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말동안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을 읽어 내려가다가 문맥에 맞지 않는 문장을 발견했다. 원저자의 실수인지, 번역가의 실수인지 아니면 인쇄상의 실수인지, 아마 인쇄가 잘 못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펠리시아는 아들이 몇살인지 물었고, 그는 다시 서투르게 지갑에서 사진을 꺼냈다. "메건이 갖고 있는 사진이 더 나아요. 그러니까 요즘 찍은 사진이 더 있어요. 하지만 호텔에 두고 왔대요(137p)."   

<머물지 않는 방>이라는 이 단편은 인도인 아밋과 미국인 메건이 아밋의 옛날 친구 팸의 결혼식에 가 피로연에서 음식을 먹으면서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펠리시아라는 여자와 나눈 대화의 일부이다. 인도인 아밋는 부모님이 정해준 인도인 여자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미국인 메건을 선택함으로써 집안의 축복도, 결혼식도 없었으며 그들 사이에는 딸 둘이 있을 뿐이다. 저 지문의 대화는 같은 테이블에 앉은 펠리리사라는 여자가 아밋의 딸들을 나이를 묻는, 그러니깐 아이들이 몇살이에요? 라고 물어야할 것을, 이자를 빼먹고 아들이 몇살인지 물은, 인쇄할 때 표기된 것이리라. 혹시나 싶어 원작을 보고 싶었다만,  

나의 영어공부 방식은 좀 촌스러운데, 주로 나는 직감적으로 원서가 괜찮을 것 같은 작품은 원서와 함께 번역본도 같이 사서 번역본을 읽고 원서를 읽는다. 이 방식이 영어문장을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혹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인데, 이러면 영어가 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되겠지만 내 경우에는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글이라는 게 일단 많이 접해야 다른 글도 이해할 수 있는 체계이기때문에 영어문장을 많이 접하면 접할 수록 다른 스탈의 영어문장을 읽어내기가 쉬웠다. 영어 쓸 일이 한국땅에서 거의 없으므로 그나마 영어 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영어원서를 읽은 것인데, 이게 익숙한 내 나라 언어가 아니라서 손에 쉽게 잡혀지지가 않는다. 원서를 읽을 때 전문가들은 모르는 단어는 넘어가라고 하는데, 어떤 경우에는 전체적인 이미지가 잡혀져도 세세한 부분은 놓치기 쉬워 원서를 읽은 의미가 퇴색되어버렸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번역서를 읽고 원서를 읽는 방법. 일단 글과 이미지가 어느 정도 잡혀 있어서 그런지 사전 없이도 원서 읽어 내려가는 데 무리가 없다. 게다가 두 텍스트들을 왕래하다보면,  한 작가의 작품을 번역한다는 것은 어느 정도 번역가의 문학성도 같이 번역되는 것이기때문에 원작자와 번역가의 문학성의 근접과, 차이를 한 눈에 알 수 있다. 어떤 경우에는 번역문장이 더 좋은 경우도 있다.  

여하튼 이 작품도 원작과 번역서를 b님께 tt하면서 다 사들여서 원작을 찾아 읽어보려고 했는데, 몇 달전에 사 놓고 쳐 박아 놨더니 원작은 어디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저 탈자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연 이틀을 온 집안의 책들을 다 뒤집고 엎어봐도 찾을 수 없었다는. 아마존 들어가 대강 미리보기로 봤는데 son자 찾아 검색, 저런 문장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탈자가 아닐까나 싶다.   

