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여자의 사랑
앨리스 먼로 지음, 정연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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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의 사랑 티저북]

 

 

 

착한 여자의 사랑을 받아서 포장을 풀어보니 카드와 볼펜이 들어있다. 선물 받은 느낌 기분이 좋았다.

 

 

 

 

앨리스 먼로의 단편소설이다. 차례에 나와 있는 '자식들은 안 보내' 한 편이 실려있다. 부담없이 읽으리라 했는데 부담을 가지고 읽어보았다. 왜 그녀가 남편과 아이들의 곁을 떠났는지 그것이 얼마나 끔찍한 고통인지 모르고 말이죠.

 

 

삼십 년 전, 한 가족이 밴쿠버섬 동쪽 해안에서 휴가를 보내고 있었다. 젊은 아빠 엄마, 어린 두 딸, 그리고 연륜이 좀 있어 보이는 커플도 있었는데 바로 남편의 부모였다.

 

젊은 아빠 엄마 브라이언, 폴린

어린 두 딸 케이틀린(5), 마라(16개월)

연륜이 있는 부부 브라이언의 부모님

 

폴린은 배우가 아니다. 아마추어 연극이지만 그녀는 아마추어 배우도 아니다. 다만 그 희곡이 그녀가 이미 읽은 것이었다. 장 아누이가 쓴 외리디스였다. 그녀가 연극에 출연하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은 건 6월 바비큐 파티에서 만난 어느 남자에게서였다. 바비큐 파티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교사나 그들의 배우자였다. 파티는 브라이언이 교편을 잡고 있는 고등학교의 교장 선생님 집에서 열렸다.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여자는 과부였다 그녀가 장성한 아들을 데려왔는데, 그의 이름은 제프리 툼이었다.

 

제프리가 폴린을 보자마자 외리디스로 발탁한 건 외모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뻐서가 아니었다. "예쁜 여자한테는 절대 그 역을 맡기지 않을 거예요." 그가 말했다. "어떤 연극에서든 내가 예쁜 여자를 무대에 올린 적이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그건 과해요. 주제를 흐려놓거든요."

그렇다면 그는 그녀의 외모를 어떻게 생각했다는 말인가? 다소 부스스한 짙은 색깔의 긴머리(그당시 유행은 아니었다)파리한 피부("이번 여름에는 햇볕을 피해요")그리고 무엇보다 눈썹 때문이라고 그는 말했다.

 

폴린이 두 주 동안 휴가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말하자 제프리는 그녀의 인생에 휴가 같은 게 존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는 듯 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는 이런 한 방이 또 있을 줄 알았다는 듯 이내 암울하고 약간 냉소적인 표정으로 바뀌었다.

 

제프리에 대한 생각이 그녀를 찾아왔지만 사실 그것은 생각과 거리가 멀었다 - 그건 오히려 몸의 변화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해변에 앉아 있을 때나(제프리가 시킨 대로 하얀 피부를 태우지 않으려고 햇볕을 좀 피할 수 있는 관목 그늘에 앉았다) 기저귀를 빨아 짤 때나, 브라이언과 함께 그의 부모를 찾아갔을 때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

 

"나는 그저," 제프리가 말했다. "당신을 내 침대에 눕히고 싶었어요." 그녀가 다시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 돼요." 그의 말이 그녀의 머릿속에서 자꾸만 맴돌았다.

 

그녀가 하고 있는 행동은 어디서 들었거나 읽었던것이었다. 안나카레니나가 했던 것이었고, 마담 보바리가 하고 싶어했던 것이었다. 브라이언이 근무하는 학교의 어느 교사가 학교 비서와 한 것도 그것이었다. 그는 그 여자와 눈이 맞아 달아났다. 그걸 일컫는 말이 그거였다. 눈이 맞아 달아나다. 눈이 맞아 도망치다.53

 

간밤에 브라이언은 차분하고 통제되고 거의 유쾌한 목소리로 통화를 했지만 -충격을 받지 않은 자신, 반대하거나 매달리지 않는 자신을 대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 기어코 감정을 터뜨리고 말았다. 누가 들을지 모른다는 사실에는 신경도 쓰지 않고 경멸과 분노를 담아 말했다. "그래 그럼······애들은?"

폴린의 귀에 댄 수화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말했다. "그 이야기는 ·····" 하지만 그는 그녀의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았다.

 

"자식들은." 그가 여전히 복수심에 불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단어가 '애들'에서 '자식들'로 바뀌자 그녀는 판자로 한 대 세개 얻어맞은 것 같았다 무겁고 공식적이고 정당한 협박.

"자식들은 안 보내." 브라이언이 말했다. "폴린. 내 말 들었어?"

"안 돼." 폴린이 말했다. "당신 말은 들었어. 하지만·····"

"됐어. 내 말을 들었다니까. 기억해, 자식들은 안 보내."

그게 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녀가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녀가 끝내려는 게 어떤 건지를 보여주고, 정말 그렇게 한다면 그녀를 벌하는 것. 그를 비난할 사람은 없다.

    

  *출판사로부터 도서(티저북)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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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kfkstk 2021-12-09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5,000원 이상 도서도 몇 번을 사 봤지만 사은품 한번 없었네유~~🦴
 
직업으로서의 음악가 - 어느 싱어송라이터의 일 년
김목인 지음 / 열린책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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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악가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좋아한다. 해운대, 광안리 사람들이 붐비는 곳이면 기타로 연주하며 홀로 노래하는 가수도 있고, 밴드를 포함하여 공연을 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직업으로서의 음악가'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예술하는 사람들은 화려하고 멋있을 거 같은데 그들만의 고충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읽어 보았다. 이 책은 싱어송라이터 김목인씨의 일 년 과정을 적은 내용이다. 특이한 것은 음악가들은 1월에 행사가 없다는 거다. 책 표지도 예쁘다. 음악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차리게 음표가 그려져 있다. 책을 읽으며 느낀 점은 소설가든 음악가든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열린책들 블로그에 김목인씨 강연 소식이 있긴 하지만 서울, 경기도여서 가지 못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프롤로그

나는 음악을 한 지 15년쯤 되어 가는 싱어송라이터다. 초반에 밴드로 시작해 5~6년쯤 활동한 뒤부터는 솔로로 활동해 오고 있다. 햇수로 정확히 모르는 것은 대부분의 일들이 페이드인으로 시작해 페이드아웃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도 취미와 일의 경계 어느 지점에서부터였고, 혼자 활동하게 된 것도 <어느 날 보니 혼자 공연을 하고 있었다>.말하자면 공식적으로 활동을 쉰 기간이 없는 셈인데. 그래도 사람들은 나를 만나면 여전히 <공연은 언제 하나요?>라고 묻곤 한다.

