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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대하는 나의 자세는 한마디로 자유 그 자체다. 특히나 고전에 관해서는 더 그렇다. 난 고전을 꼭 읽어야한다는 당위성을 가져본 적이 없다. 애 낳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고전에 대한 집착은 버렸다. 수백년전 사람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더 글을 잘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사유의 폭이 더 넓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한 종교 통제와 신분 제도에 옭매인 사람들의 사유가 혁명을 거친 우리 시대 사람들보다 더 깊다고 더 넓다고 누가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난 고전을 보는 시선이 자유롭다. 고전은 must read 아이템이라기보다는 나에게 자유선택 사항이어서 그런지 고전이 누르는 무게는 실로 나에게 그리 크지 않다. 난 우리 아이들에게도 고전을 꼭 읽어햐하는 책이라는 중압감을 가진 책으로 인도하고 싶지 않다. 읽을 수 있으면 좋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읽어야 하는 품목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싶다. 하지만 수 많은 책들중에서 고전으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하는 터. 쏟아져 나오는 신간에 정신 못 차리는 나지만 그래도 올해 몇 권의 고전은 찜해놓고 있다. 올해 읽을 수 있다면 좋고 아니면 말고.  게다가 요즘 출판사마다 우후죽순으로 고전문학 전집이 나오다 보니 흥미로운 것은 사실. 그 중에서 몇 권은 눈길이 끈다. 지금 구입한 책도 몇 권 있고 그리고 다음에 구입해 읽고 싶은 고전책들.  

이 책의 표지는 정말 셀렌다. 나는 같은 여자로서 이렇게 하이힐의 뒤태가 섹시해 보일지 정말 몰랐다. 며칠을 고민하다 이 책의 겉표지에 유혹에 넘어가 사서 읽고 있는데, 읽는 내내 위안부 생각이 나 불쾌한 작품이었다. 혹 일본인들도 우리 정신대를 이런 식으로 보지 않았을까. 일본 군대는 정신대를 자신들이 욕망을 합법화할 수 있도록, 정당화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페이지페이지마다 날 괴롭혔으며, 세계적인 작가라는 요사는 도대체 이러한 구상을, 아이디어를 어떤 식으로 얻은 것일까. 혹시나 일본의 정신대에서..별의별 생각이 다 드는 작품이다. 난 도저히 이 책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다. 그리고 객관적으로 보는 것을 거절하겠다. 이제 몇 분 안 남은 99원의 정신대 할머니들이 우리 역사 속에 존재하는 한, 그리고 일본의 사죄다운 사죄를 받지 않은 이상 이 작품을 객관적으로 볼 수도 없으며 객관성의 결여라고 비난하더라도 난 우리 위안부할머니들의 역사편에 서겠다. 

으흑, 이 작품도 뒤태에 반해서..그만.  하얀 레이스 너머 어둠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어후, 나 진짜 궁금해. 너무나 너무나 참을 수 없는 매력의 겉표지. 나름 미영문학의 단편집중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 실린 단편은 생각보다 뛰어난 작품들이 실려있다. 처음 디킨스의 신호수를 읽었을 때만해도  겉표지와 달리 생뚱맞은 시대에 뒤떨어진 단편이나 실리면 어쩌나 싶었는데, 요즘 트렌드에서 맞는 감각의 단편들이다. 개인적으로 조셉 콘라드의 찾아 보기 힘든 단편을 만날 수 있어서 더욱 더 좋았던 작품이었는데, 콘라드의 진보의 전초기지라는 단편이 이문열의 명작산책에 실려 있었지만, 그 땐 별로 사고 싶지 않아 제 아무리 콘래드라도 사지 않고 기다렸는데 이번에 창비에서 콘라드의 단편을 실어주다니, 개인적으론 두께도 그렇게 두꺼운 편이 아니어서 더 이쁜 막내같은 느낌의 단편집이었다. 게다가 캐서린 맨스필드의 재발견.  

 

예전부터 탐내고 있었던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벡의 이 작품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는데, 선뜻 다가갈 수 없는 위력의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20대에 열화당 사진문고중 아메리카, 암흑시대라는 사진작품들을 통해  미국의 대공황 사진들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그 때 워커 에반스와 도로디어 랭의  미국 노동자들의 비참한 삶을 포착한 사진들의 이미지가 드문드문 기억 속에 박혀 있어 사실 이 책을 읽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그들의 절망속까지 내 감정이 이입될까 두려워 읽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어쩜 언젠가 내가 미국의 대공황시기의 그 현실을 묵묵히 바라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할지도 모르겠다. 아, 또 리처드 기어의 영화 <천국의 나날들>인가도 이러한 주제 비슷하지 않았나. 우리는 풍요로운 시대에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죄책감을 더 이상 느끼지 않을 때. 과연 그러한 죄책감이 사라질 날이 올려나 모르겠지만. 지난 번에 교보 나갔을 때 20% 할인이라고 선심쓰듯이 팝업문구 붙어있더니 오늘 알라딘보니 30%씩이나 하네. 

 

1997년도 판이라니. 난 만약에 이번에 출판사들의 세계문학전집중에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나오면 구간으로 기다릴 필요도 없이 신간책으로 사련다. 우리 중고등시절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인기 대단했는데...물론 하이틴로맨스 시리즈와 함께. 하핫. 갑작히 옛날 생각나네. 아이들하고 돌려가면서 읽던 하이틴 로맨스소설들.  지금 돌이켜 보건데, 그 때 정말 괜찮은 국어 선생이 한명이라도 있어 진보적인 독서 지도를 해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책을 보는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깊이가 있지 않았을까. 여하튼 갑작스레 요즘 이상하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을 읽어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리고 있다. 과연 내가 잘 읽을까만은. 마가렛 미첼의 마지막이자 최고의 작품이라는 이 작품을 우리는 영화로 더 많이 알고 있지 막상 책으로 읽은 사람은 몇명이나 될까. 그리고 왜 이영화는 리메이크가 안되지. 비비안 리를 뛰어넘을 수 있는 여배우가 정녕 그렇게 없단 말인가. 흡입력이 대단하다는 이 소설, 제대로 한 번 읽어 보고 싶다.   

이번에 창비에서 나온 세계문학단편집들은 작가들의 배분이 고르다. 이 일본편만해도 생소한 작가가 많다. 시가 나오야나 유리코 그리고 일본에서의 명성은 대단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작품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쭌이찌로오의 단편이 실려있다. 솔직히 오사무 안 실린 게 어디냐 싶다. 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 좋을 줄 모르겠더라, 완전 찌질남. 감성적이고 유유부단한 성격이 작품 속에도 그대로 드러나 독자인 나로 하여금 기겁을 하게 만들었던 작가. 과연 그의 작품이 그렇게 대단하게 취급받을 만한 작품인가 하는 의심이 든다. 내가 일본 평론가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이 작가야말로 핑크빛평론이 만들어낸 명성 아닌가 싶다.  쭌이찌로오의 단편이 한편 수록되어있어 반갑기 하지만, 야스나리는 세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차라리 쭌이지로오의 단편 세편이 실리고 야스나리는 1편만 실려도 되는 것을. 그래도 다른 출판사에도 찾아 보기 힘든 단편이 실려 있어 나름 괜찮은 일본단편집이다.  

그 외에 더 읽을려고 구입한 고전들. 

 

 

 

 

근데 그거 아세요? 문동세계전집이 의외로 쉬크해 보이지만 읽을 때 무지 불편하다는 사실, 겉표지가 옷으로 비유하자면 시스루 같아요. 흐느적 흐느적, 결국에는 표지 휙 떼서 읽게 된다는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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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11 09:27   좋아요 0 | URL
네 알아요, 기억의집님.
회사동료가 문동세계전집 안나카레니나 읽고 있는데 표지가 정말 너무 흐물거려서 오래 두고 못읽을것 같더라구요. 자꾸 벗겨진다고 해야 하나. 겉으로 보기에는 말씀하신것 처럼 쉬크해 보이지만 정말 불편하더라구요. 흐느적 흐느적. 그래도 저는 저 위에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는 사려고 찜해두고 있어요.