2. 이 책을 읽고 유부만두님께 책이 너무 괜찮다고 입이 마르고 닳도록 칭찬했더니, 만두님이 걸레 들고 창 닦고 있는 여자가 칼을 들고 있는 줄 알았다고 해서 한참 웃었다. 그 말 듣고 나니  히치콕의 사이코 목욕씬이 연상되었다는. 만두님 덕에 표지를 유심히 보게 되었는데, 한번 더 표지를 들여다보다가 겉표지의 이미지와 책내용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겉표지의 표현방식은 누가 뭐라도 상당히 매력적이라 할 수 있는데, 줌파 라히리는 이 작품의 단편에서 미국내의 인도인들이 겪는 세대간의 갈등, 아니 어떤 단편에는 갈등이라기보다는 이젠 어느 정도 부모세대가 미국스탈을 받아들이는 부분도 포착,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볼때는 원서의 표지가 라히리가 말하고 싶어하는 이야기에 더 어울리는 것은 아닌지.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10-01-15 10:59   좋아요 0 | URL
사실 저도 들고 있는게 칼인줄 알았다는 ㅎㅎㅎ

기억의집 2010-01-15 12:35   좋아요 0 | URL
그렇구나~~ 전 이 책 받아보고 전체적인 이미지가 호퍼 비슷하게 정적이어서 호감이 갔었거든요. 햇빛도 풍요롭구나 싶었고. 전 실물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칼로는 안 보였어요^^

2010-01-15 20: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6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6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0-01-15 23:49   좋아요 0 | URL
아~ 전 이책 사무실 책상에 쌓아두기만 하고 있는데 다들 이렇게 좋다고들 하시니 이를 어째요. 전 정말 무슨 책부터 읽어야 할지 모르겠어요. 기억의집님이 이렇게 칭찬하시니 지금 읽는 책을 끝내면 이걸 먼저 집어들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저 정말 힘들어요. 흑흑 ㅠㅠ

기억의집 2010-01-16 02:06   좋아요 0 | URL
이 작가의 길들여지지 않은 땅, 정말 좋더라구요. 전 요즘 가족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제가 원하는 말들을 많이 쏟아냈어요. 이 책 하루만 잡으면 금새 읽혀요. 그래도 제가 다락방님 심정 잘 알지요. 이 책을 읽으면 저 책이 보이고 저 책을 읽으면 이 책이 보이는....^^ 좋은 주말 되세요^^ 세수도 하지 말고 이도 닦지 않는 그런 편안한 주말!

2010-01-26 16: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27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7 2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21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미국의 좌파 역사학자 하워드 진의 소자서전이라고 할 수 있는 < 달리는 기차 위에는 중립은 없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왜 이 사람은 충분히 기득권적인 백인의 삶을 누릴 수 있으면서도 흑인과 함께 인종차별에 대해 맞서 싸우며 소수 인종의 권리를 획득하려고 하고, 베트남 전쟁을 야기한 권력자와 싸우면서 전쟁에 찬성표를 던진 수 많은 백인들에게 잘 못 표를 던졌다고 몰아부치고, 비리의 대학 행정체계와 싸우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왜 백인으로서 그 당시 50,60년대에 누릴 수 있었던 풍요로웠던 백인 중산층의 삶을 충분히 살 수 있으면서도 그는 그렇게도 불편한 삶을 껴안으려고 했을까? 왜 그는 사선의 경계에서 싸우는 삶을 선택했을까?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기 때문이었다. 다른 절대 다수의 백인들이 그의 행동하는 삶이 불편하다며, 자신들의 기득권적인 삶이 당연하다고 생각할 때, 그는 묵묵히 혼자서 아니 몇 안 되는 동지와 함께 길을 만들었다. 그가 투쟁의 경계에 섰을 때 그에게 등 돌렸을 다른 백인과의 불화, 그리고 그 불화를 고스란히 받아들여야하는 그의 가족들을 생각하면 그가 걸어온 길이 비틀즈의 노래 제목처럼 얼마나 험난하고 구불구불한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는 그 길이 당연할 길이라고 걸었고  거칠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남들이 가진 않은 길을 갔다. 나는 프레이리 호른의 <우리가 걸어가면 길이 됩니다>라는 책의 제목만큼 그의 행동하는 삶을 보여주는 짦막한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의 가는 길이 옳다고 믿고 실천한다면, 세상은 그렇게 많은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실천과 믿음을 그의 전 생애를 통해 그는 보여주었다. 흔히 사람들은 상위 1%가 세상을 움직인다고 말하지만, 나는 또한 세상을 바꾸는 것은 권력자가 아닌 몇몇 힘없는 사람들의 끊임없는 투쟁과 사명감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비록 나는 알라딘 불매를 하지 않았지만, 자신의 불매가 옳다고 믿은 불매자들에게 돌팔매를, 뒤를 돌아 비수를 꽂지 않았다. 불매글들을 읽으면서 많은, 여러가지 갈래의 생각의 길을 보여준 그들을 뒤에서 진심으로 응원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0-01-08 2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12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데저트아일랜드디스크스라는 영국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금주의 손님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무인도에 들고 갈 음반 여덟 장을 고르라는 주문을 받았다. 내가 고른 음반 중에는 바흐의 <마태수난곡>에 나오는 아리아 "나의 마음을 깨끗히 하여"가 실린 것도 있었다. 진행자는 내가 종교인도 아니면서 왜 종교음악을 선택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당신은 마찬가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캐시와 히스클리프가 실존한 인물이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으면서 어떻게 <폭풍의 언덕>을 즐겁게 읽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내가 언급해야 라 요점이 하나 더 있다. 가령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나 라파엘의 <성수태고지>벽화가 탄생한 공로를 종교에 돌릴 때마다 그 점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위대한 예술가들도 생걔를 유지해야하며 그들은 자신이 소속된 곳으로부터 들어 온 작품 의뢰를 받아들일 것이다. 내게는 라파엘과 미켈란젤로가 기독교인어었음을 의심할 이유가 전형 없다. 그 시대에는 그 이외의 대안이 없었을테니까. 하지만 그것은 지엽적인 사항일 뿐이다. 교회가 예술의 주된 후원자가 된 것은 엄청난 부 덕분이었다(137p)


