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의 로렌스 - 전쟁, 속임수, 어리석은 제국주의 그리고 현대 중동의 탄생 걸작 논픽션 12
스콧 앤더슨 지음, 정태영 옮김 / 글항아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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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로렌스>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에서 아랍 군대를 이끌고 전장을 누빈 T. E. 로렌스(1888~1935)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미국의 국제 분쟁 전문 기자인 스콧 앤더슨(Scott Anderson)으로 이 책은 로렌스의 출생부터 유년기, 옥스퍼드 재학 시절을 거쳐 전쟁에서의 활약, 전쟁 후 트라우마와 불행한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다룬다. 


저자는 주인공 로렌스 외에 자국의 이익을 위해 활약한 다른 세 명의 젊은이를 등장 시켜 당시 중동의 정세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고, 왜 현대 중동이 지금과 같은 난장판이 되었는지, 그 씨앗을 뿌린 자들이 누구인지 수많은 자료를 토대로 객관적으로 밝혀낸다. 


이 책은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중동에 불어 닥쳤던 서구 열강의 탐욕과 그로 인한 싸움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그들의 상식을 뒤엎는 쟁탈전은 절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영국은 맥마흔-후세인 서한으로 아랍인들을 자신들의 전쟁에 이용했고, 사이크스-피코 선언으로 프랑스와 함께 아랍인들을 배신했다. 거기다 밸푸어 선언으로 시온주의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땅을 약속하기까지 했으니, 영국이 얼마나 오만한 나라인지 알 수 있다. 영국의 이런 대책 없는 플레이의 결과로 지난 100년 간 중동에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 생각해보면 화가 난다.

종전 후 영국과 프랑스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시리아를 나눠 갖고 중동 영토에 자기들 마음대로 선을 그어 현대 중동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처칠은 로렌스의 죽음을 두고 "나는 그가 동시대를 살았던 가장 위대한 존재 가운데 한 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어디서도 그와 같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제 아무리 원해도 그와 같은 인물을 두번 다시 만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p.814) 라고 말했다. 


로렌스를 두고 제국주의의 하수인, 자아도취적 이상주의자, 희대의 영웅 등 여러 엇갈린 평들이 있지만 아랍의 독립을 위해 싸운 그의 마음은 진심이었다고 생각한다. 또한 '역사에서 이처럼 신비롭고 매력적인 인물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라비아의 로렌스>는 8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책이지만 로렌스라는 인물이 워낙 매력적이고 놀라워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는 내내 '어떻게 이런 사람이 있을 수 있지?'라는 생각이 끊이질 않았다. 중동이 어떻게 지금과 같은 혼돈과 고통의 땅이 되었는지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데이비스 린 감독의 1962년 작 영화 <Lawrence of Arab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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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8-22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우 영화가 무려 62년이나 되었군요.

아라비아의 로렌스, 영화로도 한 번
만나 보고 싶네요.

책의 두께가 어마무시하네요.

coolcat329 2024-08-22 19:31   좋아요 1 | URL
유툽에 영화가 있어요. 오마 샤리프, 안소니 퀸도 나오는데 무엇보다 사막의 영상미가 정말 강렬합니다. 대작 중의 대작이에요~
 
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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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외로운 소년과 뱀파이어 소녀의 사랑과 우정이 중심 이야기지만 소설은 주변 소외된 이들의 삶도 다룬다. 모두가 먹고 살기 위해 각자도생해야 하는 삶, 뱀파이어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의 피를 먹고 살지만 그 누구보다 그 세계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흡혈소녀의 간절한 부탁, “들어가도 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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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4-08-02 0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즘같이 더운날 딱이겠습니다!

coolcat329 2024-08-02 09:31   좋아요 2 | URL
읽은 지 좀 됐는데 이제야 100자평을 썼네요. 저 지금 폴스타프님 리뷰 읽고 <태풍의 계절>읽고 있는데 정말 문장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에 더위도 잊고 있답니다. 😅

잠자냥 2024-08-02 0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잉 이거 영화 강추입니다!

coolcat329 2024-08-02 09:35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오랜만이에요. 영화 좋다는 얘기듣고 찾았는데 없더라구요. 참으로 매혹적인 소설입니다.

물감 2024-08-05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잘 지내시죠?? 서재에서 오랜만에 보네요 ㅎㅎ

coolcat329 2024-08-05 17:35   좋아요 1 | URL
물감님~오랜만이에요. 이렇게 안부인사 주시고 감사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물감님도 건강히 잘 지내시겠죠? 요즘 조금 여유가 생겨 알라딘 방문하고 있는데 올 말까진 좀 많이 바쁠 거 같네요.
그래도 틈틈히 들어와서 글 남길게요! 더위 조심하세요!
 
