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독서 - 안나 카레니나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 문학의 빛나는 장면들
시로군 지음 / 북루덴스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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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실 '독서'라는 게...

저도 처음 시작할 때, 아니 지금도 '막막함'을 느끼곤 합니다.

꼭 책을 읽어야 하는 건지...

부터 시작해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 건지...

도통 책장이 넘어가지 않는 책을 만날 때면 내가 잘못된 건지...

등등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을 마주했을 때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왠지 내 얘기를 해주지 않을까...?!란 마음과 함께 바로 집어 들었던 이 책.

저자가 건네는 '독서'란 어떤 의미일지도 알아보겠습니다.

문학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

펼쳐진 페이지 앞에서 오래 머문 기록들

안나 카레니나에서 버지니아 울프까지, 문학의 빛나는 장면들

막막한 독서



15년간 '막막한 독서'라는 독서 모임을 이끌어오며, 300여 권의 책을 다뤘고 1000회가 넘는 모임을 가졌던 독서모임진행자

'시로군(이시욱)'

그는 오래 독서 모임을 진행해오면서 자연히 '책을 읽는다'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 이 책 읽었어"

는 무슨 뜻일까...?

모든 페이지의 모든 글자를 다 읽었다는 뜻일까?

내용을 완벽히 이해했다는 뜻일까?

모든 페이지를 다 읽긴 했지만 내용을 잘 이해 못했다면 그 책은 '읽었다'고 할 수 있을까?

완벽하게 이해한 건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어려운 철학서 한 권을 완독하고 내용도 잘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오역들로 가득한 책인 경우는 어떨까?

책의 줄거리와 핵심을 요약할 수도 있고 이야기로 들려줄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책의 일부분만 읽은 경우는 어떤가?

......

그래서 그는

"책은 꼭 읽어야 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데 책 읽기는 필요할까?"

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책이 있고 다양한 독자가 있다. 읽기의 방식도 모두 다르다.

『말테의 수기』를 통해 얻은 교훈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는데...

책은 펼쳐두는 것으로 충분하다. 읽지 못해도 좋다. 문학 읽기는 매일 정해진 진도를 나가야 하는 학교 수업이 아니니까. 일단은 그게 내가 『말테의 수기』를 통해 얻은 교훈이다. 하지만 읽지 않아도 괜찮다고 해서 펼쳐두지조차 않으면 곤란하다. 가능한 한 자주 책을 펼쳐두도록 하자. 전혀 읽지 않고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다시 덮게 되더라도.

중요한 것은 책을 펼치고 덮는 이 과정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이다. "책에는 쓰여 있지 않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읽는 일은 바로 그러한 반복, 일견 무익해 보이는 반복을 통해 비로소 가능해질테니 말이다. - page 12

그렇게 릴케, 버지니아 울프, 나쓰메 소세키를 포함해 스물 한편의 소설을 통해 독서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내고 읽기의 즐거움을 알려주었습니다.

사실 고전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접할 때면...

저에겐 쉽지 않았었습니다.

시대와 장소가 다르고 이슈와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에, 때론 명문장에 대해 공감을 하지 못하기에...

남들과 다른, 아니 자꾸만 뒤처지는 듯해 책을 읽더라도 배제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이 책은 명문장이 아닌 '장면'에 주목하고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끌리는 장면으로부터

'나는 왜 이 장면에 끌렸을까?'

하며 생각을 발전시키면서 맛보게 되는 독서의 재미.

(책 속엔 영화화된 작품은 그 장면을 엿볼 수 있게 QR코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이야기를 읽으며(아니 보았다고 해야 할까...!) 고전 읽기의 새롭고도 그럼에도 조금은 갸우뚱하기도 하고...!

아무튼 책 속에 나온 고전을 읽게 된다면 그가 이야기했던 부분에 더 눈길이 가며 나만의 장면을 찾기 위해 끝까지 읽어 내려갈 것 같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서 그는 '여성의 책 읽기'와 '여성의 노동'이란 키워드로 해석하였습니다.

