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이 엄청 많았고 그만큼 저마다의 사랑의 모습도 다양했습니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와 젤다 피츠제럴드,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와 같은 소설가들부터,
파블로 피카소, 살바도르 달리, 오토 딕스 같은 화가,
한나 아렌트와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과 아인슈타인 같은 철학자와 과학자,
마를레네 디트리히나 레니 리펜슈탈과 같은 영화계 인물,
요제프 괴벨스와 콘라트 아데나워와 같은 정치인 등
이들이 그린
이성애, 동성애, 양성애, 근친애, 지고지순한 사랑, 이기적인 사랑, 불같은 사랑, 권태로운 사랑, 육체적인 사랑, 정신적인 사랑, 계약연애 등등
이 모든 건 허구가 아닌 사실이라는 점에서 찌릿찌릿 쾌감마저 느끼며 읽었었습니다.
시작을 열었던 '시몬 드 보부아르'와 '장 폴 사르트르'.
1929년 봄,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처음 눈이 마주친 이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성을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6월 초 어느 날.
마침내 단둘이 만나기로 한 날.
그녀는 나타나지 않습니다.
하염없이 기다리는 사르트르.
그에게 금발머리의 젊은 여인이 헐레벌떡 다가옵니다.
자신이 시몬의 여동생 엘렌 드 보부아르라고 하면서 언니는 아쉽게 오늘 못 온다고...
"그런데 이 많은 사람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빨리 저를 찾아냈습니까?" 엘렌이 이렇게 대답한다. "언니가 말했어요. 키가 작고, 안경을 썼고, 아주 못생겼다고." 이렇게 20세기 가장 위대한 사랑 이야기가 시작된다. - page 9 ~ 10
하지만 우리는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자유연애를 선언한 사르트르의 끝없는 바람기 때문에 시몬 드 보부아르가 남몰래 괴로워했다는 것을.
상대성이론 창시자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에게 로맨틱함을 느꼈었는데
아인슈타인은 여름날 같은 카푸트의 호숫가에 있는 아내에게 이렇게 전보를 친다. "글로 쓰는 것은 바보 같아, 일요일에 당신에게 키스하러 갈게." 그러니까 일요일 = 키스 x 시간 인 셈이다. - page 26 ~ 27
열정적인 사랑의 시대였지만 동시에 냉정의 시대이기도 하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심장은 그저 근육에 불과하다는 걸 믿으라며
낭만주의는 19세기에 있었던 문학사조일 뿐이라 덧붙였습니다.
전쟁의 트라우마와 얼음과 어둠에 대한 공포는 감정 표현을 억제하고 객관적 실재를 중시했던 신즉물주의로 기술 지상주의, 기계 숭배, 물질 만능주의와 자기 소외를 낳게 되는데
광고 포스터의 압도적인 언어가 떠오르게 하는 에나멜처럼 매끈한 차가운 피부와 이탈리아 마니에리스모 양식처럼 깡마르고 뒤틀린 육체를 그린 타마라 드 렘피카의 그림들이,
레니 리펜슈탈의 영화들이,
마를레네 디트리히의 관능적인 롤라가 되어 성실한 남자를 파멸시키는 연기처럼,
루이 페르디낭 셀린의 소설처럼
말입니다.
인류사에서 최악의 집단학살자로 꼽히는 '이오시프 스탈린'.
불륜 때문이든, 형태 때문이든, 아니면 우크라이나인 수백만 명을 굶어죽게 한 것 때문이든 아내 나데즈다가 격분하면 욕실에서 바리케이드를 쳤다는 그.
황금기라고 하는 1920년대를 지나면서 나데즈다가 끊임없는 하복부 통증에, 극심한 편두통에, 심각한 우울증과 불안 상태로 약을 처방해 진정시키려고 해봤지만 정반대 결과를 낳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온갖 분노의 폭발과 드라마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두 사람은 거듭 영원한 사랑을 맹세했다. 둘 다 자기중심적이고, 거만한 냉정함을 지녔고, 마음속에 격정이 넘치는 두 사람이 부부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랫동안 함께 행복하게 지내기에는 두 사람이 서로 너무 비슷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스탈린이 잔혹해질 수 있고 또 실제로 잔혹해지는 곳에서 나데즈다는 우울증의 암흑 속에 빠진다. - page 221
남편이 부정한 일을 저지를 때마다 거침없이 지적하다가 크렘린궁에 벌어진 공산혁명 15주년을 기념한 연회에서 크게 부딪치고,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 권총으로 자살하게 되는데
"아내는 나를 적으로 남긴 채 떠나갔다. 며칠이 지나자 아이들은 엄마를 잊었지만, 나는 평생 잊지 않았다."
아내의 자살로 느낀 굴욕감은 그에게 남아 있던 인류에 대한 마지막 믿음을 파괴하게 되었고 1932년 11월 9일부터 제거해야 할 반역자를 찾는데 열을 올리게 되었다고 하니 참...
사랑이 광기로 남았던 스탈린.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고 생각했던 이들의 민낯을 볼 수 있었던 이 책.
상식적으로는 이해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랬기에 그들의 예술 작품이 특별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유와 영혼과 예술가...
100년 흐른 지금.
그때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냉정과 열정 사이에 무기력해진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까...
그 해답은 이 책에서 제시하고 있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