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0만 독자의 사랑을 받은 화제의 첫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

일본·대만 등 4개국에서 인기를 얻은 첫 장편소설 『달까지 가자』

연이어 흥행시키며 독보적인 입지를 구축한 '장류진' 작가.

제가 읽게 된 책은 두 번째 소설집이었습니다.

시대상을 정밀하게 반영하면서도 현실의 민낯을 드러내는 데 그치지 않고, 독자가 서 있는 자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장류진 작가의 서사.

이번에도 한 번 느껴보고자 합니다.

오늘을 이겨내는 모두를 위한 힘찬 응원

장류진만의 문장으로 펼쳐지는 일상의 유쾌한 환희!

연수



여섯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발랄하고, 어떤 때는 서늘하고, 또 어떤 때는 묵직한 감동을...

역시나 장류진 작가만이 그려낼 수 있었던 '위로'에 하루를 살아갈 힘을 얻곤 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와닿았던 표제작 「연수」.

운전공포증을 앓고 있는 '주연'이 도로에 홀로 나가기 위해 운전연수를 받는 이야기였습니다.

동네 맘카페를 통해 '일타 강사'로 소문난 '작달막한 단발머리 아주머니' 운전강사를 만나게 되는데 초면에 주연의 자녀계획까지 세워버리는 무례한 태도를 보입니다.

하지만 실력은 뛰어난데...

과연 주연은 홀로 도로에 나갈 수 있을까?

또 강사와의 관계는 나아질 수 있을까?

우측 사이드미러를 들여다봤다. 차들이 끝도 없이 줄지어 서 있었다. 지금 차선을 바꾸지 않으면 한참을 다른 길로 가야 했다. 그 길은 내가 한번도 가본 적 없는 길이었고, 혼자 주행하기에는 당연히 무리였다. 현기증이 일었다. 핸들이 금세 축축해졌다. 왜 이렇게 땀이 나지? 이러다가 핸들에서 손이 미끄러지면 어떡하지? 심장이 또다시 격렬하게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또박또박한 어조로 말했다.

"내가 뒤에서 막아줄 테니까, 그때 오른쪽으로 차선 하나 옮겨요. 알겠지?"

...

"고마워요, 선생님."

"어이구, 인사할 정신은 있어? 전방 주시하세요."

스피커폰에서 다시 그녀의 목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계속 직진. 그렇지."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 page 47 ~ 49

저도 올해엔 장롱면허에서 벗어나고자 하기에 더 와닿았던 이야기.

이런 운전강사를 만나면 좋을 텐데...

"잘하고 있어. 잘하고 있어."

한 마디의 응원.

너무나 절실히 필요했었습니다.

과연 저도 홀로 도로에 나갈 수 있을까...?

저의 이야기는 곧 시작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뭉클했던 「동계올림픽」.

작은 방송사에서 인턴 생활을 하는 '선진'의 올림픽 취재기였습니다.

쇼트트랙 결승 경기가 열리는 추운 겨울날, 국가대표 '백현호'의 집에 취재를 가게 되는데 큰 방송사 기자들의 무시와 구박에도 꿋꿋이 현장을 화면에 담는 선진.

하지만 선진을 힘들게 하는 건 부모님의 크고도 어긋난 기대, 정기자 전환이 가능할지 알 수 없는 불안함과 막막함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정신을 잃고 쓰러지게 된 선진은 꿈속에서 다정한 부모님에 그만 눈물을 흘리게 되고

"나 오늘 엄청 힘들었지."

"누가 우리 딸 이렇게 힘들게 했어?"

나는 고민하지 않고 대강 대답할 수 있다. 그냥 이렇게.

"몰라, 다 어려웠어. 다 피곤해."

"이리 와. 엄마가 안아줄게, 우리 딸. 우리 애기. 우리 강아지." - page 278

쓰러진 선진을 돌봐주었던 중년부부의 따스함에 저도 옅은 웃음이 났었습니다.

"아 참!"

닫혀가던 현관문이 다시 활짝 열렸고, 돌아 나온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뒤따라 아주머니의 어깨너머 아저씨도 빼꼼 고개를 내밀었다. 두 사람이 입을 모아 말했다.

"새해 복 많이 받아요."

잊고 있었다. 오늘이 설날이라는 사실을. 맞아, 그렇지. 아직은 새해 첫날이다.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page 286

「라이딩 크루」는 폭소를 자아냈었습니다.

