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작년 이맘때 쯤, 책에 전혀 ~ 눈꼽만큼도 관심 없는 아들이 나에게 물어 볼 게 있다고 하더니, 뜬끔없이 이 세상에서 돈을 제일 잘 버는 작가가 누구냐? 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머리 굴릴 것 없이 그 질문 받자 마자 딱 떠오른 인물이 바로 스티븐 킹이어서, 아마 스티븐 킹일걸, 책 출간하자 마자 베스트셀러고 많은 작품들이 영화화 되었으니깐 근데, 왜?라고 물으니, 그냥 이라는 말로 은근슬쩍 입을 닫아 버리길래, 더 이상 캐 묻지 않았었다.
속으론 저 놈의 자식이 왜 그런 걸 물었을까? 궁금했지만. 그 궁금증은 아이의 졸업식에 가서야 아주 간단히 풀렸다. 졸업식이 진행되고 마지막 교장선생님이 아이들 한명 한명 호명하며 졸업장을 수여하는 행사에서, 아이들 이름이 호명 되면 그 아이의 장래 희망이 교장선생님 뒤에 설치된 하얀 스크린 뒤로 뜨게끔 되어 있었는데(요즘은 졸업인구가 적다보니 졸업식 때 이렇게 일일히 아이들 모두에게 이벤트처럼 졸업장 수여를 해 주더군요^^), 우리 아들이 교장선생님에게 졸업장을 받는 순간 하얀 스크린에는 장래 희망이 스티븐 킹같은 소설가라고 쓰여 있었던 것이다.
아, 저래서 돈 많이 버는 작가가 누군지 물은 거였구나........ 하얀 스크린에 뜬 아이의 장래 희망이 스티븐 킹같은 소설가라는 글을 본 순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해 보라고 한다면, 황당했다. 더 나아가 애아빠한테 너무나도 미안했다. 애아빠는 우리 가족을 위해 밤낮으로 열심히 일하는데, 아들의 장래 희망이 소설가라니 ~헐르르르르, 그 많은 직업들중에서 하필 소설가라니 이게 말이 돼(속으론 이게 말이야 막걸리야를 외치며), 말도 안돼. 내가 책을 너무 많이 읽고 사 들인 게 탈이였어. 책 읽은 엄마의 아들 장래 희망이 기껏 소설가라니. 소설가라니... 재능도 없는 놈이!
뭐 일단 졸업장을 받고 식장에서 내려오는 아들을 보며 웃으며, 겉으론 민준아~ 너 소설가 되려면 책 많이 읽어야해(속으론 너 소설가만 되기만 해봐. (주먹을 불끈 쥐며) 너 죽어!), 스티븐 킹은 진짜 운이 좋은 거야. 그런 사람이 전 세계에 몇명이나 되겠니?. 킹같은 작가 없어. 대부분의 작가들은 돈 못 잘 못 벌어! 라고 말했고, 지금은 스티븐 킹같은 작가가 되고 싶다는 희망이 허세였는지 더 이상 작가가 되겠다는 말은 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말끝마다 대다수 작가의 돈벌이가 얼마나 형편 없는지 세뇌시킨 결과이긴 하지만 말이다.
휴, 어째튼 초등학교 졸업식 때 아들의 장래 희망이 소설가였다는 아는 그 순간, 그 때의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할까. 실망도 실망이지만, 걱정이 앞섰다. 경제적으로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다 큰 젊은 놈이 글 쓴다고 자기 방에 하루 종일 틀어박혀, 시간만 갈아 먹는 그 꼴을 연상하니 두려웠다. 그 두려움의 두께가 너무 커서 아이에게 그 나이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상상력과 재능이 있는지조차 확인하는 것을 거부했다. 아이에게 재능이 발견되면, 그 두려움의 두께라는 게 사실 달걀막처럼 얇은 막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능이 없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어렵지 않지만, 만에 하나 재능이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 또한 두려웠다. 아들에게 독자로 남는 것이, 독자를 넘어 읽지 않은 책들로 둘러쌓여 책수집가로 남아 있는한이 있더라도 작가로서의 삶을 반대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경제적 궁핍이기 때문이고, 작가적 재능이 성공을 보장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수십년 간 독자로 살고 있는 내 경험상, 작가적 재능의 유형은 스펙트럼처럼 넓어 딱히 작가로,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는 유형은 이거다라고 쉽게 정의 내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문장도 아름답고 이야기구조도 탄탄한 재능을 가졌다 한들, 성공으로 이어지라는 보장은 없다. 스티븐 킹이나 마쓰모토 세이초처럼 문장은 별 볼일 없어도 이야기 구조 자체가 사회적, 정치적 이슈가 탄탄해서 일반 대중의 호응도가 높아 뛰어난 작가라는 소릴 들을 수 있는 것이고, 나보코프처럼 문장이 아름다워 평론가들과 대중의 지지를 세월이 흘러도 받는 작가도 있고, 스타인 벡처럼 당대의 사회적 모순을 강렬하게 묘사하거나, 미스터리나 해리포터 같은 판타지계열로 독자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작가가 있을 수 있기에, 이런 유형의 글을 써야 작가로서 성공할 수 있는 메뉴얼이라는 건 있을 수 없고 그런 상황에서 작가적 재능은 무의미한 게 아닌가 싶어, 아이의 작가적 재능을 알아보는 것에 대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다.
뛰어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작가적 재능을 가지고 있고 밤낮으로 미친듯이 글쓰기에 매달린다 해도 꿈만 쫒는 작가라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은 50%이다. 평생 글만으로 먹고 살기보다 하늘의 별을 따는 게 더 쉬울 지도 모를 일이다. 재능과 노력만으로 안 되는 것이 세상살이라는 것을, 현실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일찍 알려주고 싶다.
내 남동생은 고등학생 시절, 기타에 미쳐 밤낮으로 연습 했다. 밥 먹고 똥(>.<) 누는 시간을 제외하곤 모든 시간을 기타에 미쳐 퉁퉁거렸다. 열정은 노력을 동반한다는 것을 동생을 통해 처음 알았다. 동생이 기타리스트가 되는 것에 대해 우리 집 가족 그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동생의 기타에 대한 열정과 밤낮으로 쳐 대는 노력하는 모습때문이라도 성공하길 바랬을 정도로. 엄마는 동생이 대학교를 때려치고 레코딩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간다고 했을 때도 군말없이 곗돈이란 곗돈은 다 긁어모아 자금을 댔었다.
그런 동생이 결국 꿈을 져 버리고 회사를 다니게 되었다. 열정보다 목구멍이 포도청쪽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은 비록 직장인 밴드부에서 기타를 치며 배고픈 기타리스트보다 배부른 회사원이 되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해도 간직하며 아마츄어로서 활동하는 모습이 가장으로서 책임감 있어 보인다.
속물이라 칭해도 할 말 없다. 내가 살고 있는 시대의 출판문화가 비틀비틀거리는 시대이기에, 미래의 궁핍이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아들의 장래 희망을 선뜻 들어주기에는 두려움의 두께가 너무 크다. 아들에게 꿈을 쫒기 보다 독자로 살아 남기를 바라는 것은 현실주의자 희망이며, 우리 시대에 독자로 살아 남는 것만 해도 수렁에서 열심히 허우적 대고 있는 것을 알아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