카사노바의 귀향.꿈의 노벨레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7
아르투어 슈니츨러 지음, 모명숙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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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내가 카사노바인데, 그 보잘것없는 늙음의 법칙이 왜 내게도 적용돼야 하는가‘ 나이들어 성적 매력이 사라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53세의 카사노바와 겉으로는 화목해 보이는 한 부부의 숨겨진 욕망을 통해 결혼과 에로스적 욕망 사이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인간 존재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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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단세 모모라_M - 200g, 홀빈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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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커피지만 산미가 강하지 않아 편안하다. 원두 소개글에는 고소함이 없다고 나와 있지만 전체적으로 고소함과 향긋함이 잘 어우러진 밸런스가 좋은 커피이다. 원두 크기도 균일하고 단단해서 고급진 느낌. 요즘 알라딘 커피가 참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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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 열린책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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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은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후 라틴 아메리카에 등장한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로베르토 볼라뇨(Roberto Bolano 1953~2003)가 2000년에 발표한 작품이다. 


"나는 지금 죽어 가고 있건만 아직도 하고픈 말이 너무도 많다. 나 자신과는 평화롭게 지냈는데. 그저 묵묵히 평화를 누렸건만. 그런데 느닷없이 이 일 저 일 떠올랐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칠레의 밤>은 세바스티안 우루티아 라크루아라는 신부이자 문학 평론가가 죽음을 앞에 두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일종의 회고록이다. 


소설은 1970년 선거에 의해 세계 최초로 사회주의 정부를 수립한 아옌데 정부, 정부의 개혁 정치에 대항해 일어난 군부 쿠데타 그리고 17년간 이어진 피토체트의 독재를 배경으로 한다. '이바카체'라는 필명으로 문단에서 활동한 한 사제의 고백(혹은 자기 변명)을 통해 칠레 문학과 지식인들의 위선을 고발하는데 그 내용이 참으로 씁쓸하다.


일례로 1973년 쿠데타가 성공하고 이바카체에게 수상한 두 남자가 접근, 피토체트와 몇몇 장군들에게 마르크스주의 강의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는다.(이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함) 

10주에 걸친 강의를 끝내고 이바카체는 이 사실을 동료들이 알면 어떻게 생각할지, 이 일이 자신의 문인으로서의 경력에 해가 되진 않을지를 걱정하며 '침대에 대자로 누워'(p.116) 우는데, 나는 이 장면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처음에는 독재자 피노체트를 도왔다는 어떤 양심적인 가책으로 괴로워 하는 줄 알았는데, 다시 읽으니 자신의 알량한 문학 경력에 누가 될까 두려워 흘린 눈물이었던 것. 그것도 대자로 누워서. 참으로 추하고 역겹지 않은가!

더 이상 중압감을 견딜 수 없었던 이바카체는 이 사실을 자신을 키워준 문단의 권력자 페어웰에게 말하는데 웬걸, 페어웰은 '권력의 영역에 예기치 않게 진입한'(p.117) 그에게 오히려 질투심을 느끼는 게 아닌가!

이후 모든 문인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 누구도 이바카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아무도 내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그 철권통치와 침묵의 시절 오히려 많은 사람이 서평과 평론을 끈질기게 계속 발표하는 나를 예찬했다. 많은 사람이 내 시를 칭송했고! 여러 사람이 내게 접근해 부탁을 했어! 나는 추천, 칠레식 호의, 소소한 경력 포장 등을 남발했고, 덕을 본 사람들은 내게 영원한 구원을 얻은 듯 감사했어!"(p.125)]


이 외에도 참으로 기가 막힌 일화가 또 있는데, 길지 않은 소설이니 직접 읽어보시기를 바란다.


<칠레의 밤>은 문학의 역할을 그 누구보다 진지하게 고민했던 작가의 비판 의식이 담긴 작품이다. 정치와 문단의 권력에 기생해 타락한 지식인들을 보여주면서 '문학은 어디에 있는 걸까?'(p140)라는 질문을 던진다. 천박한 문인과 지식인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칠레에서는 이렇게 문학을 하지. 하지만 어디 칠레에서만 그런가. 아르헨티나, 멕시코, 과테말라, 우루과이, 스페인, 프랑스, 독일, 푸르른 영국과 즐거운 이탈리아에서도 그런걸. 문학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아니 우리가, 시궁창에 처박히기 싫어서, 문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이렇게들 한다고." (p.153)]


이 소설은 총 두 문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마지막 한 문장에서 문단이 바뀐다. 


"그 후 지랄 같은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늘 역사와 함께'(p.154)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쏟아낸 고백, 그러나 마지막에 남은 건 '지랄 같은 폭풍'이다. 

피노체트의 쿠데타가 성공하고 아옌데 대통령이 자살하자 이바카체가 내뱉은 말은 "참 평화롭군."(p.100)이었다. 그와는 참으로 대조되는 그의 마지막 모습, 마침내 자신의 위선과 비겁한 침묵에 더 이상 평온할 수 없다는 의미일까? 나는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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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4-03-20 14: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열린책들 볼라뇨 시리즈의 시초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K문고에서 사서 정말 허겁지겁 읽던
기억이 생생하네요.

다시 읽게 되었을 때는 또 다른 느낌
으로 다가오더군요.

웰캄 투 볼라뇨 월드.

coolcat329 2024-03-20 23:39   좋아요 1 | URL
이번에 볼라뇨를 알고 보니 참 대단한 작가더라구요. 근데 50세, 한창 작품활동 할 시기에 떠나서 참 아쉬웠어요.

젤소민아 2024-10-18 05: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볼라뇨 팬, 여기 하나 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