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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사 검색하다 마릴린 맨슨의 민낯이 검색어 상단을 차지 하기에 클릭해 들어가 그의 민낯보니 생각보다 수수하게 생겼다. 너무나 평범해서 길거리에서 마릴린 맨슨을 만나더라도 그가 마릴린 맨슨일 거라곤 생각지 못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마릴린 맨슨의 기이한 무대 매너에 대해 반감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그를 혐오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다. 쑈는 쑈일뿐 상업적인 무대에서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선 기존의 사회적 틀도 과감히 깨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나는 맨슨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에게 호감을 느낀 첫번째 계기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볼링 포 콜럼바인>에 나온 마릴린 맨슨의 인터뷰였다(참고로 그의 인터뷰를 실은 블로그를 찾아보니 http://trycom.tistory.com/2297 ). 사실 그가 가수로써의 무대행동이 파괴적이고 혐오스러울 뿐이지 그가 정상적인 사고를, 아니 오히려 평범한 사람보다도 더 깊은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두번째 계기는 언젠가 그가 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내가 혐오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종교를 이용해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이다....라고 말하고 부터이다.

 

나이를 먹다 보니 삶의 경험치라고 해야하나. 더 이상 신의 존재 여부에 관심이 없다. 종교를 믿고 안 믿고는 개인적인 신념의 문제이다. 그 신념이 자신의 삶에 행복을 가져다 준다면 신의 존재 여부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종교의 뿌리가 괜히 기복신앙이겠는가. 종교는 아주 개인적인 지극인 개인적 행복의 기원에서 시작되었고 여전히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그 무엇이다.

 

그래서 아주 지극히 사소한 개인적인 종교라는 범주에 타인이 관여할 수도 관여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타인이 종교 문제에 관여하거나 전도를 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종교는 권력화가 되고,그 권력뒤에는 교육 받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 덩어리는 정치적, 사회적, 교육의 왜곡을 낳는다. 유럽의 중세 암흑 시대를, 조선 시대의 유교 문화의 몇몇 예만 들어도 우리는 소수가 어떻게 배우지 못한 다수를 지배했는가를 역사의 그늘을 통해 알고 있다. 세대를 거듭된 종교의 세뇌는 무섭다. 사람들을 꼼짝 못하게 하는 미신의 형태로 굳어지기 때문이다.

 

입자물리학자인 폴 디랙은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의 의지라든가, 죄와 회개, 그리고 내세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올바른 행동을 해야한다는 등등의 이야기는 모두 거칠고 냉철한 현실을 은폐하는데 도움이 될 뿐이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다는 것은 높은 사람의 세력에 굴복하고 복종하는 것이 것이 `신의 뜻에 따르는 것`이 된다는 생각에 매우 유리한 뒷받침이 되었다라고 말이다.

 

폴 디랙의 말처럼 사실 종교는 신의 의지함으로써 삶의 힘겨움, 아픔이나 고통을 치유받으려는 목적성이 강하므로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교단에 지배당할 가능성이 큰 건 사실이다. 종교의 기원도 사실 지배를 더 강화하려는 목적이었고.  사람들에게 희망과 환상(illusion, 예로 천국같은)을 만들어 줌으로써 사람들의 사후세계까지도 지배하려고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래서 한 예로, 나는 정의구현사제단의 시국미사도, 대선때마다 영향력 있는 목사가 나와 신도들에게 누구를 찍어야한다고 발언등 정치적 편향성에 반대한다. 이러한 구도만큼 지배/피지배의 관계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종교적 권력이 복종에의 강요가 아닌 인간의 근원적인 자유와 평등과 열린 세상을 지향했더라면 우리는 우리의 삶이 불행과 비운의 두려움에 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신을 부정하고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아서, 모든 것으로부터 삶이 자유롭다. 내가 무슨 일을 할 때마다 하나님이 벌을 줄 것이라는 두려움도 없으며 천국이 나를 기다릴 것이란 희망도 없으므로, 나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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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2-03 18:11   좋아요 0 | URL
맨얼굴은 정말 순수하네요. 저 역시도 길에서 만나도 전혀 맨슨이라고 짐작조차 하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맨슨 관련 인터뷰는 아무것도 읽어본 게 없었는데(아예 관심이 없었거든요), 인용하신 것처럼 '내가 혐오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종교를 이용해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이다' 라는 문장을 보니 그가 다른 어떤 말들을 할 지 궁금해지네요. 더 관심이 가고요. 흠. 혹시 트윗을 하는지 검색해봐야겠어요.