제인 에어의 책 읽기는 여성의 언어를,

노동은 태도

만들어낸다는 측면에서 읽으면 로맨스 소설로 읽혀온 이 작품이 한층 흥미롭게 읽힌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주목할 점이 제인의 자기 존중이었습니다.

내가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더 외로울수록, 친구가 없으면 없을수록, 의지할 데가 없을수록 나는 더욱더 나 자신을 존중할 거야.

- 『제인 에어』 27장

로체스터와 그가 제안한 사랑의 약속(청혼), 정든 손필드(로체스터의 저택), 가정교사 자리 등 모든 것을 버리고 황야로 떠남이야말로 당시 독신 여성을 둘러싼 사회적, 경제적 관계를 고려해 보면 이것은 단순한 반항심을 넘어선 자기 인식이고 자기주장, '나를 소중히 여기는 건 나'라는 점이었습니다.

다시금 『제인 에어』를 만나면 보다 당찬 여인으로 마주할 것 같습니다.

'고전'또는 '걸작' 읽기를 하는 이유는 아마 그 책들을 통해 이전보다 더 나은 삶, 더 발전된 삶, 더 깨인 삶, 더 주체적이고 자유로운 삶을 사는 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하지만...

문학 읽기가 우리에게 그런 것을 선사해 줄 수 있을까?

아닙니다.

그럼 책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그저 어떤 페이지를 펼쳐놓고 지금까지의 삶을 멍하니 생각해 보는 것, 무거운 철학책에 누군가 휘갈겨 놓은 낙서를 보며 현재 나(우리)의 위치와 모습을 두고 곰곰이 생각에 잠기는 것, 낯선 외국 작가의 쉽게 소화가 안 되는 난해한 문장들을 읽으며 답답함을 느끼는 것.(그 답답함 속에서 낯선, 그러나 고대부터 현대까지 누구나가 깊게 고민했을 주제인 죽음에 대해 잠깐이나마 절실하게 생각해 보는 것.) 이런 것들이 책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경험들일 것이다. 책은 우리로 하여금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을 것을 느끼게 한다.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딴생각에 빠지게 한다. - page 379

책은 우리에게 딴짓과 딴생각을 할 시간을,

그걸 할 심적 여유를

마음의 빈자리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독서 경험'이었고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였습니다.

저도 오늘은 잠시 딴짓을, 딴생각을 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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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여정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김문주 옮김, 박재연 감수 / Pensel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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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을 읽기 전 이미 미술 거장들의 발자취를 좇았었습니다.

『예술가의 여정』

예술과 여행이 만나는 순간!

이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작품을 이해하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았었는데...

이번엔 문학과 여행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작가들의 발자취...

그곳에서 탄생한 작품을 살펴보겠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들의 발자취를 좇다

작가의 여정

그 길이 어디였는지

그 길에서 무엇을 느꼈는지

이러한 '여행'을 통해 작가들이 발견한 새로운 문화, 사람, 풍경은 작품의 영감을 제공하게 되고

눈부시게 빼어난 '문학작품'으로 결실을 맺게 됩니다.

책은 안데르센, 괴테, 아가사 크리스티, 코난 도일, 허먼 멜빌, 생텍쥐페리 등 위대한 작가 35인의 여행 경험을 중심으로 그들의 일생, 작품 세계의 배경이 된 생생한 여행 이야기와 여행이 작품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고 있었습니다.

작가의 여행 경로를 표시한 지도, 해당 장소의 사진과 다양한 시각자료, 해당 작가의 일기나 작품 속 인용구를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영감을 얻으며 그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며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여느 책에서 경험해 보지 못했기에 쏠쏠한 재미와 감동을 느껴볼 수 있었습니다.

