 도움을 주는 수준도 안된다. 내가 로앤오더 12시즌의 24회를 보지 않았다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겼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지,

 

리브가 굳은 표정으로 취조자를 몰아부치는 장면. 이 장면은 정말 리브의 진가 - 남형사에게 뒤지지않는 키와 체격의 육체적 강인함뿐만 아니라 심리적 강인함과 매서움을 보여준 -를 이 클로즈 샷에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느낄 수 있다.

 

취조실에서 리브는 남형사둘과 대등한 위치에서 심문한다. 이 장면 인상적인 게 저 세 사람들이 취조하면서 빙글빙글 도는데, 카메라 앵글이 여형사로서의 리브의 위치가  남형사들에게 전혀 꿀리지 않게 잡아준다. 지금까지 본 크리미널 미드중에서 최고의 장면.

 

21세기에 이런 비젼을 보고 다시 21세기로 돌아가 미야베미유키의 치카코의 활약상을 보니 그녀의 수사력에 불만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지사. 치카코의 위치가 보잘 것 없는 것도 아닌데, 그녀의 능력을 박하게 그려진 것은 그녀의 에도소설의 여주인공 오하쓰에 견주어 볼 때 불공평하다.

 

그 시대의 여자야말로 인간 이하의 존재인데,

 

결론은 하나.  미야베 미유키가 에도 시절을 그린 오하쓰 시리즈의 오하쓰가 20세기에 등장하는 미미여사 소설들의 여자 캐릭터보다 휠씬 대담하고 강인하다는 것을. 이제 미야베 미유키 여사가 쓸 소설은 치카코 이상의, 오하쓰 이상의, 리브 이상의 여형사 정도 내 주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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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애들이 방학했다. 10시30분에 끝난다길래 그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마중나와 애들을 픽업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도중에 왠지 집에 들어가는 게 아쉬워, 나온 김에 방학기념으로 영화나 보러 가자고 해서 애들하고 청량리 롯데마트겸 시네마 갔다가 볼만한 영화 시간대가 안 맞아 영화는 못 보고 푸트코트가서 밥 먹고 이것저것 주전부리 하다가 집에 돌아와 컴을 켜니 정봉주 전의원 유죄확정이라는 기사보고 확 기분이 잡쳤다. 씨발이라는 욕이 절로 나오더라.

 

나라 돌아가는 꼴상을 보고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막상 유죄판결확정이라는 소식을 들으니, 맘이 무겁다.

 

내후년엔 꼭 정권 교체 이뤄서 이브라더스도 감빵에 보내고 말테다,라는 굳은 결심이 어느새.... (주먹 쥐고)불끈 생긴다.

 

작은애 영어공부방 데려다 주는 김에 도서관에 들린다고 지난 번에 빌렸던 책들을 주섬주섬 챙겼다.

 

<남극의 셰프>는 영화보다 못했다. 영화도 작년 이맘때 보러 간 것 갔는데, 큰애 친구들 엄마하고, 스폰지 하우스였나.

 

일본인들의 글이 개인적이고 너무나도 비슷한 동양권의 친근한 일상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공감도 많이 되긴 하지만, 이 책은 저 먼 극지방까지 가서 한 체험을 이렇게까지 일상적으로 묘사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지루해서 읽다가 몇 번을 꾸벅꾸벅 졸았다. 막판에는 대강대강 읽었다. 진실로 놀라운 것은 남극까지 가고 그 곳의 추위와 열악한 환경을 모두 체험을 한 저자가 남극에 대해 아는 게 쥐뿔도 없었다. 정말.