동네에서 로드바이크 동호회를 운영하는 '나'와 회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시트콤 같은 이야기였던 「라이딩 크루」.

'나'는 회원인 '안이슬'에게 관심이 있지만, 더 예쁘고 마음에 드는 여자 회원이 들어올 가능성을 닫고 싶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때 장발의 '허니우드'가 동호회 가입을 신청하고 '나'는 긴 머리카락에 홀려 덜컥 가입을 승인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의 '나'의 심경이... 기가 막힙니다.)

그런데 가입하자마자 모두의 환심을 사는 허니우드 때문에 초조해진 '나'는 한가지 묘책을 내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자전거 실력으로 허니우드를 눌려버리려는 것.

과연 계획대로 될 것인가...?!

이들의 상상초월함은 꼭 읽어봐야할 것이었고 정말 시트콤으로 만들어지면 더 재미날 것 같았습니다.

간만에 쉼 없이 흠뻑 빠져들어 읽었습니다.

공감하며 웃고 위로받았던 이야기들.

결국 우리네 이야기였기에 가능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장류진 작가님의 다음 이야기가 또다시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야간 비행 (초판본 리커버 고급 벨벳 양장본) 코너스톤 초판본 리커버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 지음, 김보희 옮김, 변광배 해설 / 코너스톤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밀을 말해줄게.

아주 간단한 건데

그건 마음으로 봐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야"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만큼 나는 더 행복해질 거야

네 시가 되면 이미 나는 불안해지고

안절부절못하게 될 거야

난 행복의 대가가 무엇인지 알게 되는 거야..."

어린 왕자』의 명대사들.

누구나 한 번은, 아니 그 이상은 읽었을 『어린 왕자』.

이 소설의 작가는 프랑스 공군 비행사이자 작가인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였습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이자 생텍쥐페리에게 페미나상을 안겨 주며 그를 거장의 반열에 올려놓은 소설이 있었으니...

바로 이번에 읽을 소설이었습니다.

자신이 경험이 녹아 있는 이 작품.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선사해 줄지 기대되었습니다.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진정한 모험가들에게 바치는 찬가.

별을 꿈꾸다 별이 되어 버린 생텍쥐페리의 대표작.

1931년 페미나상 수상작 《야간 비행》을 만나다.

야간 비행



파타고니아, 칠레, 파라과이에서 출발한 세 대의 우편 수송기가 각각 남쪽과 서쪽 그리고 북쪽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향해 날아오고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자정 무렵 유럽행 우편 수송기를 이륙시키기 위해 세 우편 수송기가 싣고 올 화물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 조종사는 자신의 비행을 묵상한 뒤, 마치 어떤 낯선 농부들이 산을 내려가듯 각자의 하늘에서 거대한 이 도시를 향해 천천히 하강할 터였고 이런 항공망 전체를 담당하고 있는 책임자 '리비에르'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착륙장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르루, 살면서 사랑에 깊게 빠져 본 적 있나?"

"아, 사랑이요! 국장님도 아시겠지만..."

"자네나 나나 같군. 시간이 없었지."

"많지는 않았죠."

리비에르는 르루가 못내 쓸쓸해진 것은 아닌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다. 오히려 르루는 자신의 지난 삶을 돌아보며 고요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훌륭한 널판 하나를 한참 동안 깎아 다듬고는 '좋아, 다 됐군'이라고 생각하는 목수가 느낄 법한 감정이었다. 리비에르는 생각했다.

'그래, 내 삶도 다 됐지.' - page 24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태풍으로 다행히 목숨을 건진 칠레의 우편기가 맨 먼저 도착하게 됩니다.

그리고...

최남단에서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파타고니아 노선 우편 수송기를 조종하던 '파비앵'.

고요함이나 잔잔한 구름들, 적막감 속에 비행을 하다 시나브로 폭풍우 속에 말려들게 됩니다.

분명 국지성 폭풍우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콘크리트에 둘러싸인 듯한 암흑 속에 얼마나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벗어날 수 있을지...

급격한 난기류 속에서 운전대의 흔들림을 줄이기 위해 파비앵은 전력을 다해 운전대에 매달리다시피 했습니다.

바로 그때 그의 머리 위로 별 몇 개가 반짝였습니다.

짙은 폭풍우의 작은 틈 사이로 빛을 내는 그 별들은 덫 깊숙한 곳에 놓인 미끼 같았지만 빛에 대한 갈망이 너무 컸던 파비앵은 마침내 별을 따라 올라가게 되고...

