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치기 전엔 독서법에 관한 책이지 않을까, 아니면 서평집이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책장을 펼치자마자 저자는 우리에게 이 책에 대해 이야기하였습니다.
"이 책은 책과 함께 자라온 한 독자가 책에 보내는 러브레터다."
독서가 얼마나 재밌고 기쁜 행위인지 책의 세계를 흥미진진하게 파헤쳐 독서 욕구를 불러일으키고 책과 친구가 되게 하는 '책에 관한 책' 이야기였습니다.
목차를 보면 더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1부는 책의 모습과 물적 속성, 그리고 그 안에 든 정신을 주제로 삼았다. 나는, 으레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그러하듯, 책의 물성을 사랑한다. 책의 모습과 그 안에 든 정신을 주제로 삼았다.
말 그대로 책의 외양, 내지, 무게, 독서대나 가름끈과 같은 물성과 책 안에 든 깃든 정신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특히나 저도 한때는 책을 많이 읽으면 내 삶이 바뀔 거라 믿고 열심히 읽기만 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천 권을 읽으면 정말 삶이 바뀔까. 그럴지도 모른다. 독서에 익숙해지는 데에 있어서 독서량이 중요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책을 많이 읽는다고 해서 곧바로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 되는 것도, 갑자기 훌륭한 위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을 읽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히려 그런 방향과는 멀어질 확률이 높다 책을 많이 읽었을 때 삶이 바뀐다는 것은, 인생에서 지속 가능성이 가장 높으며, 사유 능력과 공감 능력을 증대시키고, 질적으로 훌륭한 차원의 쾌감을 주는 취미를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취미를 가지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최선을 다해 책을 즐기는 게 최고다. - page 63 ~ 64
꾸준히 즐기면서 하는 독서야말로 진정 나를 '바꿀' 것이라는걸...
저도 직접 체험(?) 하며 깨달았었습니다.
2부는 책을 만나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다. 책을 고르고, 사고, 곁에 두고, 냄새 맡고, 읽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했다.
여느 장 보다 공감하면서 읽었던 '만남과 동거'.
인터넷 서점에서 굿즈를 받기 위해 5만 원에 맞추어 결제를 한다거나 사고 나서 끌리는 책부터 읽고, 다 읽기 전에 또 다른 책을 사면서 자책하고...
읽은 책보다는 읽겠다 다짐한 책들이 책장을 장식하고 바라보며 뿌듯함을 느끼는...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의 관심 분야가 책장에 반영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머릿속이 책장에 꽂힌 책과 점점 닮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언제든 책에 정신을 침범당해도 좋다는 인정이다. 책장을 들여다볼수록, 또 책장의 책을 들여다볼수록, 그 사람의 세계는 가지고 있는 책의 관심사와 비슷해진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 책에 대한 소유욕은 인간이 발휘할 수 있는 가장 우아한 소유욕이다.
이 글을 쓰며 책장을 바라본다. 왜인지 책장을 바라볼 때마다 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을 한동안 바라보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깨어있느냐는 물음이 죽비처럼 내리친다. 내가 책을 소유함으로써 얻은 것 중 가장 소중한 한 가지만 꼽으라면, 이 물음이다. - page 120 ~ 121
책은 소유할 때만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그렇기에 눈치 보지 말고 소신껏 우아한 소비, 아니 우아한 소유를 해도 된다며 자기 합리화를 해 봅니다.
그리고 저도 책을, 특히 종이책을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특유의 책 냄새 때문이었는데 이를 뭐라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자 덕분에 좋아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책 냄새를 좋아하는 이유를 유기 화합물로만 설명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 알지 않는가. 책 냄새를 맡았을 때 곧바로 연상되는 분위기, 책의 신비로움, 책만이 가지는 따뜻함이 책 냄새를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을. 책 냄새는 단순히 책 한 권의 냄새로 남지 않는다. 책을 꽂은 책장과 그 책장의 주인, 책에 들어간 사람들의 정성과 시간, 이 책을 읽었을 사람들과 읽을 사람들, 지금 책에 코를 박고 있는 것이 허락된 환경 모두가 책 냄새를 책 냄새로 만든다. 우리가 책이라는 존재를 통해 공유하고 있는 세계가 이 냄새에 남아있는 것만 같다. 책에 기록된 글자는 모두 다를지라도 우리에게는 약속된 향이 있다. - page 155 ~ 156
맞아!
형언할 수 없었던 그 모든 것을 간직했던 책.
그래서 내가 좋아했던 것이었고 이것이야말로 진정 종이책의 매력이다! 싶었습니다.
3부는 책과 세계에 대한 이야기다. 책이 어떻게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가 되었는지, 세계는 어떻게 책이 되었는지, 그리고 세계 속에서 책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지를 다루었다.
한 권의 책이 세계가 되었다가 발견되었다가 소실되었다가 파괴되었다가 다시 세계가 된 책들-《바벨의 도서관》, 《하얀 성》, 《장미의 이름》, 《너무 시끄러운 고독》, 《은유가 된 독자》-을 소개하고 '책에 관한 책을 읽고 쓴 서평'과 책을 다루는 매체들, 책에 주어지는 상, 책에서 빌려간 이야기들, 그리고 저자의 유튜브 속 책 세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메시지.
사람들이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한다. 책이라는 좋은 친구를 다들 곁에 두고 살기를 바란다. 책을 읽음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추상적인 사고를 하고, 몰랐던 것을 배우고, 혼자 있는 시간을 풍요롭게 보내길 바란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새로운 관점을 접하는 계기가 더 많아지길 바란다. 읽으면 읽을수록 읽을 책이 까마득히 많아지는 그 역설을 공감하길 바란다. 좋은 책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짜릿함을 느껴보길 바란다. 어떤 계기로 읽게 되든, 책은 일단 친해지기만 한다면 평생 배신하지 않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 page 241
비록 내가 책태기에 잠시 허덕이고 있었지만 묵묵히 기다려주었던 책.
새삼 책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 언제나 내 곁을 지켜줄 소중한 나의 친구, 책...
이제야 손이 책장을 향해 뻗기 시작하였습니다.
책을 꼭 읽어야 한다고, 이런 책들이 나에게 큰 영향을 주고 기쁨을 선사했다고, 이런 식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던 이 책.
오히려 '책' 그대로의 모습으로부터 매력에 빠지게 해 주었던 이 책.
덕분에 독서 이전의 책 매력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독서에 빠져들 수밖에 없으며 이 즐거움의 바닷속에 오래도록 빠져들고 싶음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