(검색해보고 찾았다가 금세 나왔어요. 영어에 대한 부담도 있지만 사진들이 무서워요 ㅠㅠ)

기억의집 2014-02-03 18:18   좋아요 0 | URL
ㅋ 다락방님..... 글쓰다가 밥해야 해서, 이쯤 하고 비밀글로 한다는 걸 공개로 잘 못 눌렀나봐요. 글 올리자 마자 댓글 다셔서 그냥 페이퍼로 올리고 나중에 고쳐야겠어요.

무어의 볼링포 콜럼바인 보셨어요? 무어가 보수주의자들 입장에서 보면 삐딱한 놈이잖아요. 그런 삐딱한 무어가 맨슨을 인터뷰하는 도중에 파란 셔츠를 입고 맨슨을 비난하는 정치적인 청년 한명(가식적인 백인) 이 연설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진짜 제 눈에는 맨슨이 더 이성적으로 보였어요.

사람들이 맨슨을 똘아이라고 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저런 어록때문인 것 같아요~

유부만두 2014-02-03 22:39   좋아요 0 | URL
아... 난 맨슨 저 허연 얼굴은 꿈에 나올까 무섭.... 눈도 특수 렌즈를 끼고....
그의 노래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 뭐라 평은 못하지만 종교와 권력 관련 멘트는 멋지네...

그나저나 대문 플필 사진 어깨에 강아지 얹은 작가(?)는 누구?

기억의집 2014-02-04 10:22   좋아요 0 | URL
그쵸~ 맨슨의 분장 얼굴은 맹박이 닮지 않았어요! 볼수록 맹박이 판박이에요...전 마릴린 맨슨 노래는 도저히 못 들어주겠더라구요. 펑키한 그린데이가 딱 제 스탈이라, 그린데이 정도면 들어주겠는데 말이예요.


크리스 알스버그요..제가 이 작가 그림책 작가중에서 가장 좋아하는데, 북극행열차를 그린 작가요. 이 사람 작품마다 저 강아지 꼭 나와요. 저 강아지 품종 알았는데 까 먹었네요. 나이가 있어 이젠 작가로 활동하지 않고...칠십 넘지 않았을까 싶어요.

군자란 2014-02-04 13:47   좋아요 0 | URL
종교, 신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이 자기 자신을 인식하면서 시작된 패턴으로 보이는데, 것 참 ! 벗어나기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종교의 탄생, 인간의 의식의 본질, 양자의 본질 우리인간이 갖고 있는 지식의 끝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죽을때 까지 찾을 수 없는 답! 아무도 답해줄수 없는 영원한 미로, 다람쥐 쳇바퀴라는 말이 우리 인간의 일생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기억의집 2014-02-04 15:49   좋아요 0 | URL
저는 종교에 대해 여러 글 읽으면서 신의 존재여부는 상관 없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신의 존재 여부가 아니라 신을 믿어서 그들이 행복하다면 믿음은 제대로 길을 가고 있지만, 신을 매개로 권력을 만들고 그 권력을 이용해 욕망을 드러내는 거..종교의 부작용때문에 신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군자란님 서재에 들어가 보는데 활동을 많이 안 하셔서 바쁘시구나 했습니다^^

icaru 2014-02-04 17:10   좋아요 0 | URL
어머나 리처드 기어인 줄~ ㅎㅎ
저는 영화 반지의 제왕을 보면서,,, 골룸 분장은 마를린맨슨의 무대 퍼포스에서 가져온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ㅎㅎ

기억의집 2014-02-04 22:19   좋아요 0 | URL
우리 나라 기자의 문제는 맨슨의 무대 퍼포먼스를 무슨 기독교 시각 그대로 받아 들여 사탄의 아들쯤으로 알고 있다는 거. 맨슨에 대해 저런 글 쓴 기자의 기사 한 조각 못 봤어요..... 피터 잭슨이 맨슨의 분장에 영감을 얻었을지도..모르죠~

갑자기 리처드 기어해서 생각났는데 지난 번에 리처드 기어 최근 사진 보니 많이 늙어서 젊은 날의 기어같지는 않더라구요. 멋지게 늙긴 했지만... 전 요즘 조지 클루니가 그렇게 멋있더라구요.

