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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제프 푸셰 -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전면 새번역 ㅣ 누구나 인간 시리즈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그렇게 약아빠진 놈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걸세." 나폴레옹이 한 말이다.
저자가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점을 차치하고 이 책이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건 바로 표지에 있는 이 문구였다.
"나폴레옹도 두려워한 조제프 푸셰의 삶"
또한 이 책의 부제는 '어느 정치적 인간의 초상' 이다,
'정치적'이라는 단어는 좋게 들리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처세에 능숙한 인물을 두고 '정치적'이라고 하지 않나.
과연 어떤 인물이기에 나폴레옹도 두려워했다는것일까?
이 책은 이런 호기심이 크게 작용하여 읽게 되었고 무엇보다 저자가 츠바이크였기에 커다란 기대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츠바이크는 들어가는 글에서 '우리는 왜 이 기회주의자의 삶을 알아야 하는가' 라는 제목으로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힌다.
프랑스 역사에서 푸셰는 '타고난 배신자, 보잘것없는 모사꾼, 미끌미끌한 파충류 같은 인간, 변절을 밥 먹듯 하는 놈, 경찰의 비열한 기질이 몸에 배인 놈, 한심하기 짝이 없는 악당...'으로 묘사된다. 프랑스 혁명부터 왕정복고로 이어지는 피비린내 나는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조제프 푸셰를 역사는 그저 악한 기회주의자로 치부한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런 푸셰를 꿰뚫어 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위대한 작가 발자크'이다.
"어떤 사람은 보이는 표면 아래에 항상 아주 깊은 심층을 지니고 있어서 그가 무슨 일을 하는 순간에 다른 사람들은 그 의중이 무엇인지 감을 잡을 수 없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그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다. 푸셰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의 천재성의 본질은 걸출한 통치력에 있었다. 그는 앞일을 모두 예측할 만큼 대단한 혜안을 지니고 있었다."
"권력으로 사람을 다루는 능력을 놓고 보면 푸셰가 나폴레옹보다 한 수 위였다."
발자크의 이런 찬사에 츠바이크는 이 푸셰라는 인물에게 관심을 갖게 되었고 모두들 푸셰에게 욕을 쏟아내기만 할 뿐 '아무도 그의 성격을 밝혀내려고 진지하게 노력하지 않는' 점에 주목한다. 그 과정에서 '그에게는 아예 성격이 없다'는 사실과 만나게 되고 이 둘도 없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를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소설 <향수>에서 몸에서 냄새가 안나는 사람은 봤어도 성격이 없는 사람이라니, 섬뜩하면서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1759년 프랑스 항구 도시 낭트에서 선원이자 장사꾼의 아들로 태어난 푸셰. 허약한 체력과 예민한 성격으로 부모의 직업에 적합하지 않았던 그는 누구에게나 문이 열려 있던 교회에 들어간다. 그는 수도원에서 교과 과정을 마치고 교사가 되는데, 이 때부터 그는 '침묵을 지키는 기술, 자신을 숨기는 기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탁월한 능력 등'을 배우게 된다. '자신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기술과 함께 '인간 심리를 조종하는' 능력은 앞으로 그의 숱한 변신의 자양분이 된다.
1790년에는 오라투아르 수도원의 교사였던 사람이 1792년에는 국민공회 의원으로 당선, 지롱드파에서 과격 자코뱅파로 넘어가 1793년 리옹에서 일어난 반혁명을 진압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대학살을 자행, 그 과정에서 교회를 탄압한다. 좌파와 우파를 오가며 뒤에서 비밀리에 활약하다 결국엔 로베스피에르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한 때 자코뱅으로서 사유재산 철폐를 외쳤던 그가 총재정부와 보나파르트 정부에서 경찰장관직을 수행하며 막대한 부를 쌓고, 급기야 나폴레옹 치하에서 오트란트 공작이라는 칭호도 얻어 귀족이 된다. 또한 경찰장관이라는 직위를 이용해 막대한 정보를 입수, 나폴레옹 조차도 불안하게 만들고 결국엔 워털루 전투에서 패배한 그를 배신, 임시정부 수반이 되어 장관직을 보장 받는 대가로 루이 18세에게 정부를 팔아넘기니 정말 그의 변신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장관직을 보장받는 대가로 왕 앞에 무릎을 꿇은 푸셰. 츠바이크는 이런 그의 행동을 그가 범한 최고의 '바보짓'이며, 이로서 그는 '영원히 역사 앞에서 비굴한 인물이 되어' 버렸다고 말한다.
그러나 푸셰의 도움으로 새롭게 복귀한 루이 18세와 왕족들은 푸셰의 계산과는 다르게 서서히 등을 돌린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푸셰가 누구인가. 루이 18세의 형인 루이 16세를 단두대로 보낸 인물들 중 한 명 아닌가.
그는 끝까지 자신이 다시 정계에 복귀할 거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지만, 그는 역사 속에서 잊혀져 간다. 오직 이 골수 자코뱅이었던 인간이 1793년 자행했던 리옹 대학살에 대한 기사만이 신문에 자주 오르내리고 과거 경찰장관이었던 그 앞에서 덜덜 떨던 사람들도 이젠 그에게 대놓고 침을 뱉는다. 누구도 그를 두려워하지 않고 더 이상 미움도 흥미의 대상도 아닌 그저 '기운 없고 짜증을 잘 내는 노인'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렇게 역사는 '언제나 순간만을 생각했던' 그에게 이렇게 '가장 잔인한 복수를 한다.'
결국 프랑스 왕가로부터 추방당하고 말년에 갈 곳 없는 신세가 되어 여기 저기 떠돌다 종교에 의지하게 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급격한 몰락이라 인생의 무상함을 다시한번 느끼게 한다.
여기저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옮겨 다녔고 주변의 모든 것들이 사라져가는 와중에도 늘 끝까지 살아남았던 조제프 푸셰. 이런 그를 츠바이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항상 누군가를 일인자로 만들어 방패로 내세우고 그의 뒤에 서서 그를 앞으로 몰아가다가 그가 지나치게 앞으로 나갔다 싶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거침없이 등을 돌리고 마는 것, 바로 이것이 푸셰가 가장 좋아하는 역할이다. (p.33)
영리하게 자제한 덕분에, 철저히 지조를 지니지 않는 용기를 대담하게 발휘한 덕분에, 어느 순간에든 신념을 지니지 않는 용기를 대담하게 발휘한 덕분에 푸셰는 살아남는다. (p.34)
작가는 오직 자신의 욕망에만 충성을 맹세했던 조제프 푸셰의 이야기를 쓰면서 '이런 유형의 인간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종족이지만 우리는 이 종족에 관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또한 우리의 시대는 영웅의 이야기에 매력을 느끼지만 실제로 세계의 운명을 바꾼 사람들은 그런 영웅의 배후에서 조종한 사람들이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런 인물의 대표로 조제프 푸셰를 이야기한다.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였던 한 인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판을 감독하고 조종했던 그래서 로베스피에르가 "음모의 괴수"라고 불렀던 인물의 이야기를 통해, 무엇이든 겉으로 드러난 것이 전부가 아님을, 결정적인 일은 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츠바이크의 전기 시리즈와 소설들이 이화북스에서 앞으로도 계속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