헐, 나는 일년 열두달중에서 11월달이 가장 싫따~.
4계절중에서 겨울을 가장 좋아하지만(따스하고 안락한 집에 틀어박혀 있을 수 있어서),
겨울이 시작되는 11월이 제일 싫은 이유는 바로 김장때문.
10월말부터 친정엄마한테 엄마, 11월 몇일에 김장할거야? 몇 포기 할건데? 를 연차 물으며
이번에 그냥 겨울에만 먹을 거 하면 안돼? 한 이십포기기 정도! 라고 읍소하며 닥쳐오는 김장철인 11월을 무거운 맘으로 맞이한다.
우리집 김장은 몇년 전부터 엄마와 나 단둘이 하는데( 언니가 일 다니기 전에는 셋이 했음),
언니마저 일 다니고부터는 엄마와 나뿐~
어렸을 땐 겨울에 배추김치뿐만 아니라
겨울에 차가운 동치미무 아삭 씹어 먹는 게 그렇게 좋을 수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 어린 시절 동네 아줌마들 모여서 품앗이 김장하는 기간 동안
아줌마들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지금은 배추김치 한 종류만 담글뿐인데....
예전에 비하면 지금 김장은 이틀만 고생하면 되는데..... 나오는 것은 한숨뿐. 휴!
우리집 같은 경우는 고모가 배추 농사를 짓기에
밭에서 배추를 뽑고(물론 무나 갓같은 기타 김장재료도), 그걸 차에 실어
엄마네 집에 나르고(흑흑, 이층이라 엘리베이터도 안됨. 40,50포기를 계단으로 날라야함)
다듬고, 씻고, 절이고, 무채 썰어 속 만들고, 버무리고,
물론 나는 엄마의 보조지만, 김장을 하는 과정이 너무 힘들다.
참고로 우리집은 올케 안 시킴. 딸들이 알아서 다 함.
올해도 여지 없이 11월 김장철이 다가왔고,
친정엄마 왈 11월 중순 넘어서 김장 한다고 하길래,
싫은 내색 안 하고 김장 하고 엄마, 술이나 한잔 하자고
말하고 며칠날 고모네 배추 뽑으러 가자고 약속 했더니
이번에 고모네 배추 농사가 안 되서 배추 사서 김장 하라고 했단다.
더 놀라운 것은 매번 돈 안들고 김장한 탓에
막상 배추 40,50포기를 사려니 돈이 아까워서 그런지
친정엄마가 왠일로 이번에 겨울에만 먹을 김치 15포기만
하자고 하신다.
봄부턴 니네들이 알아서 담궈 먹으라고.
풉, 이쯤되면 이건 김장이라고 할 것도 없음.
그래서 오늘 엄마랑 동네에서 배추 15포기 사들고 차에 싣고 왔다.
큭~ 15포기 계단으로 나르는데, 이건 뭐 배추 나르는 것 같지도 않더라, 하핫.
낼 다듬고 절이기만 하고 토요일에 김장 기분 내며 버무리기로 했다.
이래나 저래나
올 김장은 가뿐한 마음으로~
수년 동안 김장을 하면서도,
아이들이 있으면 김장 방해만 됐다고 김장때 할머니집에 얼씬도 못했던,
우리 아이들은 김장 때만 되면 읽어주던 김장 관련 그림책 덕에
김장 판타지를 가지고 있는데,
올해 친정모가 왠일로 애들 데리고 와서 김치도 버무리고 보쌈도 먹자고 하신다.
올해는 판타지가 현실체험이 될 듯.
김장에 요구되는 강도 높은 노동력을 모르는 아이들은 그 그림책에 묘사된,
온 가족이 모여 싱글벙글 웃으며 김치 담그는 모습이 진짜 김장인 줄 알겠지만,
추억의 절반은 맛이라고(아무리 생각해도 이 책제목 너무 잘 지었음),
막 버무린 배추와 보쌈 한 입의 맛을 추억으로 간직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