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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조목조목 비판하는 이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라는 책을 읽으면서 처음 든 생각은, 왜 우리가 일본의 제국주의 시대와 화해를 해야하는가?였다.

 

저자가 제목에 화해를 끄집어 낸 것은 박유하의 전작 <화해>와 연관해서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제시대의 역사는 알아도, 일본 제국주의 시대와 화해할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 일본이 무릎 끓고 용서를 빌어도 용서를 해 줄지 말지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지식인이 왜 먼저 나서서 화해니 뭐니 설레발을 치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2.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를 읽지 않는 상태에서 이런 글은 참 의미없지만,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읽기 전만 해도 자발적 매춘이란 말에 의문이 들지 않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자발적 매춘부란 말에 자꾸 위화감이 든다.  

 

며칠 전에 미즈넷을 읽는데, 이런 게시글이 있었다. 자기가 신혼인데, 자기 남편이 부부관계할 때마다 전남친과의 잠자리를 상세하게 말해 달라고 그래야 성적으로 흥분된다고, 남편의 계속되는 요구에 글쓴이가 말해도 되는지 아니면 절대 그런 적 없다고 잡아떼야할지, 조언을 달라는 글에, 베스트 댓글이 전 남자인데요, 절대 말하지 마세요. 말하는 순간, 그 장면이 상상돼서 님 괴롭힐 겁니다, 였다. 이 베플만이 아니고 베플 세개가 다 절대 말해선 안 된다는 조언이었고, 대부분의 댓글이 절대 안된다가 주류를 이루었다. 간혹 남편이 스와핑을 목적으로 말해달라고 하는 것 같은데, 뭐 어떠냐는 댓글이 있긴 있었다(이 댓글은 내가 더 충격이었..).

 

이 게시글과 댓글을 읽는데,  성적으로 어느 정도 개방되었다는 21세기에도 한국 남자의 대부분이 여성의 성을 대하는 자세가 이렇듯 고지식한데, 과연 철저하게 유교전통의 가부장적인 40년대에 자발적으로 전쟁통에 몸 팔겠다는 소녀들이 있었을까?  과연 "전차금"을 받고 딸에게 너는 어차피 출가외인이니 몸이나 팔아 집에 보탬이 되거라, 라고 하면서 보내주는 부모가 조선땅에 20~30만명이나 존재했었을까? 아니 아니 적게 잡으면 2~3만이라도 하니깐,  최소한의 2,3만명의 부모가 자신의 딸을 매춘부로 팔아 넘기는 일이 가능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매춘이란 직업이 뭐 그리 좋은 직업이라고 조선땅 2-3만(혹은 20~30만)의 위안부 부모가 얼씨구나 좋다,고 딸을 매춘이란 직업을 알선했겠냐는 것이다.

 

게다가 박유하는 <제국의 위안부>에서 매춘도 직업이라고 취업취업하는데, 그 시절에 여자들에게 직업이란 게 어떤 의미였고, 과연 몸을 파는 게 직업에 속해 있었냐하는 것이다. 1940년대에 여자의 취업이 가능했을려나. 미국이 2차 세계대전으로 공장에서 일하는 남자 노동자들의 입대로 인해 여성 노동자들이 취업을 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내가 즐겨보던 미드 <콜드 케이스>의 여러 에피소드를 보면 60년대 초중반 여성의  사회적, 성적 지위조차 전반적으로 상당히 보수적이어서, 끽해야 여성이 일할 수 있는 곳은 비서나 전문적인 타자수정도였고, 성적으로도 자유분방한 것이 아니고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는 것이 성적 욕망의 해결이었던 같던데.

 

우리 나라 40년대 부모들은 자신의 딸을 취업시키기 위해, 아니 돈 벌러 오라고 피도 눈물도 없이 매춘부로 전락시킬 수 있나. 이 정도면 성적으로 상당히 진보된 역사적  한 획인데, 어찌 우리는 21세기에 미즈넷의 댓글은 거의 안된다라고 조언했을까.우리들 부모 세대 전인 40년대에 21세기의 네덜란드처럼 매춘을 인정했는데 말이다. 이 정도면 박유하의 자발적 매춘부 주장은 정말 웃기는 21세기 개그 아닌가.

 

일본정부나 박유하의 말장난에 짜증스럽긴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일본 제국주의와 화해할 이유는 전혀 없다,라는 생각만 굳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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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21 0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21 15: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7-21 13:46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가 일본을 이길 수 없는 게 뭔지 알 것도 같네요.
그 미즈넷의 예를 보니 정말 우리나라 남자들 겉으로만
잘난 척하지 잠자리는 영 그런가 봅니다.
자기 와이프도 만족시킬 자신도 없는 인간이 그건 알아 뭐하겠으며
장가는 왜 갔는지 모르겠네요. 남들이 가니까 나도 가 보자 뭐
그런 빤한 거 같습니다. 헐~

기억의집 2016-07-21 15:30   좋아요 0 | URL
읽어보면 좀 그렇긴 하더라구요. 아니면 여자가 순결한지 아닌지 직접 물어보기 그래서 저런 식으로 저러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미친 놈이죠. 결혼까지 했으면 묻어두고 결혼 후 순결이 중요한거지. 저거 알아서 뭐하나 싶더라구요.

일본은 뭐랄까. 제가 미야베 미유키의 에도시절의 소설을 다 읽었잖아요. 그 소설 읽어보면 일본은 신분제가 굉장히 다져져 있고 전문화가 잘 된 나라인데.....굉장히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이 받아요. 고인 물은 썩는다고 하는데, 딱 일본이 그런 스탈이더라구요. 아마 기업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요. 쟤네들 기업이 시대 흐름을 못 타는 이유가 있더라구요.

