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 먼저 번역자의 후기를 보았다.  

언제부터인지 외국소설을 읽고 난 후에, 뒤에 게재된 번역가의 한마디를 꼭 읽는 습관이 들었다. 번역 기계가 아닌 이상에야, 다른 언어의 책을 우리말로 옮기고 난 뒤에는 번역자도 그 책에 대해 뒷끝감상이 있을 것 같아서이다.  원서를 읽고나서 괜찮다는 생각에 책출간을 기획했을 수도 있고 출판사의 의뢰에 어쩔수 없이 떠 맡을수도 있지만, 번역자의 후기는 그 책에 대한 책임감과 성실성을 어느정도 측정할 수 있다. 심지어 번역자의 후기뿐만 아니라 편집자의 후기가 덧붙여져 있다면, 그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의 공은 이루말 할 수 없으리라. 지금까지 편집자의 후기가 쓰여져 있는 것은 북스피어의 김홍민편집자와 예전 출판사중에서 박중서편집자정도. 아, 북스피어는 독자교정자들도 모집하던데, 아이들이 조금만 컸더라면 독자교정에 응모라도 할 수 있겠건만(윽, 속쓰려!).

권남희씨의 후기에 주목하게 된 연유에는 같은 엄마로서의 위치때문이다. 매번 그녀는 자신의 번역책 후기에 자신의 딸 정하이름을 언급한다. 보통 번역가들의 책을 보면 개인적인 언급은 피하는데, 이번에 나온 <애도하는 사람>에서의 후기에도 사춘기 소녀 정하에게 사랑을 보내며 라고 쓰여있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아, 이제 그녀의 딸 정하가 사춘기구나. 내가 정하라는 이름을 처음 본 것이 언제였더라. 년도는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온다 리쿠의 <밤의 피크닉>에서였던 것 같다. 지금 주섬주섬 책장에서 꺼내와서 보니, 청춘보다 사춘기에 가까운 딸 정하야, 사랑한다 라고 적혀있다. 몇 년 사이에 그녀의 딸 정하는 사춘기에 도달한 나이가 되었구나, 싶었다. 참, 세월 빠르다. 내가 전혀 모르는, 심지어 얼굴도 모르는 번역가의 딸 소식을 이렇게 후기로 간간히 듣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그녀의 딸 정하가 차츰차츰 성장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 같다. 그녀의 후기를 빌미로 그녀의 딸 정하의 사춘기를 응원하고 싶다. 다음엔 무사히 사춘기를 잘 보낸 딸에게 보내는 격려의 메세지를 읽을 수 있으려나. 권남희씨의 지칠 줄 모르는 번역 에너지는 아마 딸에게서 나오는 것은 아닌지. 미래의 어느 날 그녀의 딸 정하가 두 손 가득 안을 수 있는 책은 얼마나 되려나. 정하가 고등학교를 가고 대학교를 가고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는 모습을 그녀의 후기를 통해 간간히 소식을 접했으면 좋겠다. 마치 윤미네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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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3-31 23:10   좋아요 0 | URL
저도 요새 꼭 역자 후기를 읽어요. 은근히 참 재미있더라구요. 번역하는 과정중의 얘기를 읽다 보면 그 나름의 또다른 작품 같아져요. 독자 교정도 참 재미있을 것 같은데 저는 한 번 틀린 것 메일로 보내봤었는데 답장이 타당한 의견입니다,하고 끝이더라구요-..- 별로 교정을 시켜 보고 싶지 않았던 건지. 참 머쓱했던 기억이 납니다.^^;;

기억의집 2010-04-01 09:29   좋아요 0 | URL
그 몇장 안되는 번역자의 말이지만 그들의 후기를 읽으면 작품이 더 애정이 가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진짜 성의 없네요. 다음쇄에는 어떻게 교정해보겠다,는 말도 없었나요?무슨 출판사에요? 독자 교정에 그렇게 성의 없다면 다른 책들도 뻔할 뻔잖네요.
예전에 문동 홈피 들어갔다가 독자 교정하는 거 신청접수 받길래(세계문학이었는데 교정하면 책 준다는 말에) 신청했는데 떨어졌어요. 흑흑

다락방 2010-03-31 23:36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은 참 섬세하시네요.
저는 위의 두권 소설을 다 읽었고 물론 역자후기까지도 다 읽었지만 두 번역가가 같은지도 몰랐을 뿐더러, 이 페이퍼를 읽어도 어어, 딸의 이름을 언급했던가, 하고 완전 생소한데요. 음, 만약에 저도 엄마가 되면 이런 섬세한 것들을 기억해낼 수 있을까요?