짙었던 구름이 점점 희게 부서지는 맑은 파도같이 바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폭풍우에서 빠져나오게 된 파비앵.

'웃음이 나다니, 나도 완전히 미쳐 버렸군. 우린 끝난 목숨이야.'

어쨌든 암흑과도 같은 밤하늘의 어두운 품에서 벗어난 파비앵에게 또 한 번의 시련이 다가오는데...

파비앵의 아내는 여느 때처럼 파비앵의 도착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했지만 돌아온 답변은

"저, 그러면 부인, 뭔가 알게 되거든 전화드리겠습니다."

"아! 아무것도 모르신다는 거군요..."

"그럼 끊겠습니다, 부인." - page 99

그러면서 리비에르는 언젠가 다리 건설 현장에서 부상자의 상태를 살펴보고 있던 기술자 한 명이 건넨 말이 떠오르게 됩니다.

"전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들로 만들어지는 거지요.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정당화할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리비에르가 그에게 답했다.

"사람의 목숨은 값을 매길 수 없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목숨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무언가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리비에르는 비행기에 탄 승무원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죄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다리를 건설하는 행동이 그러했듯이 사람의 행동이 사람의 행복을 산산조각 내고 있는 셈이다. 리비에르는 더 이상 스스로에게 '어떤 명분을 들 수 있는지' 물을 수조차 없었다. - page 102

시간은 흐르고 정적만이 감돌던 사무실.

그때 누군가 입을 열었습니다.

"한 시 사십 분이군. 남은 연료의 한계 시간이 끝났어. 더 이상 비행하는 건 불가능해."

파비앵이 자칫 실종되기라도 하면 야간 비행 사업 자체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상황 속 리비에르와 파비앵은 이 위기에서 무사히 벗어날 수 있을까?

승리, 패배... 이제 이런 단어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승리와 패배라는 피상 아래에는 삶이 존재하고, 삶은 벌써부터 또 다른 피상을 준비하고 있다. 승리는 우리를 약하게 만들지만 패배는 우리를 일깨우는 법이다. 리비에르가 겪어야 했던 오늘의 이 패배는 어쩌면 진정한 승리에 다가갈 수 있게 해 줄 하나의 약속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이다. - page 139 ~ 140

어린 왕자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던 이 소설.

야간 비행이라는 극한에 가까운 상황 속에서 극복하고자 하는 인물들.

그들의 불굴의 의지, 침착성과 인내심은 감동과 울림으로 전해졌습니다.

'리비에르'를 통해 용기, 강철 같은 의지, 진보에 대한 굽히지 않는 신념, 담대함, 인간관계에서 비인간적이라고 할 정도의 엄격함과 냉정함, 책임감, 사명감, 동료애 등은 가혹하고 비인간적이라는 인상을 남겼지만 그렇기에 더 높이 비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마냥 나쁘지만은 않지만 그리 애정은 가지 않았던...

우리에게 진정한 용기란 무엇인지,

인간이 결국 추구해야 하는 가치란 무엇인지

에 대해 생각하게끔 해 주었던 『야간 비행』.

현재 살아가는 우리가 한 번은 읽고 짚어야 할 점이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린이라는 사회 - 어른들은 절대 모르는 그들만의 리그
이세이 지음 / 포레스트북스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이를 키우고 있기에 이 책에 관심이 갔습니다.

아니, '어린이'들을 보며 잠시 복잡한 생각을 뒤로하고 천진난만함에 빠져들고 싶었습니다.

이미 200만 학부모의 폭발적 공감을 얻었다는데...

저도 충분히 공감할 것 같았습니다.

과연 어른들은 절대 모르는 그들만의 리그.

어떨지 기대해 봅니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덜 자란 어른과 다 자란 어린이가 만들어낸

가장 완벽하고 조화로운 교실 이야기

어린이라는 사회



저도 여기저기서 들었던 학부모들의 민원도 있었지만 여기 '학교에 민원 전화를 하기 전에 생각해 볼 것'이라는 제목의 글에 적힌 민원은 같은 학부모이지만 도가 지나침을 느꼈습니다.

"우리 애는 매일 세 번씩 칭찬해 주세요", "우리 아이는 예민하니 말씀하실 때 각별히 조심해 주세요", "장염에 걸렸으니 죽으로 먹여주세요", "선생님, 프로필 사진이 부적절하네요. 내려주세요", "애를 안 낳아봐서 모르시나봐요". "애 아빠가 화가 많이 났어요", "담임 휴대폰 번호 알려주세요", "교사 생활 못 하게 만들겠습니다"

등등.