첫 여정을 동행하게 된 작가는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책벌레 구두장이와 문맹에 가까운 세탁부 간의 길지 않은 결혼생활 중 혼외자로 태어나 평생 동안 아웃사이더로 취급당했던 안데르센.

요한 볼프강 혼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과 당시 인기 소설이었던 제르멘 드 스탈의 《코린나 이탈리아 이야기》를 읽은 이후부터 '이탈리아'에서 보낸 시간이 많았는데...

그의 첫 장편 소설인 《즉흥시인》을 쓰기 시작한 장소가 로마였고

소설 속 주인공 안토니오가 카프리 섬에 있는 그로타 아주라 혹은 '푸른 그로타'를 다시 방문하면서 소설을 끝맺는데

이제 이곳은 덴마크인과 스칸디나비아인들에게 거의 문학적 순례 여행의 성지가 됩니다.

"모든 것이 푸른 하늘처럼 어슴푸레 빛나고" 물은 "마치 타오르는 푸른 불 같다."고 묘사한 동화 세상.

《즉흥시인》으로 명성을 얻었던 덴마크인 안데르센.

하지만 그를 불멸의 작가로 만들어준 것은 동화들이었으니...

뭐...

그렇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인 '제인 오스틴'의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1800년 아버지의 예기치 않은 은퇴 이후 10여 년간 부모님, 언니와 함께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살며

지역들과 풍광의 일부를 그녀의 소설 속에 녹아들어 있음을 엿볼 수 있었는데...

1805년 늦여름과 초가을로, '워딩'이라는 서식스 주의 지방도시에 머물게 됩니다.

사실 17세기 후반 돌팔이 의사들이 통풍을 치료할 때 바닷물이 최고라고 떠벌리자, 부유한 환자들이 요크셔 주의 스카보로나 켄트의 마게이트처럼 특색 없는 어촌마을을 찾기 시작했고 '미치광이' 조지 3세도 몹시 민감한 신경 때문에 고통받았으며 짧은 생애 내내 병약했던 그의 막내딸 아멜리아 공주가 '무릎결핵' 진단을 받아 시끌벅적해진 브라이튼 대신 한적한 워딩으로 요양 오게 됩니다.

7년 후 오스틴이 방문했을 때 워딩에서는 투기용 건축 붐이 일고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휴양지로서는 발전하지 못했고 훗날 해안도로가 될 곳에는 고작 일곱 채의 건물이 드문드문 세워지게 되는데...

이 도시가 배수로를 개선하기 전까지 늪지와 안개, 탁한 공기와 지독한 해초 비린내로 악명 높았고, 워딩의 북쪽 끝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큰 길이 19세기에 베이퍼스 레인(Vapours는 '유독가스'란 의미다)으로 불렸다고 하니 이점을 오스틴이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 《샌디턴》이란 작품 속에 바닷가 광풍을 콕 집어 풍자했다고 합니다.

유작이라 더 미련이 남는...

우리가 아는 한 오스틴은 그 이후 다시는 워딩을 방문하지 않았다. 미완의 유고이기는 하나 《샌디턴》을 읽다 보면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소설가가 결코 워딩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았으리라 추측하게 된다. 하지만 가장 세련된 해학은 애정에서 나오는 법이며, 그런 의미에서 한편으로 1805년 방문했던 더 순수하고 한적했던 온천 도시를 애도하며 소설을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녀에게 몹시 익숙했던 그 휴양지는 1817년 무렵이면 이미 이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린 상태였다. - page 25



이번 책에서 제 시선을 사로잡은 이가 있었으니

할렘 르네상스의 일원이자 호평받는 소설가이자 선구적인 민속학자 '조라 닐 허스틴'

1936년 3월 16일, 작가는 구겐하임 재단으로부터 '서인도제도 니그로 인종들의 주술행위 연구'를 위해 보조금을 받고 16개월 가까이 미국을 떠나 자메이카와 아이티에서 거의 1년을 보낸 후 아이티로 돌아와 1937년 3월부터 9월까지 넉 달을 더 머물며 섬의 부두교 풍습에 몰두했습니다.