 
미유베 미유키의 <외딴집>을 읽었을 때, 일본은 정말이지 잡신도 많군(웃으며~), 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론 미미가 그리는 에도 시대의 신화 프로젝트을 통해, 일본의 잡신이 시대 권력과 어떻게 융합되어 나약한 서민을 통치할 수 있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비록 한 작가의 상상력의 산물이지만 흥미진지하게 읽었다 (역시 미미여사 쵝오에요. 정말이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런 말이 절로 튀어나오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여사임^^).    

그녀의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궁금했던 것은 여사 또한 잡신의 존재를 믿을까, 하는 것이었다. 과연 그녀은 잡신을 숭배하고 신년 초에 신사에 가서 절을 올릴까하는. 이런 작품을 낼 수 있었던 종교적인 기반이 그녀의 내부에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솔직히 신은 망상이라는 도킨스를 숭배하는 나로서는 미미가 그려내는 잡신이라는 존재에 대해 신뢰를 두지 않지만, 그녀가 이 책에서 잡신을 통해 그려낸 정치 권력의 역학관계는 설득력 있는 놀라운 상상력이었다 점에선 그녀의 역량을 인정한다.  
 
한 일이년 자연과학책을 읽으면서 소설이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말도 안돼! 뭐 이런 억지스런 일이 있을 수 있지?! 과학적으로 생각하면 이런 소설적 상상은 말도 안돼! 이러면서 책을 읽었으니 그게 재밌을리가 없다. 그래서 한동안 소설을 구입했지만 읽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저 미미여사의 <외딴집>읽고 나서,

만약 내가 신을 부정하고 신과 관련된 모든 책, 음악, 미술같은 매체들을 상대하지 않겠어!라고 작정한다면 나는 과연 어떤 작품을 읽고 듣고 봐야하는 것일까? 상당히 선택의 폭이 좁아지는데, 20 세기 이후의 sf소설 아니면 자연과학책이나 쇤베르크같은 현대 음악 아니면 현대 미술로 한정되어진다.  20세기 이전의 컨텐츠의 접근은 차단당하거나 거부해야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상상력이 뛰어난 이야기꾼의 입담을 무시해야하며 신에게 바치는 경건하고 장엄한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포기해야 하면 미켈렌젤로의 시스티나 성당도 코웃음쳐야 한다.

