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와 칼 - 일본 문화의 양상 현대지성 클래식 60
루스 베네딕트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지성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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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오랫동안 고전처럼 많은 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이 책.

언젠간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다가 드디어 읽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4년, 미국 정부는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에게 일본 문화를 연구해달라고 요청했고

전쟁 중이어서 현지 조사를 수행할 수 없었지만, 방대한 자료 조사와 미국 거주 일본인들의 도움으로 일본 문화를 탁월하게 분석해낸 이 책.

그 결과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250만 부 넘게 팔리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바로

일본을 단 한 번도 직접 방문한 적이 없다는 점

이 흥미로웠습니다.

과연 그가 바라본 '일본'은 어떨지 궁금하였습니다.

"일본은 왜?"로 시작하는 모든 의문에 대한 궁극적 해답

문화인류학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린 기념비적 저서

미국의 전후 대(對)일본 정책의 향방을 결정짓고,

일본 문화 연구의 출발점이자 영원한 필독서가 된 역작

국화와 칼



1905년 일본과 먼저 싸웠던 제정러시아가 그랬듯이,

미국은 서구의 문화적 전통에 속하지 않은 데다 완전무장을 갖췄고 잘 훈련되기까지 한 나라를 적으로 마주했습니다.

적과 맞서 싸우려면 먼저 그들의 행동 양식을 이해해야 했기에 적의 특성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과제로 떠올랐습니다.

일본이 문호를 개방한 이래로 지난 75년 동안 일본인에 대해 기술할 때는 십중팔구 '그러나 또한'(but also)라는 기상천외한 수식어가 붙었습니다.

유례없을 만큼 예의 바르다고 기술하는 동시에 "그러나 또한 무례하고 거만하다"라고

더할 나위 없이 경직되었다고 말하면 "그러나 또한 그들은 파격적인 개혁에도 쉽게 순응한다"라는 등

이런 모순들이 날줄과 씨줄로 엮어 있는 '일본'

그래서

배우와 예술가를 존경하고 국화 재배에 심혈을 기울일 만큼 예술 지상주의에 빠진 나라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들이 칼을 숭배하고 무사를 최고로 떠받든다는 사실을 기술한 다른 책으로 내용을 보완하지도 않는다. - page 16

탄생하게 된 '국화와 칼'.

책은 일본의 종교나 경제생활, 가족 등 특정 일면을 다루지 않고 일본인이 일상에서 하는 행동의 전제 조건을 탐구하고, 이런 전제 조건이 어떤 행동으로 표출되는지에 주목했습니다.

즉,

일본을 인본인의 나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이냐

에 관한 책이었습니다.

2장에서 4장까지는 '적합한 자리 찾기'라는 개념으로 제시되는 일본 문화 특유의 위계질서 의식을 분석

5장에서 8장까지는 '온'과 '기무' '기리' 개념을 들어 개인을 둘러싼 온갖 관계가 채무 의식을 바탕으로 이뤄짐을 파악한 다음

9장부터 12장까지 이로 인해 개인에게 부여되는 하지(수치심)가 일본 문화를 이루는 핵심 원리 중 하나를 밝히고

마지막에 '국화'와 '칼'이라는 상징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였는데...

'국화'는 일본 특유의 정원 관리와 국화 재배 기술을 언급하며 정원에 놓을 바위 하나까지 세심히 선별해 자연을 위장하는 일본식 정원 관리와 모양을 다듬기 위해 철사를 덧대는 국화 재배 기술은 일본 문화에 퍼져 있는

'하지(수치심)의 구속력'

을 의미하였고

''은 자기 몸을 '칼'에 비유하며 '녹이 슬지 않게 관리할 책임'을 강조하는데 이는

'자기책임'

을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상징을 저자는

국화는 철사 고리가 없어도 가지치기를 완벽하게 하지 않아도 아름다울 수 있다.

...

칼은 그들이 더 자유롭고 더 평화로운 세계에서도 간직할 수 있는 상징이다. - page 357

'자연스러운 국화와 번쩍이는 칼'로 전쟁 후의 일본이 나아갈 미래에도 계속 유효한 상징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항복이 치욕이라 생각하는 일본인들.

우리의 전쟁 관습으로는 도저히 용납하기 어려운 행동을 그들은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죽을 때까지 싸우는 것을 명예로 여기는,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할 수 있는 선택은 마지막 남은 수류탄으로 자살하거나 맨몸으로 적에게 돌진해 집단 자살을 하는,

절대로 항복해서는 안 된다!

