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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군대의 장군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1
이스마일 카다레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2012년에 산 책이다. 십 년 전 이 책을 왜 샀는지 기억도 안 나지만, 당시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작가를 내가 알았다는 것도 신기하다. 발칸 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를 대표하는 작가 이스마일 카다레(1936~ )와의 첫 만남은 세 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광기의 풍토>를 통해서 였다. 2019년에 쓴 독후감을 찾아 보니 낯선 나라의 이야기라 이해가 안가서 두 번 읽었다고 하면서 조만간 <죽은 군대의 장군>을 읽어봐야 겠다고 글을 남겼는데, 이제야 읽은 것이다.
'유럽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 반도는 고대부터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지역이다. 특히 알바니아는 주변 강대국들의 지배를 역사 내내 받았는데, 20세기 초까지 오스만 제국의 점령 하에 있었기에 국민의 67%가 이슬람교 신자로 주변 국가들과 문화적으로 색다른 차이를 보인다.
1912년 터키로부터 독립하고 1928년 왕정이 선포되나, 제2차 세계대전 때 이탈리아 파시스트 군대의 침공으로 알바니아는 다시 전쟁에 휩싸인다. 전후 공산주의 정부가 수립되고 독재자 엔베르 호자(1908~1985)의 통치를 받는데, 이 시기 알바니아는 유럽에서 가장 폐쇄적이고 가난한 공산주의 국가의 길을 가게 된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이런 알바니아의 굴곡진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을 씀으로써 알바니아라는 나라의 비극적인 역사와 민족의 정서를 세계에 알린 작가이다.
작가가 1963년에 발표한 <죽은 군대의 장군>은 바로 그 출발을 알린 첫 작품으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바니아에서 전사한 자국의 병사들의 유해를 수습하기 위해 어떤 나라(소설 속에서 국명이 언급되지는 않지만 역사를 통해 이탈리아 군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의 장군이 군종신부와 함께 종전(終戰) 20년 후 알바니아로 가 그곳에서 죽은 병사들의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국의 땅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안개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위협적인 산들을 보며 장군은 알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을 느끼지만, 한 문명국의 대표로 적지에 묻혀 있는 병사들을 다시 고국의 품으로 돌려보낸다는 '고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로 다짐한다. 장군은 신부와 함께 지도와 병사들의 명단을 바탕으로 알바니아 인부들을 고용하여 발굴 작업을 진행한다.
비와 추위를 견뎌가며 알바니아의 거친 산악지대와 황량한 땅을 파헤치는 임무는 장군에게 전장에서 죽은 군인들을 '망각과 죽음으로부터 구'(p.17)한다는 비장한 뜻을 담고 있지만, 땅이 파헤쳐질수록 장군이 마주하게 되는 건 전쟁의 추악한 실체이다.
어느 날 장군은 자국 병사들이 묻힌 묘지 담벼락에 쓰인 '이것이 우리 적들이 맞은 운명이다!'(p.64)라는 글을 발견한다. 장군은 알바니아인 기사에게 알바니아 인들의 이런 행위는 추악한 도발 행위라며 따지지만 기사는 당당하게 대답한다.
["20년 전 당신들이 한 짓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동지들의 가슴에 파시스트 슬로건을 걸어놓은 채 그들을 목매달지 않았습니까. 그래놓고 어린 아이의 낙서가 분명한 이런 문구 하나로 발끈하는 겁니까!"(p.64)]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병사들의 시신들만이 아니다. 도시 외곽의 군 묘지에서 발견한 한 여자의 유해는 당시 자국의 군대가 매춘부들을 데려와 이 유서깊은 도시에 갈봇집을 만들었고 죽은 여자는 당시 전쟁에 동원된 매춘부들 중 한 명임을 알게 된다. 매춘부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카페 주인은 '전선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빗물이나 진흙, 소실된 참호 따위의 괴로운 짐을 이 불쌍한 여자들에게 모두 쏟아놓은 것 같았'(p.90)다고 말한다.