문득 번역가가 이 글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녀의 딸도. 그렇다면 세상 사는게 조금쯤 더 따뜻할텐데 말이죠.


기억의집님, 좋은 꿈 꾸세요!

기억의집 2010-04-01 09:33   좋아요 0 | URL
락방님(어느 분이 그렇게 부르길래 저도~~), 섬세한 게 아니고 좀 스토커적인 기질이 있는 거 같아요. 책에 대해서만. 이 번역가의 책이 저랑 궁합이 맞는 번역가는 아닌데 대체로 그녀의 책 후기 읽다보니 딸냄 이름을 꼭 적더라구요. 이 책 후기에도 애도하는 사람 원서 읽는동안 딸냄이 라면 끓어먹었다,라고 쓰여 있어서... 알콩달콩해서 보기 좋아요.

전 예전에 회사 다닐 때 10시면 잤어요. 그 땐 인터넷이 없어서 그랬던 거 같아요. 출근 시간도 빠른 거 같던데...오늘은 제 시간에 도착 했어요?

다락방 2010-04-01 10:39   좋아요 0 | URL
하하 네
저는 대부분의 날들을 제시간에 도착하죠. 그런데 어제는 정말이지 회사가 나오질 않아서... 하하하하하

지각은 싫어요. ㅠㅠ

2010-04-01 1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2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으로 2010-04-01 20:39   좋아요 0 | URL
그렇죠, 본 책보다 가끔은 이런 번역자들의 더 매력적일 때도 있어요^^
자식에게 헌사를 쓸 수 있는 작가나 번역자들이 부럽네요.
독자교정 담에 다시 도전해보세요. 아이들때문에 미루면 다 놓쳐요~~
왜 기억의집 님처럼 실력있는 분을 못 알아볼까요....

기억의집 2010-04-02 08:51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그 딸은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일하느냐고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한 맘도 있을 거 같아요.
저도 집에 있는 사람인데도
애들 잘 못 챙겨줄때가 있으니깐요.
제가 무슨 실력이 있다고..그러지 않아도 요즘
이 생활을 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인데..
여긴 글 잘 쓰는 분들이 너무 많아 주눅들어요.^^

2010-04-01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4-02 08:53   좋아요 0 | URL
네~~ 샤일로에요. 너무 이쁘고 귀엽더라구요.
샤일로는 여자애인데 본인이 저렇게 톰보이를 원한다고 하더라구요.
외국애들은 색깔이 있어서(금발에 초록눈) 이쁜긴 해요.^^
지금 찾아가 봤는데 화욜이 11시30분 것이 있어요!
그 날로 할까요?

akardo 2010-04-02 23:00   좋아요 0 | URL
작가 후기 읽기는 엄청 좋아하는데 역자 후기에 대해선 여태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렇게 가족 챙기는 모습 보면 은근히 읽는 저도 흐뭇해지더라구요. ^^덩달아 행복 오라를 받는 기분이라서요.
전 북스피어 독자교정은 한번 당첨되고 그 다음엔 안되어서......ㅠㅠ새로운 분들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가니까 한번 시간 되실 때 응모해보심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아. 자녀분들이 빨리 커야겠어요. 하하;;

기억의집 2010-04-05 09:22   좋아요 0 | URL
번역자의 후기 읽는 것도 재밌어요. 나름 자신이 좋아하고 기획한 작품이기 때문에 그처럼 애정이 가는 후기도 없을 거에요.
북스피어, 종종 들어가는데, 독자교정 한번 가보고 싶어요. 근데 너무 늦은 시간이라 거의 불가능할 거에요^^
 

    

어리석게도 나는 내가 제도권밖에 머물고 있다고, 주변인으로 자유롭게 잘 살아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외고나 특목고를 보내기 위해 아이의 공부를 닥달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너도 나도 빠져든 부동산 투기 광풍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나의 관심사가 금전적인 것이 아닌 책이라는 사실만으로, 내가 우리 세대의 주변인으로 제도권을 비웃으며 비껴가며 살고 있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   

