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 5년 동안, 우리가 함께 지낸 시간은 그절반쯤 이었을 것이다. 그 절반은 절반 이상의 밤을, 나나 그녀 가운데 하나 혹은 둘 다 밤을 새워 일하거나 공부해야 했다.
우리는 성공을 위해서 참으로 열심히 살았다.
모든 기쁨과 쾌락을 일단 유보해두고, 그것들은 나중에 더 크게 왕창 한꺼번에 누리기로 하고
애니웨이. 미국 생활 5년 만에 그녀는 변호사가 되었고 나는 신문사 지사장이 되었다. 현지 교포사회에서는 젊은 부부의 성공사례로 일컬어지기도 했다
방 하나짜리 셋집에서 벗어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삼 층짜리 새 집을 지어 이사한 한 달 뒤에, 그녀와 나는 결혼생활의 실패를 공식적으로 인정해야만 했다. 바꾸어 말하자면, 이혼에 성공했다.
그때그때의 작은 기쁨과 행복을 무시해 버린 대가로
우리는 이들의 미래를 미리 안다.
목숨처럼 사랑했던 큰 아들 유진은 26세의 나이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혼수상태에 빠져 19일 만에 세상을 떠나고
이어령 전 장관의 맏딸 이민아 변호사는 2009년 목사 안수를 받고 2012년 병으로 세상을 떠난다
연약한 우리가 미래를 미리 알 수 없다는 것은 어쩌면 축복일지도
단지 지금 이 순간 진실되게 최선을 다할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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