다크아이즈 2014-02-05 09:20   좋아요 0 | URL
기억님과 제가 다른 점이라면 저도 종교에 의지하진 않지만 내세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저도 이해가 잘 안 돼요. 한 밤중에 엘리베이터 혼자 못 타고, mri 기계는 죽을 것 같아 못 들어가고... 오래 살고 싶다, 이런 생각 전혀 없는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가 심히 있는 것 같아요. 아마 어릴 적 뭔가 트라우마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잘못 한게 너무 많은 삶? 이런 자책도 들고...

<내가 혐오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종교를 이용해 교육받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려는 사람들이다> 마릴린 맨슨이 아니어도 누군가 먼저 내뱉었을 저 말을 저도 깊이 공감합니다. 해서 목사님 한 말씀에 여기저기서 터지는 아멘, 소리가 제 귀에 너무 고통스럽게 들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지요. 그들이 만족하는데 내가 고통스러워하는 제 고통의 심연이 저를 괴롭힙니다. 이쯤 되면 제게 문제가 있는 거 맞지요?

기억님 오늘 하루도 잘 보내시길^^*

기억의집 2014-02-05 10:57   좋아요 0 | URL
저도 삼사년전에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고 공포감도 대단했어요. 그때 방황도 많이 했구요. 그런데 죽음이 무서운 게 아니고 죽으므로써 남겨진 아이들때문에 힘들고 죽음을 받아 들이는 걸 힘겨워 하는구나,를 깨달았어요.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면서 어차피 언젠가 지구상위의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거 이왕이면 열심히 살자는 생각이 들어서...두려움과 공포에서 자유롭게 살자는 주의가 된 것 같아요...

폴디랙이 말한 것처럼 내세나 신의 의지라는 걸 사람이 만들어낸 환상이라고 생각하시면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요. 전 제가 과학책을 읽으면서 거대한 우주속에 하나의 원자로 사는구나....싶어 신기할 때가 있거든요^^

팜님도 무탈한 하루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최근에 삼성이 신입사원 선발할 때 탈스펙, 역사관 중시 라는 기사를 읽었는데,,,,그 기사 읽으면서 탈스펙까진 좋은데 역사관 중시라는 문구를 보니 씁쓸한 기분이 들면서 그들이 원하는 역사관이 무엇일지 궁금해졌다.

 

말이 궁금하다 뿐이지 어느 정도는 그들이 어디 편에 서 있는지 안다. 삼성은 좌파 성향의 진보적인 역사관을 가진 사람은 뽑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삼성이란 기업적 형태로 보아. 그들이 선호하는 역사관은  친일우파관의 역사관을 가진, 좋게 말하면 보수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을 선호할 것이란 건 그 누가 봐도 뻔하다. 기업 팻말만 안 걸었다뿐이지 그들 역사관은 오른쪽 좀 더 오른쪽으로.

 

