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동안 단행본으로 우리집에서 가장 두꺼웠던 책은 <젠틀 매드니스>였다. 그리고 그 기록은 좀처럼 깨질 일이 없겠거니 했는데, 지난 달 중순부터 생각의 나무에서 <율리시스>를 정가대비 반값에 내놨다. 정가는 36,000원, 10% 할인을 해도 3만원대를 유지한 책이었고, 1년 6개월이 지나 구간 할인을 한다고 해도 20,30% 정도 할인하겠거니 했는데,  별일이지! 딱 절반값에 지금 이벤트하고 있다. 안 팔리고 쌓여있어서, 재고본 팔아먹을려고 그런가 하고 몇 쇄본인지 찾아보니,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판본이 2008년도 4쇄본이니깐 그런대로 팔리고 있는 책인 셈이다. 만약 올해 책 읽기의 목표중에 <율리시스>에 도전하려고 했다면, 지금이야말로 대박! 혹 나중엔 만원으로 다운되는 것은 아니겠지.   

 

 
1300페이지의 벽돌같은 책이지만, 책 속의 타이포는 시원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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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이 너무 올라 2008년에는 외서주문을 아예 하지 않았다.  딱 한번 작년 말에 루스 브라운의 <열두명의 춤추는 공주>주문해 결제금액 받아보고 거의 혼절하다시피 해 외서주문 딱 끊었는데, 그제 이베이에서 할일 없이 배회거리다가 콜린 톰슨의 <할아버지의 바이올린>을 본 순간..한동안 망설이다가 질러버렸다.  콜린 톰슨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그린 그림책인데, 좀처럼 시장에 나오지 않았던 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집에 묶여 있다는데, 어느 전집에서 나오는지 좀처럼 알 수도 없고. 일단 이 책을 확 지른 뒷배경에는 집에 있는 일본소설 팔고 이 책 사자는 맘이었는데, 좀 전에 알라딘 중고샵에 일본소설 몇권 내놨다가 가격이 너무 터무니없어 맘만 상했다. 오쿠다 히데오의 <마돈나>, 아멜리 노통브의 <황산>이 자그만치 300원,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나 <사랑하기 때문에> 같은 유럽소설은 2000원정도, 안 알려진 어린이 그림책도 무조건 300원, 차라리 도서관에 기증하면 했지 300원에 팔기에는, 그 책들을 가지고 있었던 시간이 아까웠다. 몸매 만들기 책인< 간고등어코치>같은 책은 4천원이나 넘게 쳐주면서 말이다. 중고샵 장사 잘 되는 것더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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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는 1571년 9월29일 밀라노 근처에 있는 카라바조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원래 미켈란젤로 메리시였는데 출신지를 따서 이름을 부르곤 했던 당시의 풍습에 따라 나중에 카라바조라고 불리게 된다. 우리나라에서 춘천댁, 강원댁이라고 부르던 것처럼 말이다. 아버지 페르모 메리시는 미장이,집사였다고도 하면 건축가였다고도 한다. 어쩌면 셋 다였을지도 있다. 가족은 아버지가 일하던 밀라노에서 살다가 그 지역에 페스트가 돌면서 카라바조가 다섯 살 되던 해인 1576년  밀라노를 떠나 다시 카라바조로 이사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돌림병을 피하지 못하고 이듬해인 1577년에 죽는다..... 카라바조는 열세 살 때인 1584년 시모네 페테르차노선생 밑에서 배우기 위해 4년 동안 밀라노에 체류했다. 그 선생은 티치아노 밑에서 배웠다는 게 유일한 자랑인, 지방의 그만그만한 화가였던 것 같다..........역사가들은 카라바조가 1593년에 로마에 도착했을 것이고 일자리를 구하려고 애을 썼을 것이라고 쓴다. 그는 자랍을 추구하지만 자립하려는 욕구는 죄절되고 극심하 가난에 시달린다. 어떻게든 먹고 살아야 했으므로 거리에서 초상화를 그려 팔거나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화가 밑에서 제단화를 모사하거나 정물화들을 그려주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어떤때는 카라바조를 고용한  화가가 그에게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오랫동안 병을 앓은 적도 있었다. (P31~32) 

 