목 차

1.싱어송라이터, 나의 직업

2.공연의 계절

3.작은 가게와 음악가

4.작업, 또 작업

5.앨범 녹음 일지

음악가들에게 1월은 일이 없는 달이다. 서로 비집고 들어가려는 파티처럼 북적이던 연말도 제야의 종소리와 함께 약속이나 한 듯 조용해진다. 중순쯤 연주자들과 통화해보면 <보릿고개지요, >하며 겸연쩍게 웃는데, 이런 사정은 나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나는 이 1월이 좋다. 하얀 눈밭 같은 1, 아무도 연락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올해에는 내가 그 위에 먼저 발자국을 찍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연 제안이나 외부에서 오는 연락은 보통 2월부터온다. 그건 우리의 일이 사회의 다른 분야와<시소>처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한쪽이 심각해지면 한쪽은 느슨해진다. 만일 회사들마다 시무식을 공연 관람으로 대신한다거나 모임마다 작심삼일을 이겨 내려고 파티를 여는 게 유행이라면 음악가들도 1월이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연초는 사람들이 한창 일에 집중하는 시기이고, 우리는 연말에 쉬지 못한 한숨을 이때야 비로소 쉰다. 그러면서 우리의 일이 다른 이들의 <휴식>과 연관되어 있다는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나 역시 남들 놀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쉬는 셈 치고 1월을 여유롭게 보낸다.

 

 

싱어송라이터란 <싱어singer><송라이터songwriter>를 나란히 붙인 말이다. 즉 노래하는 이와 노래를 만드는 이가 합쳐진 단어이다.

 

싱어송라이터는 <작곡하는 가수>이지만 거꾸로 보면 <무대 위에 노출된 작곡가>이기도  한다. 사람들은 음악을 그 자체로도 즐기지만 음악가 개인의 인간적 면모와 연결지어 즐긴다. 겉보기에 슬픈 노래이지만 작곡가의 우스운 사연을 알고 미소 짓는 관객들도 있고, 한 음악가가 어두운 시기를 딛고 쓴 곡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 곡을 더 사랑하는 경우도 있다. 즉 싱어송라이터 음악은 개개의 작곡가가 펼치는 모노드라마 같은 음악이다. 음악뿐 아니라 싱어송라이터의 행보, 그 사람의 캐릭터(셔츠나 말실수 등)가 무언의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글을 쓴다기보다 말을 하듯 하는 것이다. 메모가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건네는 말이라면 우리는 비록 머뭇거릴지라도 몇 마디 정도는 충분히 이어갈 수 있다. 게다가 말하는 것은 노래 만드는 것보다 평상시에도 더 많이 하는 일이라 이야기를 이어가야 할 때 좋은 기준이 된다.

 

 

 가령, 노랫말을 너무 글처럼 생각하면 기승전결을 맞춰야 할 것 같은 작위적인   상항에 빠진다. 대신 말하듯이 생각해보면 <>,<그렇단 말이지>,<글쎄>같은 문구가 막혔던 부분을 절묘하게 해소해 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한참 노래를 쓸 때는 공간을 울리는 우렁찬 피아노 소리 같은 것은 없다. 열심히 초고를 출력하고 있으면 아내가 다가와 당신은 프린터로곡을 쓰느냐며 놀린다. < , 기타 줄 갈기 전에 A4용지부터 사와야겠어>라고 말하며 출력물을 들여다본다.

 

 

공연 안 할 때는 뭘 하시나요?공연이 확정되면 당일까지 이것저것 세부 사항들을 정한다. 작은 공연은 보통 기획자가 한꺼번에 정리해 알려 주지만, 큰 공연은 서로 여러 번 연락을 거치며 정하기도 한다. 가장 먼저 정하는것은 외부에 공개되는 정보들이다. 반면 비공개로 느슨하게 정하는 것들도 있는데, 리허설 시간이나 출연 순서, 팀당 공연 길이 등이다. 공연자 쪽에서 미리 준비할 것은 셋리스트이다. 연주할 곡과 순서가 적힌 이 목록으로 기획자는 현장에서 공유할 큐시트를 만든다. 스태프가 조명가 등퇴장까지 섬세히 체크해야 할 필요가 있는 공연은 곡의 음원이나, 곡별 연주 길이, 연주 영상까지 보내기도 한다.

 

앙코르는 외형상 하나 더 베푸는 보너스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관객이 <한 곡 더!>를 외치면 연주자는 잠시 뜸을 들이거나 퇴장했다 다시 나와 한 곡 더 연주하는 아량을 베푼다. 공연에 대해 궁금한 것을 묻는 자리에서 종종 이 앙코르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 마지못한 표정으로 앙코르 하는 거, 진짜인가요? 연기인가요? 앙코르를 예상하신 건가요. 아니면 정말 당황하신 건가요?]사실 많은 공연자들이 앙코르까지 연출에 넣는다. 하지만 자신이 인기가 좋을 걸 예상해서 그런다기보다는 공연에서는 끝마무리가 중요하고, 실제로는 앙코르까지 그 끝마무리에 포함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정해진 곡을 다 했다 해도 끝을 잘 마감해 주지 않으면 공연에 뭔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남긴다. 앙코르는 그저 덤일 때도 있지만 나름 섬세한 감정 조절의 기술인 셈이다.