보수성은 기업의 입장에보면 분명 유리한 점이 있다. 상하명령복종에 절대적이고 안전하니깐. 기업을 운영하면서 안정적인 것 만큼 기업 위념에 중요한 것은 없을테니깐. 한 기업이 자신들의 안정과 이익을 위해 보수적이고 우파적인 사람들을 뽑는다라고 하는데 그걸 뭐라고 할 수는 없다. 여하튼 뭐 지들 맘이니깐.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세계의 역사를 바라보니, 참 우스운 게 보수는 세계를 뒤흔든적도 움직이지도 못했다는 것이다. 보수는 자기들만의 세계가 너무나 안정적이고 견고해서 그 틀에서 한발짝도 나오지 않으려고 애쓰며 자기들만의 권력과 세를 쌓고, 자신의 틀이 깨질까 그 틀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 뿐. 역사적 관점에서 보면 인류의 삶이 변할정도의 역사적 진보를 이뤄내지 못했다. 지금까지 역사의 혁명을 만든 것은, 배운자, 가진자들 중에서 자신이 영위하고 있던 틀을 조금씩 조금씩 넓히면서 세상은 변화시켰다. 갈릴레오가 그랬고 마르크스가 그랬고 아인슈타인이그랬다. 자신의 독창적인 사고와 이론을 만들어냄으로써 기존의 세상과 싸웠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내는데 일익을 담당하였다. 비록 그들의 세상이 보수화 되었다하더라도. 진보가 보수화되고 다시 보수화된 세계틀이 싫어 싸우면서 한층 더 진보화된 사회를 이룩하더란 말이다. 그 진보의 변화가 갈리레오처럼 긴 시간을 요구 할 때도 있었고 수 많은 사람들의 힘을 업어 단시간만에 이룩한 것도 있지만, 세계의 역사가 정체되어 있지 않고 한걸음씩 내딛게 만든 건 진보의 힘이 아닐까 싶다.

 

오른쪽에서 한걸음 더 오른쪽의 사고관과 역사관을 가진 인재를 뽑으려고 애쓰는 삼성.

 

한 세기에 한명 나올까 말까한 천재이자 당당히 사회주의자임을 외쳤던 아인슈타인은 과연 삼성에 취직할 수 있을까?

 

아마 오른쪽에 서 있는 삼성은 왼편에 서 있는 아인슈타인의 면접 서류와 역사관을 보고 빨갱이라 몰아부치며 천재인 그보다 휠씬 더 오른쪽에 서 있는 약간 덜 똑똑한 사람을 채용할 것이다. 앤디 루빈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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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늦은 저녁 애아빠 밥차려주고 스마트폰으로 기사 검색하다가, 변똥이 지난 12월에 여의도에서 밥 처묵고 밥값 삼백만원 떼먹으려고 서비스가 안 좋다니 종북식당이니 뭐니 별것도 아닌 것으로 트집 잡아 트위터로 쌈박질하는 기사 읽는데, 변똥과 함께 김지룡이란 사람도 언급되서 깜짝 놀랐다. 김지룡... 90년대 방송가를 누볐던, 내가 익히 알고 있는 그 김지룡인가 싶어 검색했더니, 맞다.  서울대83학번으로 잘 나가던 회사 때려치고 일본에 가 일본문화 공부하고 들어와 90년대 한때 삼방송가를 누볐던 그 문화평론가 그 김지룡! 동명이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90년대만 해도 이 사람의 일탈적 행보가 특히한 경우라서 주목받았는데(80,90년초반만해도 외국물 먹으러 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고 더군다나 일류대학, 일류기업 때려치고 그 나이에 공부한답시고 외국유학가는 경우는 정말 드문 케이스다 보니, 김지룡같이 편안한 자리 박차고 나온 사회적 일탈이 다른 사람들에게는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개인의 자유로움 혹은 자신만만한 반항같은 이미지로 비춰진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순간 방송에서 안 보이더만 수컷닷컴이란 애국보수 싸이트의 대표로 커밍아웃했단다.

 

까놓고 말하지만 지네들은 신문이나 방송에선 애국이니 보수니 하며 떠들어 되지만, 말이 보수지 수구꼴통들 집단 아닌가. 한 인터뷰에서 그는 1980년대만해도 여성들이 많이 억압받은 게 사실이지만, 2000년대 와서는 오히려 남자들이 차별을 받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정책이 여성위주로 흘러가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사회에 불만이 많은 남자들끼리 모여서 노는 사이트로서 수컷닷컴을 기획했다고 하는데,,,,본인도 <승부가 강한 딸>을 출간할 정도면 딸이 있다는 건데,  딸 가진 사람이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차별당하고 억압당하는 2000년 이전 시대로 회귀하고 싶어하는 노골적인 탐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을 보고 당황스럽다. 나이 반백년을 먹은 사람이 거꾸로 세상을, 시간을 바꾸려고 하다니.

