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카이도선 후지역에서 도호쿠 쪽으로 1리 남짓 떨어진 곳에 메이지의 권신 후루다테 다넨도 백작이 만든 커다란 저택이 있습니다.
바로 '명랑장'.
복종과 배반이 마구 난무하던 전국 시대 이후의 건축양식을 지닌 명랑장은 바로 경계를 강화할 필요성에 따라 설계되어 있었습니다.
저택 내에는 곳곳에 회전 벽이나 빠져나갈 탈출구가 있고
뜰에 심어진 나무 하나하나에도 몰래 들어온 자객의 저격에 맞설 수 있도록 사각지대가 만들어져 있는
극도의 경계심을 가지고 만든 비밀 설계 말고도 이 건축양식에는 복잡하고 기괴한 느낌을 불러온 것이 하나 더 있었으니
후루다테 다넨도 백작이 옛 다이묘를 모방하여 엽색 행각을 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건축양식이었다는 점입니다.
아무튼 앞서 언급한 회전 벽이나 도주용 탈출구 등 비밀 설계가 많은 데다 줄줄이 이어진 방 구조를 가진 명랑장은 언제인가부터 '미로장'이라 불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 한 가지 피비린내 나는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쇼와 5년 가을.
다넨도의 아들 가즌도 백작이 자신의 아내 가나코와 아내의 사촌 시즈마의 불륜을 의심해,
가즌도 백작은 일본도를 휘두르며 단칼에 아내를 살해하고,
시즈마의 왼팔을 베어 떨어뜨렸는데
그때 일본도도 떨어뜨려 그 일본도를 시즈마가 주워 역으로 가즌도 백작을 벤
그야말로 대참극이 벌어졌던 겁니다.
흉기는 나중에 발견되었는데 중요한 오가타 시즈마가 보이지 않습니다.
당시 왼팔이 잘린 채 저택의 지하 동굴로 도망친 그.
그는 자결했을까...
아니면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을까...
이 사건은 긴다이치 고스케 탐정담의 전주곡이 되었으니...!
전쟁이 끝나고 5년이 지난 쇼와 25년 가을, 10월 18일 일요일.
도카이도선의 후지역에 홀연히 내린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나이는 서른대여섯쯤, 약간 더러워진 쥐색 외투를 왼팔에 걸치고 오른손에 초라한 보스턴 백을 들고 있는 그.
"아, 선생님. 긴다이치 고스케 선생님 아니십니까."
긴다이치 고스케는 신흥 재벌 시노자키 신고의 요청을 받고 후지산 인근의 대저택 명랑장을 찾게 됩니다.
몰락한 후루다테 가문으로부터 명랑장의 소유권을 사들인 신고.
그리고 현재 주인 시노자키 신고의 아내는 후루다테 다쓴도의 아내 시즈코.
왠지 모를 불안이 긴다이치 고스케의 얼굴을 흐려지게 하는데...
"실은 이 집이 드디어 영업을 개시할 때가 됐거든요. 그 전에 이 집과 인연이 깊은 분들을 모시고 그 추억을 기리고자 하는 마음에서요. 그리고 또 하나, 협의할 일이 있습니다."
그저게, 즉 금요일 아침 정체불명의 외팔이 남자가 홀연히 명랑장에 나타나 달리아의 방에서 사라진 겁니다.
혹시나 실종된 시즈마가 아닌가 의심하고 조사를 의뢰했는데...
"아빠! 살인이에요, 사람이 죽었다고요. 빨리 와요!"
"살인이라니......?"
"네, 살인이요. 사람이 죽었다고요!"
"살해당했다니, 대체 누가......?"
"후루다테 아저씨요. 후루다테 아저씨가 살해당했다고요!" - page 74 ~ 75
가즌도의 아들 다쓴도를 시작으로 차례차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데......
참혹한 과거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일까...?!
"하지만 누가 이런......"
"그러니까, 이 명랑장에는 온갖 도깨비가 우글거리고 있다고. 그놈이 여럿일지 하나일지는 몰라도 말이야. 그러니 다들 조심해야 해." - page 407
3대에 걸친 백작 가문의 허영과 집착은 명랑장을 위선 가득한 기괴한 공간으로 만들었고,
격변기에 쇠락을 거듭하며 뒤틀린 내면은 결국 피비린내 나는 참극을 불러왔던 이 소설.
결국 그들의 이야기는
'인과응보'
였음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역시나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탐정 '긴다이치 고스케'.
"긴다이치 씨, 아니, 긴다이치 선생님, 이게 대체 어찌 된 거요. 당신 눈앞에서 연달아 사건이 일어났소. 그런데도 당신은 그저 졸랑졸랑 걸어 다닐 뿐 아무것도 하려고 하지 않소. 당신이 그러고도 명탐정이오?" - page 444
더벅머리를 긁고 살인 사건을 막지는 못하지만 사건의 실마리를 모두 해결한 뒤 보여준 특유의 인간미...
왜 그가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다시 그의 활약이 그려졌던 작품들을 찾아 읽어봐야겠습니다.