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스티브 킹의 작품을 검색하다가 이 책들이 나온 것을 알았다. <쇼생크탈출>은 예전에 영언문화사에서 나왔을 때 사서 읽었고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스탠바이미>는 영화로 한번 보고 잘 되지는 않는 영어로 읽었던 책.  

이 책들 검색하다가 호러의 제왕 스티븐 킹의 새로운 모습 어쩌구 저쩌구 해서 문득 생각난 것인데, 나는 무서움을 많이 탔다. 지금은 과학책을 쪼금 읽어서 영혼같은 것의 존재를 부정하는 탓에 공포를 잘 느끼지 않지만, 차라리 신의 존재를 믿지 않으면 모든 타부에 무장해제가 된다는 것을 아시는지. 솔직히 집안에 삼재가 끼였다는  등 이런 신앙적 믿음에서 무장해제가 되면 사는 게 더 편하는다는 것을 느낀다.  

뭐 여하튼 그건 그렇고, 나는 아까 말했듯이 무서움을 많이 탔다.그래서 언제나 밀폐된 곳에서 안정감을, 안도감을 느꼈는데, 그 말은 집안 어디든지 문을 꼭꼭 걸어닫았다는 말이다. 문을 닫는다는 행위는 감히 그 누구도, 귀신이라도 들어올 수 없는 상태라 내가 안정하다고 여겼다.  

반면에 내가 갇혀 있는 상태에서 가장 안도감을 느꼈다면, 우리 아이들은 열려 있는 상태에서 가장 안정감을 느낀다. 추운 겨울날에도 방문을 열어놓고 가서 자라고 한다. 새벽에 추울 것이라고 말하면 방문이 열려 있어야 가장 무섭지 않다고. 추워도 상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 나의 공포의 근원은 외부였는데 우리 아이들의 공포는 내부! 언젠가 문을 닫고 있어야 무섭지 않냐고 물어보았더니, 두 놈 다 아니,라고 말하더라.  

확실히 나는 공포의 대상이 외부에 있다고 믿었다. 학습되어진 결과가 아닐까, 아이들이 말을 듣고 이런저런 생각을 굴려보는데, 문을 열어 놓으므로써 엄마한테 금방 갈 수 있고 도와주러 올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이다. 공포 자체가 자라면서 학습되어진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내가 어렸을 때는 어땠는지...기억이 나질 않는다.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10-05-10 16:16   좋아요 0 | URL
외부에 있다고 생각하기에, 집안이나 이불안 귀신 이런 침입에 더 무서운거 아닐까요?

기억의집 2010-05-11 08:5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외부에서 오는 침입이 무섭다고 생각했는데 저의 아이들은 둘 다 아니더라구요. 이거 다른 애들한테 물어보면 재밌겠구나 생각했어요.

알케 2010-05-10 16:24   좋아요 0 | URL
여기 스티븐 킹의 팬덤 1인.^^

<스탠드 바이 미>는 스티븐 킹 이야기의 원형들이 녹아있지요.

이 이야기는 나중에 <그것 It>이란 장편에서 화려하게 변주됩니다.

(읽으셨으리라 짐작하지만....)





기억의집 2010-05-11 09:02   좋아요 0 | URL
알케님, 반갑습니다^^
아, 그렇군요. 전 잇의 분량에 압도되어 읽지 않았었거든요.
읽어야지 하면서 중고샵에서 언제 나오나 기다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변주되는지 궁금하네요. 근데 왜 우리는 킹을 좋아할까요?!

scott 2010-05-11 09:10   좋아요 0 | URL
저도 무서움 많이 타서 어린시절(아기 때부터)불을 훠히 켜야지 잠이 들었어요. 불을 끄고 잠든지 몇년 안될정도로 ㅋㅋ겁이 많아요. 한번은 가로등이 안켜진 어두운 길을 걸어가다가 정말 인기척도 없이 어떤 남자가 쑥 나타나는거예요. 동네 떠나가게 소리를 질럿는데(그 순간 주변 집들 창마다 불이 켜지고 몇몇 이웃들은 대문밖을 나올정도로 ) 그남자가 더 놀라서 가슴을 쓸어 내렸어요. 스티브 킹 소설 은근 잔인하고 공포스럽죠. 그래야 팔린데요^^

기억의집 2010-05-11 09:35   좋아요 0 | URL
저도 무서움의 대상이 변하는 거 같아요.예전엔 보이지도 않는 귀신같은 실체가 무서웠는데 지금은 밤거리를 돌아다니면 사람이 무서워요.특히나 남자들. 낮에도 한적한 거리를 지날 때 남자가 저 앞에서 걸어오면 무서워지기 시작하더라구요. 옆길로 갈까,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엉클어지는 거 같아요.
킹의 데스퍼레이션인가 읽고 진짜 무서워 중간에 읽다가 관둔 적이 있어요. 심리적으로 감당이 안되더라구요. 공포(책)를 사서 즐기는 것이 참 재밌죠?!

알케 2010-05-11 13:07   좋아요 0 | URL
킹은 우리 마음 속 깊고 깊은 구석에 숨어서 혼자 울고 있는 아이를 불러내지
요. 킹은 상처받아 울고 있는 아이의 눈물 번진 맨 얼굴을 지금, 이곳의 우리
와 대면시키는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 아이가 괴물로, 악마로 변하지
만 기본적으론 유년기의 상처를 가슴에 묻고 사는 가여운 아이일 뿐.