 

게다가 반백년동안 보고 듣고 읽는 컨텐츠의 양이 보통사람들의 몇배였을 문화평론가란 사람이 2000년대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늘고 지위가 획득되자 아니꼬와서 동물들의 영역다툼인 양 자기 남성들의 권리를 위해 만든 영역이 수컷닷컴이라니.... 수 십년전 로버트 하인라인은 프라이데이를 캐릭터하고 80년대 초 제임스 카메론은 두 명의 여전사들(에일리이언과 터미네이터)을 만들어 냄으로써 여성의 과시적 지위를 한층 더 업그레이드한 것을 목격한 알만한 사람이 저렇게 발악하니 뭐가 뭔지 감이 안 잡힌다.

 

분명한 것은 우리 나라든 외국이든 현재의 여성의 지위는 남성의 지위 라인과 같지 않다. 과거는 뭐 말할 것도 없지만, 70년대 페미니스트들이 싸워 여성의 지위를 개선시키며 현재 진행중이지만, 여전히 2000년대를 살고 있는 현재도 차별적이란 말이다. 최근에 내가 읽고 있는 로렌스 크라우스는 여성의 사회적 지위에 대한, 재밌는 일화를 하나 소개 하고 있는데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채우고 있는 물질은 밝혀진 바에 의하면 25% 가량 수소와 헬륨으로 채워졌지만 아직도 우주의 70%는 어떤 물질이 채워졌는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우주론 학자들은 그 70% 물질을 밝히려고 노력한편 그 물질을 암흑 물질dark material이라고 부르는데 그 암흑물질을 밝혀지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 사람중에 베라루빈이라는 여성과학자가 있다.

 

루빈은 조지타운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는데, 대부분의 수업이 야간강좌였고 운전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그녀의 남편이 매일밤마다 자동차에서 그녀를 기다렸다고 한다. 원래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했으나 이 학교는 1975년까지 천문학과에 여학생을 받아주지 않았다. p66

 

루빈이 남편의 지지를 등에 업고 대학원을 다닌 시기는 아마 60년대 일것이다(미치오 카쿠에 의하면 루빈의 남편은 코넬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했고 그녀는 남편을 따라 코넬 대학으로 진학했다). 단지 작가는 프린스턴 대학이 75년까지 여학생을 받지 않았을 정도로 폐쇄적이고 남성중심적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미국조차 여성의 지위가 불평등했는가는 작년에 예일대 최초로 수학과 교수로 임명된 http://search.daum.net/search?w=tot&DA=YZRR&t__nil_searchbox=btn&sug=&sq=&o=&q=%EC%98%A4%ED%9D%AC 오희 교수의 예만 들어도 우리가 살고 있는 2000년대도 여성의 위치는 남성이 차지하는 파이의 반도 차지 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내가 보기엔 2000년대 이후 우리 사회가 여성에게 많은 기회와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정부에서 정책화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남/녀 평등사회로 가기위해선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한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남성위주의 사회고, 우리 사회적 관습이 바뀌지 않는 한 남성위주의 사회로 굴러갈 것이다. 대표적인 예가 제사. 제사의 주체가 아들이다 보니 남아선호사상은 뿌리 깊게 남아 있고 재산 상속이나 성장과정에서 딸과 아들 차별되어 성장한다. 이게 무슨 쌍팔년도 같은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결혼해보면 여전히 우리사회가 얼마나 남성위주의 사회인지 실감할 것이다.

 

그나마 좌파 정권 10년동안  여성정책에 있어서 지금까지 온갖 이득과 혜택을 다 받아온 남성들 발뒤꿈치정도의 취업기회와 사회적 지위의 혜택을 주고 있다고 저 지랄을 떠니, 남성들의 탐욕에 욕 나온다. 남/여가 평등했던 사회에서 여성을 위한 차별정책을 펼친거라면 일베나 수컴닷컴의 여성비하 발언들이나 명칭(김치년,된장년같은)들이 약간 수긍이 가지만, 본인들이 지금까지 100% 다 가졌던 파이를 여자들에게 한두 조각 나눠준다고 자기네들이 여성들에게 아주 큰 파이를 뺏긴 것처럼 착각들을 하니..그들의 탐욕이 가증스럽다.