또한 한 알바니아 농부는 자신의 집에서 일하다 청색대대에 의해 살해된 탈영병의 시신과 그 탈영병이 쓴 일기장을 장군에게 가져다 준다. 일기장에는 무뚝뚝하지만 자신에게 친절한 알바니아 농부들, 주인집 딸을 향한 묘한 감정, 자신처럼 탈영하여 알바니아 농장에서 일하는 자국 군인이 많다는 사실과 보복부대인 청색대대가 벌이고 다니는 학살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소설에서 독자로 하여금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인물이 있는데 바로 청색대대 소속의 'Z대령'이라는 인물이다. 장군과 신부는 유해 발굴을 시작하면서 '대령과 관련된 사항'(p.59)을 알아내야 한다며 대령의 시신을 찾기 위해 특별히 신경을 쓴다. 이 미스터리한 Z대령의 행적을 쫓아가는 과정과 그와 더불어 하나둘씩 밝혀지는 비밀들은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다.
앞서 알바니아로 떠나기 전 장군은 Z대령의 어머니와 아내를 만나는데, 당시 노부인은 아들이 '군인의 자질을 타고'났으며, '젊고 미덕을 골고루 갖춘 아들'이었다고 회상한다. 대령의 어머니는 줄곧 아들의 이야기만을 하며 "지상의 모든 아름다운 것들에 얼마나 예민하게 반응하는 아이였다고요!"(p.104)라며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됨에 따라 조금씩 드러나는 청색대대의 만행과 알바니아를 떠나기 전 우연히 참석한 결혼식에서 극적으로 알게 된 대령의 이야기는 장군을 큰 충격에 빠지게 한다.
전쟁의 실체를 마주한 장군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회의감을 갖는다.
["그래도 제겐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우리 군인들의 관이 이 사람들 사이를 지나갈 때 우리의 죽음이 그들의 삶보다 더 아름답다는 걸 그들에게 보여줄 작정이었죠. 그런데 이곳에 도착하고 나니 상황은 딴 판이었습니다. (...) 맨 먼저 자부심이 사라졌고, 곧이어 그 어디에서도 엄숙한 구석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환상들이 깨졌죠. 이제 우린 전쟁이 낳은 불쌍한 어릿광대가 되어 전반적인 무관심 속에서 수수께끼 같은 야유의 시선을 받으며 떠돌고 있어요. 이 나라에서 싸우다 쓰러진 사람들보다 더 가련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p.170)]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알바니아의 적국이었던 나라의 장군과 신부의 눈을 통해 바라 본 1960년대 초 알바니아의 풍경을 그리고 있다.
그 풍경에는 죽음의 냄새가 짙게 베어 있다. 험한 산악지대와 계속되는 악천후 속에서 알바니아인들의 눈에는 원한이 서려 있고, 설상가상으로 유해 발굴 도중 인부 한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는 사고가 나자 장군을 향한 알바니아인들의 분노는 더욱 깊어진다. 작업이 진행될수록 드러나는 전쟁의 실체에 장군의 불안은 점점 더 깊어지고 결국엔 자신이 맡은 이 임무가 얼마나 가식적이고 헛된 일이었는지 깨닫는다.
알바니아인의 입장이 아닌 외국인의 입장에서 바라 본 알바니아의 모습이기에 그 공허함은 더욱 크게 다가온다.
자국 군인들의 유해를 찾아 떠난 여정에서 장군이 가지고 돌아간 것은 무엇일까?
떠나는 날 장군은 비바람이 부는 비행장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날씨가 춥다는 말 외에는.
'사방이 비와 죽음이다. 그러니 다른 걸 찾게나.....'(p.302)
알바니아 노인의 이 의미심장한 말은 그에게 전쟁이 야기한 파괴와 슬픔을 상기시키지 않았을까?
추악한 전쟁의 본얼굴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