창비세계문학선은 표지가 아주 단단하죠. 게다가 하드커버인데도 쫙쫙 잘 펴져요. 아주 잘 만든것 같아요. 저는 지금 창비세계문학선 일본편 읽고 있어요. 일본 다음에는 폴란드를 읽을까 생각하고 있답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저는 재미있게 읽긴 했지만 저 역시 그 작가를 좋아하진 않아요. 저는 작가뿐만 아니라 소설속의 주인공도 너무 우유부단하거나 감상적이면 싫더라구요. 예를 들면 로미오요. 로미오는 뭔가 뭔가...사람이 너무 유약하다고 해야하나.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어요. 셰익스피어는 좋은데 말입니다.

기억의집 2010-02-11 15:50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그렇죠! 정말 흐느적흐느적 껍데기 맞죠! 더 세심하게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같은데 말이죠. 문동에서 나온 세계문집은 휴먼스테인만 사고 민음사나 창비 사려고요. 같은 가격이면 표지가 좀 더 단단한 게 읽을 만 한 거 같아요. 전 창비에서는 <가든파티> 읽었는데 정말 튼튼한 며느리 같았어요. 여기저기 읽다가 쳐 박아 두어도 멀쩡했다는 사실, 하핫.

저의 언니는 나이가 들수록 고집이 세진다는 말이 많이 하는데, 저도 은근 반 동감해요. 꼭 누구나 세진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긍정적인 말로 하자면 자기주관이 확고해지는 거 같아요. 저도 나이 들수록 자기주관이 확고해진다는. 로미오, 걔가 아직 어려서 그럴거에요^^ 하핫!

akardo 2010-02-11 20:42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는 <인간실격> 때문에 우리나라에선 전후작가로 많이 알려져 있는데 그의 작품의 본질을 알려면 전전에 쓴 그의 작품을 읽어봐야 한다더군요. 특히 이차대전 당시 상당히 전쟁을 바라고 옹호하는 소설을 쓴 전적도 있으니......
그나저나 저 판탈레온 어쩌구는 특별봉사대란 말부터가 상당히 기분이 이상야리꾸리했는데 역시나 내용도 별로 기분이 안 좋네요. 흠. 원래 여러 작가들 단편 합쳐놓은 책은 잘 안 읽는데-한 작가 작품으로만 이루어진 작품집을 좋아해서요.- 창비 세계문집을 좋게 보셨다니 관심이 생깁니다.

기억의집 2010-02-12 08:46   좋아요 0 | URL
다자이 오사무가 전쟁을 바라는 소설을 썼군요. 햐아~~ 그 작품 궁금하네요. 오사무 작품은 다시 읽을 생각이 없었는데 그 작품만은 읽어보고 싶어요.
판탈레온은 제목처럼 야하거나 이러지는 않아요. 영화는 어떨까, 한번 보고 싶더라구요. 헤르메스님 리뷰 읽어보니깐 영화도 나왔더라구요. 전 이 작품은 여자와 남자의 시선이 극렬하게 갈리는 작품일 거 같아요. 특히나 군대의 명령체계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요사가 어떤 의미로 봉사대를 구체화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일 거 같아요. 근데 저는 아무래도 여자의 입장으로 읽게 되요. 여기 보면 몇 시간동안 몇명의 남자를 상대해야한다는 그런 글이 나오는데, 여명의 눈동자 생각나고 여명의 눈동자 다시 재조명을 받아야할 거 같아요.
글구 창비 세계문학 단편집 괜찮아요. 저 가든파티 너무 좋았어요. 사실 저는 고전을 읽어,라고 하지 않거든요.우리 애들한테도...(하핫, 그런데 전 우리애들한테 기본적으로 책 읽어,라는 말은 하지 않아요. 읽던말던 신경 안 쓰는 무식한 엄마에요^^) 여러 나라의 낯선 작가들의 단편집을 읽을 수 있어서 괜찮은 거 같아요. ^^
 

2009년 12월 11일, 언제나 나의 구세주인 데이트친구 희망으로님을 꼬셔서 <깐깐한 독서본능>의 파란여우님의 강연회에 갔다왔다. 토요일 오후 5시, 아이들은 애아빠한테 부탁하고 간식은 물론 저녁셋팅까지 끝마치고 아주 가뿐한 맘과 발걸음으로 신촌으로 고고~ 신촌도 많이 변했더라. 애 키우냐고 어딜 싸돌아 다니지 못했더니만 신촌, 정말 오랜만에 와 봐도 청춘의 향연이 물씬 풍기는 장소더라는. 일찍 도착해서 커피 마시면서 희망으로님하고 사는 이야기 좀 나누다가 시간 돼서 강연장소로 향했다. 가면서 혹시 강연회에 많지 않으면 어떡하나? 라는 걱정도 내심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파란여우님의 강연회 전에  최재천교수님이 주관하는 다윈강연회를 다녀온적이 있었는데, 에구에구 나 포험 딱 14명밖에 없었다. 어찌나 내가 더 미안하던지. 강의 내용은 좋았지만 저녁밥을 지어야하는 나는 5시무렵에 일어나야 했는데 발걸음이 정말 안 떨어지더라. 나마저 가면 10명안팎. 강연 끝마무리도 중요하지만 새끼들 밥이 더 중요하므로 어쩔 수 없이 일어나야만 했던, 쓰디쓴 기억과 경험이 되살아나 주말에 많은 사람들이 왔을까, 게다가 날씨가 추워지던 때라 다윈 강연회처럼 사람이 없으면 어쩌지? 했던 걱정이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기우. 강연회 장소에 들어서자 많은 사람들이 와 앉아 있었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 곳에 모였던 사람들의 화려한 스펙트럼이었다. 남녀 구분은 물론 연령대도 어림잡아 20~50대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강연회를 그렇게 찾아 다니지 못했고 게다가 낮강연회만 신청해서 내가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지만, 파란 여우님의 이번 강연회는 내가 경험했던 그 전 강연회장의 분위기와는 확실히 달랐다. 그 전 강연회들같은 경우 젊은 처자들이 주를 이루었지 나이 드신 분들이 아예 없었다. 그런데 파란여우님 강연회는 젊은 처자들도 많았지만 한켠에는 나 같은 중년의 사람들이 많았다.. 그 날 그 장소에서 파란여우님의 인기를 한눈에 실감했다. 

알라딘 파워블러거의 인기 실체를 단번에 파악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아마 기존의 문단 작가도 이 정도의 연령대의 사람들을 끌어모으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한다. 여하튼 강연회 시간이 다가오고 파란여우님이 들어오셨다. 작지만 다부진 눈빛의 아우라(찌찌찍~~)를 가진 파란여우님,  