 

예전에도 썼지만, 여성이 최초로 미국에서 참정권을 가지게 된 것이 1926년 백년도 안 됐고 본격적으로 참정권을 획득한 시기가 이차대전 이후 유럽대륙 프랑스에서 1946년(혹은 47년) 이후부터이다.  70년대 미국와 유럽의 권력화된 남성 위주의 정책과 피 터지게 싸운 페미니스트들 덕에 우리나라 좌파 정권이 콩고물로 내 준 작은 파이조각이다. 격렬하고 끈질기게 싸워 얻어 낸 서구의 페미니스트덕에 아주 짧은 시간에 우리 나라 여성이 이 땅위에서 여성으로서 사회적 자리 매김 할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남성들은 우리 나라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데 그 어떤 참여도나 기여도는 없었다는 말이다. 기여도 하지 않았는데 그 작은 파이마저 뺏을려고 정부의 정책이 여성위주의 정책이라든지 여성들만의 권리니 대접을 받는다느니, 여성부를 깍아내리고 여성 비하까지 하는 짓거리는 우리 나라 남자들이 얼마나 아들로서 아들로 대접받고 떠 받들고 살아왔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남녀 평등한 사회에서, 차별없는 사회에서 어느 한쪽의 성이 억압받거나 차별받는다고 발악해야 변똥이나 김지룡같은 사람들의 말이 정당화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여전히 여자로서 차별당하고 억압받은 사회에서 무슨 남성이 여성으로부터 차별 당하고 억압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녀 차별 없는 사회는 아직도 요원한 세상이구만. 아직도 아들은 금칠해서 키우고 딸은 똥칠해서 키운 줄 아는 세상에서 남성의 부르짖음은..... 개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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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라딘직원의 어이없는 업무 처리 방식
    from ▶◀ 2015-01-07 21:53 
    지금 너무 황당한 메일을 받아서 그러는데, 이게 가능해요? 저 지금 밖에서 밥 먹다가 메일 들여다보고 황당해서 스마트폰으로 올렸어요. 알라딘 담당자분, 제 개인정보를 수사기관에 주고 멜로 통보하는 거 너무 경우없지 않나요? 덧붙여서... 지금 제가 컴 들어와 글 첨부합니다. 알라딘 담당자님, 적어도 검찰이든 사이버 수사대든 경찰이든 법적으로 개인정보 요청이 합법적인 곳에서 요청이 들어왔다면, 제 정보 넘겨주기전에 저한테 전화하셨어야하는 게 수순 아닌가
 
 
2014-02-10 17: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2-11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지개모모 2014-02-18 19:02   좋아요 0 | URL
이럴 수가... 이제 <데스노트에 이름을 쓰면 살인죄일까?>는 제 위시리스트에서 내려갑니다;

기억의집 2014-02-21 08:07   좋아요 0 | URL
휴 그러게요. 저도 저런 사람인 줄 몰랐어요. 수구인줄 누가 알았겠어요. 딸도 있던데 저러고 싶을까 싶어요....

라로 2015-01-08 02:11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끝까지 싸우세요!!! 저도 조그만 힘이라도 보태겠어요!!!

icaru 2015-01-08 08:47   좋아요 0 | URL
아니 이 무슨 어이없는 경우가요,, 기억님 황당하시겠다~ 저도요!!! 조그만 힘일지라도, 기억님 지지합니다!!

paviana 2015-01-08 13:50   좋아요 0 | URL
이달의 당선작으로 뽑히실만큼 잘 쓰신 글인데....
명예훼손 무혐의 처리받으시면 무고죄로 고소하세요.

참 힘내세요 힘...
 

 아, 이 책 카드로 긁고 싶어 미치겠다.

그런데 선뜻 긁을 수 없는 만만치 않는 책값.

그리고  무이자 할부 되는 카드 하나 없는 지갑 사정.