내 맘을 솔직하게 들여다 보면, 나는 제도권에서 자유롭다기보다는 회피하는쪽에 가깝고 그 쪽에 신경을 덜 쓰려고 노력하는 것이 보일 뿐이다. 나 역시 제도권 사람이라는 것. 뒤 늦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커다란 사회 시스템의 보수화에 물들었고 그 보수성은 좀처럼 깨기 힘든, 내가 안고 있는 유리공이나 마찬가지이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키우다보면, 아이들도 우리 부부의 삶처럼 평탄한 삶을 지향하기를 바란다. 때 되면 우리에게서 독립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반듯한 아이를 키웠으면 하는. 흔히 말하는 정상적인 사회시스템에서 편입해 들어가 잘 살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몇 주 전에 본 이 영화들을 보고 추위로 쌀쌀한 황량한 길을 걸으면서 집으로 오는 길에,  내가 지향하는 삶이,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바라는 삶이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속에 갇혀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내 아이가 <업 인 디 에어>의 조지 클루니처럼 허공(비행기)에서 보내며 섹스란 다시 만날리 없는 사람과의 원나잇 스탠드이며 가족이란 개념을 송두리채 휴지통에나 갖다 버리는 삶을 선택한다면, <밀크>의 하비처럼 어느 날 긴장한 채 들어와 엄마, 나 사실 여자보다 남자가 더 좋아! 그래서 우리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쟁취할거야!라고 한다면, 나는 성인이 되어 선택한 그 아이의 삶의 방식을 존중할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분명 나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그래서 수건으로 머리 싸매고 이불 속에서 끙끙 며칠을 앓을지도 모른다. 내가 살고 있는 공동체에 그러한 삶은 분명 다른 색깔이며(휴, 이럴 땐 형제자매에게 우리 아이가 이렇게 되었다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것이다), 같은 색깔을 유지하지 못했다는 것에 치욕과 굴욕감에 부르르 떨지도 모르겠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그렇게 될까봐 무섭다. 내 새끼만은 다른 사회색깔을 가지지 말기를. 악다구니처럼 강요하지 않지만 옆에서 바라보면서도 나는 내 새끼만은 동일한 사회적 색깔을 띄기를 바라고 있다. 메인 스트림의 물결에 휩싸여 편한 삶을 살아가길, 물결의 흐름속으로 같이 떠 내려가는 삶을 동경하는지도 모르겠다.

은연중에 아이들에게 그렇게 되도록 세뇌하지만 마음을 다 잡으면 그런 제안쯤 못 받아 들일 이유가 없다. 어찌 보면 사회시스템의 유지는 보수화이며 그 보수화는 종교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수 백년동안 통제되고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종교의 눈을 벗어나면 우리의 삶은 다양할 수 있다. 동성결혼을 죄악으로 보는 것도, 독신의 삶을 비난하는 것, 오로지 이성간의 결혼을 인정하고 아이를 낳고 잘 키우는 것은 종교적인 이데올로기이다. 그렇다고 종교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종교야말로 사회시스템의 토대이며 기둥이기 때문이다.  마이클 셔머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신이 없다는 것을 아는 진화 과학자중 종교를 믿는 이유로 사회와 가정의 근간을 이루기 때문이라고 쓴 적이 있다.  도둑질 하지 마라, 남의 아내를 탐내지 마라같은 십계명같은 도덕적 원리가 사회 시스템에 없어서는 안될 중심적인 지축이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나 또한 진화관련 책을 읽으면서, 

이런 상상을 하곤 한다. 원시 시대, 아무 것도 갖춰지지도 않는, 무자비하면서 무질서한 서로 잡고 잡아 먹히는 동물적인 본능만이 활개치는 원시인들이 뭉쳐 있으면 다른 동물들의 위협에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무리 속에서 힘있는 자와 힘 없는 자의 위계질서가 생겨나면서 힘 있는 자의 권력투쟁과 그 권력을 유지하지 하기 위해 자연신이라는 이름하에 주술의 힘을 빌려 힘 없는 자들을 통치하면서 점점 세를 넓힌 것은 아닐까, 그래서 원시부족 사회가 탄생한 것이 아닐까하고 말이다. 종교야 말로 인간 사회의 탄생에 가장 큰 공로자가 아니였을까하는. 

그래서 내가 개인적으로 무신론으로 전환했지만 종교를 부정하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이미 나는 보수화되었고 종교적 보수화야말로 사회적 틀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단지 억압만은 받아 들일 수 없다. 

상당히 민주적이고 자유로운 느낌이 드는 스타일이라는 단어가 있다. 스타일이라는 말은 어찌보면 통제화된 사회속에서 최대한 개개인의 자유를 보장해주는 말이다. 저건 저 사람 스타일이니깐, 저 스타일은 원래 그래! 우리는 이러한 스타일이라는 말을 들으면 상대에 대한 최대한의 배려심이 나오게 마련이다. 불과 백년 전만해도 해도 우리는 삶의 스타일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성인이 되면 결혼해야하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것이 목적이 되었던 사회였으니깐. 하지만 우리 세기의 스타일은 다른 세기의 스타일과는 다르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타인의 다른 사고와 행동을 받아 들이고 인정하고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엄격한 사회적 기준에서, 시선에서 사람과 사물을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나는 우리 아이들세대가 어떻게 변할지 잘 모르지만, 우리가 지금보다는 더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것만은 확신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조지 클루니의 빈 배낭같은 삶도, 허비 밀크의 동성애자의 권리를 위해 바쳐진 삶은 한낱 헤프닝에 불과할 뿐이다. 스타일은 우리 모두의 삶의 다양성을 위해 싸웠던 단어이고 존재방식이다.  

