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출발한 세 대의 우편 수송기가 각각 남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정 무렵 유럽행 우편 수송기를 이륙시키기 위해 세 우편 수송기가 싣고 올 화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 조종사는 자신의 비행을 묵상한 뒤, 마치 어떤 낯선 농부들이 산을 내려가듯 각자의 하늘에서 거대한 이 도시를 향해 천천히 하강할 터였고 이런 항공망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 '리비에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착륙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르루, 살면서 사랑에 깊게 빠져 본 적 있나?"
"아, 사랑이요! 국장님도 아시겠지만..."
"자네나 나나 같군. 시간이 없었지."
"많지는 않았죠."
리비에르는 르루가 못내 쓸쓸해진 것은 아닌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르루는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고요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훌륭한 널판 하나를 한참 동안 깎아 다듬고는 '좋아, 다 됐군'이라고 생각하는 목수가 느낄 법한 감정이었다. 리비에르는 생각했다.
'그래, 내 삶도 다 됐지.' - page 24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 칠레의 우편기가 맨 먼저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남단에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파타고니아 노선 우편 수송기를 조종하던 '파비앵'.
고요함이나 잔잔한 구름들, 적막감 속에 비행을 하다 시나브로 폭풍우 속에 말려들게 됩니다.
분명 국지성 폭풍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듯한 암흑 속에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벗어날 수 있을지...
급격한 난기류 속에서 운전대의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파비앵은 전력을 다해 운전대에 매달리다시피 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머리 위로 별 몇 개가 반짝였습니다.
짙은 폭풍우의 작은 틈 사이로 빛을 내는 그 별들은 덫 깊숙한 곳에 놓인 미끼 같았지만 빛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던 파비앵은 마침내 별을 따라 올라가게 되고...
짙었던 구름이 점점 희게 부서지는 맑은 파도같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폭풍우에서 빠져나오게 된 파비앵.
'웃음이 나다니, 나도 완전히 미쳐 버렸군. 우린 끝난 목숨이야.'
어쨌든 암흑과도 같은 밤하늘의 어두운 품에서 벗어난 파비앵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다가오는데...
파비앵의 아내는 여느 때처럼 파비앵의 도착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저, 그러면 부인, 뭔가 알게 되거든 전화드리겠습니다."
"아! 아무것도 모르신다는 거군요..."
"그럼 끊겠습니다, 부인." - page 99
그러면서 리비에르는 언젠가 다리 건설 현장에서 부상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던 기술자 한 명이 건넨 말이 떠오르게 됩니다.
"전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들로 만들어지는 거지요.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리비에르가 그에게 답했다.
"사람의 목숨은 값을 매길 수 없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목숨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리비에르는 비행기에 탄 승무원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죄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다리를 건설하는 행동이 그러했듯이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행복을 산산조각 내고 있는 셈이다. 리비에르는 더 이상 스스로에게 '어떤 명분을 들 수 있는지' 물을 수조차 없었다. - page 102
시간은 흐르고 정적만이 감돌던 사무실.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습니다.
"한 시 사십 분이군. 남은 연료의 한계 시간이 끝났어. 더 이상 비행하는 건 불가능해."
파비앵이 자칫 실종되기라도 하면 야간 비행 사업 자체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 속 리비에르와 파비앵은 이 위기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승리, 패배... 이제 이런 단어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승리와 패배라는 피상 아래에는 삶이 존재하고, 삶은 벌써부터 또 다른 피상을 준비하고 있다. 승리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만 패배는 우리를 일깨우는 법이다. 리비에르가 겪어야 했던 오늘의 이 패배는 어쩌면 진정한 승리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줄 하나의 약속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 page 139 ~ 140
어린 왕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던 이 소설.
야간 비행이라는 극한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인물들.
그들의 불굴의 의지, 침착성과 인내심은 감동과 울림으로 전해졌습니다.
'리비에르'를 통해 용기, 강철 같은 의지, 진보에 대한 굽히지 않는 신념, 담대함, 인간관계에서 비인간적이라고 할 정도의 엄격함과 냉정함, 책임감, 사명감, 동료애 등은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라는 인상을 남겼지만 그렇기에 더 높이 비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냥 나쁘지만은 않지만 그리 애정은 가지 않았던...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인간이 결국 추구해야 하는 가치란 무엇인지
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 주었던 『야간 비행』.
현재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은 읽고 짚어야 할 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