요 일년간은 책을 안 사고 집에 쌓아둔 책을 읽었고,

신간은 외면한 채 그런대로 기존의 책을 읽어 치우는데 만족하며 살았는데, 며칠 전에 도서관에 갔다가 신간 코너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도서관 측에서 이 책 일곱권을 다 들여놨는지 아니면 신청자가 신청한 책들만 구입했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첫번째 파운데이션은 없고 두권인가 세권인가가 꽂혀있어, 집에 와 인터넷 검색해보니 전권이 다 출간되었다.

 

휴~ 사고 싶기는 한데 경제적인 압박감도 그렇고 저 일곱권을 과연 다 읽을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고, 한데 책쟁이들에겐 나름 책쟁이의 의리 비슷한 게 있다. 끽해야 몇권 팔리지도 않을 저 책을, 그것도 sf 소설 볼모지인 한국출판사에서 출간할 생각을 하고 작업 해준 출판사(휙 보니 황금가지더라) 직원분들과 기획하신 분들 생각하면 고마워하며 사 줘야 할 것 같은 의리감.

 

근데 말이다. 의리감도 의리감이만 내가 저 책을 사서 다 읽으면 나는 지구 위에서 저 책 다 읽은 몇 안되는 %안에 든다.  저 책을 다 읽는 희소가치와 자부심에 한번 도전해 볼까?

 

이래나 저래나 고민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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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알라딘 머그컵 받을려고 주문한 책자들 사이에 끼워온 북스피어의 찌라시 신문을 흝어보는데, 찌라시신문 맨 아랫단광고에 로버트 하인라인의 <달을 판 사나이>가 출간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수년전부터 이 단편의 명성을 알고 있었기에 읽어보고 싶었지만 구할 수 없었던 단편이고, 영어책은 판매중이지만 영어독해가 sf 소설을 읽을 수 있는 실력이 아닌지라..... 읽기를 포기하고 있었던 책이었다. 출간된 사실을 확인하고 인터넷에 들어가 몇몇 블로그를 검색해 보니 불새라는 일인 출판사에서 출간해서, 책의 교정이나 번역이 완벽한 상태는 아닌 듯 하다. 불만스런 독자의 그르렁거리는 리뷰에 눈에 확 들어온다. 그래도 이게 어디냐 싶다. 명성을 듣고 몇년을 기다린 단편인데.. 약간의 번역상 오류나 오탈쯤은 쿨하게 넘길 수 있다. 출간해 준 것만해도 감지덕지 하다.  

 

내가 꾸준히 관심갖고 읽은 sf 작가들은 로버트 하인라인, 레이 브래드버리, 아서 클라크와 어슐러 르귄등 몇몇 작가들이다. 나에게 sf소설의 매력은 현실에 대한 체제 전복이다. 그게 사회구조든, 권력이든, 과학 기술이든, 이야기자체의 전복이든 간에, 작가 자신들이 살았던 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소설적 배경이 아닌 그들이 만들어낸 혹은 꿈꾸는 사회구조에 대한 그들의 진보적인 탐구와 결합된 판타지 사회인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미래사회를 만들고 그 속에서 갈등을 이야기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절에 그들은 여전사를 만들어 내고, 인종차별이 당연한 시대에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말하고 새로운 사고를 가진 권력지형을 기득권의 권력으로 대체하고 고도의 테크놀로지를 향유한다. 50,60년대에 쓰여진 그들의 sf소설들을 읽으면서 새삼 느낀 것은 그들이 만들어 낸 미래사회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현실화 되었다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구조나 체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한 권의 sf소설만으로, 혹은 한 작가의 판타지가 미래에 어느 정도 진보라는 이름으로 실현된 21세기의 현실. 우리는 과거의  sf 소설가 판타지 속을 현실화하면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 나는 도서관에 가면 공상과학및 공상과학 소설이 꽂힌 서가로 곧바로 달려가곤 했다. 나는 로버트 하이라인의이 지은 공상과학소설 <로켓 추진선 갈flf레오> 에 푹 빠졌다. 10대 소년들이 사막에서 로켓을 만든 다음 달을 향해 출발하는 내용이었다......