강연회는 두시간 정도 진행되었는데, 이 날 강연회에 대한 이야기는 파란여우님도 페이퍼로 올리셨다. 그게 그러니깐  여기 ------> http://blog.aladin.co.kr/bluefox/3271653 눌러 읽으면 대강 그 날 파란여우님께서 독자들하고 나눈 이야기가 나온다. 이 페이퍼에서는 주로 활자테스트와 현장체험이 독서의 진정한 길이라고 쓰셨지만, 이 날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가슴에 품었던 주제는, 파란여우님께서 들여주던 독서 프로젝트의 마지막 주제  나만의 쟝르를 찾고 개척하라,라는 말이었다. 파란여우님은 많은 쟝르의 책을 읽었지만 결국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쟝르로 귀착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다. 고전, 그래서 사기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하셨는데, 난 그녀의 마지막 주제가 내 귀에 엄청나게 크게 들렸다. 실제 그 강의를 들으면서 그 분이 문학을 대하는 진정성, 그리고 독서에 대한 회의와 갈구를 동시에 느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더랬다. 그리고 결국 자신의 방점을 찾아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방점은 나에게도 무척이나 유용한 것이었는데, 나 또한 책을 읽으면서 왜 읽어야하는지 그리고 책이 주는 유용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고 회의하고 갈구하였던 사람중 한명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소용돌이는 단순히 책을 좋아한다는, 일차원적인 읽기의 즐거움이 아닌 뭔가 다른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생기는 소용돌이었다. 실제 나는 많은 책을 읽었지만, 내가 어떤 쟝르에 끌리는지 그리고 그 분야에 내 독서인생을 걸아야하는지 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깐 이말은 내가 현재 자연과학책에 끌려 그 관련 책들을 읽고 있지만, 내가 내 독서인생을 이 분야에 걸어야할 마땅한 근거와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파란여우님의 마지막 주제야말로 내 독서 인생에서 결국에는 책에서 즐거움만이 아닌 뭔가를 얻어내고 추려내고 자르고 덧붙이고 해야만 하는 작업이구나. 쟝르를 찾는다는 것은 내가 나의 독서 인생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고 어쩜 나의 회의론을 끝낼 수 있는 방점이구나 싶었던 것이다. 정말 많은 책을 접하고 읽은 경험자의 우러나온 말이 아닐 수 없었다(파란여우님, 전 아마 평생 님의 이 말을 가지고 살 지도 몰라요!)

그 날 두시간의 성실하고  빈틈없는 강의는 만족스러웠다(이건 빈말이 아닙니다. 제가 예전에 강의 들었던 소위 명문대인 서강대 땡땡땡 철학과 교수와 연세대 문학평론가인 땡땡땡 교수의 형편없고 수준 낮은 정말 개뼈다귀 수준의 강의에 비하면 준비많이 해 오신 파란여우님의 강의 명문대 교수 수준 이상이셨어요^^). 나의 독서 위치를 360도 회전해서 바라볼수 있게 하였고 나의 독서 인생을 재정립 할 수 있도록 도와 준 강의였다.  

끝나고 나오면서 파란여우님 아는 척 할까하다가 말았다. 강의실내에 친분이 있는 분이 계신 거 같아 다가가기가 뭐했고 희망으로님도 계셔서 희망님과 함께 건물을 나와 송년회겸 유부녀들의 오랜만의 주말 자유를 만끽하며 술 한잔 했다. 다 저물어가는 해에 마시는 술 한잔, 어찌나 달고 쭈우~~쭉 잘 넘어가던지. 9년을 시원하게 바이바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토요일 주말 저녁이었다고 생각했는데. 

덧: 그 날 저녁셋팅까지 다 하고 나와 홀가분하게 희망님하고 술한잔 마시고 나도 11경에 집에 들어갈거야 했더니 8시 30분경 집에서 애아빠한테 전화가 왔다. 압력밥솥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으니 밥 차려 달라고. 아 ! 진짜. 무시하고 버틸려다가 애들 생각에 지하철에 올라탔다. 으씨, 정말 생태찌게 셋팅도 다 놓고 왔더니만. 10시경에 집에 도착해 애들 밥 차려 주고 바가지 좀 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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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10-02-10 11:00   좋아요 0 | URL
나만의 장르를 갖는다.....전 그게 소설과 역사인것 같은데요, 아직은 허전해요. 왜 읽는지, 읽고 나면 아직도 허한 기분이 들어요.

기억의집 2010-02-10 11:33   좋아요 0 | URL
저도 그랬어요. 허한 기분이었는데 제가 자연과학쪽으로 턴했잖아요.
근데 뭐랄까, 제가 그 분야의 책을 읽으면서 잘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찰나에 파란여우님 강의 들으면서 되든 안되든 내 인생의 독서 쟝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한동안 안개에 갇혀 있었는데 강의 들으면서 쏴악 걷쳤지요.
만두님은 김연수 작품이 있잖아요^^

라로 2010-02-10 11:08   좋아요 0 | URL
흐흐흑 저도 저 강연회 가려고 몇번이나 신청을 했다 지웠다 했던지,,,,,ㅠㅠ
저는 저 만의 장르를 찾으려면 더 많은 독서를 해야 할듯,,,아직 햇병아리라,,,;;;;
그나저나 아니 기억의집님,,,생태찌게 셋팅을 했어도 밥못한다고 전화하심 자장면이나 피자라도 시켜 먹으리고 하시지!!!ㅎㅎㅎㅎ

기억의집 2010-02-10 11:39   좋아요 0 | URL
아, 그랬군요. 전 혹 나비님이 오실까 찾았는데..안 오셨더라구요^^
저도 아직 햇병아리에요^^ 언제쯤 전문가 소리 들을 수 있을려나 싶어요.

그게요..나비님,저의 집 양반은 피자나 짜장면 김밥이 안 통해요. 온리 한식.특히나 저녁은 밥하고 찌개를 먹어야, 밥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서...어찌보면 무지 편하고(된장찌개만 해도 맛있게 먹거든요) 어찌보면 융통성은 개 갖다 주었나 보더라구요. 심지어 제가 심하게 체해서 드러누웠는데도 밥 달라고 하더라니깐요. 참..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희망으로 2010-02-10 22:36   좋아요 0 | URL
강연을 하셨던 파란여우님도 듣는 이들도 모두 진지했던 시간이 기억나네요. 한참 지났어도 이렇게 글을 올린 기억의집님, 짝짝짝 박수!!^^ 전 그날 두레박질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전에 비해 반도 못 읽고 있으니 참.../서재의 달인 엠블럼이 떡 하니 보이네요. 축하합니다.

기억의집 2010-02-11 15:59   좋아요 0 | URL
희망님, 딸 그 책 좋아하던가요. 전화 해야지 하면서 요즘 뭐가 그리 바쁜지. 지금도 아들 데리고 깁스 풀고 왔어요. 아, 정말 짜증나요. 내 진짜 아들놈 때문에. 이동네엔 왜 이렇게 정형외과도 없어요. 보통 기다리고 처치하고 뭐 하다보면 1시간 30분이에요. 오늘도 왕 짜증나서... 아침에 애들이 학교 갔다 일찍 들이닥쳐 밥 해주고 청소 후딱 해놓고 미리 가서 정형외과에 갔더니 그래도 사람이 많아 좀 전에 왔어요. 깁스 풀었는데도 아파다고 징징대서 더 열받고 있어요. 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엄마네도 갔다와야하는데... 오늘은 안 갈까봐요. 저녁밥이나 해야지.// 근데 제가 왜 서재의 달인인지 모르겠어요, 사실 제 서재에는 사람도 별로 안 찾아 오거든요. 요즘엔 좀 오긴 해도. //그 날 다시 한번 미안해요. 그건 그렇고 3월까지 어떻게 견뎌야할지 모르겠네요^^
 

에드워드 윌슨의 <자연주의자>를 읽지 않았더라면 난 몇번을 재생해도 이해할 수 없었던 도킨스를 포기하고 말았을 것이다. 완전 득템은 커녕 부분이해라는 부스러기라도 얻어 먹을려고 해도 도킨스의 이론은 내 머리속에서 게속 추상화의 형태로 남아 있었고, 덜 떨어진 머리 애써 굴리지 말고 소설이나 읽지, 내 주제에 무슨 자연과학책이냐! 며 나가 떨어지려고 맘 먹었던 순간에 잡은 책이 바로 에드워드 윌슨의 <자연주의자>였다. 이 책이 나를 사로 잡았던 이유는 부모의 불화로 친척집에 얹혀 살았던 어린 윌슨의 고통받은 영혼의 안식처가 자연이었고, 자연은 어린 소년에게 부과되었던 삶의 고통을 기꺼히 아무 소리 없이 포옹했다는 것일것이다. 아, 그가 그린 어린 시절을 감동을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그가 자연에서 얻는 호기심과 탐험이 결국 그가 사회생물학이란 분야에서 거두가 되기까지의 성장과 에피소드 과정이 담담하게 그려져 있다. 불행했던 어린 시절의 심적인 고통이 후에 관찰을 위해 기꺼이 여러 낙후된 섬을 돌고 오지를 갈 수 있었던, 육체적 고통을 상쇄할 수 있는 힘을 주지 않았을까. 그는 이 자서전에서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고통을 그렇게 술회하지 않는다. 아마 성공한 노년의 여유로움이 유년 시절의 가슴 아픈 고통의 기억을  커버했을 것이다.    