 

내가 일하며 깨닫게 된 생각이 하나 있다면 음악가와 제작사는 어디까지나 <신뢰를 쌓아 가는 좋은 협업 관계>여야 하고, 일을 중심으로 쿨하게 만나고 헤어졌다. 또 만날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가는 제작사와 일할 생각이 있다면 <영원히 안식을 취할 곳>을 고르듯 기대하는 것보다는 서로 인생의 한 시점에서 필요한 것들을 얘기하고 조그만 성과 한 가지를 내본다는 생각으로 노력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흥행이 좌우하는 이 일의 특성상 결과가 어떨지는 보장할 수 없다. 하지만 협업의 과정이 어느정도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면 이후에 다시 좋은 프로젝트로 만날 수가 있다

 

<작은 가게로서의 음악가>는 몇 년 전까지 내 머릿속에 자주 맴돌던 개념이다. 이 비유가 음악가라는 내 직업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음악가는 개인 것 같지만 가만히 보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하는 가게에 가깝고, 다만 그 가게가 투명해 보이지 않을 뿐이라는 논리.

 

동료 블루스 음악가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아주 공감한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당연하죠. 그것도 아주 쪼끄마한 구멍가게죠.] 이것을 소재로 공연도 한 번 했다. [소극장 콘서트-작은 가게와 음악가] 공연의 기획자는 극장 대표님도 자주 그런 말씀([우리 극장이야 뭐 구멍가게죠])을 하셨다며 반가워했다. 나는 음악가란 직업을, 신곡을 하나씩 개발해 손님(싱어송라이터 이랑이 맡았다)에게 메뉴로 내는 식당 정도의느낌으로 연출했다. 많은 음악가들이 자신을 한 명의 개인으로만 생각한다. 음반사를<회사>라고 즐겨 부르며 종종 자신을 직원으로 착각하는 것, 그리고 <문화 노동자>라는 말에도 기본적으로 개인이라는 의미가 깔려 있다. 하지만 가만 보면 우리는사업장이 투명한 나머지 종종 스스로를<개인>이라고 착각하는 가게들이다. 나 자신만 해도<김목인>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하는 가게라고 생각하면 많은 것들이 좀 더 명확해진다.

 

도대체 작업이 무엇이기에

하루쯤 작업을 안 한다고 몸이 아프거나 입안에 가시가 돋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작업을 못 한 날에는 작업이란 것이 내게 무엇인지를 알게 된다. 적잖은 시간을 워밍업만 하다 날려 보내거나, 차라리 하루쯤 머리를 비우고 쉴 걸 그랬나 싶게 작업 태세만 갖춘채<불완전 연소>했던 날들도 많았다. 불도 안 붙고 안 좋은 연기만 풀풀 나던 그런 날들. 게다가 힘든 건 그런 날들 마저 불규칙했다는 것이다.곡이라는 것이 몇 단위로 쪼개어지고, 진행표에 적을 수 있고, 착수할 때마다 진척이 있다면 조금씩 꾸준히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거의 완성된 곡은 나름의 구조가 생겨 오늘은 1, 내일은 2절 그런 식으로 나눌 수도 있지만, 스케치 단계의 곡은 뭐가 될지 모를 모호한 덩어리로 좀처럼 움직이지 않을 때가 많다.

 

보컬 녹음의 고독

노래의 윤곽을 잡아 주는 주요 악기 녹음이 끝나면 보컬 녹음에 들어간다. 보컬 녹음은 생각보다 시간이 꽤 걸린다. 몸 상태에 영향을 많이 받는 데다가 듣는 사람에게도 가장 섬세히 들리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많이 불러 본 노래라도 여러 번 부르며 좋은 테이크들을 찾는다. 앨범을 위해 새로 쓴 곡들의 경우에는 아직 분위기를 정하지 못해 헤매기도 한다. 그래도 몇 번의 앨범 녹음 경험이 있어 이번에는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첫 곡으로 가사가 짧은 곡을 골랐고 예상대로 금방 해냈다. 예감이 좋았다. 하지만 두 번째 곡 부터 슬슬 헤매기 시작하더니 결국 다음 날로 넘기고 말았다. 이틀째가 되자 만회는커녕 익숙해지기 위해 여러 번 연습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루에 몇 곡씩 녹음할 기세로 와서 연습만 하고 간다는 것은 상당히 맥 빠지는 일이다.

 

에필로그

앨범이 발매된 후 몇 달 동안 각종 인터뷰를 했고, 콘셉트와 제작 과정에 대해 길고 자세한 설명들을 했다. 라디오에서는 신곡을 연주했고, 엄청난 부담감 속에서 발매 공연도 치렀다. 무대에서는 어떻게 이리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와주었을까 싶을 만큼 과분한 축하를 받았다.

201831일 상은 못 받았지만 감사합니다

어제 저녁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 다녀왔고, 결국 상은 받지 못했습니다.^^4개 부문이나 올랐었기에 기대가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겠고, 어쩌면 제작진과 연주자들에게 좋은 선물 하나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했었습니다. 프로듀서와 A&R, 연주자들, 디자이너, 엔지니어, 피처링 해준 동료들과 뮤비팀까지....., 무대에서 했을지 모를 감사 인사를 여기에서 다시 한 번 전합니다. 또 힘들게 번 돈을 쪼개어 항상 공연장을 찾아 주시는 관객분들께도 여기에서 깊은 감사를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리뷰를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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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 -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탄생
김두식 지음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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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만 보내준다는 말에 얼른 신청을 하였다. 완성본이 아닌 가제본으로 왔는데 책을 펼쳐보고 한 번 놀랐다. 가제본에는 4부까지 실려있다. 신기하게도 읽다보니 재미도 있다. 불운했던 시대의 법조인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 책을 읽다가 떠오르는 생각, 읽다가 그만 두었던 태백산맥을 완독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저자 소개: 김두식》
서울에서 태어나 고려대 법대를 졸업하고 군법무관, 서울지검 서부지청 검사, 변호사로 일했다. 코넬대 로스쿨에서 석사학위(LL.M.)를 취득한 후 한동대 법학부 교수를 거쳐 2006년부터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형법, 형사소송법, 형사정책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은 『헌법의 풍경』을 비롯해 『평화의 얼굴』 『불멸의 신성가족』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불편해도 괜찮아』 『욕망해도 괜찮아』 『공부 논쟁』(공저) 등 몇권의 책을 썼다.

