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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호새의 비밀 - 천재변리사의 죽음
이태훈 지음 / 몽실북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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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는 랑이도 살고 도 사네

 

특허와 변리사를 소재로 한 국내 첫 추리소설이라고 한다. 특허로 30년 가까이 일을 했고 1년에 200권씩 읽는 책덕후로 추리들을 열심히 읽다가 추리물을 펴냈다는 작가의 이력이다. 변리사라는 직업이 무엇인지 알게 된 소설이다.

 

변리사란 특허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사람으로 소위 자 달린 전문직에 속한다. 변리사는 특허법을 통해 기술을 다루는 기술 변호사라고 볼 수 있다. 특허 사무소대표 변리사로 밀린 업무와 상관 없이 새벽 까지 일을 하다가 퇴근하던 강민호는 친구인 송호성 사무실에 불이 켜 있는 것을 보고 사무실을 찾아가지만 문이 잠겨 있어 밖으로 찾아 나선다.

 

천재 변리사 송호성이 사무실 근처 주택 골목에서 살해당했다. 같은 직종에 일하고 죽마고우의 죽음을 목격한 강민호. 충격으로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리고, 용의자로 몰린다. 흉기에 쓰인 칼은 강민호 집에서 잃어버린 한자루였다. 강민호 사무실 건물 1층 쓰레기통에서 발견되었다.

 

송호성의 천재성을 인정하여 비밀을 지켜 주면서 특허를 등록 받도록 해 주는 조건으로 A기업은 송호성에게 사무실 일년 치 일감을 확보해 주겠다고 한다. 수습 변리사 선우혜민과 같이 일하는 조건으로 하였다.

 

 

 

경찰은 송호성의 주변 인물들 중에서 수습 변리사를 들이지 않는다는 송호성 변리사가 5년만에 들인 선우혜민도 조사하게 된다. 선우혜민은 송 대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친구인 강민호를 찾아가라는 말이 있어 증거품인 쪽지를 보여준다. AERUS-IL 이라는 글자를 추적해가면서 이야기는 미궁에 빠지게 된다. 영수증 뒷면에 쓰인 글자의 의미는 무엇이며, 전두엽 임상 실험, 국정원, 북한의 핵실험까지 궁금하여 책을 놓을수가 없게 만든다.

 

교훈을 한가지 말한다면 아이를 양육하면서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기를 죽이면 안된다. 아이는 칭찬을 먹고 자란다.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과 격려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기쁨은 누군가의 슬픔을 가져오니까

 

이 소설은 많은 인물들이 나온다. 사건이 전개될 때마다 나만의 상상력을 발휘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송호성이 대학공부를 하는 동안 장학금에 얽힌 이야기, 선우혜민의 아버지와 송호성의 오랜 인연은 마지막에 드러난다. 추리소설을 좋아한다면 이 책을 권해본다.

 

변리사는 2013년 기준, 1인당 평균 연수입이 56000만원으로 9년째 전문직 소득 1위 자리를 지켜 오고 있다. 독자들에게 조금 생소할 수도 있는 변리사라는 직업과 특허 전쟁을 소재로 한 장편 소설 산호새의 비밀 - 천재 변리사의 죽음이 몽실북스에서 출간되었다. 몽실북스 책을 한 권씩 읽어 가는 중인데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을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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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지막은, 여름
안 베르 지음, 이세진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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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소설가이자 편집기획자로 활동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와 사람들의 욕망에 주목하는 글을 써온 저자에게 루게릭병이 찾아왔다. 멀쩡한 정신으로 죽어가는 육체에 갇혀 죽음을 기다려야만 하는 병. 안베르는 소망한다. “나는 내 생의 마지막을 아름답게 나의 선택으로 완성하고 싶다.” 존엄사에 대한 이 글을 썼다.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자신의 병을 인정을 하지 못한다. 그동안 죽어감, 죽음, 늙어감에 대한 책을 한 두권 읽어보면서 나 자신도 그런 과제에 직면하면 스스로 초연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본다. 시간이 지나면 그런 느낌이 서서히 엷어가는데 입원을 앞두고 많이 초조했던 기억이 있다. 뭔가를 정리를 해야겠는데 무엇부터 정리할지 일이 손에 안 잡히는 그런 일들 말이다.

