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에잇, 남편도 오늘 월요일부터 한잔하고 들어온다고 했으니, 며칠 전에 읽은 디턴에 관해 생각한 짦은 글이나 올려본다.
며칠 전 포털 다음에서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디턴의 위대한 탈출이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왜곡되었나하는 글을 우연히 접했고, 아주 흥미롭게 읽었다. 글의 요지는 이랬다. 디턴은 경제 성장의 한 결과로써 부의 불평등이 일어났다고 주장했지, 절대로 불평등이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출판사측에서는 그의 이러한 경제적 관점을, 아주 있는 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불평등은 어떻게 성장을 촉진시키나,란 부제까지 달며 불평등이 경제 성장을 주도한 주요한 경제요인인 것처럼 왜곡하여 출판한 것이다. 결국 저 책의 저자는 디턴이 아니고, 번역자와 편집자의 공동합작품이자, 한국의 경제 비젼책이 되었다.
디턴의 왜곡된 저서는 김공회 한겨례연구위원의 글(http://socialmaterial.net/?p=33921)로 인해 밝혀졌는데, 나는 이 발각 과정을 보면서,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이, 편집자야 디턴의 저서를 처음부터 왜곡할 의도가 있다손쳐도(본인은 아니라도 우기지만), 도대체 번역가들은 왜 이 저서를 편집자의 의도에 맞춰 왜곡, 오역할 생각을 했을까? 정말 저렇에 오역을 하고도 아무도 모르고 지나치길 바랬던 것일까? 저자의 주장이나 관점과는 다른 오역을 하고도 떡하니 본인들 이름을 저서에 번역가들이라고 새길 수 있을까? 정말 그들은 이 책이 오역투성이라고 지적할 사람이 대한민국에 단 한사람도 없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을까?
서울에서 파리까지 지리학적으로 8천킬로미터지만, 이멜로 송수신했을 땐 일초면 서신이 오갈 수 있는 거리다. 빛의 속도가 299,792,458km 이므로, 지구내 모든 대륙, 심지어 지구 밖 우주 정거장까지(우주정거장이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라고 함)는 빛의 속도 안에 있는 거리므로, 즉각적인 송수신이 가능한 세상이 21세기다. 덴버에 사는 내 친구와 실시간 카톡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고 깔깔거리며 수다 떨 수 있는, 아주 편편하고(플랫하고) 전기(일렉트로릭)적인 세계를 살고 있다는 말이다.
빛의 속도로 모든 정보와 지식이 하루에도 수천만건의 지적자료가 오가는 지구에 살면서, IT 강국이라고 떠들어 대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중에서, 저 오류를 정말 모를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대한민국에 자신들의 오역을 알아 챌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김광회한겨레 연구위원이 오역을 지적을 했고, 위대한 탈출의 번역가들은 평생 발해석을 한 오역가들이란 꼬리표가 평생 따라다닌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 말을 우리나라 말로 번역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문화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글을 정확하게 이해 못 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한두문장 정도의 틀린 번역이라면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이 책의 경우는 너무 광범위하게 왜곡된 경우이다. 이 책을 소화해낼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고 본인들 능력밖의 번역작업이라면 다른 사람을 맡겼어야 한다.
이게 아니라면, 번역가들 또한 이 책의 왜곡에 한 몫 거둔 셈이 된 것이다. 이 책의 번역가들은 오역가들로 남느냐 아니면 웹툰 제목처럼 내부자들인지 둘 중 하나란 결론이 나온다.
가뜩이나 작은 한국출판시장에서 평생 짐이 될 오역가들이란 꼬리표를 얻은 그들이 이 사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전공분야도 아니였던 것 같은데....
내가 가장 안타까운 것은, 전공분야도 아닌 번역가들이 저 책을 번역했고, 오역과 왜곡된 책이라고 드러나면서, 정말 책이 좋아 번역을 직업으로 삼는 좋은 번역가들에게 누가 되었다는 점이다. 나는 일류대를 나온 사람이 번역을 잘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문장도 타고 나는 사람들이 있다. 일류대 아니여도 지방대를 나왔던, 전문대를 나왔던, 미친듯이 글이 좋아 번역을 직업으로 삼고 평생직으로 삼으려는 번역가들에게 저들의 오역은 커다란 타격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상대성이론을 읽기 전에, 아니 구매전에 이유경 번역가의 이력을 보고 살까 고민 했었다. 전공자가 아니였고, 과학이론을 처음 접했던 번역가였던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구매해서 읽었다. 과학이론을 처음 접했을 번역가였을텐데, 매끄럽게 잘 되었다. 감수도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번역가의 노력이 없었더라면 아마 무슨말인지 모를 글이, 아주 단단하게 여며져 나왔다.
제노사이드도 마찬가지, 일류대를 나오지 않았지만, 숨 막힐듯한 이야기의 진행을 번역가가 놓치지 않고 유연하게 번역했다. 문장도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을 정도로, 글을 많이 읽은 번역가의 모습이었다. 이런 가장자리의 번역가들이 우리 출판계에 많이 배출되어 출판사나 독자가 믿고 읽을 수 있는 출판문화가 형성되고 있는 마당에, 그리고 일반 독자들에게 번역가의 이력의 편견을 깨고 지평이 넓혀지고 있는 순간에, 자본과 합세한 오역가들이 나온 것이다.
뭐라 말할 수 없이, 착잡하다. 번역가들도 본인들의 입장에 대해 한마디라도 해야하는 것 아닌가?
2. 대부분의 있는 나라에서는 어떡하면 국민들이 더 평등하게 잘 살 있을까? 근무 시간을 단축해 더 많은 사람을 고용해볼까? 아니면 시급을 올려볼까? 이런 저런 고민을 하건만, 우리 나란 어떡하면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을까? 어떡하면 부자들을 더 부자로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이런 고민으로 정책을 만드는 듯 하다. 누가 만든 말인지 모르겠지만, 세계적인 경제 정책과 반대로 가는 우리 나라가 헬조선이란 말이 딱 어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