아마도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가장 큰 획기적인 변화는 무신론일지도 모른다. 19세기 다윈의 진화이후, 사람들은 어쩌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의문에서, 신은 단지 권력자가 民을 통치하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통치방법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신의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를 선택하기 시작한 세기이기 때문이다. 20세기 초반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이러한 신의 세계를 전면 부정할 수 있는 물리학적 이론의 토대를 마련하는 계기 되었으면 점차 무신론은 전 유럽대륙을 휩쓸고 지나갔다. 
 
20세기만큼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기는 없었으며(닐 슈빈의 <내 안의 물고기> 읽으면서 든 생각은 수 억년의화석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것은 인류 문명이 수 천년을 살았어도 변화라는 것 없이 느리게 발전했구나, 하는), 신이 분열된 세기도 없었던 거 같다. 신을 믿는 것은 바보야,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신의 존재여부는 완전 개인적인 문제이고,  21세기 이전 수천년 동안 우리가 신을 통해 생산해 낸 컨텐츠의 양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단지 신을 믿지 않는다고 지금까지 인류가 쌓아올린 수천년의 작품을 부정하고 싶지도 않고 그깟, 작품들이라고 폄하할 생각도 없다. 신이라는 개념도 어차피 상상력의 부산물이고 그 부산물에서 기대, 작가들의 상상력을 보태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고, 음악을 만들고, 그려내는 것뿐이니깐. 모든 상상력을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독자의 자세 아닌가. 자, 이제부터 작가들이 지어 낸 상상력을 즐겨볼까나(쇼타임!!)~~~


댓글(2)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kardo 2010-01-14 16:50   좋아요 0 | URL
저도 기억의집님 글에 공감합니다. 저도 무신론이지만 종교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예술작품들 모두를 부정하진 않거든요. 보거나, 듣고, 읽을 때 종교 여부를 떠나 즐거움을 줄 수 있다면 좋달까요. 신을 믿지 않으면 즐기지도 말라는 논리는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듭니다. 설마 그 많은 판타지 소설을 사람들이 실제라 믿고 즐기겠습니까.-_-; 그리고 저는 작가 루이스 캐럴이 목사라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좋아하는데요. 그나저나 외딴집 사놓고는 안읽고 있는데 막 읽고 싶어졌습니다;;
음. 알라딘 안 온 사이에 글을 많이 올리셨으니 다 읽으려면 시간이 걸리겠어요.;;

기억의집 2010-01-15 12:33   좋아요 0 | URL
아카도님, 오랜만이에요.^^
모든 상상력을 인정하고 그 속에서 재미를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인생을 풍요롭게 사는 게 아닌지 싶어요^^
외딴집 처음 3/1은 지루해서 침 질질 흘리며 잤는데 처음 파트 넘어가면 속도 무진장 붙더라구요. 재밌게 읽었어요. 미미는 저렇게 권력이 만들어가고 유지될 수 있는 시각을 만들어주는구나 싶었어요.
이번에 팀버튼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영화 만들던데... 팀버튼식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급 당겨요^^
 

같은 반 친구들이 종교활동을 이유로 매주 수요일 오후 각자 자기 종파의 교회로 가고 난 다음, 담임선생님과 함께 세익스피어를 읽은 기분은 어떨까?  미뤄 짐작해 보건데 그리 유쾌한 기분은 아닐 것이다. 어른인 나도 세익스피어의 작품은 축약본이나 영화로 보았지 완독을 한 작품이 없다. 하물며 어린 맘에 진득히 앉아서 세익스피어라니(이 소년에게 축복을)~~. 여하튼 이 책의 주인공 홀링 후드후드은 선택권자가 아닌지라 처음엔 지.루.한 세익스피어 작품이나 읽으면서 수요일을 보낼 생각에 떨떠름했다가 점차 세익스피어의 매력에 흠뻑 빠진다(뭐 이야기가 다 그렇지 뭐!)