서니데이 2016-07-22 15:55   좋아요 0 | URL
박유하의 이 책은 아직 재판 중인 것 같은데 저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어요.
기억의집님 좋은하루되세요.^^
 

하루키는 외국에 자신의 작품을 알리기 위해 자신의 번역가나 에이젼시와 함께 어떤 작업을 했는지,  최근작 <직업가로서의 소설가>의  한 챕터에서 쓴 바 있다. 하루키의 작품상 성격이 그다지 안달복달하지 않을 것 같은, 욕심 없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 글 읽으면서 하루키도 야망이 그것도 세계 정복의 야망같은 것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뭐 자신의 작품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으니 저런 야망도 생기는 거 지, 싶다.  실제 그의 작품 영역 작업은 일본내한  미국유학생에 의해, 하루키의 일본작품을 읽고 좋아 자신이 영어로 번역했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타진해 와 하루키의 첫 영역 작품이 만들어졌고, 후에 하버드 교수 제이 루빈와 함께 본격적으로 자신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하게 되면서 그의 작품이 미국내 혹은 영어권에서 널리 알려지게 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그는 세계적인 소설가가 되었는데, 우리로서의 하루키 작품이 어느 정도의 인기를 끌고 있는지 가늠하기 힘들다. 한 지인의 말에 의하면 외국에서 하루키 작품은 오프 서점의 중앙에 위치할 정도로 외국에서 그의 작품 인기는 여느 베스트셀러 작가 못지 않을 정도라 한다. 심지어 이런 저런 외국책 읽을 때마다 하루키의 작품이 언급될 때가 있는 거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것 같다. 

 

하루키의 해외진출 과정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다른 한편으로 좀 놀라운 것은 일본문학의 번역서가 생각보다 많고, 감성이나 시스템면에서 서로 다를 것 같은데, 의외로 외국 리뷰어나 저자들에게 언급되는 작가가 하루키 말고 오가와 요코여서 두 번 놀랜다.

 

오가와 요코는 나도 좋아하는 작가라 한국에 발간된 그녀의 작품을 다 읽었는데, 그녀의 작품중 약지의 표본인가의 번역가 후기에 오가와 요코가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미국내 독자나 작가 또는 유명한 응용수학자가 그녀의 작품을 언급할만큼 그녀의 작품이 해외에서 인정 받고 있는 모양이다.

 

특히나 x의 즐거움을 쓴 스트븐 스트로가츠는 미국에서 유명한 응용수학자(옥스포드 수학과  김민형교수가 머릿말 소개글에 의하면 스트로가츠 교수는 응용수학의 대가라고 할 정도로)인데, 자신의 뉴욕타임즈 칼럼을 모아 책으로 출판한 바로 저 x의 즐거움에서, 오가와 요코의 박사가 사랑한 수식을 아예 한 챕터 수학의 예를 들어가며 할애한다. 뉴욕타임즈에 거기다 유명한 응용수학자가 그녀의 작품을 예를 들어 설명한다고 생각해 보라. 나도 저 책의 저 챕터 읽으면서 놀래고 또 놀랬다. 일본 문학의 위상이 이 정도였어!!!!! 이러면서.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것은 우리 문학의 번역 문제가 아닐까 싶다. 박상익이 자신의 저서 번역은 반역인가에서 문제 제기했듯이 우리의 번역 시스템이 조악해서 학위에서조차 번역논문은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다. 외국학생이 우리의 작품을 번역해서 학위 인정을 받을 경우 우리의 작품이 세계에 조금이나마 널리 알릴 수 있는데, 그걸 막는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 학생이 외국의 작품을 한국어로 번역하거나 영어같은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것조차 인정되지 않는다라고 한다. 외국의 경우, 이 두가지 경우가 다 인정되서 생각보다 번역서가 다양하다는 것이다. 번역서가 다양하다는 건 그만큼 지식 콘텐츠 양이 많이 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본문학이 미국내 다양하게 소개되는 것이 재미도 재미지만, 이런 이유도 한 몫 하는 건 아닐까. 한 작품을 번역하는 건 그 나라의 전방위적 시스템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하는 것이기에, 우리도 번역 문학도 학위로 인정되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참고로 저 x의 즐거움을 읽고 오가와 요코의 작품을 아마존에서 검색한 적이 있는데, 언제가 아마존에서 이런 멜이 온 적이 있었다.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 이나 가와카미 히로미의 선생님의 가방이 영역으로 번역되어 있으니 나보고 사라고 말이다. 일본의 만화만 인기가 있는 줄 알았더니, 소설도 그 못지 않게 서구 독서인들에겐 인기가 있구나 싶다. 재미가 없다면 저렇게 번역서가 있을리가 없는데,  국가적 차원에서 번역을 장려한 것인지 아니면 하루키처럼 유학생이나 에이젼시에 의한 번역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우리도 한강의 채식주의자 번역서로 그칠 게 아니라 좀 더 다양한 채널을 통한 번역 지원이 있어야한다고 생각한다. 정부에서는 번역지원금도 깍을려고 한다는데, 그 많은 세금 걷어다 어디에서 쓰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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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6-07-13 18:45   좋아요 0 | URL
제대로 된 번역을 하는 것에 가치를 주는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양적으로도 압도할만큼 많이. 교수들이 번역하는 것을 직접 책쓰는 것만큼 점수를 준다면 훨씬 좋아질 것도 같은데. 근데 번역지원금을 깎다니! 아 정말.... 돈을 어디다 쌓아두고 있나요...