어쩌다가 카라바조의 이 그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사실 이들의 정체가 궁금할 때가 많다. 카라바조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는 지금도 논란거리인데, 데릭 저먼의 영화<카라바조>는 그를 동성애자로 단정하고 묘사했던 것 같다.( 사실 이 영화도 보지 않아 정확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서도) 그렇다면 이들이 그의 파트너!  비난받을 만한 엉뚱한 상상이지만, 혹 이들은 어린 남성 창부들은 아닐까? 사실 저 시대에 저런 포즈와 색기어린 표정의 사내아이들이 가당키나 한 존재들인가. 아무리 뜯어봐도 정상적인 사내아이들의 몸짓은  아니다. 음악을 연주하고 술잔을 기울이고 꽃바구니를 들고 유혹하는 듯한 저 멍한 표정하며...........여성스러운 면이 물씬 풍긴다. 처음 이 그림들을 봤을 때, 울퉁불퉁한 근육보고는 혹 미소년을 좋아하는 귀족부인들의 세컨드를 카라바조가 그린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귀족부인들의 세컨드치곤 너무 여성적인 그 무엇이 있다. 오히려 남성을 유혹하는 여성적인 몸짓과 교태와 애교, 애절함이 엿보인다고나 할까. 게다가 그 시대에 아무리 권력을 가졌더라도 남편이 있는 부인이 대놓고 자신의 어린 애인을 그리라고 주문까지 할 리는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남성 패트론의 어린 연인! 이라는 결론이 나오는데, 오늘 날 태어났다면 미성년자 강간범으로 잡혀 들어갔을 것이 뻔하지만, 로미오와 줄리엣도 15살 16살에 사랑을 속삭이던 시대인지라, 이들이 패트런의 애인이든 카라바조의 애인이든 (위에서도 조이한씨가 썼듯이 굶는 날이 허다한 그에게 이런 이쁘장한 애인이 옆에 죽치고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소아애자란 불명예는 덮어쓰지는 않을 것 같다. 물론 내 생각이 지나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냥 이쁘장한 소년들로 보기엔, 어쩐지........

 


그가 그린 그 시대의 평범한 남성들하고는 너무나 달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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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다 버릴 것 하나 없는 단어와 문장으로 가득 차 있다. 익히 그의 명성은 마르셀 라이히 라니츠키의 <내가 읽은 책과 그림>에서 맨 마지막 아주 짧게 그를 다룬 글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막연하게나마 그의 작품을 읽지 않았던 나는 어떤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의 작품 성격이 거의 비슷할 것이라는. 라니츠키는 베른하르트의 작품에 대해 "그의 산문이 보여주는 비상한 통일성이란 바로 여기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이 통일성을 갑갑한 획일성으로 느끼는 사람도 더러 있다. 이탈리아의 작곡가 달라피콜라가 남긴 명언이 있다. 비발디는 344개의 독주협주곡을 썼다기보다는, 단 하나의 협주곡을  344번에 걸쳐 작곡하였다고 말이다. 이 말은 토마스 베른하르트에게도 적용시킬 수 있다. 그의 산문의 근본요소는 탄원이요 애가이다. 어쩌면 이렇게 말해도 좋지 않을까. 그는 해학적인 탄원과 유쾌한 애가를 지었다고."  삐리링~~~결말은 좋게 말해도 핵심은 비발디까지 예를 들어가면서 들먹이던, 그 작품이 그 작품라는 말 아니더냐. 별 관심 없이 있다가 파란여우님의 리뷰 읽고 베른하르트의 <옛 거장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이거야 말로 또 한번 삐리링~~~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론,예술론을 레게의 입을 빌려 집대성한 작품이었다. 베른하르트에게 삘 완전히 꽂혔다. 이거 도서관에 갖다주어야 하는데..... 갖다주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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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투 더 문 -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우주과학 에세이
마이클 콜린스 지음, 최상구 옮김 / 뜨인돌 / 200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정재승의 <과학콘서트>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널리 퍼진  과학적 토막 상식 가운데 하나인 지구 밖에서 유일하게 보이는 것은 중국의 만리장성이라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작가도 출처가 어디인지 잘 모르겠다고 한, 이런 오류가 어떻게 상식으로 굳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사실 진실은 이렇다.  

1960년, 소련이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지구 궤도로 발사하는데 성공하자, 미국은 이에 충격을 받고 부랴부랴 나사를 설립하고 우주선에 사람을 태워 우주로 내보내는 머큐리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이 치열한 미소간의 우주전쟁은 소련이 유리 가가린을 우주에 쏘아보내 그가 "하늘은 어두웠지만 지구는 푸른 빛이었다"라는 소감을 인류에 전하면서 짐짓, 미소간의 우주전쟁 초기에는 소련이 패권을 쥐는 듯 보였다. 게다가 가가린의 우주비행의 성공보다 23일 뒤진 1961년 5월에 미국도 앨런 세퍼드를 미국 최초 우주인으로 쏘아올렸지만, 지상 160킬로미터 상공에서 탄도곡선을 그리며 지구를 돌아 바다로 다시 떨어지는 고공비행일뿐이었다. 여러차례의 우주 비행이 시도됬고 어느 정도의 머큐리 계획은 최종 목표를 완수했다. 하지만, 미국이 인류역사에 커다란 성공의 발자국을 찍은 것은 1969년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그리고 마이클 콜린스가 달착륙의 위협을 달성하면였고, 60년대 미소간의 우주전쟁 최종 승리는 미국임이 판명되었다. 