 

반면에 <물리학의 최전선>은 전체적인(끝내 못 읽고 기한되서 갔다 주었는데, 무슨 전체적인 이해도) 내 이해도가 30~40%대였지만, 같은 남극체험을 해도 인상적으로 묘사했다. 자신이 아는 남극탐험대의 에피소드 그러니깐 아문센과 스콧 그리고 새클턴의 처절한 모험을 이야기하면서 스콧의 경우 그들이 무사귀환이 실패한 이유로 남극에서 가져온 실험자원을 버리고 빈 몸으로 왔더라면 살았을 것이라는 것이 학계의 지배적인 입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와 탐험대가 끝내 포기하지 않고 가져온 자원을 연구함으로써 남극의 물질에 대해 더 자세하게 연구할 수 있었다는..... 저자는 과연 스콧의 무사귀환이 실패했지만 그가 행한 업적(사실 대부분이 사람들에게 그는 남극도전에 실패한 모험가로 알려졌기에)에 대해서 독자에게 명확하게 인식시켜 주었다는 점에서 글이란 적어도 이정도는 되야되지 않나 싶었다. 이야기를 하려면 뭐 양념거리는 좀 있었줘야지. 글도 맛있게 먹지.

 

한권은 지루하고 한 권은 다 읽지 못해 찝찝한 상태에서, 두 권의 책을 반납하고 나오는데, 차를 누가 긁고 간 게 눈에 확 들어왔다. 차 앞부분을...눈이 확 뒤집히면서 열이 바짝 오르더라. 그러지 않아도 안 긁히려고 무진장 애 썼는데...아주 양심을 밥 말아먹었나. 적어도 연락처는 남기고 갔어야지. 이번에도 개새끼라는 욕이 절로 나왔다. ㅠㅠ. 복원하는데 십만원 달라고 할 것 같은데, 월급 타 봤자 이리저리 다 빠져 나가고 얼마 남아 있지도 않는데.

 

여하튼,열 받을 데로 받은 상태에서 집에 돌아와 좀 전에 돌아와 돌린 세탁기 안에서 핸폰 발견. 딸애의 더러운 외투를 빨려고 세탁기 안에 넣기 전에 주머니 검사를 하지 않았던 것이다. 분명 내 실수는 맞긴 맞는데... 집에 오면 핸폰을 꺼내 놓으면 어디 덧나나. 엄한 작은 애한테 화풀이를 다 했다. 찍소리도 못하는 애를 보고 있자니 안스럽고. 아, 정말 짜증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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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추천도서를 보다가 나보코프의 자서전<말하라, 기억이여>라는 작품을 보고 든 생각  

<말하라, 기억이여>라는 자서전을 쓴 나보코프의 대표작은 <롤리타>이다. 그외에도 <창백한 불꽃>이나 <어둠속의 웃음소리>같은 작품도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기는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나보코프하면 <롤리타>아니겠는가.  

 <롤리타>를 대표작으로 내세우는 것은, 대체로 <롤리타>는 미국문학사를 새로이 새기게 된 문제작(이건 말하라, 기억이여라는 작품에서 번역가가 한말)이라는 평을 받고 있고 우리 나라에서도 그 평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러시아인인 나보코프가 두 번째로 영어로 쓴 작품인데다 어린 소녀를 사랑하는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어서 그런지 이 작품은 출간때부터 미국내에서 반향을 읽으키며 나보코프가 글만 쓸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뒷받침 되어 준 책이다.  

이 책이 처음으로 출간되었을 때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뭐 여하튼 그를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에게 세계적인 작가의 명성를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롤리타>의 문학적 위치는 정점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요즘 나는 나보코프의 대표작이 정말 <롤리타>일까, 라는 의문을 자꾸 가지게 된다. 미국의 크라임 미드를 많이 봐서 세뇌 당해서 그런지 나보코프의 대표작이 <롤리타>라고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현재 미국내의 나보코프의 평가 그리고 <롤리타>에 대한 평가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미드만 봐서 <롤리타>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좀 우습지만, 미국내에서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라고 말했다가는 100이면 100, 소아애자로 변태 취급 당할 것이라는데 99.9% 장담한다.  

미드는 워낙 소재나 주제가 다양해서 여러 스탈의 미드가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크리미널 미드쪽을 좋아하고 즐겨보는데(그래서 왠만한 크리미널 쪽 미드는 전 시리즈 거의 다 봤을 정도), 크리미널 미드에서 소아애자 범죄자를 다룰 때마다 형사가 비아냥거리며 들먹거리는 소설이 바로 나보코프의 <롤리타>이다.   