한 소년의 성장을 다룬, 얼핏 전체적인 줄거리 덩어리는 단순해 보이는데 이 책의 저자 게리 슈미트는 소년의 성장의 배경속에 숨은 그림 찾기 마냥 미국의 68년을 담고 있다. 베트남 전쟁으로 야기된 주인공 소년 홀링의 골수 공화당 지지자인 아버지와 민주당 바비 케네디를 지지하는 누나와의 정치적 대립과 분열은 68년 그해 미국에서 일어났던 좌/우 세력의 인종적, 정치적 분열을 그려내고 있으면 마틴 루터 킹, 바비 케네디의 암살이 당대를 살았던 어린 세대들에게 어떻게 비추고 있는지를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노골적으로 정치적이냐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이 책은 정치적이지 않다. 60,70년대를 풍미한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처럼 작가의 정치적인 언급은 없다. 단지 우리는 홀링의 시선으로 잠깐 잠깐씩 미국의 68년의 정치적 분열을 들여다 볼 뿐이다. 그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시대적 사건의 언급으로만 기억될 뿐이어서 어린 독자들은 놓치긴 쉬울 정도다. 작가의 의도가 정치적 이든 아니든 간에, 슈미트는 이 한권의 작품에 어느 정도 미국의 1968년의 숨은 역사 코드를 잡아내는데 성공했다라고 말하고 싶다.  

미국의 1968년은 미국 정치역사에 있어서 거대한 소용돌이가 몰아친 해였다. 마틴 루터 킹과 바비 케네디의 암살로 촉발된 정치적 분열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때였고 그 여파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과거의 콜롬비아 대학생들의 시위 장면에서 알 수 있다. 작가는 콜롬비아 대학의 시위에 대해서 자세히 말하진 않지만, 홀링의 누나가 콜롬비아 대학을 목표로 하고 있고 딸이 시위의 정점인 대학으로 간다는 말에 아버지는 공산주의 운운하며 반대하는 장면은 당시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성난 젊은 그들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만이다. 작가는 더 이상의 진지한 언급은 회피한다. 그래서 독자는 슈미트가 제시한 한 덩어리의 줄거리에 집착하게 된다. 수요일 오후 혼자 있고 싶어하는 선생님과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의 보호하에 있어야하는 소년과의 관계와 청소년의 풋사랑과 개인적인 관계들에 얽힌 에피소드들 말이다. 소년의 시선 이상으로 개입하지도 않고 객관적으로 미국의 68을 보려고 하고 있다. 그걸 자신의 정치적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이다라고 평가해야할지 아니면 비겁이라고 해야할지 지금 당장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지만, 독자로 하여금 이 책을 읽고 나서 미국의 68년 정치 상황을 찾아보게금 만들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또 하나, 나는 미국 작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에서 팝문화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언제나 눈여겨 보는데, 이 책 또한 당대에 유행했던 음악을 통해 시대의 컨텐츠를 담고 있다. 우리 문학은 적극적으로 대중문화를 한 시대의 시대배경으로 삼지 않지만, 미국 작가들은 적극적으로 자신의 대중문화중에서 팝뮤직을 스리슬쩍 끼워 놓으며 시대의 한 배경으로 잘 써 먹는다. 

그 날이 누나가 저녁을 먹으러 아래층에 내려운 마지막 날이었다. 그 뒤로 누나는 밤마다 접시를 방으로 들고 가서 비틀즈와 그들의 노란 잠수함과 함께 혼자서 저녁을 먹었다.(317p) 

그 소식을 들은 뒤 누나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가 버렸다. '엘레나 립'를 부르는 비틀즈 판을 올려 놓고 그 노래를 틀고, 틀고. 또 틀었다.(358p)

이 책에선 60년대 비틀즈의 라이벌이라고 운운했도 했던 몽키스의 음악도 흐른다. 매번 미국 문학을 읽으면서 가장 부러운 것이 있다면 바로 그들의 팝음악이라는 문화적 유산이다. 싼티나고 경박스럽고 유행음악일 뿐이 팝뮤직을 소설 한 자락에 집어 넣었을 뿐인데, 뭐 그리 부러우냐고?  

