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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의 추천도서를 보다가 나보코프의 자서전<말하라, 기억이여>라는 작품을 보고 든 생각
<말하라, 기억이여>라는 자서전을 쓴 나보코프의 대표작은 <롤리타>이다. 그외에도 <창백한 불꽃>이나 <어둠속의 웃음소리>같은 작품도 그의 대표작으로 거론되기는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나보코프하면 <롤리타>아니겠는가.
<롤리타>를 대표작으로 내세우는 것은, 대체로 <롤리타>는 미국문학사를 새로이 새기게 된 문제작(이건 말하라, 기억이여라는 작품에서 번역가가 한말)이라는 평을 받고 있고 우리 나라에서도 그 평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분위기이다.
러시아인인 나보코프가 두 번째로 영어로 쓴 작품인데다 어린 소녀를 사랑하는 파격적인 내용이 담겨져 있어서 그런지 이 작품은 출간때부터 미국내에서 반향을 읽으키며 나보코프가 글만 쓸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뒷받침 되어 준 책이다.
이 책이 처음으로 출간되었을 때 어떤 상황인지는 모르겠다. 뭐 여하튼 그를 경제적 궁핍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에게 세계적인 작가의 명성를 가져다 주었다는 점에서 <롤리타>의 문학적 위치는 정점에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요즘 나는 나보코프의 대표작이 정말 <롤리타>일까, 라는 의문을 자꾸 가지게 된다. 미국의 크라임 미드를 많이 봐서 세뇌 당해서 그런지 나보코프의 대표작이 <롤리타>라고 말하는 것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현재 미국내의 나보코프의 평가 그리고 <롤리타>에 대한 평가가 어떤 식으로 진행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리고 미드만 봐서 <롤리타>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것은 좀 우습지만, 미국내에서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라고 말했다가는 100이면 100, 소아애자로 변태 취급 당할 것이라는데 99.9% 장담한다.
미드는 워낙 소재나 주제가 다양해서 여러 스탈의 미드가 있겠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크리미널 미드쪽을 좋아하고 즐겨보는데(그래서 왠만한 크리미널 쪽 미드는 전 시리즈 거의 다 봤을 정도), 크리미널 미드에서 소아애자 범죄자를 다룰 때마다 형사가 비아냥거리며 들먹거리는 소설이 바로 나보코프의 <롤리타>이다.
첨에는 그런 가 보다 했다. 수십 년전에 성인 남자가 어린 소녀에 대한 성적인 욕망을 그대로 표현한 작품이었다는 점에서 센세이셔널을 일으켰고 유명한 작품이 되었고 많은 사람이 읽었기에, 그런 표현을 하나보다, 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롤리타>와 소아애자는 한 쌍으로 묶이고 <롤리타>는 소아애자의 바이블쯤 여기는 책으로 전락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다고 미국 범죄드라마의 작가들이 정말 후진 의식의 작가들이냐? 절대 아니다. 내가 지금까지 본 범죄 드라마들의 작가들은 사회를 보는 눈이 냉혹하며 냉정하다.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사회 구조상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짚어내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그리고 <롤리타>의 문학적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들이 그렇게 쓰고 있다는 것은 나보코프의 <롤리타>가 이젠 미국주류 문학사에서 문학적 정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시간은 문화를 변화시킨다. 이 세상에 절대적인 기준과 가치는 없다고 본다. <롤리타>가 21세기에 변태들의 바이블쯤으로 여기는 것은 아마도 소아애자에 대한 엄격한 시선과 법적용에 대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법이란 국가에 우리에게 요구하는 최소한의 질서 단위 아닌가.
나는 <롤리타>라는 작품을 20대에 첨 알았고 그 때의 평가는 나보코프의 아름다운 문장력이었다. 어린 소녀를 좋아해서 그 소녀의 엄마와 결혼한 이야기는 무시한 채. 그리고 그 명성을 20여년 동안 지켜보고 있었고 하지만 세월이 한 작품을 어떻게 전락 시키지는지도 지금 경험하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