 

내가 ALS(근위축성측삭경화증) 일명 루게릭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나는 서서히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얼마 못 살고 죽을 것이 분명하다. 진단을 받고서 이미 한 차례 충격에 빠져 꼼짝도 못하다가, 내 생의 마지막을 기록하기로 결심했다. 프랑스의 문화와 법이 일방적으로 부여하는 죽음 환상을 뛰어넘어, 나에게 친밀한 죽음 환상을 다시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하여. P23

 

루게릭이 그녀의 꿈을 훔쳐가고 평화롭고 깊은 밤이 없어 진지 2년이 됐다. 커피를 마실때도 빨대로 마셔야 한다. 이제 시작되는 또 다른 삶 앞에 머리를 조아릴 때다. 비록 이제 나는 그삶에 속해 있지 않더라도.

 

신경과 의사가 몇 달을 지내오다 기력이 떨어지고 근육량도 줄고 피로해지며 점점 힘들어졌고 살도 많이 빠지고 팔도 잘 움직일 수 없어 잘 타던 자전거를 갑자기 못 타게 된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녀의 주치의에게 보낼 소견서를 작성하면서 척수 앞뿔 세포 손상이라고 쓴다.

 

척수 앞뿔 세포, 루게릭병, 근위축성즉삭경화증, 의사가 처방한 리루텍이라는 알약을 준다. 자신의 병을 담담하게 써내려 갔을까 읽으면서 나는 잠시 멈춘다. 남편과 딸, 어머니는 눈물을 쏟지 않는다.

 

나는 내 어머니의 딸이자 내 딸의 어머니다. 파도가 밀려오고 엄마하는 소리를 들으며 절망의 밑바닥을 드러낸다고 표현한다. 나의 절망, 내 딸의 절망, 내 어머니의 절망 자신이 죽고 난 후 남은 사람들을 걱정하는 것이다.

 

시동을 껐다. 갑자기 더는 못 버티겠다 싶어서 그대로 무너진다. 나는 운전대에 머리를 찧으면서 절규하고 눈물을 흘린다. 다 부숴버리고 싶다. 이놈의 차에 발길질을 퍼붓고 싶다. 하지만 나는 그것조차 할 수 없다. 아직은 죽기 전에 차를 몰아 달리고 싶다. P73

 

 

나는 죽기 전까지 누가 내게 딱 붙어 수발들기를 원치 않는다. 나는 갇혀 지내기를 원치 않는다. 누가 나를 자동차 뒷자석에 앉혀서 소풍에 데려가는 것도 싫다. P74

 

621, 르아브르가 500주년 기념 축제를 연다. 내가 마지막으로 맞는 여름, 마지막 여름의 축제인데 눈곱만큼도 우울하지 않다. 저 높은 곳에 자리한 이 도시에서 내 심장은 자바 춤을 추고 싶어 한다. 마음이 우울하니 생각이라도 편하게 하는 거 같다.

 

안 베르는 친구들과 마지막 여행을 떠난다. 벨기에로 가는 장거리 자동차 여행에서 아무 말이나 농담을 쏟아내고 아주 즐겁다. 친구들은 불치병 앞의 절망이라는 막다른 절벽에서 비끗하며 추락하지 않게 도와준다. 가족과 친구들을 생각한다. 우리가 서로에게 안녕을 고한 이 아름다운 방식을, 환하게 미소짓지만 그들의 눈시울을, 현실로의 복귀를, 그들의 용기를 사랑을 생각한다.

 

저자는 전망대에서 젊은 음악가 한 무리가 색소폰을 켜는 것을 본다. 그들이 자바를 연주할 때 눈물이 흘러 내린다. 무엇 때문에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는데 참을 수가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려 하지 않는다. 죽을 사람이 진지하면 뭐하나. 책을 덮으며 그냥 멍해졌다.

 

나의 마지막은, 여름은 프랑스에 존엄사를 합법화시키기 위해 생의 마지막을 바친 작가 안 베르의 에세이다. 저자는 2015년에 루게릭병 진단을 받은 후 프랑스에서 죽음을 선택할 권리를 주장했다. 그리고 2017102, 59세의 나이에 벨기에로 가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실천했다. 저자가 스스로 생을 완성했다는 소식은 전 세계를 감동과 슬픔에 빠뜨렸고, 이틀 뒤인 104일에 이 책이 출간되었다. 프랑스의 존엄사법 개정안은 20182월 국회에 제출되어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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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의 작은 향수가게 로맨틱 파리 컬렉션 3
레베카 레이즌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시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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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젤리제 거리의 작은 향수가게는 로맨틱 파리 컬렉션 시리즈 세 번째 책이다. 센 강변의 작은 책방, 에펠탑 아래의 작은 앤티크 숍 책이 나올때마다 기다려 대출을 해서 읽어 보았는데 마지막이라니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도 파리에 가 있는 느낌이다.