 

프롤로그
한국 현대사에 정통한 독자들이라 하더라도 지금까지 나온 이름의 태반은 금시초문일 것이다. 이들은 해방을 전후한 시절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어쩌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철저하게 망각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법조계만큼 종사자들의 자서전이 많은 직역도 드물다. 그러나 해방공간에 관한 기록은 놀라울 정도로 적다. 좌익과 중도에 속한 사람들이 거의 사라졌으니 그나마 남아 있는기록도 일방적일 수밖에 없다. 좌익경력을 가지고도 살아남은 사람은 자기 과거에 대해 철처히 함구했다.(중략)이 책은 바로 그 껄끄러운 이야기를 중심으로 해방후 우리나라 법조 직역의 형성과정을 복원하려는 시도다. 이 책이 던지는 질문은 매우 간단하다. 김영재 강중인 조평재 윤학기 백석황 이정남 같은 사람들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나? 이들은 누구였고, 일제시대 무엇을 했으며, 해방공간에서 어떤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왜 좌절되었나? 초창기 혼란 속에서 만들어진 법조계의 기본틀은 우리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나?

1부는 1937년 합격자들을 중심으로 일본 고등시험 사법과 제도를 탐구했다. 바로 제1법률가군 이야기다. 안동지역 유수의 독립운동가 가문과 친일 가문이 선명하게 구분되지 않는 당시 현실을 잘 보여준다. 다들 빈곤한 시절이었으므로 합격자라면 누구라도 자신을 역경의 승리자로 포장하고 싶었겠지만, 객관적인 자료들을 다른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시험 합격자 중에는 유난히 면장집 아들이 많다. 당시 기준으로는 사회경제적으로 최상층부에 속했다. 부잣집 출신일수록 상급학교에 진학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던 시대다. 재력은 거의 그대로 학력에 반영되었다. 개천에서 난 용은 허상일 뿐 실체가 아니었다.

2부는 일제시대 '이류' 법률가로 취급 받았으나 해방이후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과 함께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뼈대를 형성한 조선변호사시협 출신들의 삶을 다뤘다.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허헌 변호사의 인생을 살펴보았다. 판검사를 거치지 않은 순수변호사의 아버지 격이던 허헌은 해방후 좌익과 중도진영의 지도자로 변신해 북한 최고인민회의 의장과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을 지냈다. 그가 왼쪽으로 기울게 된 뿌리를 탐구하는 것은 해방공간 좌익진영의 형성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3부는 해방으로조선인 법률가들에게 벼락처럼 찾아온 새로운 기회를 이야기한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정은 일본인 판검사를 재판에서 배제하고 조선인 법률가로 그 자리를 채웠다. 고등시험 사법과 출신들과 조선변호사시험 출신들은 이른바 자격자로서 가장 먼저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 미래가 보장되었던 이들의 임용과정에서 친일경력은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인맥과 운이었다. 삼팔선 이북지역에서 해방을 맞이한 판검사들은 월남시기에 따라서 엄청난 불이익을 감수했다.

4부는 해방공간에서 합법적으로 활동하던 조선공산당 등 좌익세력을 일거에 불법화시킨 1946년 5월의 조선정판사 '위조지폐'사건을 이야기 한다. 조선정판사'위조지폐'사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단일사건이 아니었다. 조선정판사 사건에 앞서 우리 법조계는 '김계조 사건'으로 떠들썩했다.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대법관 등 한민당 세력이 장악한 법원과 검찰은 첫 판검사 임용 때부터 정치적 중립성을 의심받았다. 오승근 판사, 백석황 검사로 대표되는 좌익 또는 중도성향의 법률가들은 '김계조 사건'을 계기로 이 상황을 바로잡고자 했다.

5부는정부수립을전후해 법조계에서 벌어진 각종 좌익 관련 사건을 다룬다. 1947년 12월 '사법기관 내의 남로당 프락치'로 구속된 남상문 홍승기 서범석 등 이른바 '적색 사법관' 사건, 1948년 10월 여순반란사건 진압의 한복판에서 군경에 학살된 순천지청 박찬길 검사 사건, 1946년 7월의 서울지방검찰청 김영재 차장검사 사건, 그해 12월의 2차 '법조프락치'사건, 1950년 3월의 이홍규 검사 사건 등은 좌익을 박멸해야 한다는 극우세력의 편집증적 집착과 권력욕구가 만들어낸 '관제 빨갱이'의 대향연이었다. 이 책은 남쪽 출신과 북쪽 출신의 지역적 갈등도 이 사건들의 조작과 과장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추정한다.

6부는 한국전쟁이라는 쓰나미가 법조계에 끼친 영향을 분석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병로 대법원장, 김갑수 내무부차관 같은 극소수의 고위직 법조인들은 비교적 빨리 피란길에 올랐다. 유병진 판사, 오제도 선우종원 검사 같은 월남민 출신들도 본증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한강을 넘었다. 피란 중에 김갑수, 오제도는 '비상사태하의 범죄처벌에 관한 특별조치령'과 그 '처리요령'을 만들어 부역자 처벌을 준비했다.

7부는 이른바 '이법회'또는 '의볍회' 문제를 발굴함으로써 초창기 법조계 5년의 역사가 오늘에 끼친 영향을 설명한다. 1945년 해방 당일에 시행 중이었던 조선변호사시험의 응시자들은 일본의 항복으로 시험을 끝마치지 못했다. 4일간 치러질 예정이었던 시험이 2일차 정오의 항복방송과 함께 중단되고 일본인 시험관들이 사라져버린 까닭이었다. 응시자들은 궁지에 몰린 일본인 시험위원회를 압박해 합격증을 받아냈다. 응시사실만 있으면 모두 합격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결성된 이법회 구성원들은 해방후 각종 시험에서 필기시험을 면제받아 초창기 법조계의 가장 중요한 인력풀이 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이법회 구성원들이 그경력을 감췄기 때문에 전체적인 규모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다. 누구나 그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정확한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조직이었다.

 

프롤로그만 간단하게 적어도 많은 분량이다.1932년도 월급에 대한 대목만 옮겨 보았다.

 

국내 독립운동이 혹한기를 맞아 지하로 들어간 대신, 경성을 중심으로 '모던'의 시대가 꽃피기 시작했다. 1932년 4월 경성제대를 졸업한 김영재는 일단 취업부터 해야 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재학시절에 이미 결혼한 김영재에게는 아내와 아들이 딸려 있었다. 화려한 학벌이었지만 대공황 직후의 조선에서는 그럴듯한 일자리를 찾기 힘들었다. 그해 5월 15일 김영재가 찾아 들어간 직장은 경기도청이었다. 월급 65원을 받는 '고원(雇員)' 자리였다. 관청에서 임금을 받고 사무를 돕는 고원으로 일하다보면 판임관에 해당하는 '속(屬)'이 될 수 있었고 오래 근무하면 고등관 승진도 가능했다.