<스탠드 바이 미> <캐리> <잇> <옥수수밭의 아이들> 등등.

그리고 무엇보다 기막힌 문장과 섬세한 묘사.
(영문판으로 읽으면 어떤 귀절은 마치 라임을 맟춘 듯한 형용사들로
묘사를 하곤 하는데 문장을 완전히 장악한 느낌을 주죠)

그를 좋아하는 저의 이유입니다. ^^

기억의집 2010-05-11 16:21   좋아요 0 | URL
근데 킹의 번역본은 이상하게 싼티나는 문장이죠. 저도 원서로 버벅거리면 읽었는데 번역본과는 차이가 너무 나더라구요. 워낙 많이 팔리는 작가여서 그런지 킹은 네 멋대로 써라 라는 글쓰기 책 읽어보니 많이 인용되는 작가이기도 한데 말이죠.

2010-05-14 14: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5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5 2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5 2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5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5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7 08: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7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내가 앨리스 먼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위안>이라는 단편을 읽고 나서부터였다. 다른 단편들도 <위안> 못지 않는 재미와 씁쓸한 아이러니 그리고 인생의 따스한 시선(특히나 표제작 단편 여주인공의 인생은 어찌나 읽으면서도 처량한지 그녀가 너무나 행복하게 되기를 기원까지 하게 된다. 그리고 작가는 독자의 그런 기대를 망가뜨리지 않는다)이 담겨 있지만, 가장 인상적인 단편은 <위안>이었으며 그녀의 다른 단편들을 찾아 읽게 만든 원동력이 된 글이었다. 무신론자인 과학선생 루이스와 기독교 근본주의 학생들과의 대립 그리고 그로인한 불명예스러운 퇴직과 그 이후 그의 자살(그는 루게릭병에 걸려있었고 더 이상 자신의 몸을 자신이 건사하지 못하자 자살을 선택한다).  

어떻게 보면 참 단순한 줄거리이고 종교성이 강한 나라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 소재인데, 이야기의 핵심은 무신론자 루이스 이야기이지만 시선은 그녀의 아내 니나가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내가 이 짧은 글 속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은 루이스의 장례식이었는데,  

"사람들이 무슨 추모회를 열자는 등 법석을 떨면 모조리 무시해야 해. 사탕발림 좋아하는 그 작자는 그런 짓을 하고도 남을 거야."라고 루이스는 당부했다. 그러니 어쨌든 니나는 폴의 제안을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좀 전에 한 행동은 너무 유치하고 과시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분노와 앙갚음은 루이스의 전공분야였다(204p)

결국 니나는 루이스의 유언대로 형식적인 장례조차 치루지 않는다. 살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누구나 어떤 커뮤니티에 속하는 이상 커뮤니티가 만들어낸 거대한 세계관(특히나 관습이나 제도)을 부정하고 무시하고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일단 그 세계가 만들어낸 법칙대로 살아가는 것이 가장 속 편하게 사는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다가 커뮤니티 세계관과 다른 세계관을 가졌다하더라도 그 커뮤니티 속에서 타협이니 이해니 하는 침발린 말로 대충 맞춰 끼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골리앗은 갑자기 무너뜨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먼로가 만들어낸 루이스같은 고집불통의 삶은 너무나 가혹하다. 혼자 치러야할 투쟁이 그토록 외롭도 처절하다면 난 기꺼이 다윗이 되는 것을 포기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루이스처럼 아이들에게 장례나 제사같은 것들을 절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할 것이다. 죽어서까지 관습과 제도를 따를 필요가 없으니깐. 그러한 모든 것들이 거추장스럽다,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에서 모든 사물은 심지어 인간조차 원자로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원자로 태어나 원자로 다시 돌아가는데 뭘 그리 또 다른 형식이 필요하단 말인가. 영적인 삶은 나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우주이다.

먼로의 저 책<미움, 우정, 구애,사랑, 결혼>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그녀가 나이가 들어 쓴 단편이기 때문에 대체로 나이든 노인의 시선이 많고 글의 소재나 이야기의 분위기도 좋게 말하면 점잖고 약간 과장되게 말하면 할머니풍이다. 그래서 나 또한 젊은 나이는 아니기 때문에 그녀의 글에 공감을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불현듯 그녀의 젊은 시절에 쓴 글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떠 올랐다. 치기가 좀 있을까? 아니면 엉성하지만 발랄할까?  저 작품처럼 완벽할 순 없겠지! 싶었는데, 이번에 그녀의 첫단편집이 발간되었다. 책소개를 보면 온타리오의 고딕,하던데 사실 나는 그녀의 지난 작품에서 고딕적인 분위기는 느끼지 못했다. 내가 둔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먼로가 젊은 시절에는 고딕풍으로 글을 썼던 것일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먼로의 단편들은 그녀가 쓴 나이를 짐작하게 해주지 않을련지.

저 <미움,우정,구애,사랑,결혼>도 표지가 이뻐 사서 읽은 것이었는데, 이번에도 표지는 이쁘게 잘 나왔다. 고혹스럽다,라는 느낌.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해한모리군 2010-05-10 16:31   좋아요 0 | URL
오 보관함에 우겨넣기 ㅎ

2010-05-11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기억의집 2010-05-11 09:36   좋아요 0 | URL
흐흐 걱정하지 마세요^^ 저 읽을 책이 넘쳐나요!