사제와 수완가들, 광신도들의 행위들을 직접 목격하면서 자신이 인정사정없이 남겨두고 온 사랑을 새삼 떠올리게 되면서

기진맥진하면서도 여전히 싱숭생숭한 마음을 품고 소설을 쓰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

허스틴은 1937년 3월 초 아이티를 떠나 미국으로 갔고, 뉴욕에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출판업자가 새 소설을 극찬하며 그해 가을께 출간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는 똑같은 출판사를 통해 카리브 해를 누빈 여행을 다룬 책(그 후 1938년 《나의 말에게 전해줘》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을 내기로 계약했지만 우선 아이티로 돌아가 연구를 끝내고 싶었다. 여권 문제로 두 번째 방문은 두 달간 미뤄졌으나, 아이티로 돌아간 후에는 부두교와 좀비에 대해 새로이 파고들었다. 이 연구들을 마친 허스틴은 귀국을 위해 배에 올랐고, 9월 말 뉴욕에 도착하니 《그들의 눈은 신을 보고 있었다》가 장안의 화제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일부 남성 비평가들의 무시와 우월감 섞인 비평을 넘어서, 이 소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페미니즘 문학 사상 가장 중요한 작품 가운데 하나가 됐다. - page 135

무엇보다 흑인이자 여성이기에 사회적 간섭과 억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나아갔던 조라 닐 허스틴.

이런 작품이야말로 모든 이들이 읽어야 하는 이유였습니다.

(이미 미국 흑인 문학과 여성 문학의 고전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고 여러 대학에서 교양 필독서로 읽힌다고 합니다.

저도 이번을 계기로 읽어봐야겠습니다!)



문학과 여행, 그리고 작가.

이 세 가지가 조화를 이루었을 때 비로소 명작이 탄생하게 됨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다시 작품을 마주하게 된다면, 그 장소에 가게 된다면 새로운 시선으로 또 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을 필두로 저는 작가님들의 작품 속으로의 여정을 떠나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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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여정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김문주 옮김, 박재연 감수 / Pensel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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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탄생 배경을, 왜 이 문학이 뛰어날 수밖에 없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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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책방 이야기 - 모험과 사랑, 그리고 책으로 엮은 삶의 기록
루스 쇼 지음, 신정은 옮김 / 그림나무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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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여기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우연히 발견한 숲속 오두막 같은,

동네 사람들에게는 사랑방 같은

서점이 있습니다.

뉴질랜드 남섬 끝의 아주 작은 외딴 마을에 있는

'자그마한 책방 둘 Two Wee Bookshops'

그리고 한 여자가 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루스 쇼'

자그마한 체구에 따뜻한 미소를 지닌 책방지기인 그녀에겐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전 세계 10여 개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던 이야기.

저 역시도 읽어보았습니다.

"나는 사람마다 맞는 책이 있다고 확신해요.

그 완벽한 책을 나의 이 작은 책방에서

얼마나 자주 찾아내는지 정말 놀라울 따름이에요."

책과 삶이 만나는 곳, 당신을 기다리는 작은 책방

세상 끝 책방 이야기



1946년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가 살기 어두운 시대.

하지만 루스의 부모님은 루스에게 편견 없이 세상을 알려주었습니다.

가게 일을 돕고 받은 용돈으로 학교에서 병아리 판매 사업을 하거나 금광 사업을 시작한 아버지를 따라 직접 금광에서 사금 작업을 하는 등 루스는 남다른 경험을 쌓으며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루스에게 큰 시련이 닥치게 되는데...

1963년 열일곱 번째 생일이 지난 그해 7월, 친구와 함께 댄스파티에서 성폭행을 당하게 되었고 임신까지 하게 됩니다.

당시에는 임신한 소녀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 출산하게 한 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돌아오게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기에,

아기를 입양 보내는 것이 가장 확실하고 쉬운 해결책이라 받아들여져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산모로부터 아기를 빼앗았기에

이때부터 루스의 삶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향타를 가지게 됩니다.

