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꼭 해야 하나요? - 똑똑한 아이들 참 좋은 생각
브리기테 라브 지음, 마누엘라 올텐 그림, 엄혜숙 옮김 / 계수나무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지난 여름에 코엑스에서 전시된 <일러스트레이션 거장전>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유럽 일러스트레이터의 최근 경향(그래봤자 십년 전후)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이 그림 그릴 때 선호하는 매체수단이 무엇인지(신세대 답게 컴퓨터그래픽을 사용하는지, 아니면 전통적인 매체로 표현하는지에 대한), 소재와 주제가 옛날과 얼마나, 어떻게 변화되고 있는지에 대한 것등, 유럽의 최신 경향을 여러가지 알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다. 당시에 전시된 그림들을 보면서 아, 단순히 일러스트레이터라기 보다는 아티스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구나, 할 정도로 뛰어난 상상력과 표현 방법, 근접하기 어려운 소재와 주제가 시선을 확 잡아 당겼다.

2000년대 초반, 그러니깐 아이들그림책이 막 시작하던 시기에는 국적을 불문하고 많은 그림책들이 쏟아졌었다. 지금 내가 접하고 있는 유럽그림책 대부분이 바로 그 시기의 그림책들인데, 요즘들어 이상하게도 감탄사가 튀어나올만한, 뛰어난 유럽그림책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오프서점을 몇 달에 한 번 가서 그림책을 한번씩 점검하고 오는데, 갈 때마다 와우~ 라는 감탄사가 입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차비만 버렸네,쩝! 미지근한 입맛을 다시며 오는 날이 더 많았다. 물론 영미그림책도 그렇고 일본그림책도 그렇기는 하지만. 새로운 세대의 그림책이라면 더 뛰어난 그림책이 나와야하는데, 오히려 요즘 출판되는 그림책을 보면 그림책 시장이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대체 일러스트거장전에서 본 유럽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작품은 다 어디로 갔나, 어디로 갔어!

이 책도 어린이 그림책 번역가이면서 평론가인 엄혜숙 선생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그림책을 접한지 어언 10년차, 그 동안 그림책을 접하면서 눈에 뜨는 몇 명의 번역가들이 있었다. 그 중의 한명이 바로 엄혜숙 선생. 아이를 키우면서 그림책에 빠져든 평범한 독자인 내가,그림책에 대한 그녀의 열정이 어느 정도인지 그녀가 번역한 책과 그림책과 관련하여 쓴 글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다. 인터넷 서점에서 때마다 검색하는 번역가들이 있는데, 그녀도 그 중의 한명. 독일문학이 전공인 그녀가 그림책에 대한 사랑이 어찌나 지극한지 영어그림책은 물론이요 일본그림책에도 손을 대고 있으니, 그녀가 발굴해내는 그림책이 어떤 것인지 어찌 궁금하지 않으리오.  

그런데 이번 그림책은 약간 실망스럽다. 독문학 전공자답게 최근의 독일에서 나온 그림책을 번역해 나온 것은 너무나 반가웠는데, 소재가 너무 진부하다고나 할까.이런 규칙적인고 규범적인 소재의 그림책은 지금까지 진절머리 날 정도로 많이 접해 보았다. 일단 그림은 아기자기하면서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개그적인 요소가 많아서 재밌다. 딸아이는 이 그림 저 그림 보면서 키득키득 웃기도 하고, 특히나 자동차 위에서 쉬를 하는 여자 아이를 보면서 폭소를 터트렸으니깐. 그럴 때마다 큰 아이는 옆에서 현실적인 발언을 하며 딸아이의 웃음을 뭉개었지만.  