2010-05-11 0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1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꽃핑키 2010-05-14 20:49   좋아요 0 | URL
어쩜~ 표지도 이렇게나 예쁜지 모르겠어요 ^_^*
<행복한 그림자의 춤>은 제목도 너무 좋은거 같아요!
저두 위시에 담아두었는데.. 밀린책이 너무 많아서 ㅋ 이렇게 구경만; 자꾸 하고있어요..

기억의집 2010-05-15 23:56   좋아요 0 | URL
핑키님, 진짜 이쁘죠!
저도 사 놓고 읽지 않는 책이 산더미에요. 저걸 어쩌나~~~ 싶으면서도 신간 나오면 사고 싶어 안달을 해요. 이번에 미미여사의 얼간이도 나왔던데..지르고 싶어 죽겠어요^^

2010-05-15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5 23: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6 1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번에 신간으로 나온 <우주에는 신이 없다>의 저자 데이비드 밀스는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 71페이지에 언급되어 있어 그리 낯선 인물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무신론자로서 과학과 종교에 대한 논쟁을 말할 때 빠지지 않고 종교 역사의 허구성과 날조를 역설했던 인물인데, 이 책은 무신론자라면 한 번쯤 꼭 읽어볼 만하다. 도킨스처럼 어렵게 말하지 않았으며 다혈질적인 공격성은 보이지 않는다. 밀스, 이 양반 성격이 이지한 것인지 아니면 집필 하는 동안 자신의 다혈성이나 전투성을 많이 누그러뜨리고 글을 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조근조근 차분하게 왜 성서를 기반으로 하는 지적설계나 창조론이 허구인지를 유연하게 설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만들어진 신>을 먼저 읽기 전에 <우주에는 신이 없다>를 읽기를 권한다. 일단 진화와 지질학에 대한 과학적 설명이 쉽게 되어 있어 과학 초보자도 접근이 용이하다.

만약 하느님이 세상을 한날 한시에 지구의 만물을 창조했다면 우리는 모두 같은 인종에서 출발했을 것이며 같은 신을 섬겼을 것이다. 사실 인종 자체가 진화의 대표적인 산물이다.하지만 지구는 둥그렇고 각 지역의 특성에 따라 동식물은 진화했으며 자연의 재해가 무서워 원시 신앙을 섬기면서 각각의 신화를 가지게 되었다. 기독교가 현재 대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중세유럽 그러니깐 절대 종교시절에 쏟아져 나온 글 이외의 그림과 음악 컨텐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날 기독교인들은 거의 매주 교회서 기독교인 친구들과 악수를 나누며 '신의 가호'를 기원하고 잔잔한 찬송가과 부드러운 설교를 듣고, '하느님의 평화'를 가슴 가득 안은 채 집으로 돌아옵니다. 현재의 기독교 교회가 비교적 교양 있는 태도로 처신하고 있기 때문에, 이 종교가 언제나 선한 것을 지향하며 온화한 영향력을 발휘해 온 듯한 잘못된 인식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녀를 근절하기 위한 대대적인 사냥은 제쳐놓더라도 기독교 교회는 역사적으로 과학의 발달을 방해하기 위해 엄청난 투쟁을 벌여왔으며, 오늘 날에도 여전히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들을 관측하기 위해 망원경을 개량해 사용했다는 이유로 교회로부터 사형을 받을 뻔 했습니다. 더 나아가, 교회는 성령이 깃든 신전을 모독한다는 이유로 수세기 동안 인체 해부를 금지 했습니다. 그로 인해 거의 천년 동안 의학 연구는 발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역사학자들이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그 시기에 기독교가 가장 오랫동안 승승장구하며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결코 우연히 아닙니다.  - 중략- 

과학에 대한 종교의 박해와 억압이 없었다면 인류는 A.D 650년에 이미 달에 착륙할 수 있었을 겁니다. 암은 A.D.800년에 이미 영원히 박멸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늘 날의 심장질환 같은 질병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그리스와 이집트 사람들이 이루어 낸 과학적 성과들을 깊은 동면에 빠뜨렸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새로운 과학적 진보에 맞서 악의에 찬 싸움을 벌여왔습니다. 하지만 일단 새로운 과학적 성과들을 비난한 후 원했던 효과를 얻지 못하면 쉽게 태도를 바뀌 새로운 발견들을 하느님이 인류에게 준 선물로 받아들입니다. 가톨릭 성자들은 인쇄 기계의 발명조차 반대했습니다. 대량 생산된 성서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못 해석하거나 비판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p61~63)

기독교는 모든 과학적 성과를 무시했으며 지금도 모든 과학적 기술, 예를 들어 유전 공학과 싸우고 있다. 만약에 기독교가 유럽에서 권력을 잡지 않았다면, 현재 우리는 어떤 미래를 살고 있을까.  