한 알라디너의 대문이미지의 사진처럼, 나 또한 발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싶다. 수천년 동안 내려오는 관습과 제도, 모든 사상적 이데올로기와 종교적 이데올로기, 보수화된 신발속에서 잠시나마 발을 빼 맨 땅위에 서 있고 싶다. 발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다시 그 신발을 신을지 말지는 나중에 고민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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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10-03-31 17:14   좋아요 0 | URL
발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싶은 것은 모든 주변인들의 소망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작은 소망도 이루기에는 우리 사회에서 큰용기가 필요하죠...어쩌면 주변인들은 기본적으로 기회주의 품성을 갖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기억의집 2010-03-31 22: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인디에어에 이런 대목이 나오거든요. 조지 클루니의 누이가 너는 우리집에서 없는 존재나 마찬가지라고요. 타인과 다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언제가 우리는 조지 클루니의 삶이 전혀 낯설지 않는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어요. 일단 어떤 제한이나 구속에서 자유로울 필요는 있는 거 같아요^^

2010-04-01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4-01 19: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희망으로 2010-04-01 20:49   좋아요 0 | URL
보통으로 살아가길 바라는 제 마음 역시 결국은 제도나 틀 속에서 살아가기를 은근히 바라면서 그런 마음을 감추고 있었는지도 모르죠. 기억의집 님은 그래도 발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사는 것 같아요. 열린 마음을 가진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그게 결국은 자신의 또 다른 틀 안에 가두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아니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기억의집 2010-04-02 08:56   좋아요 0 | URL
저도 딜레마 속에 있는 거 같아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면 무식하게 살 수 있는데
책을 읽고 보는 것은 있어
소수의 스타일, 나와 다른 삶의 스타일을
안 받아 줄 수가 없더라구요.
어제 스타킹 애들하고 잠깐 보는데
일본인 가족이 나왔거든요. 그 집은 애4하고 아빠가 비보이에요.
대단하죠. 전 애들이 대단해보이기 보다 아빠의 기존의 보수성을 깬 것이 더 대단해보이더라구요.

루체오페르 2010-04-03 15:40   좋아요 0 | URL
아...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많이 느낍니다.
업 인 디 에어, 저도 재밌게 봤습니다. 조지 클루니 마지막에 용기를 내 그녀를 찾아갔을때 반전,충격 받은 모습 보고 왠지 저도 짠 하더군요. 그런데 그 여자 너무한것 같습니다. 본인의 삶,즐거움이라고 언듯보면 자유롭고 열정적으로 사는것같지만 결국 자신의 가족, 남편,자식들에게 자신의 모습과 가치관은 당연히 숨기고 살겠죠? 진정 떳떳하다면 말했을텐데 본인도 그걸 아니 그러겠죠. 제가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입니다. 남이 하면 뭐,내가 하면 뭐 이런 부류요. 여튼 다시 비행기 타는 삶으로 돌아가며 기장과 마일리지 카드 받고 하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네요. 음,기억이 가물하지만요.^^;

기억의집 2010-04-05 09:25   좋아요 0 | URL
전 조지 클루니 별로였는데 지난 번에 나비님의 페이퍼 보고 갔다왔거든요. 정말 멋지게 늙네요. 이 사람!
사실 사회라는 게 참 우습더라구요. 우리는 많이 다양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뿌리는 안 그런 거 같아요.한 뿌리가 여러갈래의 뿌리로 번진다면 그게 바로 다양한 사회겠지요. 이 영화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어 리뷰 쓸려고 했는데 저도 집안 사정이 있어 못 썼어요. 그러다보니 나중엔 기억이 가물가물~~
 

레이디 가가, 처음 봤을 때, 내 상식으론 도저히 이해가 안돼... 얘, 뭐니? 왠 사이코니? 이랬다. 왠만한 일로는 눈껌벅 하지 않는 나도 가가의 기괴하고 도를 넘는 퍼포먼스는 노출증환자의 시선끌기처럼 보였고(이게 다 나이 들어 보수화되었다는 증거지 싶다!), 작년에 레이디 가가 방한했을 때만 해도 왔구나, 왔어~~ 노래도 시덥지 않더구만, 쟤 콘서트에 몇 사람이나 올랑가 싶었는데, 다음 메인에 올라오는 기사나 특히 가가팬들이 가가를 위해 대형버스에 가가 사진 붙여 홍보한 사진보면서 울 나라에도 가가팬들이 적잖게 많아 좀 놀랬던, 거참 특이한 애들 많네, 기억이 난다.   