기억의집 2016-07-13 18:55   좋아요 0 | URL
저도 번역서의 접근을 다양하게 바꿔야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야 콘텐츠의 층이 두꺼워지니깐요. 저는 울 아들이 이제 고 이라 대학 준비하는데, 대학 가봐도 별 것 없는데 싶어 닥달하지 않아요. 교수한테 배울 게 없어 자퇴하겠다는 학생들이 의외로 많더라구요. 교수마저 본인들이 지식의 콘텐츠를 못 갖추고 있는데,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죠, 교수가 능력이 안 되면 저런 학위라도 인정해주면 학교 다니는 의미라도 있을 것 같아요.

번역진흥원이 번역지원금 깍는다는 말을 지난 번 프랑스 도서페스티벌인가 거기 가신 분이 페북에 올리셨더라구요. 그 많은 세금이 강바닥에 조선소에 들어가나 봅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9 09:52   좋아요 0 | URL
글쎄말입니다. 정확한 지적을 하신 것 같습니다.
채식주의자 때 보인 지식인, 특히 문학판에서 노는 지식인의 태도를 보면 경악을..
외국인이 한국 소설을 번역하는 것이야말로 완벽하다는 논리 앞에서
속으로 미친새끼들이란 생각을했습니다.
그게 어떻게 대안입니까.
한국인이 한국 소설을 외국어로 번역할 때 오는 오류와
외국인이 한국 소설을 자국어로 번역할 때 오는 오류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둘 다 장점이 있고 둘 다 단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걸 쌩으로 무시하더군요..

기억의집 2016-07-19 19:26   좋아요 0 | URL
일단 번역의 오류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간혹 우리 지식인들이 갇혀 사는 게 학벌주의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정치를 못해도 너무 못해요. 닭정권 들어서 뭔가 융성하는 걸 못 보겠어요. 삼성핸드폰 빼고. 밀어주고 지원해주고 해야 되는데 지원금들이 옆으로 새는 건지. 부정부패나 부리 너무 심합니다. 투명사회가 되어야 문화든 정치든 경제든 융성하는데. 물론 정치의 부패뿐만 아니라 문단의 시스템도 바꿔야하지만요. 차라리 미국처럼 출판사에게 자기 원고를 보내던가, 조중동 신춘문예나 국문학과 교수들의 카르텔이 작가들을 망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며칠 전에 딸애랑 삼청동 갔다가 풍문여고 앞에서 찍은 플래카드이다. 한국 문학에 대해 잘 모르고, 관심도 없고 한강 작가에 대해서도 몇번 이름은 들어보았지만, 내 성향의 작가가 아니여서 부커맨상인지 맨부커상인지 받을 때도, 검색할 맘조차 들지 않았다(게다가  평소 나는 맨부커상 받은 이언 맥큐언이나 줄리아 반즈같은 작가의 소설들 읽고 그닥 매력을 못 느껴서 맨부커상 수상작에 대한 회의감을 가지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때 한국소설이라면 평론가의 글까지 찾아 읽고, 조정래작가의 태백산맥을 읽으며 눈물을 주루룩 흘리던 때가 있었는데, 이십년이 지난 현재 나는 왜 한국문학을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는 것일까?

 

늦은 감은 있지만, 한국문학에 대한 외면 이유를 깨달은 것은, 스텔라님이 쓴  정지돈 소설의 리뷰글의 첫 문장 덕이었다.  스텔라님의 첫 문장, "지금부터 이십년전 전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이 나왔을 때, 앞으로 우리나라 소설가들은 이렇게 소설을 쓰게 될 것이라고 했다. 즉 소설을 쓰기 위해 발로 뛰어 다니지 않고 그렇게 책상에 앉아 텍스트를 보고 상상력을 더해 글을 쓸 거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지돈의 소설집을 보니 그 예견에서 한 벌 더 진화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기묘하게도 난 이인화의 작품을 둘러싸고 문학의 미래를 정의한 저 이유 때문에 한국소설은 더 이상 읽지 않는다. 머리속에서 오로지 텍스트를 짜깁기하는, 이야기나 사건의 전개가 없는, 관념적이고 머리속에서만 지지고 볶고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는 허구에 짜증이 나서 독서의 의미는 커녕 즐거움조차 찾을 수 없기에, 일본이나 서구문학쪽으로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작가들이 사회 현실은 제쳐두고 자기 내면의 일어난 일이나 주변만 묘사하거나 나열하다 보니, 이게 무슨 소설인지 일기인지, 본인들은 실험적 소설 운운하는데, 현실밖으로 나오지 않는 이야기에 독자가 뭔 매력을 느낄 수 있냐 말이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독자인 우리는 이게 뭐지???하는 불만을 표출하는 사이, 작가들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후장사실주의라로 정의내리고 있다. 사실주의라면 뭔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거 아닌가!

 

젊은 작가들이 모여 후장사실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왜 나는 우리 작가들의 작품속에서 사회현실을 보기보다는, 우리와 비슷한 사회현상을 가진 일본 사회파 소설에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일까? 왜 우리는 부동산 투기의 몰락을 말할 때, 신용카드의 무분별한 소비 형태를 논할 때 미유베 미유키의 이유화차를 언급해야되고,  신자유주의 시대의  하류 인생의 철저한 파멸을 이야기할 때,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을 읽으며 공감해야하는가. 다른 나라의 소설나부랭이 읽으면서, 그들이 묘사하는 삶을고통스러워하며 공감하며 사회의 비리와 모순을 정면으로 바라보아야 하는가. 이 작품들은 미스터리 형식을 빌려오고 있고 발간된지 이 십년이 넘었어도, 소설 속 현실주의는 지금 한국에선 아직도 리얼하게 유효하다. 그 어떤 한국 작가도 자신의 작품에 저만큼이라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는 게 한국문학의 현실이다.