내가 슬픔을 이겨내는 방식은 더 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더 많은 모험에 자신을 던지는 것이었다. 최악의 경우라 해보았자 죽는 것밖에 없으니 나는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다.

이제 내 일상은 항상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익히 잘 알고 있었다. 과거를 잊고 온전히 미래에 집중하여 계속 움직이는 것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 page 167

슬픔을 이겨내기 위해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아다닐 수 없었던 그녀의 삶.

그런 그녀에게

"당신도 나처럼 양파를 먹었죠." 그가 답했다. "즐거움은 없고 눈물만 가득하죠." - page 189

자신의 두 번째 아이 조슈아의 죽음, 어머니의 죽음과 입양간 아들은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자신이 떠나온 남편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수없이 많은 날 그저 눈물이 마르도록 울고만 싶었던 조슈.

그런 그녀가 드디어 정착하게 되는데...

40년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첫사랑 랜스와 재회하며 루스는 자신의 삶에 엉켜있던 실타래들을 하나둘 풀어나가게 됩니다.

'자그마한 책방 둘'을 통해 자신의 삶이 가르쳐 준 지혜로 다른 이의 상처를 보듬어 주었고

마침내 입양을 보냈던 자신의 아들을 찾았고

둘째 아들 조슈아의 십자가도 이들과 함께 안식처를 찾게 되면서

인생은 나를 그저 스쳐 지나가진 않았다. 나는 매 순간을 충실히 살아왔다.

상처를 입었을까? 그래서 두렵고 무서웠을까? 그렇다. 숱하게 상처받고 또 매번 두렵고 무서웠다.

후회되는 일이 있을까? 아니다. 그 모든 사건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단호하고, 한 가지 일에 모든 힘을 쏟아붓고, 같이 살기 힘들고, 감정이 깊고, 진정으로 충직하고, 사랑하기 쉽지 않은 사람을 빚어냈다고 믿는다. - page 342

책은 한 인간으로, 여자로, 그리고 엄마이자 배우자로 치열하게 살아온 삶과 함께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책방으로 들어온, 책과 연결된 이들의 이야기가 그려지고 있었습니다.

때론 가슴 저미도록 아팠었고 때론 도전과 용기에 응원을 건네기도 하였고 역시나 '책'이란 매개체만이 가질 수 있는 힘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뉴질랜드에 가야 할 이유가 생겨났습니다.



무엇보다 그녀로부터 '진짜'라는 단어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었는데...

1922년 마저리 윌리엄스가 쓴 『벨벳 토끼』는 도서 대출 코너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책이다. 토끼가 친구인 가죽 말에게 묻는다. "진짜라는 게 뭘까?"

"진짜라는 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와는 상관없어."라고 가죽 말이 대답한다. "네게 일어날 어떤 일을 말하는 거야. 진짜가 될 수 있는 거지. 어떤 아이가 널 아주 아주 오랫동안 사랑하게 되면, 그러니까 그냥 가지고 놀기만 하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널 사랑하게 되면, 그때 넌 진짜가 되는 거야." - page 19

한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란다. 오랜 시간에 걸쳐 '진짜'가 되어가는 거지. 그렇기에 쉽게 망가지는 것은 '진짜'가 되기 어렵단다. 모서리가 날카롭거나 늘 조심히 다뤄야만 하는 것도 그렇지. 보통 '진짜'가 될 때쯤이면, 오랫동안 사랑받은 털이 해지고 눈도 빠져버리고 관절은 낡아 헐렁해지지.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 왜냐하면 일단 네가 '진짜'가 되면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말고는 그 누구도 너를 못생겼다 하지 않을거야. - page203

그렇기에 주저하지 말기를.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용기를 건네준 루스로부터, 그 미소로부터 저도 조금씩 힘을 내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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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의 모든 것을
시오타 타케시 지음, 이현주 옮김 / 리드비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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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전대미문의 아동 동시 유괴 사건.

