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로맨스 소설의 7일
미우라 시온 지음, 안윤선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작년 여름에 미우라 시온의 청춘성장소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를 무척이나 재미읽게 읽어서, 그녀가 쓴 작품이라면 뭐든지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과의 만남에서 첫인상이 중요하듯이, 작가의 만남에서도 첫작품이 이래서 중요하다. 첫작품의 강렬한 인상으로 무조건적인 신뢰를 보내게 되니 말이다. 하여간 그녀와의 첫 만남이 기분좋은 만남이어서 그런지, 그녀의 후속작품들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결과는? 반반이다. 괜찮은 작품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쪽도 있었고. 미우라 시온의 수십편의 작품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작품능력은 아직은 미완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필력이나 이야기의 발상과 전개가 고도의 수준에 다다랐다기보다는 들쑥날쑥이다. 차라리 평작 정도만 되도 괜찮게.
이 참에 한번 따져보자. 일본 작가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히가시노 게이고, 미미여사, 온다 리쿠, 고타로등. 일본 작가들 개인적인 작품 수준의 편차가 심하다. 작품 속에 들어있는 작가 성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게 정녕 내가 입이 다물어 지지 않는 놀라움과 감탄을 해가면 읽읽은 작품의 작가가 쓴 책 맞아! 라든가, 기대 만땅으로 읽고나서, 이이이...런... 후진 작품도 썼단 말이지! 이런 생각 한두번 드는 게 아니다. 한마디로 수준이하의 작품 허다하고 아까운 내 돈 날렸다라는 기분 드는 작품 한두권이 아니란 말이지. 괜히 좋은 작품 먼저 읽어가지고서래.
왜 그럴까? 후기들을 읽고 짐작하건데, 걔네들 시스템은 출판사측에서 이런이런한 글을 써 주십시요라고 부탁을 하면 작가는 그 주제에 맞게, 되는 데로 글을 쓰는 것 같더구만. 작가의 역량이 그 주제에 부합이 안 돼도, 월세 내기에 빠듯한 그네들 살림살이을 위해 보탬이 되는 글이라면 무조건 쓰고 보자라는 주의간 본데. 이러니 독자인 난 작가들의 전체적인 작품 수준을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제도 그렇고 그들이 작품 속에서 끈질기게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여러가지 스텝으로 여기저기 밟아나가니 독자인 난 따라다니기도 힘들다. 하여간 어렵다 어려워.
하지만 일본 작가들은 어린 시절에 보던 만화책의 영향인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 정통적인 이야기 방식을 추구한다는 것. 글쓰기의 실험이나 파괴라는 형식적인 실험은 거의 행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물론 내가 모르는 실험적인 작가들이 있겠지.마루야마 겐지!) 읽기 편하고 흡입력 있있고 이런 방식을 무지 선호하지만, 허구 헌날 이런 책 읽으면 읽는 데 따분할 때가 있어, 외도하고 싶을 때가 있다. 오호라, 이 책 좀 뭔가 있어 보인다. 미우라 시온의 <로맨스 소설의 7일>이 혹시 형식파괴의 소설일까나. 경직된 머리속에 이런 쟝르 파괴의 소설 좀 넣어줘야지. 한번 정도의 일탈은 각성제 아니겠나. 하.지.만. 기사와 로맨스를 섞어 놓은 듯한, 장르 파괴소설 인줄 알고 구입했다가, 낭패 받다.
로맨스는 내 취향이 전혀 아니다. 언젠가 리뷰어 나귀님이, 이선미의 초기 작품중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 일부분을 표절했다는 사실이 몇 년이 지난 뒤에나 밝혀지자, 두 장르의 독자는 겹치지 않는가보라고 썼듯이, 로맨스소설은 내게 가까이 하기에는 먼 쟝르이다. 닭살 같은 묘사나 숫처녀에 대한 판타지, 현실과 거리가 먼 운명적인 로맨스를 싫어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에 그닥 끌리지 않아서라나할까나. 여하튼 학창 시절이든 지금 유부녀시절이든 간에 로맨스란 게 나에게는 재미없다. 이 책이 혼합쟝르니 뭐니 하는 그런 문구나 보지 않았다면, 도서관에서나 빌려 봤을 것이다. 하지만 로맨스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럭저럭 건질만한 책이다. 버진에 대한 판타지도 있고 근육질의 우락부락한 남자 주인공도 있고,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의 형식을 갖춘데나 일본소설까지.
두개의 쟝르가 섞여 있는데, 하나는 주인공 아카리가 번역하는 로맨스소설과 또 하나는 주인공 아카리와 연인 칸나의 좌충우돌하는 일상이 담겨진 소설이. 이럴 걸 일석이조하고 하던가. 하지만 내가 보기엔 죽도 밥도 안 된 소설 같다.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된 이야기가 나왔으면 좋았을 걸하는 아쉬움이 생기고. 로맨스는 넘 짧고 아키리와 칸나의 청춘의 일상도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으니 말이다. 여하튼 이 책 심심풀이 땅콩같은 책이다. 읽고 나서 아무 생각 나지 않는. 작가 후기에 출판사에서 로맨스라는 주제를 의뢰받았는데 "능력도 없는 내가 연애 능력을 쥐어 짜가며 이 이야기를 썼기 때문에 왠지 '불타오르는 사랑'과는 먼 내용이 되어 버린듯한 기분이 든" 소설이라고 토로하는데, 내 생각에도 이 말은 맞는 것 같다.
이 소설의 일본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