 

일본 작가들이 현실에 대한 순발력과 통찰력이 그 누구보다도 뛰어나서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적극적인 시선과 참여 의지가 이야기로 구체화된 것이 아닐까. 어떤 면에선 사회면 하단 기사로나 접할 수 있는 소재의 이슈를 그들은 집요하게 미스터리 형식으로 치환하며, 우리와 비슷한 사회의 민낯과 자화상을 과감하게 추적해 나간다.

 

적어도 사실주의든 후장사실주의를 표방했다면, 뭔가 사회적인 문제를 이야기속으로  끄집어내야하는 게 맞다. 당신네들의 잠자리 사실주의 말고. 우리 작가들이 얼마나 사회적인 문제에 둔감하고 이야기를 못 만들어내는지는, 몇 달 전에 장정일이 시사인에서한 글을 연상시킨다. 그는 위안부 문제에 있어서 위안부의 강제연행에 의문을 제기한다.

 

 <귀향>보다 일주일 앞서 <동주>가 개봉되었다. 윤동주는 왜 헌병에게 끌려간 소녀들 시를 쓰지 않았나? 시인 한용운과 이상화는 ? 소설가 채민식과 염상섭은? 작품 발표는 못 하더라도 일기나 비망록정도는 남겨 놓을 수 있지 않는가? 이광수와 서정주는 적게는 2만에서 3만명, 많게는 20만명이나 되는 조선인 처녀들이 총칼에 끌려가는 것을 뻔히 알고서도 친일파가 되었더란 말인가? 해방직후 아무도 이 좋은 주제와 소재를 취하지 않았던 진짜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나처럼 편향적이라면 더욱 외면받으리라는 것도 잘안다....한국인들은 일본을 압박하면서 책임을 묻을 수단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강제연행을 포기하지 못한다.

나는 이 글을 읽고 처음엔 이해하지 못했다. 박유하의 위안부 강제연행 부인에 동조하는 글이기때문에, 몇 번을 다시 읽고 또 읽었는지 모른다. 이게 정말 한때 기득권에 조소를 보냈던 시를 썼던 시인이자 소설가였던, 장정일이 글이 맞는가, 하고 말이다. 이 해괴망측한 글이 진실로 그가 쓴 것인가하고 되내이고 되내였다.

 

장정일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위안부, 식민지 시대의 독립 저항 운동, 독립군 이야기등이 넘쳐나야 하는데, 그 어떤 소설가도 위의 주제나 소재를 쓰지 않았다. 심지어 남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수십만명의 젊은 청년 이야기로 꾸민 소설은 아예 존재하지 않아 우리 나라에서는 위안부도, 독립운동가도, 심지어 태평양 전쟁에 끌려간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소설가들이 글을 쓰지 않아서. 일기나 비망록으로 남기지 않아서. 이광수, 염상섭, 채만식, 이상, 윤동주 같은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아서, 문제 제기를 하지 않아서 우리의 역사는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f렸다.

 

나는 우리 엄마에게 어린 시절부터 외할머니가 일본놈들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숨었다란,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란 세대이다. 게다가 일본인이 아니고 일본놈이 얼마나 잔인하지, 세대에서 세대로 전달된 증언은 어린시절 옛날 이야기마냥 들었던 세대이기도 하다. 아마 장정일이 시골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팔구십 넘는 노인분들에게 녹음 마이크 들이대고 식민지 시절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그들은 아마 한보따리 풀고도 남을 증언을 할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소설가들이 위안부문제에 어떤 글도 남기지 않았다고 위안부 강제연행에 의문을 표한다.

 

예나 지금이나 소설가들은 자신의 안위에만 관심 있지 않나. 기생치마폭에서 살던 이상이나 김동리 문학이 우리의 근대문학이라고 버젓히 교과서에 실리는 나라 아니던가. 현재 우리와 살고 있는 동시대의 작가들이나 젊은 작가들의 작품 소재는 사회 문제는 커녕 연애나 잠자리 리얼리즘이 주류가 되었다. 그들이 지금 소설가로서의 임무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적어도 리얼리즘을 표방할만큼의 배짱을 가진 소설가들이라면, 현실 문제에 어느 정도 직면해서 무엇이 우리 사회를 파괴하고 있는지 정도는 순수형태든 미스터리 형식이든 판타지 형식이든지 간에 자신이 생각했던 뭔가를 보여줬어야 한다. 

 

예나 지금이나 현실 문제에 관심을이 없다보니, 그들은 자신의 작품속에 시대의 현실 전부를 담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택한 시대상의 소재는 그들의 안위와 직무유기일 뿐이었다.

 

태평양 전쟁에 참여해서 수십만명의 젊은이들이 태평양 바다 한 가운데 죽은 이야기가 오십년이 넘어서 한수산 작가에 의해 나왔다. 이광수도 채만식도 염상섭도 그 어떤 소설가도 쓰지 못한 이야기를, 정확하게 칠십년 만에 이야기 형태로 나온 것이다.

 

진작에 나왔어야 할 이야기가 칠십년이 넘어서 이제서야 나온 것이다. 우리는 너무나 늦게 그 시절를 이야기 하고 있다.왜 우리는 우리 사회의 모순과 부조리를 작가들이 흡수하지 못한 체, 역사를 되짚어 바로 잡으려 할 때마다 부정당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이야기와 기록이 없는 나라여서 그런가. 아니면 여전히 친일파들이 득세해서 그런가.

 

소설은 개인의 이야기를, 사회의 부조리를, 악을,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할 필요가 있다. 그게 사실주의든 후장 사실주의든 카테고리와 상관없이. 이제 자신들의 이야기는 내려놓을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너무나 지겹도록 자신들의 이야기가 아닌 세상 이야기를 우리 소설가들에게 듣고 싶다.