 

실제로 경성 제대의 많은 졸업생들의 법원의 서기나 지방관청의 하급관료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관립대학을 졸업하면 바로 하급관료인 판임관이 될 수 있었지만, 1930년대에는 학력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행정부로 갈 경우에는 고원부터 시작해야 했다. 똑같은 고원이라도 학력에 따라서 초임월급이 달랐기 때문에 경성제대 출신 김영재가 받은 65원은 동일직급에서 최고수준이었다. 중등학교를졸업한 조선인의 고원초봉은 30원, 전문학교를 졸업한 조선인은 40원, 일본의 사립대를 졸업한 조선인은 45원에 불과했다. 월급 65원의 경기도청 고원은 당시 조선 상황에서 결코 나쁜 자리가 아니었다. p49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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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약국에서 경영을 배웠다
강남성 지음 / 미다스북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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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을 개업하면 돈을 많이 버는 줄 알았다. 병원이 많은 곳의 약국에 가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도 많다. 하얀 가운 입고 처방전 대로 약만 지어주고 달라는 거 주고 편한 직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구나를  책을 통해서 알았다저자는 엄마로부터 약사의 꿈도 키우고 좋은 약사 좋은 사장님이 되었다. 무엇을 하든지 공부를 해야 한다고 일깨워준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공부해야 한다는 학교 다닐때 교수님 말씀이 생각난다 자영업이나 경영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면 이 책을 읽어 보면 좋겠다.

 

 

 

 

《프롤로그》
약국 개업을 포함한 약국 경영에 대한 현실적인 지식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은 마치 스폰지처럼 내 지식을 흡수했다. 열정적이고 절실한 사람들은 약국을 준비하고 계획하는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나와 함께 상의 하면서 성공적인 개국으로 달려갔다. 약사들이 성공적으로 개국하고 억대 연봉의 안정적인 수입에 접어드는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어떤 사람들은 하던 일 그냥 열심히 하면 먹고 사는 걱정은 없을 텐데 왜 이런 일을 하냐고 질문한다. 굳이 십수 년간 배워온 산지식을 애써 나눠주느라 에너지를 쏟느냐고 묻는다. 그런 사람에게 나는 언제나 자신 있게 이것은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먹고 사는 것만으로 보람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의 궤적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느낌이다.

 

목차

1장 선택

성공하는 약국가 망하는 약국은 무엇이 다른가?

2장 실행

매일 처음처럼 도전하라

3장 분석

가장 사소한 것도 분석해서 경영하라

4장 퍼즐

10분 만에 확실한 단골을 만드는 10 마디

5장 생존

반짝 성공하지 말고 오래오래 성공하라

 

 

                                       약국 창업 진단 평가 체크리스트

 

 

 

 

 

언젠가부터 나에게 무언가를 공부한다는 것은 하나의 일상이 되었다. 석사학위를 받기 위해서 약대 대학원에 다닐 때는 빡빡한 실험 스케줄속에서 새벽 2~3시까지 원서와 외국 논문을 읽어가며 공부했다.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학위를 하면서도 선배의 소개로 병원의 약간 약사 아르바이트도 해야만 했다. 야간 약사 일을 하면서 1주일에 2일은 밤잠을 거의 자지 못했다. 아무도 없는 병원 약국에서 야간 근무를 하는 날에는 야속하리만큼 환한 불빛 아래에서 병원 약에 대한 공부를 하느라 꼬박 밤을 새곤 했다. 하지만 약국에서 요구되는 약사의 자질은 이전의 공부들과는 완전히 다른 신세계의 영역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웠고 모르는 것은 너무나 많았다. 그 당시 나에게 약국이 무엇인지 가르쳐주셨던 약국장님들은 언제나 열심히 공부하셨다. 그 시절 나는 약국 약사로서 제대로 실력을 갖추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했다.

 

돈이 없어서,’ ‘나이가 어려서혹은 나이가 많아서.’ ‘경험이 없어서.’ 라는 수많은 질문에 기죽지 말자. 뭔가가 이루어질 확률도, 실패할 확률도 5050이다. 해보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모른다. 사실 모든 실패는 과정이다. 끝까지 해내면 실패는 과정이 되고, 중간에 포기하면 그저 실패가 된다. 내 경우처럼 운이 좋아 사업의 멘토를 만날 수 있다면 그 과정이 좀 더 수월해지기도 한다. 아직도 나는 나의 멘토들에게 감사한다. 그때 세운 많은 원칙이 내 약국 경영의 기본 원칙들이 되었다. 세월이 갈수록 그 원칙들은 더 굳건해지거나 발전했다. 물론 배움에는 적지 않은 비용과 노력들이 들었지만, 그 훌륭한 투자 덕분에 나는 항상 적게 손해보고 훨씬 더 많이 번다.

수많은 생각들이 머릿속에 일어나며 변화의 시점에서 나는 나와 싸우고 있었다. 나의 과거와 피 터지게 싸우고 있었다. 약국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위기가 찾아왔을 때가 아니라면 나는 그렇게 빨리 변화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때는 정말 왜 이러고 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바닥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던 시절이었다.

성공한 사람에게 답이 있다
2달간의 경영수업으로 나는 완전히 다른 약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분야에 있어 경지에 이른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답을 가지고 있다, 그 답을 얻기까지 그 사람은 그 분야에 엄청난 노력과 셀 수 없는 시간 그리고 뜨거운 땀을 생각해보라. 단 몇 개월 만에 그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은 엄청난 행운인 셈이다. 지금 상황이 완전히 만족스럽지 않다면 혹은 뭔가가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 간절해지면 만나는 사람들을 바꿔봐야 한다. 가능하면 내가 이루고 싶은 무언가에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좋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농축된 어느 한마디가 나의 절실함과 만나면 예상치 못했던 아름다운 꽃이 피어나기도 한다. 그 꽃은 세상에서 가장 뜨겁고 보람 있는 꽃이 될 것이다.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내가 다른 약사들과 같이 대형약국을 오픈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은 무모하다고 했다. 나이도 어리고 경력도 짧은데 괜찮겠냐고, 좀 더 경험이 필요한 것 아니냐며 걱정했다. 어떤 사람들은 너희들이 할 수 있는 약국이 아니라며 대놓고 무시했다. 사람들의 우려는 반은 맞았고 반은 틀렸다. 우리는 그 약국을 8년간 경영했고, 그동안 7개의 다른 약국들을 공동 경영했다. 처음의 어려웠던 시기를 함께 이겨낸 뒤에는 매년 해외로 전 직원 워크샵을 떠났다.