포로가 된 것은 평생 씻지 못할 불명예일뿐더러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

고 여기는 이들의 모습은 '가미카제'라는 자살 특공을 감행하고 죽음을 불사하며 항전하는 일본군의 행동 양상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1945년 8월 14일 일본이 항복했을 때, 일본에서 주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목격하게 되는데...

(주 : 천황에 대한 기무)

일본은 서구 국가들의 마지막 수단인 혁명을 이용하지 않았다. 점령군에게 사보타주하지도 않았다. 일본은 그들이 가진 힘을 이용했다. 그것은 아직 싸울 여력이 있음에도 무조건 항복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주'로서 요구하는 능력이었다. 일본인의 눈에는 엄청난 희생이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소중한 것을 얻었다. 비록 항복을 명했지만, 그 명령을 천황이 내렸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였다. 이처럼 전쟁에 패배했어도 최고의 법이 주라는 사실은 변함없었다. - page 168

일본인에게 행사하는 지배력...

조금은 섬뜩함마저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가깝지만 다른 만큼 멀게 느껴지는 나라, 일본.

일본인은 침략 전쟁이 '오류'요 '실패한 목표'라고 인정함으로써 사회적 변화의 첫걸음을 크게 뗐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세계 최고의 국가로 우뚝 선 그들을 보며 여전히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이해보다는 우리와 다름을 인정하고 그들의 문화를 존경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근대 일본 사회와 태평양전쟁의 모습을 담은 희귀 사진 자료부터 일본 문화의 정수가 담긴 전통 회화 '우키요에'까지 총 45점의 컬러 이미지,

본문에 나오는 핵심 개념부터 배경이 되는 역사 지식, 주요 인물 및 작품 설명 등 이해를 돕는 배경지식들이 있었기에

자칫 이해하기 어렵고 지루할 뻔했던 이야기가 보다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에게 적극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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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작은 것들로 - 장영희 문장들
장영희 지음 / 샘터사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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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온화하게 강한 글'을 쓰는 탁월한 에세이스트 '장영희'

저도 그녀의 《문학의 숲을 거닐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을 읽으며 희망과 용기를 얻곤 하였었는데...

어느덧 그녀가 생을 마감한 지 15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그녀의 삶을 닮은 투명하고 섬세한 문장들은 아직도 우리와 함께 살아 숨 쉬며 큰 울림을 주고 있는데...

이번에 그녀가 남긴 산문 중에서 유려한 문장들만 골라

'자연, 인생, 당신, 사랑, 희망'

이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묶어 낸 문장집이 나왔습니다.

또다시 그녀가 전해줄 '사랑'과 '희망'과 '문학'

그때 그 감성이 떠오르며 그리워집니다.

공기처럼 물처럼 사랑과 희망이 배어 있는

장영희의 보석 같은 문장들

삶은 작은 것들로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다리가 불편했지만 누구보다 삶을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자세로 살았던 장영희.

암 투병을 하면서도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들로 독자들에게

살아 있음의 축복을 생각하고

모든 것을 포용하며

사랑하는 마음에 대해

동그란 희망의 빛으로 선사해 주었는데...



동그라미 빛들의 반짝임에 잠시나마 동심으로도 돌아가게 됩니다.

해맑던 웃음과 문득 바라보게 된 하늘...

살아있기에 마주할 수 있음에 감사하게 됩니다.

하지만...

삶은 그리 녹록지 않기에,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기에 자꾸만 주저앉고 슬픔에, 절망에 빠지기 마련.

어떻게 해야 할까...?!



굴곡 같은 인생 속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면 된다고

일어나고 나면 새로운 힘이 생겨난다고

그렇게 우리는 성장해 나아갈 수 있다고

용기와 희망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아마 이 문장이 장영희 교수님이 전하고자 하는 바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사람이 또 다른 사람에게,

문학의 숲을 함께 거닐며 사랑을 만나고 길을 찾는다면,

그래서 더욱 굳건하게 살아갈 희망과 용기를 얻을 수 있음을

그동안의 책들을 통해, 지금까지 반짝이는 이 문장들로 전하고 있었습니다.

문장들마다 작은 빛으로 제 삶 속에 비추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나 둘...

책을 덮은 이 순간 희망의 동그란 불빛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살아갈 용기를, 희망을 선물받았습니다.

이 선물이 헛되지 않도록 삶의 소중한 가치들을 발견하며 감사함을 느끼며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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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모 있는 세계사 365 - 역사책 좀 다시 보고 싶은 이들을 위한
요나스 구세나에르츠.벤저민 고이배르츠.로랑 포쉐 지음, 정신재 옮김 / 정민미디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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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개인적으로 '1일 1페이지' 알아가는 재미를 좋아합니다.

