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영화를 볼 때 특정 부분에 깊게 ‘꽂힌다.‘
그리고 이 이유와 의미에 대해 생각한다.
그 ‘꽂힌‘ 부분을 통해 나 자신을 알 수 있고,
그 부분에 나의 세계관이 압축되어 있다고 믿는다.˝

또렷이 떠오르는 한 장면, 온몸을 들썩이며 울게 만든 대사.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배우의 얼굴, 내 인생의 영화와 나를 망치러 온 나의 드라마

우울과 중력 <그래비티> - 우울증이라는 병

배가 똑바로 나아가려면 바닥짐은 실어야 하듯, 우리에겐 늘 어느 정도의 근심이나 슬픔, 결핍이 펄요하다. - 아루투어 쇼펜하우어

<그래비티>는 ‘내 인생 치유 영화‘다.
내 오랜 지병이 해석되고 다스려지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 볼 용기는 없다. 치유 과정의 고통을 두 번 겪고 싶지는 않다

<그래비티>에서 라이언 스톤(샌드라 블럭)은 아이를 잃은 여성이다. 사랑하는 딸이 죽었다. 어찌 우울하지 않겠는가. 어찌 비통하지 않겠는가. 삶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 애도의 시간은 지극히 정상이다

대개의 질병은 원인은 다양하지만 증상은 비슷하다. 그래서 증상을 통해 병명을 진단할 수 있다. 우울증은 그렇지 않다. 증상 자체가 다양하다. 극단적으로 반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의사도, 환자도 진단이 어렵다. 불면으로 고통받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과다 수면으로 욕창이 생기는 사람도 있다. 폭식증이 있는가 하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병을 인지하기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 치료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지구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서로 끌어당기는 힘 때문이다. 이 힘은 어디에나 있다. 그래서 만유인력이라고 부른다. 그래비티 gravity, 중력은 말 그대로 무거운 힘이다. 물체의 무게는 이 힘을 가르킨다. 만유인력과 지구 자전에 의한 원심력이 더해져 우리가 지표면에 의지해 살 수 있다

우울증 환자의 호소 ˝지구가 나를 붙잡지 않아요.˝ 지구의 의지. 중력의 법칙에서 버려진 이들이 우울증 환자다. 우울증의 고통에 비하면 ‘우울‘ 이라는 표현은 우아하다. 우울증 환자의 삶은 스펙터클하고 격렬하다. 격렬한 고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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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영우 신드롬‘
드라마의 거센 인기몰이뿐만 아니라 드라마로 촉발 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차별. 능력주의. 공정과 역차별 담론 등 사회적 쟁점의 첨예함을 포괄적으로 드러냈다

문지원 작가는 다음과 같은 ‘감사 인사‘를 수차례 반복했다

˝만약에 우리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드는게 있다면, 그건 우리 드라마라기보다는 이 드라마를 계기로 쏟아져
나오는 여러 이야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드라마 대본을 쓴 작가이자 사회 구성원의 한 사람으로서, 그 이야기들을 겸허하게 경청하고 있습니다.˝

드라마에 목소리를 보탠 모든 시민에게 건네는 말이었다

<우영우>는 사회적 약자를 재현할 때의 성실함과 윤리적 태도의 소중함을 알아봐주는 시청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보여줬다

2022년의 <우영우>가 이전 드라마들보다 딱 한 뼘만큼 성장해 큰 사랑을 받은 것처럼, 여기에서 또 한 뼘 나아간 드라마를 곧 다시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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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학문은 사회가 잘 돌아가게 하고 일이 잘 되도록 하는 게 그 본연의 역할이다. 그러나 매우 이상한 학문이 있다. 잘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줄곧 시비를 걸어대는

왜 그렇게 잘 돌아가는 거요? 그렇게 잘 돌아가서야 쓰겠소? 그토록 일이 잘되는 데는 필시 무슨 문제가 있을거요. 이런 이상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며 마치 훼방을 놓는 것 같은 학문

이것이 바로 인문학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무엇이 옳은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등 인간 존재의 근원에 천착하는 학문이다 보니 광대무변하다

인간은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할 때 행복대신 불행을 택하기도 한다. 원초적 본능만 갖춘 바이러스와는 갈래를 달리하는 인간만의 힘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는 슬픔과 비극을 외면하고 있다. 조금 더 자세히 말하자면 슬픔과 비극을 가진 사람과 거리를 두려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것이며 상대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안타까움이 무엇인지, 어떤 대화를 나누어야 할지에 대한 사려가 실종되고 있는 것이다

그 배려와 진지함이 사라진 공간을 매끄럽고 과시적인 대화들이 메우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에는 철저하게 손익의 계산을 거친 단어들이 동원되고 있다. 과시와 자랑은 넘치되 당신을 돕지는 않겠다는 신호가 분명히 담긴 대화 속에서 사람들은 그 어떤 진지함도 상실한 채 질투와 미움을 간신히 가린 경계선의 대화를 잔뜩 교환한다

진지한 삶은 언제나 인간의 본질, 바로 슬픔과 비극 위에 존재한다. 누군가와 사랑과 우정이 담긴 진정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면 즐거운 내용이 아니라 우울한 내용의 대화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상대는 어떤 어려움을 걲고 있는지 진지하게 묻는 것이다

˝요즘 혹시 힘든 일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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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름이 끼쳤다
윤 교수가 그리고 구치소 안에서 저주를 퍼붓던 대상인 백 교수가 10중 추돌 사고의 유일한 사망자라니....
만약 윤 교수가 배 교수도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수사기관에 밝혔다면 그는 구속되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배 교수는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윤 교수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동안 말을 잊지 못했다

노자의 <도덕경>에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라는 구절이 있다. ‘하늘의 그물은 굉장히 크고 넓어서 엇핏 봐서는 성긴 듯하지만 선한 자에게 선을 주고 악한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일은 조금도 빠뜨리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가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세상은 촘촘한 그물로 서로 역여 있고 누군가의 행위와 염원은 그 그물망을 타고 다른 사람들에게 좋거나 나쁜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 지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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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이며 그 사람의 진심이다. 사람의 진심에 집중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격한 인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는 이들이 감정의 극한에 외롭게 서 있을 때, 그들의 삶에 공감해 주는 단 한 사람을 만나느냐 그러지 못하느냐에 따라 그들 인생의 명암이 달라지는 것을 수없이 목격했다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에게 상대는 진심을 보여주지 않는다

‘사는 게 무엇인가‘ 라는 해묵은 질문에 대해 만 개의 답을 내릴 수 있겠지만
그 답중 하나가 이거임에는 분명하다
우리는 천 가지의 슬픔이 있어도 한 가지의 기쁨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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