   
 
펄(윌슨의 새엄마)과 나의 아버지는 참을성이 많았지만, 특별히 관심을 갖거나 나의 용기를 북돋아준 것은 아니고 나를 집 근처에만 머물도록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나는 어떤 경우에도 그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그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아름답고 복잡한 신세계로 들어가면서 느끼는 희열감이 부분적이 이유였다........그리고 언젠가 전문적인 야외 생물학자가 될 내 자신을 훈련시킨다는 야심도 있었다. 마지막으로 내 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알 수 없는 그 무엇, 내 지신도 이해할지 못하며 말로 표현하면 사라져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서 이해하고 싶지도 않은 열망 같은 것이 있었다(p96~96).
 
   

도킨스는 자연탐험을 하지 않은 채 여러 학자들의 논문을 통해 이기적인 유전자 이론을 도출한 반면에, 윌슨은 자연 탐사와 병행해서 이론을 도출시켰다. 예를 들어, 윌슨은 휠도블러와 함께 그 유명한 <개미들>이라는 책을 냈는데,  

   
  나와 휠도블러는 하버드 재임시절 이 교훈을 여러번 따랏다. 우리는 1985년 처음으로 함께 코스타리카로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산 호세에서 열대 기구의 야외시험장이 있는 라 셀바로 차를 몰았다. 열대우림으로 들어서자 나는 행동 여구에 획기적인 흥미거리가 될지도 모를 개미를 발견하고 이를 동정하는데 개미에 대한 내 일반 지식을 총동원하였다. 나는 신속하고도 흥미로운 보상을 안겨줄 대가를 찾고 있었다. 그러한 할 후보로 원시형 PRIONPELTA속이 보였는데 이 속은 썩은 나무 토막에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속의 군체는 살아 있는 상태로 연구된 적이 없었다  
   

이러한 기초적인 관찰과 data가 그의 사회생물학의 기본이 되었으며, 후에 그<통섭>을 쓸 수 있었던 토대가 될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사다 만 놓고 아직 읽지 않고 있는 이 책에 대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사유만 있는 말장난에 가까운 책은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든다. 과학 위주의 여러 학문의 통합이라는 비난이 있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철학을 위주로 여러 학문이 통합된다는 것도 우습지 않는가. 

그가 어린시절 어두운 긴 터널을 묵묵히 걷고 난 후에 이룩한 학문인, 사회생물학이기 때문에 더 뜻깊게 다가온다. 그의 경이로운 삶을 읽고 나서, 불끈! 도킨스에 도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한 이유로 도킨스의 이론을 백날 읽어봤자 이해도는 제자리지만 놓지 못하는 것이다. 끝까지 해 볼거다.  

데니스 루헤인은 <살인자의 섬>을 처음 읽었는데, 완전 대 실망이었다. 개인적으로 그 책은 트릭이 지나쳤다. 흔히 사람들은 그걸 놀라운 반전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놀라는 대신에 우스워서 이게 뭐밍! 이랬다. 그리고는 얘, 너랑 나랑은 잘 안 맞는구나, 옛다, 엿이나 먹어라! 내가 너한테 선사할 수 있는 반전은 절대 니 책은 사서 읽지 않으리라, 는 것이었다. 정말 그랬다. 기분 좋은 트릭이 아니어서 열폭했고 데니스 루헤인의 작품은 절대로 거들떠 보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반전이 있을 수 있나. <피버피치> 이후 닉혼비 또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거들떠 보지 않는 작가인데 우쪄다가 내가 그의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읽게 되었다. 아니 정말 우연히도 말이다, 아주 우연히 옛날에 지루하게 읽었던 <피버비치>의 기억을 잊고 그의 이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우와~~ 그게 왠일. 이거 생각보다 재밌는 거라~~ 특히나 그의 음악 듣는 센스가 나의 거의 맞먹어서 그런지 그의 글이 더 잘 먹히는 거라. 여길 읽어도 저길 읽어도 이리 재밌을수가..게다가 그가 올해에 읽은 책중에서 저 데니스 루헤인의 <미스틱 리버>를 최고의 작품으로 등급시켜놓지 않았는가. 내가 젤 후졌다고 생각한 작가를. 내가 이상한 거야 아님 닉혼비가 제정신이 없는거얌. 그래도 한번 밑져볼까. 그가 젤로 좋아한다는 <미스틱 리버> 한번 읽고 정 아니면 팔면 되지 뭐. 그래서 그날 아침에 주문하고 저녁에 받아 읽었다. 아주 기대심과 동시에 미심쩍은 맘으로 그리고 , 

난 데니스 루헤인이 좋아졌다.  그가 그려내는 어둠과 더 짙은 어둠과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슬픈 어둠이 좋아졌다. 삶과 강은 거스를 수 없다는 점에서 공통 분모를 가지고 있다. 그 어린 것들에게 그 날 일만 일어나지 않았다면 그들의 삶은 평범했을지도 모른다. 강이 아래에서 위로 흐를 수 없듯이 삶도 과거로 갈 수 없다.  

 

데니스 루헤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좋아한다는, 너무나 미국적인 락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을 들어봐야한다. 그의 슬픔에 밴 목소리와 현실에 저항하는 부르짖음을. 리버의 가사는 대강 이렇다. 고등학교도 졸업하기 전에 메리는 임신을 했고 그들은 꽃도 없이, 웃음도 없는 결혼식을 했고 그는 노동자의 삶을 살아야한다. 그 팍팍한 삶을. 그들이 젊은 시절부터 차를 몰아 자주 갔던 그 강을 보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은 그 강을 보면서 시간을 되돌이고 싶어 했을까. 흐르는 강을 보면서 그들은 자신들의 희망 없는 삶도 앞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나는 하드하면서 드라이한  <미스틱 리버>를 읽으면서 그 아이들에게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시간의 강을, 거역할 수 없는 시간의 강을 그리고 거스를 수도 없는 짙고 어두운 강을 생각하며 브루스가 부르는 하모니카가 소리가 들렸다. 아주 슬픈 그러면서도 거스르고 싶다는 텅빈 외침과 함께. 

창피한 말이지만 나는 이 소설  사다 놓은지가 한 일년도 넘은 거 같다. 그러다가 저 책의 겉표지를 누가 그렸는지 궁금해 한번 여기저기 서치도 해보았지만 읽을 맘은 좀처럼 생기지 않았다(표지의 그림은 안도 시로시게의 작품임). 아, 전 정말 사극도 싫고 시대물도 싫어요. 그러다가 하권을 선물 받고 읽기 시작. 이것도 또 창피한 이야기지만 시대물에 적응이 쉽지 않아서 상권의 1/3가량 읽을 때만해도 어느 샌가 나도 모르게 침을 질질 흘리고 자고 있었다. 지루하기 이룰 데 없어 그만 둘까 하다가 리뷰평도 좋고 선물로 받아서 끝까지 읽기로 다시 작정하고 덤볐는데 어느 정도만 통과하면 미미 여사의 실력이 보통이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이야기가 재밌게 돌아간다. 게다가 이야기의 끝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루룩 흘렀다. 것도 아주 많이. 콧물이 나올 정도로. 한 소녀의 성장이야기가 이렇게 멋진 이야기로 탄생할 수 있다니, 난 이 작품을 통해 미미가 의도 했건 아니건 간에 권력이 무지하고 힘없는 백성을 종교적으로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른 보여준 작품이었지만, 그보다 세상을 더 따스하고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이 정치적으로 해석되든 무겁게 해석되든 분명한 것은 세상살이는 그래도 견딜만 하다는 것이다. 미미여사 짱짱! 

