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이 영혼을 잠식할 때

오늘날 우리가 처한 사회적 상황에서의 불안은 불안으로 그치지 않고 우울이나 또 다른 부정적 감정으로 발전해 타인이나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한 공격성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여러분은 여러 가지 감정 중 어떤 감정을 가장 부정적으로 생각하는가?

많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대표적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이다. 학자들의 연구 결과 역시 인간이 가장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최대한 느끼고 싶어 하지 않는 감정 중 하나가 불확실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말한다. 나는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걸까? 이렇게 열심히 산다고 해서 성공이 보장될까? 이러한 불확실함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든다

(4년 전 우리가 코로나와 대면했을 때의 느낌이 생각난다. 코로나라는 병이 대체 어떤 것인지도 모르고 앞으로 어떻게 사회가 변화될지 불확실한 상황이라 모두들 공포감에 휩싸이던 그 때)


이제 범죄는 우리의 삶 가까이까지 다가와 있다. 우리 모두가 함께 대처하지 않는다면 누구라도 피해 대상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리고 충분이 선량한 우리 대다수는 ‘악‘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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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그가 인용한 헌법을 읽으며 가슴이 뛰었다
그것은 이 몇 문장을 얻기위해 뿌려진 피를 의식하기 때문이다

- 우리가 바라는 공정한 지옥

대학입시에 필요한 ‘수학 능력‘ 시험 점수를 잘 받은 개인으로서는 수학 능력이 증명되었다고 주장하겠지만,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그리 단순하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좋은 대학에서 좋은 교수에게 배울 기회는 한정된 자원이다. 이 자원을 가장 능력 있는 사람에게 배분해야 사회적으로도 최선의 결과물을 기대할 수 있다.

대치동에서 부유한 부모의 전폭적 지원하에 최고의 사교육을 받으며 공부에만 전념한 학생이 받은 점수와 지방에서 부모 지원 없이 근로장학생으로 일하며 공교육만으로 공부한 학생이 받은 점수를 똑같이 평가할 수 있을까?

F.스콧 피츠제럴드는 그의 자전적 에세이에서 ˝최고의 지성이란 두 가지 상반된 생각을 동시에 품으면서도 여전히 제대로 작용하는 능력이다˝라고 썼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누구 좋으라고, 노력, 능력, 경쟁, 공정, 모두 중요한 가치다. 하지만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한 가지 가치만 추구할 수 없다. 공정 역시 결국에는 공존을 의한 수단 중의 하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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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의 마지막 메모들을 그대로 묶은 책 [성공과 좌절]

노무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쓴 글이다
준 회고록 성격의 글로서 목차를 포함, 대강의 구성까지만 완성하고 서거했다
(최종 수정 : 2009년 5월 20일 오후 5시 5분)

회고록은 한참 후에 쓰려고 했다.
아직 인생을 정리하기에는 너무 이르고, 아직 하고 싶은 일이 많이 남아 있었다. 봉하마을 가꾸기, 시민광장, 정책연구......
그래서 ‘우공이산‘을 표구하여 붙여놓고 이런저런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장애가 생겼다. 일이 돌아가지 않는다.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뿐인 것 같다.
왜 써야 할까?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다. 일은 삶 그 자체이다.


나의 실패를 진보의 좌절, 민주주의의 좌절이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그런 사고는 역사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갈 길을 가야한다. 몽땅 덮어씌우려는 태도도 옳은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을 과감하게 버리지 못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자세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할 일이 있고, 역사는 자기의 길이 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인간적 좌절,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늘의 민주주의는 지금 작두위에 위태롭게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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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는 법정 벽에 기대 울며, 어떤 슬픔은 무한대에 가까워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나눠도 결코 작아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도 공감과 연대로 극복할 수 있고, 결국 더 나은 지점에 이를 거라는 믿음도 접었다. 세상에는 감당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이 존재하고, 그것들은 우리의 삶을 완전히 붕괴시키고 황폐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동학대에 있어서만큼은 더 나은 세상 자체를 꿈꾸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만을 바랐다.



˝나는 절벽 가장 자리에서 뛰어내렸지만 마지막 순간에 뭔가가 팔을 뼏쳐 나를, 허공에 걸린 나를 붙잡아주었다. 나는 그것이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사랑이야말로 추락을 멈출 수 있는, 중력의 법칙을 부정할 만큼 강력한 단 한 가지 것이다.˝

폴 오스터의 글처럼, 아무리 생각해봐도 타인에 대한 사랑 외에는 이처럼 극단적인 절망과 고통에 맞설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인간애로 서로 깍지 낀 두 손만이 최후이자 최선의 안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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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가해자와 피해자를 보면서 ‘악은 왜 항상 선보다 강할까‘ 라는 궁금증이 생겼어요

그리고 ‘에밀 시오랑‘의 [독설의 팡세]를 보며 깨달았죠. 시오랑이 단테의 3부작 (지옥. 연옥. 천국)을 언급하며 지옥에 대해 보고서 만큼이나 정확하다고 표현하거든요

악은 욕망이 아주 강해서 자신의 생각을 어떻게든 현실로 옮깁니다

반면 선은 추상적이고 모호하죠. 그래서 유약합니다. 결국 선 역시 아무리 미미해도 구체적으로 발현되어야 힘을 얻는다고 생각해요

- 박주영 판사 인터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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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2-06-29 17: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결국에 가서는 악한 욕망이
선해지고자 하는 욕망을 이
긴다는 말일까요...

씁쓸해지네요.

나와같다면 2022-06-30 18:49   좋아요 1 | URL
그래서 박주영 판사는 피고인을 볼 때마다 그들의 보잘 것 없음과 악성에 놀라면서도 그들 내면에 숨겨진 추상적이고 모호한 선의 흔적을 발견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