여하튼 아이들에게 장단을 맞추면서 그림책을 읽어주지만, 엄마인 난 정작 큰 감동을 받지 못 했다. 아이들도 해야할 것과  하지 말아야할 것을 분명히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 아니 아이들은 부모와 같이 살면서 끊임없이 조정을 받기 때문에 우리가 사회에서 지켜야할, 가정에서 지켜야할 할 규범들을 어느 정도 안다. 차라리 이 책을 반대로 이야기했다면 아이들은 그림책을 읽는 재미가 배가 되지 않았을까. 이는 꼭 안 닦아도 되고 차 타기 전에 쉬는 안 누어도 되고 아이스크림을 실컷 먹어도 배가 아프지 않는. 스타이그식의 카타르시스를 아이들에게 제공했더라면 아이들하고 더 많이 웃고 우리들이 지켜야할 규범에 대해 다시한번 더 생각하고 아이들하고 작게나마 토론하지 않았을까. 규범이나 규칙에 관해서 직선적인 생각을 가진, 아이들에게 처음 알려주어야 하겠다는 엄마라면 강추! 나처럼 스타이그식의 규범을 선호하는 분이라면 이 책에 나온 규칙들을 반대로 읽어주어 아이들하고 재밌는 한때를 마련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우린 절대 이 안 닦을 거야, 나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야지. 하루에 백개도 먹을 수 있다~(울딸) 난 늦게 까지 놀이터에서 자전거 타고 놀거야!같은. 반대로 말하기 놀이하면서 엄마인 내가 너희들이 그럴 경우 얼마나 걱정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주었다. 직선적으로 너 그렇게 하지마!라고 하기보다 더 잘 이해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고개를 끄덕끄덕하지만, 내일 되면 분명 잊어버릴 것이다. 아이 키우기 넘 어려워. 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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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가자! - 800여 장의 사진으로 함께 떠나는 리얼 문화 체험기
한상아.이다미 지음 / 라이카미(부즈펌) / 2009년 7월
품절


해외여행커녕 국내 여행도 힘들었던 우리 세대와는 달리 요즘 젊은 세대들은 언어연수든 단순 여행이 목적이든 간에 한번쯤은 해외에 나갔다 오는 것 같다. 몇 개월 알바로 여행경비를 모아 자신이 평소 가고 싶었던 훌쩍 배낭 매고 떠나는 젊은 친구들을 보면 부럽기 그지 없다. 젊은 시절에 여행을 하는 것이 현실적 의무에 매어있지 않는 상황인데다 심리적 부담이 덜해 좀 더 자유롭게 좀 더 여행의 목적에 접근 할 수 있는 것은 아닌지. 사실 결혼하고 애 한둘 낳으면 해외여행은 꿈도 못 꾸니.. 이 책은 두 명의 젊은이들이 일본 특히 도쿄여행을 갔다 온 후 800여장의 사진을 통해 자신들의 일본 여행을 재조명함과 동시에 일본 여행을 갈 다른 젊은 친구들을 위해 쓴 일종의 체험여행기이다.

요즘은 블러거 세대들이라 그런지 여행서 꾸미는 것도 단순한 볼거리에 그치는 것이 아니고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재치로 똘똘 뭉친, 그런 책들을 펴 낸다. 이 책의 주인공은 도쿄지만 조연은 귀엽고 엽기발랄한 캐릭터 뿌카와 가루, 자 이제 슬슬 도쿄를 도착했으니 여기저기 떠나볼까나~~~

이 지도을 보더라도 빈털털이로 무작정 떠나는 것이 아닌 나름 세심하게 신경을 쓴 여행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건 어떻고! 이 책은 젊은이들뿐만 아니라 아이들이 보기에 딱 알맞게 꾸며져 있다. 복잡한 긴 글은 싫어! 하고 도리질 치는 아이들에게 이만한 정보의 여행서 흔치 않을 듯하다.

어찌나 귀엽게 사진을 찍어 올렸는지, 여행 힘들었을텐데 여행다니면서 이런 귀엽고 깜찍한 생각을 다 했을까 싶다. 삘을 너무 받아 리뷰를 안 써줄래야 안 써 줄 수 없는 상황. 뿌카와 가루를 따라 다니며 여기저기 편안하게 도쿄 여행을 가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다 들 정도다.

젊은 세대답게 문화적 곳을 많이 찾아 다닌다. 일본이 볼거리가 많긴 많구나, 새삼스레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토토로 인형위의 우리 토종 캐릭터 뿌카!