이 책이 그냥 이대로 파묻히기엔 그의 유머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진화이야기가 너무 아깝다. 언젠가 말했듯이 닐 슈빈은 고생물학계의 빌브라이슨이고, 전문분야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유머소설 읽은 것마냥 재미난 진화책이다. (설레설레 머리를 흔들며)어찌하여 이런 책이 인기를 못 얻었는 것인지. 좀 더 파워블러거가 이 책을 띄여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책은 우리 인간이 어떻게 물에서 육지에서 걸어나올 수 있었는가를, 눈과 귀가 그리고 우리 몸 구석구석이 어떻게 진화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그가 화석인 상태로 발견했다는 틱타알릭은 2004년 북극의 앨스미어 섬에서 닐슈빈에 의해 발견되었다. 사실 그때 그 추운 곳에서 생고생을 해가면서 찾은 것이라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으리라. 사람은 물고기로부터 진화되었다. 그 연결고리가 바로 다리가 있는 물고기 틱타알릭이다,라는 증거를 그는 찾아낸 것이다. 책에도 그가 발견한  틱타알릭의 생생한 화석을 볼 수 있지만 더 생생한 자료를 보고 싶다면,

                 ( 아메리카의 시스터골드헤어라는 노래가 연상되지 않는지요?) 

 7년 동안 눈여겨 읽던 리뷰어중 한 분이 파란여우님인데, 파란여우님이 그 동안 알라딘에 써 온 리뷰들을 모아 책을 낸다고 했다. 오홋, 반가워라~~~ 그라고 그 책이 바로 <깐깐한 독서 본능> 이 책에 대해서라기 보다, 작년에 파란여우님 강연회가 있어 그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었던 이야기를 잠깐 쓰고 싶다. 그 때 강연회 후기를 쓸까 하다가 연말에 들뜬 기분하고 애들 방학이 겹쳐 쓰지 못한 글이 있었는데 이 자리에서 잠깐만 쓰련다. 그날 강연회에 많은 분들이 참석해 주셨다. 한 40~50분 정도. 근데 날 더 놀라게했던 것은 그 날 모인 분들의 연령 스펙트럼이었다. 20대에서부터 50대까지의 다양한 연령층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고 어느 특정한 성향의, 예를 들어 남자분만 있다거나 여자분만 자리를 차지한다거나 하는 거 없이 남녀불문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자리를 차지 하고 있었다. 실로 그 인기에 놀랬다. 파란여우님이 그 날 2시간의 강연중에서 참으로 인상적인, 그리고 품을 수 있는 강의를 해 주셨는데 그날, 파란여우님이 마지막으로 책을 읽을 때 자신이 좋아하는 쟝르를 찾아 읽으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 날 그 말이 나한테는 하이라이트였다. 그리고 사실 그 분이 그 말을 할 때 그분의 진정성을 보았다. 아, 진짜 파란여우님은 책을 많이 읽었구나 그리고 책에 대해 진지한 맘을 가지고 있구나, 그 말이 그렇게 꽂힐 수가 없었다. 나는 그 말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말의 실천성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아, 안되겠다. 그냥 정식으로 다른 페이퍼에다 써야겠다)  그녀를 좀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의 리뷰를 읽어보시길. 그리고 혹 기회가 된다면 그리고 그녀에게 출판사가 제공하는 강의가 있다면 꼭 참석해보시길, 그 시간이 절대 아까운 시간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여름에 이 그림책을 교보에서 보고 구입해 리뷰 꼭 쓰리라,라고 했던 것이 몇 달이 지난 지금도 리뷰는 커녕 페이퍼도..... 워낙 실험적이고 멋진 작품이라 리뷰를 꼭 쓰고 싶어 작은애하고 홈스쿨링까지 해가며 사진도 찍어두었던 작품이었는데, 결국 쓰지 못했다. 보통 우리들은 아이들은 보편적인 감성을 지닌 그림책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경험으로는 그렇지만도 않다. 아이들은 비상식적인 뒤틀린, 정상에서 벗어난, 괴기하면서 실험적인 것도 받아들일 줄 안다. 어떤 경우에는 이건 좀 그림책 주제치고는 진지하거나 너무 실험적이다라고 생각된 것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때도 있다. 아주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을 하고 말이다. 이 그림책이 반가웠던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좀 드문 실험성이 가득찬 작품이었던 것. 심심하던 동물들이 달리는 과정을 이혜리를 검은색으로 거칠고 대담하게 표현했는데, 그 표현력이 거칠었지만 굵직한 검은 선만으로 흥분된 속도감을 그리고 그 흥분되고 스피드한 속도감을 그림책 정중앙에 배치한 것은 멋진 시도였다. 이혜리와 정병규 두 작가의 실험성과 노고에 감탄했으며 비록 이야기가 생생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그림책의 실험적인 표현력에 그리고 우리 그림책의 발전가능성을 볼 수 있어서 최고의 그림책이 아니었다 싶다.  

http://blog.aladin.co.kr/760031175/2474283 재작년에 내가 알고 있던 브아걸은 그저 그런 여타의 걸구룹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냥 귀엽고 이쁜 걸들이 귓가에 살랑거리는 음악을 할 줄 아는 정도. 그러다 이번 앨범을 통해 나는 브아걸뿐만 아니라 2NE1의 파워풀한 보컬과 랩에 놀랬다. 어머, 애네들이 내가 알고 있던 걔네들이 아닌가. 얘네들 다 물갈이 했니? ! 

음악에 변화를 주었다. 음악뿐만 아니라 이미지도 많은 변화를 겪으며 걸들이 연약한 걸의 이미지에서 좀 더 파워풀한 걸의 이미지로. 발전적인 모습이라고 해야하나. 아니면 되바래졌다고 해야하나. 그런 평가는 각자에 맡기고,  웬만한 남자 아이들의 랩을 능가하는 걸들의 힘찬 랩에 한번 몸을 맡겨보길. 아줌마인 나도 힘나더라. 2009년은 걸들이 있어 행복한 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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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09 14:5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살인자들의 섬]이 별로여서 데니스 루헤인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는데, 기억의집님과 마찬가지로 [런던스타일 책읽기]를 보고 보관함에 살짝 넣어두기만 했었어요. 그래도 지르지를 못했었는데, 오, 기억의집님의 이런 페이퍼라니! 저도 이제 데니스 루헤인에게 빠져야 하는 타이밍인걸까요?

[외딴집]은 또 어떻구요! 저도 사극이 싫고 시대물이 싫어서 이 책은 아예 사지도 않고 그래도 너무나 재미있다는 회사동료의 강력추천에 상권만 빌려놓기는 했는데 빌려서 갖고있은지만 1년이에요. 그런데...괜찮단 말입니까! 눈물이 흐른단 말인가요? 아- 전 대체 무엇을 먼저 읽어야 한단 말입니까!!

기억의집 2010-02-09 15:28   좋아요 0 | URL
아, 다락방님, 그새 오셨군요.
저도 살인자의 섬,이후 거들떠도 안 봤는데 미스틱 리버는 좋더라구요. 그 책의 분위기가 딱 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음악 같아요. 전 브루스 좋아하거든요^^ 하핫!

저도 생전 사극, 노우를 외치거든요. 전 선덕영화도 안 보고 추노도 안봐요. 단지 사극이 싫다는 이유만으로. 단순한 사람이다 보니 제가 좀 그래요. 근데 외딴집 괜찮아요. 너무 괜찮아요. 제가 손수건 빌려드릴테니 얼릉 읽어보시와요^^ 다락방님~~~~

라로 2010-02-09 17:07   좋아요 0 | URL
닉혼비의 [하이 피델리티]도 안좋아하실려나요?????
전 그의 책 중에서 딱 한권을 지금 읽고 있는게 그건데 넘 재밌어요,,,
영화보다 더 재밌어요,,,영화를 좋아했거든요,,,
저 원래 영화로 만들어진 첵 잘 읽는데,,,

외딴집,,이 괜찮다구요???
에드워드 윌슨~.