미국은 수 많은 뮤지션들이 도전하는 거대 시장이고 우리와 달리 음악이 그 시대와 끈끈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틀즈는 60년대 후반을 대표하는 구룹이고 만약 한 소설가가 자신의 작품에 비틀즈의 음악을 끼워 놓았다면, 작가가 제시하는 작품의 배경이 미국의 60년대쯤일 것이라고 대번에 알 수 있게금 만드는 대중적인 아이콘이 되는 것이다. 슈미트는 이 작품에서 정치적 분열의 저편 너머 60년대 미국인들의 일상이 어떠한지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에게 없는 문화적 배경이고 코드인인 셈이다.  

미국은 빌보드라는 수 십년된 음악 차트가 있고 그 빌보드를 통해 시대의 유행 흐름을 어느 정도 꿸 수 있으며 그 과거의 어느 시점에 미국의 평균 대중이 무슨 노래를 듣고 좋아했다는 기록인 셈이다. 놀라운 대중 문화 유산 아닌가. 난 우리나라의 68년에 무슨 노래가 히트를 쳤고 어떤 곡이 사람들 사이에 유행했는지 모른다. 심지어 30년전 부모 세대 음악조차 모른다. 음악 통계를 되는 장수 잡지도 없고 그깟, 삼류음악이라는 개념이 크기 때문이다. 그들의 전통 보존이라는 말로 그들을 추켜세우고 싶지는 않다. 단지 고급과 저급을 나눠가며 보존의 기준을 내세우는 게 아니고 자연스레 보존되고 유지되는 그런 문화 컨텐츠가 있다는 것이 부러울 뿐이다. 비틀즈가 위대해서? 아니다. 비틀즈 뿐만 아니라 다른 뮤지션 또한 미국의 대중음악을 대표하며 어느 정도 영속성을 가지고 있다. 과거의 음악이 오늘 날까지도 라디오에서 전파를 타면서 음악은 후세대에도 되풀이 된다.  

과거 세대와 후 세대의 감성을 연결해 주는 역활을 팝뮤직이 하고 있으며 작가들도 그 끈을 절대로 놓치지 않는다. 작품에 노래가 흐른다는 것만으로, 아니 그 팝음악을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 독자는 작품의 시대 배경을 더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더한 애정을 가지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도 이제 2009년에는 아브라카다브라가 히트한 해,라고 우리 자식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덧 :  번역가들이 노래 제목을 꼭 한글로 번역하는 이유가 뭘까? 노래 원제는 영어로 놔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팝송제목은 사실 고유명사나 마찬가지라고요^^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으로 2010-01-05 19:20   좋아요 0 | URL
아동서에서 지나치게 정치색을 드러내지 않으면서 은근히 깔고 이야기를 풀어낸 책들이 전 좋더라구요. 그래야 애들도 부담없이 읽는데도 좋고요/ 노래 제목 뿐 아니라 가끔 뭐 이런거까지 번역을 하나 싶을 때도 있어요. 그걸 독자에 대한 친절이라 생각하는건지...

기억의집 2010-01-06 10:46   좋아요 0 | URL
미국 청소년문학 읽으면 이런 게 참 좋아요. 작가가 분명한 정치색이 있는데 작품에는 그런 내색을 안 하더라구요. 작년 말에 네 멋대로 써라라는 데릭 젠슨의 글 읽으면서 느꼈어요. 이 양반 완전 좌파면서 강의는 최대한 정치색을 배제하더라구요. 슈미트도 그래요. 작가의 정치적 성향은 민주당인 거 같은데... 최대 배제하더라구요. 배울 점이 많은 거 같은. 이 책 리뷰로 쓸려고 했는데 작년에 읽어서 기억이 가물가물!

전 번역가들에게 물어보고 싶더라구요. 뭘 팝송원제까지 번역해주냐고? 그 음악 듣고 싶어 죽을 똥 싸면서 찾는 독자를 생각하면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솔직히 팝송제목 자체가 고유명사 아닌가요?

saint236 2010-01-06 10:17   좋아요 0 | URL
이제서야 인사를 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세요.

