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Madonna - Celebration [2CD Deluxe Edition]
마돈나 (Madonna) 노래 / Warner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27년간 10장의 정규앨범중에서 히트곡만을 뽑아 낸 앨범이다 보니 선정된 곡들은 그런대로 들을 만하다. 단지 세월의 감각을 못 속이는 게, 데뷔 초기의 곡 holiday 나 everybody는 27년이 흐른 지금 듣고 있자니 약간 촌티난다고 할까나. 정성드려 차린 식은 밥과 국같다. 물론 Into the groove은 지금 들어도 신나지만. 여하튼 데뷔 초부터 이 앨범의 신곡을 한 자리에 모아놓으니, 27년 동안의 그녀의 음악적 변천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센세이션하게 Like a virgin을 외치며 나올 때부터 그녀의 왕팬이긴 하지만 점차적인 혹은 점증적인 음악적 발전이란 말은 하지 않겠다. 마돈나만큼 휘발적인 팝의 속성을 잘 아는 가수도 없으니깐. 뭐랄까, 그녀의 노래는 팝이라는 말 그대로 유행적이고 일회성이 강하다. 한참 무한반복하고 버려버리는. 

데뷔초부터의 히트곡을 순차적으로 나열하지 않고 최근에 발매된 정규 앨범에서 히트한, 아바의 기미기미의 음을 빌린 Hung up을 A트랙 앞에 내 세웠는데, 그녀가 영국에 살면서 어느 정도 유럽팝에도 관심을 가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던 곡이다. 이번 콜렉션 앨범 중에서 특이한 것은 신곡 두 곡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한 곡은 영국의 DJ 폴 오켄폴드와 공동 프로듀스하여  빌보드 1위를 차지한 celebration. 흔히 말하는 클럽음악이라는 것인데, 댄스곡답게 어깨 들썩이며 듣기에 신나는 곡이 아닌가 싶다.또 한곡은 revolver. 개인적으로 celebration 보다 이 노래가 더 좋다. 인트로 부분은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If u seek army의 인트로 부분과 흡사한데, 가벼운 보이스(공기보다 가볍다고 표현하던데, 난 가창력 캡이라는 휘트니나 머라이어보다 그녀의 그 가벼운 목소리가 좋다)의 마돈나의 톡톡 튀기기듯 하는 고음과 저음의 음색을 바꿔가면서 다양하게 부르며, 특히나 피처링 Lil Wayne의 감정을 잘 살린 음색이 이 노래를 한층 더 재밌게 만들고 있다. 아~ 웨인의 익살스러움과 능청스러움이란. 흑인 특유의 익살스러움과 능청스러운 액센트가 섞인 피처링은 무한반복해도 질리지 않는 대목. 

세월의 감각을 감안한다면 이 앨범은 절대로, 절대로 15000원 돈이 아깝지 않다. 오히려 그녀의  히트곡이 다 못 들어가 있어 서운하다면 서운타. 게다가 앤디 워홀 스탈의 브로마이드도 부록으로 준다잖아! 마언니가 누구인지 궁금한 10대나 20대라면 이 시디는 마돈나의 입문서로 이 보다 더 좋을 수는 없다. 물론 왕팬답게 난 그녀의 정규 앨범 다 가지고 있다. 하지만 초기의 앨범 3장은 LP로 가지고 있다는 거. 그래서 약간의 고심끝에 질러버렸다. 게다가 벅스까지 가서 음원까지 다운받고(알라딘도 음원장사해라!). 운동 다닐때마다 마돈나의  revolver와 브아걸의 sign 무한 반복중~~ 발걸음이 너무 가볍다. 운동이 이렇게 흥겨울 줄이야. 이게 다 언니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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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0-04-28 2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언니~ 영원불멸 마언니.. 어느 누가 그녀를 따라할수 있을까요^^

기억의집 2010-04-29 15:52   좋아요 0 | URL
아마 마언니정도급의 팝 아이콘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장담해요. 있다면 현재 레이디 가가 정도, 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가가가 워낙 작곡 실력과 퍼포먼스가 뛰어나 생명력이 길 거 같기는 한데 마언니처럼 30년정도 팝를 지배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scott 2010-04-29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가 매력 만점이죠. 작곡 실력이 탁월해서 정말 오랫동안 활동했으면해요. 요즘 노래들 식상한데.. 가가 따라하는 가수들 보면 안쓰러워서 ㅋㅋ
 