 

기술과 모험이 혼합된 공상과학 소설은 사춘기 소년들에게 자연스런 매력을 가진다. 레이크 사이드의 초기 시절, 주말 아침이면 나는 침대에 누워 에이스 더블에 출간한 장르소설들을 탐독했다. 그리고 곧 더 세련된 작가들의 작품을 읽게 되었다. 아서 클라고와 아이작 아시모프 그리고 뛰어난 문장가이자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던 잭 밴스가 그들이었다. 나는 특히 하인라인의 수준 높은 공상과학 소설을 좋아했다. ...

 

집을 떠난 지 25년 후 나는 책한권을 찾기 위해 옛날 방으로 올라갔다. 그런데 전부 사라진 게 아닌가! 엄마는 다 팔았버렸다고 말했다..... 엄마를 용서하기가 어려웠지만 오래된 사진 한장이 분위기를 살렸다. 사진을 확대해 옛날에 소장했던 책들의 책등에 쓰인 제목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는 그 책들을 추적해 거의 한권도 빠짐없이 다시 갖췄다. 공상과학소설은 제2의 우주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했고 가장 엉뚱한 아이디어의 실현가능성 및 그 방안에 골몰하게 했다.....

 

하지만 다른 개념들, 예컨대 화상회의나 통신위성은 미래의 모습에 대한 시사회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어느 경우든 그 페이퍼백 도서들은 기술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p326~326

 

 

애플의 스티븐 위즈니악같은 인물이었던 마이크로 소프트사의 폴 앨런은 50,60년대의 sf소설이 어떻게 현재의 테크놀로지로 구현했는지 짦게 설명하고 있는데, 사실 기술뿐만 아니라 권력의 이동이나 사회적 기득권의  변화도 어느 정도는 예언했다고 할 수 있다. 

 

며칠 전에 레이 브래드버리의 <일러스트레이트드맨>의 역지사지를 읽다가 우연히 이 작품 출간 연도를 살펴본 적이 있다. 1951년. 하인라인의 <달을 판 사나이>도 51년 출간되었기에 신기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단편 역지사지 속에 담겨진 인종차별의 부당함을 짦은 글로 표현해 낸 레이 브래드버리의 시대적 통찰력에 놀라웠다. 역사적 진보란, 한사람의 성찰과 그의 성찰에 동조하면서 적지 않은 사람들에 의해 천천히 사회적 변화를 이루어 내는 것. 그게 진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인라인은 마초시대였던 그 시대에도 여성과 남성을 거의 동일시 했으니 뭐 말할 것도 없고.

 

여하튼, 로버트 하인라인의 작품은 과학자들 이론과학자든 실험과학자들이건 간에 많은 영향을 끼친 듯하다. 종종 과학책을 읽다보면 그의 작품 속 글귀가 인용된 것을 많이 볼 수 있고, 반면에 미국 스릴러 작가들의 책을 읽다보면 하인라인과 같은 동시대 작가인 레이 브래드버리에 대한 존경심과 경외감을 볼 수 있다. 특히나 50,60년대의 소년시대를 보낸 작가들, 그들의 존경심과 경외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들의 브래드버리에 대한 열광은 자신들의 소년적 감성과 닮은 브래드버리의 시적인 감수성때문일까. 그시대를 공유하지 않은 나로선 알 수 없지만 레이 브래드버리 작품에 베이스로 깔린 허무감 위로 세워진 미래사회에 대한 불안감과 환상이 그들에게 미지의 들뜬 기분을 순진한 소년들에게 선사한 것때문이 아닐까.  반면에 하인라인의 작품은 남성적이고 너무 진보적이어서 인문적 감수성에는 레이 브래드버리보단 덜 한 것 같다. 그들 문화에 살아본 적도 체험한 적도 없어 이런 나의 추측이 틀린수 있지만, 하인라인과 브래드버리의 소설들을 읽어본 나로선  그들의 뚜렷한 작품적 경향으로 봐선 어느 정도 편이 갈린 게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들뿐만 아니라 sf소설가들이 새로운 지평의 시대를 여는 게 기여한 것은 분명하고 우리는 그들의 반쯤 열린 판타지속에 살고 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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