첨에는 그런 가 보다 했다. 수십 년전에 성인 남자가 어린 소녀에 대한 성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센세이셔널을 일으켰고 유명한 작품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읽었기에, 그런 표현을 하나보다, 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롤리타>와 소아애자는 한 쌍으로 묶이고 <롤리타>는 소아애자의 바이블쯤 여기는 책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미국 범죄드라마의 작가들이 정말 후진 의식의 작가들이냐? 절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본 범죄 드라마들의 작가들은 사회를 보는 눈이 냉혹하며 냉정하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사회 구조상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고 <롤리타>의 문학적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있다는 것은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이젠 미국주류 문학사에서 문학적 정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은 문화를 변화시킨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과 가치는 없다고 본다. <롤리타>가 21세기에 변태들의 바이블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마도 소아애자에 대한 엄격한 시선과 법적용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법이란  국가에 우리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질서 단위 아닌가.  

나는 <롤리타>라는 작품을 20대에 첨 알았고 그 때의 평가는 나보코프의 아름다운 문장력이었다. 어린 소녀를 좋아해서 그 소녀의 엄마와 결혼한 이야기는 무시한 채. 그리고 그 명성을 20여년 동안 지켜보고 있었고 하지만 세월이 한 작품을 어떻게 전락 시키지는지도 지금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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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1-01-05 13:47   좋아요 0 | URL
롤리타를 읽는다 읽는다 해 놓도 아직도 못 읽었네요.
롤리타를 바라보는 그런 시선이 있었군요.
그 작가들 롤리타를 지그시 밟아주면서 스스로 잘난 척 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요? 이건 그냥 저의 생각일뿐입니다.ㅋ
작년에 박범신의 <은교> 읽고 어느님께선 롤리타를 생각한다고 했는데
그때 내친김에 봤어야 하는 건데 그랬어요.ㅎ

기억의집 2011-01-10 23:08   좋아요 0 | URL
흐흐 저도 스텔라님의 은교사랑 잘 알지요^^
근데 스텔라님 저는 이상하게 <은교>나 <롤리타>같은 주제의 책이 불쾌하고 불편해요. 아무리 아름다운 문체와 건전한 결말로 끝을 맺었다하더라도요. 나이가 들수록 그럴 수도 있고 제가 아이가 있어서 그럴 수도 있겠죠.

잘난 척이라기 보다는 문학적 절대성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말 그대로 요즘은 다원주의 세상이니깐요. 미국같이 미성년자 강간에 대해 엄격한 나라는 아마 롤리타를 잘 포장된 포로노 소설로 보는 시각도 있다고 하더라구요.

stella.K 2011-01-11 10:17   좋아요 0 | URL
ㅎㅎ 기억님 말씀이 뭔지 알겠어요.
그런 선입견 없을 수 없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문체도 문체지만 그런 것을 통해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그게 더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한낱 꺼풀뿐인 인간의 육체를 어찌하냔 말이어요. 흐~^^

2011-01-0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1-01-10 23:24   좋아요 0 | URL
님^^
저는 책을 읽을수록 작가나 작품의 절대성이나 우상화를 믿지 않고 독자는 그 절대성을 깨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져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저 또한 나보코프의 문학적인 위상이나 업적, 그의 시적이면서 깊은 사고에서 우러나오는 절제된 문장이나 문체는 인정해요. 저도 아마존 리뷰 참조하니깐 롤리타의 평가 또한 잘 알고 있고요.
아마 제가 <롤리타>에 대해 알게 된 것이 91년인가 92년도일거에요. 그 때 미국문학사 강의 들으면서 알게 되었고 그 때 때마침 책이 출간되서 읽게 되었는데..그 때도 저는 내용은 솔직히 깊숙히 와 닿지 않았어요. 하지만 워낙 막강한 평가를 받고 있는 작품이라 감히 제가 이러쿵저러쿵하지 못하는 작품이었고 그 때만해도 <롤리타>를 비판하는 글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가 없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전락이라는 표현은 아마 제가 좀 오버한 것은 맞아요. 그렇지만 이 작품이 문학외적인 평가는 절대적일 수 있지만 내용만은 많은 담론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를 들어 한 남자의 순애보를 진실되게 그리기 위해 롤리타가 비행적인 행위들(저는 언제나 왜 그녀를 이렇게까지 묘사했어야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이 험프리의 그녀에 대한 사랑을 정당화 할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정당화가 결국에는 미성년자와의 사랑과도 정당화 할 수 있지 않는가? 정말 그녀를 애뜻하게 바라보기만하는 험프리는 오늘날의 시각으로 스토커가 아닌가?하는 등등. 만약에 우리 아들에게 이 작품을 읽어라고 준다면 울 아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하나? 저는 이 작품은 그 명성만큼 단순히 읽을 수 있는 작품이, 읽힐 수 있는 작품이 아니고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 내어햐하는 작품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마녀고양이 2011-01-06 09:38   좋아요 0 | URL
20년 동안.. 책에 대한 평가가 그렇게 변할 수도 있군요.
미처 생각해보지 못 한 부분이예요.
하기사.. 요즘처럼 미성년자 성추행에 대해 격분하는 사회라면
탐미적이고 아름다운 시각으로 쓰인 책에 대해서도 그럴 수 있다 생각합니다.
문득... 영화 연인이 생각나네요.