실제 우리네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진정 부모의 사랑이라 할 수 있을까...

이 책은 10년 차 초등학교 교사가 목격한 어린이들에 대한 기록이었습니다.

어린이는 미숙하기에 그들끼리 만나면 울고불고 싸우고 혼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그렇게 몸부림을 치면서 자신의 세상을 팽창시키고 있었습니다.

예민한 아이는 부딪치며 둥글게 사는 법을,

칭찬은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해 공평하게 분배하는 게 아닌 칭찬을 받고 싶다면 노력을 통해 성취해야 함을,

다른 사람들과 맞물려 살아가는 법을 배우며 좋은 어른으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고

그런 아이들을 위해 어른들이 줄 수 있는 사랑은 넘어지지 않게 업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마음껏 넘어질 자유를 보장하고 다시 일어서는 방법을 알려주는 일'

이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참견쟁이 어른들은 어린이들의 사회에 들어오지 말라"

는 따끔한 일침을 전했습니다.

저도 이 아이가 좋았습니다.

눈이 뱅글뱅글 돌아갈 듯 두꺼운 연두색 안경을 쓴 아이, 찬영.

얼마든지 거슬릴 수 있을 또래 친구들의 말에도 화를 내는 법이 없는, 그렇다고 무작정 헤실헤실 웃는 것도 아니라 수용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제법 진지하고 단호하게 할 말을 할 줄 아는 아이.

'가방 없어진 날'에 대한 일기를 썼는데...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놀았다. 경찰과 도둑 놀이도 하고 그네도 탔다. 그런데 아까 의자에 놓아두었던 가방이 사라졌다. 그런데 아까 의자에 놓아두었던 가방이 사라졌다. 나는 경찰에 신고를 하고 싶었지만 내 잘못을 먼저 생각했다. '그래... 집에 가방 먼저 갖다 두지 않은 내 잘못이야.' 집에 가서 엄마와 상의하여 가방을 새로 준비했고 물건도 다 챙겨 넣었다. 다음부터는 가방을 잘 챙겨야겠다.

어멋!

나보단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 급급한데 말입니다.

오늘도 욱했던 제 자신을 반성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었는데...

부모가 온종일 아이를 밝게 비추고 있다면 교사는 그 뒷면을 본다고 하였습니다.

특히나 교사는 같은 나이의 아이를 스무 명 이상 모아놓고 그들이 만들어가는 관계와 행동을 보고 그 과정에서 한 아이로 인해 교실 안의 모두가 미치기 직전이거나 개성으로 치부하기 어려울 정도로 현저한 특이점이 있을 때, 더불어 교사가 그 아이에게 모종의 애정이 있을 때 할말을 고르고 골라 입을 연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교사로부터 권유를 받게 된다면 속는 셈 치고 해 보시길...

아이는 아직 어리고 모든 권한은 부모에게 있으므로 문제 행동을 대하는 학부모의 태도에 아이의 거의 모든 것이 달려 있다. 부모가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느껴지면 교사는 그 뒤로 곧장 입을 다물어버리는데 그건 양육의 관점에서 결코 유용한 전략이 아니다. 아이의 뒷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있는 기회조차 잃어버리기 때문이다.

아직은 어린아이들이지만, 그들의 모든 행동에 '아직 어려서'라는 딱지가 유효한 건 아니다.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차마 무엇이 문제일지 겁이 나서 들춰보고 싶지 않을 뿐이라는 마음을 인정하고 담대하게 문제 상황에 직면해야 한다.

나는 그때 민건이 어머님께 더 이상 아무 말씀도 드리지 못했고, 그 후 학교를 옮겼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그 애가 친구들을 향해 식칼을 들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 page 88 ~ 89

책을 읽으면서 '교육'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랑만 받을 거라면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그만일 것이고 구구단만 배울 거면 집에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면 됩니다.

그럼 집에 있으면 교육이 되는 것일까...!

불편한 일을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고 안 되는 일에 좌절했다가 극복하는 법을 가르치는 일이야말로 교육이 아닌가.

교육의 목표가 '독립'이라는 것을!

저도 새겨봅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이야기.