기억의집 2010-02-09 20:00   좋아요 0 | URL
저는 그의 피버피치 읽는거 자체가 고통이었어요. 안 읽으면 되었겠지만, 그 책을 읽던 시기가 명절날이라 읽을 책이라고는 그 책 밖에 없었거든요.
전 운동을 보는 것도 읽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인지라 참, 그렇더라구요.
하지만 런던스탈을 재밌게 읽어서 닉의 작품을 기회 닿은대로 읽으려고요.
하이피델리티, 재밌나봐요!
그리고 나비님, 저 있잖아요.....^^

2010-02-09 20: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연 2010-02-09 22:22   좋아요 0 | URL
아. 데니스 루헤인을 대체로 좋아하는데, <살인자들의 섬>도 좋았구요..물론 <미스틱 리버>는 더할 나위 없었다는. 그 분위기 있쟎아요..뭐랄까 어둡기도 하고 회한스럽기도 한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잘 만들어내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닉 혼비는 많은 분들이 무지하게 칭찬해주셔서 뭘 읽을까 하고 있던 참. <런던스타일 책읽기>부터 읽어봐야겠군요. 미미여사의 <외딴집>은 정말 재밌죠. 그 속에 깃든 따스함이 마음에 포근하게 다가오는. 저랑 비슷하기도 하고 안 비슷하기도 한 님의 독서 취향 포스팅..좋습니다!

기억의집 2010-02-10 11:02   좋아요 0 | URL
비연님, 안녕하세요^^
저도 그 이후로 데니스 루헤인의 책을 사다 읽는데, 제가 처음 느꼈던 그 분위기가 아니더라구요. 전 트릭이 재미난 것은 좋아하는데, 살인자들의 섬의 트릭은 부풀었던 기분이 풍선처럼 뻥 터진 느낌이었어요. 데니스 루헤인의 다른 작품 읽으면서 그가 상당히 것도 짙은 어둠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쩜 요즘 미드범죄드라마의 원형인가 싶기도 하고.
상당히 괜찮은 작가였는데 그걸 몰랐던 거죠. 바보처럼.
<외딴집>은 정말 재밌었어요. 저는 나중엔 문장하나하나가 뭉클거리더라구요. 특히나 호의 이름이 바뀌었을 때. 정말 그 장면에서는 콧등이 시큰했는데 나중에 호가 바다를 바라보면서 끝나잖아요. 그 장면에서는 호의 미래가 보이는 거 같아서 눈물이 줄줄 흐르더라구요. 아, 저 왜 이러죠. 책일 뿐인데...하핫^^
저도 닉혼비 책 좀 찾아 읽어보려구요. 기대가 되면서 의심이 남아 있긴 해요. 전 비연님처럼 축구나 야구 다 별로거든요. 차라리 걸구룹이 더 좋아요. 하핫^^

유부만두 2010-02-10 11:01   좋아요 0 | URL
미미 여사랑 파란 여우 여사 빼곤 다 몰라요.... ㅜ ㅜ

기억의집 2010-02-10 11:12   좋아요 0 | URL
지금 인터넷에 들어오셨군요. 둘째는 어린이집!
진짜 브아걸도?
전 쟤네들 너무 좋던데..
울 엄마가 이번에 뭐라는지 아세요. 연말 시상식에 나이 든 애들 그러니깐 장윤윤정같은, 나오면 재미없는데 걸이나 보이들 나오면 너무 신났다고 하더라구요. 우리 엄마 입에서도.
언니, 설마 브아걸의 캔디맨도 모르는 거 아냐?

akardo 2010-02-11 20:09   좋아요 0 | URL
동영상이 상당히 발랄하고 즐겁습니다.^^틱타알릭 귀여워요......ㅠㅠ <내안의 물고기>책 꼭 봐야겠습니다. 재밌는 진화책이라니 기대가 되는데요?^^
음. 데니스 루헤인의 <살인자들의 섬> 사놓고 아직 안읽었는데 기억의집님께서 별로셨다니 읽을 의욕이 마구 꺾입니다. 으흐흑......저는 <외딴집>도 사놓고 아직 안읽고 있고 말이죠......에드워드 윌슨은 <통섭>만 읽었는데 <자연주의자>도 함 읽어봐야겠다고 살짝 다짐했습니다. 전 베르나르베르베르의 <개미> 때부터 은근히 개미에 관한 이야길 좋아했는데 에드워드 윌슨이 쓴 개미 관련책도 읽고 싶네요.

기억의집 2010-02-12 08:35   좋아요 0 | URL
아카도님 윌슨의 통섭 읽으신 거 알아요. 리뷰 읽었거든요. 그 때 저는 자연주의자 읽었는데 하고 멘트도 달았는데... ^^
<살인자의 섬> 아주 형편없는 작품은 아니고 전 단지 트릭때문에, 열받은 작품이거든요. 진짜 열 받았어요. 하핫. <외딴집>은 진짜 강추에요. 전 시대물 너무 싫어해서 미미월드2막은 살까말까하는 책들이 많았는데, 그 망설임을 단번에 깨트린 작품이었어요. 울 언니랑 어제 통화하면서 야, 미미 메롱나왔더라, 하길래 요즘 신작도 나왔어라고 알려주었죠!
아카도님 저 아무래도 소설은 조만간 접고 윌슨하고 핑커 한번 읽어볼까봐요. 저도 님처럼 독서계획이라는 것을 세우고 읽어봐야겠어요.^^ 저 그리고 이따 내려가요. 한 2시경쯤. ^^ 설 연휴 잘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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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저의 책읽기 목표는 스티브 핑커입니다. 저의 짦은 생각으론 언어학자 촘스키의 위상을 위협하는 차세대 주자는 스티브 핑커 아닐까 싶어요. 같은 진화 언어학에 발을 담그고 있는 두 사람이지만 언어의 진화에 있어서는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는 두 사람입니다. 촘스키의 언어학은 스티브 굴드의 단속평형 진화이론이 뒷받쳐 주고 있다고 하네요. 사실 저도 스티브 굴드의 작품은 읽은 것이 없어 그의 이론을 정확하게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뭐라 왈가왈부할 수는 없고 촘스키와 스티브 핑커 두 사람 모두 언어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태어났다는 데는 동의 합니다. 보편적인 문법 이론을 가지고 있다는 것 말입이다. 제가 올해 스티브 핑커를 열심히 읽자로 정한 것은 과연 우리가 생태적으로 보편적인 문법 이론을 가지고 태어났다면 이중언어도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스티븐 핑커가 과연 저의 이러한 물음에 해답을 줄 수 있을런지 그건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년초에 시도해 봤는데 아이들하고 같이 있다보니 도저히 그의 이론에 집중할 수 없더라구요. 그래서 3월부터 그의 작품을 읽으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먼저 사다 놓은 책이 바로  

사실 이 책을 한 50페이지 정도 읽었어요. 어느 정도는 진화관련 책을 읽어서 그런지 읽히더라구요. 50페이지까지 넘어갈 수 있었던 것도 이해할수 없었다면 아마 10페이지 안팎에서 제자리였을거에요. 그런데 방학이라는 복마술이..... 도저히 읽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단 잠시 내려 놓았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티브 핑커의 다른 작품도 언어관련하여 찜하거나 구입한 책입니다.  

 

사실 핑커가 촘스키의 책보다는 쉽다고 하더라구요. 전 그 말을 전적으로 수긍할 수 없지만, 핑커같은 경우는 이 모든 책이 다 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휴!!!! 이 사람들은 대중을 위한 책이라고 아주 재밌고 쉽다고 하는데, 그런 서평을 쓴 사람들이 과연 그의 책을 다 읽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중적인 저술이라고 하지만 진화관련이나 언어학 책을 접하지 않는 비전문가라면 읽기가 쉽지 않아요. 너무 어려워서 내가 왜 이런 도전을 해야 하지?하는 의문이 저절로 생기긴 해요. 그래도 이왕 의문에 대한 답이라도 한번 찾아보자고 생각하며 도전하려고요. 그리고 만약 그의 책을 다 읽었다면 이 책도 도전하고 싶어요. 정말이지 이건 도전이에요. 도전! 