1969년 7월 20일,  우주인이 되기 위해 닐 암스토롱, 버즈 올드린 그리고 마이클 콜린스는 수 년간의 훈련을 쌓은 후,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을 향해 날아갔다. 마이클 콜린즈의 경우, 비행기 조정사였다가 우주인 채용공고에 지원해 합격함으로써, 고된 훈련(예를 들어 무중력 상태에서 견딜 수 있는 훈련이라든가 별자리 연구, 우주선 시뮬레이션 조정같은) 과정을 거쳐 아폴로 11호에 탑승하게 되었다. 이 트리오가 지구를 떠난 첫날, 콜린스는 암흑의 우주 공간에서 본 지구에 대해 " 아주 밝은 색을 띄었다. 녹빛이 나는 사막은 희미하게나마 보였지만 녹색의 정글 지역은 전혀 부각되지 않았다.~~~ 우주에서 지구를 바라볼 때, 바다는 맑은 다이아몬드와 같이 반짝거리면 밝게 빛난다(p186-187)"라는 아름다운 푸른 빛의 구의 지구만 보인다고 할 뿐, 중국의 만리장성같은 건축물이 육안으로 보인다고 기록은 쓰여있지 않는다.

하지만 오류는 지구밖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이 보인다라는 것뿐만이 아니다. 세상에서 가장 낭만적인 우주과학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플라이 투 더 문>이라는 이 책에도 오류는 있다. 이 책은 얼핏보면 저자인 마이클 콜린스 또한 닐과 버즈와 함께 인류 최초로 달착륙의 위업을 달성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이클 콜린스는 닐과 함께 달에 발을 디디지 않았다. 그는 달의 궤도에 남아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사령탑을 지키고 있었다. 아폴로 11호가 달의 궤도에 무사히 진입한 후, 닐과 버즈는 아폴로 11호에 부착된 거미모양의 비행물체 이글호를 타고 달의 표면으로 하강한 후, 인류 최초로 달표면을 밟은 것이다. 우주선에 혼자 남겨진 마이클은 "우주선에 혼자 남겨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로움이나 소외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느 매우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이며 내가 없다면 닐과 버즈가 무사히 지구로 귀환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는 닐과 버즈의 귀환을 기다리며 달궤도를 비행 중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외로움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이겨낼 수 있을만큼 강했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달이라는 산에 도전할 수 하는 두명의 등반가는 컬럼비아라는 베이스켐프가 있기에 안심하고 등정할 수 있는 것이다(p200)" 라고 적고 있는데, 비록 달의 땅을 밟을 수는 없지만 사령탑에 남아 자신의 주어진 임무에 최선을 다하고자 한 각오와 동시에 씁쓸함을 읽을 수 있었다.   

닐과 함께 달을 밟을 수 없었던 탓에 그의 업적은 사실 거의 묻힌 것이나 다름 없다. 그 누구도 닐과 버즈의 달을 밟고 성조기를 꽂는 모습은 기억해도 아폴로11호에 남아 닐과 버즈의 무사귀환을 염원했던 마이클이 노고는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우주선 사령탑을 지키지 않았더라면, 어쩜 닐과 버즈는 데이빗 보위의 <Space oddity>라는 노랫말처럼 무한 우주를 떠돌아 다니는 우주미아로 전락했을지도 모른다. 죽을 때까지 우주를 떠돌아 다닌다고 상상해보라.  깜깜한 우주속에서 떠돌아 다니며 죽음을 홀로 맞이한다면, 인류 최최로 달을 밟았다는 것이 뭐 그리 커다란 업적으로 남았겠는가. 마이클 콜린스가 주어진 업무를 소홀히 하고, 만약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겨 닐과 버즈를 구조하지 못하고 혼자 지구로 귀환했다고 한다면, 지금과같이 인류 최초의 달의 착륙이라는 수식어는 역사의 오점으로 빛이 바랬을 것이다. 

달과 지구의 거리는 약 38만킬로미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의 속도는 초속 30만킬로미터이므로, 만약에 우리가 빛의 속도로 달세계를 여행한다고 가정한다면, 1,2초안에 도착 가능하다는 이론은 성립이 된다. 하지만 아인슈타인가 말한 대로 우리는 빛의 속도를 영원히 따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토끼가 산다고 믿었던 달에 가기 위하여 수 많은 기술이론과 연구, 실수와 착오를 거듭해가며 인공 위성을 쏘아올리고 우주선을 만들고 우주선을 진수할 수 있는 로켓을 만들었다. 마이클 콜린스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이론들을, 우주에 좀 더 가까이 가기 위한 나사의 역사와 무엇을, 어떻게 그들이 진행했었는지에 대해 에세이 형식을 빌려 이야기하고 있다.

우주에 대한 탐사는 아직도 멈추지 않았다. 오랜 기간에 걸쳐 미국은 무인 탐사선을 화성에 보내고 생명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이론은 지금의 물질 문명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지구 밖 우주의 확장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어떤 별은 공룡이 탄생하기 시작되기 휠씬 전에, 출발한 빛을 이제 보고 있을 정도로 먼 거리에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지금 돌이켜보면, 1969년에 달표면의 도착은, 드 넓은 우주 공간 속에서 우리는 우주의 신비의  매듭을 풀기 위하여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는 시작이었던 셈이었던 것이다.  

70년대 중반에 출간된 책이 지금에서야 우리나라에 번역된 것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달을 향해 가기 위한 과정과 과학적 지식이 충분히 담겨져 있다. 닐과 버즈와 함께 마이클 콜린스라는 이름을 기억해야하는 이유가 여기 담겨져 있고 닐과 버즈가 달표면을 밟은 것만큼이나 가치있는 책임에는 틀림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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