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폴 크루그먼, 미래를 말하다
폴 크루그먼 지음, 예상환 외 옮김 / 현대경제연구원BOOKS / 2008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내 기억이 맞다면, 폴 크루그먼 교수가 200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을 것이다?  

어떤 이는 노벨상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보면 미래의 세계 경제 흐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나는 전,후자 모두 동의한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노벨경제학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세계경제 패권을 쥐고 있는 자본주의자들의 몫이고, 그들에 의해 세계경제가 끌려가기(?) 때문이다.(근데 최근에는 양상이 다르게 중국이 미국의 목덜미를 꽉 쥐고 있다. 오야붕의 후원을 입은 넘버쓰리가 넘버투를 제끼고 이젠 오야붕의 목까지 노리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은 바퀴의 양축처럼, 정치는 공화당과 민주당 양당제로, 경제는 시카고학파(신자유주의자)와 케인스학파로 대변된다. 크루그먼 교수는 레이거노믹스, 부시 부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가하며, 밀턴 프리드먼을 꼴통 취급하고, 그들의 추악한 과거를 들춰낸다. (kkk 등) 

왜 크루그먼 교수가 그렇게 공화당과 신자유주의자를 씹어대나 했더니 책 말미에 자기는 케인스주의자며 골수 민주당원이라고 밝힌다. 그럼 그렇지, 역시나 였다.

크루그먼 교수는 결국 작금의 경제위기가 꼴통 신자유주의파와 공화당 때문에 발생했다며 침을 튀기며 얘기한다. 그래서 다음번 세계대통령(?)은 흑인 오바마가 될 테니까 까불지 말라고 으름장까지 놓는다.

그런데, 내가 볼 때는 그놈이 그놈이다. 별반 다르지 않다는 말이다. 그래서 이들의 본질은 같다. 세계를 경제적으로 지배하려는 미국의 대가리를 차지하려는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란 말이다.  

이 책의 역자는 이 책 원전의 'liberalism'을 진보주의로 해석할 지, 자유주의로 해석해야 옳을 지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역자는 문맥상 신자유주의에 대비되므로 진보주의로 해석을 해버린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진보주의자 보다 자유주의란 원래 의미대로의 해석이 옳을 듯 싶다.   

루즈벨트가 추진한 뉴딜정책을 공화당 보수 꼴통들(신자유주의자들)과 신자유주의경제학자들이 뒤집어 놓았다고 분개하는 것에서 크루그먼은 스스로 진보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란 표현이 더 어울린다. 다시말해 보수에서 왼쪽으로 치우친 정도이다. 만약 그가 진보주의자였다면 루즈벨트에게도 메스를 들이대 신랄하게 비판했을 것이다.(반면 공화당 꼴통들은 보수에서 너무나 오른쪽으로 가버린...)

하지만, 오른쪽으로 너무 멀리간 보수 꼴통이나 왼쪽으로 조금 치우친 보수가 뭐가 다를까? 크루그먼 교수가 주장하는 경제정의도, 본질을 들여다보면 결과적으로 약소국의 경제침탈을 통한 자본주의 미국의 번영을 위한 것이고, 오바마가 부르짖는 공정성도 보수 꼴통 부시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미국의 자본주의자가(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부르짖는 어떠한 정의도 공정성도 다른 약소국을 밟고 일어서려는 그들의 사악한(?) 본성을 감추기 위한 가면에 불과하다. 

과거 플라자합의를 통해 전쟁패전국인 일본과 독일을 협박해서 엔, 마르크화를 평가절상하여 미국이 자국 빚을 탕감한 것처럼, 금번 금융위기 때 발생한 땡빚을 털어내려는 미국이 중국을 협박해 대는 꼬라지를 보며, 공정성이란 이름이 가당하기나 한 것인지...   

그래서 역자가 고심한 liberalism은 '진보주의'란 해석보다 '자유주의란' 해석이 옳으며, 크루그먼 교수는 자유주의(좌향 보수주의) 사상을 가진 케인스학파 경제학자 정도로 불러야 옳을 듯 싶다.

세상에서 재미있는 게 불구경과 싸움구경이 아니던가?  그래서 이 책은 상당히 재미나다. 미국 집안 싸움을 구경하니 이 어찌 재미나지 않겠는가?   "다음 번에는 꼴통 공화당원이면서 신자유주의자인 미국의 어느 경제학자가 나와서 민주당의 과거를 들춰내고 꼴통 짓을 할 것 같다"는 미래를 말해 본다. 하지만 그때는 우리 삶이 약간은 더 퍽퍽하지 않을 까 우려스럽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성적 충동 - 인간의 비이성적 심리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J. 쉴러 지음, 김태훈 옮김, 장보형 감수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애커로프 교수의 자그마한 소논문을 쉴러 교수의 논점을 통해 옮겨 놓은 듯 하다. 

애커로프는 서문에서 자신감, 화폐착각, 이야기 등 '야성적 충동'의 근거들을 정의하고,  본문에서는 그 사례를 쉽게 설명하고 있으며, 결론에서는 재차 야성적 충동에 대해 강조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2부 본론부터는 명확하게 논리적인 구성을 띄고 있지만, 서론 부분에서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듯 이상하다는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꼭 저자의 시각을 누가 자기 방식의 시각으로 고친 듯한...)  

 조지 애커로프와 쉴러의 공저로 얘기되고 있지만 이 부분도 어딘가 이상하다. 

게다가 역저자의 경제적 지식을 보완하기 위한 감수의 역할이 도를 넘어 서 저자에 대한 감수까지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든, 케인즈든 애커로프 교수가 얘기하고자 하는 바는 기존경제학을 야성적 충동의 시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비록 케인즈에서 인용을 했다고해서 그가 케인즈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감수의 말에서 장보형씨는 신자유주의파 관점에서 케인즈를 무던히 까대는데, 자신이 몸 담은 곳이 금융권이어서 그런가? 

이 책을 마지막 감수의 말을 읽음으로써 역자와 감수에 의해 이렇게도 다르게 책 읽기를 유도하고 강제하는지 적확하게 알 수 있었고, 

왜 서론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고 서로 엇박자로 노는 이유가 야성적 충동을 신자유주의 경제학의 관점으로 재해석했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씁슬함을 지울 수 없다. 애커로프 박사가 말하는 야성적 충동 중의 하나인 '이야기'가 정말 들어 맞는 게 아닐런지... 얼른 원서를 사서 확인하고 싶다. (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