 

이런 사진들만 봐서는 웃길뿐, 사랑스러운 가가는 아니라는(이 사진들은 그나마 애들은 가라버젼은 아닌 것들만 올린 것임).

그러다가 며칠 전에 우연히 다음에서 레이디 가가의 <Bad Romance>를 패로디했는데, 이런 걸 어떻게 패로디했는지 모르겠다는 말에  

 

B급 뮤비가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보고 나서, 한번 웃어주었다. 푸 하하핫^^  

그러다 가가의 오리지널이 궁금해 뒤적여보니,

   

뭐, 가가의 오리지널도 보고나서 웃고 넘어갔다. 특히나 마지막 장면보고 웃겨 죽는 줄 알았다는.

워낙, 이 뮤비가 볼거리(가가의 의상이나 분장)도 많고 웃기는 것도 많아 몇 번 보았을 뿐인데, 어느 날 애들 학교 보내놓고 느긋하게 커피 탈 때 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것도 가가,,,,,,,라~ 

  

한 며칠을 커피 타면서 나도 모르게 은근 중독되어 가가,,,울랄라를 흥얼거렸더니, 알라딘에서 공짜쿠폰 준 몽키3에 가서 이 노래를 다운받아 요즘 무한반복 중(아, 이제 앨범시대는 간거야, 음원이 세상을 지배하다니 털푸덕!), 지인을 만나러 갈때도, 어제 영화 <밀크>보러 갈때도, 지하철에서 함께한 노래, 울랄라~~~ 이 노래 들으면서 몸도 흔들뻔 했다는.

굵은 허스키한 가창력,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다보면 가슴 속에 답답증이 노래를 듣는 순간에는 사라지는 느낌. 노래가 좋다보니, 가가의 모든 퍼포먼스가 갑자기 사랑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진짜로~   


솔직히 본인도 저렇게하고 나디면 좀 버겁기는 할 듯(여하튼 예전엔 미친x였는데, 지금은 용감한 우리 시대의 행위예술가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는 !) 

난 정말 가가에 대해 너무 몰랐다. 퍼포먼스 이미지로 먹고 사는 줄 알았더니 이렇게 멋진 노래도 부르고 게다가 라이브에서의 휘어잡은 능력은 또 어떻고. 이러니 가가 울랄라, 소리가 저절로 나올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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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가 울랄라(2)~
    from ^^ 2012-05-15 16:57 
    레이디 가가가 트윗(그녀의 트윗 팔로워는 현재까지 2300만명정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팔로워수를 가지고 있다)으로 2012년 월드투어"The Born This Way Ball"를 4월 27일 한국부터 시작한다는 말에 눈이 번쩍, 귀가 쫑긋. 가가의 열혈팬인 나로서는 그녀의 라이브를 한번쯤은 보고 싶다,라는 소망(?)은 가지고 있었던 터라, 가가의 월드투어 티켓 예매일날만을 기다렸다. 가가의 인터넷 티켕팅 당일, 까막게 잊고 다음 날 부랴부랴 들어

올 2010년 안데르센상 후보 작가 중에는 미국의 일러스트 작가 후보로 에릭 칼옹이 올라와 있다. 개인적인 바램으로는 부디, 제발 옹이 수상했으면 하는데, 과연 안데르센위원회에서 그의 40년, 그림책작가로서의 경력을 인정해 줄지는 미지수다. 에릭 칼이 우리 시대의 위대한 그림책작가라는 사실을 그리고 그의 그림책이 뛰어난 상품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가 수십년간의 그림책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의 칼데콧 수상도, 그리고 그보다 휠씬 인지도가 낮은 동화책 작가들에게도 상을 수여한 안데르센상을 받지 못한 이유로, 그의 여러 그림책에서 보여지는 화면 클리셰와 단순한 이야기를 꼽을 수 있겠다. 그렇다. 그의 그림책에서는 여기저기서 볼 수 있는 똑같은 형태의 그림이 널려 있으며, 그러한 단점을 커버할 만한 능수능란한 이야기꾼이 아니다.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지기 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림책을 놀이감으로 가지고 놀 수 있게금 만든, 아이디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게 왜 단점이냐고? 아이디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보니, 그의 그림책의 대상연령은 한계가 있다. 아무리 높게 잡아도 7,8세 수준정도. 그러다 보니 그의 그림책 이야기 수준은 유아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며 그렇기 때문에 칼데콧이나 안데르센에서 그에게 상을 주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물론 우리는 이럴 때 흔히 이런 말을 하곤 한다. 상복이 없다고!).  