이 친구들 얼마나 재기발랄한지 사진 한장한장마다 뿌카와 가루의 사진 위치까지 다 확인한 듯 하다. 젊은 친구들 참 패기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여행서 기획하고 출판한 거 보니깐 그건 내 생각일뿐이구나. 나중에 아이들하고 일본 여행 가기로 했는데, 이 책은 그 때 중요필수품이 되지 않을까. 약간만 작게 나왔으면 들고 나기기 좋을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이런 볼거리 풍성하고 재치만점의 일본여행서가 나온 게 어디냐 싶다.
일본이 세계에 끊임없이 쏟아내고 있는 음악, 만화,영화 탓인지 요즘은 누구나 한번쯤 일본에 가 문화적인 것을 체험해 보고 싶어한다. 로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직접 배낭 매고 실천해 옮기는, 그런 세대들이다 보니 이런 책은 진작에 나왔어야 하지 않았을까. 보면서 읽으면서 부럽고 또 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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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시 NCIS의 깁스   

재롱둥이 마이클 요원과 선망의 대상 티모시 요원 또한 좋아하지만 아니 난 NCIS  요원들 다 좋아한다만 역시나 제일 좋아하는 수사관은 깁스! 실생활에서 이런 상사 만나면 하루 하루가 똥 밟은 기분이겠지만 언제나 깁스의 활짝 웃는 모습에 냉한 가슴 주르륵 혹한다는. 게다가 그의 은근한 따스함은 어떻고. 아, 그렇지만 1시즌에선 그나마 젊은 꽃미남이더니만 시즌이 갈수록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느낌, 어쩔까나 싶지만 그래도 우리의 깁스 머리 염색 안하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 보여주는데, 더 신뢰가 간다. 지난 6시즌의 4 에피소드에선 다 큰 깁스의 아들이 나와 깁스의 젊은 시절역을 했는데, 아들이 아버지의 미모를 못 따라가더라. 혹 궁금하신 분들은 4 에피소들 찾아보시라. 올해 그 에피소드 난 한 열번 넘게 본 거 같다.

2. Coldcase의 캐서린   

콜케의 캐서린은 <로앤오더>의 올리비아보다 강인한 느낌은 덜하다. 하지만 튀지 않는(콜케의 수사반 멤버들의 특징이 그렇게 뚜렷한 캐릭터적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지만 팀웍 하나는 끝내준다), 저 갸날픈 몸매로 과연 수사나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여성적이면서도 강인하려고 노력하는 캐서린이 극을 잘 소화해내고 있다. 콜케의 매력은 역시나 오픈과 엔딩 음악들. 언뜻 보기에 느와르적 분위기가 흘러 냉소적이고 어두울 것 같지만 역사적 사실을 범죄와 교묘히 어우르며 묘한 감동을 준다. 무슨 시즌인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초기 여성참정권 문제를 다룬 범죄를 보고 난 후, 투표에 절대로 기권하지 않기고 마음 먹음. 불끈!   

3. Law & order 먼치

이 드라마는 애국주의자 엘리옷이 하도 재수 없어서 안 보려도 했다가 먼치와 올리비아 때문에 보고 있다. 글구 닐 울프의 범죄물이 은근 중독성을 가지고 있고, 시즌 4였던가. 먼치가 그나마 좀 활발하게 나오던 때인데, 어린 시절의 유아폭행에 대한 에피소드였을 것이다. 그 에피소드의 엔딩 씬에서 보여준 먼치의 후회하는 낯빛이 정녕 잊혀지지 않아서 로앤 오더 보기 시작했다. 가면 갈수록 엘리옷 재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미드보면서 재수 없다고 생각한 배우는 엘리옷이 처음이다. 이 드라마는 콜케와는 달리 팀 위주보다는 캐릭터 위주다. 1시즌에서 촘스키 강연에 가야한다고 했다가 사건 때문에 발걸음을 멈춘 먼치가 뚜렷한 좌파 수사관이라면 엘리옷은 정의감 넘치는 우파. 갸 보기 싫어도 먼치와 올리비아 땜시 9시즌까지 끝까지 죽치고 앉아서 본다. 10시즌 다운만 받아놓고 아직까지 못 보고 있는데... 10시즌에는 엘리옷 어떻게 나왔을까. 역시 좌충우돌의 주인공. 이 수사반이 오래 해 먹어도 팀웍은 젤 후져!  