3년 만에 나타난 아이.

그로부터 30년 후...

흥미를 유발하였습니다.

공백의 3년...

어떤 사연이 숨어있을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습니다.

'공백의 3년' 동안 그 아이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가?

미궁에 빠져 버린 사상 초유의 아동 동시 유괴사건

30년이 지나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 그리고 사실을 좇는 화가

존재의 모든 것을



1991년 (헤이세이 3년) 12월 11일

일몰에서 이미 1시간 반이 지난 오후 6시 무렵, 계절에 맞지 않는 얇은 파카를 걸친 소년이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아쓰유키."

마스크를 쓴 작은 체격의 남자의 물음에 답하려는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얼굴에 천 같은 것이 뒤집어쓰워졌습니다.

그렇게 현장에 남겨진 자전거와 타이어 자국, 현장 탐문 결과 납치 사건으로 판단하고 오후 6시 26분에 긴급 수배를 걸게 됩니다.

그런데 다음 날...

가나가와 현경은 일본 범죄 사상 유례없는 전개에 직면하게 됩니다.

1991년 12월 12일

오후 2시 27분, 요코하마시 나카구 주택에서 경찰에 신고가 접수됩니다.

"손자가 유괴당해 몸값을 요구받았다."

'아동 동시 유괴'

하지만...



오후 10시 5분,

"다치바나 아쓰유키를 가와사키 시내에서 구출."

결국 나이토 료는 구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1994년 12월 14일

해가 진 뒤 오후 5시가 넘어 요코하마시 나카구 야마테초 기지마의 집 인터폰이 울이게 됩니다.

"나? 누구니?"

"료."

"어? 료니? 료야?"

일곱 살로 성장한 자신의 손자가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굳게 입을 닫고 있는 아이.

공백의 3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2021년 12월 몬덴 지로는 장례식장에 참석하게 됩니다.

30년 전 한 사건을 계기로 만났던 당시 관할서 형사였던 나카자와.

당시 몬덴은 다이니치신문 요코하마 지국의 2년차 기자였고 나카자와는 건담 플라모델로 서로 가깝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카자와의 장례식장에서 나카자와의 후배 형사였던 센자키가 몬덴에게 흑백사진 기사를 건네주는데...

제2탄, 훈남 인기 화가는 유괴 사건의 피해자였다!

다름 아닌 30년 전 유괴된 나이토 료가 총망 받는 화가라는 겁니다.

이 사실에 유괴 사건 당시 용의선상에 있던 인물의 남동생도 화가라는 점이 떠오르게 되는데...

시효가 지난 지 오래된 사건이라 경찰은 조사할 수 없었지만

가나가와 동시 유괴 사건은 엄연한 범죄였다. 피해자가 무사히 돌아오자 세상에서는 모두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범행 그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어른에게 끌려간 어린 아이들의 공포와 절망은 확실히 존재하는 이 세상의 불행이다.

형사들이 시효로 무기를 빼앗긴 지금이야말로 펜을 든 저널리스트가ㅏ 미해결에서 '미(未)'의 글자를 떼러 갈 때다. - page 343

은퇴를 앞둔 그는 끈질긴 취재로 단단히 봉인되었던 '공백의 3년' 속 감취진 존재가 드러나게 됩니다.

간만에 좋은 작품을 읽게 된 것 같습니다.

읽으면서 줄어드는 페이지가 아쉬웠고 읽고 난 뒤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탄탄한 구성과 압도적인 리얼리티.

작가의 앞으로의 행보에도 관심을 가져야겠습니다.

이 소설에서는 '존재'에 대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였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다카히코와 료의 '실재'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살아 있다'라는 묵직함, 그리고 '살아왔다'라는 대단함. - page 542

그 의미가 애절히 다가와 먹먹함만이 남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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