어쩜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빨리 접했을 지도 모르며 미치오 카쿠가 말하는 물리적인 이론들이 실현되었을지도 모른다. 투명망토, 순간 이동과 같은. 공상과학같은 이야기라고 비웃지 말라. 도킨스가 <무지개를 풀며>에서 지적했듯이, 19세기 아니 20세기 초반 사람들이 지금 현재 시대를 둘러본다면, 그 시대 사람들이 마술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에서 벌어지는 것에 입을 다물지 못할 테니깐.  핸드폰(아니 더 나아가 스마트폰이라고 해야하나), 노트북, 아이패드같은 기술적 성과들에 그들은 분명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우리는 현재 생활의 편리성에 너무 빠져 있어 일세기도 안되는 과거의 테크놀로지를 망각할 때가 있다. 그들은 자동차가 없어 말을 이용하거나 걸어다녔으며 전화가 없어 우편을 이용했으며 복사기가 없어 일일히 사람이 필사해야했다. 어디 그것뿐이겠는가. 

미치오 가쿠가 말하는 세계는 데이빗 밀스가 꿈꾸는 무신의 세계에서는 더 일찍 왔을지도 모른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군자란 2010-05-07 17:26   좋아요 0 | URL
저 개인적으로도 일신교인 기독교, 이슬람교, 유대교가 이 세상에 끼치는 좋게 말하면 영향력 약간 감정을 섞여 말하면 해악은 이루 말할수 없이 크다고 생각합니다.마냥 비판한다고 해서 해결된 문제도 아니고, 공존해서 가는 것이 지혜일것 같은데 어렵네요...요즘 저는 잠자는 시간에 읽는 책은 니체의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민음사 판)을 읽는데...차라리 니체처럼 솔직하게 이야기 하면 좋겠어요. 최소한 니체은 속과 겉이 다르지 않으니까요^^^

기억의집 2010-05-10 10:19   좋아요 0 | URL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공존이 최선의 선택이지요. 종교를 없앨 수 있는 게 아니니깐요. 도킨스처럼 버스에 플랑카드 걸었다가 난리가 났었다면서요. 울 나라에서는. 저도 종교에서 위안을 받고 의지를 하는 모습 보면 그 분들이 사는 방식이라 종교가 없어져야한다고 생각은 하지 않지만 권력화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다고 보거든요.

루체오페르 2010-05-07 20:04   좋아요 0 | URL
제가 이쪽 가치관인지라 이런 책들에 흥미가 있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금의 인류는 우리만이 우주에서 유일합니다, 적어도 인류에게 있어선요. 그런데 어딘가 외계생명체[외계인+지적생명체가 아니더라도...예를 들어 지구의 동물들처럼]가 있어 언젠가 인류와 접촉이 이루어지는 때가 온것입니다. 현재 일신교에서의 신은 그 모든 것, 우주의 신 입니다. 인류만 있다하더라도요. 즉,외계인이 있더라도 그들의 신도 우리의 신과 동일한 존재여야 하죠. 그런데 물어봤더니 아니랍니다. 이때의 신의 차이는 서로 다른 일신교가 동시에 존재하는 지금 신들의 차이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이겠죠. 아,물어보기 이전에 이미 외계인이 실존하는데 성서에 인간만 등장하는 것부터 오류겠네요.
결론적으로, 외계인이 존재하는 것만으로 현재 신에 대한 개념이 상당히 무너지겠죠. 신이 있다 하더라도 적어도 인간만의 신이란 것이 되던가요. 말이 길고 두서없어 잘 전달이 됬나 모르겠습니다.^^; 이런 이유도 있고해서 저는 외계인의 존재를 믿고 희망하는 입장입니다. 글 잘봤습니다,기억의집님^^

기억의집 2010-05-10 12:29   좋아요 0 | URL
물리과학자들도 외계인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더라구요. 은하계에 지구와 같은 조건의 행성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지구를 찾아올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더라구요.
저도 과학책을 읽으면서 신에 대한 것이 얼마나 허구맹랑한 것인지 잘 알게 되었어요.
기독교에서 말하는 지적설계도 우습고... 차라리 온 지구가 기독교였다면 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믿을수 있겠는데 말이에요^^

유부만두 2010-05-10 11:08   좋아요 0 | URL
대문에 저 여인...가가인가본데...어쨌거나 저 여인네 땜에 화들짝 놀랐잖아요! ㅋㅋㅋ
저도 과학책 좀 읽어보고 싶은데, 왠지 너무 어려울것 같아서 겁만 나요.

기억의집 2010-05-10 12:30   좋아요 0 | URL
가가한테 놀라시다니요. 재밌지 않았나요? 원더우먼 생각나고...^^
과학책 읽을 만 해요. 저도 어려웠다니깐요~~~ 것도 무지무지. 지금도 안 버벅거리면서 읽고 있다는. 제가 이해의 단계까지 가고 있는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침에 행복한 왕자님 왕에 갔다가 산을 타면 종아리가 얇아진다는 말(종아리가 이뻐 말라깽이진 한 번 입어보고 시퍼요!)에 솔깃해서오후에 학원 갔다 온 딸을 꼬셔 동네 뒷산을 타고 왔어요. 덤으로 약수터에 들려 약숫물도 떠오고. 딸애와 여기저기 좀 돌아다니고 슈퍼도 들려 반찬 좀 사 가지고 오는데, 

경비원 아저씨가 택배가 와 있다고 부릅니다. 올거라고는 아침에 주문한 가다라의 돼지 밖에 없어 책 인줄 알았어요. 등에는 무거운 약수물에 한 손에는 반찬봉투를 들었지만, 왠지 책을 받자마자 포장을 뜯어봐야 직정이 풀리는지라. 딸애한테 택배상자 좀 뜯어보라고 주었더니,

지 엄마 성질 닮아 박박 뜯어 본 울 딸, 우와, 책 두껍다! 엄마가 이 책 다 읽을꺼야! 라며 놀라더니. 근데 가다라의...... 뭐야? 라고 물어보는 거에요. 뭐긴 돼지라고 써 있잖아! 하고는 책표지를 흘끔 보는데, 돼의 ㄷ이 뒤집어 있어 아이가 읽지를 못 하더라구요. 돼지의 ㄷ를 왜 뒤집어 놓은 것인지?????? 

