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대전 구도심에 자리한 '돈키호테 비디오'.
스스로를 한국의 돈키호테라 부르는 가제 주인 '돈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너그러웠습니다.
함께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토론도 하고 떡볶이도 먹고 가끔은 과외도 해주는 아저씨가 있는 이곳은 몇몇 동네 중학생들의 아지트 '라만차 클럽'이었습니다.
"아저씨, 대전은 왜 라만차예요? 대전은 디귿으로 시작하니까 똑같이 디귿으로 시작하는 스페인 도시랑 비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대전은 우리말로 한밭이잖니. 큰 들판. 라만차는 평원으로 유명하거든. 평원도 산이 안 보일 정도로 평평한 들판이니 큰 들판이지. 그러니 대전은 라만차란다."
...
"자, 보렴. 솔아. '라만차' 하면 누가 딱 떠오르니? 돈키호테지? 돈키호테의 고향이 라만차거든. 그럼 여기 보자. 대전은 뭐다? 라만차를 거쳐 돈키호테인 거네. 그러니까 대전은 돈키호테. 똑같은 디귿이지. 어떠냐?" - page 8
돈 아저씨의 한국 도시와 스페인 도시 비교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모든 건 대전에 돈키호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나의 돈키호테여...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8년 늦가을.
외주 프로덕션 6년 차 피디 솔은 자신이 기획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잘리게 됩니다.
고향 대전으로 내려와
'남은 인생, 무엇을 할 것인가?'
'그나마 방송 프로듀서 경력과 경험이 있는데 그렇다면 결국 방송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어떻게?'
'혼자...'
그러다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게 됩니다.
'유튜브는 세상에서 가장 큰 환전소'라고.
내가 가진 어떤 것이든 그곳에 내어놓고 가치를 인정받으면 돈을 받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그래서 결심하게 됩니다.
나는 인생 2막을 유튜브에서 열기로!
솔은 '노잼 도시' 대전을 소재로 아이템을 구상하던 중 이제는 카페로 바뀐 옛날 비디오 가게 자리에서 우연히 돈 아저씨의 아들인 '한빈'을 만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깐족거리는 한빈.
"누나가 여긴 어쩐 일로? 서울 생활 정리했어?"
"너야말로 대전에 웬일인데?"
그러자 한빈은 히죽 웃은 뒤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가리켰다.
"지하실? 그 공간 아직 그대로야? 혹시...... 돈 아저씨도?"
"그대로지. 아빠 없는 거 빼고." - page 33
순간 온갖 상념이 머릿속에서 들끓기 시작하는 솔.
한빈과 함께 지하실에 들어가니 여전히 남아 있는 골동품과 같은 돈키호테 비디오 시절의 소품들에 옛 추억이 떠오르게 됩니다.
"안 그래도 누나한테 연락하려고 했어. 누나는 산초잖아. 산초라면 돈키호테를 따라다녀야 하는 거 아냐? 혹시 누나한테 아빠 연락 안 왔어??"
"전혀. 그리고 그건 아들인 네가 알아야 하는 거잖아."
...
"그러면 누나가 우리 아빠 찾는 거 도와줄 건가? 그럼 내 한 많은 가족사를 털어놓을 수 있지. 똑똑한 누나라면 거기서 아바 행방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page 37
솔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지하 공간을 유튜브 스튜디오 삼아 그 시절 봤던 책과 영화를 소개하며, 한빈과 함께 돈 아저씨를 찾는 방송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채널명은 '돈키호테 비디오'.
자신을 '찐산초'라 명하며 돈 아저씨를 찾는 행진이 시작하게 되는데...
과연 그들은 돈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까?
돈키호테 비디오의 친구들과 재회할 수 있을까?
돈 아저씨와 나, 그리고 라만차 클럽과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의 아미고스. 우린 모두 친구다. 우정이란 말은 썸과는 달라서 뭉뚱그려 표현해도 곧잘 통했다.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에게도 우정이란 말을 붙이는 순간 친구가 되곤 했다. 함께 꿈을 나누고 모험을 떠난 순간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먼 옛날 이베리아반도의 늙은 기사와 동네 농부가 나눈 우정을 기록한 책처럼, 우리는 친구가 되어 행진해 왔다. - page 415
역시나 김호연 작가님!!!
읽는 내내 저도 돈키호테를, 꿈을 찾는 모험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돈키호테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숭고하다. 그것이 돈키호테의 존재 이유니까. 아저씨의 필사 노트로 완독한 『돈키호테』의 주제 역시 꿈을 향한 모험을 펼치라는 것이었다. 쉰 살이 넘은 시골 기사가 세상의 정의를 세우겠다고 길을 떠나는 설정 자체가 '꿈꾸고 있네'라는 핀잔을 들을 일이다. 하지만 꿈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지금 나 스스로가 돈벌이도 안 되는, 이제 얼굴도 희미한 아저씨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바가 크다. 내 인생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게 꿈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꿈이 아니라 낮에 꾸는 꿈 말이다. - page 134 ~ 135
정의와 자유를 위해 거악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선한 힘이라는 용기, 열정을 가졌던 돈키호테, 아니 돈 아저씨.
정말 이 노래와 딱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기쁜 꿈 있으니 가득한 사랑의 눈을 내리고
우리 사랑에 노래 있다면 아름다운 생 찾으리다.
이 세상에 슬픈 꿈 있으니 외로운 마음의 비를 적시고
우리 그리움에 날개 있다면 상념의 방랑자 되리라.
이 내 마음 다하도록 사랑한다면 슬픔과 이별뿐이네
이 내 온정 다하도록 사랑한다면 진실과 믿음뿐이네
내가 말 없는 방랑자라면 이 세상에 돌이 되겠소
내가 님 찾는 떠돌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가겠소*
*김학래 작사·작곡, 김학래·임철우 노래, <내가>, 《70년대 대학가요제 총결산》, 1980, Side B 1번 트랙.
그를 보면서 우리도 방랑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방랑자가 될 수 있었을까......
『돈키호테』에는 돈키호테와 산초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시난테와 둘시네아, 목동들과 여관 주인, 이발사와 신부, 하녀와 공작부인 등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음식들이 쌓이고 쌓여 서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우리...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나의 꿈을 찾아, 꿈을 좇아 힘차게 달려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