 4. Law & order : CI/ 고렌

이 드라마에서 혼자 장구치고 북치고 다 하는 고렌형사가 빠지면 CI는 과연 어떻게 될까나. 개인적인 애칭으로 고랑형사로 부르고 있는 우리의 고렌형사. 여기에서도 위장술의 대가였지만 <맨인블랙>에서 바퀴벌레 인간으로 대 연기변신을 해서 깜놀. 당신의 번뜩이는 수사 해결 능력은 늙어가도 녹슬지 않는구려. 진지한 모습으로 사람의 헛점을 갑자기 집어내는, 냉소적인 듯하면서 잘난 체 하지만 전혀 밉지 않는. 프로듀서 닉 울프가 썩 괜찮은 형사들을 많이 배출하고 있기는 하지. 엘리옷 빼고. 아, 왜 나는 그 사람이 받는 거 없이 밉지! 

 5. Criminal mind /기디언

기디온이 3시즌에서는 빠진다고 했을 때 과연 빈자리를 잘 메꿀 수 있을까 싶었는데, 워낙 연기들을 잘 해서 그런지 빈 자리를 잘 메꾸더라는, 기디언 후속 주자로 조 만테냐의 출연은 의외였는데, 예전에 본 데이빗 마멧 감독의 <호미사이드>에서 조 만테냐가 형사로 나온 적이 있어서 그렇게 낯설지는 않었다. 조 만테냐는 자리 관리를 잘해서 그런가, 그렇게 늙어보이지도 않더구만. 그래도 기디언의 그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는 그립다. 매서운 눈빛과  전지전능한 확신한 찬 목소리. 그립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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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알스버그의 <압둘가사지의 정원>을 처음 본 순간, 그림의 장면마다 독자를 압도하는 정적과 흑백의 표현력, 그리고 그 속에나타난 감정의 응축 (예를 들어, 아이가 마법사 압둘 가사지의 정원에 들어서기 위해 막 문을 들어서는 장면에서 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암시하는 듯한 긴 나무터널과 터널 끝에 보여주는 빛)은 그림책의 단순한 독자였던 나를 단숨에 그림책의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해 주었다.  

난 아직도 <압둘가사지의 정원>을 처음 본 순간에 느꼈던 충격과 소용돌이 치는 감정의 흥분을 잊지 못한다. 아마 그를 통해 예술적인 그림책이 무엇인지 혹은 그림책의 지적 유희가 무엇인지 처음 인지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미친듯이 여기저기 들쑤서 가면서 알스버그의 작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지금은 다른 분야의 책을 읽느냐고 혹은 아이들이 크면서 상대적으로 그림책 분야에 대한 관심이 덜하긴 하지만, 어떤 경우의 그림책 작가는 작품 활동을 영구히 접을 때까지 관심을 갖고 수집하는 작가들이 있다. 내 경우는 알스버그가 평생 관심 작가군에 속하는데, 그가 그림책을 예술적 경지에 끌어올렸다는 것 뿐만 아니라 그가 짧은 이야기를 통해 보여주는 퍼즐과 같은 지적 유희의 결말 때문이다. 적어도 한 사람 혹은 몇 사람의 그림책 작가에 대한 수집은 일상적인 지루함 대신 짜릿한 흥분을 선사한다.  



올초에 문지에서 크리스 알스버그의 신작 <해리스버딕의 미스터리>가 출간되었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림이 14장박에 수록되어 있다는 것은 몰랐다. 마노아님의 리뷰 보고 그제서야 문지판에는 14장이 수록되어 있다는 것을 알았는데, 이미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를 포트폴리오 편집판으로 가지고 있던 탓에,  문지에서 알스버그의 <해리스 버딕> 나왔다고 할 때 그런가보다하고 시큰둥했다.   

이 책은 책소개에서도 잘 나와 있듯이 알스버그가 서문에서 피터 웬더스(한때 어린이책 퍼블리셔었지만 1984년경에는 은퇴한) 네 집에 초대를 받아 갔다가 피터 웬더스의 집에서 해리스 버딕이 그린 14장의 드로잉들을 보고 웬더스와 함께 해리스 버딕의 드로잉을 알스버그가 다시 그려, 제목과 제목에 대한 약간의 설명을 곁들어 독자가 다층적인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도록 재출간한 것이다. 이 책이 출간되고 알스버그 앞으로 버딕의 이야기를 새롭게 쓴 수 백통의 글들이 날아 들어오던 어느 날, 알스버그 앞을 편지가 배달된다. 그리고 알스버그는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를 포트폴리오 편집판으로 새롭게 내 놓는다. 그가 <해리스 버딕의 미스터리>를 포트폴리오 판으로 출간한 이유를 서문에 쓰는데.....