 

덧: 우리문학의 덧은 고급/저급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오는 것일 것이다. 김진명같은 작가에 대한 작가론이 아직 나오지 않는 것은 우리 문학의 주제와 소재의 폭이 한정되어 있다는 말이고 평론가들의 잣대에 젊은 작가들이 놀아난다는 것이다. 평론가들을 무시하고 본인들이 바라보는 사회를 그렸으면 한다. 그들이 만들어낸 세계의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건 평론가가 아니고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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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4:25   좋아요 0 | URL
기본이 탄탄하고 나서 실험적으로 가면 되는데
기본이 안 된 상태에서 실험적으로 가니 재미가 없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기초가 튼튼하고 나서 구성을 해야 하는데
그림 그리는 실력이 없어서 아예 구성으로 시작하는 화가 같다고나 할까요..

기억의집 2016-07-13 15:05   좋아요 0 | URL
기본기도 없는데 헛바람만 잔뜩 들어서 그럴 거예요. 게다가 젊은애들이 왜 그리 평론가나 문단의 눈치를 보는지. 아직도 조중동 신춘문예 있나요? 등단도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그들 입맛에 맞는 소설 써 대느냐고 저런 현실적인 문제들은 다 사라지고 실험입네하는 자의식 가득한 작품만 난무하는 상황이니...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4:57   좋아요 0 | URL
젊은 작가들은 대중을 향해 글을 쓰지 않고 평론가를 위해 글을 쓴다고 봅니다.
작가를 키우는 것은 독자가 아니라
이제는 평론가가 작가를 키우죠.
평론가 눈에 들어야 작가로 성공할 수 있으니
평론가가 평론하기 좋은 글을 씁니다.
소설이 상징 해석 하기 좋은 것일 수록
평론가는 그런 소설을 평론하는 경향이 있죠.
쉽게 말해서 떡밥을 주는 소설가를 평론가는 좋아한다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

기억의집 2016-07-13 15:04   좋아요 0 | URL
결국은 독자들은 외면할대로 외면하니 한국문학이 엄청 쪼그라들었죠. 이상문학상이 한때 권위있는 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그 누구 관심 가지고 있지 않잖아요. 출판사들이 주는 문학상이 기능을 제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도 다들 외면하니. 평론가들도 본인들의 시야를 넓힐 필요가 있어요. 언제까지 순수문학임네하고 묶어둘 건지. 어휴... 진짜. 장정일이나 고종석 망가지는 거 봐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6:45   좋아요 0 | URL
고종석은 자유주의자입네 하다가 어느 순간 꼰대가 된 느낌..
요즘은 하는 짓마다 밉상, 진상.. 트윗질하면서 본성이 드러난 경우라고나 할까요..

2016-07-13 14: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7-13 14: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tella.K 2016-07-13 15:02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정지돈이 과연 독자들과 사회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 봐요.
영화에선 위안부가 간혹 다루어지고 있는데
왜 문학계에서는 이렇다할 작품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구요.
민주화에 대한 책은 그렇게 많이 나왔으면서...

전 이런 페이퍼 너무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까지 작가들은 평론가와 자신의 문학을 지도해 준
사수나 심지어 심사위원들 눈치 보느라 정작 독자가 원하는 소설이 뭔지를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발 작가가 독자를 생각하는 시대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기억의집 2016-07-13 14:56   좋아요 0 | URL
실제로 정신대는 여명의 눈동자로 위안부 문제는 할머니의 고백으로 알게 된 거잖아요. 우리의 소설가들은 저런 문제 안 다뤄요. 여명의 눈동자는 순수문학이 아니라고 쳐주지도 않았잖아요. 우리가 살아오면서 겪는 사회문제들을 다룬 작가들이 거의 없다고 봅니다. 민주화도 예전에 외국문학에 임철우씬가 임철수씬가가 단편으로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설을 썼고 최윤의 저기 저 한점 꽃잎이 지고 정도지, 김영하씨가 노동문제를 좀 다뤘지. 그렇게 많지 않아요. 그나마 조정래 선생님, 황석영선생님 정도가 현실 문제를 다루죠. 도대체 무엇이 젊은 소설가들을 엉터리로 만들었을까요? 예나 지금이나 잠자리문제나 다룰 뿐.... 안타까워요.

파트라슈 2016-07-13 16:42   좋아요 0 | URL
채식주의자 읽어 봤는데 재미도 없고 별 감흥도 없고 뭐 그렇데요.. 시간낭비라는 생각이 듦..
그 전부터 한강 씨 작품엔 관심 없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듯합니다. 천명관씨의 <고래>같은 걸출한 이야기, 서사가 왜 안나오는 걸까요? 이런 소설이 가장 기본에 충실한 소설다운 소설아닌가요? ^^

곰곰생각하는발 2016-07-13 16:46   좋아요 0 | URL
고래 좋죠. 이런 이야기만으로 몰입하게 만드는 소설을 얼마만에 만나는 것인지....

기억의집 2016-07-13 17:17   좋아요 0 | URL
한강의 작품 리뷰 잠깐 보니 다들 평가가 생각보다 별로더라구요. 한강씨가 좀 더 좋은 작품을 쓰기를 바랄 뿐입니다. 지금 상태에선.

하도 한국문학에 대한 편견이 생기다보니 천명관의 고래는 아직도 안 읽었어요. 읽어봐야지 하면서도.. 이야기가 걸출하다니 함 읽어봐야겠습니다^^

시이소오 2016-07-13 16:49   좋아요 0 | URL
안그래도 저도 기억의 집님과 똑같은 말을 하고 싶었어요. 이승만 민간인 학살로 백만명이 억울하게 죽었는데
민간인 학살을 소재로 한 소설은 고작 몇 십권에 불과해요. 그러고보니 저 역시 아직 안 읽은 책이 태반이라는 점에서 자아비판을 하게되네요.