교사에게 모든 걸 '해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아이가 할 수 있도록 교육하길 바란다. 직접 교육하기 힘들면 교사에게 가르칠 권한이라도 허락하길 빈다. 목이 마른데 물이 없으면 선생님께 얘기하라고 가르치고, 체육 수업 때 하는 활동이 너무너무 힘들면 선생님께 직접 말씀드릴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 힘든 일을 대신해 주는 게 사랑이 아니다. 언제까지 대신해 줄 건가. 스무 살? 쉰 살? 부모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평생 대신해 주거나 적당한 시기에 가르치거나. 만약 후자를 선택할 거라면 지금이 적기다. 심지어 어린이들은 말도, 자전거도, 삶의 태도도 훨씬 빨리, 잘 배운다. 아이를 과소평가 하지 마라. 당신의 자녀는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유능하다. - page 264 ~ 265

부모의 역할 역시도 자식이 '독립'할 수 있게끔 하는 것임을.

그러니 무한한 사랑을 주는 대신 그들의 서툰 시도와 실패에 응원해야 함을.

난 널 믿어!

이 믿음과 응원과 사랑을 담아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주는 부모가 되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상한 무인 사진관 이상한 무인 가게 시리즈 4
서아람 지음, 안병현 그림 / 라곰스쿨 / 202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조금 아쉬웠지만, 이제 내일을 기약할 차례였다.

"그래서, 다음은 어떤 가게지?"

10주 연속 베스트셀러이자 교사와 어린이들이 추천하는 '이상한 무인 가게' 시리즈.

이번엔 원하는 모습으로 바꿔주는 신비로운 사진기가 가득한 무인 사진관을 배경으로 말 못 할 고민을 가진 아이들을 위해 나타났습니다.

그동안

『이상한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에서는 달콤한 아이스크림으로,

『이상한 무인 문구점』에서는 신비한 문구류로,

『이상한 편의점』에서는 기발한 먹거리로

아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는데...

이번엔 또 어떤 고민들이 어떻게 해결될지 기대하며 아이와 함께 읽어보았습니다.

"집사용 캣 스마일·좋아요 인싸포토

나이를 바꾸는 어른네컷

원하는 모습으로 찍어 드립니다"

이상한 무인 사진관



"카메라 보시고, 입가에 미소! 좋습니다." - page 6

이 사진관에 오기 시작한 지도 60년째.

10년 전 이곳에서 사진을 인화할 때는 꼬박 하루가 걸렸었고

그로부터 10년 전에는 사흘,

그로부터 10년 전에는 일주일...

세상은 분명 몰라보게 좋아지고 있지만 10년마다 찾아오는 사내아이는 늙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외모의 변화로 세월을 실감하지만 난 그럴 수 없으니 사진이라도 남겨야지. 이걸 하지 않으면 언젠가 내 나이조차 잊어버리고 말 거야."

"저번에 듣기로는 백 살이 넘었다고 하셨지요?" - page 10

처음엔 사내아이가 늙지 않는다는 사실에 무서웠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된 사진관 주인.

전통적인 사진관이 설 곳이 없는, 전부 무인 사진관으로 바뀌고 있는 흐름 속에 주인 역시도 이 사진관 문을 닫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내아이는 사진관 주인에게 툭 던지듯 물어보는데...

"자네, 은퇴 비용은 충분히 있나?"

"네?"

"이 가게 말이야, 나한테 팔지 않겠나?"

사내아이는 카메라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나한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 - page 11



늙은 사진관이 있던 자리에 카메라 모양을 본뜬 깨끗한 새 건물.

문 옆에는 작고 네모난 팻말이 붙어 있었습니다.

무인 사진관

여러분이 원하는 모습으로 찍어 드립니다!

발자국이 새겨진 은색 발판에 올라서면 렌즈처럼 생긴 문이 열리고 천장에 달린 스피커 속 인물과 거래를 하게 됩니다.

-우리 가게는 돈을 받지 않아. 대신 꿀팁을 받지. 사진 잘 찍는 너만의 꿀팁.

그렇게 무인 사진관에 방문한 친구들의 사연이 그려지는데...

엄마의 간섭에서 벗어나 어른이 되고 싶은 '우주'에게 '어른 네컷' 사진을,

SNS 인플루언서가 되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은 '지유'에게 좋아요 생성 '인싸 포토'를,

빨리 키가 커서 더 이상 친구들에게 놀림당하고 싶지 않은 '우람'이에게 '롱롱 필림'을,

고양이가 나만 따랐으면 하는 '시아'에게 집사 전용 '캣 스마일' 사진을,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싶은 '민호'에게 '레전드 프로게이머 폴라로이드'를,

남자 친구를 사귀어보고 싶은 '지수'에게 '커플 탄생 러브러브 머그잔'을

찍어줍니다.