아이들 그림책 세계에도 놀랄만한 이야기꾼들은 많다. 특히나 기무라 유이치나 신시아 라일이런트의 경우가 그렇다. 둘다 그림은 그리지 않는, 일러스트 작가들와 함께 공동작업을 하면서 자신들의 상상력을 펼쳐 나가지만 그들이 수 놓은 이야기의 그 감동은 잔잔한 가슴에 파문이 인다고 할까나. 기무라 유이치의 경우 내가 그림책계의 세헤라자데라고 말하고 싶은 작가이다. 어린이 책치고는 긴 분량(총6권)이긴 하지만 (흥, 제발 부탁이야, 영화따윈 잊어줘!), 이건만은 장담한다.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순간, 하루하루 이 책 읽어주기만을 기다리고 있고, 결말 무렵에는 코끝이 찡해지면서 눈시울이 붉어진다는 사실 말이다. 어린이 그림책의 이야기 분량은 적지만 그 깊이만은 다른 쟝르 못지 않은 감동을 주며, 어린이책을 위해 뛰어들어 열심히 활동하는 이야기꾼들이 수 없이 많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런 이야기꾼이 대거 활보하는 그림책 세계에서 에릭 칼이 우리 시대에 뛰어난 작가로 남을 수 있는 것은 다른 그림책에서 볼 수 없는 뛰어난 색채감각이 살아있다는 것일 것이다. 그의 그림책 속에 나타난 색은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비비드한 경쾌함이 살아 있다. 그의 색채에서 톡톡 튀기는 듯한 스타가토의 느낌과 상쾌하고 경쾌한 왈츠같은 느낌을 상기할 수 있었던 것은 밝은 색채가 주는 유쾌함에서 기인한 것이리라. 그리고 그의 이러한 색채감각이 그만의 색채가 되었고(어떻게 보면 이러한 색채가 자신의 그림책 세계에서 확립된 뒤에는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점에서 클리셰라고 할 수도 있지만), 이 놀라울만한 전체적인 색감은 그의 전용색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며 그림책 역사에서 꼭 그의 이러한 색채감만은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며 인정해야 할 부분이다. 이렇게 여러가지 색을 쓰고도 부조화스러운 느낌이 안 난다는 것은 그의 색채감이 경지에 올랐다는 것일 수도(아, 그러면에서 볼때 팀 버튼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알록달고하던데, 영화에서 전체적으로 어떤 색을 썼는지 너무나 궁금함).

   

 
(실물은 더 매력적!)그의 그림책에서 배경의 색은 대체로 없다. 콜라쥬와 색을 같이 사용해서 그런 것이겠지만, 내 생각에는 화려한 면의 색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과감하게 배경색을 제거한 것일 것이다. 저 화려한 색 뒤로 배경색을 칠한다면 죽도 밥도 되지 않았을 것.
 

에릭 칼이 43년동안  그림책 작가 활동을 하면서 자신만의  색을 확립했다면, 다른 작가들은 어떨까? 최근에 오픈 키드 갔다가 눈에 확 띄어 구입한 중국 그림책 작가의 <모모의 동전>, 전체적으로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짠한 이야기이지만 독자의 감정을 들었다 났다할 정도로 확 잡아버리는 여운이 강한 이야기는 아니다. 이야기가 여리고 섬세한  반면에 이 그림책속의 색은 둔탁하고 색의 농도가 짙다. 개인적으로  색채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그림책이었다. 대체로 일본의 그림책이 밝고 튀지 않는 반면에, 내가 접한 중국 그림책들은 전체적으로 배경이나 화면이 어둡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중국 그림책 작가들의 그림책에서 사용하는 색의 농도가 어둡다는 말이다. 처음엔 수묵화의 영향때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촌스럽지는 않지만 에릭 칼의 그림책에서 느낄 수 있는 색의 세련미는 없다. 오히려 색채가 솔직하다고 해야하나. 어린 아이같은 진솔함과 솔직함이 느껴졌다. 어찌나 이야기와 색이 어울리던지.   

