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빵가게님,
제가 님이 올리신 글에, 반발해서 즉흥적인 감정으로 악플 달 때, 님이 제 악플을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지우거나 혹은 후폭풍이 일거라고는 어느 정도는 예상했습니다. .
만약 님께서 상대할 가치가 없다고 보자마자 지웠더라면, 오히려 저는 그런 악플을 단 죄책감과 수치심에 끙끙 앓았을 거에요. 그나마 님이 저를 상대해 주었기에, 저는 감정적인 찌거기가 남지 않았습니다. 대응 글 쓸 때도 감정적으로 화가 나서 쓴 게 아니고요.
그리고 사실 저는 님의 글이 싸가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건 정말 진심입니다. 제 나이 이제 마흔 중반을 바라보는데, 제가 산 세월이 꽃이었다면, 개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거에요. 하지만 지금까지 산 세월만큼 많은 일을 겼다보니, 저는 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생각을 처리하는 방법과 과 감정조절이 대담한 면이 좀 있습니다.
일단 원인 제공은 저였고, 격한 감정적인 대응의 글이 있을 거라고 예상해서 그런지, 그냥 님의 글이 젊음(님의 글을 읽으보면 30대로 느껴지던데, 아닌가요?)으로 읽혀졌고, 그런 식으로 쓰는 것은 나의 악플에 대한 당연한 반응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어떤 정치적인 지향점을 가지고 있다면 반대편의 지향점을 가진 사람과는 분명
싸울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구요. 그렇다고 뭐 막무가내로 싸운다는 것은 아니고요. 제가 살다 보니, 삶에 있어서 깨달은 게 있다면, 어떤 관계든, 지향점이든, 목표든 간에 균형을 잡고 산다는 것이 가장 비겁한 일이구나 하는 점입니다.
치열하게 싸우지 않으면 원하는 것을 절대 얻을 수 없다는 것, 그래서 저는 이런 싸움이 결코 나쁘다고 보지 않습니다(전 생각이 정말 별나지 싶습니다).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채 어떤 문제에 대해 무게추가 중앙에 있었다면, 결코 우리의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겠지요.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싸웠기에 지금의 녹색당이 존재하는 것이고, 여성의 참정권을 얻기 위해 많은 여성들이 싸웠기에 참정권을 얻어 남성들과 대등하고 투표할 수 있는 것이고, 인종차별에 대항하여 흑인들이 싸웠기에 인종차별법을 폐지한 것이고, 게이들 또한 치열하게 싸웠기에 그들의 권리를 획득한 게 아닐까요. 역사가 균형의 중앙에만 섰다고 생각하면 멋진 20세기는 없었겠지요.
님이 민주당과 김용민을 한심하게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으셨으니깐, 그걸 못마땅하게 생각해서 시비거는 저 같은 사람이 있어, 서로 니가 잘못 생각했네, 잘했네 이러면서 서로의 입장을 내세워 싸워야 서로 들고 있는 카드를 알 수 있는 거 아닙니까? 전들 민주당이 이뻐 보이겠습니까? 서로의 선을 파수병처럼 지키며 침묵과 외면만 했더라면, 상대방의 패를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저는 님의 글에서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제가 잘 못 생각했던 것들에 대해 화이트로 수정도 했구요. 단지 나이가 들면서, 이상하게 주변 상황에 맞춰 카멜레온으로 살고 싶지 않다는 것 그리고 모난 돌로도 사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자꾸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