과연 내가 이 책을 올해안에 읽을 수 있을련지..^^ 한번 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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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0-02-11 09:49   좋아요 0 | URL
제가 재작년부터 꾸준히 읽을려 했던 책인데 결국 이번에도 실폐....다른 저자의 책들은 그래도 따라 갈만 한데 핑커의 책은 상당한 분량,단어와 문법,생소한 단어들, 결국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는 200페이지 읽다가 결국 무릅꿇고 단어와 규칙은 질려서 손대기도 싫고, 언어본능은 작년에 150페이지 읽다가 영단어에질려 실폐 제게는 핑커가 아직 넘지 못한 산입니다. 빈서판은 재미읽게 읽어서 다른책들도 쉽게 접근할줄 알았는데...방법이 없네요....또 몇달은 책꼿이에 고이 모셔놓아야 할것 같네요...

기억의집 2010-02-11 16:05   좋아요 0 | URL
아, 이를 어쩔까요. 저는 그러면 시작부터 무릎을 끓어야하나요. 근데 이런저런 소개글 보면 핑커가 대중을 위해 글을 썼다고 해서...저는 손 쉽게 봤는데 그게 아니었군요. 언어본능은 한 50페이지까지 읽었는데 그래도 알아 먹겠더라구요. 그래서 애들 학교가면 한번 도전해보자 했는데..근데 군자란님, 전 저 사람들의 뇌구조를 한번 들여다보고 싶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고 논리성과 과학까지 끌여들여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잖아요. 사실 철학적인 용어도 없고 애매모호한 용어도 없는데, 이상하게 못 알아듣겠어요. 도대체 저 사람들의 머리는 뭘로 가득한 것일까요. 그게 요즘은 궁금하더라구요. 하핫.

군자란 2010-02-11 17:56   좋아요 0 | URL
저는 요즘 꿈꾸는 기계의 진화를 읽고 있습니다. 작년에 한번 읽고 언제가는 다시 읽어봐야지 했던게 지난 주에 다시 일독을 했는데 도저히 이 책을 놓을수가 없네요....회사에서나 집안에서나 이 책이 없으면 불안할 정도로....조금 문제가 있는 것 같은데 그냥 다시 또 읽기 시작했습니다.....중독수준인것 같습니다.

기억의집 2010-02-12 08:36   좋아요 0 | URL
방금 궁금해서 꿈꾸는 기계의 진화 검색하고 왔는데 가격대가 세긴 세군요. 장바구니에 넣었다가 아무래도 이 책은 다음 기회에 읽고 협력의 진화를 먼저 구입하려고요. 게다가 도킨스가 마구마구 칭찬했다는 유혹에 그만~~
자연과학책이 중독성이 있을 정도면 무척이나 흥미롭다는 말인데, 그 정도로 재밌어요?! 다음에 꼭 읽어볼께요. 저한테도 중독성이 생기는지 실험해보겠습니다. 하핫^^
군자란님은 아버님이 작년에 돌아가셔서 이번에는 명절제사 지내야하시겠네요. 혹 안 지내시나요?
여하튼 바쁜 명절일 게 분명하시네요. 설 명절 잘 보내세요.
 

 

 

 

 

 

 

 

작년에 황금가지에서 낸 2권짜리 아서 클라크 단편집은 총 65편이 실려 있다. 하지만 저 위의 원서에 실려있는 클라크의 총단편은 105편. 알라딘의 작품 해설란에는 아서 클라크의 저 단편집의 단편수 104편이라고 소개되어있지만 몇번을 세도 105편. 할 일없이 단편수나 세고 있다고 뭐라 할 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편집광적인 면모일 수도 있겠지만(저는 제 자신이 여러모로 꽤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책을 둘러싼 호기심은 도저히 누룰 수가 없어요. 심지어 전 알라딘의 전설적인 리뷰어 N님의 페이퍼와 리뷰 싸그리 몽땅 다 읽고 그 분이 누군지도 알아낼 정도였으니깐요. 아, 저 왜 이렇게 사는지 모르겠어요) 일일히 밥 하면서 식탁에 앉아 다 세워보았다.  하핫,  그러니까 현재 황금가지에서는 먼저 클라크의 단편집 2권를 출간했으며 나머지 41편의 단편은 작년 가을에 나머지 단편들을 뿜빠이해  2권 더 출간한다고 큰소리 치더니만, 아직까진 뻥에 그치고 있다는 이야기. 여전히 감감무소식이자만 혹 41편을 한꺼번에 내 1권으로 낼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하니 기다려 봄세. 아직 출간을 기다리고 있는 단편중 하나인 The forgotten enemy 는 예전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적이 있어 여기에 올려 본다.
1961년 펭귄사이언스픽션 옴니부스에 처음으로 수록.

밀워드교수는 좁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이번만은 분명 꿈이 아니었다. 가슴팍이 파고드는 싸늘한 공기는 여전히 밤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그 요란한 굉음으로 메아리치고 있는 듯했다. 그는 두꺼운 모피옷으로 어깨를 감싸고 귀를 곤두세웠다. 죽음의 도시 런던은 정적에 잠겨 있었다.   

밀워드는 침대 밖으로 기어 나와 코크스 몇 덩어리를 이글거리는 놋쇠화로에 던져 넣고는 제일 가까운 창문으로 갔다. 

하늘에는 구름 한 점 없고, 창문 아래 보이는 눈 덮인 지붇들은 달빛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천둥소리가 아니었다. 그 소리는 북쪽에서 들려왔고, 그가 귀를 곤두세우고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도 다시 그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는 그가 일찍이 들어본 자연의 소리와는 달랐다.  그래서 그는 다시 한번 희망을 가졌다. 

사람만이 그런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영국의 잉글랜드지방으로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분진이 온통 하늘을 뒤덮기 전에 과학이 그들에게 주었던 무기들을 이용하여 얼음과 눈을 폭파하여 길을 내며 오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육지로, 그것도 북쪽에서 온다는 것이 이상했지만, 그는 새로이 타오르는 희망의 불길을 꺼버릴 상념들은 애써 떨쳐 버렸다. 

20년전 밀워드는 쉬지 않고 내리는 눈을 회전기으로 휘저으며 리전트공원에서 힘겹게 날아오른던 마지막 헬리콥터들을 지켜보았었다. 정적이 그의 주위에 내려 덮였을때까지도 밀워드는 사람들이 북방을 영원히 포기했다고는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그때부터 그는 30년을 꼬박 기다렸다. 

그래도 초기에는 라디오를 통해서 이따금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남방과의 유일한 접촉수단이었단 라디이가 이제 온대로 바뀐 적도지방을 식민지화하려는 싸움에 관한 뉴스를 들려 주었던 것이었다. 그는 그 속에서 벌어진 전투의 결과는 알 길이 없었다. 라디오가 침묵을 지킨 지도 이미 15년이 되었다.  

밀워드는 꼭 필요한 때에만 대학 건물 밖으로 나갔다.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이 도시를 탈출하면서 엄청난 물자를 남기고 떠났으므로, 지난 20여년 동안 그는 아무도 없는 이웃가게에서 필요한 물건을 가져다가 모아 두었다. 사실 그의 생활은 여러모로 사치스럽다고 할 만했다. 영문학 교수치고 옥스퍼드 거리의 모피상점에서 가져 온 그런 옷들을 입어 본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밀워드가 배낭을 메고 둔중한 출입문을 열었을 때, 맑은 하늘에서 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한때는 굶주린 개들이 무리지어 이 일대를 설치고 다녔었다. 지난 10년 동안에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밖에 나갈 때는 여전히 권총을 지니고 다녔다. 