한국 문학은 구체적 인간의 현실과 너무동떨어진게 아닌가 싶어요
.조정래 같은 작가가 수천명이 있었어도 오늘날 민중이 개돼지 취급을 받았을까요.

그런면에서 저는 한강 소설에 대한
과도한 관심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이미 썼어야 했으나 쓰여지지 않은 소설이 수 천편이에요.

저부터 읽어야 했으나 읽지 않은 책이 너무 많네요. ^^;


기억의집 2016-07-13 17:21   좋아요 0 | URL
아까 시이소오님 강준만의 40년대의 리뷰 읽으면서...정말 암담하더라구요. 진짜 우리의 현실이 저렇구나. 여윤형이 무슨 일을 했는지 김구가 어떤 인물인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무엇일까 하고 말입니다. 우리 나라 소설가들이 얼마나 본인 위주의 이야기만 오징어 씹듯 씹었냐하면 근대 문학이든 현대문학이든 다들 자기들 이야기밖에 없어요. 역사소설도 그다지 없는 나라가 우리 나라 입니다. 이승만이 저렇게 많은 사람을 학살해도 모르니깐 이승만 찬양하는 거잖아요. 어휴... 진짜. 제가 오죽했으면 어제 스텔라님 리뷰 읽고 열 받아 이렇게 썼겠어요. 정말 우리 나라 작가들 문제 많아요. 시이소오님은 워낙 책을 많이 읽어서... 좀 쉬엄쉬엄 읽으셔도 될 것 같은데요^^

지나 2016-07-13 23:05   좋아요 0 | URL
저랑 한강님이랑 동문이었네요

기억의집 2016-07-14 11:53   좋아요 0 | URL
줄리님도 풍문여고 나오셨군요. 간만에 삼청동에 갈 일이 있어 간 거였는데 저렇게 플랭카드 걸렸더라구요. 한강씨는 프로필 보면 무난한 학창시절과 무난한 등단 무난한 삶을 살고 있는 것 같긴 해요^^

나비선영 2016-07-16 15:30   좋아요 0 | URL
필요한 책을 찾다보면 일본 작가가 쓴 글이 많아서 읽으면서도 좀 의문이긴 했는데 식견이 좁다보니 이런생각은 못했네요 저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건 아니란 생각이 드는건 변화가 곧 오리라 좋게 생각해 보네요

기억의집 2016-07-17 06:5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저도 이 페이퍼 쓴 이유가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고 다양한 소재나 주제가 우리 한국문학에도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거든요. 게다가 장정일이 시사인에나 저런 말을 해서... 그래서 쓴 거였어요.

달을사랑한시인 2016-07-16 21:09   좋아요 0 | URL
트집잡는 것 같아서 좀 그렇습니다만, 플랭카드가 아니라 플래카드입니다~

윤우람 2016-07-17 01:52   좋아요 0 | URL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야말로 기억의집님께서 우리 문학에서 기대하시는 그런 작품 아닐까 싶네요.

기억의집 2016-07-17 07:10   좋아요 0 | URL
모든 작가가 저렇게 쓴다는 게 아니였어요. 한강씨가 소년이 온다에서 민주화 운동에 대해 썼다는 것도 알고, 저는 한창훈 선생님 작품도 즐겨 읽습니다. 다만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형식으로 쓰지 못해서... 우리 문단이 순수문학에 대한 아집이 강해서 미야베 미유키처럼 이유나 화차같은 사회적 문제를 쟝르형식 취했다면 아마 속물이라고 했을 겁니다. 지난 번에 미야베 미유키의 사라진 성의 왕국 읽었는데, 솔직히 별로였는데 판타지 형식을 빌린 아동학대 문제 였어요.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나오길 바래서 이 페이퍼 작성 한 겁니다. 실제로 문단에서 공지영이나 김진명 같은 잘 팔리는 소설가에 대한 작품론이 나오고 활발하게 평가해줘야하는데 잘 안 되거든요. 평론가들이나 소설가들이나 다들 직무유기란 거죠. 저희 현대사가 굴곡이 많아서 소재가 많습니다. 그리고 현대사나 현대의 모습을 본인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소설로 쓸 만 한데 안 쓴다고 하는 거죠. 있긴 있지만 작품 수가 적고...그러니 장정일이 저런 말이 나오는 거죠. 소설가들이 쓰지 않았으니 그런 일은 진짜 일어난 게 맞느냐란 식으로요....

거리산책자 2016-07-19 23:44   좋아요 0 | URL
지나가는 사람입니다. 문학에 다양한 빛깔이 존재하므로 문학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위 본문에 ˝작가들은 본인들의 이야기를 후장사실주의라로 정의내리고 있다. 사실주의라면 뭔가를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거 아닌가!˝에 대해서 보도자료를 덧붙이자면 이러합니다. http://www.hankookilbo.com/v/1612313143a34a4dabeb38279fe41cca