예전에 로버트 레드포드, 페이 더너웨이 주연의 <콘돌>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시드니 폴락 감독의 75년작인데, 뒤늦게 우리나라에서는 80년대 후반 아니면 90년대 초반에 개봉했거나 아니면 비디오로 출시되었을 것이다. 이 십년 전, 그 때에도(물론 지금도) 페이 더너웨이는 <보니와 클라이드>의 명성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이 영화도 로버트 레드포드라는 아이콘보다 보니역을 맡았던 페이 더너웨이의 보니 아이콘에 끌려 선택한 영화였다고 기억된다.  

솔까해서 <콘돌> 줄거리도 캐릭터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이 영화의 한 장면, 이십년이 넘어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는데, 바로 저 장면 로버트 레드포드와 페이 더너웨이의 섹스 씬이다.  흐흐흐  이십년이 넘어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한다면 이 아줌마가 참 주책이지 싶은데, 그게 참.... 그 섹스씬을 기억하는 이유가 두 남녀주인공의 19금의 야하디 야한 노골적인 섹스 씬이라든가 아니면 세계 영화사에 길히 남을 만큼의 파격적인 혹은 아름다운 정사씬이어서 그런게 아니고 그 두 남녀 주인공의 첫 만남에서 섹스까지의 과정이 참 흥미로웠기 때문이었다. 암튼 두 주인공이 섹스를 하게 된 대강의 경위는 이렇다. 로버트 레드포드가 누군가에서 쫓기는 과정에서 페이 더너웨이를 만나고 그는 그녀와의 첫 만남에서 자신이 쫓기는 처지임을 그리고 왜 쫓기는 지를 말하고 나서 둘은 첫 눈에 불꽃이 튀기듯 튀겨 서로에게 이끌려 잠자리에 드는데, 이런 우라질! 성적인 면에서는 꽉 막혔던 나로서는 불과 몇 시간만에 원나잇스탠드 분위기를 도저히 이해할 수 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도대체 왜? 일측일발의 쫓기는 순간에 한가롭게 섹스나 하고 말이야, 로버트 레드포드 쫓기는 몸 맞아!  지네들이 만나봤자 2,3시간이구만, 그 짦은 시간에 심각한 대화 몇 마디 나누고 서로의 처지를 이해했다고  저래도 되는 거야. 궁시렁 궁시렁거렸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생각해 보라. 두 남녀가 잠깐 동안의 이야기 후 생뚱맞게도 이어지는 장면이 섹스씬이라면, 당신이라면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 땐 그 장면이 불필요한 장면 혹는 영화의 흥행을 위한 눈요리라고 생각했다. 섹스 심벌로서의 보니와 선댄스 정도.  

그러나 막 20살로 접어들 무렵에 봤던 그 영화의 이해불가 섹스 씬은 나중에 나이가 들어 이것저것 다양한 책을 읽고 나서 섹스 자체가 최고의 긴장완화제라는 것을 알았고 그들이 왜 그 상황에서 섹스를 하게 되었는지를 알 게 되었다.  극도의 신경이 최고조에 달할 때의 섹스야말로 최고의 이완제라는 것을 말이다. 나이가 차면 알게 되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고 누가 그러더만. 그 때처럼 그 말이 와 닿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아뇨, 틀렸어요. 프로 같은 거 아니에요. 변태도 아니고. 그 냥 일반 시민이에요. 지극히 평범한 인간이 그냥 솔직하게 이성과 성행위를 하고 싶을 뿐이라구요. 특이한 것도 아니고 지극히 정상적인 거잖아요. 어려운 일 하나 끝내고 해가 저물어서 가볍게 한잔하고 낯선 사람과 섹스하면서 발산하고 싶다구요. 신경를 좀 쉬게 하고 싶어요. 그게 필요해요. 당신도 남자라면 그런 기분 잘 알겠죠?"(135p)  