기억의집 2010-01-06 10:49   좋아요 0 | URL
세인트님, 새해 복 감사히 잘 받겠습니다~~(꾸벅)
그러지 않아도 세인트님께 새해 인사 드릴까말까 하다가 참았네요.
올해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여기저기서 세계문집 내느냐고 정신이 없다. 이번에 문동도 세계문학전집 기획해냈던데.. 일단 겉표지는 쉬크하다. 검은 정장옷을 입은 자태라고나 할까나. 쉬크한 겉표지가 다른 출판사의 세계전집보다 호감이 가고,  마리오 요사의<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나 필립 로스의 <휴먼스테인> 같은 작품이 나와줘서 두말 할 필요없이 구입할 생각이다. 그럼과 동시에 이왕 다른 출판사와 차별을 두어 요사나 로스 그리고 겐자부로의 작품을 낼 생각이었다면, 죠셉 콘라드의 <서구인의 눈으로>나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도 이번에 같이 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알기론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예전에 그러니깐 한 25년전쯤(?) 중앙일보사의 세계문학전집에 번역 출간된 적이 있던 것으로 아는데, 그 때 같은 목차에 콘라드의 <서구인의 눈으로>나 미사나 유키오 그리고 겐자부로의 작품들도 함께 나온 것으로 안다. 출판사마다 세계문학이랍시고 내는 작품이 그 밥에 그 나물인지라 사실 세계문학이라고 요란하게 선전을 한들, 독자가 원하는 좀 더 색다른 작품이 없다면 눈길이나 주겠는가. 다른 출판사의 세계문학은 할인폭이 30%나 되는데...쩝. 

   

 

 

 

 

 

 

죠셉 콘래드는 이상하리만치 우리나라에서는 저평가된 작가이다. 거의 무명에 가깝다고 해도 될 만큼. 끽해야 <어둠의 속>이나 <로드 짐> 정도가 세계문학전집에 편입되어 대학생들에게 읽히는 정도. 하지만  영국문학사에서 콘래드의 위치는 제인 오스틴급이다. 그는 폴란드에서 태어나 젊은 시절 바다에서 보내고 나이가 들어서 영국에 정착했기 때문에 영어는 모국어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은 영어로 쓰여진 작가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을 썼다. 인간의 어두운 본성에 맞추어 제국주의를 비판하고(그게 그의 의도건 아니건 간에) 물리적인 폭력에 맞선 인간의 나약함을 그보다 더 잘 묘사한 작가는 없다. 게다가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유형은 어떻고? 그가 <어둠의 속>에서 제시한 쿠르츠라는 인물은 악랄한 약탈자로서의 패러다임을 창조해냈고 수 십년 간 많은 모방자들은 그런 쿠르츠라는 인물을 바탕으로 자신의 쿠르츠를 재창조해내고 있다.  

이거 언제나 궁금했던 건데, 민음사세계문학에서 왜 이 작품을 내지 않는지 궁금하다. 우리 나라 출판 버젼은 청소년용이고 그나마 괜찮다 싶은 게 범우사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범우사는 예전하고 달리 안 댕긴다는 데 문제가 있다. 표지에 비비안 리를 박아 놓든 문동처럼 새까만 쉬크한 표지를 내든 어째든 간에 제대로 된 새로운 버젼(물론 번역도)으로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올려면 멀었을려나.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망으로 2010-01-05 19:24   좋아요 0 | URL
출판사들이 새로운 디자인으로 책을 다시 만들어 내는 것도 좋지만 새로운 책을 발굴하는데 더 열을 올렸음 합니다!! 그밥에 그나물이란 말 나오지 않도록^^

기억의집 2010-01-06 10:38   좋아요 0 | URL
겹치는 책이 많지요. 그 말은 고전이 제법 팔리긴 하나봐요.그래서 우리집 책장을 보고 저의 집에 고전이라고 불릴만한 책이 거의 없다는 사실에 놀랬어요. 고전은 도서관에서 빌려볼래요. 예전에 책 정리하면서 동네신협에 다 넘겨서... 사서 읽고 또 넘길 거 같아서...// 좀 색다른 작품 만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