지난 12년 동안 나는 아이들과 어른이 쓴 해리스 버딕 이야기를 수 백통을 받았다. 이러한 성과는 미스터 버딕의 글과 그림이 얼마나 영감적인지 보여주고 있다. 학과 선생님들과 영감이 가득한 작가들은 미스터 버딕의 그림을 보면서 더 많은 상상력을 표출했다. 마지막으로 이 포트폴리오 판 편집을 낸 데에는 다른 이유가 있다.   

피터 웬더스와 나는 <해리 버딕의 미스터리>가 출간되면, 미스터 버딕의 정보를 발켜줄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떠한 실마리도 없이 10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며, 1994년 나는 북캘리포니아에서 사는 Mr. Daniel Hirsch라는 사람의 편지를 받았다. 그는 자신을 고서적 거래인이라고 소개하며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1963년에 그는 메인주 Banor지역에서 개인이 수집한 책을 팔겠다는 오퍼를 받았다. 그가 거래 받은 책은 황폐한 빅토리아식 대저택에 있었다. 그 집의 노부인은 죽으며 자신의 대저택과 집안에 있는 것들을 동물해방단체에 기부를 했던 것이다.  

그는 그녀가 모은 책들의 라이브러리에 깊은 인상을 받아 전부를 구입했으면 Through the looking glass라는 캐릭터의 초상이 새겨 장식된 나무틀의 거울도 포함되어 있었다.   

2년전에 여전히 Mr. Hirsch의 소유인 이 거울을 자신의 서점 벽에 걸어두었다가 떨어져 깨졌다. 유리 조각들을 치우는 과정에서 그는 주목할 만한 것을 발견했는데, 거울과 거울 사이의 나무판대기 사이에서 숨겨졌던, 여기 포트폴리오 판에 수록된 "Young mgician"의 드로잉이었다. 

이 드로잉은 버딕의 다른 그림들과 크기면에서, 테그닉면에서 동일작이었다.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사인은 없었으며 하단에 타이틀과 설명이 있었다. 이 드로잉의 제목은 또 다른 이야기인 Missing In Venice"와 같았다. 나는 이 드로잉이 버딕의 작품임을 확신한다. 


  

포트폴리오 표지

 

문지에 실리지 않는 그림, 고서적상에 의해 발견된 그림을 알스벅가 포트폴리오판으로 내면서 다시 그렸다.

 
 

표현력이 기 막힐 정도로 멋지다. 알스버그가 빛을 묘사한 장면을 볼 때마다 느낄 수 있는 숨 막힐 듯한 정적과 고요함은 더 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다. 저 소녀가 받는 자연광과 밑의 인공적인 조명의 빛 중 어느 것이 더 그의 묘사력이나 표현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진이 아니고 실제로 보면 정말이지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그의 빛의 표현력은 놀랍다. 특히나 인공적인 조명의 빛의 표현은 이 작가를 따라갈 그림책 작가가 있을까? 저 빛에 빨려들어갈 듯 압도된 느낌이다. 

사실 이 작가는 우리나라에서 인기가 없다. 거의 팔리지 않는 작가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그의 그림책이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수준의 작품도 아닌데다,  상당히 난해하고 정적인 이미지는 동적이며 귀엽고 앙증맞은 유아 수준의 다른 그림책들에 비해 아이들에게 딱 맞아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그의 그림책이 고학년(심지어 고등학생들도) 수준에 맞지만, 그림책은 아이들 것이라는 속 좁은 편견이 사회에 전반적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그의 수준 높은 그림책을 접할 수 있는 아이들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일게다. 

알스버그만큼 아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가가 몇 이나 될까? 그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나 <압둘가사지의 정원>을  읽고 반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없다면 그 아이가 가질 수 있는 독서체험은 고속도로스타일의 독서 일 수 밖에 없다. 빠르고 급히 서두르는 읽기의 의무밖에 남지 않을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호기심을 가지고 그의 작품을 읽어나가면, 그가 제시한 반전에 빙그레 웃지 않을 수 없고 반전의 결말에 대한 호기심으로 며칠을 고민할 것이다.   