혹 이 책을 읽고 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서 이 장면에서 므훗할런지도 모르겠다. 나는 일큐팔사의 아오마메편을 읽으면서 문득 예전에 이해불가였던 콘돌의 섹스씬과 그 씬에서 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나온 페이 더너웨이를 떠올리며 아오마메에 빠져들었다. 그렇다고 아오마메와 페이 더너웨이의 이미지가 오버랩 된 것은 아니다. 하루키의 글쓰기가 아마추어 글쓰기는 아니니깐. 하루키의 문장은 똑 떨어지는 맛에 읽는다.  군더더기 없는 그의 캐릭터 묘사는 비슷한 이미지가 끼여들 여지가 없으며 페이지를 넘길 수록 빛을 발한다.

아오마메는 현관에 걸린 전신 거울 앞에서 옷차림에 빈틈이 없는지 확인했다. 그녀는 거울을 마주하고 한쪽 어깨를 가볍게 위로 쳐들며 <화려한 패배자>에 나온 페이 더너웨이처럼 보이지 않으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 영화 속에서 차가운 나이프처럼 냉철한 보험회사 조사원으로 나온다. 쿨하고 섹시하고. 비즈니스 정장이 매우 잘 어울린다. 물론 아오마메는 페이 더너웨이처름은 보이지 않지만, 약간은 거기에 가까운 분위기는 있다. 적어도 없지는 않았다(일큐팔사 2권, p547)

일큐팔사를 읽으면서 나는 덴고보다는 여성 캐릭터인 아오마메에 휠씬 더 이끌렸다. 덴고를 폄하할 생각은 없다. 덴고는 덴고대로 매력적인 캐릭터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같은 여자로서 덴고보다는 아오마메, 그녀의 심리를, 행동을 더 이해하기가 쉬웠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하루키, 그는 아오마메 캐릭터를 어디에서 얻은 것일까. 덴고야 뭐 같은 남자니깐 그렇다 치고, 여성 캐릭터인 아오마메의 심리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확하게 들어맞는 여성의 보편적인 감성을 상당히 많이 보유하고 있다. 남자 작가가 한 여성 캐릭터를 정확하게 묘사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신발 바꿔신기 정도로만 갖고는 그 정도의 정확한 묘사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내 자신과 대입시켜 하루키가 묘사하는 아오마메의 성격이나 심리에 움찔, 정확하게 들어 맞아 때가 다 있었으니깐. 수십년 동안의 여성 잡지를 빌려다 봤나? 아니면 영화를? 마누라? 젊은 처자들과의 인터뷰? 인터뷰는 젊은 처자들이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자료로는 여성의 보편적인 감성과 심리를 묘사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자료를 근거로 아오마메라는 인물을 창출해 낼 것일까. 일큐팔사의 사건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나의 긴장은 극에 달하고 그 긴장은 심장을 오그라뜨리며 폭발해 버릴 것 같았다. 그 내부적 폭발 움직임이 기이한 사건 자체의 의 전개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생생한 캐릭터 라인 때문인지 잘 모르겠지만, 하루키가 묘사하는 캐릭터는 그의 소설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캐릭터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력적으로 먹혀든다. 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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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가와 상을 타면 평판이 높아져. 세상 대부분의 인간들은 소설의 가치 같은 거 거의 몰라. 하지만 세상 흐름에서 뒤떨어지고 싶지는 않지. 그래서 상을 타고 화제가 된 책은 일단 사서 읽어봐. 작가가 여고생이라면 더욱더 그렇지. 책이 팔리면 상당한 돈이 돼. 돈을 벌면 셋이서 적당히 나누자구. 그건 내가 무리 없이 잘 처리할 거야" 

"무슨 돈을 바라고 이런 일을 하려는 게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문단을 조롱해주자는 거야. 어둠침침한 동굴 속에 오글오글 모여서 서로 칭찬하고 핥아주고 서로의 발목을 붙들고 늘어지면서 한편으로는 문학의 사명이 어쩌고 저쩌고 잘난 소리를 주절거리는 한심한 자들을 마음껏 비웃어주고 싶어. 시스템의 뒤통수를 치고 들어가 철저히 조롱해 줄 거라고. 유쾌할 거 같지 않아?"

