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우리가 도망쳐 떠나온 모든 것들에 바치는 영화입니다. 한때는 삶을 바쳐 지켜내리라 결심했지만 결국 허겁지겁 달아날 수 밖에 없었던 것들에 대한 부끄러움이 담겨있다고 할까요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떠나갑니다. 모든 이별의 이유는 핑계일 확률이 높습니다. 하긴, 사랑 자체가 혼자 버텨내야 할 생의 고독을 견디지 못해 도망치는 데서 비롯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그게 어디 사랑만의 문제일까요
도망쳐야 했던 것은 어느 시절 웅대한 포부로 품었던 이상일 수도 있고, 세월이 부과하는 책임일 수도 있으며, 격렬히 타올랐던 감정일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결국 번번이 도주함으로써 무거운 짐을 벗어냅니다. 그리고 항해는 오래도록 계속됩니다

그러니 부디, 우리가 도망쳐온 모든 것들에 축복이 있기를. 도망쳐야 했던 우리의 부박함도 시간이 용서하길. 이 아름다운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단정하게 묶는 조제 뒷모습처럼, 종국엔 우리가 두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삶의 뒷모습도 많이 누추하진 않길

이동진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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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애가 자기가 삼만 살이래
왜 자꾸 태어나는지 모르겠다는데,
난 알아.
왜 자꾸 태어나는지,
여기가 집이 아닌데,
자꾸 여기가 집이라고 착각을 한 거야
그래서 자꾸 여기로 오는거야
어떡하면 진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다시 태어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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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독일의 음유시인 볼프 비어만의 시구가 자꾸 귓가에 맴돈다. ˝이 시대에 희망을 말하는 자는 사기꾼이다. 그러나 절망을 설교하는 자는 개자식이다.˝
그래, 환멸 속에서도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우리에겐 절망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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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승자의 발자취‘라는 역사가의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깊은 의미에서 역사는 잘 진 싸움의 궤적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발전해온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는 싸움도 해야 한다. 어쩌면 이 세상이 완전한 지옥이 되지 않은 것은 지는 싸움을 해온 사람들 덕분이다. 진 싸움이 만든 역사가 희망을 지켜주었다. 이러한 믿음을 품고 우리는 함께 환멸의 땅을 건너가야 한다. 넘어지고 부서지더라도 다시 일어나 꿈꾸던 그곳으로 나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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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trauma)’의 고대 그리스어 어원은 ‘뚫리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구멍이 뚫릴 만큼 심각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을 때 우리는 트라우마를 입었다고 말한다

특정 사건을 겪고 난 뒤 이전과 다른 삶을 살게 된다면 그것은 스트레스를 넘어 트라우마에 가깝다. 삶의 방향을 전환시킬 만큼 압도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이후 국가나 사회 차원에서 제대로 된 애도만 이루어졌다면 지금과 같은 사회적 트라우마로 확대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사람의 생명 앞에서는 진정성 있는 애도가 먼저다

트라우마 고통은 혼자만의 아픔으로 분리되지 않고 함께하는 아픔으로 연결될 때 나아질 수 있다

그래서 ‘아직도 세월호야?’라고 묻는다면 ‘여전히 세월호야’라고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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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3-02-07 23: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저 오늘 엄마랑 나와같다면님과 비슷한 얘기 했어요. 도대체 왜 국힘당은 그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추모공간 못 하게 막냐고. 진짜 이해가 안 된다고요. 서울시가 나서서 추모공간 만들었으면 유족들이 저렇게 서럽게 울까요? 전 이지한 어머님이 땅에 누워 몸부림 치는 영상 보면서.. 시간이 지날 수록 아들이 그리울텐데. 왜 정부나 서울시는 그런 유가족에 대한 예의(추모 공간 하나조차 못 만들게 하는 거)조차 안 차리지 싶습니다. 백일이 지났음에도 정부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요?

나와같다면 2023-02-07 23:18   좋아요 3 | URL
주변 사람들과 사회의 편견, 무지, 가짜 정보가 일으키는 혐오와 차별이 범람할수록 트라우마는 치유는 커녕 더 깊은 나락으로 빠져듭니다.

할로윈 축제가서 죽었으니 그만해라! 시체 장사하느냐 등의 혐오 표현이 가득한 현실.

정부는 피해자가 존중받으면서 사실이 규명되고, 모두가 함께 애도를 해주고 회복될 수 있게 추모 공간 하나 준비할 수 있을텐데....

어쩌면 이 분열과 갈등을 정치적으로 즐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미 2023-02-07 23:3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인종주의로 늘 시끄러운 미국도 장애인이 약자라는 사회적 합의가 있다는데 우리나라 보수는 대체 왜이런지 모르겠습니다. 세월호때 만연했던 보수의 막말과 조롱...
갈수록 강도가 거세지는 느낌입니다.

나와같다면 2023-02-08 00:09   좋아요 3 | URL
보수는 이미 이 사회에 없죠.
따뜻하고 품격있는 보수가 그립습니다.

혐오와 차별이 넘쳐나는 사회..
이제는 그 임계점도 넘어서 버린듯

단발머리 2023-02-08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보기엔 오히려 세월호 때의 일을 되살려 10.29 참사 희생자 유가족끼리의 연대조차 정부에서 조직적으로 막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멀리 떨어진 입장에서야 가끔씩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지만 유가족들의 한과 슬픔은 어쩌면 좋을까요 ㅠㅠㅠㅠㅠㅠ

나와같다면 2023-02-09 22:41   좋아요 1 | URL
서로를 찾아 헤매었지만, 연결과 만남은 차단당했고, 제대로된 추모를 원했으나 추모와 애도의 권리마저 빼앗겼다

이게 왜 경찰과 유족간의 격렬한 몸싸움이 벌어져야 할 일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