 

우리는 해외의 5성급 호텔에서 모두가 모여서 한 해를 결산하고 축하했다. 그리고 매년 초에는 국내 5성급 호텔에서 신년회를 가졌다. 모두가 함께 새로운 한 해를 계획하고 점검했다. 처음의 무모한 시도가 없었다면 그 모든 것은 불가능했다. 무모했을지 모르는 바로 그 시작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사람들의 걱정과 무시를 받아들였다면, 혹시 망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혹시 망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무시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면 일단 부딪혀본다. 공부가 필요하다면 최대한 집중해서 필요한 지식을 얻는다. 관련 도서들을 최소 30권 이상 읽어보고 내가 꼭 알아야 할 정수를 뽑아낸다. 2~3주간은 잠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완전히 집중해서 지식을 농축시킨다. 지식이 어느 정도 생겼다는 확신이 들면 실전에 임해야 한다. 이게 진짜다.

인생이 예측불허이듯 사업도 예측불허이다. 다만 지나온 경험을 통해 우리는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는 노하우가 생기고 혹시 모를 실패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하는 법을 배운다. 삶에는 여러 가지의 기회가 있다. 어떤 기회는 처음부터 기회라는 느낌이 오고, 어떤 기회는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기도 한다. 정해진 것도 없고 알 수 있는 것도 없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온다. 다만, 한가지 진실은 기회는 구하고 찾는 사람에게 간다는 것이다.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확신과 신념이 흔들리 흔들리지 않을 때 기회는 손을 내민다. 그 손을 꽉 잡고 따라가야 한다.

엄마에게 갑자기 찾아온 구완와사
내가 대학교 3학년일 때 엄마는 구완와사를 앓으셨다. 구완와사란 안면마비라고도 하고 한방에서는 와사풍이라고도 불린다. 원인은 사람마다 다르지만 대개는 과로나 스트레스에 의해 얼굴의 근육을 움직이는 안면신경의 기능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쉽게 말해 얼굴 신경과 근육에 마비가 온다. 얼굴 근육을 조절하는 안면신경에 마비가 오면 한쪽 얼굴 근육의 움직임이 감소하여 얼굴을 움직일 때 양쪽이 서로 비대칭이 된다. 이런 비대칭의 결과로 한쪽 눈이 감기거나 입술 한쪽이 올라가 입모양이 일그러지게 된다(중략)약사가 되고 나서 아니 약국에서 본격적으로 약사 일을 하고 나서야, 나는 엄마의 구완와사에는 분명히 전조증상(前兆症狀: 병이 생기기 전에 나타나는 여러 증세)가 있었으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중에 물어보니 엄마는 눈가 근육이 이유 없이 씰룩씰룩 움직이거나 팔다리에 가끔씩 저린 증상이 나타났다고 했다. 어지럼증과 피로감도 느껴졌고 얼굴에 거미 같은 것이 기어 다니는 느낌도 자주 받았다고 했다그때 누군가가 이것이 구완와사나 풍의 전조증상 같은 것이라고 한 번이라도 말해줬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했다. 구완와사까지 가기 전에 이미 얼굴은 많은 것을 말해준다.
 
무엇보다 자기계발의 시간에 가장 공을 들여라!
무엇보다도 배움을 통한 자기계발의 시간에 가장 공을 들여야 한다. 당장 지금 약국의 경영에만 포커스를 둘 것이 아니라 약사로서의 자신의 삶에 대한 계획도 장기적으로 생각해두는 것이 좋다. 평생 하나의 약국만 하리라는 보장은 없지 않은가. 시대의 트렌드가 지금 내 약국에는 먼일 같아도 약사로서의 내 삶에는 언젠가 닥칠 일이다. 약국에 대한 투자와 나에 대한 투자는 같은 듯 다른 관점으로 봐야 한다. 세상에 쉬운 사업은 없다. 아무리 쉬워 보여도 세상에 사업이 쉬운 사람은 없다. 세상 쉬어 보이는 노점상의 점포 하나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오랜 기간의 노력과 고민이 처절하게 녹아 있다. 사업을 쉽고 어려운가의 관점을 보면 실패할 확률만 높아진다. 사업은 강점과 약점을 최대한 면밀하게 파악하고 약점에 대한 대비책을 최대한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사업의 성공 확률은 높아지고 실패의 확률은 낮아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사소통에는 말과 행동’, 2가지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호감 어린 호칭이나 대화는 의사소통의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하지만 언어만큼 중요한 의사소통 방법 중 하나는 바로 행동이다. 행동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말하는 태도나 자세 그리고 몸짓 등 모든 것이 포함된다. 인사는 상대방을 향해 30~40도쯤 허리를 굽혔다가 천천히 펴면서 상대방과 눈을 바라보면서 웃는 것이 가장 좋은 인상을 줄 수 있다. 호감을 주는 인사는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준다는 점을 기억하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인사를 받은 소비자의 입장이라면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갖게 될 것이다. 형식적인 인사는 오히려 불쾌감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정중하고도 관심 있는 태도의 인사를 접하게 되면 고객은 자신도 모르게 오픈 마인드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는 매장 내부의 어떤 것이든 더 쉽게 물어보게 된다. 결국 매장에서는 상담을 위한 기회를 더 많이 갖게 될 것이다. 행동이나 제스처만큼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차림새나 풍기는 품위이다. 특히나 약사는 깔끔하고 정갈한 가운을 입고 전문가적인 면모를 풍기면서 상담해야 한다. 약은 건강을 위한 것이고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믿음을 기반으로 상담하고 싶어 한다. 상담하는 손님들이 느끼기에 믿을 만한 차림새인지 항상 확인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다.