하하하, 하루키가 문단 경력 30년이 되도 아쿠타가와 상은 못 받은 것으로 아는데, 하루키가 단단히 일본문단에 삐졌나보네.  카프카상 이후, 매년 노벨문학상까지 거론된다는 하루키도 자국 문단에서는 찬밥 신세라 이 말이지. 상이 뭐 별건가 싶은데, 하루키도 나이가 드니 좀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는 순수문학자들이 아니꼬운가. 하루키의 경우는 아는 분의 말에 의하면 미국 서점에서도 외국코너가 아닌 서점 중앙에 꽂혀 있을 정도로 인지도나 인기면에서 상당하다고 하던데 말이야. 근데 어쩜 저동네나 이동네나 문단이 돌아가는 사정은 쌍동이처럼 똑같은지 몰라. 서로 칭찬하고 핥아주고 약간의 비난의 소리만 들어도 신경질내면서 비난자를 합세해서 공격하고 따 시키고.... 역시 세를 만드는 게 중요해. 

나도 역사책 읽는 게 좋아요 역사책이 가르쳐주는 건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기본적으로 똑같다는 사실이지요. 복장이나 생활양식에 약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우리의 인간이 생각하는 것이나 하는 일에는 그리 큰 변화가 없어요. 유전자 입장에서는 인간이란 결국 단순한 탈것에 불과하고 거쳐가는 길에 지나지 않는 것이에요. 그들은 말이 움직이지 못하면 또다른 말로 바꿔타듯이 세대를 건너 우리를 타고 건너가지요. 그리고 유전자는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이냐하는 건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행복하건 불행하건 그들은 알바 아니지요. 우리는 그저 수단에 지나지 않으니까. 그들이 고려하는 것은 무엇이 자기들에게 가장 효율적이냐는 것뿐이에요(436p). 

노부인의 말처럼 만일 우리가 단순히 유전자의 탈것에 지나지 않는다면, 어째서 우리 인간 중 적지 않은 자들이 그토록 기묘한 형태의 인생을 살아가는 걸까. 우리가 심플한 인생을 심플하게 살고 쓸데없는 건 생각하지 않고, 그저 생명유지와 생식에만 힘을 쏟으면, DNA를 전달한다는 그들의 목적은 충분히 달성 될 게 아닌가. 인간들이 복잡하게 굴절된, 때로는 너무나 이상하다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종류의 삶을 사는 것이, 유전자에 과연 어떤 메리트가 있다는 것일까(524~525p).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이게 도대체 뭔 말인지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읽다가 걍  내려 놓자,라고 몇번을 망설였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휙 던져버릴 수 없는 매력적인 무언가가 있었다. 그의 유전자에 대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는 유전자에 대한 깊은 통찰력이 없다면 생각해 낼 수 없는 그런 깊이를 담고 있기 때문이었다. 현재의 나는 dna의 숙주일뿐이다. dna는 영원불멸한 존재이며 내 몸 속에 dna를 구성학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dna의 일부일뿐이다. 우리 인간은 dna의 세대와 세대를 이어주는, 스쳐지나가는 탈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리차드 도킨스의 유전자 이론은 실로 놀라운, 감탄스러울 수 밖에 없는 하지만 그의 이론을 읽으면서 현재 살아 가는 나란 존재는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에 대해 깊은 회의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루키가 변했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하루키야말로 인문학적인 세계관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 나 또한 자연과학 책을 탐독한지가 얼마 되지 않아 그의 전 작품들에서 자연과학적 세계관이 얼마나 표출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일큐팔사 읽으면서 틈틈히 그의 전작품을 뒤적여보고 있지만 자연과학적인 세계관이 드러난 대목을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했다. 일큐팔사에서 그는 리처드 도킨스의 유전자 이론을 무단 사용하고 있으며, 그의 관심타가 진화론으로 발전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들이다. 게다가 도킨스의 무종교의 강조와 일큐팔사가 다루고 있는 사이비 종교에 대한 대비는 암시하는 바가 크다. 2권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겠지만, 하루키가 강조하는 것이 도킨스처럼 무종교성인지 아니면 종교에 대한 구원인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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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 시절부터 책을 좋아했고 좋아하고 있으며 어쩜 나이 들어 눈이 침침해 글자 한자 들여다 보는 것이 힘들어도 좋아할 것만 같다. 오랜 시절 나와 함께 있어 준 벗과 같은 책. 책만은 이상하게 바람둥이 기질을 타고 나서 그런지 내 인생의 독서 이력은 그 때 그 때 다르며 좋아하는 작가들도 유행에 따라 따르다. 물론 내 맘속의 영원한 작가들이 몇 몇 있기는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책이 없던 때라 책을 읽을 만한 곳을 찾아 다니며 세계문학이든 만화든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읽었었고 오로지 한국 작가들만 편애했던 스무살 시절도 있었고 현재는 아이들하고 부딪히면서 살아서 그런지 그림책이며 자연과학서적등 잡다한 분야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몇 년 후에는 또 어떻게 변할지 미래의 독서는 미지수로 남아있지만. 

