닐 슈빈을 고생물학계의 빌 브라이슨이라고 말하고 싶다. 인간이 물고기에서부터 어떻게 서서히 진화했는가를 어찌나 쉽게 풀어 설명하는지, 앉은 자리에서 몇 시간이나 붙들고 있었던 책이다. 아이들이 배 고프다고 아우성만 안 쳤다면 하루만에 다 끝낼 수 있을 정도로 분량도 많지 않고 서술 방식이 재밌다. 진화에 관한 학구적인 글만 썼다면 자칫 늘어진 테프마냥 지루했겠지만, 고생물학계의 빌브라이슨답게 적재적소에 개인적인 추억담과 에피소드가 한데 어우러져 쉽게 읽힌다. 게다가 자신의 화석발굴이나 의과 시절을 이야기할 때의 입담이 장난 아니다. 능구렁이 같은 입담이 아니라 빙그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치 있는 말솜씨이다. 글에서 그의 낙천적이면서 외골수적인 성격이 보인다.
한 주제가 다른 주제로 이어갈 때의 이음새가 매끄럽다. 챕터별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에는 자신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게 참 이 책의 긴장감이나 피로감을 풀어주는 역활을 한다. 쉬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야하나. 일단 무겁고 힘겨운 주제의 글을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의 워밍업 정도의 글을 깔고, 본격적인 글의 주제로 들어가는데, 이런 구성의 글이 상당히 맘에 든다. 주제의 촛점을 흐트리지도 않고 신경도 잠시 쉴 틈을 주니 말이다. 논리적이고 깔끔하다. 이런 글이 나올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끊임없는 추측과 가설 그리고 확신이 되풀이 되는 측면도 있겠지만, 어떻게하면 학생들이 알아 들을 수 있게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닐 슈빈의 강의 방법론도 들어 있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원저자의 글 자체가 논리적이고 깔끔한 글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겠지만, 김명남의 번역도 닐 슈빈의 원글을 돋보이게 했다고 인정하고 싶다. 어쩡쩡한 과학책 번역가가 아닌 것 같다. 올해 내가 선정하는 최고의 번역가로 김명남을 꼽고 싶다. 작년에 보더니스의 과학 시리즈 책들을 읽으면서 그 중의 한권인 <시크릿 하우스>라는 작품에서 처음으로 김명남이라는 번역가를 접했는데, 그 땐 보더니스의 글솜씨가 워낙 뛰었나길래 번역가에는 그렇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올해 김명남이라는 번역가가 번역한 세권의 작품을 읽고나서 그저 그런 번역가라는 무개념에서 이, 번역가, 혹 뛰어난 번역가가 아닐까?!라고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
왓슨에 대한 호기심은 완전히 로잘린드 프랭클린에 대한 여성과학자에 대한 짦막한 글을 읽고 생긴 것이었다. 우리는 DNA 구조를 발견한 과학자가 왓슨과 크릭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상 두 과학자가 DNA 모형을 만들 수 있었던 베이스에는 로잘린드의 X - 선 사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그런 사실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진실을 아는 다른 과학자들에 의해 끊임없이 그들의 노벨상 공로 뒤에는 로잘린드가 있었다라고 환기시켜주고 있다는 것이다. 왓슨이 크릭과 DNA 모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로잘린드의 공로를 배제하지 않았다면, 그는 수 많은 과학자들에게 존경받는 과학자중의 한명이 될 수 있었겠지만, 그는 그런 배포를 갖지 못했다. 심지어 그는 위의 자서전에서조차 로잘린드를 신경질적인 여성과학자로 묘사해가며 그녀를 깍아내렸다. 그녀를 똑똑한 여자라고 인정은 했지만 DNA 모형을 만들었들 때의 급박한 경쟁적 상황에서 그녀를 의도적으로 뺀 듯한 느낌이 확 들 정도였다.(여담이지만 로잘린드는 크릭은 좋아해 그의 부인과도 사이가 좋았지만 왓슨은 이상하게 싫어했다고 한다) 여하튼, 그녀의 공로를 인정하지 않으므로써 안티왓슨 과학자들을 만들어 냈고 그들의 노골적인 경멸은 감내해야만 했다. 왓슨의 DNA 모형발견은 분자 생물학의 크나큰 발전을 이끌었으며(윌슨의 자서전 <자연주의자>에서 이런 장면이 나온다. 그가 이끄는 분자 생물학 연구진들이 다른 생물학분야를 얕잡아 보면서 우월주의가 심해 윌슨과의 껄그러운 관계에 대해서도 소개된다), 후에는 뛰어난 과학 행정가로서 산 사람이었다. 젊은 시절에 노벨상을 타면서 분자생물학의 거두가 되었기 때문에 인생의 굴곡은 그리 심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몇몇 에피소드 때문에 그의 인생이 궁금해서 구입한 책이었는데, 이 작품도 그냥 술술 읽혀나가는거라. 읽어보면 알겠지만 결코 어렵게 글을 쓰는 사람은 아니지만 번역문장이 탄탄하면서 문학적이라고 생각은 했다.
그러다가 올 연말에 도킨스의 <지상 최대의 쇼>를 읽기 시작했다. 어머머머, 도킨스의 이 책 또한 김명남의 번역. 내가 2년여동안 도킨스와 윌슨 책 번갈아 가며 읽고 있지만, 도킨스의 책 중에서 이 <지상 최대의 쇼>야말로 가장 술술 막힘 없이 잘 읽히는 책이라 장담한다. 이러면 눈에 안 띄고는 못 배기는 법이다. 읽는 족족히 쉽게 읽히고 좋은 문장을 만났는데 어찌 눈에 안 들어오겠는가, 말이다. 이쯤되면 내가 과학책을 많이 읽어서 쉬운 게 아니라 번역이 잘 되서 쉽게 읽히는 것이 된다. 도킨스가 누구냐? 놀라울 정도의 뛰어난 아이디어로 어려운 책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과학자 아니던가. <이기적 유전자>나 <무지개를 풀며>를 무한반복하여 읽고 있지만 머리 속에 쏙쏙 들어오지 않는다. 여하튼, 존나 어렵다. 3/1 남겨 놓고 있지만, 뛰어난 번역가들 만나서 그런지 도킨스의 글이 너무 친근하게 다가온다. 진화에 관심 있는 분, 이 책으로 먼저 시작하시라. 이 책이 좀 가격이 쎄고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저 위의 <내 안의 물고기>도 괘~안찮다. 이 책은 분량이 많아서 애를 먹긴 하지만 번역만은 다른 여타의 도킨스의 책보다 백배 천배 만배 낫다. 적어도 이 책을 읽으면서 이게 무슨 듣보잡한 말이야, 라든가 에잇, 원서를 읽는게 낫겠어!라는 생각은 요만큼도 들지 않는다. 도킨스가 왠 일로 이렇게 쉽게 썼지?!라고 생각했다면 다 이게 다 이해하기 쉽게 쓴 번역가의 덕이다. 그리고 다음부터 도킨스의 작품은 죄다 김명남씨에게 번역하게 해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최고의 번역이 되어 나왔다. 이러니, 잘된 번역, 원서 전혀 안 부러울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