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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그림으로 시작하는 하루 논어 - 세상의 기준에 좌절하지 않는 어른의 생활법
양승렬 지음 / 한빛비즈 / 2024년 11월
평점 :
자립, 불혹. 나이 때에 맞춰 논어를 읽어야 한다는 책이 유행이다.
하지만 그 나이에만 논어를 통해 세상의 진리와 인간관계, 삶의 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르침에 대한 적절한 주석과 시대에 맞는 이해의 통찰이 있다면 어느 연령대에서도
읽힐 수 있으며 실천이 가능한 것이 논어다. 그래서 동양 고전 준에 가장 많이 읽히고 삶을 살아가는데
이치와 교육, 문화, 가치관에 대한 주제의 논어는 읽고 곱씹어
자신의 삶의 자양분으로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삶이 경제, 문화, 기술적으로 크게 진화해도 본바탕을 유지하는 것은 인간 현실 관계를 바탕에서 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논어를
정의할 순 없지만 단편적으로 말하면 관계의 정의 일 것이다. 사람, 자아, 사유, ,풍속, 문화, 그리고 사회적 정의 등. 사람들은 자신의 이상과 현실이 틀려진 양상을
보일 때 마다 사회, 시대적 정의를 찾고 자신의 몸과 마음가짐을 확고히 하고자 한다. 왜냐면 인의, 선함, 예의, 효도에서 자신을 갈고 닦을 때 자신은 잘못되지 않았으며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 믿기 때문이다.
책은
인생의 집약적인 한 문장의 논어를 주석보단 시대적 상황에 맞춰 설명하고 저자의 경험과 조선의 그림에 비추어 이해를 돋구고 있다. 서로만의 이해의 기준은 상이하지만 그림을 통해 배경과 사상을 이해한다면 왜 논어를 읽고 행해야 시대에 역행하지
않는 관계를 만들고 삶을 실천하는지 우리는 수긍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모르지만 초등시절에 수묵화를 그리게 시키면 했던 것이 사군자이다. 매난국죽. 책은 사군자를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로움에 밝다.’라고 해석한다. -위령공편-에
나오는 말로 “교묘한 말은 덕을 해치고,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계획을 망친다”는 <교언난덕 소불인즉난대모>이다. 왜 선비를 성찰의 소재로 매난국죽에 비유했을까. 아마도 심미와 같은 회화적 아름다움 보단 고고한 정신을 빗댄 것은 아닐까. 사대부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고난의 계절에 절개를 보이는 듯한 식물들을 통해 선비의 정신, 선구자의 모습을 보인
것은 삶의 지향성이라 말한 것 아닐까. 허련의 (묵매)에서 매화의 줄기와 가지가 험난한 바위를 뚫고 생명력을 들어내며 자신의 신념대로 나아가겠다는 기상을 보이여 경이롭다
한다. 이처럼 그림에서 줄기의 방향이 험난해도 지속적으로 나아가며 생명력을 보이듯 우리도 어려움 겪고
있다면 더 큰 방향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고 명심하고 행동한다면 좋겠다고 한다.
시대적
배경이 있어야 이해가 쉬운 ‘논어’. 조선의 그림에 비추어
이해한다 것은 더욱 어렵지 않나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조선의 그림에 대해서 문외해도 좋다. 단순히 교육에서 접한 그림과 이해를 상충 시켜 연상하기 쉽고 실천하기 쉽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논어’는 고절을 이해하고 마음에 새기는 것이 아닌 실천해야 현실에
변화가 되는 현실적인 학문, 그림을 통해 이해한다면 그 이해는 빠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