˝8인은 서면 인터뷰에서 “후장사실주의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소설에 등장하는 문예사조 ‘내장(內裝)사실주의’를 패러디한 것이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 의미도 없다”며 “모인 사람들끼리 통일된 이념이나 공유하는 철학은 없고 그저 서로를 한눈에 알아”보고 뜻을 같이 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의미를 채워 넣지 않은 단어는 그 자체로 집단의 성격을 암시한다. 역사상 수많은 전위그룹이 의미 없는 ‘미친 짓’을 통해 기존의 세계를 비웃은 것처럼, 후장사실주의도 진지한 비판과 그에 따른 방향 제시보다는 익살스런 패러디를 통해 기성 질서를 조롱하거나 모른 척 한다. 그러나 백민석 작가와 8인의 대화 속에서 나온 “문학하는 애들이 길들여졌다” “모든 출판사가 (…) 서사 위주의 소설에만 상을 주고 히트작을 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 같은 발언에는 이들이 기성 문단에 대해 갖고 있는 문제의식이 직ㆍ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이들은 서면 인터뷰에서 “확실히 체감되는 건 한국문학이라는 용어에 대해 반응해온 독자들의 퓨즈가 완전히 꺼져버렸다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기성 문단의 무엇을 부정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후장사실주의는 아무 것도 부정하지 않고 또는 모든 것을 부정하지만, 사람들이 기존의 것들을 부정하거나 비웃는 데 이 말을 사용한다면 굳이 반대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므로 제가 이해하기에는 정지돈 부류(?)가 쓰는 `후장 사실주의`는 `사실주의`를 어떤 식으로든 계승하거나 표방한다기보다 조롱하는 뜻에 가깝다는 것으로-실은 어떤 식으로든 정의하기 어렵게 비워내려는 의지가 강하나-여겨집니다(이 보도자료나 여기에 속해 있는 작가들의 여러 작품을 읽어봐도 그렇고요)...



기억의집 2016-07-20 07:43   좋아요 0 | URL
저도 책 읽은 사람으로서 후장사실주의를 검색해보고 썼어야했는데, 스텔라님 리뷰 읽고 그동안 한국문학에 대한 불만을 즉흥적으로 쓰다보니 잘 모르는 상태에서 글을 썼네요. 후장사실주의라는 게 그런 의미였군요. 본인들도 한국문학에 대한 독자에 대한 외면을 잘 알고 있는데, 말과 다르게 독자들과는 괴리감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도 문학의 다양한 빛깔을 선호하는 사람으로서 사실 수장 사실주의가 뭔지 모르지만 이런 무슨 주의를 표방하고 활동하는 것에 부정적이지 않지만, 좀 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고 있는 상태있는,,,, 그런 이야기들 자신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사회가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는지, 그리고 우리가 나아갈 길이 어떤 방향인지 작가의 몫으로 제시해도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한국문학의 현실을 알고 만든 후장사실주의라는 의미가 쉽게 와 닿지는 않네요.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지 않고 집에 굴러 다니던 타블렛 넥서스에 카톡이나 페북 깔아 들여다 봤는데, 언제부터인지 저 놈의 넥서스가 맛이 가, 볼 게 없어 책을 열심히 읽어대고 있다.

 

지난 며칠 동안 열심히 읽고 방출할 책들인데, 호네부의 리커시블은 아침에 알라딘 개인중고에 올렸더니 십분도 안 되서 팔렸다. 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중고 판매는 생각보다 솔솔하다. 전에 읽었던 일본 미스터리 소설은 한달도 안 돼 거진 다 팔리고 이사카 고타로의 남은 날은 전부 휴가 한권 남아있다. 이사카 고타로의 반전이 매력적인 책인데,, 몰라주네, 싶다.

 

이제부터 읽고 난 책은 방출할 생각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읽고 괜찮은 미스터리나 sf는 가지고 있으려고 했는데, 어느 날 아들애가 자긴 미스터리쪽은 선호하지 않는다(부모영향제로)는 말을 듣고 나서는, 더 이상 가지고 있을 필요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서 무한증식하는 게 딱 하나. 책들이라.. 게다가 아들애나 딸애가 만화책 사 들이고 있어 감당이 안 되고 있다. 우리집 수납장들은 그릇이나 장식품, 옷가지들이 아니고 죄다 책들.

 

미미 여사의 사라진 왕국의 성을 팔려다 원서표지 때문에 주춤하고 거리고 있다. 책을 팔자니 원서표지가 여기저기 굴려다닐텐데, 일본 원서 표지를 내 준 북스피어의 성의를 봐서라도 가지고 있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하라 료의 몇 권 되지도 않는 사와자키 탐정(개인적으로 필립 말로보다 난 사와자키 탐정이 더 좋음) 시리즈는 가지고 있고 싶긴 한데, 다시 들춰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고민이 된다. 내 성향은 한번 읽은 책은 신간에 밀려 재독이 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값어치 나갈 때 팔아 버릴까 하는 유혹이 자꾸 밀려 온다.

 

1, 리커시블 / 요네자와 호네부의 야경 단편 중 석류 읽고 열받아 이 작가 책은 다시 읽지 않으리라 맘 먹었는데, 또 인연이 닿아 읽게 되었다. 재밌지만 역시나 결말은 씁쓸하고, 호네부의 인간에 대한 신뢰는 바닥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

 

2. 직업가로의 소설가 / 자신의 소설가로서의 성공담. 하지만 하루키답게 자기 계발류의 성공담이라기 보다는 자신이 소설가가 된 계기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하게 된 경로까지의 체험담을 담담하게 쓰고 있다. 내가 하루키를 좋아하는 건 그의 안달복달하지 않는 세계관때문인 듯.

 

3. 봄에 나는 없었다 /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 작품을 읽을 때마다 언제나 캐릭터에 대한 부재가 아쉬웠는데, 이 작품을 통해서 미스터리 소설과 순수소설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알게 해 준 작품.

 

미스터리 소설은 캐릭터가 두드러질 경우 사건 전개에 있어서 범인이 확연히 들어날 수 있기 때문에 캐릭터 위주로 전개 되지 않는다. 패트리샤 하이스미스 같은 범죄물 작가는 리플리 증후군이란 명칭을 만들어낼 정도로 확연한 캐릭터에 의거한 작품을 쓰지만 아가사는 캐릭터가 너무 약해서 이 작가의 약점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 소설로 일거에 그런 의심은 사라졌다.