과연 아이들은 이곳에서 사진을 통해 원하던 행복을 찾을 수 있을까요?

"보이는 게 전부는 아니야.

행복은 이미 네 곁에 있단다."

역시나...!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품어봤을 바람과 행복에 대한 고민들이었고 무조건 고민이 해결된다고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특히나 이들이 찾은 '행복'은 자신의 곁에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일러주었습니다.

아이는 책 속의 친구들 중 '전우주'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엄마 잔소리가 듣기 싫다고, 빨리 어른이 되어서 공부를 하고 싶지 않다고 했던 아이.

우주를 통해

무조건 나이만 먹는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구나!

어른이 되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는 만큼 알아야 할 것, 해야 할 것도 많다는 사실에

지금의 자신이 제일 좋다며 오히려 나이 먹기 싫다고 외치는 아이.

그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저에겐 마지막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림자와 함께 사진을 찍던 사내아이.

하지만

"내가 사진에 찍힐 거라고 생각했나?"

"뭐, 기대는 했지. 사람들이 그러더군. 사진은 흘러가는 시간을 잡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어쩌면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시간' 그 자체가 아닐까' - page 148

이 묵직한 한 마디를 남기고 다시 이들은

"자, 다음 가게를 찾으러 가 볼까?" - page 149

다음엔 어떤 가게로 우리 앞에 나타날지 기다려 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 좋아하는 일, 꾸준히 오래 하면, 생기는 일
정헌재(페리테일) 지음 / 아워미디어 / 202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2년 《포엠툰》

2003년 《완두콩》

을 기억하는가?

네!

《포엠툰》을 마주했을 때 적잖이 충격이었습니다.

'사랑'이 가진 다양한 얼굴을 서정적인 글과 감성적인 그림으로 그려냈는데...

지금도 제 책장에서 마주할 수 있는 책.

그래서 이 책을 마주하자마자 반가웠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엔 어떤 이야기로 감동을 선사할지 기대하며 읽어보았습니다.

단행본 12권·다이어리 17권·어린이 책 5권 만들어서

100만 부 판매고를 올린 베스트셀러 작가,

웹툰 연재하고, 캐릭터 사업도 하는 멀티플레이어,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사진 찍는 일을 20년 넘게 한 '귀여운' 인내심 장착자.

"어떻게 하면 오래 일할 수 있을까?"

불안의 파도를 타며 인생을 음파음파 '귀엽게' 항해하는 법

"아!! 계속하면

살아남는구나."

귀여운 거 그려서 20년 살아남았습니다




 




"나는 뭐로 살아남았나?"

이 책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림 그리고 글 쓰고 노래 부르며 살고 싶습니다."

"그거 해서 먹고살 수 있나?"

라고 묻는 주변인들의 걱정에 응답한 저자(페리테일)의 'well-being 생존기'.

60개의 이야기는 귀엽지 않았습니다.

넉넉지 않은 집안 환경, 평생 앓아온 극심한 아토피, 눈 수술(인공수정체를 흰자에 묶어 고정하는), 거절당하는 작가로서의 삶, 당장 망할 것 같은 불안감 등 이야기를 채우는 소재는 불행과 잔인함에 가까운 '신세 한탄용'이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20여 년차 웹툰 작가의 내공이 빛을 발하게 됩니다.

'인생의 높낮이를 조절하는 능력!' 덕분이라 말한 그.

처음에는 조금 붕 뜨기는 했지만

금방 제자리를 찾은 것 같습니다.

너무 높게 날지 않아서 떨어져도

죽을 만큼 다치지 않았고

낮게 나는 대신 최대한 힘을 쓰지 않고

딱 쓸 만큼만 써서

빨리 지치지 않았습니다.

낮게 나는 대신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낮게 나는 대신 언제나 원하면

바닥에 발을 딛고 천천히 걸으며

쉬었다 갈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지금까지 높이 날지는 못하지만

낮게, 그리고 오래 행복하게 날고 있습니다. - page 369 ~ 371

며 또 다른 형태의 '갓생'을 보여주었습니다.

덕분에 '귀엽다'라는 말이 사람, 동물, 식물, 사물 등 생물과 무생물의 경계 없이 라벨링될 수 있음을, 이토록 다정한 위로가 될 수 있음을 저자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