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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실 비치에서
이언 매큐언 지음, 우달임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3월
평점 :
런던 북서부의 작은 마을 출신의 역사학을 전공한 에드워드와 중산층 출신의 바이올리니스트 플로렌스. 두 사람은 첫 눈에 반해 사랑에 빠져 1년 간 교제하다가 결혼식을 올리고 이제 막 체실 비치로 신혼여행을 왔다.
두 사람은 앞으로 함께할 나날들을 꿈꾸며 '어딘가 더 높은 곳으로 오르리라는 기대'를 잔뜩 품고 있지만 두 사람은 자신만의 걱정으로 불안에 사로잡혀 있다. 그것은 바로 첫날밤이다. 보수적인 가치관 속에서 자란 두 사람은 아직까지도 순결을 지키고 있는데, 에드워드는 그동안 참았던 욕망 때문에 첫날밤에 과도하게 흥분해 잠자리를 망칠까봐, 플로렌스는 어린 시절의 어떤 일로 인해 섹스에 대한 혐오감과 수치심을 가지고 있어 잠자리가 마냥 두렵기만 한 상황이다.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점점 시간은 다가오고 두 사람은 어떻게든 그 일을 치르기 위해 침대로 향하는데...이런 두 사람의 심리를 알고 첫날밤을 몰래 지켜보는 독자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언 매큐언(Ian McEwan 1948~)은 <속죄>를 통해 처음 만나 단번에 좋아하는 작가로 등극한 작가이다. <속죄>는 지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장과 탁월한 심리묘사가 빛나는 소설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소장하고 싶어 사기까지 했다.
근데 이번에 읽은 <체실 비치에서>의 심리묘사는 정말로 돋보인다. <속죄>보다 스케일은 작지만 두 남녀의 심리를 차분하면서도 품격 있는 문체로 보여줘 독자는 두 인물의 감정에 자연스럽게 공감할 수 있다.
첫눈에 반해 결혼까지 하게 된 두 사람. 작가는 '그들은 어떻게 만났고, 왜 이다지도 소심하고 순진했을까?'(p.48) 물으며 두 사람의 입장을 회상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서로를 절대로 놓치고 싶지 않은 에드워드와 플로렌스, 두 사람은 서로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현실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을 갖지 못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서로의 모습과 분위기에 반해 사랑에 빠졌고, 사랑하는 마음만 있다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사랑은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자유와 해방으로 이끌지 못했다.
작가는 도대체 이들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또 묻는다.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방해하고 있는가? 그들의 성품과 과거가, 무지와 두려움과 소심함과 까탈스러움이, 권한과 경험, 느긋한 태도의 결핍이 그랬고, 그 다음엔 막장에 다다른 종교적 금기가, 영국인 특유의 민족성과 계급이, 그리고 역사 자체가 그들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뿐이었다. (p.117)]
작가는 이 두 사람의 문제가 단순히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이다. 영국의 보수적인 가치관 속에서 자란 두 사람은 비록 현실에서는 자유와 해방을 갈망했지만 현실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는 몰랐다. 일례로 에드워드는 플로렌스와의 섹스를 그토록 갈망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로렌스를 자연스럽게 관계로 이끌 세련됨이 부족했고, 플로렌스는 섹스를 그저 안내서로 학습하면서 억지로 깨우치려고 한 데서 알 수 있다. '성에 대한 건강한 인식이 남녀 사이에 이토록 중요하구나...'다시 한 번 느꼈다.
길지 않은 중편 분량의 소품 같은 책이지만 두 남녀의 심리 묘사가 눈부신 작품이다.
처음 연애를 시작하시거나 누군가와 썸 타시는 분들께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