 

사랑과 낭만의 도시 파리에서 열리는 향수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미국의 작은 마을 위스퍼링 레이크스에서 온 델, 조향사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 사랑도 키워가는 로맨스 소설이다. 델은 정규 교육과 화학 학위증은 없지만 할머니에게 배운 향수 바이블이라는 비밀 무기, 천부적인 후각이 있다. 쌍둥이 동생 젠과 함께 뉴욕에 향수 부티크를 열 계획이었는데 동생의 남자친구 등장으로 보류된 상태이다.

 

파리의 작은 향수가게 르클레르 파르퓌메리, 수장인 뱅상이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세바스티앙이 후계자가 된다. 아버지의 뜻대로 새로운 조향사를 발굴하려고 대회를 개최한 것이다. 델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세바스티앙과 사사건건 엮이며 사고를 친다.

 

대회에 참가한 프랑스 출신 클레망틴과 룸메이트가 되고, 막강한 경쟁자들을 보며 자신감이 없어진다. 캐스린, 아나스타샤 등 방해 공작을 펼치지만 대회에는 무사히 참가하게 된다.

 

잘 몰랐던 프랑스 에티켓과 생활방식도 있다. 일행끼리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거리 쪽을 바라보게끔 놓여 있는 카페 테라스의 의자들, 거기에 앉을 때 팔꿈치를 집어넣고 다리를 오므려야 하는 에티켓, 커틀러리가 놓인 테이블에 앉을 때는 음료만 시켜서는 안 되는 것 등 이 곳의 문화를 알게 된다.

 

델은 향수 대회의 첫 번째 과제에서 꼴등을 했다. 참가자들에게 멘토가 한 명씩 따르는데 델은 세바스티앙이다. 그의 매력에 끌려서 대회를 망칠거 같은 예감이 들지만 두 번째 과제를 치르기 위해 프로방스에 가게 된다. 시선이 닿는 끝까지 라벤더 꽃밭의 보랏빛으로 물든 풍경, 장밋빛의 로제와인을 곁들인 낭만적인 저녁, 프로방스에 머물며 명작을 그려낸 반 고흐 이야기를 들려준다.

 

나는 뱅상이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직접 만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어느 면으로 보나 독특했던 그는 단순히 향기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거기에서 연상되는 감정까지 소환하려고 했다. 예를 들면 바닷가에 놀러 간 순간을 포착하듯 모래성, 웃음소리, 눈부신 햇살, 굽이치는 파도의 짭짤하고 산뜻한 냄새, 그리고 무엇보다 모래사장에서 햇볕을 쬐며 흘러가는 삶을 감상할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을 담으려고 했다. 어떻게 냄새로 웃음소리를 재현할 수 있을까? 첫사랑의 알딸딸한 느낌은 또 어떤가. 그게 과연 가능한 얘기일까? p201

 

유명한 조향사 루이자 엘리엇의 수업에서 델은 사랑이라는 향수를 만들어서 우승을 한다. 우승한 사람은 뱅상의 작업실을 쓸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진다. 세 번째 대회에서 델이 우승을 하게 되고, 나이 많은 렉스의 과거를 알게 된다. 아룬야라는 여인과 헤어지고 도피하듯이 대회에 참석을 하였다. 우승을 못해도 파리에 머물거라 한다. 릴라는 부모님의 반대를 무릎쓰고 대회에 온 만큼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현실에 마음 아파한다. 과연 마지막 대회에서 델과 릴라 중 누가 우승을 할 것인가? 세바스티앙에 대한 델의 짝사랑이 이루어질지 가슴 설레며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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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 권여선 장편소설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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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해언 언니가 살해되었다. 월드컵이 한창이던 6미모의 여고생 살인사건이라고 불렸던 비극이 벌어지고, 사인은 외부 충격으로 인한 두부 손상이다.

 

당시 용의자였던 한만우를 형사가 취조하는 모습을 다언이 상상하는 장면으로 소설은 시작한다. 형사는 한만우와 신정준을 취조할 때 외모와 가정환경에 범인이 누구인지보다 누구를 족쳐서 범인으로 만들 수 있는지, 만들어야 하는지를 생각했을 것이다.