그의 예술적 경지의 그림과 지적 유희에 한번 도전해 보시라. 당신이 성인일지라도.  

덧; 예전에 글 잘 쓰는 나귀님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무화과>에 대한 리뷰를 쓴 적이 있다. 그게 아마 2005년 5월경으로 기억되는데, 사실 그 때만 해도 나는 알라딘 서재가 있는 줄, 까막게 모르고 있었다. 그림책 카테고리에 들어와 관심가는 책의 리뷰 읽고 구입하던 시기였지만, 그 때 이 책의 리뷰를 어찌나 재밌게 읽었는지 지금도 확실하게 기억한다. 분명 나귀라고 써 있고 그의 리뷰에는 처가댁에서 얻어 못지 못한 무화과에 대한 글이 장문으로 실려있었고, 그때 그 장문의 리뷰를 읽으면서 얼마나 키득거렸는지, 난 아직도 이 무화과의 리뷰중에서 나귀님의 리뷰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사실 무화과하면 나귀님이 먼저 떠 오른다. 그것도 얻어 먹지 못한 무화과를. 나귀님의 리뷰에 따르면 하루키가 알스버그를 좋아해서 알스버그 일본판은 하루키가 다 번역했다는 일화가 있다는.  밑의 책은 하루키가 번역한 알스버그의 일본책들. 더 찾으려다가 귀찮아서.... 하루키가 르귄, 카버, 팀 오브라이언, 챈들러등등 번역한 게 창작품보다 더 많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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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진화 - 최초의 언어를 찾아서
크리스틴 케닐리 지음, 전소영 옮김 / 알마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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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은 갈릴레오였다. 그는 24개의 자음과 모음으로 한정된 알파벳만으로 무한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챘던 것이다(촘스키 사상의 향연 p167) 실제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는 자음과 모음, 기껏해봐야 24개의 조각들이 단어를 만들고 문장을 만들어 표현하는 것이다. 그 조각 모음은 실로 놀라운 무한 표현력을 발휘하면서 우리를 동물과 다른 개체로 구분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늘상 우리가 말하고 쓰는 언어에 대한 중요성을 자각하지 못한다. 만약 언어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의 표현 수단은 몸짓 언어와 그림 언어로 대체될 것이고 아무래도 표현 능력은 한정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인류 발전은 꿈도 못 꾼 채, 어느 숲 속 나무줄기에서 늘어지게 낮잠자는 삶에 만족하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그런 일상도 나쁜 것도 아니지! 하지만 그 재미난 책을 못 읽어!). 그렇다면 언어는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 이 책은 그 언어의 기원을 말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언어학은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 지배적이었다. 그리고 지금도 언어학에서는 대세이다. 그런데 지금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을 반격하는 또 다른 언어론이 등장하며 서로 언어학의 새 지형 판도를 짜려고 시도하고 있다.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은 인간은 누구나 언어문법을 타고 났다고 생각 한다. 그래서 우리가 만 두돌이 지나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런 생성문법론에 반격을 가하는 사람이 스티븐 핑커와 폴 블롬 그리고 촘스키의 한 때 제자였던 필립 리버만이다. 새로 등장한 핑커와 블롬, 그리고 리버만의 언어학도 진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촘스키의 진화론적 언어와 다른 점은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은 굴드의 진화론적 관점에서 서 있다는 것이다. 언어를 인간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갑작스레 생긴 부산물로 본 것이다. 반면에 핑커와 블룸은 언어가 순차적으로 진화했다고 보는 도킨스의 적응주의 관점에서 보았다는 점이다. 그들은 언어는 본질적으로 순차적이라고 생각한다. 순차적 의사 소통의 기초 단위는 명사와 동사, 그리고 이들을 하나로 엮을 때 사용하는 구조와 소리의 규칙이라고 본 것이다. 그리고 리버만은 우리의 뇌 속에 언어를 담당하는 기관이 따로 존재한다고 보는데, 퍼그슨씨병이나 뇌를 다친 사람들의 임상실험에서 그는 우리의 뇌 속의 기저핵이 언어를 담당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개인적으로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나 핑커의 순차적인 언어론에 대해 어떤 이론이 맞다, 안 맞다 할 능력은 없지만 아이들을 키우면서 관찰한 결과 촘스키의 생성문법론도 그리고 순차적인 언어론도 다 일리는 있다고 본다. 아이를 기관에 맡기느니 그 돈으로 책 사자! 주의여서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다른 엄마들과 많았던 나로서는 아이들의 언어를 자세히 관찰 해 볼 기회가 많았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 목을 가누고, 뒤집고, 기고, 앉고,서고, 걷고 순차적으로 누구한테 배우지도 않는데 본능적으로 한다(아, 그럴때마다 그 환희란...)  