 

그래서 울 딸이 집에 오자마자 거울을 가지고 글자를 바로 볼 수 있게 한다고 저러고 있었어요. 어휴, 저거 때문에 지네 오빠랑 서로 하겠다고 해서 또 한바탕, 난리가 났지요. 저의 집은 진짜 조용한 날이 거의 없다는. 빨랑빨랑 커서 제발 큰 놈이라도 중학생이 되었으면 소원이 없겠어요. 다 큰 놈이 거울 갖고 지도 해 보겠다고 동생이랑 툭탁툭탁 싸우고 있고. 아주 괴로워 죽겠어요,,,, 흑흑. 

딸애가 저러고 노는 게 재밌어 사진 찍으면서 책의 요모조모 찍어 봤어요. 책 엄청 두껍습니다. 주문할 때 책값이 비싸다고 우라질!소리가 절로 나왔는데, 막상 책을 받아보니 이 두께에 17,800원이면 뭐. 출판사에서 나름 책값에 많이 신경을 쓴 거 같더라구요. 독자의 입장에서 보면 책 두권 부담입니다. 차라리 가격이 좀 쎄더라도 한권이 낫지 분권은 사고 싶은 생각 싸~악 달아나게 하죠. 그래도 북스피어에서 애써서 출간했는데 어떻게 그냥 무시할 수 있겠어요. 그래서 파값 아껴서 샀어요. 저희 집은 한 한달정도 파 못 사 먹고 있는 거 같아요. 파값이 2500원이라 게 말이 되요, 말이 되냐고요? 차라리 파를 사고 책을 사지 말라고요?! 


놀랍지 않습니까? 책이 지 혼자 설 수 있을 정도의 무게감이라니. 헤비급입니다.  

여하튼 책 잘 만들었고 잘 빠졌습니다. 실물이 휠씬 이쁘고 책값도 착합니다. 이걸 착하다고 해야지 어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 출판사마다 종이수급 문제로 골머리라고 하더라구요. 지난 번에 만난 지인도 어린이그림책도 종이 수급 문제 때문에 신간을 미루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북스피어도 홈피에도 그런 말이 오가고 있네요.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이렇게 책을 내 준것만해도 고맙죠. 뭐.  

사실 저는 이 시간에 인터넷 안 하는데, 북스피어 홈피 갔다 그 동안 저 책 나온 노고를 읽다보니 저도 모르게 감동의 눈물이 줄줄 나와...(이게 왠 쇼랍니까!) 그렇게 올려봅니다. 애아빠 들어와 밥 달라고 하네요. 밥 차리러 이제 나가야겠어요.^^



댓글(3)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10-05-06 11:10   좋아요 0 | URL
리뷰 기다려요^^

기억의집 2010-05-06 19:35   좋아요 0 | URL
넹~~~리뷰, 북스피어를 위해서라도 써야겠지요^^ 잘 써야할텐데..자신 없어요.

꽃핑키 2010-05-14 20:51   좋아요 0 | URL
큭!! ㅋ 거울놀이! ㅋㅋ 하하 ㅋㅋ 너무 귀여워용 *_*
 

"성희롱 피해자가 왜 얼굴 내놓느냐고요?"

[인터뷰] 삼성전기 직원 이은의 씨


고생은 사람을 소모시킬까, 아니면 단련시킬까. 어떤 이들은 너무 쉽게 답을 고른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게다. 그러나 따뜻한 아랫목에 뉘었던 몸을 찬 공기 속으로 일으킨 뒤에도 이런 답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진짜 고생은 사람을 망가뜨린다. 그게 현실이다.

비록 옳은 방향이라도, 혹독한 시련이 뻔히 예상되는 길을 권하기 힘든 것은 그래서다. 끝내 목적지에 도착한들, 그 사이에 사람이 다 망가져버린다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이다. 갈림길에서 돌아서는 이들을, 안타까워하면서도 붙잡아 세울 수 없었던 것 역시 이런 생각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서성이는 어깨를 잡은 손에 조금은 더 힘을 줄 수 있게 됐다. 긴 시련을 거치고 나서, "옛날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아 즐겁다"고 말하는 이를 소개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았지만, 그렇지 않았다면 못 만났을 좋은 사람들 때문에 이젠 괜찮다"라고 말한다.

바로 삼성전기 직원 이은의 씨다. 이 씨는 2003년 6월부터 약 1년 반 동안 상사로부터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서 피해 사실을 알린 결과는, 집단 따돌림과 인사 불이익이었다. 우울증과 실어증을 앓았고, 얼굴에 붕대를 감아야 할 정도로 심각한 화농성 여드름이 생겼다. 심각한 스트레스가 원인이었다.