사업의 시간은 고객과 만나는 모든 순간의 총합이다
약국에서의 시간들은 일터의 삶이다. 수많은 시간들이 모여서 하나의 삶을 이뤄낸다. 그 수많은 시간들을 자세히 미분해보면, 고객과 만나는 모든 순간순간과 마주하게 된다. 약국에 방문하는 고객을 단순히 약을 구매하려고 하는 사람들로만 봐서는 안 된다. 지금 세상은 공급이 넘치는 세상이다. 비슷한 제품이 하루에도 수백 개씩 쏟아지고 있다. 단순히 좋은 제품을 구매하려는 것이라면 인터넷을 통해서 30초면 가능한 세상이다. 만들기만 하면 팔려나가던 30년 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이런 세상을 살아가는 고객들이 단골 약국에 와서 굳이 약사에게 제품에 대해 물어보는 이유는 뭘까? 고객들은 약국에서 어떤 제품을 구매할 건지 이미 결정하고 나서도 꼭 약사에게 확인받고자 한다. 믿을 수 있는 사람에게 자신의 선택이 맞는지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게다가 약은 단순한 제품 이상이다. 약으로 대표되는 모든 제품들은 나와 가족의 건강과 직결된다. 100세 세상을 맞이하는 시기가 아니더라도 건강은 삶에 있어 중요한 행복의 키워드 중 하나이다.

고객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습관들
열심히 하려는 마음에 너무 적극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도 조심할 일이다. 사람들은 너무 적극적인 영업 방식 앞에서는 자연스럽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나를 적극적으로로 설득할 것이라는 예상이 생기면 본능적으로 사람은 거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거부하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쉽게 부정적인 반응으로 결론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너무 적극적이기만 한 영업방식보다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보는 경청의 태도가 고객을 기쁘게 할 수 있는 중요한 습관이다. 고객을 대할 때는 고객의 고민을 먼저 파악해보는 것이 좋고 효과적이다. 과연 누가 제품을 구매하고 먹을 것인지? 가격은 적정한지? 고객이 가지고 있을 이런 고민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 상품에 너무 집중하면 상대방의 표정을 읽지 못하게 된다. 설명이 너무 집중하면 상대방의 표정을 읽지 못하게 된다. 설명이 너무 장황하거나 지나치게 전문적이면 손님들은 금세 지루해한다. 제품에 대한 설명은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 임팩트 있게 설명하고 손님의 질문에 대응하면서 나머지 부분을 진행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마케팅의 목적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
어떤 제품을 20%의 제품으로 선정할지에 대한 포지셔닝이 정확하지 못하다면 이것은 자기 야국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약국에 방문하는 고객들의 소비성향에 대해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차별화시켜야 한다. VIP에 해당하는 고객들에 대해서 어떻게 접근하고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우리가 해야 할 마케팅은 대기업이 하는 마케팅과 같을 수는 없다, 아니, 달라야 한다. 우리의 마케팅은 평범함 속에 비범함이 있어야 한다. 마케팅의 목적은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속에 저게 뭐지?’하는 궁금증을 유발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평범함에 비범한 마케팅의 의도를 숨겨보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때 진정한 마케팅이 시작된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혼자서 모든 것을 이뤄내려고 하면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설혹 이루어낼 수 있다 해도 대부분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소비하게 된다. 나 역시 혼자 힘으로 뭔가를 해보려다가 많은 것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 다른 사람의 노하우를 배워서 시간과 돈을 아끼면 언젠가는 그 2~3배의 손실을 감당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뼛속 깊이 체감했다. 덕분에 나는 여거 길을 올아오기도 했고, 부딪치고 깨지면서 온몸으로 사업을 체득해 배웠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과정은 결코 녹녹치 않은 경험들이었다. 피할 수 있었다면 반드시 피했을 법한 순간들도 적지 않다. 지금 아는 것을 그때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선택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간다.
 
그래서 나는 주변에 누군가 새로 사업을 시작하는 사장이 있으면 실전 경험을 충분히 익히되, 노하우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아낌없이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시간과 돈을 아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그중 가장 아까워해야 할 것은 당신의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픔에 지친 마음에는 먼저 위로가 필요하다
질병은 예고없이 어느 날 불쑥 찾아온다. 그리고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온 모이 병은 보통 마음의 병을 동반한다. 병이 지나가는 동안에는 병을 앓는 사람이나 옆에서 간호하는 사람이나 모두 다 진이 빠지고 힘이 든다. 상담 중심의 약국에서는 이런 마음의 위로가 가능한 경우들이 많다. 어떤 분은 약국에 와서 얘기를 나누고 가면 마음이 충전되는 느낌이라고도 말한다. 위로라는 것은 누군가의 무거운 하늘을 잠시나마 함께 들어주는 것이다. 제우스의 형벌로 온 하늘을 어깨에 메고 있는 아틀라스의 형벌을 잠시 도와주는 헤라클레스처럼, 잠시 숨이라도 쉴 수 있게 해주는 나는 그 순간만의 그의 헤라클레스이다.

아홉 개의 약국 중에 비슷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나는 의욕만 넘치고 아무 것도 몰랐던 시절 겁도 없이 첫 약국을 개국했다. 그리고 이후 8년 동안 지나온 약국들만 7군데였다. 지금까지 직접 경영했거나 경영에 관여했던 모든 약국을 합치면 9군데에 달한다. 어떤 곳은 8년 내내 경영한 곳도 있었고, 어떤 약국은 사기사건 덕분에 문도 못 열어보고 1년 내내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가 되었던 약국도 있었다.

9개의 약국 중에 비슷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비슷해 보였던 약국은 실제로 접하고 경영해보면 같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약국은 실제로 접하고 경영해보면 같은 곳이 하나도 없었다. 어떤 약국은 병원은 주변에 한 군데도 없는 상담 위주의 약국이었고 어떤 야국은 병원 바로 옆에 자리 잡은 독점약국이었다. 또 어떤 약국은 유동인구가 넘치는 변화가에 있었고 어떤 약국은 유동인구라고는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거의 전부였다.