 

4. 제레미 다이아몬드의 나와 세계 / 이 책을 읽으면 다이아몬드 교수가 얼마나 한국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나는 번역자인 이주헌씨가 한국으로 바꾼 거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한국의 예가 자주 등장하고 이 작은 책에서 인류학자인 작가가 세계를 보는 모습, 휴머니스트로서의 모습이 보여주었다. 이 책 읽기 전에 올리버 색슨의 색맹의 섬을 읽고 미국이 얼마나 태평양의 섬들을 망쳐놨는지, 색슨은 따스한 시선으로 그 섬들의 여행을 묘사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폭력성을 드러냈는데, 이 책도 그와 비슷한 시선으로 섬들의 사는 사람들을 묘사 한다.

 

5.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하인리히의 장점은 정말 몰입이 잘 되고 잘 읽힌다. 이 책은 마션의 오리지널 같음. 역자 후기를 읽으면 이 책은 90년대 중반에 은하수를 넘어서란 제목으로으로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아작에서 나온 sf 소설 타인들 속에서는 우주복 있음. 출장 가능 이란 제목이 아닌 에전에 출간된 이름으로 나온다. 문체도 그렇고 48년도 작품 같지 않다. 마션 만큼은 아니지만 21세기에도 통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품.

 

6. 당신은 언제나 옳다 / 이 작가의 가치관과는 전혀 맞지 않는다. 제목의 당신이란 표현이 재밌다. 독자의 입장에선 작가인 바탈리가 언제나 옳고 바탈리의 입장에선 상대방(독자)이 언제나 옳다. 읽다보면 절로 이 생각이 들어 이중적인 표현인가 하고 고개가 가우뚱 거린다.

 

7. 하나와 앨리스 살인사건 / 오츠이치가 미쳤나 할  정도로 엄청 순화된 작품이다. 이 작가가 이런 작품도 쓸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잔인한 상상력이 한단계가 아닌 여러단계를 낮춘 학원 미스터리물. 하루도 안 되서 다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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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2016-06-23 07:59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아이들이 책을 물려받아서 읽을 마음이 없다면, 집에 건사할 까닭이나 뜻이 모두 사라지는구나 싶어요 ^^;;; 그리고, 아이들은 또 아이들 나름대로 집안에 책을 잔뜩 불리는군요 ^^;;;;

기억의집 2016-06-25 11:08   좋아요 0 | URL
참 취향이란 문제에 부딪히넹요. 부모자식간에도이렇게 다르니 존중해야겠지요... 숲노래님처럼 도서관을 만들지 못하면 읽고 파는 게 낫지요. 읽고 다시 안 읽을엔요. 애들이 일본라노벨을 읽으면서 각기 다른 길을 가는거 같아요^^
 

어제 아들애가 라이트노벨인 이 멋진 세상에 폭염을!을 주문해 달라길래, 알라딘에서 주문하려고 들어왔다가 서재의 한켠인 책연표에서 이 책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책과 함께 어제가 그의 사망일이라는 글을 보았다. 갑자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저 평전을 보자니, 참,  착잡해서... 한때 나는 자서전이나 평전을 열심히 읽은 적이 있었는데, 저 프랭크 로이드 평전을 끝으로, 더 이상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지 않는다. 

 

벽돌만큼이나 두꺼웠던 평전들, 예를 들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만큼이나 두꺼웠던 트뤼포나 캐서린 그레이엄같은 평전을 읽고 난 후의 완독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한 권의 평전을 다 읽었다는 건, 한 인물의 전체 인생사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다채로운, 풍속, 정치, 문화, 시대 정신 등등을 알 수 있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체험할 수 있는 유용함을 가지고 있기에.

 

 그러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이후, 평전이나 자서전을 읽지 않게 된 계기가, 글이란 게 작가의 취사선택으로 한 사람의 진실을 보여준다는 것, 작가의 취사선택으로 한 인간을 재단한 것이라면 굳이 벽돌같은 두꺼운 책보다는 위키피디아를 통해 간략하게 한 인물의 업적이나 성과를 알아도 무방하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평전에는 씌여있지 않는 한 에피소드가 있다. 그가 인종차별주의자이고 유부녀와 바람을 피워 그 여자와 그녀의 아이들과 사는 동안, 그들을 돌봐준 흑인 집사에 대한 모욕과 부당한 처사로 인해, 그 흑인 집사가 라이트가 집에 없는 동안, 그의  부인과 아이들을 다 살해한 사건이었다. 저 평전에는 이 사건에 대한 언급이 단 한 줄도 없다. 심지어 이 사실을 알고 서점에 가서 다른 작가가 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평전을 흝어봤지만, 이 사실을 언급한 책은 단 한권도 없었다.

 

그 때가 한 칠팔년 전인가. 그때 오프 서점의 평전 코너에 가서 두 세권의 라이트 평전을 한참동안 흝어보았지만, 이 가십성의 글은 어느 작가의 책(다 벽돌처럼 두꺼웠는데도 말이다)에도 선택되지 못 한 채, 한 인간을 그럴싸한 가난한 역경을 이겨내고 자신만이 스탈을 구축한 건축가로 포장되어 있었다.

 

어제 이런 프랭크 라이트에 대한 씁쓸한 기억을 떠올리며, 서재에 나왔는데, 오늘 이 책 읽는데, 이런 대목이 있었다.

 

부디 이 글을 회고록으로 생각해 달라, 작가가 거짓말을 한 회고록, 실은 사람들을 믿게 만들었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인종, 성별, 계급, 신조였음이 밝혀졌기 때문에 경악스럽게도 나중에 불신을 당하는 그런 회고록 중 하나로 생각해 달라. 내겐 완전히 반대되는 문제가 있다. 나는 내 말이 더 정상적으로 들리지 않게 하려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 p15

 

이 대목 읽는데, 세상의 모든 평전 작가들이 조 윌트의 이 대목을 새겨 들길 바라며,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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