 

며칠 전에 국내도서 칸에 들어가 흝어보다가 오정희 선생의 새책을 발견하였다. 물밀듯 밀려오는 오정희 선생의 문체에 대한, 묘사에 대한 그리움. 불현듯, 아 그렇지, 오정희 선생은 한 때 내 20대때의 여자였지,하는 생각이 들더라는. 언제였는지, 어떤 계기로 그녀의  <바람의 넋>을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 중편소설에서 뿜어져 나오는분위기. 해질 녁 초겨울의 바람처럼 차가운 듯한,  텅 빈 쓸쓸한 분위기가 내 몸을 휘감아  미친듯이 그녀의 작품들을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여주인공과 같은 분위기를 타고 느낄 정도로 강한 문장을 가졌으며 그 강인함은 기시감이 형성될 정도(강하다고 해서 남성적 문장이라는 말은 아님!). 이상하게 <바람의 넋>의 줄거리는 십년이 휠씬 지난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 만큼 그 소설 속  여주인공의  처절한 트라우마를 강렬하게 묘사했다고 할 수도 있겠다. 독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글을 쓰던 분인데, 몇 년전에 선생은 수필집<내 마음의 무늬>에서 글이 더 이상 잘 써지 않는다고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랬던가. 나는 그 이후로 오정희 선생의 작품은 검색하지 않었고 우리 소설에는 더더욱 관심 가지지 않게 되었다. 공지영씨가 오정희 선생의 작품이 너무 좋아 무작정 춘천으로 기차 타고 떠났을 정도라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나 또한 선생의 젊은 시절의 글은 내 20대 시절에 바람의 넋처럼 귓가에 맴돈다.   

 

고등학교 시절, 소설가 양귀자을 알게 된 계기가 <학원>이라는 잡지에 실린 <유황불>이라는 단편이었다. 그 단편소설속의 여주인공 소녀와 비슷한 경험이 있었던 터라, 애정이 많이 가는 소설이었고 그 애정은 스물 살이 넘어도 식지 않았다.  

양귀자 선생의 <지구를 색칠한 페인트공>은 정확하게 내가 스무살의 겨울 무렵에 나왔던 연작 소설집이었다. 스무 살의 겨울 어느 날, 교보문고에 가서 <지구를 색칠한 페인트공>의 표지를 들취보았다가 내용이 너무 따스하고 훈훈해 사 가지고 왔던 책인데, 연작내용은 동네골목에서 일어날만한 아주 작은 소재의 따스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 책은 양귀자 선생이 문지에서 계속 책을 내다가 남편이 따로 독립해서 차린 살림이라는 출판사에서 처음 출간해 대박을 터트린 소설로 아는데,  양귀자 선생은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가이다. 내가 아는 한 그녀만큼 글을 따스하게 쓰는 작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선생의 작품 초기 시절만 해도 가식적으로 사람의 팍팍한 맘을 치유해주는 그런 따스함이나 보듬음이 아니고 문체 자체가 따스했었다. 그런 선생이 변한 것이 그녀의 단편 <곰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건축가가 어떤 집을 지을까 고민하다가 이제 내 손으로 지어야지 하고 결심한  결심한 <곰 이야기> 이후 선생은 좀 더 돈이 될 수 있는 작품을 연달아 내 놓았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돈이 될 수 있는 상품을 내 놓은 게 나쁘다거나 변절했다는 것이 아니다. 단지 선생만이 가지고 있던 따스한 스토링 텔링이 사라지면서 점점 선생의 작품을 안 사다 읽게 되었다는 것.  

