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에 교보문고를 훑고 다녔다. 광화문에 나온 건 작년 12월 이후에 처음인 듯. 외출하기 좋은 날이었다. 오늘 같은 날 집에 있었다면 억울한 기분이 슬쩍 들었을지도. 햇살이 푸근했고 날씨도 걷기 좋은 날이었다. 11시 안 되서 문고에 들어갔는데도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교보문고 메인통로의 매대를 둘러보는데, 통로의 매대 위에는 과학책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었다.
통로의 매대 위에는 과학책들이 쭈욱 나열되어 있었고, 온라인 서점에서 보았던 책들도 눈에 띄었다. 그 중에서 가장 관심이 갖던 책은 <상식 밖의 유전자>
도킨스의 글을 읽으면서, 요즘 두려운 것은 내가 유전자 결정론쪽으로 빠져 든다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적지 않는 영향을 받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자신의 유전자에 의해 운명이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처음 윌슨이나 도킨스의 글들에서 유전자결정론을 뒷받침하는, 윌슨의 개미연구나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같은, 글들을 읽을 땐 약간 반발심이 없진 않았다. 그들의 주장이 우생학적인 측면이 강해서, 만약 유전자에 의해 우리의 인생이 결정되어지는 것이라면,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인생에서 목표을 두고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노력은 헛된 짓거리란 말인가,라는 자조적인 의문이 들었기에.
그런데 재능이나 본성이라는 관점에서 사람을 재단하면, 유전자결정론이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다. 공부라든가 음악적,미술적,예술적 재능은 누구나 다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심지어 그런 분야의 재능을 발현하기 위하여 부모가 환경을 만들어 준다고 해도 그런 재능은 환경에 의해 조작될 수 있거나 나타나지 않는다. 내 안의 유전자가 과거 조상의 유전자의 축적된 부분중에서 어느 한 부분이 갑자기 출연하여 재능이란 이름으로 발현되는 것은 아닐까.
같은 시간에 같은 양의 공부를 해도 받아들이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왤까? 노력만 하면 모든지 다 이룰 수 있다는 말은 과연 사실일까? 살인자의 본성은 어떻게 설명해야하나. 같은 부모밑에서 태어나 자란 형제들 중 한 명만 살인자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란 말인가? 살인자의 본성은 자신의 유전자에 그렇게 설계된 것은 아닐까?
어떻게 보면 너무나 끔찍하고 위험한 생각이기에,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 전적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기에 나는 유전자결정론이라는 딜레마의 경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만약 유전자결정론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 책이 어느 정도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굴드의 글은 나랑 그닥 맞지 않아서 전혀 좋아하지 않았는데, 몇 년전에 그의 책을 읽다가 인문학적 베이스 운운하며 어찌나 현학적이며 아는 것이 많은지,,, 전체하는 태도가 혐오스럽고 재수 없다고 느껴 그의 책은 신간이 나와도 나왔다보다~ 그 신간책에선 자신의 오지랖 지식을 나열하며 얼마나 깝죽거릴까, 이런 반응을 보이곤 했다.
물론 내가 인문학적인 지식을 싫어한다는 것은 아니다. 글의 기본은 인문과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써야하는 것이므로, 어느 한 분야에 지우쳐 그 분야만 고집하는 것은 결코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그래도 굴드의 젠체하는 글은 좀 심하다 싶어 상대하고 싶어하지 않았는데, 서점의 매대에서 그의 책 <여덟마리 새끼 돼지>를 훑어보다가 하나의 산문이 진솔하게 와 닿았다. 몇 시간 전에 읽은 거라 제목은 까먹었지만, 아. 그에게도 이런 면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담백한 글 맛이었다. 느끼하지도 않았고 딱 간이 맞는, 그런 맛있는 글맛이었다. 그의 글을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제목이 흥미로워 눈길을 끌었는데, 목차를 보니 지금까지 내가 낑낑거리며 읽어왔던 글들이라 친숙했다. 암, 그렇고 말고. 과학분야의 책을 읽기 위하여 다른 분야의 책들은 거의 거들떠도 안 봤지. 30년 넘게 관심도 없었던 분야라서 한글처럼 ㄱ,ㄴ,ㄷ,ㄹ 이 수준에서 시작했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겠냔 말야.
우리가 우주에 떨어진다면? 이 책의 작가들은 우주에서 떨어져도 사아날 수 있는 물리의 법칙을 설명하지만, 나는 1969년에 미국이 달착륙을 성공시키고 나서 데이빗 보위가 발표한 재미난 곡 라는 곡이 떠 올랐다. 우주선의 사고로 톰중령은 우주미아가 되어 우주를 떠돌아 다닌다는 것. 벌써 44년도 넘는 곡이라 그 노래의 주인공 톰중령은 우주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을 것이다. 음, 그의 사체가 남아있는 우주복만 떠돌아 다닐까. 중력이 거의 없는 우주에서 그의 시체는 썩을까 아니면 미아로 남아있을까, 아니면 이 책의 목차에 나와 있듯이, 다른 우주를 만나 그 땅에서 외계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평행우주을 주장하는 것처럼 또 다른 우주에서 자신을 만났을까?
그리고 몇 권이 더 있었는데, 책제목들을 핸드폰에 찍었는데 핸폰 밧데리가 없다. 지구온난화에 관한 책도 흥미로웠는데, 지난 번에 <지구온난화에 속지 마라>라는 프레드 싱어같은 과학사기꾼에 말려들뻔 했는데, 이번책은 환경주의자들의 주장과 그 반대편의 주장 둘 다 실은 것 같아서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았다. 프레드 싱어같은 과학자들을 예로 들면, 과학자 타이틀 가지고 장난치는, 권력의 편을 들어주기 위하여 이론을 어떻게 조작하고 위증하는지, 모든 책들이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연하게 보여준다. 독자는 그런 사기꾼들에게 속지 말것을.
서점에서 나오는데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햇빛 사이로 우르르 몰려 나오고 있었다. 삼사오오 짝을 이룬 직장인들을 보면서, 우리 남편도 지금쯤 직장동료들과 밥 먹으러 나와 무엇 먹을까? 음식점을 기웃거리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에 점심, 부럽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