그는 갈림길에 섰다. 옆으로 꺾어진 길은 '퇴사'다. 하지만 그는 '직진'을 택했다. 회사와 싸우기로 한 것이다. 그게 옳은 방향이니까. 먼저 찾아간 곳은 국가인권위원회였다. 그리고 언론을 만났다. 이어 삼성전기와 가해자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직진', 그 결과는 '정면충돌'. 그래서 그는 다쳤을까. 천만에. 먼지를 털고 일어선 그는 환하게 웃고 있다. 그가 이기고, 삼성이 졌다. 그가 전한 이야기가 사실이라고 확인한 인권위는 회사 측에 성희롱 방지 대책을 권고했다. 삼성전기는 권고를 받아들이는 대신, 인권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인권위의 손을 들어줬다. 그 사이 <프레시안>과 <한겨레>에 이 씨의 사연이 소개됐고, 오랫동안 외톨이였던 이 씨의 친구가 되겠다는 이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리고 지난 15일, 이 씨는 삼성전기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비록 1심 판결이고 삼성전기 측의 항소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 씨의 피해 사실과 회사 측의 배상 책임 자체가 없어지지는 않으리라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환한 미소가 얼굴 가득 일렁이는 그를 지난 26일 서울 강남의 한 찻집에서 만났다.

프레시안: 15일 재판 결과에 대해 회사 측 반응은 어떤가.

이은의: 친한 동료들에게서 축하 메시지가 왔다. 하지만 내가 속한 부서에서는 이 재판에 대해 아무런 반응이 없다. 회사 경영진의 공식적인 입장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나와 내 주변을 유심히 관찰하고 있으리라고 본다.

후배 사원이 내게 문자 메시지를 보냈는데, 이런 내용이다. "대리님, 우리 차장님이 지난번 일로 자꾸 나한테 대리님이랑 엮이지 말래요." 회사가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인 셈이다.

나는 내 메일과 휴대전화 통화 내용 역시 회사가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한다. 증거가 있냐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어쩌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팩트(사실)'가 아니다. 내가 그렇게 믿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나는 왜 내 메일과 휴대전화가 감시당한다고 믿게 됐을까. 처음부터 이렇게 믿었던 것은 아닌데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품게 만든 원인을 제공한 게 회사였다.

프레시안: 메일과 휴대전화가 감시당한다는 생각을 품게 된 근거가 궁금하다.

이은의: 요즘 같은 때, 그러니까 언론의 주목을 받을 때가 되면 유독 휴대전화가 이상해진다. 전화 통화나 문자 전송이 잘 안 될 때가 많다. 그리고 메일 내용을 회사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물론 내 불안감이 괜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회사가 보여준 모습을 떠올리면, 나는 회사를 믿을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요즘 같은 때는 회사 메일을 쓰지 않는다. 휴대전화도 다른 것을 들고 다닌다.

"故 박지연 씨, 만나서 꼭 안아주고 싶었는데…"

프레시안: 성희롱 피해 사실을 회사에 알린 게 2005년이니까, 약 5년 동안 싸움을 벌인 셈이다. 과거 인터뷰에서 기륭전자와 이랜드 여성 노동자들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힘든 시간을 거치면서, 예전에는 관심 갖지 않았던 이들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게 됐다고 했다.

이은의: 내 블로그에는 "1차 레이싱이 얼추 막을 내렸다"라고 적었다. 곧 새로운 막이 열릴 게다. 나는 원래 자신감 넘치는 젊은이였다.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많이 위축돼 있었다. 싸움이 일단락된 지금, 나는 다시 자신감을 찾았다. 다시 밝고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

잃어버렸다 되찾은 자신감 외에, 새로 얻은 것도 있다. 소송 때문에 법원을 드나들면서, 법원 문 앞에서 시위를 하던 용산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게 됐다. 나와 떨어진 곳에 있는 분들이지만, 그 분들의 고통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 것, 함부로 외면할 수 없게 된 것은 내게 소중한 자산이다.

후회스러운 점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사망한 고(故) 박지연 씨를 만나지 못한 것이다. 그 분이 병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서 꼭 안아주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늦어버렸다. 승소 소식을 박 씨에게 전해줬다면, 조금이나마 힘이 됐을 텐데….

"'동병상련'은 싫다"…"피해자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보여주겠다"

프레시안: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낸 사실이 알려진 뒤, 회사 안에서도 드러나지 않게 격려하는 이들이 많았다고 들었다. 