 

푸하! 배수하하면 사과부터 떠오른다. 그녀의 첫 작품집 문지에서 나온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를 동네 시장의 서점에서 사고 나오면서 옆 과일가게에서 파는 빨간 홍옥을 까만 비닐에 한아름 사 들고 온 기억이 나기 때문이다. 난 사과를 그것도 푸른 사과도 부사도 아닌 새빨간 홍옥을 무지 좋아한다. 9월 말쯤 나오기 시작하는 빨간 홍옥을 껍질채 한입 한입 배어 먹은 그 맛이란. 친정엄마는 시다고 질색팔색을 하지만 난 그 짜릿한 신맛이 입안 가득 채울 수 있어 홍옥을 좋아한다. 이 작품을 읽고 그녀의 신끼 있는 작가 사진을 보고 애사롭지 않는 모습에 작품보다 배수아라는 인물을 더 좋아했던 것 같다. 한동안 그녀의 작품을 사 다 읽다가 한동안 그녀가 유학인가 뭔가 가 있는 바람에 작품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 요즘 검색해보면 번역도 하고, 소설도 쓰고 하는 것 같던데. 요즘은 구입하기가 망설여진다.    

 

오히려 우리 시대에 직접적으로 5.18을 말하기란 쉽지 않았다. 알고 있지만 모두가 암묵적으로 침묵을 지키며 쉬쉬 거렸다. 왜곡된 모습으로. 십년 정도가 흘러서야 그리고 정치적으로 묶인 매듭이 느슨해지면서 5.18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조금씩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5.18과 마주 선 작품이 바로 최윤 선생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였다. 상처난 역사의 아픔을 여린 감수성으로 풀어내어 더 감정적으로 다가온 작품. 최규석의 100도시 보다 더 먼저 청소년들에게 권장하고 싶은 소설이다. 불문학 전공자가 이런 소설을 썼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고 우리의 비어 있는 역사를 채우기 위해 애쓴 흔적이 남아 있다. 사실 그 때는 그런 생각 못했다. 그냥 이 소설에서 최 윤 선생이 바라 본 5.18의 비극성에 호감(?)이 갔을 뿐이었다. 최윤 선생이 썼던가. 자신의 방의 네 면은 책을 위한 공간이라고. 지금은 뭐하시는지 모르겠다. 이상문학상도 탔던 것으로 아는데, 활동의 폭을  점점 줄어들어 활동을 안 하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 내 경력은 이 소설 하나면 됐다, 싶어 주춤거리고 있는지. 

언제부터인지 점점 우리 소설과는 거리감을 두고 지낸다. 일년에 한 두권 읽으면 많이 읽는 정도. 소설이 짊어진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 혹은 너무 가벼워서 일 수도 있고. 소재나 주제가 매 그 밥에 그 나물이서 질려서 물린 상태일 수도 있겠다. 아니 어쩜 내 나이가 젊은 처자들의 심오한 세계를 이해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고. 난 좀 새로운 스탈의 글쓰기나 주제를 원하는데 그들이 젊은 혈기임에도 밀리는 것 일수도 있고. 여하튼 내가 물고 늘어질 만한 우리 소설가를 발견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다. 한 때 내가 좋아했던 소설가들이 참신한 기법으로 글을 쓸 일은 만무하고..그리고 그들도 젊은 날처럼 글을 쓰지 않는다(그리고보면,  하루키옹 참 대단하네!). 이제는 우리 소설을 꼭 읽어야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읽을 책이 산더미 같은데, 이 나이에도 우리 것을 애용하자는 표어는 좀 무리 아니겠는가. 그래도 마음 한 켠에는 내 맘에 쏘옥 드는 작가 한 명쯤 발견하고 싶은 맘은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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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10-04-27 20:24   좋아요 0 | URL
한국소설이 읽었던게 까마득한 옛날이에요. 언제부터인가 한번 읽어버리면 내용도 잘기억이 나지 않는 일본소설들만 잔뜩 읽고 있어요.