  

 
실제 화면은 어둡지만 상당히 매력적인, 오밀조밀하다는 느낌이 드는 그림책이다. 우리의 60년대가 연상되지 않는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제 그림책 작가들도 서양미술사의 연대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서양 미술사가 수 백년간 쌓아올린 문화적인 업적이라면 업적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영향속에 배우고 모사하고 숭배되기 때문에, 그림책 작가들이 서양미술사에서 보여지는 색채를 많이 사용하고 있고 자신의 영역속으로 그 색채를 많이 집어 넣으려고 한다. 위의 <모모의 동전>은 어쩜 그 중간 세대의 그림이 아닐까 싶다. 자신의 중국 미술사와 서양 미술사 사이(그러니깐 동서양의 미술사 중간쯤)에서 정체적인 혼란을 겪고 있는.  이 그림책의 일러스트 작가 주청량이 어떻게 발전해 나갈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의 그림책 속의 색채는 매력적인, 상당히 매력적인 것만은 틀림 없다. 그가 어떤 영향 속에 있던 간에 당분간은 이 색채를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게 클리셰가  돼도 그림책 속에서 자신의 색을 확립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야기뿐만 아니라 색도 작가의 세계관을 표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모의 동전>에서 분명한 것은 일러스트 작가가  이야기 작가의 글을 완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그리고 자기만의 색으로 표현할 정도로 농익은 작가라는 것이다. 좀 더 일찍 그림책의 일러스트 작가로 데뷔했다면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48년생. 우리 나이로 60이 넘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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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2 15: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6 17: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소품이라고 불릴 수 있는 작품이다. 읽어내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품도 아니고 이야기도 뭐 그렇게 특별한 것은 없다. 하지만 단편들마다 재미는 있다. 시간떼우기용으로는 그만이라는 말.

<팔월의 눈>,  이 단편소설은 눈여겨볼 만하다. 일본의 2.26사태를 다룬 장편소설<가모우 저택 사건>의 워밍업 작품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모우 저택사건>을 읽고 그 사태가 뭘 의미하는지 그리고 일본역사에서 어떤식의 대우를 받고 있는지 잘 몰랐는데, 이 단편을 통해 미야베 미유키가 2.26사태를 다른 시각으로 보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니깐 일본의 정통주의 역사에서 본 것이 아니고 비주류역사에서, 반란군의 눈으로  2.26사태를 다시 해석했다는 말이다.  

할아버지들이 한 행동은 옳은 일이었나요?  

수화기너머에서 웃음 소리 비슷한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웃고 있는 것이리라. 

"교과서에는 옳지 않다고 씌어 있을텐데."  

"........" 

"중대장님은 사형을 당했고 우리도 헌병에 끌려갔다.쫒겨날까봐 얼마나 떨었는지.그거 말고는 먹고 살 것이 없었거든."  

"그럼..무서우셨어요?" 

"그럼 무서웠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무서웠어. 가쓰이치는 아닌 것 같았지만.그 친구는 머리가 나쁜 게 슬프다고 했어. 누구 말이 진실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건 자기 머리가 나쁘기 때문일 것라더군. 네 할아버지는 성실한 사람이었거든(154p)."

<지나간 일> 

나는 게으른 독서가였지만 책을 구입하는 건 좋아했다. 그래서 내가 찾는 책들 가운데에는 열심히 읽어봤자 일반들인들은 이래도 저래도 이해하지 못할 전문서적이거나, 그 정반대인 아이들 동화책이 섞여 있기도 했다. 아니, 나는 오히려 그런 종류의 책들을 즐겨 모은다(163p)

나는 미미여사의 이런 문장이 좋다. 솔직하면서 자신의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문장 말이다. 개인적으로 그림책과 동화책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문장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독서이력의 광범위한 진정성을 어느 정도 보았다면 좀 오버인가. 나에게 그림책과 동화책은 경계를 허물고 쟝르를 뛰어 넘는 카테고리에 속한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다 큰 지금도, 여전히 좋은 그림책이나 동화책을 보면 눈이 뒤집히고 숨이 팔딱거려 수집하게 된다. 멋진 그림책을 만났을 때의 그 기쁨이란, 정말이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예전에 아이들이 핑계였는데, 요즘은 단지 내가 좋아한다는 구실하에서 즐겨 모은다. 나에게 그림책과 동화책은 말 그대로 전체연령가이다.

언젠가 이 책들을 읽었다가 참, 답답하다는 생각을 했더랬다.  자기가 속한 세계에서 보고 재고 자르고 그래서 고급스러운 재단의 글이긴 하지만, 이상하게 공감할 수 없었다. 자신의 세계속에 갇혀 사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공감스펙트럼이 넓다가 보다는 오히려 지식인의 자폐성을 보는 것처럼 씁쓸한의  감정에 휘말렸었다. 물론 내가 사는 처지가 그들에 비하면 형편 없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팍팍한 생활비, 월급을 쪼개도 쪼개서 사는 책과 음반들, 카피엽서에 만족하는 명화그림들 같은. 지지리 궁상에 가까운 생활자로서는 그들의 부유로운 세계는 멀게 만 느껴졌고, 그래서 그들의 세계가 로망이기보다는 그들만의 고급스러운 세계에서 멀찍감치 떨어져서 보게 되었다. 토해내고 싶은 글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미유베 미유키나 온다리쿠 같은 일본 작가들의 다작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는데, 미야베 미유키의 저 단편집을 읽으면서 어쩌면 저런 무작위로 쏟아내는 소품같은 단편집들이 캐릭터를 형상화할 때 필요한 공감스펙트럼을 넓히긴 위한 글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일본 작가들의 캐릭터에 대한 공감 스펙트럼이 넓긴 하다.  