부담 없이 읽다 보면 어느새 상식이 쌓이는!

그리고 꾸준함까지 얻을 수 있다는!

그래서 책장에도 눈에 띄는 곳에 '1일 1페이지' 교양서적들이 존재하곤 합니다.

이번에

인류의 역사에 아직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관심은 있는데 자신의 수준에 맞는 재미있게 읽을 만한 책을 찾지 못한 사람을 위해

하루하루 벌어졌던 중대하고 가끔은 소소한 오늘의 세계사를 한 권으로 엮은 책

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을까?

6000년 인류의 운명을 결정한 음모, 암살 그리고 역사적 발견

365일 놀라운 세계사의 순간들

하루에 하나씩 알아가는 세계사의 비밀

날마다 1분의 역사로 하루가 특별해진다

쓸모 있는 세계사 365



이 책이 신선한 건 역사 속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의미 있는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마오쩌둥을 대신해 망고가 숭배를 받았던 이야기,

안네 프랑크의 일기가 전 세계에 큰 감동을 주게 된 과정 등

들어보긴 했지만 잘 알지 못했던 사건들의 뒷이야기

만우절 농담처럼 유쾌한 역사부터 피임약 발명과 같은 혁신적 사건까지

다양한 주제와 스펙트럼으로 역사의 다채로운 면모를 살펴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굵직한 사건들만을 기억하고 있었다면 이번을 계기로

다양한 역사적 순간들이 있었구나!

이런 일들이 쌓여 지금 이 순간이 이루어졌구나!

하는 놀라움과 이미 잘 알려진 역사를 드디어 알게 되는 스릴이,

언젠가 지금 이 순간도 어떻게 기록될까...

란 기대감으로 재미와 상식 두 마리를 한 번에 잡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눈길이 가는 건 우리나라와 관련된 사건들이었습니다.

7월 27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의 산물로, 한반도를 무대로 강대국 간의 '뜨거운' 대리전으로 발생했던 '한국전쟁'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한을 침공을 시작으로 250만 명 이상이 사망했던,

1953년 7월 27일 대한민국과 북한이 휴전 협정을 체결해 전쟁을 중단하고 오늘날까지 분단국가로 남아있는...

여전히 가슴 아픈 역사는 현재까지도 이어져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의 한국전쟁(1950~1953) 당시 야전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일상을 코믹하게 표현한 작품이 있었으니

1983년 2월 28일,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TV 시리즈 <M.A.S.H>

CBS에서 1972년부터 1983년까지 방영된 TV 코미디물로 14개의 에미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고 마지막 에피소드인 251화 <안녕, 작별 그리고 아멘>은 픽션물 중 여전히 가장 많이 본 에피소드로 남아 있다고 하니...

이 사실이 웃프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5월 18일

1980년 유난히 푸르렀던 광주를 뒤흔든 사건인 민주화 운동

신군부의 폭정과 독재에 대한 분노와 저항의 목소리.

이를 제압하기 위해 민간인에게 실탄을 발사한 군인들.

민주주의와 인권, 자유를 향한 시민들의 숭고한 희생...

또다시 울려 퍼지는 요즘...

가슴속 촛불이 뜨겁게 타오릅니다...

역사가 반복되는 게 아니라

인간이 반복하는 것이다.

-볼테르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

역사가 단순한 과거의 기록이 아닌, 현재에도 교훈과 통찰을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이야기이기에

특히나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도록 경각심을 갖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야 했습니다.

읽고 나서 뒤따라온 묵직함...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나의 아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저도 또다시 역사에 눈을 돌려야 했습니다.

참고로

1월 13일 오늘은 과거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오늘의 역사를 남기며 저도 오늘 열심히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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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 세상에서 가장 기묘한 22가지 재판 이야기
도진기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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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동화에서 만났던 '성냥팔이 소녀'의 죽음을?!

알고 보니 이 책은 전직 부장판사이자 현직 변호사로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추리소설 작가 '도진기'의 2013년 작품이 10년 만에 새로운 표지와 본문으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보통 사람들에게 어려운 법을 쉽게 이야기한다는데...

너무 멀리, 높은 곳에 있는 듯한 판사님들의 결정은 과연 어떤 법의 원리에 근거하고 있는지 저도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처벌받아 마땅한 그 사람은 왜 '무죄'가 나왔을까?"