기억의집 2011-01-10 23:49   좋아요 0 | URL
여전히 그래도 이 작품은 절대적인 평가를 받는 작품이여요.
하지만 미성년자와의 사랑에 대해서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주인공이 험프리였던가요? 남자 주인공에 대한 심리와 행동들에 대한.
저는 미성년자를 성적인 욕망의 대상으로 보는 작품을 읽은 것이 점점 불편해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래요.
개인적으로 성인들간의 성은 그 어떤 형태를 취하든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미성년자와의 관계는 좀 그래요. 이 작품은 예나 지금이나 사실 절대적인 평가를 가지고 있고 난공불락인 작품인데 몇 년전부터 미드보면 까더라구요. 몇 년전에는 콜케인가 크마에서 그러더니 이번에 로앤오더에서 리브가 까면서 이야기 하더라구요. 저는 이런 작품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고 봐요. 근데 문제는 이걸 미화하는 저 편에는 그걸 비판해야하는데 그게 없어서 좀 그래요. 전 연인도 솔직히 별로~~~였어요.

2011-01-06 10: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0 2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1 22:22   좋아요 0 | URL
음.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그 작품이 어떤 면에서든 우수해도 그냥 잘 포장된 포르노에 불과할 뿐이다.' 이런 건 그냥 개인의 느낌에 불과할 수 있지만 전 '1Q84'가 그랬어요. 그래서 1권 읽고 말았지요. (근데 항간의 말을 듣자 하면 3권까지 읽어야 그 책의 진가를 안다고도..) '해변의 카프카'도 좀 그런 불편함이 있었지요. 그게 '남성의, 여성을 향한' 시각 구도라 더 불편할 수도 있었구요.

기억님의 '롤리타' 등에 대한 불편함도 비슷한 것이지요? 저도 '소아 성애'를 아름다운 문장으로 그려 놔도 불편할 거 같군요. 하지만 그런 작품을 쳐 주는 이유는 아무래도 위의 스텔라님 말대로 '현실 그대로의 일'로 보기 보단 '인간 내면을 보는' 의미로 그럴 것 같네요.^^

기억의집 2011-01-13 19:36   좋아요 0 | URL
일큐팔사 저는 이권까지만 읽고 3권은 읽을까말까 생각중이에요. 재작년에 읽어서 거의 내용을 까먹어서 1,2권 다시 읽자니 그 정도의 책 같지는 않고. 해변의 카프카,도 불편하지요. 꼭 그런 어린나이로 설정했어야할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나보코프가 글은 잘 써요. 오랜전에 읽었지만 롤리타가 소아애자를 주제로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니깐요. 요즘 이런 저런 생각하면서 과연 내가 울 아들한테 롤리타를 권장도서로 권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전 아니요,에요. 만약 아이가 읽더라도 많은 이야기를 할 작품이지요. 성정체성이 확고하지 않는 나이에 읽는다면 분명 독서 지도를 꼭 해줘야할 작품인 것 같아요.

