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 아니라 정치적 선택이다. 인간의 변화는 진저리를 동반한다. 독서에는 반드시 몸의 변화가 따른다. 가벼운 바람도 있고 통곡할 때도 있다. 어쨌거나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여성들이 여성학 책을 읽을 때가 대표적인 경우다

- 진저리를 쳤다 <베니스에서 죽다> 정찬


가장 신비로운 바둑의 세계는 복기(復棋)다. 프로 기사들은 대국이 끝난 직후 복기를 둔다. ˝보이지 않는 창칼˝이 오간 상태. 망신창이가 된 몸을 이끌고 취재진의 플래시 세례 속에서 다시 배우는 것이다.
˝프로 대국의 복기는 대단히 중요하다. 주요 국면의 수법과 반면 운영, 심지어 전략의 발상까지도 되짚어 분석, 검토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승자와 패자에게 모두 진일보하는 계기가 된다. 복기는 패자에게 상처를 헤집는 것과 같은 고통을 주지만 진정한 프로라면 복기를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복기를 주도한다. 복기는 대국 전체를 되돌아보는 반성의 시간이며, 유일하게 패자가 승자보다 더 많은 것을 거둘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 복기 <이창호의 부득탐승> 이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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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이 법무부장관에 지명된 2019년 8월 9일부터 장관직을 사퇴한 10월 14일까지, 67일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곳곳에 흩어져 있는 기억의 조각들을 찾아 퍼즐을 맞춰보고자 합니다

이제야 우리는 ‘그때, 무슨일이 있었던가? 질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단지 ‘조국‘이라는 한 사람에서 끝나는 일이 아님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는 ‘조국사태‘에 대한 판단이 아닙니다
언론과 검찰 권력들이 덧씌운 프레임 그리고 지워버린 질문과 방향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영화는 그것을 위해 2019년 8월 부터 10월 까지를 복기하고자 합니다˝
<그대가 조국> 이승준 감독


오동진(영화평론가)-우리안의 광기. 우리안의 파시즘

다큐 <그대가 조국>은 조국 사건을 둘러싼 진실공방을 보여주려 한 작품만은 아니다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보다 이 다큐는 우리 시대가 만들어낸 집단의 광기를 보여주고 기록하려 한다.
그 광기가 작게는 한 개인과 한 가족을 어떻게 망가뜨렸으며, 크게는 사회와 국가 전체를 돌이킬 수 없는 거짓의 나락으로 빠뜨렸는지 그려낸다. 집단의 광기는 곧 파시즘이다.
우리는 우리안의 파시즘을 지난 3년간 뼈져리게 경험한 셈이다.
그 파시즘에 경도됐든 그렇지 않났든 우리 모두는 지난 3년에 대한 책임감을 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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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고와 굶주림에 시달리다 숨을 거둔
故 최고은 작가의 마지막 남긴 쪽지가 가끔 목에 걸린 것처럼 생각난다

˝사모님, 안녕하세요. 1층 방입니다. 죄송해서 몇 번을 망설였는데... 저 쌀이나 김치를 조금만 더 얻을 수 없을까요... 번번이 정말 죄송합니다. 2월 중하순에는 밀린 돈들을 받을 수 있을것 같아서 전기세 꼭 정산해 드릴 수 있게 하겠습니다.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항상 도와주셔서 정말 면목 없고 죄송하고... 감사합니다.˝


우리에겐 서로가 서로를 구원해줄 전능한 힘 같은 건 없지만, 적어도 비참하게 만들지 않을 힘 정도는 가지고 있다

이웃을 향한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되는 길을 모색합니다


시대의 비극으로부터 일어나 회복으로 이끄는 힘은 세련되고 거창한 말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과격한 우격다짐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런 거창하고 과격한 것들에 휩쓸리지 않는 평정과 극단의 열기를 경계하는 온화함에서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위기 또한 같은 방법으로 이겨낼 수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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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식 없이 누가 더 뻔뻔한가를 경쟁하고,
‘가해자‘의 마음이 평화로운 사회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에게
˝왜 그렇게 분노가 많냐.˝고 말하는 사회

자녀를 읽은 슬픔을 국가체제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사회

이런 시대에 약자가 지닐 수 있는 무기는 무엇인가?

정희진에게 무기는 바로 ‘글씨기‘다
그에게 글쓰기는 약자의 시선으로 타인과 사회를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과정이다

내 안의 소수자성을 자원으로 삼아 ‘저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드러내는 것, 나보다 더 억울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그들과 연대하면서 세상을 배우는 일이다

이것이 정희진이 말하는 시대에 맞서 ‘품위 있게‘ 싸우는 방법으로서 글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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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2-08-30 21:0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정희진 글쓰기는 인간 글쓰기의 한계를 넘어선 것 같습니다. 정말 탁월한 것 같습니다. ^^

나와같다면 2022-08-30 22:37   좋아요 3 | URL
단단한 가치관과 그걸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내는 필력.. 너무 부럽습니다

삶은 복기의 연속이다. 그래야 한다. 매 순간이 대국이기 때문이다. 잘못된 복기는 트라우마. 집착. 후회를 가져온다. 지나간 일을 제대로 해석하는 건 중요하고 어려운 일이다

mini74 2022-08-30 21:4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글쓰기는 무기다란 말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정희진님 글 읽으면서 많은 걸 새롭게 보게 됩니다 *^^*

나와같다면 2022-08-30 22:36   좋아요 3 | URL
˝글을 쓰는 이유에는 네 가지가 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 미학적 열정, 역사에 무엇인가 남기려는 의지, 정치적 목적, 나는 모두 아니다. 나는 승부욕이다.
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고양이라디오 2022-09-19 13:23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과거 정희진씨의 책을 읽고 글도 참 좋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좋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22-09-19 15:30   좋아요 2 | URL
정희진님의 글에는 잔뜩 날이 서있어요. 그 서늘하고 예리한 날 서있음이 너무 좋아요
 

이제까지 나는 ‘우울증‘에 대해서 이렇게 현실적이며 명확하고 확실하게 표현 된 글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이며, 어차피 인간은 결국 죽는다. 아무도 이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우울증 환자들은 인간이 혼자라는 것, 죽을 수밖에 없는 가련한 운명이라는 것을 냉철하게 직시한다는 점에서 극단적으로 현실적이다

‘혼자 죽는‘ 고통을 미리 맛보고 있는 그들에게는 삶이 이미 죽음이고 죽음이 곧 삶이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죽음으로 이 절대고독을 끝장내고자 한다

어떻게 보자면 우울증 환자는 매를 먼저 맞기 원하는 학생처럼 죽음을 지나치게 두려워해 온종일 그것에 사로잡혀 있는 이들인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한 이 과도한 공포, 삶의 소소한 즐거움마저 파괴하는 이 두려움은 어떻게 극복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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