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가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그들의 모습은 마치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는 것과도 같았습니다.
영롱한 진주...
조개 속으로 침입한 이물질을 내뱉지 못해 점액질을 분비해 이물질을 감싸는 조개.
점점 속살로 파고들며 어쩌면 목숨까지 위협할 수 있는 이물질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견디며 마침내 만들어낸 진주.
조개의 아픔처럼 문학가들 역시도 힘든 삶 속에 몸부림치며 마침내 진주와도 같은 작품을 토해내는 것이 마냥 아름답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예전에는 크게 공감할 수 없었지만 요즘 들어 큰 울림을 선사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바로 '박완서' 작가님.
마흔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소설가로 등단하고 40년간 스무 권이 넘는 책을 써낸 그녀.
딸로, 아내로, 엄마로, 소설가로 그야말로 동분서주한 그녀의 삶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것처럼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은 없다. 이 용기에 나이라든가, 여자라든가, 엄마라는 역할은 거추장스러운 변명일 뿐이다. 박완서는 그녀의 삶에서 가장 지치고 위안이 필요할 때, 진이 다 빠져 빈 껍질만 남은 것 같은 허탈한 시기에 여자도, 엄마도 아닌 개인으로서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는 용기를 보여줬다. 그녀가 거둔 성공은 행운이 아니며, 그녀에게 아주 특별한 재능이 넘쳤던 것도 아니다. 용기 있는 한 인간의 기나긴 여정이었을 뿐이다. 타인이 알아주고 인정해주느냐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 page 40 ~ 41
마흔 살의 여자, 한 남자의 아내, 다섯 아이의 엄마였던 박완서.
자신의 이름을 사랑했던 그녀로부터 배우게 된 건
문득문득 당장의 생활에 치여 습관처럼 살아가는 내 모습이 역겨워질 때가 있다. 구원은 누구의 몫도 아니다. 해방은 현실과 조건을 계산하고 수용한다고 해서 얻어지지 않는다. 현실을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 page 41
삶을 대하는 자세를.
다시 그녀의 작품을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 '백석' 시인.
화려한 외모와 불우한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세상이 선망하는 천재 시인으로 등장하지만...
자신이 이룩한 성공 안에만 머물기를 고대하며 세상을 시와 시가 아닌 나머지 것들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눠 살아가기에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이 백석의 삶을 견뎌내지 못하게 됩니다.
자기 몸이 괴롭고 심정이 고독해질수록 더 좋은 시, 더 아름다운 시가 나오리라 기대하며 방황을 하던 그가 다시 고향 땅을 밟았을 때 갑작스런 해방이 찾아옵니다.
숱한 지식인들은 고향을 버리고 자유를 찾아 남한으로 내려가지만 평안북도 정주에 남은 백석.
더 이상 그의 말과 생각은 본인의 것이 될 수 없음에 결국 체제에 방해가 되는 반동주의자로 낙인찍혀 쉰이 넘은 나이에 양 떼를 기르는 목장의 파수꾼이 되고 맙니다.
남쪽에서는 월북 작가라는 오명 속에 오랫동안 출판 금지를 당했던 그.
하지만 이제는 다시 각광을 받기 시작하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이라는 특이한 제목의 시만큼이나 인상적이었는데...
시에서 보여준 성찰과 반성, 사무치는 외로움이
하이야니 눈을 맞으며 마른 잎새를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던, 어느 먼 산 뒷옆 바위 곁에 혼자 남아서도 외로워하지 않겠다던 시인의 성찰이 우리의 남은 삶에도 동행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하면 이 작고 힘든 삶에서 외로움이라도 덜어지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되는 것이다. - page 188
순간 따스히 느껴지는 건... 왜일까......
세상은 우리네 인생을 괴롭히기 마련입니다.
《나이듦의 지혜》의 소노 아야코는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소설가에게는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그녀의 삶은 남편에게 버림받은 홀어머니 밑에서 세상에 대한 분노와 실망을 귀에 닥지가 앉도록 교육받으며 자신의 선택과 의지에 상관없이 반복되는 절망 속에서 자랐습니다.
다시 찾아온 절망에 속절없이 무너지게 되었지만 인생은 얄궂게도 소노 아야코에게 놀라운 반전을 선사합니다.
기적적으로 수술이 성공해 시력을 되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밝아진 시력이 보여준 세상은 그녀가 아는 과거의 외롭고 처참했던 고단한 날들이 전부가 아님을 일러줍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처럼 쓰러져가는 이들을 위해 남은 생애를 헌신하기로 합니다.
소노 아야코가 찾아낸 삶의 지혜는 베풂과 자립이었다. 누군가를 돕고자 하는 마음,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그의 삶이 자립해 있다는 증거이며, 건강하다는 증명이다. 남들은 물러남을 준비하는 지천명의 나이에 기적적으로 시력을 되찾고 새로운 삶을 개척한 그녀에게 쉰이라는 나이는 인생이 지나온 계절을 헤아리는 숫자였을 뿐이다. 그 숫자에 구애받지 않고 그녀는 어둠 속에 갇힌 누군가를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빛을 들고 다가갔다. 소노 아야코의 오래된 삶에서 언제나 싱싱한 생명의 냄새가 진동하는 까닭이다. - page 310 ~ 311
달라지는 게 없더라도 현실에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삶은 변화될 수 있음을.
책 속의 문학가들을 통해, 그들의 작품을 통해 배우고 또 배우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
이제 그 해답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학이 없다면 어떤 언어로 오늘의 기분을 바꿀 수 있을까"
또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한 손에 책을 쥐어 보는 건 어떨지 조심스레 제안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