그리고 언어를 하는 데 있어서 정말이지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을 지지하지 않을 수가 없다. 아이들은 한살 무렵부터 엄마라는 한단어를 시작해 불과 몇 달 사이에 신기하게도 문법적으로 체계를 갖춘 언어를 말한다. 빠른 아이들은 두 돌이 되기도 전에 어른을 능가하는 말들을 한다. 말이 늦는 아이들은 몇년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갑작스레 말문이 터지면 완벽하게 문법적으로 맞는 말들을 쏟아낸다. 그러다가 점차 자라면서 순차적으로 언어의 단순한 의미에서 추상적인 사고의 언어가 가능해 진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세심한 리스닝의 세계가 열려 있다고 보는데, 이 책의 저자에게서 그런 추론을 확신할 수 있었다. "아기는 부모의 언어를 배우면서 자신이 노출된 언어에 맞게 소리의 레퍼토리를 조정한다. 그들은 모국어의 소리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억양패턴도 구사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커가면서 다재다능한 발음능력을 확실히 잃어버리므로 결국 어떤 언어의 소리는 발음할 수 없게 된다(p217)"  

아이하고 영어 공부를 하면서 더욱더 촘스키의 생성문법을 실감하는 것이 아이에게 처음엔 파닉스 위주의 영어를 공부하게 하였는데,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영어그림책으로 통문장 위주로 영어공부를 함께 하는데 이게 명사 위주의 파닉스보다 휠씬 더 효과적이었다. 길어서 혹시 잘 따라오지 못할까 걱정스러웠는데, 문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그리고 듣는 것도 더 효과적으로 영어문장을 더 잘 이해한다. 리스닝도 그렇고 문장을 따라 읽는 것도 파닉스보다 더 세심하게 듣고 잘 읽는데, 얼핏 아이하고 영어공부를 하며서 아이들에게는 언어를 쉽게 받아 들일 수 있는 뭔가가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더랬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짧은 문장에서 긴 문장으로 옮겨가는 데 있어서 아이가 받아들이는데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촘스키와 핑커 이론을 반반씩 이해가 되었다는. 

문제는 이 책이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 가지고 있는 오류, 즉 언어는 어쩌다 우연히 획득한 부산물이라는 관점을 촘스키 자신이 수정하도록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자는 우리 촘스키의 거대한 벽을 함부로 하지 허물어 트리지는 못했다. 촘스키의 생성문법론이 미국 언어학의 막강한 지배 이데올로기인데다 영향력이 큰 좌파 정치학자라는 점을 무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단지 촘스키가 이제 그의 고집을 꺽고 언어의 진화를 말하자고 한다고 한다. 향후 그의 이론이 그가 스키너의 이론을 허물어뜨린 것처럼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의 이론을 뛰어넘지 않는 언어학이 나오지 않는 이상 그의 아성을 무너뜨리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굴드의 발생학 진화가 흔들리는 이상, 그의 언어학도 수정을 가할 때가 된 것은 아닌가 싶다.  

개인적으로 이 책 무지 재밌게 읽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아이들의 말문이 틔였을때의 그 신기함때문에 언어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알파벳 그림책에 관심을 가져 수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어느 정도 호기심이나 의문을 해결해 준 책이었다. 만약 언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그림도 그리고 음악 같은 문화를 심오하게 추상적으로 표현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 언어는 극궁적으로 소통이 목적이기도 하지만 무한한 표현 수단이기 때문이다. 언어세계의 생물학적 진화에 혹은 언어에 관심을 갖는 분이라면 강추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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