봉이 김선달부터 O.J.심슨에 이르기까지

저승 법정으로 간 인물들이 펼치는 기상천외한 반전의 법정 드라마

성냥팔이 소녀는 누가 죽였을까?



어떤 행동은 무슨 죄가 된다는 식으로 결론만을 알려 주는 법률 정보는 많습니다. 하지만 완성된 레고를 선물 받는 거나 마찬가지로 이런 지식은 거의 값어치가 없습니다. 법의 세계에서는 벽돌 하나만 빠져도 집의 모양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법이 움직이는 원리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논리를 구사할 수 있고 신문 기사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 page 7

모르면 평생 답답할 법의 핵심 원리.

그리하여 책에는

피고인의 변론을 맡은 '소크라테스 변호사'

피고인을 무작정 처벌하려는 '욱 검사'

그 사이에서 갈팡질팡 고민하는 '염라대왕 판사'

간의 공방을 통해 재판에서 가장 중요한 법의 원칙을 22가지 이야기로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었습니다.

동화 또는 역사 속 인물들이 어떻게 무죄 또는 유죄가 되는지 읽다 보면 어느새 법의 원리를 이해할 수 있었던 이 책.

그렇지 않아도 흉흉한 시대에 이 책은 쉽고 재미있게 법을 설명하기에 성인뿐만 아니라 청소년들도 필히 읽어야 할 책이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를 구하지 않은 행인들은 법이 일상생활의 도덕적인 사안에 일일이 간섭할 수 없다-법은 도덕의 최소한-는 원리에 따라 무죄,

피리 부는 사나이는 '피리 소리'라는 원인과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결과 사이에 충분한 인과관계를 밝힐 수 없으므로 유괴범이 될 수 없고,

친구 고갱을 면도칼로 겁박한 고흐는 정신 장애를 앓고 있던 '심신상실자'가 명백하기에 협박죄를 물을 수 없고,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했던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아궁이로 유인해 빠뜨린 건 치명적인 공격을 받을 소지가 명백한 상황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였기에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등

한 번쯤은 들어보았던 법의 개념들이 소크라테스의 변론과 함께 친절하게 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직접적으로 살펴보면

검투사 막시무스의 경우에는 '기대가능성'이라는 원칙이 적용되는데

소크라테스 기준은 '보통 사람의 상식'입니다. '보통 사람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라면 올바른 행동을 하기 어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인정되면 벌하지 않는다는 원칙입니다. 더 쉽게 표현하면, '다른 사람도 그 상황에서는 그렇게 행동했을 거야'라고 인정되면 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처럼 인수분해를 하듯 법률 용어를 풀고 풀어 가장 일상적인 언어로 이야기함으로써 누구든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었고

다양한 예시를 통해



소크라테스 검투사 막시무스의 살인은, '강요된 행위'였습니다. 명령을 거부하고 싸우지 않을 '기대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피고인 막시무스는 무죄입니다.

판결까지!

참으로 명쾌했었습니다.

특히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재판은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

는 점이었습니다.


 






재판의 결론이 옳으냐 그르냐는 사람마다 의견이 다를 수 있지만

재판의 절차가 올바르다면 사람들은 재판의 결과가 좀 마음에 안 들어도

"그래도 공정하고 바른 절차에 따랐으니 후회는 없어!"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일 수 있기에 절차의 중요성을 몸소 느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올바른 결정을 좇다 보면 사회질서가 흔들리고, 반면에 사회질서만을 좇다 보면 올바른 결정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법'이...

지금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것일까...?!

책을 덮고 난 뒤 되돌아본 우리네 세상이 참 씁쓸하기만 하였습니다.


이 리뷰는 컬처블룸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 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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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즌
배리 로페즈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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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막을 걸으며 『여기 살아있는 것들을 위하여』를,

빛과 얼음의 땅 『북극을 꿈꾸다』로

세계적인 산문집 작가인

'배리 로페즈'

저도 그의 『북극을 꿈꾸다』를 읽으며 북극 고유의 특성을 이해하게 되었고 읽는 내내 그곳에 있는 듯한, 그만큼 구체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들에 흠뻑 빠져들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책 역시도 읽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책의 두께감을 보니...

그럼에도 끌립니다.

사라진 것들을 불러들이는 작가 배리 로페즈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역작.

이제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달아나려 한다면 그 목적지는 어디일까?"