2011-01-13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7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5 15: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17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6-02 0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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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핑키 2011-06-04 23:26   좋아요 0 | URL
앗! 롤리타 ㅠ 벌써 몇년전에 사놓고 아직 첫 페이지도 못열어본 책이예요 ㅋㅋ
우후 기억님 글을 읽고 있으니 정말 ㅋㅋ 그렇네요 ㅋㅋ 이 유명한 책이 21세기에 변태들의 바이블쯤으로 해석될수 있겠군요!! 아. 그래도 아름다운 문장력이라니! 저도 어서 꺼내 읽어보고, 직접 느껴보고 싶어지네요! ㅋㅋ
(기억님 잘 지내셨죠?? 너무 오랫만에 놀러왔어요!!! ㅋㅋ)

지나가던 2013-12-27 01:12   좋아요 0 | URL
음, 전 블로그 주인장님이 조금 잘못 생각하시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볼 때는 소아성애를 아름답게 묘사하는데 그치는게 아니라 동시에 곳곳에 그 폭력성에 대한 암시를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롤리타가 다니는 학교 교장이 롤리타의 성격 문제를 지적한다거나(이 부분을 읽어보면 그게 성적 학대 탓이라는 강한 암시를 읽어낼 수 있습니다), 험버트가 자는 척을 하면서 롤리타가 날마다 흐느끼는 소리를 듣는다거나 하는 장면이 있지요.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 탐미성뿐만 아니라 거기에 가려진 폭력성을 찾아가며 읽어야 하는 소설 같습니다.

기억의집 2013-12-31 09:14   좋아요 0 | URL
잘 못 생각한 것이 아니고 저는 님과 다른 관점에서 다르게 생각한 것이 아닌가요??
제가 롤리타를 처음 접한 게 1990년대 초반이었어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그 때 롤리타가 우리나라에 발행되었을 때의 출판 분위기 기억합니다. 굉장했거든요. 나보코프가 건드린 주제나 언어적 요소때문에... 그래서 단박에 구입해 읽었었는데 저 그 때 롤리타한테 짜증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흔히 싸가지 없었다고 할까나. 그리고 아 이게 그 유명한 나보코프의 영어 문장이었구나 했습니다. 흔히 평론가들이 말하는 거 그대로 받아 들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 제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다시 롤리타를 들여다보니 혐오스러웠습니다. 물론 제가 시대적 상황을 이해 못 한 건 아니예요. 나보코프가 살았던 시대는 사실 소아애자란 개념이 없었다는 것도 이해하고요. 소녀가 결혼하던 시대에 어느 정도 발 담궜던 그였으니깐요.

저는 그의 자서전도 읽어보았는데 사실 그가 어린 여자를 좋아한다는 그런 기미는 없었어요. 그가 사랑한 것은 나비였으니깐요. 자서전이나 그의 다른 작품을 읽어보셔서 알겠지만 그의 언어는 철학적이고 탐미적인 사람입니다. 탐미라 해서 성적인 탐미가 아니라 세상을 보는,, 언어를 대하는,,사물을 대하는 것이 탐미적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그가 롤리타에서 무엇을 말하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시대가 변하다 보니 혹 그의 작품적 시선이 부담스럽습니다. 문학적 언어적 으로 읽어야할 작품이 다른 불온한 생각이 들더군요.

혹 미드 보셨나요? 미드보시면 롤리타가 지금 어떻게 변질되었는지 아실겁니다. 롤리타의 험프리는 소아애자일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더군요. 저도 그런 변질이 부당하다고 인정은 합니다만,,,, 제가 나이가 들어 삶의 경험치가 늘어나면서 작품을 보는 눈이 하나가 아닌 다른 면도 보인다고 말하고 싶네요. 바르트도 주장하잖아요. 작품의 다중적 의미에 대해서. 그런 면에서 이해해 주세요. 단지 이 글의 주인은 다른 면을 보고 있다고....

그리고 나보코프에 대해 읽으면서 안 사실인데 나보코프의 부인이 마케팅의 천재였어요. 이 작품도 사실 나보코프의 작품적 순수함 대신 부인이 어린 소녀를 사랑했다는 마케팅으로 띄운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