당신의 약국에 오고 싶은 이유를 반드시 만들어라
웬만큼 변화한 어떤 사거리에서도 넘쳐나는 게 약국이다. 이런 환경에서 손님이 굳이 내 약국에 오고 싶은 이유는 무엇일까? 거리를 지나가는 수많은 손님들 중 어떤 사람에게는 반드시 내 약국에 오고 싶은 이유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미 가지고 있는 나의 장점과 실력을 제대로 어필하고 고객에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그것을 생각해야 한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약국을 차별화할 수 있는 것은 그 약국 하면 바로 생각나는 어떤 것에 달렸다. 그것이 바로 퍼스널 브랜딩이다. 사람도 무척 잘생겼거나 혹은 잊을 수 없는 살인 미소가 눈에 띄면 어느 순간 그 사람의 팬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한 번이다. 끌리는 마음이 생기고 궁금한 마음이 생겨야 더 보고 싶은 법이다. 물론 내 약국의 매력이 볼수록 매력적인 너일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최소한 자꾸 볼 수 있는 어떤 기회를 만들 것인지 생각해봐야 한다.

돈보다 사람을 남겨라
'구멍가게만 한 약국 하나 하는데 거창하게 경영은 무슨…. ‘이라고 생각한다면 거기까지가 그의 한계이다. 약국의 크기가 수익을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손바닥만 한 약국에서 생각지도 못한 큰 매출이 나는 경우도 많고 커다란 대형 약국이 순식간에 부도로 망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이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입장으로 다시 만나게 될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돈보다 사람을 남기겠다는 마음으로 사업을 해야 한다. 성공은 가게나 물건이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공을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사람이 알파이고 사람이 오메가다.

 

약사가 약국이라는 곳에서 행복하려면 내가 좋은 약사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지 진심으로 이해하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때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이해하고 나의 하루하루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하루라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장사꾼의 마음이 아닌 경영자의 아름다운 마인드이다.

 

에필로그》
오늘 걷는 나의 이 발자국이 반드시 뒤에 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내 길을 따라오는 누군가는 나와 같은 실수로 힘들어하지 않길 바라면서 부족한 나의 경험을 나눈다. 누군가와 긍정적인 에너지와 조언을 나누기 위해 만들었던 팜멘토카페는 부자약사코칭협회라는 카페로 다시 태어났다. 지금도 나는 나의 조언이 필요한 사람에게 시간과 상황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도움을 주고 있다. 누군가의 꿈을 이루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자 함이다. 나의 도움으로 그의 꿈을 이루고 또 그들이 알게 된 것을 세상과 나눈다면 이보다 더 이로운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리뷰는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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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선녀전 1
돌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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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돌배 작가입니다.
어느 제주도에 하프 마라톤을 하러 갔는데 서귀포시의 오래된 마을을 지나가면서 문득 이곳에 500 이상을 사신 할머니가 카페를 하고 있으면 재미있겠다는 상상을 했습니다. 원래는 구성진 배틀을 펼치는 욕쟁이 할머니 콘셉트였는데 번의 수정을 거치다 보니 귀염 터지는 선녀님이 되러버렸네요.

의문스러운 선문답을 주고받는 수수께끼의  신비로운 할머니. 짝짓기도 하고 엄마 집에 얹혀사는 등골 브레이커 호랑이 , 점순이 그리고 정체불명의 . 그때 하프 마라톤을 뛰면서 대충 스토리 구상을  했습니다. 집에 와서 그려봤는데 나름 재미있는 스토리일 같아 계속 그리다 보니 여기까지 왔네요.
재미있게 봐주세요! [작가의 ]

 

 

정이현 교수는 불면증으로 잠을 이룰수 없다. 낮에는 커피를 달고 산다. 이 교수가 커피는 절대 안되 하며 임상실험에 쓰는 알약을 주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연구원 김김의 고향집에 같이 내려가는 길에 커피를 찾는다. 계룡산에 선녀다방 눈에 띈다. 할머니가 바리스타이고 차림표가 심상치 않다. 선녀다방 1번 메뉴 사슴의 눈물이다.

 

옛날에 어머니가 해주신 이야기인데보름달이 뜨는 날에는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것들이 많아서 귀신들이 자주 보인대요.” 김김이 말을 한다. “그만해 무서워! 안그래도 계룡산이라 무서워 죽겠는데!”

인간세상에서 살고 있는 선옥남은 언니들과 목욕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다 끝나가니까 빨리 나가자어라? 내 날개옷이….미안, 옥남아! 점심시간이 다 끝나서천천히 찾아보고 올라와! 그렇게 언니들이 올라가 버리고 근처 사는 한 나무꾼이 행색도 초라하게 나타났다 699년 후 두 남자가 나타난 것이고~~

699년 전 그때 우리는 물 한 잔 떠놓고 혼례식을 올렸다. 사실 인간의 일생이란 천 계의 시간과는 달리 덧없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태어나고 죽더라. 그리고 또다시 태어나고, 죽고 날개옷을 찾지 못한 나는 인간 세상의 중력에 묶여 그가 다시 환생할 날만을 기다렸다.

 

선옥남의 딸 점순이는 몇 번의 환생을 거듭하여 지금은 호랑이로 태어났다. 누가 나의 서방님일까? 옥남은 서울로 올라가는 김김 일행의 차에 무조건 탄다. 점돌아 아마 네 아버지 볼 수 있을 것 같다점돌이는 일흔 까지 살다 갔다. 그리고 500년간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다가 어느 날 홀연히 알의 모습으로 나타났다.

김김은 선녀할머니를 자신의 방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정교수 집으로 간다. 선녀의 손만 닿으면 식물들이 살아난다.

 

 

생물학과 연구원 '김금'  심성이 착할 뿐 아니라 오지랖 때문에 남 좋은 일만 하고 다닌다.

생리 학적으로 수면마비는 학습화, 인지화 되었던 시각적 기억이 좌우뇌의 불안정성에 의해 단기간 제한되는 것이며 수면 중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신체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일 뿐이야. 오늘은 얼마나 가려나2편에 계속

 

오랜만에 만화로 된 책을 읽었다. 그림과 글이 이쁘게 꾸며져 있다선녀의 남편 나뭇꾼은 누구일까 궁금하다. 115일부터 tvn에서 월화드라마로 찾아옵니다. 많이 시청해주세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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