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5년 일본과 먼저 싸웠던 제정러시아가 그랬듯이,
미국은 서구의 문화적 전통에 속하지 않은 데다 완전무장을 갖췄고 잘 훈련되기까지 한 나라를 적으로 마주했습니다.
적과 맞서 싸우려면 먼저 그들의 행동 양식을 이해해야 했기에 적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일본이 문호를 개방한 이래로 지난 75년 동안 일본인에 대해 기술할 때는 십중팔구 '그러나 또한'(but also)라는 기상천외한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유례없을 만큼 예의 바르다고 기술하는 동시에 "그러나 또한 무례하고 거만하다"라고
더할 나위 없이 경직되었다고 말하면 "그러나 또한 그들은 파격적인 개혁에도 쉽게 순응한다"라는 등
이런 모순들이 날줄과 씨줄로 엮어 있는 '일본'
그래서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고 국화 재배에 심혈을 기울일 만큼 예술 지상주의에 빠진 나라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들이 칼을 숭배하고 무사를 최고로 떠받든다는 사실을 기술한 다른 책으로 내용을 보완하지도 않는다. - page 16
탄생하게 된 '국화와 칼'.
책은 일본의 종교나 경제생활, 가족 등 특정 일면을 다루지 않고 일본인이 일상에서 하는 행동의 전제 조건을 탐구하고, 이런 전제 조건이 어떤 행동으로 표출되는지에 주목했습니다.
즉,
일본을 인본인의 나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
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2장에서 4장까지는 '적합한 자리 찾기'라는 개념으로 제시되는 일본 문화 특유의 위계질서 의식을 분석
5장에서 8장까지는 '온'과 '기무' '기리' 개념을 들어 개인을 둘러싼 온갖 관계가 채무 의식을 바탕으로 이뤄짐을 파악한 다음
9장부터 12장까지 이로 인해 개인에게 부여되는 하지(수치심)가 일본 문화를 이루는 핵심 원리 중 하나를 밝히고
마지막에 '국화'와 '칼'이라는 상징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였는데...
'국화'는 일본 특유의 정원 관리와 국화 재배 기술을 언급하며 정원에 놓을 바위 하나까지 세심히 선별해 자연을 위장하는 일본식 정원 관리와 모양을 다듬기 위해 철사를 덧대는 국화 재배 기술은 일본 문화에 퍼져 있는
'하지(수치심)의 구속력'
을 의미하였고
'칼'은 자기 몸을 '칼'에 비유하며 '녹이 슬지 않게 관리할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자기책임'
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상징을 저자는
국화는 철사 고리가 없어도 가지치기를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
칼은 그들이 더 자유롭고 더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간직할 수 있는 상징이다. - page 357
'자연스러운 국화와 번쩍이는 칼'로 전쟁 후의 일본이 나아갈 미래에도 계속 유효한 상징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항복이 치욕이라 생각하는 일본인들.
우리의 전쟁 관습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을 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할 수 있는 선택은 마지막 남은 수류탄으로 자살하거나 맨몸으로 적에게 돌진해 집단 자살을 하는,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 된다!
포로가 된 것은 평생 씻지 못할 불명예일뿐더러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고 여기는 이들의 모습은 '가미카제'라는 자살 특공을 감행하고 죽음을 불사하며 항전하는 일본군의 행동 양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일본에서 주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목격하게 되는데...
(주 : 천황에 대한 기무)
일본은 서구 국가들의 마지막 수단인 혁명을 이용하지 않았다. 점령군에게 사보타주하지도 않았다. 일본은 그들이 가진 힘을 이용했다. 그것은 아직 싸울 여력이 있음에도 무조건 항복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주'로서 요구하는 능력이었다. 일본인의 눈에는 엄청난 희생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소중한 것을 얻었다. 비록 항복을 명했지만, 그 명령을 천황이 내렸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처럼 전쟁에 패배했어도 최고의 법이 주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 page 168
일본인에게 행사하는 지배력...
조금은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가깝지만 다른 만큼 멀게 느껴지는 나라, 일본.
일본인은 침략 전쟁이 '오류'요 '실패한 목표'라고 인정함으로써 사회적 변화의 첫걸음을 크게 뗐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 최고의 국가로 우뚝 선 그들을 보며 여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이해보다는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경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근대 일본 사회와 태평양전쟁의 모습을 담은 희귀 사진 자료부터 일본 문화의 정수가 담긴 전통 회화 '우키요에'까지 총 45점의 컬러 이미지,
본문에 나오는 핵심 개념부터 배경이 되는 역사 지식, 주요 인물 및 작품 설명 등 이해를 돕는 배경지식들이 있었기에
자칫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할 뻔했던 이야기가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