 

언니보다는 평범한 얼굴에 조금 통통한 다언, 오이지 같은 얼굴, 홀어머니 동생과 사는 한만우, 말끔한 얼굴에 회계사 아버지를 둔 신정준, 입술이 붉고 예쁜 해언의 친구 윤태림, 해언의 친구이고 다언과 문예활동을 하며 [레몬과자를 파는 베티번씨] 시를 쓰던 상희 등 소설 속 인물이다.

 

신정준은 자퇴를 당하고 유학을 가버렸다. 한만우는 일곱차례의 조사를 받았고 범행을 자백하지 않는다고 두드려 맞기도 하고 혐의 없음으로 풀려났다. 이 사건은 미제 사건으로 남는다. 그 비극에 얽힌 사람들의 삶은 송두리째 달라진다. 엄마와 다언은 소문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 이사를 했지만 먹는 것, 씻는 일 조차 엄두를 못낼 정도로 추락한다.

 

해언의 이름은 혜은이었는데 엄마는 그 이름을 찾겠다고 개명 신청을 하고 혜은이라는 이름에 집착을 하다가 살아 있는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혜은이 되었다. 다언이 엄마에게 준 선물이다. 돈에 벌벌 떠는 엄마가 선뜻 수술비를 대주겠다고 하여 다언은 성형수술도 한다.

 

그 사건 이후로 다언과 주변 사람들은 뭔가를 잃어버렸다. 다언만은 자신이 뭘 잃었는지 자각하고 있었다. 귀국하여 태림과 결혼을 하자고 하는 정준 둘 사이는 그리 행복하지 않은 듯 보인다. 태림의 독백처럼 상담사에게 털어놓는 이야기는 섬뜩하다.

 

복수의 주문처럼 레몬, 레몬, 레몬이라고. 천사의 복수가 시작되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다언은 한만우 집을 찾아가면서 이웃 치킨집 사장님은 일머리가 있고 착하고 일도 잘하고 좋은 사람으로 기억한다. 목발에 의지하고 있는 만우를 보고 다언은 당신 천벌 받은거야한다. 몇 번 만우의 집을 찾아가면서 여동생의 계란후라이를 같이 먹으며 친해진다.

 

어떤 삶은 이유 없이 가혹한데, 그 속에서 우리는 가련한 벌레처럼 가혹한 줄도 모르고 살아간다. 어쩌면 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식당 주방에서 일한다는 그들 남매의 엄마는 난쟁이였다. 선우를 좀더 가혹하게 눌러놓은 것처럼 작았다. 그 엄마를 보자 이상하게도 내가 앞으로 어디를 찾아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가 분명해졌다. 내가 살아갈 방향도 정해졌다. 일단 엄마에게서 독립할 것이다.(p145)

 

다언은 대학 도서관 계단에서 우연히 만난 후 십년 만에 상희 언니를 만난다. 다언이 윤태림에 대해 물었다. 상희는 동창에게서 태림은 신정준과 결혼하고 몇 년 뒤 어린 딸 아이가 유괴되었다는 얘기만 들었다. 다언은 한 남자아이가 태어나 난쟁이 엄마와 누이동생만 있는 가난한 집에서 새신을 사지 못해 직직 끌고 다니고 열두살 때부터 푼돈을 벌며 학교 다니고 열아홉살에 살인 누명을 쓰고 경찰에게 매를 맞고 이웃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학교에서 쫒겨난다. 군대에 가서 육종에 걸려 다리를 절단하고, 의병전역을 하고 세탁공장에 취직해 화상을 입으며 육종이 폐에까지 퍼져 서른살에 죽는다. 이게 신의 섭리라고 말할 수 있는지 상희에게 말하고 떠난다.

 

나는 다언이 왜 이런 얘기를 하는지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들으면서 점점 매료되었다. 그러나 나를 매료한 건 그녀가 하는 말의 내용이 아니라 형식, 그러니까 다언의 태도였다. 다언의 말에서 나는 지독한 쓸쓸함을 느꼈는데, 그 느낌은 단순히 다언이 외로워 보인다는 차원을 넘어 다언이 고립되었다는 것,자의든 타의든 사람들로부터 격리된 상태에 있다는 것에서 왔다.(p185~186)

 

이 소설에 레몬으로 대표되는 노란빛이 있다. 레몬은 화자 다언이 친언니보다 따랐던 선배 상희가 썼던 시에 등장하는 단어이면서, 다언이 한만우 집에서 함께 먹었던 따뜻한 계란후라이의 애틋한 노란빛을 떠올리게 한다. 노란빛은 언니 해언이 죽기 직전 입고 있었던 원피스의 색깔이기도 하다. 다시 오지 않을 좋았던 시절을 상징하는 레몬의 노란빛은 다언으로 하여금 복수를 결심하게 만드는데 이 소설의 반전이 숨어 있다.