햇살에서는 열기를 거의 느낄 수 없었다. 그 즈음 태양계가 통과하고 있던 우주의 분진띠가 햇빛의 밝기에는 거의 영향을 주지 않았지만, 그 힘은 깡그리 거의 빼앗고 말았던 것이다. 이 지구가 온기를 최찾을 수 있을때가 10년 뒤일지 1000년 뒤일지 아무도 몰랐다. 그래서 문명은 "여름"이라는 낱말이 아직 실감이 나는 땅을 찾아 남쪽으로 떠났던 것이다.  

지붕 위에 눈이 위태롭게 쌓여 있고, 추녀끝에는 칼처럼 끝이 뽀족한 고드름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집들을 피하면서 밀워드는 북쪽으로 가다가 드디어 자기가 찾고 있던 가게에 당도했다. 산산조각이 난 창문 위의  글씨는 예나 다름없이 선명했다. "젠킨스부자상회, 라디오와 전기제품. 텔레비젼 전문." 

2층의 작은 방은 부서진 지붕 틈으로 눈이 약간 흘러 들어오긴 했지만, 10여년 전 그가 마지막으로 왔을 때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었다. 올웨이브 라디오가 여전히 탁자 위에 놓여 있었고,  고맙게도 전력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건전지들도 있었다. 사람과 기계들이 돌아오고 있다면, 사람들이 서로간에 혹은 그들의 출발지와 교신하느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인내심을 최대한 발휘하며 밀워드는 30년전에는 고함치는 목소리와 급하게 타전되는 모르스 부호로 뒤범벅이 되었던 단파대를 찬찬히 훑어 나갔다. 어떤 소리든 찾아내려고 열심히 귀를 기울여 보았지만, 조심스럽게 가슴을 품고 있던 그 한가닥 희망이 점차 그의 마음 속에서 스러지기 시작했다. 한 때 떠들썩하게 북적대던 에테르의 바다에도 이 도시와 마차나가지로 정적만이 깃들어 있었다. 

자정이 지나자 건전지의 전력도 동이 나고 말았다. 밀워드는 더 찾아볼 마음이 없었으므로 모피 옷 속에 몸을 웅크리고 어지러운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그가 집으로 돌아가려고 밖으로 나섰을 때는, 인적 없는 하얀 도로에 열기 없는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자꾸만 덮치는 구출의 환상에 놀라 잠을 설친 탓으로 그는 몹시 지쳐 있었다. 

하얀 지붕 위로 굴러오는 아득한 청둥소리에 갑자기 고요가 깨졌다. 길 양쪽의 건물들에서 작운 눈사태가 일어나 넓은 거리로 눈이 쏟아져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사방이 고요해졌다. 그 소리는 흔한 폭발음치고는 너무 길게 끌었다.- 그는 다시 꿈을 꾸고 있었다- 그것은 멀리서 들려오는 원자폭탄의 폭음 같았다. 원자폭탄이 한꺼번에 100만톤의 눈을 날려 버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의 희망이 되살아났고, 간밤의 실망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한순간 멈칫거리다가 그는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 했다. 옆 길에서 나온 거대하고 허연 무엇인가가 그의 시야에 갑자기 들어왔다. 한순간 그의 마음은 눈으로 본 현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그를 덮쳤던 마비가 풀리자 그는 별로 효력이 없을 것 같은 권총을 더듬어 찾았다. 머리를 이리저리 휘접고 뱀처럼 꿈틀거리며 최면에 걸린 듯한 걸음걸이로 눈을 가로질러서 터벅터벅 그에게 다가오는 있는 것은 거대한 북금곰이었다. 

밀워드는 들고 있던 물건들을 내팽개치고 달아났다. 그는 가장 가까운 건물을 향해 비틀거리며 뛰어갔다. 다행히 지하도 입구가 불과 15미터 떨어진 곳에 있었다. 마비된 손가락으로 쇠로 된 문을 열려고 애를 썼다. 한순간 그는 공포에 질렸다. 그는 가까스로 문을 조금 밀어붙이고, 비좁은 틈으로 겨우 몸을 밀어 넣었다. 

혼비백산한 밀워드 교수는 한 피선처에서 다음 피신처로 옮겨가며 3시간 뒤에야 대학 건물로 돌아왔다. 이 오랜 세월동안 자기 혼자만이 이 도시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그 주일이 끝날 무렵, 그는 북방의 동물들이 이동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번은 아무소리도 내지 않고 쫓아오는 이리떼에 쫓기며 순록 한마리가 남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았고, 밤 중에 이따금 목숨을 걸고 싸우는 동물들의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무엇인가가 짐승들을 남쪽으로 몰아가고 있었으며, 그 사실이 그를 한층 더 들뜨게 했다. 이 사나운 생존자들이 사람 이외의 다른 무엇을 피해 날아날 리는 만무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기다림의 긴장이 밀워드의 정신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걸핏하면 그는 모피옷으로 몸을 감싸고 몇 시간이고 멍하니 앉아서 구조대가 다가오는 꿈을 꾸었고, 사람들이 잉글랜드로 돌아오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겼다. 원정대가 북아메리카를 떠나 대서양의 얼음판을 건너 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항공 정찰 한번 없지 않았는가? 비행기술을 그렇게 빨리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이따금 그는 그 오랜 세월동안 잘 보존해온 서가를 따라 걸으면서 무척 아끼는 책에 대고 소곤소곤 말을 걸기도 했다. 낮이 점차 길어지고 햇빛이 더 밝아지자 그는 때때로 시집 한 권을 뽑아들고 옛날에 좋아하던 시들을 다시 읽어보곤 했다. 그러다가 높다란 창문으로 다가가서 이 세상에 걸려 있는 마법을 풀기라도 하려는 듯 내다보이는 지붕 위에다 대고 목청을 높여 주문 같은 말들을 외쳐대곤 했다. 

잃어버린 여름의 망령들이 돌아와 떠들기라도 하듯이 그 무렵 날씨가 조금 따뜻해졌다.  북쪽에서 다가오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더 가까이 와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그 수수께끼같은 굉음이 천둥치듯 도시 위로 울려 수 많은 지붕위의 눈을 밀어내리곤 했다. 

밀워드에게는 전보다 더욱 강렬한 희망과 공포가 번갈아 가며 나타났다. 매일 아침 그는 탑의 제일 높은 창문으로 가서 쌍안경으로 북쪽 지평선을 살폈다. 

그렇게 북쪽을 살피는 일도 그 짧은 여름이 지나가면서 끝이 났다. 밤중에 들리는 우르릉 거리는 소리는 전보다 휠씬 더 가까이에서 들렸지만, 그 소리가 이 도시에서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다. 위협을 받고 있는 어느 성채의 성벽에 서 있는 감시병이 쳐들어 오는 적군의 창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살을 처음 보았을 때처럼, 그 순간 밀워드는 진실을 알았다. 공기는 수정처럼 맑았고, 언덕은 시리도록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예리한 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가 깜빡 잊고 있었던 적이 밤 사이에 마지막 방어선을 무너뜨리고, 최후의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비운을 맞은 언덕의 능선을 따라 반짝이는 그 무서운 빛을 보슨 순간, 밀워드는 마침내 그 소리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옛 고향 북쪽을 떠나, 먼 옛날 그들이 차지했던 땅으로 의기양양하게 되돌아 오고 있는 그들은 빙하였다. 

1990년 1월 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아서 클라크의 <The forgotten enemy >를 20여년이 지난 지금 다시 읽어보니, 이상하게 리처드 매드슨의 <나는 전설이다>가 오버랩. 히로시마 원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니네 일본 샘통이다,라고 생각했지 니네들 그 거 참 안됐다라고 생각해 본적은 없었으며 원폭의 피해로 인해 2차대전의 주역이 너구리 둔갑술처럼 일본이 피해자라는 식으로 말하는 일본 지식인들에 대해 한마디로 밥맛없었다는 것이 더 솔직한), 원폭의 후푹풍이 서구 작가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쳤는지, 그리고 오히려 서구 작가들이 더 인류에 대해 그리고 미래의 테크놀로지에에 대해 더 회의적이며 절망적으로 생각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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