기억의집 2010-04-28 14:53   좋아요 0 | URL
저도요. 한국 소설은 가뭄에 콩 나듯이 사서 읽어요. 전 이상문학상같은 상에 더 열받아서 한국문학은 애시당초 가망이 없다고 접었어요. 지네들끼리 돌려가면서 타 먹는 이상문학상, 자멸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scott 2010-04-28 20:18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자기네들 끼리 읽고 수상작 결정하나봐요. 대중성이 아닌 문학적 가치 '비문'에 가치를 둔다는데 흠 재미없는건 사실이죠. 기억의 집님 말처럼 자기네들끼리 돌려가며 타고 노벨문학상 후보작 운운하는것 같아요.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웃음과 망치와 열정의 책 책 읽는 고래 : 고전 5
진은영 글, 김정진 그림 / 웅진주니어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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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고등학교 때 무턱대고 읽었던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책들이 생각이 났다. 하지만 멋모르고 읽었던 니체의 책들은 그의 전체적인 사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려 놓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사실 니체의 철학책들은 어느 정도 나이가 차도 읽기가 버거운 것은 사실이다. 철학이라는 게 달랑 그 사람의 사상만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고 그가 살았던 시대를 알아야 하고(사실 난 세계사를 좋아하긴 했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몰랐고) 그 시대의 생활상이나 사상 시스템이 니체에게 어떻게 영향을 끼쳤는가에 대한 것같은 기본적인 지식이 있어야하는데, 그 땐 어떻게 책을 읽어야하는지, 처음부터 어떻게 시작해야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잘 몰랐다. 주변에 독서 가이드를 지도할 만한 선생님도 없었고 독서 가이드라고 할 만한 책도 없었기 때문이다. 몇 십년 전의 출판 시장을 현재의 출판물과 비교한다는 자체가 무리인 것은 알지만, 과거의 출판물들과 비교할 때 요즘은 어린이들을 위해 만든 책들의 범위가 다양하다는 데는 인정해야 할 것이다.

다양한 어린이 책들이 쏟아지는 요즘에 발견한 이 책은 어린 논술 세대를 위해 만든 책이다. 워낙 니체의 사상이 심오하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런 니체의 사상을  논술 때문인지 초등학교 고학년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풀이해서 내 놓은 책이 바로 <니체의 차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라는 책이다. 성인이나 중고등학생들은 쉽게 전체적으로 이해가능하며 초등 고학년은 부분적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좀 무리일 수 있겠다. 니체 사상의 중요한 근간을 이루는 인물인 위버맨쉬(얘전 우리가 읽었을 때는 초인)에 대한 중요하게 다루고 있으면 니체에게 위버맨쉬는 어떤 존재인지 쉽게 설명하고 있다. 니체의 위버맨시는 권력자, 부자같은 계층적으로 상단에 위치에 있는 인물이 아니고 내적으로 외적으로 강한 인간을 의미하는데, 지은이가 니체의 민주적인 위버맨쉬를 설명하기 위한 과정에서 예를 든 범위가 넓어져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니체가 살았던 시대의 가장 큰 과학적 충격인 다윈의 진화론에 대한 언급이 있었더라면,그가 말하는 신은 죽었다라는 의미의 백그라운드가 무엇을 뜻하는지 그리고 그가 왜 신을 버리고 위버맨쉬 사상을 들고 나왔는가 하는 역사적,과학적 배경을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더 좋았을 것을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무래도 이 책의 대상이 누구인지 명확한 상태에서 대상이 대상인만큼 복잡한 배경을 커트시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없지는 않지만. 여하튼 논술 세대를 위한 책답게 이해도는 높은 책인 것만은 확실하다. 처음엔 과연 아이들을 위해 이런 책이 꼭 나와야했을까하는 의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읽고나서 이 책의 수준이 어느 정도 대상을 명확하게 짚어내고 출발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로 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더할 나위없이 권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의 이해도를 바탕으로 그의 원전을 이 참에 읽어치우는 것도 니체의 사상을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기회를 마련 할 수 있다는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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