 

살인으로 시작한 추리소설을 읽고 나니 마음이 헛하다. 레몬을 읽으면서 안타까운 삶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서 당신의 삶이 평하기를, 덜 아프기를, 조금 더 견딜 만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당신의 평하지 못한 삶의 복판에, 아프고 무섭고 견디기 힘든 삶 한가운데, 곱고 단단하게 심어놓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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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의 문신가 스토리콜렉터 73
헤더 모리스 지음, 박아람 옮김 / 북로드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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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우슈비츠의 문신가였던 랄레 소콜로프와 4년간의 인터뷰를 통해 탄생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희망과 용기에 관한 이야기! 유대인 대학살이라는 참담한 현실 속에서 희망을 움켜잡는 용감하고 잊을 수 없는 아우슈비츠 문신가의 사랑 이야기이다.

 

19424월 랄레 소콜로프는 가축을 실어 나르는 화차의 트럭에 몸을 실었다. 모든 유대인 가정은 18세 이상의 자녀 한 명을 독일 정부에 내놓아 일하게 해야 한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인 슬로바키아 크롬파치에 왔다. 형이 간다는 것을 랄레가 가게 되었다. 아우슈비츠에 도착했을 때 누군가 말을 한다. 살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시키는대로 해야 한다.

 

수용소에 오면 등록절차를 하고 왼쪽 팔뚝에 숫자를 새긴다. 랄레의 숫자는 32407이다. 수용자들이 한꺼번에 죽임을 당하는 것을 목격하고 발진티푸스에 걸려 며칠을 앓아 누웠지만 동료에 의해 살아난다. 여러 언어를 구사하는 덕분에 테토비러(문신기술자)가 된다. 그의 민족이기도 한 희생자들의 팔에 평생 지워지지 않을 잉크로 유대인 대학살의 상징인 수용번호를 남기는 일이었다. 오직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다. 겁에 질린 채 몸을 떨며 문신을 새기려고 기다리는 사람들 중에는 어린 소녀가 있었다. 랄레는 그녀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그리고 자신만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이 소녀의 목숨도 책임지겠다고 결심한다. 그녀의 이름은 기타 푸르만이다.

 

나는 그녀의 팔에 숫자를 새겼고, 그녀는 내 심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수용자들에게 문신을 새기는 건 힘들지만 살아야 하기에 그 일을 꿎꿎이 해낸다. 가방을 가지고 다니면서 폴리티셰 압타일룽(정치부라는 말 게슈타포)라고 하면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다. 처음 트럭에 같이 실려 온 아론, 테토비러를 알려준 페판, 조수로 일하게 된 레온, 초콜릿과 소시지를 물물교환 해주던 빅터와 유리 부자, 둥치가 큰 야쿠프, 같은 수용소에 살게 된 루마니아 출신 집시들, 늘 감시하는 장교 바레츠키, 사랑하는 기타 친구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죽음의 수용소에서 그는 살아 남았다.

 

유대인 한 명을 죽여 다른 유대인 열 명을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에요.’ 수용소에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다른 동료를 생각하는 마음이 감동적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난 후에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랄레와 기타는 194510월에 결혼해 브라티슬라바에 터를 잡았다. 동업을 하다 불법으로 재산상 이득을 얻었다는 이유로 체포 되어 일라바 교도소에서 2년 동안 복역을 선고 받는다. 기타가 뇌물로 관리들을 매수해 랄레를 빼낸다.

 

노인(랄레)은 저자 헤더 모리스와 마주한다. 얼마나 빨리 쓸 수 있는지 그의 인생담을 듣고 생각할 요령이었다. 랄레가 서두르는 건 기타가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랄레와 기타가 나치의 협력자로 보일지도 모르는 두려움을 털어 놓으면서 60년이 지나서도 여전히 눈시울을 적시고 머뭇거리는 목소리었다. 랄레는 이런 신조를 갖고 살았다. '아침에 깨어나면 그것만으로도 그날은 좋은 날이다.' 기타는 2003103일에 세상을 떠났고, 랄레는 20061031일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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