이은의: 많은 분들이 격려 말씀을 해주시고, 도와주셨다. 그 가운데는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고, 회사의 비리나 불합리한 결정에 맞서다 불이익을 겪은 분도 있다. 그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하지만 조금 다른 이야기도 곁들이고 싶다. 회사와 싸우는 분들을 만나고 돌아올 때면, 마음이 무거웠다. 너무 초췌해보여서였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 오히려 잘못을 바로잡으려 했는데, 그렇게 어둡고 초라해진다면 슬픈 일 아닌가. 그게 내 미래라면, 내가 계속 싸워야 할 이유를 찾을 수 있겠나. 또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잘못에 맞서라고 권할 수 있겠나.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동병상련' 때문에 사람을 만나지는 않겠다고 말이다. 그리고 잘못에 맞서 싸우는 게 즐거운 일이라는 점을 입증하고 싶었다. 피해자가 싸움에 이기고, 결국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사회 운동하는 분들에게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사'나 '투사'가 되길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최근 한 진보 성향 주간지가 삼성에 노조가 필요하다는 기사에서 내 사진을 실었는데, 불만이 있다. 내가 너무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렇다면, 독자들이 어떤 생각을 하겠나. 가해자는 고개를 뻣뻣이 세우고 웃고 있는데, 피해자가 고개 숙이고 우울해해서야 되겠나. 말도 안 된다. 가해자가 두려워하고, 피해자가 당당해야 한다. 잘못에 맞서 싸우는 사람이 오히려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래서 말인데, <프레시안>에 실리는 사진은 좀 밝았으면 좋겠다.

"나는 싸웠기 때문에, 안전하다"

프레시안: 어떤 이들은 승소 판결에 대해서도 불안해한다. 상대가 삼성인 탓이다.

이은의: 우리 가족이 그렇다. 어머니는 재판에서 진 삼성이 어떻게든 나를 해코지 하지 않을까하고 불안해한다. 아마 대기업의 음모를 다룬 소설이나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신 탓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싸웠기 때문에, 안전하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싸웠기 때문에 말이다. 회사 측이 나를 부당하게 보복했다고 치자. 그렇다면, 또 소송을 치러야 한다. 비판적인 언론 보도 역시 나올 게다. 그게 지난 세월을 통해 입증됐다. 그걸 뻔히 아는데 회사가 왜 무리수를 두겠나. 나와 비슷한 피해를 입은 이들에게 나처럼 싸우라고 권하는 한 이유다. 힘 있는 자들은 잘못에 맞서 싸우는 사람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포기한 사람, 잘못을 외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함부로 대한다. 이번 일을 겪으며, 이런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프레시안: 삼성 안팎에서 비슷한 피해를 겪은 이들에게 할 말이 많을 듯하다.

이은의: 실제로 그런 분들을 여러 차례 만났다. 그 때마다 내가 하는 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흔히들 "한국이 그렇지 뭐"라고 냉소한다. 잘못을 지적해 봤자 오히려 손해만 본다는 게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다. 나는 이번 사건을 겪으며 좋은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 분들이 있기에 나는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그 분들을 만나서 많이 배우고 성장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나 역시 옛날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경험. 한번 해볼 만하지 않은가. 싸움에 이기고 지고를 떠나 이런 경험이 더 소중하다고 본다.

물론, 싸움에는 물질적으로건 정신적으로건 비용이 든다. 그러나 그 비용을 너무 크게 예상할 필요는 없다. 일 년에 1000~2000만 원쯤 정도 각오해야 한다. 적은 비용이 아니지만, 직장인이라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금액도 아니다. 직장인 입장에선 '해고' 역시 두려운 일이지만, 회사 역시 해고가 쉽지는 않다. 특히 소송 상대방이라면 더욱 그렇다.

"'회사에 남아서 권리를 위해 싸운 사례'가 절실하다"

프레시안: 회사의 잘못에 대해 혼자 힘으로 싸워온 셈인데,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이은의: 우선 바로잡고 싶은 게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많은 이들과 손잡고 걸어온 시간이었다. 노동조합에 대해서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있으나마나 한 노조라면, 굳이 있어야하나 싶다.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성희롱 피해를 입은 사람은 만난 적이 있다. 남성 중심적인 노조 문화에선 노조가 오히려 가해자 편을 들기도 한다.

물론, 노조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게 낫다. 예컨대 소송비용 등을 노조가 지원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노조보다 개인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만약 나처럼 싸운 사람이 회사 안에 셋만 있다면, 어지간한 노조보다 훨씬 낫지 않겠는가. 지금도 회사에서 피해를 입은 분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들에게 나는 '1인 노조'다. 내 경험에서 그들이 용기를 얻고, 도움을 구한다. 삼성 계열사마다 '1인 노조'가 있다면, 삼성도 많이 바뀔 게다. '삼성에는 노조가 없으니까'라면서 움츠러드느니, 우선 작은 잘못이라도 싸워서 고치는 게 중요하다. '회사를 떠나지 않고 싸워서, 권리를 실현한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한다.

김용철 변호사의 책을 둘러싼 해프닝을 보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얼마 전, 회사가 이 책에 대해 내부 전산망에서 공식적인 해명을 했다. 김 변호사의 책 <삼성을 생각한다>에 담긴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해명에 달린 댓글이 묘했다. 회사 입장을 무조건 지지하던 여느 때와 달리,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겠나"하는 반응이 제법 있었다. 대략 30퍼센트 정도였다. 특이한 것은, 누군가 한 명이 이런 댓글을 달면 동조하는 댓글이 잇따른다는 점이다. 다들 눈치를 보면서 대신 먼저 나서주는 사람을 기다렸던 게다. 맨 처음 이런 댓글을 단 사람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한 사람의 힘이 보잘 것 없는 듯해도, 의외로 큰 변화를 낳을 수 있다.

"삼성, 옛 애인의 찌질한 모습 본 느낌이다"

프레시안: 직급이 계속 대리다. 회사 인사 정책이 답답해 보인다.