북극에서 태평양, 갈라파고스, 아프리카, 호주, 남극까지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들로 떠났던 '여행하는 인간'

배리 로페즈가 머물렀던 수평선과 지평선 너머의 눈부신 세계

호라이즌



평생 이런저런 결심에 이끌려 다닌 나의 인생은 이따금 느끼는 황홀과 이따금 느끼는 슬픔으로 이루어진 삶이었다는 점에서 다른 많은 사람의 인생과 그리 다르지 않겠지만, 그래도 굳이 다른 점을 찾는다면 머나먼 장소들로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강렬한 욕망, 그리고 그 갈망에 부응하여 그토록 큰 결단력으로 행동한 것이 나에게, 그리고 내 가까운 사람들에게 부여한 의미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거의 의도치 않게 세계를 여행하는 사람이 되었다. 진정한 의미의 방랑자는 아니었지만 말이다. - page 34 ~ 35

파울웨더곶에서 시작된 여행은 캐나다 스크랠링링 섬, 동부 적도 아프리카의 자칼 캘프, 남극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경험한 이야기와 사유가 담겨있었습니다.

진화는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끝없는 수정, 이유도 목적도 없는 변화다. 21세기에 인종적 순수성을 보호한다는 관념 혹은 생물학적으로 안정된 환경을, 다시 말해 새로 들어오는 모든 것을 '침입자' 또는 '외래'의 것으로, 축출해야 할 것으로 분류하여 애초에 유입을 허용하지 않는 환경을 유지해야 한다는 관념은 지탱될 수 없다. 명백한 윤리적 문제를 제쳐두더라도, 이런 주장은 시간의 흐름을 부인한다. 풍경이 시간을 초월한다는 말은 비유적 의미만 지닐 뿐 실제로 풍경은 시간을 초월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시대는 전례 없는 문화 교류의 시대, 들어가고 나가는 이주의 시대다. 인종과 문화에 대해 수구적 적의의 태도를 견지한다면 전쟁 외에 다른 미래는 없다. 그리고 모든 풍경은, 천천히 쌓여가는 변화든 무시무시한 속도의 변화든 언제나 다른 풍경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 page 675

경이와 감사...

이 책을 읽고 난 뒤 느낀 감정이었습니다.

광활하고 아름다웠던 수평선.

저 너머의 자연이, 그리고...

어떤 관점으로 보든, 우리가 더욱더 개발해 이익을 뽑아내겠다고 껍질을 벗기고, 채굴하고, 산업적으로 경작하고, 굴착하고, 오염시키고, 빨아내고, 끊임없이 조작하는 지구, 목 졸린 지구가 지금 우리의 집이다. 우리는 그 상처를 알고 있다. 심지어 그 상처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 중 다수는 묻는다.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하고. - page 120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있음을 일러주었던 로페즈의 메시지는 강한 울림과 빛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갈라파고스 제도'.

거기서도 무너진 화산의 가장자리 잔해이자 크기가 산타크루스섬의 50분의 1도 안 되는 '헤노베사섬'에서 '자연'의 모습은...

바람에 휩쓸려 간 새들의 해골은 나뭇가지 위에 불길한 징조처럼 걸려 있다. 생선을 너무 많이 먹어 멍해진 푸른얼굴얼가니새 새끼들은 아직 똑바로 설 수 있는 근육이 발달하지 않은 탓에 나무 밑 바위 위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다. 얼가니새의 둥지 안에서는 더 큰 새끼를 죽인다. - page 391

자연의 법칙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는데...

배부른 새끼 새들의 생명력 넘치는 삐악삐악 소리와 삶이 끝나가는 새들의 꺽꺽 소리가 공존하는 이곳 헤노베사섬에서 그 텍스트는 무엇일까? - page 392

광범위한 죽음은 생명을 더욱 빛나게 하고,

살아 있는 생물들의 원기 왕성함은 죽음의 횡포를 축소한

자연의 '약육강식'에 대해 우리의 모습도 빗대어 생각하게 했습니다.

앞서 그는 말했습니다.

누구든 이러한 무시무시한 지평선을 마주한다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쪽을 선택할 수도, 대신 아름다움에 탐닉하기로 마음먹거나 전자 기기에 주의를 빼앗긴 채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내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자아의 요새 안에서 꼼짝하지 않고 고립되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자신과 그 혼란스러운 세상 사이의 간극 속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해 거기서 그 광활함과 복잡함과 그 세상이 지닌 가능성들에 압도되어 휘청거릴 수도 있으며, 죽음의 필연성을 받아들이면서도 여전히 잔인함의 강도를 줄이고 삶의 모든 측면에 정의가 닿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노력할 수도 있다. - page 89

수백 페이지로 우리를 인도하며 방향성을 제시해 주었던 이 책.

눈앞에 수평선이 펼쳐지면서 저도 그 너머를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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