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내가 국민학교 오학년때였을 거다. 조용필 오라버니가 <창밖의 여자>를 발표한 게. 그 뒤를 이어 나온 게 <단발머리>였는데, 그 노래가 좋아 조용필 오라버니도 좋아 미쳐 죽는 줄 알았다. 단번에 조용필 광팬으로 등급. 조용필에 관한 기사란 기사란 죄다 모으고 스크랩하고 요즘 말하는 용필오빠~빠를 자처하며 라디오에서 조용필오빠의 노래가 한곡이라도 나올까 싶어 애타게 기다리며 하루 종일 끼고 살았던 적도 있었는데, 한 몇년 동안은 한국 가요계는 조용필 오바버니의 천상천하였다.
그 땐 가수도 지금처럼 많이 않았던 때라 조용필 오라버니의 천하가 가능했던 시대였는데, 간만에 조용필 오라버니가 <바운스>를 들고 나오니 감회가 새롭다. 정말~ 옛날에 내가 좋아했던 기억도 새록새록 나고. 그런데 아, <바운스>를 듣는데, 왜 나는 자꾸 저 곡을 오라버니 보컬이 아니고 아니고 다른 젊은 아이돌이 불렀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드는 이유는 뭘까! 흑흑. 80년대 아날로그 사운드에 현대적 감각을 입혀 귀에 착착 감기는데, 보컬이 따로 노는 것 같아. 보컬이 자꾸 내 취향이 아냐, 빅뱅이 불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뭘까. 조용필 오라버니보다 이제 빅뱅의 태양이나 대성의 보컬이 더 좋아~
지난 4월 1일에 장국영의 죽음을 애도하는 글이 올라오면서 장국영을 보면서도 이런 생각이 들더라. 장국영이 조금만 늦게 태어났어도 인기 못 끌었을 것 같은데, 시대가 좋아하는 얼굴 취향이 있긴 한 거보다라는 생각이. 물론 나 만의 생각이긴 하지만. 그나저나 제발 <아비정전>에서 장국영이 춘 춤이나 따라하는 시에프가 없었으면~ 장국영 이상 흉내내지 못할 봐엔 제발제발제발 하지말았으면 좋겠다.
2. 건국대 수학과 석좌교수인 조용민 교수가 양-밀스 이론과 질량 간극 가설 문제를 풀었다고 하는데, 최근에 이 책 읽으면서 이런 대목이 눈에 띈다.
문제는 수학의 새로운 업적이 평가받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대의 학문은 동료들의 심사(peer review)를 학문적 가치를 판단하는 척도로 삼고 있다. 만일 대담하면서도 새로운, 그리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발표하거나 매우 방대하면서도 정교하고 난해한 증명을 논문으로 발표했을 때 이것이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과연 새로운 제안이 수학적으로 타당한 것인지 등을 판단하기 위해 동료들이 이해하고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수학 분야에서 논문을 심사하고 잡지에 게재, 발표하기까지 1~2년 정도가 걸리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러므로 40세 이전에 훌륭한 성과를 내더라도 이 기간에 시간이 흘러가는 일이 생기기도 한다. 꼭 이런 사례는 아니지만 안타깝게 상을 받이 못한 인물이 페르라의 마지막 정리를 증명한 앤드류 와일즈이다. 그는 20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걸쳐 이론을 증명했지만,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 받았고, 그것을 수정하는 동안 40세가 넘어 버려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전자책이라 쪽수 모름)
조용민 교수팀이 양-밀스 이론 문제를 해결했는지에 대한 것은, 그 문제를 풀었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확인해야하는 과정이 남아있다는 것. 그 기간이 언제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란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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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꾸리꾸리한 날에 기분도 꾸리해져서, 햇빛 충전을 무료로 받고 싶다. 이 고양이처럼~
4.
지난 금요일에 모임이 시청 근처여서 서울도서관에 들려 빌려온 책. 여하튼 책욕심은 끝이질 않는구나. 이 책 빌리는데 지인께서 왔다 갔다 차비로 책 한권 살 수 있겠다고 말했지만, 그 땐 바람도 쇨겸 다른 책도 빌릴 겸 나올 수 있을 거 같더니만, 이번 주 금요일에 갖다 줄 생각하니 귀차니즘이 발동. 어찌할까 싶다.
경상도 남자인 황선준씨가 스웨덴으로 유학가 현지인인 스웨덴 여자자와 만나 애 셋 낳고 사는 이야기인데, 스웨덴에서의 에피소드보다 자신의 어린시절을 회상하는 글이 전반부고 후반부에는 스웨덴의, 스스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교육 이념을 설명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직되고 대입위주의 교육을 비판하면서.
다른 나라에선 현실적인 교육이 왜 우리나라에선 이상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을까하는, 우리나라의 교육에 회의감이 드는 책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스웨덴에서 현실로 뿌리 내린 교육이 우리나라에도 도입되었으면하는 바램도 바램이지만, 만약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이 스웨덴의 교육방식이 이상형으로만 바라볼 수 밖고 그 이상의 진전이 없다면, 이 나라에 말뚝박고 살아야하는 나와 우리 아이들은 경쟁적이고 점수 위주인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따라야할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큰 애랑 공부때문에 이런저런 말썽도 많고 가슴이 터질듯이 속상하기도 했는데, 그나마 그 속상함과 욕심을 덜어 준 책이기도 하다. 책빨의 약효가 부디 천천히 떨어지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