이은의: 8년째 대리다. 성희롱 사실을 알린 뒤부터 인사고과는 늘 'C-'였다. 내가 속한 부서(총무보안그룹 사회봉사단)가 큰 성과를 거뒀지만, 변한 건 없다. 진급이 안 돼서 안타깝다기보다, 부당한 조치가 바로잡히지 않는 게 답답하다. 다행히 나와 친한 이들은 다들 무사히 진급 했다. 나와 어울린다는 이유로, 진급에서 불이익을 겪을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회사에 대해서는, 이런 느낌이다. 헤어진 애인의 '찌질한' 모습을 본 느낌이랄까. 한때 나는 삼성 직원이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웠다. 동료들과 뜨겁게 우정을 나눴고, 맡은 일에 열정을 쏟았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랑했던 회사가, 알고보니 이렇게 찌질한 곳이었다니…. 솔직히 참담하다.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회사가 미안하다고만 했어도, 아마 좀 달랐을 것 같다. 그러나 회사는 거짓말로만 일관했다. 성희롱, 왕따 모두에 대해 딱 잡아떼기만 했다. 그리고는 오히려 나를 비난했다. 내가 진급이나 부서 변경 등을 노리고 성희롱 당했다고 주장했다는 게다.

"'증거 있나' 윽박지르기 전에, 자문하라. '왜 사람들은 삼성을 못 믿을까?'"

이런 비난 앞에서 사실 관계를 놓고 다투다보면, 한없이 비참해졌다. 삼성 경영진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삼성 바깥에서 삼성을 어떻게 보는지 한번 돌아보라고 말이다. 김용철 변호사의 고백에 대해서도 삼성 경영진은 "사실이 아니다. 증거가 없지 않느냐"라는 말만 반복했다. 그럼 끝난 건가. 아니다. 더 큰 문제가 있다. 삼성이 비리를 부인했고 특검 수사 역시 끝났지만, 사람들은 김용철 변호사의 말을 사실이라고 믿는다. 심지어 김 변호사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도 그렇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삼성이 그동안 쌓아온 신뢰가 없기 때문이다. 삼성은 걸핏하면 "증거 있나"라고 따지지만, 그보다 먼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왜 삼성을 믿지 않을까'   

8년 동안 아.주.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개인의 취향상, 나는 자신의 감상이 적힌 감정적인 글은 낯뜨거워하는 편이라 읽지도 않고 그런 스타일로 쓰지도 않지만,  

이은의 대리에게 참으로, 진심으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까지 회사를 그만 두지 않고 버텨 준 당신에게 고맙다. 버텨준 8년이라는 물리적인 시간이 당신에게 얼마나 지옥보다 더한 외롭고 어두운 시간 시간이었는지, 당신이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당신을 뒤로 응원한다고 해도 상사 눈치를 보며, 다가오는 동료가 없이 언제나 혼자였을 당신. 묵묵히 혼자서 점심을 먹었을 것이고 아무도 회식자리를 불러주지 않았을 것이다. 어쩜 당신의 상사는 당신을 없는 사람 취급했을지도 모른다. 싸우는 동안 당신의 버팀목이 되어 준 부모님께 죄스러웠을 것 같고 주변에서 수군거리는 눈초리 또한 당신을 지치게 했을 것 같다. 무엇을 위해 내가 이렇게 싸워야하는가? 를 수 없이 되내었을 것 같고 지금 그만두면 모든 것이 편해질 수 있다라는 유혹의 마음도 생겼을 것 같다.

이 모든 외로움, 굴욕과 무시을 당하면서도 굳건히 8년을 버텨 준 당신의 자존심이 고맙고,  힘든 길임을 뻔히 알면서도 걸어 여기까지 온 당신의 용기 있는 모습에 감사할 따름이다. 

74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할 베리는 수상소감에서 “지금 제가 수상대에 서 있는 이 순간은 모든 흑인 여성을 위한 것입니다. 이제부터 제게 주어진 사명은 이전에 흑인 여성이 가지 못했던 길을 더욱 멀리 가는 배우가 되는 것입니다. 길이 없으면 만들어 가겠습니다.” 라고 말했다.  

가보지 못한 못한 길이 아니라 당신이 너무나 혹독한 경험을 치루며서 만들어 낸 저 선구자의 길이 결코 막혀지는 일 없이 당신을 끝까지 응원하고 싶다. 어쩜 저 길은 내 딸이, 우리 모두의 딸들이 걸어갈 수 있는 길 아니겠는가.  

정말 지금까지 버텨 준 것만으로도 고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다락방 2010-05-04 08:46   좋아요 0 | URL
아 아침부터 울컥하네요. 저도 고맙다고 인사하고 싶어요.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도 고통스러웠을까요. 기억의집님이 쓰신것처럼 상사들과 동료들과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저였다면 하루빨리 퇴사했을거에요. 맞서 싸울 자신이 없어서 말이죠.

특히 인상적인건, 삼성에 대한 사람들의 댓글이네요. 눈치 보고 있다가 누군가 한명 그렇지 않을수도 있다, 고 달면 하나둘씩 나와서 동조를 한다는 부분이요.

그 누군가를 기다리지만 정작 본인이 누군가가 되기는 겁나는 현실이잖아요.

잘 읽었습니다.

2010-05-04 1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