카쿠다 미쯔오의 <대안의 그녀>를 읽었을 때가 새삼 떠 오른다. 그녀가 묘사한 가정주부의 정체성, 시모와의 갈등이나 애한테서 자유롭고 싶어지는 이중적인 심리를 너무나 잘 묘사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어쩜 내 얘기하고 똑같잖아, 혹 작가가 체험한 이야기를 쓴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봤는데, 작가의 경험이야기라기보다는 작가가 부단히 캐릭터와 자신과의 거리감을 줄이려고 노력했고 그 노력은 여러 단편들에서 등장 인물의 감정적인 접근을 많이 함으로써 캐릭터에 대한 공감스펙트럼을 넓힌 결과라고 보고 싶다. 대체로 다작의 일본 작가들은 단편들을 통해 장편의 캐릭터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계속해서 되든말든 이야기를 써 냄으로써 자신의 이야기感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어떤 경우에는 장편에서 훌륭하게 이야기는 이야기대로 그리고 캐릭터는 캐릭터대로 단편보다 월등히 더 나은 것으로 소화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시야를 넓히면 제대로된 글이나 캐릭터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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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3-03 13:06   좋아요 0 | URL
미미여사의 책은 제겐 편차가 커서 늘 읽을까말까 고민을 하게되요.
이 녀석은 건너뛸 예정이지만 저 마지막 문장만은 좋아보이네요 ㅎㅎ
(백과사전식 책과 동화책을 동시에 사랑하는 1人)

기억의집 2010-03-03 15:46   좋아요 0 | URL
아까 아이들이 와서 고구마맛탕 해주고 글 더 마무리 지었네요.^^
미미나 다른 일본작가들의 글 편차가 크지요. 신문 연재도 있고 여기저기 글을 써서 그런가봐요. 이 작품도 사실 그렇게 멋진 작품은 아니지만,
그녀의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장편의 실마리를 캐치할 수 있는 작품인 거 같아요^^

다락방 2010-03-03 13:52   좋아요 0 | URL
저는 미미여사의 책을 모두 다 읽지는 않았지만, 재미가 있든 없든(재미없는것도 있었어요. 마술은 속삭인다 같은것)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아주 조곤조곤 얘기하는게 무척 좋았어요. 모방범에서도 그 잔혹한 살인마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위로가 될 만한 문장을 발견할 수 있었죠. 저는 그 문장이 너무 좋았는데요, 이거였어요.

"세상을 얕보지 마. 만만하게 보면 안돼. 네놈에게는 이런 사실을 가르쳐 줄 어른이 주위에 없었겠지. 어렸을 때 그걸 확실히 머릿속에 심어줄 어른이 없었던 거야. 그래서 이렇게 돼버리고 말았지."

이 책 속에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문장 때문이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어요. 냉정한 살인마를 어떤말로도 도발할 수도 자극할 수도 없지만, 이런 말이라면 얘기가 달라지지 않을까도 생각했구요. 살인마라도 어쩐지 눈물이 핑 돌지 않을까 생각했구요.

위에 인용하신 문장이 무척 좋아요. 그 앞뒤 정황을 알고 싶을 정도로. 이번에 1일날 책을 사면서 이 책을 넣었다 뺐다가 했는데, 그냥 넣어버릴걸 그랬나봐요. 저라면 좋아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내용일 것 같아요. 소품이든 그게 뭐든 말입니다.

기억의집 2010-03-03 15:50   좋아요 0 | URL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뭐랄까, 저 양반이 결혼을 하지 않았는데도
캐릭터의 속마음을 속속들히 잘 아는 것 같아서
놀라울때가 있어요. 주부, 어린 아이, 중년 남자, 젊은 총각등등
어떻게 그렇게 캐릭터를 잘 훑는지 모르겠어요.
이건 우리나라 작가들이 배울 점이 아닐까 싶어요.
<모방범>은 그녀 최고의 작품 같아요. 근데 다락방님,
저 문장을 외운 거예요?

다락방 2010-03-03 16:44   좋아요 0 | URL
헉! 외우다니요! 저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아이큐가 낮은데요. 어떻게 외우겠어요. ㅎㅎ 적어놨던거에요, 기억의집님!

이럴때 외웠다고 말했으면 어쩐지 뒤로 후광이 비쳤을것 같은데 말입니다.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